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흙/제2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

살여울 보에 오래 기다리던 물이 늠실늠실 불었다. 삼사 일 이어 오는 비에 살여울 강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 오랜 가물에 늦었던 모를 내게 된 것이다.

논 마다 허리 굽힌 사람들의 움직이는 양이 보였다. 길게 뽑는 메나리 가락도 들렸다. 비록 배는 고프더라도 젊은이에게는 기운이 있었다. 아침 나절까지도 비가 와서 부인네들은 삿갓을 등에 지고 모를 내었다. 그러나 인제는 비도 개고 파란 하늘조차 여러 조각의 흰 구름에 어울려 흥건하게 닿은 논물에 비치었다. 그래서 부인네들이 등에 졌던 삿갓은 논둑에서 노는, 엄마 따라온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혹 은 뻘거벗고 혹은 적삼만 입고 혹은 고쟁이만 입은 사내, 계집애들은 물장난을 하고 소꼽장난을 하였다. 그들의 몸은 볕에 그을어서 검었다. 그러나 도회 애들 모양으로 기름기는 없었다. 기름기가 있을 리가 있나. 그들은 만주 조밥에 구더기 끓는 된장밖에 먹는 것이 없거든. 젖먹이로 말하여도 절반이나 굶은 어머니의 젖은 젖이라는 것보다는 젖 묻은 그릇을 씻은 물이었다. 다만 물과 일광만이 아직 불하, 대하 공동 판매도 아니 되어서 자유로 마시고 쪼이기를 허하였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맘껏 볕에 그을고 맘껏 물배가 불렀다. 인제는 비가 와서 마른다 마른다 하던 우물도 물이 늠실늠실 넘었다.

모 를 내는 여자들의 무릎까지 올려 걷은 다리. 그것은 힘은 있을망정 살이 비치는 흰 명주 양말에 굽 높은 흰 구두를 신은, 그러한 서울 아가씨네 다리와 같은 어여쁨은 있을 리가 없다. 모내는 아씨네, 아가씨네 다리들은 띵띵 부었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너무 오래 물에 담겨서, 또 너무도 굶어서 부황이 나서. 만일 이 아씨네, 아가씨가 아픈 허리를 펴느라고 고개를 들고 두 손에 물이 옷에 묻지 말라고(젖을 옷도 없건마는) 닻가지 모양으로 좌우로 약간 벌리고 선다 하면 그 얼굴도―---일생에 한 번밖에(그것도 시집간 여자라야) 분 맛을 못 본 얼굴은 볕과, 굶음과 피곤과 너무 오래 고개를 숙임으로 퉁퉁하게 붓고, 또 찌그러져 보일 것이다. 땀과 때와 빗물과 흙물과 더위에 뜨고 쉰 옷 냄새, 쉬지근한 냄새, 이 냄새가 농촌 모내는 사내의 코에는 모기장 같은 상긋한 옷에 불그레 뽀얀 부드러운 살이 비치는 서울 아씨네, 아가씨네의 몸에서 극성스럽게도 나는 향내와 같을까.

늙 은이도 젊은이도, 여편네도 처녀도 한 손에는 모춤을 쥐고 한 손으로 두 대씩, 석 대씩, 넉 대씩 갈라서는 하늘과 구름 비친 물을 헤치고 말랑말랑한 흙 속에 꽂는다. 꽂은 볏모는 바람에 하느적하느적 어린 잎을 흔든다. 인제 그들은 며칠 동안 뿌리를 앓고 노랗게 빈혈이 되었다가 생명의 새 뿌리를 애써 박고는 기운차게 자라날 것이다. 그러한 뒤에 알을 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누렇게 익어서 고개를 숙여, 일생의 사명을 끝낸 뒤에는 아마도 모내던 손에 깎이어 알곡은 알곡 따로, 짚은 짚 따로 나고, 알곡은―---아아 그 알곡은 모낸 이, 거두는 이의 알곡은 반은 지주의 곡간을, 반은 빚쟁이의 곡간을 다녀서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몇 상인의 이익을 준 뒤에 논바닥 물에 살은커녕 그림자 한 번도 못 잠가 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 되고, 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논바닥에서 썩는 이 생명들은 영원한 가난뱅이, 영원한 빚진 종, 영원한 배고픈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뺑' 하고 고동 소리가 들린다. 서울서 봉천으로 달아나는 기차다. 이 고동 소리에 모내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유순이도 있었다.

유 순은 재작년 초가을 허숭에게 안길 때보다 커다란 처녀가 되었다. 그는 길다란 머리 꼬리를 한편으로 치우려다가 치마끈에 껴 졸라매어서 늘어지지 아니하게 하고 풀이 다 죽은 광당포 치마를 가뜬하게 졸라매고 역시 풀 죽은 당포 적삼은 땀난 등에 착 달라붙어서, 통통한 젊은 여성의 뒤태를 보인다. 비록 옷이 추하고 낯이 볕에 그을었다 하더라도 순의 동그스름한 단정한 얼굴의 선, 수심을 띤 듯한 큼직한 검은 눈, 쭉 뻗고도 억세지 아니한 코, 더욱이 특색 있게 맺혔다고 할 만한 입, 그리고 왼손에 파란 잎, 하얀 뿌리의 나불나불, 어린 애기와 같은 맛이 있는 볏모를 들고 논에 우뚝 서서 허리를 펴는 양으로 아무리 무심히 보더라도 눈을 끌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순의 얼굴에 약간 수척한 빛이 보이는 것은 여름 때문인가, 피곤 때문인가, 못 먹어서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속에 견디기 어려운 무슨 근심을 품음인가. 아마 그것을 다 합한 것이겠다.

실 상 유순은 허숭이가 혼인한 기별을 들은 후로는 넋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처럼 맘에 탐탁하게 믿었던 허숭의 맘이 그렇게도 쉽사리 변할 줄을 유순은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유순의 생각에 허숭은 이 세상에 가장 완전한 남자, 그러니까 가장 믿음성 있는 남자였다. 유순의 참되고 단순하고 조그마한 가슴은 오직 허숭으로, 허숭에게 대한 믿음과 존경과 사랑으로 찼던 것이다. 허숭이가 곧 유순의 하늘이요, 땅이요, 해요, 달이요, 생명이었던 것이다. 이남자 저남자 입맛을 보고 살맛을 보아 물었다 뱉었다 하는 도회 신식 여성과 달라, 유순에게는 허숭은 유일한 남편이요 남자였던 것이다. 허숭 이전에도 남자가 없고 허숭 이후에도 남자가 없었던 것이다.

허 숭의 맘이 변하여 다른 여자에게 장가든 것을 본 유순은 하늘, 땅, 해, 달, 목숨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그가 조선의 딸의 맘을 그대로 지니지 아니하였다 하면, 그가 도회식, 이른바 신식 여자라 하면 울고 원망하고 미쳐 날뛰고 혹은 서울로 달려 올라가 허숭의 결혼식에, 또는 가정에 한바탕 야료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순은 가슴에 에이는 듯한 아픔을 품고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한 태연한 태도를 가졌다. 그 부모나 형제에게도 괴로워하는 빛 하나 보이는 일이 없었다. 또 밤낮에 한가한 겨를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유순은 어느 으슥한 구석에서 맘놓고 슬퍼할 새도 없었다. 다만 하루 몇 번 앞 들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한 번씩 긴 한숨을 쉬고, 시꺼먼 기차가 요란히 떠들면서 지나가는 것을 바라다볼 따름이었다.

여름이 되면, 방학 때가 되면 이 차에나 이 차에나 하고 허숭을 바라고 기다리던 그 버릇이 남은 것일까. 아직도 그래도 행여나 허숭이가 자기를 찾아올까 하고 바라고 기다리는 것일까.

유순은 터덜거리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잠깐 바라보고는,

'내가 기다릴 사람이 누구인가.'

하 는 적막한 한숨을 짓고는 오래 한눈을 팔고 섰는 것이 여자의 도리답지 아니하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여전히 차를 바라보며 지루한 일에 새로운 자극을 얻는 것을 기뻐하는 듯이 지껄일 때에 유순은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이거 모들 안 내고 무엇들 하고 있어?"

하는 소리가 뒤로서 들려 왔다. 그것은 이 논 임자 신참사의 음성이었다. 이 사람들은 남자 삼십 전, 여자는 이십 전씩 하루에 삯전을 받고 신참사 집 논에 모를 내는 것이었다.

"허, 잠깐만 아니 보면 이 모양이거든."

하고 신참사는 노기가 등등하여 단장을 내어두르고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 두루마기를 펄렁거리며 달려온다. 그 뒤에 따라오는 양복 입고 키 작은 사람은 농업 기수다. 정조식 감독하러 다니는 관원이다.

"도모 시오노나이 야쓰라다나."

하고 신참사는 도야지 모가지같이 기름지고 밭은 모가지를 돌려 농업 기수를 돌아본다. 참 할 수 없는 놈들이라고 모내는 사람들을 비평하는 것이다.

사 람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쉴 새도 없이 모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내는 모가 신참사의 것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들이 단군 이래로 제가 심은 것은 제가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 버릇이 있으므로 제가 심는 모가 남의 모라고는 생각하기가 서툴렀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오륙 년 전만 해도 대개는 제 땅에 제 모를 내었다. 비록 제 땅이 없더라도 지주에게 반을 갈라 주더라도 그래도 반은 제가 먹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오 년래로는 점점 지주들이 작인에게 땅을 주지 아니하고, 사람을 품을 사서 농사 짓는 버릇이 생겼다. 품이란 한량없이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이십 전, 삼십 전만 내어던지면 미처 응할 수가 없으리만큼 품꾼이 모여들었다. 이십 년래로 돈이란 것이 나와 돌아다니면서, 차란 것이 다니면서,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고 전에 없던 것이 생기면서 어찌 되는 심을 모르는 동안에 저마다 가지고 있던 땅마지기는 차차 차차 한두 부자에게로 모이고, 예전 땅의 주인은 소작인이 되었다가 또 근래에는 소작인도 되어 먹기가 어려워서 혹은 두벌 소작인(한 사람을 지주에게 땅을 많이 얻어서, 그것을 또 소작인에게 빌려 주고 저는 그 중간에 작인의 등을 쳐 먹는 것, 마름도 이 종류지마는 마름 아니고도 이런 것이 생긴다)이 되고, 최근에 와서는 세력 없는 농부는 소작인도 될 수가 없어서 순전히 품팔이만 해먹게 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 가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지주들이 모두 평양이니 서울이니 하고 살기 좋은 곳에 가 살고 보니, 누가 귀찮게시리 일일이 성명도 없는 소작인과 낱낱이 응대를 할 수가 있나. 제가 믿는 놈 하나에게 맡겨 버리고 받아들일 만큼 해마다 받아만 들인다면 그런 고소한 일이 어디 있으랴.

신 참사는 아직 큰 부자는 못 되어서 기껏 읍내에 가서 살지마는, 그 까닭에 이 사람은 자기의 소유 토지를 직영을 하여서 소작 문제니, 농량 문제니 하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참사 한 사람이 자기의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살여울에 밥줄 떼인 가족이 이십여 호나 된다.

"글쎄, 이 사람들아."

하고 신참사는 사람들이 모를 심는 줄에 가까이 와서 단장으로 논두렁을 두드리며,

"저 러니까 일생에 입에 밥이 아니 들어가지. 모를 내면 모를 낼 게지 왜들 우두머니 서서 기차 지나가는 것을 보아. 그 따위로 내 눈을 속이다가는 내일부터는 일을 아니 줄걸. 내가 일을 아니 주면 흙이나 집어먹고 살 텐가. 흙은 누가 주나. 산은 국유지요, 논밭은 임자가 있는걸. 괘니시리 그 따위로 하다가는 다들 밥 굶어 죽을걸. 게들 사는 집터도 내 땅야. 굶어 죽더라도 내 땅에서는 못 죽을걸. 허 고얀 사람들 같으니. 아 그래 하루 종일 낸 것이 겨우 요거야. 저런 여편네, 계집애년들은 일도 못 하고 방해만 하거든. 젊은 녀석들이 계집애들 사타구니만 들여다보느라고 어디 일을 하겠나. 내일부터는 계집애와 여편네는 다 몰아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따로따로 일을 시켜야겠군. 여보게 문보, 자네는 무얼 하느라고 이것들이 핀둥핀둥 놀고 있어도 말 한마디도 아니 하나? 내가 돈이 많아서 자네를 삯전 세 갑절이나 주는 줄 아나. 허, 고얀 손 다 보겠고."

신 참사의 말은 갈수록 더 사람들의 분노감을 일으킨다. 제 것 남의 것을 잊고, 다만 흙을 사랑하고, 볏모를 사랑하는 단군 할아버지 적부터의 정신으로 버릇으로 일하던 이 농부들은, 아아 우리는 종이로구나 하는 불쾌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모 를 내는 사람들은 갑자기 흥이 깨어지고 일하는 것이 힘이 들게 되었다. 물에서 오르는 진흙 냄새 섞인 김, 볏모의 향긋한 냄새, 발과 손에 닿는 흙의 보드라움, 이마로부터 흘러내려서 눈과 입으로 들어오는 찝찔한 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제 땀 냄새, 남의 땀 냄새, 쉬지근한 냄새, 굵은 베옷을 새어서 살을 지지는 햇빛, 배고픔에서 오는 명치 끝의 쓰림, 오래 구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허리 아픔조차도 즐거운 것이건마는 신참사의 말 한마디에 이런 것도 다 괴로움이 되고 말았다.

"망할 녀석, 어찌어찌하다가 돈푼이나 잡았노라고―--- 아니꼽게."

"염병할 자식, 제 집에는 계집도 없고 딸자식도 없담. 그 말버릇이 다 무엇이람."

"성나는 대로 하면 그저 그 뚱뚱한 놈을 논바닥에다가 자빠트려 놓고 그놈의 양 도야지 배때기를 그저 그저 힘껏 짓밟아 주었으면."

"그래도 목구멍이 원수가 되어서 이 욕을 참고……."

모내는 사람들은 저마다 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마치 말할 줄 모르는 짐승 모양으로 왼손에 쥔 볏모를 세줄기 네줄기 갈라서는 꽂고 꽂고 하였다.

"이거 어디 쓰겠나. 들쑹날쑹해서 쓰겠나."

하고 농업 기수가 혼자 논 가장자리로 돌아다니다가 중얼거린다.

"볏모라는 것이 줄이 맞고 새가 고르와서 쓰는 게지, 이게 다 무엇이람."

농업 기수는 점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논머리로 와서 신참사를 보고,

"이거 어디 쓰겠어요? 저것 보세요. 모가 들쑹날쑹 오볼꼬볼 갈지자 걸음을 하였으니, 이거 어디 쓰겠어요? 그 중에도 이 이랑은 사뭇 젬병인걸."

하고 유순이가 타고 온 이랑을 단장으로 가리킨다.

모내던 사람들은 농업 기수의 못쓰겠다는 말에 모내기를 쉬고 허리를 펴고 일어선다.

"도무지, 이것들이 도야지지 사람은 아니라니까."

하고 신참사가 단장으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글쎄, 이 사람들아, 남의 금 같은 돈을 받아 먹고 글쎄, 모를 낸다는 게 이 따위야. 지금 이 나리 말씀 들었지. 저게 무에람. 들락날락, 아 저게 손목쟁이로 모를 낸 게야."

하고는 농업 기수를 향하여,

"그저 쇠 귀에 경 읽는 것이지요. 아무리 이르니 들어를 주어야지요. 정조식, 정조식 하고 천 번은 더 일렀겠소이다."

하고는, 다시 사람들을 향하여,

"글쎄 짐승들이라니까, 굶어 죽기에 꼭 알맞어. 만주 조밥은커녕 죽국물도 아깝다니까."

또 농업 기수를 향하여,

"그 러니 어쩌면 좋습니까. 내가 저것들을 데리고 농사를 짓자니 피가 마를 지경이오, 허 참. 사람의 종자들은 아니라니까. 어디 나리께서 좀 잘 타일러 주시고 이왕 모는 그냥 두시더라도 이 앞으로는 고랑은 다시 아니 그러도록 좀 가르쳐 주시오. 이걸 다시 내자면 수십 원 돈이 또 없어진단 말씀야요. 나리 잘 양해를 하시오."

하고 애걸한다.

농 업 기수는 신참사에게 오늘 점심에 한턱 얻어먹은 것을 생각하고, 또 저녁에 한턱 잘 얻어먹을 것을 생각하였다. 또 이 사람들이 낸 모는 뽑아 버리고 다시 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감독하는 관리로서 현장에 왔다가 한마디 없을 수 없고(한마디 없으면 자기의 위신에 관계될 것 같았다), 또 신참사에게 잔뜩 생각을 낼 필요도 있고 그뿐더러 시골서는 얻어 보기 드물 듯한 유순의 아름다움을 보매 무슨 말썽을 일으켜서라도 유순에게 가까이하고 싶었다.

"다들 이리 와!"

하고 농업 기수는 모내던 사람들을 불렀다. 남자들은 기수의 앞으로 가까이 왔으나 부인네들은 내외하느라고 돌아선 채 오지 아니하였다.

"다들 이리 나와! 관리가 명령을 하시거든 복종하는 법이야!"

하고 신참사가 호령을 하였다.

부 인네들도 신참사의 호령에 마지못하여 절벅절벅 기수의 앞으로 왔다. 신참사의 뜻을 어기는 것은 곧 당장 밥줄을 끊는 것임을 그들이 잘 인식한 것이다. 저쪽에서 삿갓을 가지고 놀고 있던 아이도, 웬일인가 하고 달려와서 근심스러운 눈으로 자기네 부모와 무서운 사람들과를 번갈아 보았다.

부인네들은 내외성 있게, 혹은 제 남편의, 혹은 오라비의 등뒤에 숨어 섰다. 유순은 그 과수 아주머니 뒤에 숨어 섰다.

사 람들이 다 앞에 모여 선 것을 보고 농업 기수는 연설 구조로, 반말로, 어, 아, 으 하고 마치 조선말이 서투른 외국 사람의 발음 모양으로 효유를 시작하였다. 그는 얼굴이 검고, 코가 납작하고, 머리 뒤가 넓적하게 찌그러진, 천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어떤 농부의 아들이라고 한다.

"모를 내는 데는 정조식이라는 것이 있단 말야."

하고 그는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섞어 가며, 가끔 일본말을 섞어 가며 일장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말이 끝나자 유순을 가리키며,

"이리 나서!"

하고 농업 기수가 호령을 하였다. 유순은 아니 나섰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 애가 부끄러워서 그럽니다."

하고 유순의 과수 아주머니가 대신 말하였다.

"웬 잔말야? 걔더러 하는 말이 아냐!"

하고 기수는 성을 내었다.

과수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고 입을 다물었다.

"이리 나와. 어른이 나오라면 나오는 것이야!"

하고 이번에는 신참사가 호령을 하였다. 그래도 유순은 과수 아주머니 등뒤에서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조런 년 보았겠나."

하고 농업 기수는 더욱 성을 내어 발을 굴렀다.

