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함흥의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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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興의 美人

南男北女라고 咸鏡道에는 元來에 物色이 좋고 이름난 美人이 많다. 近來에 本夫 毒殺 美人으로 세상이 떠드던 金貞弼 같은 女子는 造化翁이 맨긴 天然의 美人보다도 好奇心 만은 新聞記者들의 붓끝으로 맨긴 美가 많으니까 아즉까지 確實한 定評을 나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評判인즉 近來에 第一 많었던 것은 事實이다. 成宗 때에 名歌妓로 成宗의 寵愛를 받고 노래를 樂府에까지 올리여 至今까지 一般 風流客에게 膾煑을 받는 笑春風도 咸鏡道 永興의 美人이오 壬辰亂 때에 烈烈한 節死를하야 內外人의 耳目을 驚動한 東萊府使 宋象賢의 愛妾으로 宋氏를 따러서 또한 節死(一說에 生存하였다는말도 있다)한 金蟾도 咸鏡道 (咸興의) 美人이요 近世에 黃承旨 奎河의 愛妾으로 節을 守한 晩香도 咸鏡道(咸興)의 美人이오 其他 文章 崔孤竹 慶昌의 愛妾 洪娘(洪原妓) 徐評事 命彬의 妾 翠蓮도 女流 詩人인 同時에 當代 美人이였다. 大金 皇帝 李澄玉도 이 咸鏡道의 美人에 팔니어서 越江을 躊躇하다가 大陸의 皇帝를 꿈꾸던 大業을 失敗하고 革命家 會寧府使 李施愛도 失敗逃走하는 中에 또한 美人을 携帶하다가 鬼門關(鏡城) 外에서 捕據의 寃魂이 되었다. 何如間 咸鏡道는 美人 많은 것이 事實이다. 化粧보다도 天然의 美가 豐富하야 그 桃花色과 같은 血色과 四技의 骨格과 筋肉이 고로히 發達된 肉體의 美는 到底히 他道의 美人으로 敢히 同日에 語치도 못할 것이다. 特히 貞操의 觀念이 強하야 一般의 女子는 勿論이고 비록 花柳界의 女子라도 다른 곳 女子 모양으로 飄絮飛花의 行動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京鄕의 花柳卷이나 其他 남의 妾窟에서 咸鏡道 女子의 影子를 보기 어려운 것을 보와도 足히 證明할 것이다. 自來로 美人이 多薄命이라던지 美人이 無貞操라 하는 말은 이 咸鏡道 女子에 對하야는 適評이라 할 수 없다. 語音이 뚝뚝하고 交際性 적은 것이 美人 資格에 한 欠點이라 하지만은 그것은 南道 사람이 하는 말이지 그 地方에서는 그것이 도로혀 美人의 特色일는지도 알 수 없다. 물래틀(文萊機) 같이 트른 머리에 함박 수건을 눌너 쓰고 울긋불긋한 옷고름에 말굴네 같은 銀가락지를 주렁주렁 차고 巨大한 體格에다 外國 女子보다도 더 발달된 큰 발을 그대로 드러내고 앉어서 「아— 여봅세 이 손님— 그— 어찌 그래 오한쟁기들 생겼슴마……」 하고 떠드는 것을 보면 아모리 美人이라도 南方 사람이 처음 보면 情이 떠러진다고 하겠지만은 실상 親하야 보면 그러한 態度와 말이 도로혀 天然스럽고 귀염성이 있어서 漸漸 親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咸鏡道 中에는 南部보다도 北部로 드러갈사록 美人이 많어 茂山 같은 데는 所謂 茂山 仙女라고 評判이 높지만은 그래도 都市가 都市이니만치 數가 많은 것으로나 時代的 美化가 된 것으로나 咸興의 美人으로 第一指를 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