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다시 인젠 천공에 성좌가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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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어둔 바다,
쭉 건너간 수평선 위,

다시 인젠
별들이 깜박일 필요는 없다.

파도 위 하늘 아래,
일찍이 용사이었던.

그러니라……
―뱃머리를 돌려라,
돛을 꼬부리고.
남풍이다.
에헷! 그물 줄을 늦추고.

이마 위에 한 손을 얹고,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들면,
별들은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웠다.

별들은 결코 속이지 않았다.

우리의 가슴은 바다인 듯,
고기들과 조개의 온갖 비밀을 알았고,
은하 오리온 먼 대웅(大熊)의
조그만 속삭임 하나,
우리의 귀는 빼놓지 않았다.

우리의 몸은 새보다도
날래고 자유로워,
바람이나 파도는
얼른 우리 앞에 맞서지를 못했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우리들의 가슴속에 묻어 놓은 것은,
자신과 굳은 신념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밤 얼굴의
깊은 주림과 꺼진 눈자위가
밤하늘보다 오히려 어두워,
타고 있는 조그만 배가
장차 닿을 항구의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

살림의 물결, 가난의 바람은,
현해 바다보다도 거세게 매웠던가?

마음과 얼굴에 함부로 파진,
깊고 어둔 골창들은
험한 생애의 풍우(風雨)가 물어뜯은
지울 수 없는 상처들.

그곳에서 흐른
아프고 붉은 이야기가,
고향의 온갖 들과 내 위에
노래가 되어 흐르고 있다.

푸른 잎, 붉은 꽃과, 누른 열매,
가없는 하늘 밑에 드러누운 대륙의
헤아리기 어려운 삼림을 기르랴
너무나 비싼 생명들은 노가,

아아! 벌써 한개 숙명인 얼굴에,
그 메마른 피부 위에
어둔 해협의 밤바람이 부딪친다.

앞에도 뒤에도 얼굴
아낙네, 아이, 어른, 한줌의 얼굴들

―눈들은 제각각 알지 못할 운명에 촛불처럼 떨고 있다.

대체 이런 똑같은 얼굴들아,
아아! 그대들은 다 형제인가……
통 통 통 통
국법을 어기는 명백한 음향이
현해 어둔 바다 하늘 위에 떨린다.

―아아 북구주 해안엔
대체 무엇이 기다린단 말인가!

쳇 쓸데없는 별들이다.

인젠 곱다란 연락선 갑판 위
성장(盛裝)한 손들 머리 위나 빛나거라.

―너희는
그들의 사랑과 축복의 꽃다발이리라.

몇 번 너희들은 이러한 밤,
정말 몇 번
눈 밝은 경비선을 안내했는가?

듣거라, 하늘아!
다시 인젠
바다 위에 성좌가 있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