"그래 내가 이리 나오라는데 아니 나올 테야. 내가 이를 말이 있어서 나오라는데. 방자한 계집애년 같으니. 내가 누군 줄 알고. 요년, 그래도 아니 나와."

하고 기수는 막아 선 과수 아주머니를 한편으로 밀어제치고, 유순의 볏모 든 팔목을 잡아당기었다. 유순의 볏모에 묻었던 흙물이 기수의 흰 양복과 신참사의 모시 두루마기에 수없는 얼룩을 주었다.

"이년, 네가 낸 모를 다 뽑아서 다시 내어라."

하고 농업 기수는 손바닥으로 유순의 뺨을 때렸다. 기수와 신참사는 옷에 흙물 튄 것이 더욱 열이 났다.

"여보!"

하고 한 청년이 기수의 앞으로 나서며 유순의 팔목을 잡은 기수의 팔을 으스러져라 하고 꽉 쥐어 비틀었다.

"관리면 관리지, 남녀 유별도 모른단 말요? 남의 집 과년한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법은 어디서 배웠단 말요? 당신 집에는 어미도 없고 누이도 없소?"

하고 대들었다. 그 청년은 키가 크고 콧마루가 서고 음성이 큰 건장하고도 다부진 사람이었다.

"허, 이놈 보았나. 관리에게 반항한다."

하고 기수는 손을 들어서 청년의 뺨을 갈겼다. 그 서슬에 청년의 코가 기수의 손길에 맞아 코피가 흘러내렸다.

기 수는 청년의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상관없이 연해 서너 번 청년의 이뺨 저뺨을 후려갈겼다. 청년은 처음에는 참으려 하는 듯하였다. 그는 기수가 때리는 대로 말없이 맞았다. 그러나 기수의 구둣발길이 청년의 옆구리에 올라오려 할 때에 청년의 몸이 한번 번쩍 들리며 청년의 손은 기수의 목덜미를 눌러 버렸다. 청년의 코에서 흐르는 피는 농업 기수의 양복 저고리에 뚝뚝 떨어졌다.

"이놈아."

하는 그 청년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놈, 남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갈기고―---넌 이놈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느냐."

하고 청년은 기수를 홱 잡아 내어둘러서 반듯이 자빠뜨렸다.

"그놈을 죽여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덤비었다. 청년은 두 팔을 벌려서 모여드는 사람을 밀어 내며,

"다들 가만 있어요. 이깟놈 하나는 내가 없애 버릴 테니. 너 죽고 나 죽자. 이 개 같은 놈 같으니."

하고 청년은 발길로 기수의 허구리와 꽁무니와 머리와 닥치는 대로 질렀다.

"아이구구, 아이구구."

하고 죽는 소리를 하였다.

"이 사람,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신참사가 청년의 팔을 붙들 때에는 벌써 기수는 청년이 가만히 있는 틈을 타서 모자도 다 내버리고 허둥지둥 달아날 때였다.

"저놈 잡아라!"

하고 일꾼들이 소리를 지를 때에, 기수는 황겁하여 논물에 엎드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서 달음박질을 쳤다.

청 년은 기수를 더 따라가려고도 아니 하고 볼일 다 보았다는 듯이 논에 들어서서 여전히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분함과 무서운 광경에 덜덜 떨고 섰던 부인네들도 일을 쉬었다가는 삯을 못 받을 것을 생각하고, 그 청년의 뒤를 따라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그렇지마는 어느 사람의 맘에나 무서운 후환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유순도 자기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생각하고는 심히 미안하였다.

신참사는 그 청년이 기수를 더 때리지 아니한 것, 자기까지도 때리지 아니한 것만 다행으로 알고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씨근벌떡거리며 기수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손에 오르지도 아니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에 끝이 없는 듯하던 여름해도 독장이라는 산마루에 올라앉게 되었다.

오 늘 할 일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집을 향하고 무거운 다리를 끌었다. 배는 고프고 허리가 아파서 몸이 앞으로 굽어지려고 하고 눈알 힘줄이 늘어나서 눈알은 쏟아질 듯이 달리고 다리는 남의 것과 같았다. 입을 다시어 마른 입술을 축이려 하나 침도 나올 것이 없었다.

순사가 나올 텐데 하고 연해 읍으로 뚫린 길을 돌아보고는 그 청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직 순사가 오는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살 여울 동네 앞에 일행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다른 논에서 모를 내던 사람들도 들어오는 것을 만나고, 소를 먹여 가지고 타고 오는 아이들이며, 주인을 따라 나오는 개들도 만났다. 모두 배가 고프고 피곤하여 마치 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도무지 말이 없었다. 어린애들까지도 뛰고 지껄일 기운이 없었다. 개들도 얻어먹지를 못하여 뼈다귀가 엉성하였다. '주린 무리', '기쁨 없는 무리'―---이렇게밖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집들에서는 그래도 저녁 연기가 올랐다.

허 리 꼬부라진 할머니, 여남은 살밖에 못 된 계집애들이 발은 말할 것도 없고, 치마도 웃통도 다 벗고 땟국을 흘리며 부엌에서 먹을 것을 끓였다. 찐 조밥이면 상등이다. 만주 좁쌀 한 줌에 풀 잎사귀 한 줌, 물 한 사발을 두고 젖은 나뭇개비를 때어서 불이라는 것보다도 썩은 연기로 끓인 것이 그들의 먹을 것이다.

구 더기 움질거리는 된장도 집집마다 있는 것은 못 된다. 모래알 같은 호렴도 집집마다 있는 것은 못 된다. 이렇게 참혹한 것을 먹고 나도 어슬어슬하여 오면 모기가 아우성을 치고 나오고, 곤한 몸을 방바닥에 뉘어 잠이 들 만하면 빈대와 벼룩이가 침질을 한다. 문을 닫자니 찌고, 열자니 모기가 덤비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쑥을 피워 눈물이 쏟아지도록 연기를 피우면 모기는 아니 덤비지마는, 쑥이 꺼지기만 하면 우와 하고 총공격을 하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그래도 옛날에는."

하고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제 집에, 제 땅에, 제 낙도 있더니만."

하고 집도 땅도 낙도 다 잃어버린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옛날에는 늙은이, 계집애들은 논, 밭 일 아니 하고도 배는 곯지 아니하였건마는."

이렇게 배고픈 노인은, 과년한 유순이 같은 처녀를 사내들 틈에 섞어서 삯모 내러 보내지 아니치 못하는 유순의 아버지를 탄할 것이다.

"배만 부르면야 모기 빈대가 좀 뜯기로니."

"논과 밭이 내 것이면야, 허리가 아프기로니―---내 곡식이 모락모락 자라는 것만 보아도 귀한 자식 자라는 것을 보는 것같이 기뻤건마는. 내가 심어 내가 거두어 내가 먹는 그러한 날을 한 번만 더 보고 죽었으면."

모길래, 빈댈래, 빚 근심일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늙은 농부들은 지나간 날을 생각하고 하룻밤에도 몇 번씩 이러한 한탄을 할 것이다.

"어찌하다가 우리는 땅을 잃고 집을 잃고 낙도 잃었을까."

이렇게 늙은 농부는 유시호 자기네가 가난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이 문제를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다.

"별 로 전보다 더 잘못한 일도 없건마는―---술을 더 먹은 것도 아니요, 담배를 더 피운 것도 아니요, 도적을 맞은 것도 아니요, 무엇에 쓴 데도 없건마는―---여전히 부지런히 일하고 애끼고 하였건마는, 새 거름 새 종자로 수입도 더 많건마는."

이렇게 땅을 잃은 늙은 농부는 자탄한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애를 쓴다.

'비싸진 구실, 비싸진 옷값, 비싸진 교육비, 비싸진 술값, 담뱃값.'

그 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채마 한편 귀퉁이에다가 담배 포기나 심으면 일년 먹을 담배는 되었다. 보릿말이나 누룩을 잡아, 쌀 되나 삭히면 술이 되어 사오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동리 사람 술잔이나 먹였다. 그렇지마는 지금은 담배도 사먹어야, 술도 사먹어야. 내 손으로 만든 누에고치도 내 맘대로 팔지를 못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넓 히 뚫린 신작로, 그리고 달리는 자동차, 철도, 전선, 은행, 회사, 관청 등의 큰집들, 수없는 양복 입고 월급 많이 타고 호강하는 사람들, 이런 모든 것과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나 하고 생각도 하여 본다. 그렇지마는 이 모든 것이 다 이 늙은 자기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는 해득하지 못한다.

"다 제 팔자지, 세상이 변해서 그렇지."

그 는 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단념한다. 그에게는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설명할 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할 힘도 없다. 그는 모를 내고 김을 매고 거두고 빚에 졸리고, 모기, 빈대에게 뜯기고, 근심 많은 일생을 보내기에 정력을 다 소모해 버리고,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여력이 없다. 마치 늙은 부모가 오직 젊은 자녀들을 믿는 모양으로, 그는 어디서 누가 잘 살게 해주려니 하고 희미하게 믿고 있다. 그에게는 원망이 없다. 그것은 조선 맘이다.

유순의 아버지 유초시는 그날 유순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일부터는 모내러 가지 말어라. 그러길래 내가 뭐라더냐, 굶어 죽기로니 내 딸이 논에 들어서랴고. 다실랑 가지 마라. 도시 내 탓이다."

이렇게 유초시는 분개하였다.

유 순도 맘이 괴로웠다. 더구나 한갑이(기수를 때린 청년)가 자기 때문에 장차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할 때에 미안하였다. 한갑이는 유순이를 사랑하는 청년으로, 그는 늙은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다. 유순은 한갑이가 자기에게 맘을 두고 있는 줄을 잘 안다. 그는 유순이가 보통학교에 다닐 적에 세 반이나 위에 있던 아이로서 학교에도 매양 동행하였다. 개천을 업어 건네어 주는 일도 있었다. 한갑이는 말이 없고 진실하고 어떠한 괴로운 일이든지 싫다거나 힘들다거나 하고 핑계하거나 앙탈하는 일이 없었다. 아직 나이 젊지마는 동네 어른들도 한갑이를 존경하였다. 이를테면 살여울 동네에서 제일 믿음성 있는 사람이었다. 문벌로 말하면 유순의 집에 비길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타관에서 어떻게 굴러 들어와서 이 동네에 살게 되었으나, 그 아버지는 벌써 죽은 지가 오래여서 유순은 그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갑의 어머니가 한갑이 하나를 길렀다. 남의 집 일을 해주고, 겨울이면 길쌈을 하고―---그 과부는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 이였다. 한갑이는 그 아버지보다도, 성질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 어머니도 말이 없고 부지런하고 믿음성이 있었다.

이 러한 한갑이다. 그는 속으로는 유순이를 사모하건마는 감히 그 말을 유초시에게 하지는 못하였다. 돈이 없고 문벌이 낮기 때문에 유순의 오라범이 글자나 읽었노라고, 도무지 일을 아니 하고 술이나 먹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순의 아버지는 집안의 어려운 일을 많이 한갑에게 부탁하였다. 이 집에 장을 보아 주는 이는 늘 한갑이었다.

이러한 한갑이를 죄에 빠뜨리게 한 것을 유순은 퍽으나 슬퍼하였다.

유 순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물동이를 들고 물 길러를 나갔다. 우물이 동네 서편 끝, 정거장으로 질러가는 길가에 있기 때문에, 또 서울서 오는 새벽차가 여름에는 새벽 물 길러 갈 때에 오기 때문에, 유순은 여름이면 물 길러 우물에 나와서는 무너밋목을 바라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행여나 허숭이가 오나 하고. 허숭은 벌써 서울 부잣집 딸과 혼인을 해버렸지마는 그래도 유순의 이 버릇은 아직 빠지지 아니하였다.

우물 위에는 거미줄이 걸리고 그 거미줄에는 눈물 방울과 같은 이슬 맺혀서 새벽빛에 진주같이 빛났다. 마치 유순이가 첫 물을 긷기 전에는 이 우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것 같았다.

유순은 거미줄에 걸린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가지로 그 거미줄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물을 떠서 손에 받아 낯을 씻고 치맛자락을 수건삼아 썼다. 밤에 잠을 잘 못 잔 유순의 피곤한 낯에 찬 샘물이 닿는 것이 시원하였다.

유 순은 물 한 동이를 길어 놓고 또아리를 머리에 이고 또아리 끈을 입에 물고 물동이를 이기 전에 무너미를 바라보았다. 아직 이슬에 목욕한 풀빛은 짙은 남빛이었다. 구름을 감은 독장이 높은 봉우리에는 불그레 햇빛이 비치었다. 오지 못할 사람을 아침마다 기다리는 유순의 가슴은 무거웠다. 유순은 휘유 한 번 한숨을 쉬고 허리를 굽혀 물동이를 이려 하였다. 물동이에 엎어서 덮은 바가지 등에 푸른 메뚜기 한 놈이 올라앉았다가 유순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 달아나서 이슬에 젖은 풀숲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유순이가 바로 물동이를 들어서 머리에 이려 할 때에 유순의 앞에는 양복을 입고 큰 슈트케이스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유순은 물동이를 떨어뜨릴 뻔하도록 놀랐다.

유순은 물동이를 든 채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 남자는 허숭이었다. 허름한 학생복 대신에 흰 바지, 흰 조끼에 말쑥한 양복을 입은 것만이 다르고는 분명히 허숭이었다.

그러나 허숭인 것을 분명하게 본 유순은 물동이를 이고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집을 향하여 걸었다. 남의 남편인 남자를 대해서는 이리하는 것이 조선의 딸의 예법인 까닭이었다.

"나를 몰라보오?"

하고 허숭은 슈트케이스를 이슬에 젖은 풀 위에 내어버리고 유순의 뒤를 빨리 따르며,

"내가 숭이외다."

하였다.

"네."

하고는 순은 여전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버님 안녕하시오?"

하고 숭은 다른 말이 없어서, 말을 하기 위해서 물었다.

"네."

하고 순은 여전히 외마디 대답이었다. 숭은 그만 더 따라갈 용기를 잃어버리고 우뚝 섰다. 마치 장승 모양으로.

순은 한 손으로 연해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떨어 버리며 뒤도 아니 돌아보고 간다.

해가 솟았다. 순의 물동이의 한편 쪽이 햇빛에 반사하여 동이에 맺힌 물방울에서 수없는 금빛 줄기가 난사하였다.

순 의 고무신 신은 두 발이 촉촉하게 젖은 흙을 밟고, 때로는 길가에 고개 숙인 풀대를 건드리며 점점 작아 가는 양, 검은 빛인지 붉은 빛인지 분별할 수도 없는, 때묻고 물 날고 떨어진 댕기, 그것이 풀죽은 광당포 치마에 스쳐 흔들리는 양을 숭은 이윽히 보고 섰다가, 그것조차 아니 보이게 된 때에 숭은 힘빠진 사람 모양으로 길가 돌 위에 걸터앉았다.

숭 은 한 손으로 머리를 버티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집 잃은 사람, 길 잃은 사람,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인 것을 스스로 느낀 것이었다. 숭은 어젯밤 가정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의 아내 정선이가,

"에끼 시골뜨기, 에끼 똥물에 튀길 녀석."

하 고 자기에게 갖은 욕을 퍼붓고, 나중에는 세숫대야를 자기에게 뒤쳐씌우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직접 이유는 숭이가 이남작 집 소송 의뢰를 거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이남작과 그 부인과 이남작의 아들과 기타 친족들이 관련된 간음, 이혼, 동거 청구, 재산 다툼 같은 것을 포함한 추악하고 복잡한 사건으로서, 착수금이 이천 원이라는 변호사 직업 하는 사람들이 침을 흘리는 소송이었다. 그뿐더러 이 소송은 윤참판의 소개로 허숭에게로 돌아온 것이요, 또 허숭이가 김자작 집 재산싸움 소송에 이겼다는 것이 서울 사회에 이름이 높아진 까닭이었다. 만일 이 소송을 이기는 날이면 십만 원 가까운 사례금이 오리라는 것인데, 숭은 김자작 집 소송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관계로 다시는 이런 추악한 사건에는 관계 아니 한다고 맹세하여 이것을 거절해 버려서, 그 사건은 마침내 어느 일본 사람 변호사와 조선 사람 변호사와 두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정선의 감정을 격분시킨 것이었다.

"그저 그렇지, 평생 남의 집 행랑방으로나 돌아댕겨. 원체 시골 상놈의 자식이 그렇지 그래."

하고 정선은 남편이 굴러 들어오는 복을 박차 내버리는 것이 그가 시골 상놈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하였다.

그 러나 이것은 오직 근인에 지나지 못하였다. 숭과 정선과 가정생활을 하는 날이 깊어 갈수록 두 사람의 생각에는 점점 배치되는 점이 많아졌다. 대관절 두 사람의 인생관이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그것이 점점 탄로가 된 것이었다.

"이 세상에 돈이 제일이지."

하 는 것이 정선의 근본사상의 제일조였다. 둘째는 그가 말로 발표는 아니 하더라도 또 한 가지 근본사상이 있는 것을 숭은 정선에게서 발견하였다―---그것은 성욕을 중심으로 한 향락생활이었다. 마치 정선의 호리호리한 어여쁜 몸이 전부 성욕으로 된 듯한 생각을 줄 때가 있었다. 이것이 숭에게는 못마땅하였다. 숭의 생각에는 고등한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인격의 존엄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보다도 음란하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으로는, 성적 욕망이라는 것은 비록 부부간에라도 서로 억제할 것이라고, 서로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믿었다. '서로 대하기를 손같이 하라' 하는 동양식 부부 도덕에 젖은 때문인가 하고 숭은 혼자 저를 의심해 보았다.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 보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숭에게는 자기를 낮추는 듯한 심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가 애써서 수양해 온 인격의 존엄이라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숭이 인격의 존엄을 지키려 할 때에 정선은 이것이 사랑이 없는 까닭이라 하여 원망하고, 심하면 유순이라는 계집애를 못 잊는 까닭이라고 해서 바가지를 긁었다.

원 망하는 여자의 얼굴, 질투의 불에 타는 여자의 얼굴은 숭의 눈에는 심히 추하였다. 아내의 눈에서 질투의 불길이 솟고, 그 혀끝에서 원망의 독한 화살이 나올 때에 숭은 몸서리가 치도록 불쾌하였다. 자기의 사랑하는 어여쁜 아내의 손에 이런 추악한 것이 있는 것이 슬펐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요, 여러 번 거듭할수록 숭의 눈에서는 아내의 아름다움이 점점 스러졌다. 순결한 청년 남자로서 그리던 여자의 아름다움, 여자의 몸을 쌌던, 여자의 아름다운 맘에서 증발하는 증기라고 믿던 분홍빛 안개가 걷혀 버리고, 여자는 마치 육욕과 질투, 원망과 분노를 뭉쳐 놓은 보다 싫은 고깃덩어리로 보였다. 그렇게도 아담스럽고 얌전하고 정숙하게 보이던 정선이가 이 추태를 폭로하는 것을 볼 때에 숭은 여자의 허위, 가식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왜 내 아내 정선이가 얌전, 정숙, 그 물건이 아닌가 하고 울고 싶었다. 미소가미(여자를 미워하는 성질)를 자기가 가졌는가고 스스로 의심하여 아내 정선을 재인식하려고 힘도 써보았다. 그러나 정선은 갈수록 더욱 평범 이하의 여성에 떨어지는 것같이 숭의 눈에 비치었다.

