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고향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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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을은 이미 잠들었습니까?
등불 하나이 없이 캄캄하니 답답습니다.

여기 그대 아들이 있습니다.

부산을 떠난 막차가 환하니 달리지 않습니까?
개 소리 한마디 들림직 하건만 하늘과 땅이 소리도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누런 수캐란 놈도 혹여 양식이 되지나 않았습니까?

인젠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림도 속절없다.
주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집도 다하고,
기름도 마르고, 기운도 지쳐,

아아, 마음 아픕니다. 죽은 듯 마당에 쓰러지지나 않았습니까?

기적이 우니 차가 굴속에 드나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제 고향은 눈앞에 스러지렵니다.

어머님 묻힌 건넛산 위 별들이 눈물 어렸습니다.

인제 내 하나가 있고, 벼락 맞은 수양이 섰고,
그대가 늘 소를 매어 여름이면 파리가 왕왕 끓었습니다.

아들이 마을 전설과 옛 노래를 익힌 곳도 게 아닙니까?

오는 새벽 비가 내리면, 그대는 또 괭이를 잡고, 논 가운데십니까?
당신의 굽은 등골의 아픔이 아들의 온몸에 사무칩니다.

아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대 슬픔은 너무나 큽니다.
그대 정숙한 아내도 이 속에 죽었고,
당신의 청승궂은 자장가로 자란 누이도 이 속에 죽고,

그만 떨치고 일어나, 당신을 받들 먼 날을 그리어 내지로 간
아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오는 아들의 손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흙방 위에 꼬부리고 누운 그대를 헛되이 눈감아 생각할 뿐.

한 되는 일입니다. 그대 이름 부를 자유도 없습니다.
곧장 내일 아침 지정받은 곳에 닿아야 합니다.
하나밖에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준엄한 길입니다.

그대여! 당신은 아들의 길을 축복합니까?

그대 무릎 아래 다시 엎드려 볼 기약도 막막한,
슬픈 길이 북쪽으로 뻔하니 뚫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압니까, 아들의 길이 눈물보다도 영광의 어린 것을……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호올로 흐르는 그대의 눈물이
아들의 타는 마음속에 기름을 붓는 비밀을.

아아!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