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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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끼지 않으련다.
낙엽이 저 눈발이 덮인
시골 능금나무의 청용(靑容)과 장년(壯年)을……
언제나 너는 가고 오지 않는 것.

오늘도 들창에는 흰 구름이 지나가고,
참새들이 꾀꼬리처럼 지저귄다.
모란꽃이 붉던 작년 오월,
지금은 기억(記憶)마저 구금 되었는가?

나의 일년이여, 짧고 긴 세월이여!
노도(怒濤)에도, 달콤한 봄바람에도,
한결같이 묵묵하던 네 표정을 나는 안다,
허나 그렇게도 일년은 정말 평화로웠는가?

‘피녀(彼女)’는 단지 희망하는 마음까지
범죄 그 사나운 눈알로 흘겨본다.
나의 삶이여! 너는 한바탕의 꿈이려느냐?
한간 방은 오늘도 납처럼 무겁다.

재빠른 가을바람은 멀지 않아,
버들잎을 한 움큼 저 창(窓) 틈으로,
지난해처럼 훑어 넣고 달아나겠지,
마치 올해도 세계는 이렇다는 듯이.

그러나 한개 여윈 청년은 아직 살았고,
또다시 우리 집 능금이 익어 가을이 되리라.
눈 속을 스미는 가는 샘이 대해에 나가 노도를 이룰 때,
일년이여, 너는 그들을 위하여 군호를 불러라.

나는 아끼지 않으련다, 잊어진 시절을.
일년 평온무사한 바위 아래 생명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넓고 큰 대양의 앞날을 향하여,
지금 적막한 여로를 지키는 너에게 나는 정성껏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