숭 은 마침내 자기의 정성을 가지고 정선의 정신상태를, 도덕 표준을, 인생관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고도 결심을 해보았다. 그러나 숭의 정성된 도덕적 탄원은 정선의 비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정선에게는 남편인 숭에게 대한 우월감이 깊이깊이 뿌리를 박은 것 같았다. 숭의 말이면 무엇이나 비웃고 반대하였다. 그러할 뿐더러 정선은 적극적으로 빈정대고 박박 긁어서 숭을 볶는 것으로 한 낙을 삼는 것같이도 보였다.

재 판소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숭의 맘에는 조금도 화평과 기쁨이 없었다. 대문 안을 들어서기가 끔찍끔찍하였다. 요행 웃는 낯으로 맞아 주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 때까지 사오 시간 어떻게나 유지하나 하고 숭은 애를 쓰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만 생기면 이 무장적 평화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집안은 찬바람이 도는 수라장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아, 못 견디겠다. 이러다가는 내 일생은 내외싸움에 다 허비해 버리고 말겠다.'

고 자탄을 발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수없이 하다가 어젯밤에 대파탄이 일어나 숭은 단연히 집을 버리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앉았을 때에 숭의 곁에는 서슬이 푸른 경관 세 명이 달려왔다. 숭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셋 중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순사가 바싹 숭의 가슴 앞에 와 서며,

"당신 무엇이오?"

하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엇이오?'

하는 말에 숭은 좀 불쾌했다.

"나 사람이오."

하고 숭도 불쾌하게 대답하였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

하고 곁에 섰던 순사가 숭에게 대들었다.

"사람더러 무엇이냐고 묻는 법은 어디 있어?"

하고 숭도 반말로 대답했다.

"이놈아, 그런 말버릇 어디서 배워먹었어?"

하고 곁에 섰던 또 다른 순사가 숭의 따귀를 갈겼다. 연거푸 두 번을 갈기는 판에 숭의 모자가 땅에 떨어졌다.

처음에 숭에게 '당신 무엇이오' 하던 순사가 수첩을 꺼내어 들고,

"성명이 무어?"

하고 신문하는 구조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아니거든, 왜 까닭 없는 사람더러 불공하게 말을 하오?"

하고 숭은 뻗대었다.

"아마 이놈이 동네 농민들을 선동을 하여서 농업 기수에게 폭행을 시켰나 보오. 이놈부터 묶읍시다."

하고 한 순사가 일본말로 하였다.

숭 은 어쩐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나 이 순사들은 자기를 따라온 것이 아니요, 이 동네 농민과 기수 새에 무슨 갈등이 생겨서 농민들을 잡으러 오는 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리고는 일변은 변호사인 직업의식으로, 또 일변은 자기가 일생을 위해서 바치려는 살여울 동네 농민에게 무슨 중대 사건이 생겼다 하는 의식으로 이 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옳지 아니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아침차로 서울서 내려온 사람이오. 지금 내 고향인 살여울로 가는 길이오."

하고 역시 일본말로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숭의 유창하고 점잖은 일본말과 또 냉정한 어조에 수첩을 내어든 순사는 좀 태도를 고쳤다.

"오늘 차에서 내렸소?"

하고 일본말로 좀 순하게 물었다.

"그렇소."

"그랬으면 자네네들 이 사람 보았겠지?"

하고 두 조선 순사를 돌아보았다. 두 순사는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응, 본 것 같소."

하고 싱겁게 대답하였다.

이 리해서 급하던 풍운은 지나갔다. 더구나 변호사라는 명함을 보고는 경관들은 좀더 태도를 고쳤다. 숭의 따귀를 때린 순사는 약간 머쓱하기까지 하였다. 숭은 불쾌한 생각이 용이히 가라앉지 않지마는, 이것은 시골에 으레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꿀떡 참았다―---아니 참기로 별수가 있으랴마는.

숭은 짐을 들고 순사들의 뒤를 따라갔다.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었다.

목 적한 범인 여덟 사람은 반 시간이 못 되어서 다 묶이었다. 그들은 반항도 아니 하고 변명도 아니 하고 어디 구경 가는 사람 모양으로 열을 지어서 묶이어 섰다. 다만 아들을, 남편을 잡혀 보내는 부인네들이 문 앞에 서서 울 따름이었다.

이 사건의 주범 되는 한갑은 잡힐 때에 매를 맞고 발길로 채어서 그러한 자리가 있었다.

숭은 우두커니 서서 이 광경을 보았다. 경관대는 담배 한 대씩을 피우고는 범인 여덟 명을 끌고 읍으로 향하였다.

허숭은 와 있기를 바라는 일갓집을 다 제치고 한갑의 집으로 갔다. 이전에는 쓴 외 보듯 하던 일가 사람들도 숭이가 변호사로 부잣집 사위로, 훌륭한 옷을 입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다투어서 환영하였다.

"네가 귀히 되어 왔구나."

하고 할머니, 아주머니뻘 되는 부인네들까지도 환영하였다.

"아이, 올케가 썩 미인이라더구나."

하고 누이 항렬 되는 여자들도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숭은 이러한 환영도 다 뿌리치고 이 동네에서 제일 작고 가난한 한갑이네 집을 택하였다. 한갑이 어머니는,

"아이, 자네같이 귀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집에 있나."

하고 걱정하였다.

"쌀이 없는데, 반찬이 없는데."

하고 한갑 어머니가 애를 썼다.

"자제 먹던 대로만 해주세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에게 안심을 주었다.

한갑 어머니는 잡혀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올까 하고 부엌에서 숭을 위하여 밥을 짓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나와서 숭에게 물었다.

"기 애가 글쎄, 그놈을 때렸다네그려. 순이 손목을 그놈이 잡고, 또 순이를 뺨을 때렸다구. 기 애가 글쎄, 그런 애가 아닌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남의 일에 챙견을 노 하지 않았나. 글쎄, 어찌자고 관인을 때리나. 그런 철없는 녀석이 어디 있어? 아이, 그 녀석이 이 늙은 에미 속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들락날락하며 어떤 때에는 부엌에서 머리만 내밀고, 또 어떤 때에는 부지깽이를 들곤 몸까지 내놓고, 어떤 때에는 소리만 나왔다.

"왜 한갑 군이 잘못했습니까?"

하고 숭은 진정으로 한갑의 행동에 감격하여서,

"그럼, 남의 여자의 팔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놈을 가만두어요―---두들겨 주지요."

"그야 그렇지."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칭찬에 만족하는 듯이 부엌문 밖에 나와서 허리를 펴며,

"그 렇지만두, 요새 세상에 농사나 해먹는 놈이야 어디 사람인가. 귀밑에 피도 아니 마른 애들이 무슨 서겁시오, 무슨 나립시오 하고 제 애비, 할애비뻘 되는 어른들을 이놈, 저놈 하고 개 어르듯 하지. 걸핏하면 따귀를 붙이고. 글쎄, 일전에도 전매국인가 어디선가 온 사람이 담배가 어쨌다나 해서."

하고 마나님은 비밀한 말이나 되는 듯이 소리를 낮추며,

"저, 홰나무댁 참봉 영감을 구둣발로 차서 까무러쳤다가 피어는 났지마는 아직도 오줌 출입도 못 한다오. 그 양반이 지금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일흔이 넘은 어른이 아니신가. 말 말어. 그나 그뿐인가. 그놈의 청결 검사, 담배 적간, 술 적간, 농회비,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고 읍내서 나오는 날이면 어디 맘을 펴보나. 글쎄, 남의 집 안방, 부엌 할 것 없이 시퍼렇게 젊은 놈들이 막 뛰어들어와 가지고는 젊은 아낙네까지 붙들고 힐거를 하는 수가 있으니, 요새 법은 다 그런가, 서울도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이래서야 어디 백성들이 살아 먹을 수가 있나. 또 그놈의 신작로는 웬걸 그리 많이 닦는지, 부역을 나라, 조약돌을 져오너라, 밭갈 때나 김맬 때나 나라면 나야지, 아니 났다가는 큰일 아닌가. 우리 같은 것도 그래도 한 집을 잡고 산다고 남 하는 것 다 하라네그려. 이거 원 어디 살 수가 있나. 서울도 그런가. 우리 면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구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마나님은 길게 한숨을 지으며,

"아무려나 우리 한갑이나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지마는, 그 녀석이 왜 글쎄, 관인을 때려! 망할 녀석!"

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

한갑 어머니는 속으로 무한한 슬픔과 불안을 가지면서도, 도회 여자 모양으로 그것을 말이나 몸짓으로 발표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조선의 어머니의 자제력이 있었다.

그 러나 숭을 위하여 밥상을 들고 나오는 한갑 어머니의 모양은 차마 바로 볼 수 없도록 초췌하였다. 나이는 아직 육십이 다 못 되었건마는 이가 거의 다 빠져서 볼과 입술이 오므라지고, 눈은 움쑥 들어가고, 몸에 살이 없어서 치마 허리 위로 드러난 명치끝 근방은 온통 뼈다귀에다가 꼬깃꼬깃 꾸겨진 유지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굳은 살과 뼈만 남은 손―---그것은 일생에 쉬임 없는 노동과 근심과 영양불량으로 살아온 표적이었다.

숭 은 일어나서 밥상을 받아 놓고, 서울서 보던 몸 피둥피둥하고 머리 반드르르한 마님네를 연상하였다. 그네들에게는 일생에 하인들에게 잔소리하는 고생밖에 노동이라는 것은 없었고, 그리고도 고량진미에 영양은 남고도 남아서, 먹은 것이 미처 다 흡수될 수가 없어서, 끄륵끄륵 소화불량이 되어 보약입시요, 약물입시요 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밥 상! 숭의 밥상은 몇백 년째나 한갑의 집이 대대로 물려오는 팔모반이었다. 본디는 칠하였던 것이 벗어지는 동안이 반세기, 벗어지는 한편으로 다시 때와 먼지로 칠하기 시작하여 완전히 칠해지기까지 반세기, 가장자리를 두른 여덟 개였을 장식 언저리 중에는 겨우 세 개가 남았을 뿐이다. 이 소반은 그래도 한갑의 집이 옛날에는 점잖게 살던 집인 것을 표시하는 대표적 유물이다. 한갑 어머니는 지금도 자기 집 가장의 밥상이, 비록은 반상, 고기 반찬은 못 오를망정 모반(네모난 소반)이 아니요 팔모반인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있다. 이 소반은 한갑 할머니가 한갑의 할아버지에게 시집올 때에, 그 시조부의 밥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전에는 몇 대를 전하여 왔는지 모르지마는, 그 후에 한갑의 조부, 그 후에는 한갑의 아버지, 그리고는 한갑의 밥상이 된 것이었다. 이 밥상은 이 집 가장 이외에는 받지 못하는 거룩한 가보였다. 이 상에 밥을 주는 것이 숭에게 대한 더할 수 없는 큰 대접이었다.

상만 아니라, 대접과 주발도 옛날 것이었다. 대접은 여러 대 이 집 가장이 써오는 동안 밑이 닳아져서―---그 두꺼운 밑이 닳아져서 뽕 하고 구멍이 뚫려서 여기서 사십 리나 되는 유기전에 가서 기워 왔다.

"요새는 이런 좋은 쇠는 없소."

하 고 유기전 사람이 말하였다는 것은 결코 이 고물을 보고 빈정댄 것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옛날 조선 유기는 요새 것보다 쇠도 좋고 살도 있고 모양도 점잖아서 요새 것 모양으로 작고 되바라지지를 아니하였었다. 숭은 이 비록 다 닳아진 것이나마 그 후덕스럽고 여유 있는 바탕과 모양을 가진 기명과 한갑이 어머니와를 비겨 보고, 옛날 조선 사람과 오늘날 조선 사람과의 정신과 기상과를 비교해 보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 렇지마는 그 그릇에 담은 밥은 불면 날아날 찐 호좁쌀이요, 반찬이라고는 냉수에 간장을 치고 파 한 줄기를 썰어서 띄운 것 한 그릇(이것이 유기전에서 기워 온 고물 대접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는 호박잎 줄거리의 껍질과 실을 벗기고 숭숭 썰어서 된장에 섞어서 호박 잎사귀에 담아서 화롯불에, 글쎄 굽는달까 찐달까 한 찌개 한 그릇뿐이었다. 이 호박잎 찌개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찌개를 찔 그릇이 없는 것, 또 하나는 호박잎을 찌노라면, 된장에 있던 구더기가 뜨거운 것을 피해서 잎사귀 가장자리로 기어나기 때문에 구더기를 죄다 집어낼 수 있는 편리가 있는 것이었다.

조밥 한 그릇(듬뿍 꾹꾹 눌러서 한 그릇), 파 찬국 늠실늠실 넘게 한 그릇, 그리고 구더기 없는 된장 호박잎 찌개 한 그릇―---이것이 숭이가 농촌에 돌아온 첫 밥상이었다.

"아주머니 안 잡수세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서 먹게. 나 먹을 건 부엌에 있지."

하 고 한갑 어머니는 마른 호박잎을 쓱쓱 손바닥에 비벼서, 아마 한갑이와 공동으로 쓰는 것인 듯한 곰방대에 담아서 화로에 대고 빤다. 이것이 호박잎 담배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콩잎 담배가 생기거니와, 그때까지는 호박잎 담배로 산다. 정말 담배를 사먹는 사람이 이 동네에 몇 집이나 될까, 얻어만 먹어도, 대접으로 한 줌을 주기만 하여도 죄가 되는 이 세상이거든. 한갑이가 짚세기를 삼아서 장에 내다 팔아서 장수연 한 봉지를 사다가 주면, 어머니는,

"돈 없는데 이건 왜 사왔니?"

하고 걱정은 하면서도 맛나게 피웠다.

숭 은 목이 메어서 밥이 넘어가지를 아니하였다. 그것은 찐 호좁쌀 밥이 되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찬국의 장맛이 써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된장찌개에 구더기 기어나던 생각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의 말이 하도 참담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라는 비참한 존재, 그를 보는 것,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목이 메었던 것이다.

그래도 숭은 이 밥을 맛나게 먹어 보이는 것이 이 불쌍한 노인에게 대한 유일한 위로로 알고 냉수에 밥을 말아서 아무 감각도 없이 반 그릇이나마 퍼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숭이 숟가락을 놓을 때에 한갑 어머니는 곰방대를 놓고 일어나면서,

"어디 건건이가 있어야 먹지. 그래도 물에 다 놓지 않고, 자 한 술만 더 뜨게."

하고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밥을 물에 퍼두려고 한다.

"아이구, 그렇게 못 먹습니다."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의 팔을 붙들었다.

"이걸 원 어떡허나. 서울서 호강만 하던 손님을 쓴 된장에 호좁쌀 밥을 대접하니 이거 어디 되겄나. 죽은 목숨야, 죽은 목숨."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이가 남긴 밥에 물을 부어 그 자리에서 된장 찌개 아울러 먹기를 시작한다. 숭은 한 번 놀랐다.

'이 노인이 밥을 한 그릇만 지어서 내가 남기면 먹고, 아니 남기면 자기는 굶을 작정이었구나.'

하였다. 기실은 이 노인은 끼니마다 밥 한 그릇을 지어서는 아들을 주고, 아들이 먹다가 남기면 자기가 먹고, 아니 남기면 숭늉만 마시었다. 아들이 혹,

"어머니 잡술 것 없소?"

하고 물으면, 그는,

"없긴 왜? 부엌에 담아 놓았지. 지금 먹기가 싫여서 이따가 먹으랴고 그런다."

이 렇게 대답하였다. 이 모양으로 한갑 어머니는 춘궁이 되어서부터는 햇곡식이 날 때까지 하루 한 끼도 먹고 반 끼도 먹고 살아간다. 밖에 나가서 힘드는 일을 하는 아들만 든든히 먹여 놓으면 집에 가만히 있는 자기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이 늙은 부인은 피부 밑에 있어야 할 기름을 다 소모해 버리고, 아마 내장과 뼛속에 있는 기름도 다 소모해 버리고 오직 뼈와 껍질만이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은 흐리고 입술은 검푸렀다. 피가 부족한 것이다. 피 될 것이 없는 것이다―---이렇게 허숭은 생각했다.

한갑 어머니는 그 밥과 된장과 찬국을 하나 아니 남기고 다 먹어버린 뒤에 상을 들어 옮겨 놓으며,

"그런데 베노사(변호사) 벼슬을 해서 귀히 되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왔나. 이 더운데?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서 왔지? 얼마나 있다 가랴나? 오늘 밤차로는 아니 가겠지."

하고는 늙은 부인은 불현듯 한갑이를 생각하고,

"어떻게 우리 한갑이 무사하게 해주게. 이 늙은년이 그놈을 잃구야 어떻게 사나. 하느님이 도우셔서 베노사가 오게 했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서울 안 갑니다. 여기 살러 왔어요."

하고 숭은 귀머거리에게 말하는 높은 음성으로 힘있게 말하였다. 한갑 어머니가 귀가 먹은 것은 아니지마는, 그의 초췌한 모양이 보통 음성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보인 것이었다.

"여 기서 살다니? 베노사같이 귀한 사람이 무얼 하러 이런 데 사나. 죽지를 못해서 이런 시골 구석에 살지. 쌀밥을 먹어 보나, 대관절 담배 한 대를 맘대로 먹을 수가 없단 말야. 그도 옛날 같으면야, 이따금 떡도 해먹고 술도 해먹고 돼지도 잡아먹고 한 집에서 하면 여러 집에서 노나도 먹고 하지마는, 요새야 밥을 땅땅 굶고, 노나 먹다니, 인심이 박해져서 없네 없어. 또 쌀독에 인심이 난다고, 어디 노나 먹을 것이나 있다든가. 웬일인지 우리 동네도 요새에는 다 가난해졌거든. 신구상깨나 하고 농량이나 아니 떨어지는 집이 우리 동네에 초시네 집하고 구장네 집하고나 될까. 다 못살게 되었지. 글쎄, 유초시네 순이가 삯김을 매네그려, 말할 거 있나. 그 순이가 어떻게 귀엽게 자라난 아가씬데. 다들 못살게 되었단 말야. 글쎄, 베노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데서 사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농담을 믿은 것이 부끄러운 듯이 싱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연기와 같이 희미하고 연기와 같이 힘없이 스러지고 만다.

"정말입니다."

하고 숭은,

"여기 살러 왔습니다. 어디 집이나 한 간 짓고 농사나 지어 먹고 살러 왔습니다. 인제는 서울 안 가구요."

하고 다지었다.

"그럼, 댁네도 이리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그래도 반신반의로,

"왜 벼슬이 떨어졌나?"

하고 근심하는 빛을 보인다.

"댁네가 따라오면 할 수 없겠지마는 웬걸 오겠어요?"

하고 숭은 아내에 관한 말을 길게 하기가 싫었다.

