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구름은 나의 종복이다
흰 구름은 하늘에 비끼고,
나는 풀밭에 누워 휘파람을 불고,
공상이란 미상불
고삐를 끊어 던진 흰 말이다.
만일 구름보다 자유로운 것이 있다면,
대체 그것은 무엇일가?
그놈의 흰 갈기를 부여잡고,
힘을 모아 배때기를 걷어차면,
우박송이처럼 당황하여,
나의 곁을 지내가는 별들을 볼 것이다.
참으로 그 뭉글뭉글한 잔등을 어루만지며,
나는 구름 위에 유유히 앉은 내 모양을 칭찬한다.
생각할수록 별들이란
겁이 많고 지나치게 영리한 게으름뱅이다.
저렇게 많은 족속들이
한낱 태양 아래 박쥐처럼 비겁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태양이란 것도
한껏 교만할 따름이지 실상은
앞산 그림자가 한 발을 더듬기 시작만 하면,
벌써 산정에 꼬리를 감추는
교활한 노총각이다.
그렇다고 나는 하늘을 휩쓰는 장한 바람이 되어보고 싶지도 않다.
조그만 숲 하나를 헤어나가려
몸부림을 치고 아우성을 지르고,
법석을 하는 꼴이란
너무나 치졸하다.
한껏 죽지를 벌려 고개를 들고,
높은 산마루에서 화살처럼
하늘을 날아보려던
일찍이 꿈꾸었던 코스는,
지금 생각하니 일부러
고운 하늘을 눈알을 휩뜨고 날기도 애석하고,
피곤하여 바위 아래 허덕이며,
숨을 들이는 비장한 순간이란
나의 적들이 볼까 두렵고,
아아, 역시 희고 가벼운 구름아!
네가 오로지 한 평생 가도
넓은 하늘이 좁은 줄을 모른다.
산맥처럼 장한 체수건만,
어느 모서리에 부딪쳐야,
깨어지는 수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솜처럼 자꾸만 피어 나가다가,
칵 답답하여
짜증이 날 때도 없고,
아아! 나는 너의 그 무한한 탄력성을 사랑한다.
영맹한 저기압과
원지(遠地)의 바람이,
우리들의 지상을 향하여,
엄청난 습격을 시험할 때,
너는 잽싸게 검은 연막으로 무장을 고쳐,
시급한 방어 임무에 당하더라.
자재(自在)한 둔갑술이여!
이윽고 ×두가 한창 격연(激然)할 때,
한 줄기 소나기가 되어,
마른 남새밭을 발을 구르며 지내면,
나는 초목들과 더불어 손뼉을 친다.
생생한 목숨이여!
새들이다.
어린 참새들이다. 제비들이다.
마을 추녀 끝에 물초가 쥘 때쯤,
너는 어른처럼 옷깃을 걷어 들고
햇볕이 쨍쨍한 하늘 가로
붉은 놀이 되어 스러진다.
선(善)한 결단력이여! 구름아!
어느게 너의 자유이고 의지이냐?
너는 부자유도 자유이냐?
그렇지 않으면, 너는 불가능이란 것을 모르느냐?
‘나폴레옹’이다!
지금 네가 떠있는 곳은 바다이냐, 섬이냐?
하늘이다!
너는 오늘 가벼이 하늘을 거닐고,
사자가 되어 이리를 쫓다가,
바위가 되어 물결을 차다가
강아지가 되어 공을 굴리다가,
어린애가 되어 달음질을 하다가,
너는 유희를 즐기는구나!
자 듣거라, 구름아!
오늘 나는 너의 주인이다.
휘파람 부는 내 가슴은 줌을 못 넘고,
머리는 땅 위에 한길을 못 오를 망정,
한대도 나의 생각은 네 위
너른 하늘을 내려본 일이 없느니라.
종순(從順)한 나의 흰 말아!
고삐를 내게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