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해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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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듯 멀리
대마도 남단은 수평선 위에 스러졌다.

동그란 해가 어느새 붉게 풀려,
남쪽으로 남쪽으로 흐르는 곳,
드문드문 검은 점들은 유구열도(流球列島)인가?

물새들도 어느새 검은 옷을 입어,
눈 선 나그네를 희롱듯 노니는구나!

아아! 불빛이 보인다.
어렴풋 관문해협(關門海峽)의 저녁 불들이
그 가운데는 붉고 푸른 불들도 있다.

연락선은 곤두설 듯 속력(速力)을 돋운다만,
인제 고향은 아득히 멀어졌고,
나는 저 곳 산천의 이름도 못 들었다.

―정녕 이곳에 고향으로 가지고갈 보배가 있는가?
―나는 학생으로부터 무엇이 되어 돌아갈 것인가?

가슴을 짚어보아라,
하얗고 가는 손아,

누구가 이러한 저녁
청년들의 가슴 위에 얹힌
떨리는 손에 흐르는
더운 맥박을 짐작하겠는가.

태평양, 태평양 넓은 바다여!

일본열도 저 위
지금 큰 별 하나이 번적였다.
내일 하늘엔 어떤 바람이 불 것인가?

배는 아직 바다 위에 떠있고,
인제 겨우 동해도연선(東海道沿線)의 긴 열차는 들어온 듯하나,

아아! 나는 두 손을 벌리어 하늘을 안고,
목적한 땅 위에 서 물결치는 태평양을 향하여
고함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