"아 니, 댁네가 아주 부잣집 양반집 따님이라던데. 또 순이가 그러는데 아주 예쁘게 생긴 사람이라던데. 그리고 처가댁에서 좋은 집도 사 주고, 땅도 여러 천 석 하는 것을 갈라 주었다더구면. 오 그럼 여기 땅을 사러 왔나. 오 그렇구면. 살여울 논을 사러 왔구면. 베노사가 논을 사거든 우리 한갑이도 좀 주라고. 지금 논을 사려면 얼마든지 산다네. 모두 척식회사라든가, 금융조합이라든가에 잡혔던 것이 경매가 되게 된다고, 다만 몇 푼이라도 남겨 먹게만 준다면 팔아 버린다구들 그러는데, 한 마지기 둘셋 나는 거를 삼십 원이니 사십 원이니 부르고 있다데. 그렇게라도 팔아야 단돈 십 원이라도 내 것이 된단 말야. 머 금년까지나 팔면 이 동네에 제 땅 가진 사람 별로 없을 걸세. 그러면 작까지 떨어지거든. 왜 금 같은 돈 주고 산 사람이 이전 작인 붙여 둔다던가, 제 맘에 드는 사람 떼어 주지. 그러니깐 이 동네에서는 사람 못 산다니까 그러네그려. 모두 떼거지 나구야 말지. 다른 데서들은 다들 서간도로 간 사람도 많지마는 우리 살여울 동네야 어디 고래로 타도 타관으로 떠난 사람이야 있었나. 다들 그래도 제 집 쓰고 제 땅 가지고 벌어먹었지. 몇 해 전만 해두 살여울 딸을 놓으면 맘을 놓는다고 안 했나. 우선 베노사네 집은 작히나 잘살았나. 부자 아니었나. 베노사는 명당 손이니까 또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마는, 다른 사람이야 한 번 땅을 팔면 모래 위에 물 엎지르는 것 아닌가, 다시는 못 주워 담지. 우리집도 베노사네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지는 않지 않었나……."

이 날 밤 숭은 저녁을 먹고 초시네 홰나무 밑으로 갔다. 이 홰나무는 본래 숭의 집 것이었다. 지금은 집 아울러 초시라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 이 홰나무 밑은 여름이 되면 밤이나 낮이나 동네 사람의 회의실이요, 휴식소요, 담화실이었다. 오늘 저녁에도 모깃불을 피워 놓고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늙은이, 젊은이, 아이들, 여러 떼로 모여 앉았다. 숭도 그 틈에 끼였다. 끼이자마자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홰 나무는 난 지가 몇백 년이나 되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살여울에 배가 올라오던 시절에 이 나무에 닻줄을 매었다 하나, 그 배 올라오던 시절이 어느 때인지는 더구나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배 올라오는 데를 가자면 여기서 남쪽으로 시오 리는 가야 한다. 옛날 산에 나무가 많을 때에는 달래강에 물이 깊어서 배가 살여울 동네 앞까지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온 시조들이 배를 타고 이리로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다. 그때에 이 살여울 동네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노루, 사슴, 호랑이가 들끓었을 것이다. 그 조상들은 우선 나무를 찍어 집을 짓고, 땅을 갈아서 밭을 만들고, 길을 내고, 우물을 파고, 그리고 동네 이름을 짓고, 산 이름을 짓고, 모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물이 살같이 빠르니 살여울이라 짓고, 강에 달이 비치었으니 달내라고 짓고, 달내가 가운데 흐르니 이 젖과 꿀이 솟는 벌을 달냇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때에 이 골짜기, 그것을 두른 산, 달내강, 거기 나는 풀과 나무와 고기와 곡식과 개구리 소리, 꽃향기가 모두 이 사람들의 것이었다. 아무의 것이라고 패를 써 박지 아니하였지마는, 패를 써 박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홰나무도 그 나무가 선 땅이 근년에 몇 번 소유권이 변동되었지마는, 이 나무는 말없는 계약과 법률로 이 동네 공동의 소유였다. 이 동네에 사는 이는 누구든지 이 나무 그늘의 서늘함을 누릴 수가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소도 말도 개도 병아리 거느린 닭들도 이 홰나무 그늘 밑에서 놀든지 낮잠을 자든지 아무도 금하는 이가 없었고,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이 늙고 점잖은 홰나무 그늘을 덮고 아픈 다리를 쉰다 하더라도 누가 못 하리라 할 이가 없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아니하거든 이 경력 많은 홰나무더러 물어 보라. 그는 적어도 사오백 년 동안 이 살여울 동네의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다. 이 동네에서 일어난 기쁨을 아는 동시에 슬픔도 알았다. 더구나 이 동네 수염 센 어른들이 짚방석을 깔고 둘러앉아서 동네 일을 의논하고, 잘못한 이를 심판하고 훈계하고 하는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사무가 처리된 것을 이 홰나무는 잘 안다. 비록 제일조, 제이조 하는 시끄럽고 알아보기 어려운 성문율이 없다 하더라도 조상 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거룩한 율법이 있었고, 영혼에 밝히 기록된 양심률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어느 한 사람에게 손해를 지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릇 온 동네의 이익이라든지 명예에 해로운 일을 생각할 줄 몰랐다. 그것은 이 홰나무가 가장 잘 안다. 개인과 전체, 나와 우리와의 완전한 조화―---이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또 이 홰나무는 그 그늘에서 일어난 수없는 연회를 기억한다. 혹은 옥수수, 혹은 참외, 혹은 범벅, 혹은 막걸리, 혹은 개장, 이러한 단순한, 그러나 건전한 메뉴로 짚세기를 결어 가며, 새끼를 꼬아 가며, 치룽을 결어 가며, 꾸리를 결어 가며, 어린애를 달래어 가며, 고양이까지도 참석을 시켜 가며 즐거운 연회를 한 것을 이 홰나무는 잘 기억한다.

면할 수 없는 죽음이 이 동네 어느 집을 찾을 때, 이 홰나무 밑에서 온 동네의 뜨거운 눈물의 영결식을 하는 것도 아니 볼 수 없었지마는, 정월 대보름날 곱닿게 차린 계집애들이 손길을 마주 잡고 큰 바퀴를 만들어 가지고,

"어딧 장차?"

"전라도 장차."

"어느 문으로?"

"동대문으로."

하고 추운 줄도 모르고 웃고 노는 양을 더 많이 보았다. 간혹 이 그늘에서 '이놈, 저놈' 하고 싸우는 소리도 날 때가 있지마는 그러한 충돌은,

"아서라."

하는 동네 어른의 점잖은 소리 한마디에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숭은 이러한 공상을 하고 있었다.

"글쎄, 이놈들아, 왜 불장난을 하느냐."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가 짚세기를 삼으면서 모깃불에서 불붙은 쑥대를 뽑아서 내어두르는 웃통 벗은 아이들을 보고 걱정한다.

"이놈들아,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싸."

하 고 젊은 사람 하나가 주먹을 들고 아이들을 위협한다. 위협받은 아이들은 빨갛게 타는 쑥대를 내어둘러 어두움 속에 수없이 붉은 둘레를 그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깨득깨득 웃는 소리만 남기고. 그러나 그 애들은 쑥대에 불이 꺼지면 다시 모깃불 곁으로 살살 모여든다.

"어떻게 될 모양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한편 발뒤꿈치에다가 신날을 걸고 끙끙 힘을 써서 조이면서,

"다들 무사하기는 어렵겠지?"

한다. 누구를 지명해 묻는 것은 아니나, 허숭을 향해서 묻는 것이 분명하다.

"아, 관리를 때렸는데 무사하기를 어떻게 바라오."

하고 깨어진 이남박을 솔뿌리로 꿰매고 앉았던 이가 대답을 가로챈다.

"아무리 관리기로 남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법이야 어디 있나."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끼뼘으로 신바닥을 재면서,

"옛날 같으면 될 말인가. 그놈의 정강이가 안 부러져?"

하고 분개한다.

"옛날은 옛날이요, 오늘은 오늘이지요. 관리라는 관자만 붙으면 남의 내외 자는 안방에라도 무상 출입을 하는 판인데, 처녀 팔목 한번 쥐고 뺨 한 개 붙인 것이 무엇이야요?"

하고 이남박 깁는 이도 아니 지려고 한다. 그는 나이가 사십 가량 되고, 머리도 깎고 세상 경력이 많은 듯한, 적어도 고생을 많이 한 듯한 말법이다.

"때린 것이야 잘못이지."

하고 어디서 점잖은 음성이 온다. 구장 영감이다. 그는 홰나무 밑동을 기대고 앉아서 담배를 빤다. 냄새가 정말 담배다.

"어디 때리는 법이야 있나.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때리면 구타여든. 황기수가 잘못했더라도 말로 승강이를 하는 게지 손질을 해서 쓰나. 한갑이가 잘못했지."

하고 심판하는 어조다.

"누가 먼저 때렸는데요? 황가놈이 한갑이를 먼저 때려서 코피가 쏟아지니깐 한갑이가 황가놈의 목덜미를 내려누르고 두어 번 냅다 질렀지요. 아따, 어떻게 속이 시원한지, 나도 이가 득득 갈리드라니."

하고 약고 약해 보이는, 무슨 병이 있는 듯한 청년이 구장의 말에 항의를 한다.

"그래도 손질을 한 것은 잘못야."

하고 구장은 불쾌한 듯이,

"내 가 모르겠나. 이제 한갑이는 몇 해 지고야 마네. 아까도 주재소에 들르니까 소장이 그러데. 공무집행방해죄와 폭행죄로 한갑이랑 단단히 걸리리라고. 왜 손질을 해? 어디다가 손질을 해? 백성이 관리에게 손질을 하고 무사할 수가 있나.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다들 조심해."

하고 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번 크게 가래침을 뱉고 어디론지 어두움 속으로 스러져 버린다.

"아니꼽게시리."

"구장이면 큰 벼슬이나 한 것 같아서."

"되지못하게."

하고 젊은 패들이 구장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 들릴 때가 되어 한마디씩 흉을 본다.

"숭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야 변호사니까 잘 알지 않겠나. 한갑이랑 이 사람들이 얼마나 죄를 질까."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 묻는다.

"글쎄요,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고 숭은 이러한 경우에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그렇지마는 별로 큰 죄 될 것은 없겠지요."

하고 위안을 주었다.

"거 원, 어떡헌단 말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신 삼던 손을 쉬고 호박잎 담배를 담으면서,

"그날 벌어 그날 먹던 사람들이 저렇게 오래 붙들려 가 있으면 거 원, 어떡헌단 말인고."

이 노인은 아직도 상투가 있다. 몸은 늙은 소나무와 같다.

"무얼 어떡해요? 징역이나 지면 상팔자지.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고. 설마 굶기기야 하겠어요. 콩밥이라도 굶는 것보다 안 날라고."

하고 병 있는 듯한 젊은이가 역시 병 있는 듯한 젖먹이를 기어 나가지 못하게 붙들면서 웃는다.

"집안 식구들은 다 어떡허고?"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무릎을 들고 칼을 찾는다.

"집에 있으면 별수 있던가요. 빚에나 졸렸지. 이왕 잡아다 가둘 것이면 집안 식구를 다 가두어 주었으면 좋지."

하고 병 있는 듯한 이는 자기의 의견을 고집한다.

"그래도 집이 좋지. 비럭질을 해먹어도 집이 좋지."

하고 아직도 스무남은 살밖에 아니 된 얼굴 검은 청년이 언권을 청한다. 마치 어른들 말참견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한 수줍은 태도로.

"응, 너도 좀 고생을 해봐라. 집도 먹구야 집이지 배때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 집은 다 무에야?"

하고 병 있는 이가 선배인 체한다.

"얼마나들 있으면 걱정 없이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하고 숭은 화제를 돌리려 하였다.

'걱정 없이 살아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게야 식구 나름이지."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지혜 있는 양을 보인다.

"식구는 댓 식구 잡고."

하고 숭이 말을 첨부하였다.

"다섯 식구도 식구 나름이지마는 일할 어른이 둘만 있으면야 글쎄, 논 댓 마지기, 밭 이틀 갈이, 한 부엌 땔 산 한 조각이면야 거드럭거리구 살지."

하는 이남박 영감의 말에,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밭 이틀 갈이 다 가지군들―---하루 갈이만 가지군들."

하고 짚세기 노인이 수정을 한다.

"그러믄요,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부자 부럽지 않지그려."

하고 여태껏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치룽 겯던 중늙은이가 한몫 든다.

"그리구두 벼름이 적어야. 요새처럼 벼름이 많아서야 농사나 해가지고야 평생 빚지기 알맞지요."

하고 병든 이가 불평한다.

"그래도 논 닷 마지기, 밭 이틀 갈이면 살아, 나뭇갓 있고."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주장을 보증한다.

"그야, 그럼, 그렇지요."

하고 대개 의견이 일치하였다.

"내가 모르겠나."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의견이 선 것을 만족하게 여긴다.

숭 은 생각하였다. 논이 닷 마지기면 두 섬 내기 잡고 오팔은 사십, 사백 원, 밭이 이틀 갈이면 육백 원, 나뭇값 백 원 도합 일천백 원, 천 원 돈이면 다섯 식구가 일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뜯어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었다.

'논 닷 마지기, 밭 이틀 갈이.'

하고 입 속으로 외면서 숭은 집으로(한갑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인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어두움 속에서 소리를 내었다. 그가 빠는 곰방대에서 호박잎 불이 번쩍한다.

한갑 어머니는 숭을 위하여 '웃간'이라는 방(건넌방에 비길 것이다)에 모기를 다 내어쫓고 문을 꼭꼭 닫아 놓았다. 숭은 방에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서 자리 있는 곳을 찾고, 베개 있는 곳을 찾아서 드러누웠다. 몸이 대단히 곤하다.

"아이, 더워!"

하 고 숭은 제일 먼저 더위를 깨달았다. 말만한 방에 문을 꼭꼭 닫아 놓았으니 이 복염에 아니 더울 리가 없다. 숭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숭의 눈에는 서울 정동 집에 앞뒷문 활짝 열어 놓고도 선풍기를 틀어 놓던 것을 생각하였다.

숭은 더위를 참고 잘 생각을 하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갑자기 변한 환경은 숭의 맘을 도무지 편안치 못하게 하였다.

'집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하 는 생각은 그리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비록 아내가 숭의 뜻을 몰라주고 또 숭에게 대하여 현숙한 아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내를 버리고 나온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뿐인가, 싸울 때에는 원수같이 밉더라도 애정도 그만큼 깊었다. 애정이 깊기 때문에 싸움도 심한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하더라도 왜 참지를 못하우? 내가 잘못하는 것까지도 왜 사랑해 주지를 못하우? 어머니도 없이 자란 년이 남편 앞에서나 응석을 부리지 어디서 부리우?"

하고 싸우고 난 끝에 울며 하던 아내의 말을 생각하면 뼈가 저리도록 아내가 불쌍해진다.

"내 가 악인은 아니유.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유. 당신이 내게 소중하고 소중한 남편이지만두 내가 철이 없으니깐 그렇게 당신을 못 견디게 굴지. 그걸 좀 용서하고 참아 주지 못하우? 그래두 내 정선이 하구 귀애 주지 못허우?"

하고 정선은 싸우던 끝에 가끔 숭의 품에 안겨서 원망하였다.

목덜미에서 빈대가 따끔한다. 겨드랑에서 벼룩이 스멀거린다. 쑥내를 먹고 어지러뜨렸던 모기들이 앵앵 하고 나와 돌아다닌다. 어디를 뜯어먹을까 벼르고 노린다. 발등이 갑자기 가려워진다.

"이놈의 모기가."

하고 숭은 손으로 발등을 때렸다.

서울 정동 집 안방에 생초 모기장, 안사랑 침대에는 하얀 서양 모기장이 걸리어 있는 것을 숭은 생각하였다. 모기장이 없기로니 정동에 무슨 모기가 있나.

불의에 남편을 잃어버린 정선은 얼마나 애를 태울까―---숭은 모기, 빈대, 벼룩, 더위의 총공격을 받으면서 생각하였다.

어젯밤에 숭이가 가방을 들고 다시 이 집에를 아니 들어온다고 뛰어나올 때에, 정선은 비록 분김에 제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말은 했지마는, 그래도 자정을 땅땅 치는 소리를 듣고는 왜 아직도 아니 올까 하고 기다리기를 시작하였다.

"영감마님 사랑에 들어오셨나 보아라."

하고 정선은 몇 번이나 하인에게 물었다.

정선은 눈을 감았다가 뜰 때에는 그 동안 자기가 잠이 들지 아니하였던 것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곁에 숭이 누워 있는가 하고 돌아 보았다. 그러다가 빈 베개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금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혼인한 지 일년이 가깝도록 한 번도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내외다. 정선은 어쩌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에는 벌써 전깃불이 나가고 동창에 볕이 비치었다.

"영감마님 아니 들어오셨니?"

하고 정선은 저도 놀랄 만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숭이가 살여울 동네 우물가에 몸이 있을 때였다. 정선은 남편의 베개에 엎드려 울었다.

이튿날 정선은 재판소로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허변호사 오셨어요?"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하는 급사의 대답이 들릴 때에는 정선은 전화기를 내동댕이를 치고 싶었다.

지금 살여울서 숭이가 모기와 빈대와 벼룩에게 뜯기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정선은 서울 집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석왕사로 간 게지."

하고 정선은 억지로 안심을 하려 하였다. 계집애에게도 부끄럽고 하인들에게도 부끄러웠다. 만일 남편이 아주 달아나고 말았다 하면, 무슨 면목으로 행길에를 나서고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할까 하였다.

숭 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를 생각하였다. 밉던 점을 다 떼어 버리고 생각하면 정선은 아름다운 아내였다. 얼굴도 아름답고 몸도 아름답고 맘도 아름답고 목소리도 아름다웠다. 다만 숭의 뜻을 알아주지 아니하였다. 정선이가 만일 갑진에게 시집을 갔으면 얼마나 좋은 아내가 될까 하고 숭은 여러 번 생각하였다. 정선의 머릿속에는 도저히 민족이라든지, 인류라든지 하는 생각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오직 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제 집이 있을 뿐인 것 같았다. 세상을 위해서 제 몸을 고생시킨다든가, 제 재산을 희생한다든가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듯하였다. 숭은 이것이 슬펐다. 숭은 정선에게 이 생각을 넣어 주려고 퍽 애를 써보았으나 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숭의 말이나 행동이 정선이가 인식하는 범위, 동정하는 범위를 넘어갈 때에는 정선은 무슨 큰 모욕이나 당하는 듯이 발끈 성을 내어서 숭에게 들이대었다. 그는 남편인 숭을 자기의 범주에 우겨넣으려는 듯하였다. 사실 숭이가 정선과 같은 범주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숭과 정선과는 화합한 부부가 되어 행복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숭은, 정선의 말법을 빌리면, 시골 벽창호가 되어서 정선의 주먹에 들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의 인생관은 대체로, 오랜 세월을 두고 계급적으로 일러진 것이 아니냐―---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숭은 한갑 어머니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들었다. 아들을 잡혀 보내고도, 속에 지극한 슬픔을 가졌으련만도 태연한 여유를 보이는 한갑 어머니를 숭은 부럽게 생각하였다.

