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눈물의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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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야, 너는 자장가도 없이 혼곤히 잔다.
너는 인제서야 잠이 들었다만,
너무나 오랫동안 보채어,
좁은 목이 칼칼하니 쉬었다.

너는 오늘밤
이 해협 위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의 단 한 가지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잔다.

바람이 지금 바다 위에서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너는 모른다.
물결이 갑판 위에서 무엇을 쓸어가고 있는지도 너는 모른다.
물밑에 어족(魚族)들이 무엇을 탐내고 있는지도 너는 모른다.
이따금,
동그란 유리창을 들여다보는 것이 정녕 주검의 검은 그림자인 것도 너는 모른다.

아마 우리를 실은 큰 배가,
수평선 아래로 영원히 가라앉는 비창한 통곡의 순간이 온다 해도,
너의 고운 잠은 깨이지 않으리라.

아기야, 너는 오늘밤,
이 바다 위에 기적의 손길이 미쳐 있는 줄 아느냐?

눈물이 흐른다.
현해탄 넓은 바다 위
지금 젖꼭지를 물고 누워
뒹굴을 듯 흔들리는 네 두 볼 위에,
하염없이 눈물만이 흐른다.

아기야, 네 젊은 어머니의 눈물 속엔,
무엇이 들어있는 줄 아느냐?
한 방울 눈물 속엔
일찍이 네가 알고 보지 못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자라난 요람의 옛 노래가 들어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뜯던 봄나물과 꽃의 맑은 향기가 들어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꿈꾸던 청춘의 공상이 들어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갈아붙인 땅의 흙내가 들어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어루만지던 푸른 보리밭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안아보던 누른 볏단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걸어가던 촌 눈길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나무를 베던 산의 그윽한 냄새가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죽이던 도야지의 비명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듣던 외방 욕설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받았던 집행 표지가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작별한 멀리 간 동기의 추억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떠나 온 고향의 매운 정경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이따금 생각했던 다툼의 뜨거운 불길도 있다.

참말로 한 방울 눈물 속은 이 모든 것이 들어있기엔 너무나 좁다.
그러므로 눈물은 떨어지면 이내 물처럼 흘러가지 않느냐?

나의 아기야, 그래도 이 속엔 아직 그들의 탄 배의 이름도 닿을 항구의 이름도 없고,
이 바다를 건너 간 많은 사람들의 운명은 조금도 똑똑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바람과 파도와 그밖에 온갖 악천후에 대하여,
눈물은 다만 하염없을 따름이다.

밝은 날 아침 다행히 물결과 바람이 자서
우리의 배가 어느 항구에 들어간대도 이내 세 운명이 까마귀처럼 소리칠 게다.
나는 그 고이한 소리가 열어놓는 너의 소년과 청춘의 긴 시절을 생각한다.
아기야, 해협의 밤은 너무나 두려웁다.

우리들이 탄 큰 배를 잡아 흔드는 것은 과연 바람이냐? 물결이냐?
아! 그것은 현해탄이란 바다의 이상한 운명이 아니냐?
너와 나는 한 줄에 묶여 나무토막처럼 이 바다 위를 떠 가고 있다.

아기야, 너는 어찌 이 바다를 헤어가려느냐?
날씨는 사납고,
아직 너는 어리고,
어버이들은 이미 기운을 잃고,
내 손은 너무 희고 가늘고,
기적이란 오늘날까지 있어본 일이 없고,

그러나, 아끼는 나의 아기야,
오늘밤 이 바다 위에 흐르는 눈물이,
내일 너의 젊은 가슴 속에 피워 놓을 한 떨기 붉은 장미의 이름을
아아! 나의 아기야,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