해동염사/윤관 첩 여진국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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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尹侍中의 愛妾 女眞國의 곰 美人

윤관(尹瓘)은 고려 예종 때(高麗 睿宗朝)에 유명하던 장수요 또는 재상이다. 그는 일즉이 원수(元帥)가 되야 부원수 오연총(副元帥 吳延寵) 록사 척준경(錄事 拓俊京) 등과 가치 대병을 거나리고 북으로 여진(女眞)을 처서 구성(九城)을 빼고 공험진(公嶮鎭)에 승첩의 기념비를 세운 다음에 나라에 돌아와 그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戒拓地鎭國功臣)이 되였었다. 그는 여진을 토벌하는 중에 투항한 여진 추장(女眞 酋長)의 딸을 마저서 첩을 삼었으니 그는 당시 여진에서 이름이 높던 미인으로 이름을 곰(熊)이라 하는 여자였다. 그는 윤관 장군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고 일국 명재상의 첩이 되였으니 개인의 부귀로 말하면 남 부러울 것이 없었겠지만은 남의 나라에 사로잡힌 몸이 되야 고국과 친척을 멀니 이별하고 이역 고종(異域孤踪)의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마치 옛날의 왕소군(王昭君)이 호지(胡地)에 시집간 것과 같은 한을 품고 항상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꽃따운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나 윤관장군의 특별한 사랑에 정을 붙이고 적이나 위안을 하며 윤장군이 로래에 벼슬을 사직하고 그의 고향인 파주(坡州)에 돌아가서 한운야학(間雲野鶴)의 생활을 할 때에는 그곳까지 따러 가서 가치 살더니 윤장군이 불행이 죽게 되니 그는 다시 마음을 붙일 곳이 없어서 항상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최후에 이 세상을 비관하고 연못(淵)에 빠저 죽으니 뒷사람들이 연못의 이름을 곰못(熊淵)이라 하고 그의 빠저 죽던 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 이름 지였으니 지금 파주군 고적 중에 들어 있는 웅연 낙화암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