일생에 너무도 슬픔을 많이 경험하여서 감수성이 무딤인가, 인생 만사를 다 팔자로 여겨서 운명에 맡겨 버리고 맒인가, 그보다도 기쁨이나 슬픔을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려는 조선 사람의 성격인가.

숭은 문을 열었다. 약간 서늘한 바람과 함께 모기떼가 아우성을 치고 들어왔다. 마치 이 동네에서 보지 못한 인종 숭을 들어 내기나 하려는 듯이.

숭 은 밖에 나갔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별이 총총하다. 가을이 멀지 아니한 표다. 시루봉, 먹고개, 흰하늘이고개 등 독장산 줄기 산들이 푸른 하늘 면에 검은 곡선을 그었다. 숭은 발이 가는 대로 집 없는 벌판을 향하고 걸어나갔다. 고요하다. 아직 벌레 소리가 들리기에는 너무 철이 일렀다. 살여울 물소리도 들릴 것같이 그렇게 천지는 고요하였다.

숭 은 살여울 물가에 나섰다. 숭이 어릴 때까지도 이 물가에는 늙은, 붉은 소나무들이 있었지마는, 그것마저 찍어먹고 인제는 한두 길 되는 갯버들이 있을 뿐이다. 검은 밤 들에 물빛은 그래도 희끄무레하였다. 짭, 짭, 짭, 짭 하고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위 살여울의 물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온다.

숭은 이 물에 연상되는 어린 때의 꿈, 한없는 하늘, 땅, 쉼없이 흘러가는 강물, 인생, 이 물가에 고달픈 잠이 들어 있는 살여울 동네, 서울에 두고 온 아내…… 끝없는 생각을 하면서 물가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닭이 울었다. 닭은 무엇을 먹고 사나, 닭도 한갑 어머니처럼 기름기가 없을 것이다―---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동 편 하늘에 남빛이 돈다. 이것은 서울서는 못 보던 빛이다. 그 남빛이 점점 짙어져서 자줏빛으로 변해 온다. 산들의 모양이 더욱 분명하게, 그러나 아직도 검은 한 빛으로 푸른 하늘 면에 나타난다. 흐르는 물조차도 좀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늦은 여름 새벽에 보는 골안개가 일어났다. 아직 저 안개가 일어나기에는 이른 때지마는 높은 산과 강이 있는 탓인가, 여기저기 부유스름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오른다는 것보다도 소리 없이 끼었다.

살여울 물이 하늘의 남빛을 받아 야청빛을 보인다. 어디서 벌써 말 방울 소리가 들린다.

무 너미로서 살여울을 건너 방앗머리, 굿모루를 돌아 검은오리 장으로 통한 큰길이 바로 이 동네 옆으로 지나가게 된다. 아마 무너미서 자고 검은오리 장을 보려고 가는 장돌림꾼의 짐 실은 당나귀 방울 소릴 것이다. 그 당나귀 등에는 인조견, 광목, 고무신, 댕기, 얼레빗, 참빗, 부채 등속이 떨어진 보자기에 싸여서 실렸을 것이요, 그 뒤에는―---숭의 생각은 막혔다.

그 뒤에는 예전 같으면 짚세기 감발에 갓모 씌운 갓을 쓴, 흔히는 꽁지 땋아 늘인 사람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야 왜, 그렇게 차렸을라고. 숭은 그 당나귀 뒤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 도무지 생각에 들지를 아니하였다.

"딸랑딸랑."

당나귀 방울 소리가 골안개 속으로 멀어 간다. 숭의 생각은 그 소리를 따라갔다.

신 작로가 나고 자동차가 다니고, 짐트럭까지 다니게 된 오늘날에는 조선 땅에 말과 당나귀의 방울 소리도 듣기가 드물게 되었다. 그것이 문명의 진보에 당연한 일이겠지마는 숭에게는 그것도 아까웠다. 그 당나귀를 끌고 다니던 사람은 무얼 해서 벌어먹는지, 심히 궁금하였다.

살여울 동네는 미투리를 삼는 것을 부업을 삼았으나, 고무신이 난 뒤여서 그렇지마는 미투리 틀을 못 보았다.

동편 하늘은 더욱 밝아지고 붉어진다. 멀지 아니해서 둥그런 빛에 차고, 열에 차고, 영광에 찬 해가 올라올 것이다.

'그 해가 오르는 것이나 보고 가자.'

하 고 숭은 물가에 쑥 내어민 산코숭이에 올라갔다. 여기도 숭이가 서울로 가기 전에는 늙은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여름이면 늙은이와 아이들이 올라와 놀더니, 지금은 오직 구부러진 소나무 한 개만이 서 있을 뿐이다. 아아 몹시 구부러진 덕에 찍히기를 면한 모양이다.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팔아먹었구나!"

하고 숭은 늙은 소나무 뿌리에 걸터앉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몸은 밤새도록 흘린 땀에 아직도 끈적끈적한데 그래도 새벽 바람이 선들선들하다. 이틀 밤째 새우는 숭의 머리는 퍽 무거웠다. 눈도 아팠다. 그러나 가슴속은 형언할 수 없는 불안과 괴로움으로 끓었다.

"나는 장차 어찌할 것인고?"

하고 숭은 굉장하게 빛을 발하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흰하늘이고개로 올려 솟는 햇바퀴를 바라보았다. 여러 해 막혔던 자연의 아침해! 숭의 가슴은 눈과 함께 환하게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빛, 그 힘!"

하고 시인 아닌 숭은 간단한 찬미의 단어로 아침해를 찬탄하였다.

독 장산, 살여울 벌, 달내강 물―---모두 빛과 힘에 깨었다. 환하다. 강과 논에 물, 풀잎 끝에 이슬 구슬이 모두 황금빛으로 빛났다. 더위와 물것과 근심으로 밤새에 부대낀 살여울 동네도 학질 앓고 일어난 사람 모양으로 빛 속에 깨어났다.

"인제 동네로 내려가자."

하고 숭은 일어났다.

숭은 살여울 동네에 온 뒤로 이틀 밤을 새웠다. 밤에는 물것일래, 낮에는 파릴래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이틀 동안에 이 동네에 관하여 이러한 지식을 얻었다.

장 질부사 앓는 이가 셋, 이질 앓는 이가 넷, 학질 앓는 이가 다섯,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하고 앓는 이가 둘, 만삭이 되어서 배가 아픈 부인이 하나. 만일 의사를 대어 진찰을 한다면 이 동네에 완전한 건강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될까. 비록 큰 병이 안 들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은 기생충, 혹은 영양불량에서 오는 모든 병, 낯빛을 보면 건강해 보이는 이는 몇이 아니 보인다. 숭은 이틀 밤만 이 동네에서 지내어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몸은 죽도록 앓고 난 사람과 같다. 못 먹고, 과로하고, 잠 못 자고, 심려하고, 그리고도 용하게 이만한 건강을 부지해 왔다. 참말 목숨이란 모질구나 하고 한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질이나 장질부사 환자의 똥에 앉았던 파리들은 그 발에 수없는 균을 묻혀 가지고 부엌으로 아우성을 치고 돌아다니며 음식과 기명과 자는 아기네의 입과 손에 발라 놓는다. 밤이 되면 학질의 스피로헤타를 배껏 담은 모기가 분주히 이 사람 저 사람의 혈관에 주사를 하고, 발진티푸스균을 꼴깍꼴깍 토하는 이와 빈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여행을 다닌다.

농촌에 의사가 있느냐. 가난한 농촌의 병은 현대의 의사에게는 학위논문 재료로밖에는 아무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 병을 고친대야 돈이 나오지 아니한다. 농촌에서 도시에 있는 의사 하나를 데려오자면 오막살이를 다 팔아 넣어야 하지 않는가. 자동차빕시요, 출장빕시요, 진찰룝시요, 약값입시요 이렇게 돈 많이 드는 의사를 청해다 보느니보다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편안한 일이다. 그렇다고 의사도 현대에는 병 고치는 것은 수단이요 돈벌이가 목적이거든, 돈 안 생기는 농촌 환자를 따라다니라는 것은 실없는 소리다. 국비로 하는 위생 설비조차, 위생 경찰조차 도시에 하고 남은 여가에나 농촌에 및는 이때여든. 만일 한 도시의 수도에 들이는 경비를 농촌의 우물 개량에 들인다 하면 몇천 동네의 음료를 위생화할는지 모르지 않느냐.

이리하여 농촌 사람은 병 많고, 일찍 늙고, 사망률 높고, 어린애 사망률이 더욱 높고, 그들의 일생에 땀을 흘려서 모든 사람의 양식과, 모든 문화의 건설 비용을 대면서도 자기네는 굶고, 자기네는 문화의 혜택을 못 보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때에 숭은 일종의 비분을 깨달았다.

'옳다. 그래서 내가 농촌으로 오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 디 해보자. 내 힘으로 살여울 동네를 얼마나 잘살게 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계급투쟁 이론의 가부는 차치하고 어디 건설적으로, 현 사회조직을 그대로 두고, 얼마나 나아지나 해보자―---이것은 내가 동네 사람들로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장래의 천국을 약속하는 것보다 당장 죽을 농민을 살릴 도리, 아주 살릴 수는 없다 치더라도, 그 고통을 감하고 이익을 증진할 도리―---이것은 내 자유가 아니냐.'

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숭은 일종의 자신과 자존과 만족을 깨달았다.

'내 일생을 바치어 살여울 백여 호 오백 명 동포를 도와 보자!'

이 렇게 결심하고 숭은 일할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이 동네 사람들의 고통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덜어 주어야 할까. 그리하고 어떠한 방법, 어떠한 경로로 매호에 논 닷 마지기, 밭 하루 갈이를 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숭이 자신은 어떠한 생활을 해야 될까.

첫 째로 할 일은 읍내에 가서 의사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둘째로 할 일은 양식 없는 이에게 양식 줄 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셋째로 할 일은 파리와 모기와 빈대를 없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넷째로는 잡혀간 사람들―---한갑이 아울러 여덟 사람을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 네 가지 일은 우선 금명간에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일이었다.

숭은 아침 일찍이 읍내로 갔다.

읍 에는 여기저기 옛날 성이 남아 있었다. 문은 다 헐어 버리고 사람들이 돌멩이를 가져가기 어려운 곳에만 옛날 성이 남아 있고 총구멍도 남아 있었다. 이 성은 예로부터 많은 싸움을 겪은 성이었다. 고구려 적에는 수나라와 당나라 군사와도 여러 번 싸움이 있었고, 그 후 거란, 몽고, 청, 아라사, 홍경래 혁명 등에도 늘 중요한 전장이 되던 곳이다. 을지문덕, 양만춘, 선조대왕 이러한 분들이 다 이 성에 자취를 남겼다. 청일, 일로 전쟁에도 이 성에서 퉁탕거려 지금도 삼사십 년 묵은 나무에도 그 탄환 자국이 혹이 되어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마치 조선 민족이 얼마나 외족에게 부대꼈는가를 말하기 위하여 남아 있는 것 같은 성이었다.

읍내 한 오백 호 중에 이백 호 가량은 일본 사람이요, 면장도 일본 사람이었다. 읍내에 들어서면서 제일 높은 등성이에 있는 양철지붕 한 집이 아사히라는 창루다. 이것은 숭이가 어렸을 적부터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 담에 큰 집은 군청, 경찰서, 우편국, 금융조합, 요릿집 등이었다. 보통 조선 사람 민가는 태반이나 초가집이었다. 그래도 전등도 있고 전화도 있고, 수도도 공사중이다. 전화 칠십 개 중에 조선인의 것이 십칠이라고 한다.

숭은 먼저 경찰서를 찾았다. 옛날 질청이던 것을 고쳐 꾸민 집이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문 앞에 섰는 순사가 숭의 앞을 막고 물었다.

"서장을 만나랴오."

하고 숭은 우뚝 서며 대답하였다.

"서장?"

하고 순사는, '이것이 건방지게 서장을 만나려 들어?' 하는 듯이 숭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숭에게 서장을 만나지 못할 아무러한 이유도 없다는 듯이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다시 따라와서 명함을 내라고 하였다.

숭은 명함을 내어주었다. 그것은,

"변호사 허숭."

이라고 쓴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그 순사에게 적지 아니한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변호사가 되려면 판검사를 지냈거나 고등문관 시험을 치러야 되는 줄을 아는 그는 숭에게 대하여 다소의 존경을 깨달았다.

"잠깐 기다리셔요."

하고 그 순사는 서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이리 들어오시오."

할 때에는 그 순사는 약간 고개까지도 숙였다. 서장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여 숭의 인사를 받고 의자를 권하였다.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하고 뚱뚱한 서장은 숭에게 물었다.

"이삼 일 되었소이다―---나도 여기가 고향입니다."

하고 숭은 말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대단히 출세하셨습니다그려."

하고 서장은 이 골 태생으로 변호사까지 된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놀라는 빛을 보이고,

"학교는? 어디 내지서 대학을 마치셨나요? 동경? 경도?"

하고 친밀한 어조를 보였다.

"학교는 보성전문이외다."

하고 숭은 서장의 표정을 엿보았다.

"보성전문?"

하고 서장은 또 한번 놀라는 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 끝에는 시들하다는 빛이 따랐다.

"퍽 젊으신데…… 어쨌든지 장하시오."

하고 서장은 내 관내 백성이라는 의식으로 칭찬하였다. 서장은 아부라는 경부였다. 서장은 규지(사환)를 불러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하고,

"그래 어째 이렇게?"

하고 부채를 부치며 일을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시탄리(살여울) 농민 사건에 대하여 서장께 청할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하고 숭은 말을 열었다. 서장은 안경 위로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은 없었다.

"시탄리는 내 고향이외다. 이번 오래간만에 고향에 오던 날에 바로 그 일이 생겼는데, 여기 잡혀온 사람들은 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외다. 평소에 양같이 순한 사람이외다."

할 때에, 서장은 픽 웃으며,

"양? 도우모 아바레루 히쓰지 데쓰나(거 어지간히 왈패한 양들인걸)."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잠 깐 내 말씀을 들으세요. 사건의 진상이 어찌 된고 하니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열아홉 살 되는 처녀의 손목을 잡아 끄는 것을 그 여자가 항거한다고 해서, 황기수가 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사건의 시초외다. 서장은 물론 조선 사정을 잘 아시겠지마는 조선서는 남의 부녀에게 모욕을 하거나 손을 대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한갑이라는 청년이 황기수의 팔을 붙들고 제지를 했는데, 황기수가 맹한갑의 면상을 세 개나 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맹한갑은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만 승강을 하다가 황기수가 주먹으로 맹한갑의 면상을 질러서 코피가 쏟아질 때에 맹한갑은 비로소 황기수를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오는 위해를 면하려는 정당방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곱 사람은 두 사람이 마주 붙은 것을 뜯어말리려고 모여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는 첫째, 황기수의 양복 저고리 등에 밖으로 묻은 피가 있다는데, 이것이 맹한갑의 코에서 흐른 피요, 그것이 등에 떨어진 것은 맹한갑이가 황기수 뒤통수를 눌러 황기수의 손이 다시 자기의 낯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믿습니다. 또 만일 맹한갑이나 다른 일곱 사람이 황기수를 모듬매를 쳤다고 하면 황기수가 제 발로 뛰어 달아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에 말한 사실로 보아서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벌할 만한 죄가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그날 벌어서 그날 먹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오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 가족들의 굶어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현저한 죄상이 있으면야 그야 무가내하지마는, 사실 이 사건의 책임은 전혀 황기수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서장께서는 이러한 점을 밝히셔서 이 동정할 만한 제 속에 있는 말도 다 할 줄 모르는 가련한 사람들을 하루라도 바삐 청천백일의 몸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서장께 간곡하게 청하는 바입니다."

"황기수의 말은 그와는 좀 다른데."

하고 서장은 책상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그 소리에 응하여 들어오던 순사(기실 순사 부장)는 숭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것은 일전 살여울에서 숭의 따귀를 떨던 사람이다. 숭도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그 황기수 구타, 공무집행방해사건 어찌 되었나. 아직 자백들을 아니 하였나."

하고 서장은 부장에게 물었다.

"네, 다른 놈은 다 자백을 했는데, 한 놈이 아직도 아니 합니다, 맹한갑이 한 놈이. 그놈은 아주 흉악한 놈입니다. 자기는 먼저 맞았노라고, 자기는 절대로 정조식 하라는 명령에 반항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허지만 오늘 안으로는 끝을 내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는 듯이 말한다.

"배후에 선동자는 없나?"

하는 서장의 물음에, 부장은,

"선 동은 맹한갑이가 한 모양이고, 맹한갑이를 누가 선동했는지는 도무지 자백을 하지 아니합니다. 맹한갑은 보통학교를 졸업했을 뿐이니까 무산 대중이니 부르주아 제국주의 정부니 하는 말을 할 지식이 없겠는데, 황기수의 증언을 보면 그런 계급투쟁적 언사를 하고 부르주아 제국주의 주구인 관리를 타도하라고 하더라니, 필시 지식계급에 있는 불량배의 선동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하고 부장은 허변호사를 곁눈으로, 미움과 악의가 가득한 눈으로 힐끗 보며,

"요새 서울 가서 전문학교깨나 댕긴 조선 사람들은 모두 건방지고 불온사상을 가지니까요."

한다.

"신참사는 뭐라나?"

하는 서장의 말에, 부장은,

"황기수의 고소장과 증인을 우라가키(보증)합니다."

"응, 알았네. 가게."

하여 부장을 내어보내고 서장은 눈에 가득한 승리의 웃음을 보이며,

"농민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요? 당신도 목격한 것은 아니니까."

하고 인제는 허변호사에게 대하여 볼일은 다 보았다는 듯이 서류를 보기 시작한다.

"경찰 당국에서 어련히 하시겠어요마는 한 말씀만 참고로 드리렵니다."

하여 숭은 서장의 주의를 끌고 나서,

"만일 황기수라는 사람이, 자기의 허물을 싸기 위하여 허위의 증언을 하였다면 어찌 될까요?"

하였다. 서장은 잠깐 불쾌한 듯이 허숭을 바라보더니,

"증거가 있지요, 증거가. 황기수는 옆구리에 타박상이 있어 치료 이 주간을 요한다는 의사의, 공의의 진단서가 있지요."

한다.

"황 기수의 저고리 등과 맹한갑의 옷에 묻은 피는 증거가 아닐까요? 또 그 격투가 일어난 원인이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여자에 대한 폭행이라는 것과, 정조식 장려의 공무집행방해라는 것과에는 죄의 구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믿거니와, 거기 대한 증거는 어떠합니까."

하고 반문할 때에, 서장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당신은 변호사니까 후일 법정에 나서서 그런 이론을 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경찰이나 검사정에서는 변호사의 변론은 없는 법이외다."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렇게 감정으로 하실 말씀이 아니외다. 나도 변호사로 여기 온 것이 아니요, 다만 피의자들이 내 동네 사람이오. 따라서 그들의 평소의 성격이며, 이번 사건의 진상을 잘 안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쪼록 이 사건이 간단하게 해결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말이 당신의 감정을 해하였다면 심히 유감됩니다."

그러나 숭의 이 푸는 말은 서장에게는 아무러한 효과도 주지 못하였다.

"당신이 그 농민들을 잘 아느니만큼 나는 황기수, 신참사 같은 사람들을 잘 압니다."

하고 서장은 어디까지든지 공격적이었다.

숭 은 더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은 자기가 서장을 찾아본 것이 전연 실패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첫째 서장이 비록 자기 말을 안 듣는 체하였다 하더라도 자기가 말한 사건의 진상이 서장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 것이요, 둘째로는 자기가 장차 그들을 위해서 법정에 설 때에 변론에 쓸 유력한 재료를 얻은 것이다. 그것은 서장과 부장과의 문답에서 황기수의 고소와 증언의 내용을 짐작하게 된 것이었다. 서장과 부장의 말을 종합하면 황기수의 주장은, 자기는 농업 기수로 공무를 행하기 위하여 정조식을 권장할 때에 맹한갑을 수모자로 한 농민 팔 명의 일단이 공산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자기에게 반항하고 마침내 맹한갑을 선두로 자기를 모욕하고 구타하였다 하는 것이요, 이에 대하여 신참사는 황기수의 편을 들어서 증언하였고, 의사(공의)는 황기수가 이 주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받았다고 증명하였고, 이에 대하여 경찰서의 심증은 농민의 반항이라면 으레 공산주의적, 또 농민의 말과 관리의 말이 있으면 둘째 것을 믿을 것, 이런 모양이라고 숭은 판단하였다.

이 것은 일종의 공식이었다. 숭은 경찰서에서 나와서 공의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객사(지금은 보통학교), 울툭불툭한 넓은 마당(장보는 데) 한편 끝 남문으로 통하는 홍예(虹霓) 튼 돌다리 못 미쳐서였다. 본래는 조선집인 것을 일본식인지 양식인지 비빔밥으로 고쳐 꾸민 집인데, ○○의원이라는 간판이 붙고 또 일본 적십자사 사원 ○○의학사 이○○라는 문패가 붙었다.

문 안에 들어서니 고무신과 구두가 놓이고 대합실(待合室)이라고 패가 붙은 구석(방이 아니다)에는 안질 난 부인과 머리 헌 사내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가 앉았다. 웬 기생인가 갈보인가 한 남 보일 치마 입고 머리 기름 발라 쪽찐 여자 하나가 왼편 손 둘째 손가락과 장손가락 새에 연기 나는 궐련을 끼우고 깔깔대고 엉덩이를 휘젓고 나온다. 그것은 보통 환자는 아닌 모양이다.

수부(受付), 약국(藥局)이라고 쓴 구멍을 들여다보니 나이 사십이나 되었을 듯한 궁상스러운 여윈 남자가 오이 채쳐 친 냉면을 먹고 앉았다.

"선생 계시오?"

하는 숭의 말에 그 남자는 냉면을 입에 문 채로 눈을 돌리며,

"병 보러 오셨소?"

한다.

"네, 병자가 있어서 선생을 좀 뵈이러 왔소이다."

"병자 데리고 오셨소?"

하고 그 작자는 냉면 그릇을 놓고 병자 구경을 하려는 듯이 구멍으로 고개를 내어민다.

"왕진을 청하러 왔소이다."

하고 숭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수부와 약국을 겸한 이 방은 한 간이 될락말락, 약병이 몇 개 있고 녹슨 저울이 놓였다. 더울 듯한 방이다.

"무슨 병이오?"

하고 또 묻는다. 숭은,

"당신이 의사요?"

하고 좀 성을 내었다.

"어디서 오셨소."

하고 또 묻는다.

"어서 선생을 보게 하시오."

하고 숭은 호령조를 하였다. 그 남자는 별로 무안해하지도 아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숭은 진찰실(診察室)이라고 써붙인 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는 빈 의자와 테이블이 있을 뿐이었다.

"의사 계시다오?"

하고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가 숭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 오셨소?"

하고 숭이 물었다.

"우리는 온 지가 보리밥 한 솥 질 때나 되었는데,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이 대답도 아니 합니다."

하고 부스럼에 붙은 파리를 날린다.

"물어도 대답을 아니 해요. 우리네같이 촌에서 온 사람이야 성명 있나요?"

하고 농부는 분개한다.

"우리 온 댐에도 몇 사람이 댕겨갔게."

하고 안질 난 부인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돈이 없는 줄 알고 그러지마는 나도 이렇게 돈을 가지고 왔다오."

하고 농부는 꼬깃꼬깃한 일 원박이 지전을 펴보인다. 그는 그 지전을 손에다가 꼭 쥐고 있다.

의사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숭을 보고, 숭의 의복과 태도에 놀란 듯이,

"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는 가무스름한 얼굴에 콧수염이 나고 금테 안경을 코허리에 걸어서 보기는 안경으로 안 보고 안경 위로 본다. 지금 술과 고기를 먹다가 나오는지 얼굴이 붉고 길다란 금 많이 박은 잇새를 쭉쭉 빨고 있다.

"선생이세요?"

하고 숭은 고개를 숙였다.

"예, 제가 이○○올시다."

하고 의사도 답례를 한다. 깔깔대고 저쪽 복도로 가던 여자가 와서 의사와 숭을 번갈아 보더니,

"황주사 안 가셨지?"

하고 의사에게 추파를 보낸다. 의사는 눈을 꿈적해서 그 여자를 책망한다.

"글쎄, 황주사가 옆구리를 이 주일이나 치료해야 된다는 양반이 술이 글쎄 무슨 술야?"

하고 그 여자가 깔깔대고 웃는다.

"병원에서 먹는 술은 약이 되지."

하고 의사는 참다못해서 그 여자의 농담에 끌려 들어가고 만다.

"비켜요! 나 황주사 좀 놀려먹게."

하고 여자는 의사의 와이샤쓰 입은 팔을 꼬집고 떼밀고 진찰소 다음 방으로 들어간다.

"요년! 어디 가서 또 서방을 맞고 왔어?"

하는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여보, 서방은 그렇게 일 분도 못 되게 맞는답디까."

하고 또 깔깔댄다.

"그럼, 오 이년, 너는 서방을 맞으면 밤새도록 맞니?"

하는 남자의 소리가 또 들린다.

"이 년은 누구더러 이년이래, 아야, 아파! 황주사도 계집이라면 퍽 바치는구려. 그러하길래로 벼 모내는 땀내 나는 계집애를 다 건드리려다가 무지렁이들헌테 경을 쳤지. 에, 더럽다! 여보, 비켜요! 아야 아야, 남의 사타구니를 왜 꼬집어. 숭해라!"

하고 어디를 때리는 듯한 철썩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야, 요것이 사람을 치네."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다.

"치면 어때? 맞을 일을 하니깐 맞지, 하하하하."

"아, 요런 맹랑한 년이 안 있나?"

"맹랑함 어때? 또 이의사더러 진단서 내달래서, 이번에 한 삼 년간 치료를 요함 하고 고소를 해보구려."

하는 여자의 종알대는 소리.

"그렇게만 해? 이리 와. 입 한 번 맞추자."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싫소. 그 시골 모내는 계집애 입 맞추던 입에서는 똥거름 냄새가 난다나."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얘, 입 한 번도 못 맞추고 봉변만 했다마는 이쁘기는 이쁘더라. 네 따위는 명함도 못 들여. 내 언제라도 고것을 한 번 손에 넣고야 말걸."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흥, 잘 손에 들어오겄소. 이제 고소까지 해놓고, 괜히 칼 맞으리다, 그 동네 사람들헌테."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이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의사는 대단히 맘이 조급한 듯이 연해 뒤를 돌아보며,

"왜들 이리 떠들어?"

하였다. 그러나 숭은 아무쪼록 의사를 오래 붙들었다. 그것은 의외의 소득이 있는 까닭이었다.

"환자는 누구세요?"

하고 이의사는 숭을 바라본다.

"환자가 한 칠팔 인 되는데요, 모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선생의 왕진을 청하러 왔습니다. 바쁘시겠지마는 좀 같이 가시지요."

하고 숭은 이의사의 맘을 떠보았다.

환자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말에 이의사 눈에는 지금까지 보이던 존경의 빛이 없어지고 조소하는 빛이 보였다.

"왕진은 일체 선금입니다. 아시겠지요?"

하고 이의사의 말은 빳빳하였다.

"선금이오?"

하고 숭도 분개하여,

"선금이라면 선금 내지요. 왕진료는 얼마 받으시나요?"

하고 물었다.

"매 십 리에 오 원이지요. 차비는 환자가 부담하고. 자동차가 통하지 못하는 곳이면 갑절 받지요."

이때에도 진찰실 다음 방에서는 황기수하고 기생하고 가댁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돈을 많이 내고도 왕진을 청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허숭은 공격하는 어조로 물었다.

"왕진료 안 받고 왕진 가는 의사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이의사도 곧 대항한다.

"그러면 가난한 농민들이 병이 나면 어떡허나요? 급한 병이 나도 안 가보아 주십니까. 와서 청해도 안 가십니까."

하고 숭은 이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거 할 수 없지요. 나는 자선사업으로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원래 촌사람들의 병은 그리 보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촌사람들이란 진찰료 약값 낼 줄도 모르고 도무지 인사를 모르고 한약첩이나 사다 먹으라지요. 돈도 없는 것들이 의사는 왜 청해요? 건방지게."

이의사는 아주 전투적이었다.

"그 렇지마는 환자가 청하면 진찰을 거절할 수는 없을걸요, 의사법에 있으니까. 나는 선생께서 거절을 하시려고 하더라도 진찰료 선금 안 내고 왕진을 청하려고 합니다. 환자가 한 사람뿐 아니라, 칠팔 인, 근 십 명 되니까요. 환자들 중에는 중병 환자도 있으니까 곧 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는 내가 불러 오지요."

하고 숭은 명령적으로 말을 끊었다.

이의사는 다른 정신으로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이 떠올라옴을 깨달았다. 술기운도 오르기 시작하였다.

"웬 말씀이오? 노형이 이를테면 누구와 트집을 잡으러 온 심이요, 어떤 말이오.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안 가는 게지. 노형이 무엇이길래 날더러 가자 말자 한단 말이오. 온, 별일을 다 보겠네. 그래 내가 안 간다면 어떡헐 테요?"

하고 이의사는 휙 돌아서려 한다. 숭은 이의사의 팔을 붙들며,

"나는 급한 환자를 위하여 의사를 청하러 온 사람이오. 만일 선생이 가기를 거절한다면 나는 부득이 경찰의 힘을 빌 수밖에 없겠소."

하고 대합실에 기다리고 앉았는 눈 앓는 노파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와 머리 헌 아이를 가리키며,

"저이들이 수십 리 밖에서 선생을 찾아온 지가 오래다고 하니 저이들 병을 얼른 보아 주시고, 그 동안에 내가 자동차를 부를 테니 어서 나하고 같이 가실 준비를 하시지요."

하고 숭은 어조를 좀 부드럽게 하여 타이르는 듯이 말하였다.

큰소리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듣고 간호부, 황기수, 기생도 나오고 수부에 앉았던, 냉면 먹던 말라깽이 친구도 나와서 의심스러운 듯이, 염려되는 듯이 이의사와 허숭을 번갈아 보았다.

숭은 황기수라는 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 검은 얼굴, 찌그러진 머리, 교양 없는 얼굴에도 교활한 빛을 띤 것, 게다가 눈초리 가늘게 처진 것이 색욕이 많고 도덕심이 적은 것이 보였다.

이의사는 숭의 말에―---이치에 맞는, 이치에 맞는다는 것보다도 법률에 맞는 숭의 말에, 또 아무리 보아도 시골뜨기 같지는 아니한 숭의 모양에 겁이 나서 간호부를 보고,

"저 환자들 무슨 병으로 왔나 물어 보고, 차례차례 진찰실로 불러들여."

하고 명령을 내리고, 자기는 숭에게는 인사도 아니 하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황기수와 기생은 일이 심상치 아니한 줄을 눈치채고 숭을 힐끗힐끗 돌아보며 방으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환자들을 향하여 퉁명스럽게 몇 마디를 묻고는,

"누가 먼저 왔소?"

하고 차례를 묻는다.

"이 아주머니 먼저 보시소."

하고 농부가 안질 난 부인에게 차례를 사양한다.

"아이그, 내가 나중 왔는데, 어서 가보슈."

하고 늙은 부인이 사양한다.

"누구든지 어서 와요!"

하고 간호부가 화를 낸다.

"그럼 내가 먼저 봅니다."

하고 농부가 아픈 다리를 끌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의사에게 수술복을 입히고 등뒤에 끈을 매어 주었다.

"왜 이렇게 되었어?"

하고 의사는 농부의 고름 흐르는 다리 부스럼을 들여다본다.

"모기 물었는지, 가렵길래 긁었더니 뻘개지면서 그렇게 되었어요. 좋다는 약은 다 발라 보아도 도무지 낫지 아니해요."

하고 농부는 애원하는 소리를 한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도 못 들었어? 긁기는 왜 해?"

하고 의사는 부스럼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본다.

"아야 아야!"

하고 농부는 소리를 지른다.

"커단 사람이 아야는 다 뭐야?"

하고 의사는 더 꾹꾹 눌러 본다.

"째지 않고는 안 나아요?"

하고 농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안 째고 날 수 있나."

하고 의사는 숭 때문에 난 화풀이를 병자에게 하고 앉았다.

"조금 스치기만 해두 아픈데."

하고 농부는,

"아니 아픈 주사가 있다는데 그것이나 놓아 주세요."

"주사 한 대에 이 원인걸. 돈 얼마나 가지고 왔어?"

하고 의사는 흥정을 시작한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것만 가지고 왔습니다. 추수만 하면야, 모자라는 것은 그때에 드리지요."

하고 손에 꼭 말아 쥐었던 일 원박이 조선은행권을 이의사의 눈앞에 내어 보인다. 이의사는 그 돈을 받아 간호부의 손에 쥐어 주고,

"돈 일 원 가지고 무슨 주사를 해달래? 진찰료밖에 안 되는걸. 째기만 해도 수술비가 삼 원야."

농부는 수술비 삼 원, 주사료 이 원이란 말에 눈이 둥그래진다. '벼 한 섬' 하는 생각이 번쩍 머릿속에 지나간다. 그렇지마는 이 다리를 아니 고치고는 농사를 할 수가 있나,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일 원만 내께 그럼 수술을 해주세요. 수술비는 추수 때에 드리께요."

하고 농부는 겨우 결심을 한다.

"수술은 내일 해도 괜찮으니, 수술비만이라도 변통해 가지고 오지."

하고 이의사는 일어나 소독물 대야에 손을 씻는다.

"다른 환자 불러. 돈 가지고 왔느냐고 묻고. 안 가지고 왔거든 내일 오라고."

하고 이의사는 황기수 방으로 들어간다.

허숭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에게 돈 육 원을 주어 수술을 받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였다. 농부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서 되겠습니까."

하고 눈에 가득 감사한 빛을 띠고 그 돈을 받았다.

농 부는 돈을 받아 들고는 쓰기가 아까운 듯이 한참이나 보고 섰더니 고름 흐르는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어디로 가버린다. 손에 육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들고(일년에 한 번도 쥐어 볼까말까 한)는 차마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돈 중에서 조고약이나 사가지고 집으로 가려고 한 모양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눈이 뜨거워짐을 깨달았다.

숭은 빈대약, 모기장감, 석유 유제, 기타 소독약품들을 사가지고, 자동차를 얻어 가지고 한 삼십 분 후에 이의사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의사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자동차에 올랐다. 숭은 간호부의 손에서 의사의 가방을 받아서 자기가 들고 차에 올랐다.

살여울 동네에 오기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말을 아니 하였다. 숭의 속에는 오늘 경찰서와 병원에서 보던 일을 생각하고, 의사는 숭이 때문에 불쾌하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너미에서 자동차를 내려 두어 시간 뒤에 맞으러 오기를 명하고, 이의사는 잠깐 주재소에 들러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숭을 따라 살여울 동네로 들어갔다.

우물가에서는 또 유순을 만났다. 유순은 낮물을 길러 왔던 것이다. 숭은 오던 날 아침에 유순을 만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순은 숭과 의사를 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의사도 유순에게 눈이 끌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숭과 동행하는 것도 잊어버린 듯이 순을 바라보았다. 순은 또아리를 인 채로 사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문제의 여자지요."

하고 숭은 웃으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네?"

하고 의사는 순에게 맘을 빼앗겨 숭의 말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여자 때문에 황기수 문제가 났단 말씀이야요."

하고 숭은 이의사의 안경 뒤에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네에?"

하고 의사는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랐다.

"황기수가 저 여자의 손을 잡는 것을 저 여자가 뿌리치니까 황기수가 저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이 사건의 시초지요."

"네에."

하고 이의사도 할 수 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황기수와 기생과가 하던 말을 이 사람이 들은 것을 생각할 때에 이의사는 등골에서 찬땀이 흘렀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명함을 바꾸었다. 이의사는 이 사람이 변호사 허숭인 줄을 알 때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도록 놀랐다. 놀랄 뿐 아니라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변호사 허숭에 관한 말은 신문에서도 보았고 말로도 들었다.

"네, 그러세요? 허변호사세요?"

하고 겨우 놀람을 진정하였다. 그리고는 이의사의 허숭에게 대한 태도는 갑자기 변하여서 친절을 지나 겸손에 가까웠다. 이의사는 숭과 같이 온 동네 병자의 집을 돌아보고 농담을 할 지경까지 친하였다.

"치료비는 내가 다 담당을 할 테니 어떻게 좋도록 해주세요."

하고 숭은 진찰이 다 끝난 뒤에 강가 정자나무 밑에서 쉬며 이의사에게 말하였다.

"내 힘껏은 하지요. 이 동네가 경치가 좋은데요."

하고 이의사는 강을 바라보았다.

숭 은 강을 바라보는 곳에 집터를 하나 잡고 초가집 한 채를 짓기로 작정하고 곧 동네에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공사를 시작하였다. 임금은 하루에 일 원. 그것은 숭이가 자신으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 회의를 열고 의논한 임금 팔십 전에 숭이가 이십 전을 더하여서 일 원으로 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즐겁게 일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집 짓는 데 경험이 있는 노인이 자청해서, 자청이라는 것보다도 자연히 공사감독이 되었다.

집 터는 처음에는 강가 높은 곳, 정자나무 밑으로 하려고 하였으나,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한 쉬는 터를 삼는 곳을 독점하기가 미안해서 그것은 사양하고 동네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등성이 동남쪽에 터를 잡기로 하였다. 여기서 보면 달내강 한 굽이가 바로 문 앞에 놓이고 그것을 주움 차서 동으로 달냇벌을 바라보게 되었고, 달냇벌을 건너서 돌고지, 흰하늘이고개, 시루봉 등의 산을 바라보게 되었다. 집터에서 강까지는 이십 미터나 될까, 비스듬하게 언덕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동네 노인들은, 이것은 정자터는 되나 살림집터는 되지 못한다고 반대하였으나 숭은 이것만은 고집하였다.

그리고 숭은 파리 잡는 약과 빈대, 벼룩 잡는 약과 파리채를 집집에 돌리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손수 두엄 구덩이라고 일컫는 구더기 끓는 곳에 구더기 죽이는 약을 뿌렸다.

집터를 다지는 날에는 온 동네가 떨어 나왔다.

"동네에 집을 지으면서 삯전을 받다니."

하고 삯 받을 때마다 노 말하던 동네 사람들은 이날에는 삯을 아니 받기로 거절하였다. 그래서 숭은 떡과 술과 참외를 많이 장만해서 동네 사람들을 먹였다.

"달구질은 저녁이 좋아."

하여 낮에는 터만 치고 달구질은 달밤에 하기로 하였다.

이 날은 어느새에 칠월 백중, 더위도 거의 다 지나고 해만 지면 서늘한 바람이 돌았다. 이 동네에는 달은 흰하늘이고개로 올랐다. 달이 오를 때쯤 하여 동네에서는 남녀노소가 숭의 새 집터로 모였다. 달빛은 달내강 물에 비치어 금가루를 뿌린 듯하였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어허 여차 당달구야."

달구 소리가 높이 울렸다. 달구 소리를 따라서 동아줄을 열두 가닥이나 맨 커다란 달굿돌이 달빛을 받으며 공중으로 올랐다가는 '쿵!'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이 집 한 번 지은 뒤엔."

하고 한 사람이 먹이면,

"아하 어허 당달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받으면서 동아줄을 힘껏 당기었다. 그러면 달굿돌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아들이 나면은 효자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딸이 나면 열녀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닭을 치면은 봉황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소를 치면은 기린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안 노적에 밧 노적에."

"아하 어허 당달구야."

"논 곡식 밭 곡식 썩어를 나고."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달냇벌에 쌓인 복은."

"아하 어허 당달구야."

"이 집으로 모여든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갈수록 사람들의 흥은 높아졌다. 배부른 것, 막걸리 먹은 것, 달 오른 것, 유쾌하게 일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합하여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숭은 유순이가 왔는가 하고 휘휘 뒤어 보았다. 이 집에는 유순이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 같았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유순과 둘이 조그마한 가정을 지었으면, 숭은 이러한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숭은 무엇을 돌아보는 척하고 사람들 앞으로 다녀 보았다. 유순의 아버지 유초시는 담배를 피우고 앉았는 양이 뵈었으나, 동네 처녀들도 더러 와 있는 것이 보였으나 유순의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숭 은 실망하였다. 유순이 없으면 하늘에 달도, 달이 비치인 달내 물도 빛이 없는 듯하였다. 숭은 슬그머니 빠져서 동네를 향하고 걸음을 걸었다. 동네에는 떠들 만한 사람들은 다 숭의 집터 치는 데로 나오고 조용하였다. 숭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는 순식간에 유순의 집 앞에 섰다.

유 초시 집은 반은 기와요 반은 초가였다. 사랑도 있고 대문도 있었다. 예전에는 사랑문을 열어 놓고(오고 가는 손님을 접한다는 뜻) 살던 표가 있었다. 유초시의 조부는 찰방도 지내고 집의까지도 지내어서 이 시골에서는 이름이 높았다. 유집의의 시와 글을 모아《월천문집》이라는 문집까지도 발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도 바뀌고 재산도 다 없어져서 유지평의 제삿날,

"현고조 통정대부 행 사헌부 집의."

하는 축을 부를 때에만 유초시는 맘이 흐뭇하였다.

옛날 같으면 관속이 나오더라도 사랑 뜰에서 허리를 굽혔지마는, 지금은 순사들이나 전매국 관리들이나 유집의 댁을 알아볼 줄을 몰랐다. 유초시도 처음에는 이것이 가슴이 아프도록 분하였지마는 지금은 그것조차 예사로 되고 말았다.

숭은 달빛이 가득 찬 마당에서 배회하였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지마는, 어려서는 무상 출입을 하였지마는 지금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 윽고 대문으로서 순의 얼굴이 보였다. 숭은 처마 곁에 선 늙은 오동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순은 대문을 나서서 높은 층층대(이 집은 터가 비탈에 있어서 대문 밖이 층층대가 되었다)로 사뿐사뿐 내려왔다. 그는 멀거니 달을 바라보더니 사뿐사뿐 걸어서 오동나무 곁으로 오다가 숭을 보고 깜짝 놀라 우뚝 섰다. 순의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오직 놀람뿐만 아니었다.

"내요, 숭이외다."

하고 숭은 나무 그늘에서 나섰다.

"네."

하고 순은 잠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터 치신다는데 어떻게 여기 와 계셔요."

하고 순은 일전 우물가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말하였다.

"동네 사람이 다 왔는데도 순씨가 아니 오셨길래 찾아왔지요."

하고 숭은 제 손으로 제 손을 만지면서 정성을 기울여,

"천하 사람이 다 있어도 순씨가 없으면 천지가 비인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하고 순은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나 는 아주 이 동네에서 살려고―---일생을 이 동네에서 살려고 서울을 버리고 내려왔지요. 집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여요. 이 동네가 고향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고향이지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생각을 하면 잇새에 신물이 도는 고장이지마는 이 동네에서 일생을 보내려고 작정한 것이 무슨 때문인지, 누구 때문인지 아셔요?"

하고 숭은 흥분한 눈으로 수그린 순의 오래 빗질도 아니 한 머리를 바라보았다.

순 은 고개를 수그리고 섰을 뿐이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순은 숭의 말이 무슨 말인지를 짐작하였다. 그러나 숭은 벌써 아내 있는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면 의아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숭은 순의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온지 아시오?"

하고 다시 물었다.

"제가 압니까. 아마 우리 동네 사람들 때문에 오신 게지요."

하 고 발자취에 놀라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순의 집 개가 자다가 깨어서 순을 찾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 개는 낯선 숭을 보고 두어 마디 짖다가 순이 한번 손을 들매, 짖기를 그치고 순의 치맛자락에 코를 비볐다. 그것은 얼굴이 길고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조선식 개였다.

"네,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면 왔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순씨가 없으면 나는 여기 오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저 집을 지으면 무얼 합니까."

하고 숭은 있는 속을 다 떨어 놓았다.

"부인께서 오시겠지요. 그리고 댁에서 삯 주고 시키실 일이 있으면 가서 해드리지요."

하고 순은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개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숭 은 비통한 생각을 가지고 일터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흥이 나서, '아하 어허 당달구야'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숭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마치 귀도 막히고 눈도 막히고 오관이 다 막힌 듯하였다. 머릿속도 가슴속도 꽉 막힌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자기를 위하여 힘써 주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아니 보이려고 쾌활한 태도를 강작(强作)하였다.

하 루 이틀 지남을 따라서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서고 보가 오르고 서까래가 걸렸다. 가늘고 둥근 나무를 그대로 재목으로 쓰는 일이라 치목에도 품이 안 들고, 흙이 붙고 영을 올리는 일이라 지붕이 되는 것도 쉬웠다. 방도 놓이고 마루도 깔렸다. 치석할 필요도 없이 산에서 메줏덩어리 같은 돌을 주워다가 축대를 쌓으니 그것은 하루 안에 다 되어 버렸다. 문, 미닫이는 장에서 미리 사다가 그것을 겨냥해서 문얼굴을 들였다. 뒷간 바자를 두르고 봇돌 두 개를 놓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동네로 통하는 길과 강으로 내려가는 길도 순식간에 되었다. 도배, 장판도 이틀에 끝났다. 집터를 친 지 보름이 다 못 되어서 집은 완성하였다. 담까지도 둘렀다. 담은 길다란 싸리와 참나뭇 가지로 삿자리 겯듯 결은 것이었다. 이런 것은 저녁 먹은 뒤에 담배 두어 대 태우는 동안씩 이용해서 사흘에 다 완성하였다. 우물까지도 하나 팠다. 집이 방 둘, 마루 하나, 부엌 하나, 광 하나, 장독대, 우물, 담, 마당, 뒤꼍, 널찍널찍하게 훤칠하게 해놓고 돈 든 것이 모두 이백 원이 못 되었다.

"선화당 같다."

하고 새로 지어진 집을 보는 사람들은 이 집이 깨끗함을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숭 은 트렁크에 빈대 묻은 것을 말끔 잡아 가지고 칠월 그믐날 새집으로 떠나 왔다. 마루에서는 나무 냄새가 나고 방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다 돌아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숭은 혼자 방에 앉아서 망연히 지나간 일, 올 일을 생각하였다. 생각이 벌레 소리에 끊기우고 벌레 소리는 생각에 끊기었다. 부모를 잃고 집을 잃은 지 오 년 만에 제 손으로 돈을 벌어 제 집을 짓고 들어앉은 것이 대견도 하였다. 그러나 혼인한 지 일년도 다 못 되어 파탄이 생기고 사랑하여서는 아니 될 여자를 사랑하여 가슴을 태우는 자기가 밉기도 하였다. 외람되이 힘에 부치는 일(농민운동)을 시작하여 몸과 맘이 어느새에 피곤한 것을 느낌이 막막도 하였다. 벌레 소리는 빗소리 같고 어지러운 생각은 벌레 소리와 같았다. 숭은 앉으락누우락, 들락날락하며 새 집의 첫 밤을 새웠다. 그것이 숭의 일생의 모형인 것만 같았다.

숭 은 집을 짓기에,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기에, 서울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뉘우침, 유순에게 대한 새 사랑의 괴로움, 아직 자리잡히지 아니한 생활과 사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 동네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더러는 비웃음과 악의로 자기를 훼방하고 방해함에 대한 분한 맘, 이런 시름, 저런 근심으로 몸과 맘이 심히 가빴다. 몸이 노곤하고 눕고는 싶으면서도 누우면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이따금 자기의 결심에 대하여 의심까지도 생겼다. 그러나 숭은 이 모든 것을 의지력으로 눌렀다. 한선생을 생각하고 참았다.

동네 사람들의 병도 한 사람만 죽이고는 다 나았다. 뼈와 껍질만 남은 병자들이 귀신같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게도 되었다. 이의사는 약속대로 사흘에 한 번씩 이 주일 동안 와서 치료해 주었다. 이의사가 이 동네에 부지런히 오는 데는 순을 보고 싶은 맘이 반 이상은 되었다. 그는 병을 다 보고 나서도 동네로 휘휘 돌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지 순을 한번 보고야 돌아갔다.

그 러나 그 동안에 숭은 장질부사 치료하는 법을 대강 배웠다. 해열제를 써서 안 되는 것, 땀을 내려고 애쓰는 것이 해로운 것, 약이라고는 소화제와 강심제와 지갈하는 것을 먹일 뿐인 것, 오줌 똥을 잘 소독해야 하는 것, 미음과 비타민을 먹여야 되는 것, 장출혈을 주의해야 되는 것, 안정해야 되는 것, 위험이 어디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대강은 배웠고, 관장하는 것, 피하 주사하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간호부가 가질 만한 지식은 가지게 되었다.

병 자의 집에서는 밤중에라도 겁이 나면 숭에게 뛰어왔다. 그러면 숭은 집에 준비해 두었던 약품과 기구를 가지고 달려갔다. 병이 위태한 경우에는 숭은 병자의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런 일이 숭의 건강을 많이 해하였다.

다른 병자들이 거의 다 완쾌할 때가 되어서 순의 고모(과부로 와 있는 이)가 발병하였다. 한참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신열이 높았다. 숭의 소견에 그것도 티푸스였다.

유초시는 자기 손으로 처방을 내어서 한약을 몇 첩 지어다 먹였으나 무론 효과가 없었다.

그 러는 동안에 유초시 자신도 열이 나서 머리를 동이고 드러눕게 되었다. 이때 전후하여 난봉으로 돌아다니던 순의 오라버니가 읍내에서 황기수를 때리고 잡혀서 갇히었다. 황기수를 때린 것은 무론 그 누이에게 한 폭행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러한 소식이 유초시의 맘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앓는다 칭하고 오지 아니하였다. 이 며느리는 남편에게는 소박을 맞고 시집에 먹을 것은 없고 한 데 화를 내어서 먹기는 넉넉한 친정으로 달아나 버린 지가 반년이나 되어도 시집에는 발길도 아니 하였다. 집의공 제사(유초시가 가장 존경하는 조부의 기일)는 유초시 집에서는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집의공 제삿날에도 며느리가 아니 온다고 유초시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다. 이때에 유초시는 반드시 광 속에 몰래 술 한 항아리를 빚었다. 집의공 제사에 사온 술을 써서 쓰느냐 하는 고집에서였다. 유초시는 열 있는 몸을 가지고 일어나서 술 항아리를 꺼내어 손수 청주를 떠서 제주를 봉하고 순을 지휘하여 제물을 차리게 하였다. 유초시의 눈은 붉고 몸은 가누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유초시는 허둥허둥하는 걸음으로 아랫방에 내려가 앓는 누이동생을 들여다보았다.

"웬만하면 좀 일어나 보려무나. 순이년이 무얼 할 줄 아니?"

하였다. 이것은 억지였다. 그러나 조부의 제사에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도 좋았다―---유초시의 생각에는.

숭이가 저녁을 먹고 유초시네 집에 문병을 왔을 때에는 유초시는 소세하고 새옷을 갈아입고 망건을 쓰고 앉았고, 순도 새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웬일이세요. 어쩌자고 일어나십니까."

하고 숭은 유초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이 집의공 기일이야."

하고 유초시는 행전을 치고 떨리는 손으로 끈을 매고 있었다. 숭은 유초시의 손을 쥐어 보고 맥을 짚어 보았다. 노인의 맥이건마는 세기가 어려울 만큼 빨랐다.

"이렇게 밤바람을 쏘이고 몸을 움직이시면 병환이 더하십니다. 좀 누워 계시지요."

하고 숭은 앞에 꿇어앉아서 간절히 권하였다.

"어, 그럴 수가 있나. 내 집에서는 제삿날 눕는 법이 없어.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몰라도, 내 정신이 있으면서 제사를 아니 지내어."

숭은 유초시의 지극한 정성에, 꿋꿋한 의지력에 눌려 더 말할 용기가 없었다.

"에그, 아주머니가 왜 나오시어?"

하는 유순의 소리에 숭은 앞뜰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틀거리는 순의 고모의 모양을 보았다. 숭은 그가 삼십구도 이상의 열을 가진 줄을 잘 안다.

그 부인은 부엌을 향하고 서너 걸음 비틀거리다가 순의 어깨에 매달려 쓰러졌다.

"응, 젊은것이."

하고 유초시는 창으로 내다보며 혀를 찼다. 숭은 뛰어내려가 병자를 붙들어 아랫방으로 인도하였다.

"제사를 차려야 할 텐데."

하고 병자는 기운 없이 숭에게 몸을 던져 버렸다. 그는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숭은 병자를 번쩍 들어서 누웠던 자리에 뉘었다. 그의 몸은 불이었다.

"냉수하고 수건하고."

하고 숭은 순에게 명령하였다.

"대단한가."

하고 유초시가 마루 끝에서 외쳤다.

"대단하십니다."

하고 숭이 대답하였다.

"그렇거든 누워 있거라. 순이더러 다 하라지."

하고 유초시는 가래를 뱉었다.

"이거 큰일났소."

하고 물과 수건을 가지고 온 순에게 숭은,

"아버지도 대단하시오. 이거 큰일났소."

하였다.

"어떻게 해요?"

하고 순은 울음이 터졌다.

"일가댁에서 누구를 한 분 오시라지요."

하는 것은 숭의 말.

"누가 오나요?"

하고 순은 억지로 울음을 삼켜 버리고 부엌으로 간다. 순의 고모는 헛소리를 하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

"나고 같이 가요. 나는 싫여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숭 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동네 인심이 어떻게 효박해졌는지 염병을 앓는 집과는 이웃과 일가도 수화를 불통하였다. 게다가 경찰이 교통 차단을 명한다는 것이 박정한 현대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를 주었다. 숭은 유초시 집에서 나와서 한갑 어머니를 데리고 다시 유초시 집으로 왔다. 한갑 어머니는 그 동안 간호부 모양으로 염병 앓는 집에 다니면서 미음도 쑤어 주고 빨래도 해주고 부인네의 오줌 똥도 받아 주었다. 숭은 한갑 어머니로 하여금 순의 고모 간호를 하게 하였다.

유초시는 기어이 제사 때까지 꿇어앉았다가 합문까지 하였다. 그러나 합문을 하고 뜰에 내려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유초시는 방으로 들어다 누이고 제사의 남은 절차는 숭이가 대신하였다.

유초시는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병이 대단히 중하였다. 제사를 지내느라고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이 대단히 나빴다. 유초시의 과수 누이는 영 정신을 못 차렸다.

날이 훤하게 밝자, 숭은 동네 사람을 읍내에 보내어 이의사를 청하였다. 오정 때나 되어서 이의사가 왔다. 이의사는 숭을 대하여 두 사람의 증상이 다 험악하다는 것을 말하고 특히 순의 고모가 더욱 중태라는 것을 말하였다.

유초시는 이의사더러,

"죽지나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염려 없으십니다."

하고 이의사는 환자에게 대한 의사의 으레 하는 대답을 하였다.

"아니, 내야 늙은것이 죽으면 어떻소마는 내 누이는 대단치나 않소오니까."

하고 병중에도 점잖은 사람이라는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좀 중하신 모양입니다마는 설마 어떨라구요."

하고 이의사는 친절하게 위로하였다.

"어떻게 좀 죽지 않게 해주시오."

하고 유초시는 힘이 드는 듯이,

"나도 죽고 저도 죽으면, 자식놈은 감옥에 가고 저 어린것을, 저 어린 딸년을 뉘게 부탁한단 말이오? 집이 가난해서 보수를 드릴 것도 없지마는, 어떻게 이선생께서 내 누이만이라도 살려 주시오."

하고 유초시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으로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힘이 및는 데까지는 하지요."

하고 의사는 연해 눈을 마당으로 향하여 무엇을 찾았다. 그것은 물을 것 없이 순의 모양을 찾는 것이었다. 유초시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더니 고개를 약간 창으로 돌리며,

"순아, 아가, 순아."

하고 불렀다. 그것은 속으로 잡아당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아랫방에 있는 순에게 들릴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순은 아버지의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네에."

하고 뛰어나와서 창 밖에 서서,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순의 얼굴에는 잠 못 자고 피곤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더 어여뻤다.

"그 술, 제주 남은 것, 따뜻하게 데워다가 이 손님 드려. 앓는 집에서 음식을 잡숫기가 싫으시겠지마는 술이야 어떠오. 안주는 과일이나 놓고 다른 것은 놓지 마라, 익은 음식은 놓지 마라. 익은 음식은 앓는 집에서는 손님께 아니 드리는 법이야. 알아들었니?"

순은,

"네에."

하 고 공순하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이의사의 눈은 순의 몸을 따라 광으로 마당으로 부엌으로 굴렀다. 그리고 오 분이나 지났을까. 순이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염치도 없이 뚫어지게 보았다. 금니 많이 박은 이의사의 입은 벌어졌다.

순은 술상을 웃목에 앉은 이의사와 숭의 새에 놓고 아버지가 덮은 이불을 바로잡고 치맛자락이 펄렁거리지 않도록 모아 쥐고 나가 버린다.

숭은 주전자를 들어 놋잔(옛날 것으로 굽 높은 잔대에 받친)에 노란 청주를 따라서 이의사에게 권하였다.

"영감 먼저 드시지."

하고 이의사는 숭에게 한 번 사양하고 받아 마신다.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짭짭 다시고, 두 모금 마시고 짭짭 다시고는 비위에 맞는 듯이 죽 들이켠다.

"거 술 좋은데―---정종보다도 나은데."

하고 이의사가 칭찬한다.

"시지나 않습니까."

하고 유초시가 만족한 듯이 묻는다.

"참 좋습니다. 이런 술 처음 먹어 봅니다. 이거 어디서 파는 술입니까."

하고 입에 침이 없다.

"어젯저녁이 내 왕고 집의공 기일이지요. 세사가 빈한하니까 양조 허가를 낼 수도 없고, 그저 한 해에 한 번 이날에만 가양으로 조금 빚지요."

하고 유초시는 눈을 감는다.

"따님이 당혼이 되셨군요."

하고 술을 석 잔이나 먹은 뒤에 이의사는 순에 관한 문제를 제출하였다.

"머, 아직 어린애지요."

하고 유초시는 눈앞에 귀여운 막내딸을 그려 본다. 머리가 아픈 듯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따님이 아주 준수하신데요."

하고 이의사는 마당으로 눈을 굴려서 순을 찾는다. 순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배운 게 있소?"

하고 유초시는 기침을 하고 담을 꿀꺽 삼킨다. 불쑥 내민 멱살이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따님을 내게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머, 잘이야 하겠습니까마는 간대로 고생은 아니 시킬 작정입니다."

하고 이의사는 마침내 불을 놓았다. 너무 당돌한 염려도 있었지마는 이 노인이 내일까지 살아 있을는지도 염려가 되기 때문에 유여할 새가 없었다.

이의사의 말에 유초시는 눈을 떠서 한참이나 이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과연 내 사윗감이 될 사람인가를 검사나 하는 듯이. 유초시는 '끙' 하고 이의사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하고 그대로,

"아직 혼인을 아니 하였던가요?"

하고 묻는다.

"하기는 했지요."

"그러면 상배를 하였던가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마는 상배나 다름이 없지요."

"그럼 이혼을 하셨소?"

하고 유초시의 눈은 더욱 커진다.

"아직 이혼도 아니 했습니다마는 적당한 혼처만 있으면 이혼을 해도 좋지요. 이혼을 아니 한다손 치더라도 딴살림이니까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고 이의사는 수줍은 듯이 웃는다.

"아니, 그럼 내 딸을 당신이 첩으로 달라는 말이오?"

하고 유초시의 어성은 높고 떨린다.

"장가처지, 첩 될 거 있나요? 그러면 영감네도 야속지 않게는 해 드리지요. 일시금으로든지, 매삭 얼마씩이라든지, 그것은 원하시는 대로, 또……."

유초시는 어디서 난 기운인지, 이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이놈, 이 고이얀놈 같으니. 그래 날더러 내 딸을 네 첩으로 팔아먹으란 말이야. 어, 이놈, 냉큼 일어나 나가거라. 죽일 놈 같으니!"

하고 호령을 뺀다. 유초시는 잠깐 숨이 막혔다가,

"요놈, 요 방자한 놈 같으니. 내 딸이 네놈과 네 계집년을 종으로 사다가 부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야 죽을 테다. 어 발측한 놈 같으니."

하고 베개를 집어던지려고 베개를 향하고 뼈만 남은 다섯 손가락을 어물거린다.

"이놈 저놈이라니? 누구더러 이놈 저놈이래!"

하고 이의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늙은것이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앓지만 아니하면 당장에 잡아다가 콩밥을 먹이겠다마는."

하고 발악을 한다.

"웬 말버릇이야?"

하고 숭은 이의사의 팔을 꽉 붙들어 마루 밖으로 내어둘렀다.

"노인을 보고 원 그런 말법이 어디 있소?"

하고 숭은 쓰러지려는 이의사를 다시 붙들어서 바로 세웠다. 순과 한갑 어머니가 이 소리에 뛰어나와서 떨고 섰다.

숭의 억센 주먹심과 위엄에 이의사는 불불 떨기만 하고 더 말이 없이 구두 끈도 아니 매고 가방을 들고 나가 버렸다. 대문 밖에 나가서야 이의사는,

"어디, 이놈들 견디어 보아라."

하고 중얼거렸다.

숭은 이의사가 나가 버리는 것을 보고 들어와 유초시를 안아 뉘었다. 유초시는 마치 죽은 지가 오랜 시체와 같이 몸이 굳었다.

순은 유초시의 머리맡에 꿇어앉아서,

"아버지, 아버지."

부르고 울었다.

의사가 나간 지 한 시간이 못 되어서 경관 두 사람이 유초시의 가택을 수색하였다. 그래서 항아리에 남은 술을 압수하고 유초시와 그 누이가 둘이 다 장질부사라 하여 대문에,

'이 집에 장질부사 환자 있으니 교통을 엄금함.'

하는 나무패를 갖다가 붙이고, 숭이를 대하여서는,

"당신은 왜 여기 와 있소?"

하고 물러나가기를 청하였다.

"내가 없으면 병간호할 사람이 없소."

하고 또 예방주사를 맞은 것을 말하여 숭은 이 집에 출입하는 양해를 얻었다.

이날 밤이라는 것보다도 이튿날 새벽에 유초시는 고만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한 번 정신을 차려서 허숭을 바라보고,

"숭이, 내가 죽거든 이 애는 자네가 맡아서 시집을 보내 주게."

하고, 또 순을 보고,

"내가 죽거든 숭이를 네 친오라범으로 알고 믿고 살어라. 그리고 숭이가 골라 주는 사람한테 시집을 가거라."

하는 유언 비슷한 것을 말하였다.

유 초시는 끝끝내 그 아들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였다. 유초시 자기가 죽으면 유가 하나가 망해 버리는 것만 같아서 퍽 맘이 슬펐다. 그것이 자기의 큰 불효인 것 같았다. 그렇지마는 그는 이러한 슬픔을 낯색에 나타내는 것이 옳지 아니하게 알기 때문에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모두 삼켜 버린다.

이렇게 유초시는 아들, 며느리, 어린 손녀, 다 보지 못하고 딸과 숭의 간호를 받으며 마지막 숨을 쉬었다.

유초시가 죽은 지 나흘, 장례가 나갈 날에 순의 고모는 치마끈으로 목을 매어서 죽어 버렸다. 며느리는 머리를 풀고 삿갓가마를 타고 왔었으나 장례를 치르고는 도로 친정으로 가버렸다. 젖먹이를 두고 왔다는 핑계였다.

숭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치렀다.

물론 장례 비용도 숭이 대었다. 장례가 끝나매 이 집은 채권자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유초시의 집은 아주 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 러나 유초시의 아들 정근(正根)은 가독 상속인이니,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는 남은 재산(재산이래야 세간)을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 마침 황기수 구타사건의 공판 기일이 임박했으니 숭이가 변호하러 가는 길에 정근을 면회하고 법적 수속을 하기로 하고, 우선 한갑 어머니로 하여금 순을 데리고 숭이가 새로 지은 집 건넌방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숭은 곧 ○○으로 떠났다.

공판정에는 방청도 별로 없었다. 검사는 주범 맹한갑에게 공무집행 방해, 폭행죄로 육 개월, 그 나머지 일곱 사람에게 각각 삼 개월 징역의 구형이 있었다. 피고들은 맹한갑 하나를 제하고는 다 황기수를 때린 사실을 부인하였다.

숭 은 변호사복을 입고 한 손에 연필을 들고 검사의 논고 중에 주요한 구절을 적다가 일어나, 피고들의 평소의 정행이 어떻게 순량하였던 것을 들고,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뺨을 친 데서 사건이 발단된 것과, 또 맹한갑은 다만 황기수의 폭행을 제지하려 그 팔을 붙든 것이요, 먼저 황기수가 맹한갑에게 폭행을 가한 증거는 맹한갑에게 목덜미를 눌린 황기수의 저고리 등 피가 묻은 것이 증거하는 것과, 또 숭이가 우연히 공의 이○○의 병원에서 이 주일 치료를 요할 타박상을 당하였다는 황기수가 기생을 희롱하여 술을 먹고 가댁질한 것을 목격하였던 것과, 또 황기수가 기생에게, '얘, 입 한 번도 못 맞춰 보고 손목 한 번 못 쥐어 보고 봉변만 했다' 하는 말을 들은 것과, 또 ○○경찰서장이 '농민의 말보다도 공의의 말을 믿는다'던 것을 인용하여 무죄를 주장하고 증인으로 황기수, 이공의, 기생 최강월, 숭과 함께 그 말을 들은 농부 김모를 소환하기를 청하였다.

재판장은 허변호사의 변론을 중대하게 듣는 빛이 보였다. 그는 가끔 연필로 무엇을 적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은 허변호사의 증인 신청은 그러할 필요가 없다 하여 각하하고 판결 기일은 다시 정할 것을 선언하고 폐정하였다. 재판장이 고려하려 하는 용의는 넉넉히 보였다.

허숭은 법정의 흥분이 깨자마자 견딜 수 없이 몸이 괴로움을 깨달았다. 억지로 형무소에 가서 유정근을 면회하고 만사를 다 맡긴다는 위임을 받아 가지고는 허둥지둥 정거장으로 나와서 저녁차를 잡아타고 살여울 집으로 돌아왔다.

허숭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 그 중에도 자식을 보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느냐고 허숭을 에워싸고 물었다. 한갑 어머니와 유순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동네와 허숭의 집과의 새에 있는 등성이까지 뛰어나왔다.

"우리 한갑이 잘 있더냐?"

하고 한갑 어머니는 허숭의 손을 잡았다. 손은 불같이 더웠다.

"네, 잘 있어요."

하는 허숭의 대답은 들릴락말락하였다. 허숭은 머리가 핑핑 도는 듯 괴로웠다.

"또 순이 오빠는?"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순을 대신하여 물었다.

"다들 잘 있어요. 정근이는 만나 보았지요. 다들 잘 있어요."

하고 숭은 내 집 마루 끝에서 구두를 끌렀다.

"다들 나오게 되었나?"

"판결은 아직 안 났어요."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자식이나 남편의 소식을 한마디라도 더 들어 보려고 숭의 집까지 따라온 사람이 십여 명 되었다.

이 동안에 순은 숭의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자리를 펴고 모기장을 달았다. 순은 직각적으로 숭의 몸이 대단히 불편한 줄을 깨달은 것이었다. 순은 베개까지도 손으로 떨어서 바로잡아 놓고 마루로 나왔다.

"나 냉수 한 그릇 주시오."

하고 숭은 방에 들어가는 길로 양복 바지도 아니 벗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숭은 앓는 소리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어디 아픈가."

하고 한갑 어머니는 그때에야 숭이 편치 아니함을 알고 머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무어 좀 자셔야지. 미음을 쑬까."

해 도 숭은 대답이 없었다. 숭은 마침내 장질부사에 붙들린 것이었다. 아침에는 조금 정신이 나고, 저녁에는 헛소리를 하였다. 팔다리가 쑤신다는 헛소리를 할 때는 한갑 어머니와 순이가 번을 갈아 주무르고, 머리가 깨어진다는 헛소리를 할 때에는 한갑 어머니와 순은 번을 갈아 가며 수건을 축여서 머리를 식혀 주었다.

한갑 어머니와 순은 어머니와 누이동생 모양으로 번갈아서 자고 번갈아서 간호하였다.

어떤 때에는, 흔히 새벽 두시나 세시가 되어서 숭이 눈을 뜨면 앞에 한갑 어머니가 앉았기도 하고, 순이가 앉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는 까맣게 탄 숭의 입술에다가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순 은 숭이가 이 동네 사람을 위하여, 나중에는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를 위하여 제 몸을 잊고 애를 쓰다가 이렇게 병이 들린 줄을 잘 안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 때문에 여러 날을 잠을 못 자고 피곤한 끝에 성치 못한 몸을 가지고 재판소에 가서 삼사 일이나 고생하다가 온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순은 자기의 생명을 끊어서라도 숭의 생명을 붙잡아야 할 의무를 느낀다.

숭의 병은 열흘이 되어도, 보름이 되어도 낫지를 아니하였다.

이 때에 정선은 남편을 잃어버리고 혼자 화를 내어 집에서 울기만 하였다. 동무를 만나기도 부끄럽고 친정 아버지를 보기도 부끄러웠다. 설사 제가 좀 잘못했기로니 어쩌면 저를 버리고 달아나서 수삭이 되어도 소식이 없느냐고 숭을 원망도 하였다. 그 동안에 김갑진이가 가끔 와서는,

"숭이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고, 혹은,

"그놈 시골놈이라, 시골로 달아났나 보외다."

하고 빈정대기도 하였다.

정 선의 맘에도 유순이라는 계집애가 가끔 맘에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설마 하고 항상 스스로 부인해 버렸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숭이가 ○○지방법원에서 농민을 위하여 변호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마침내 숭은 김갑진의 말과 같이 그의 고향인 시골에 달아나 버린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는 유순에게 대한 질투와 숭에게 대한 반감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래서 정선은 포도주 한 병을 사다가 먹고 혼자 취하여서 고민하고 만일 지금 김갑진이가 오기만 하면 그에게 안기리라고까지 화를 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밤에 김갑진은 오지 아니하였다.

이 러할 때에 어느 날 아침 편에 정선에게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다. 그것은 언제 한번 본 글씨였다. 피봉에도 분명히 유순이라고 서명을 하였다. 정선은 질투와 불쾌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불길에 타면서 그 편지를 내어 동댕이를 쳤다.

"에그, 욕이다, 욕이야!"

하고 정선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정선은 그래도 궁금하여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 이번에는 연필 글씨가 아니요 펜 글씨로,

허숭 선생께서 병환이 중하오니 곧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허숭 선생께서는 우리 동네에 오셔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시고 모든 어려운 일을 대신 보시느라고 몸이 대단히 쇠약하신 데다가 제 아버지와 고모가 병으로 신고하시는 동안에도 여러 날 밤을 새우시고 아버지와 고모가 돌아가신 뒤에 쉬실 새도 없이 또 ○○에 가셔서 재판소에서 변호를 하시고 돌아오셔서는 신열이 높으시고 오후면은 정신을 못 차리시고, 헛소리를 하시고 앓으십니다. 곧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려 하였사오나 놀라실까 보아서 편지를 못 드리다가 할 수 없어서 제가 지금 편지를 드립니다.

허 선생님은 헛소리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어떤 때에는 번쩍 눈을 뜨시고는, '여보 정선이' 하고 찾으시다가 섭섭한 듯이 다시 눈을 감으십니다. 심히 뵈옵기 딱하오니, 부대부대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내려오실 때에는 고명한 의사를 한 분 데리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허선생님을 은인으로,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구완해 드리려 하오나 어리석은 것이 무엇을 압니까. 다만 다만, 선생님이 곧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유순 상서.

라고 하였다.

편 지를 본 정선은 지금까지 타던 질투와 불쾌의 불길이 다 스러지고, 그의 속에 숨어 있던, 가리어 있던, 감추어 있던 깨끗한 혼, 사랑과 동정으로 된 혼이 깨었다. 아아, 그러면 남편은 역시 그가 노 말하던 농촌사업을 위해서 달아났는가. 아아, 그러면 남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가. 아아, 그러면 유순이라는 여자는 결코 남편을 유혹하는 요물은 아니던가.

"내가 잘못했소. 다 내가 잘못했소. 내 곧 가께요, 내 곧 가께요. 내 곧 가서 병 구완할게요."

하고 정선은 오직 사랑이 넘치는 맘으로 저녁차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아, 차보다도 비행기로 갈까."

정선의 마음은 조급하였다.

정선이가 처음으로 할 일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아 버지, 정선이야요. 네, 허서방이 시골 가서 병이 중하다고 의사를 하나 데리고 저더러 오라구요. 네, 네, 저 저녁차에 갈 텐데, 아버지, 의사를 하나 구해 주세요. 네, 돈은 있어요. 그럼 아버지가 어떻게 가십니까. 네, 떠나기 전에 집에 갈 테야요."

이러한 전화다.

윤 참판은 일변 놀랐지마는 또 일변 기뻐하였다. 이혼을 염려하던 그는 숭의 부처간에 아직도 애정의 연결이 있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딸이 이혼하는 것―---시집에서 쫓겨 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부가 되는 것이 나을 듯하였다.

그 날 밤에 정선은 그 친정 동생들의 전송을 받으며 남대문 정거장에 섰다. 의사 곽박사가 정선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곽박사에게 여비를 준 것은 물론 윤참판이었다. 윤참판은 간호부 하나까지 얻어서 뒤따라 정거장으로 내어보냈다. 이리하여 정선의 일행은 세 사람이었다.

봉 천으로 가는 차. 오후 열시 사십분. 차는 떠났다. 정선은 승강대에서 동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전송 나온 사람들이 아니 보이게 될 때까지 서 있었다. 정선은 이 가을밤에는 너무도 선선해 보이는, 살이 비치는 은조사 적삼에 둥근 남 무늬 있는 보일 치마를 입고 구두만은 검은 칠피를 신었다. 머리는 가마 있는 데 약간 속을 넣어 불룩하게 하고 쪽이 있는 듯 없는 듯하게 틀었다. 그리고 금테 안경을 썼다. 그는 아직 여학생 같았고 남의 부인 같지를 아니하였다. 전깃불 빛에 보는 그의 살빛은 마치 호박으로 깎은 듯하였다. 엷은 옷을 통하여 살까지도 뼈까지도 투명한 듯하였다. 그의 짧은 회색 치마폭이 살빛 같은 스타킹에 싸인 길쭉한 두 다리를 펄렁펄렁 희롱하였다.

별 로 집을 떠나 본 일이 없는 정선은 이렇게 차를 타고 나서는 것이 큰일 같았다. 더구나 경의선이라고는 개성까지밖에는 못 와본 정선이라, 알지 못하는 나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뿐인가, 앓는 남편을 찾아가는 길이다. 정선이가 자리에 돌아오는 길에,

"아, 미세스 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손을 내미는 이는 천만뜻밖에도 이건영 박사였다.

정선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이박사에게 손을 주었다. 이박사는 정선의 손을 흔들며,

"미세스 허, 미스 최, 소개합니다. 최영자 씨신데 내량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이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하시게 되었습니다."

하고 이박사는 고개를 기울여 미스 최영자라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애정을 보이려 함인 듯하였다.

"최영자올시다."

하고 미스 최라는 이는 일본식으로 읍하고 허리를 굽혔다.

"네, 저는 윤정선이야요."

하고 정선은 서양식으로 잠깐 고개를 숙였다.

"이 어른은 변호사 허숭 씨 영부인, 이화의 천재시요, 미인이시죠."

하고 이건영 박사는 얼굴 근육을 씰룩하였다.

정 선은 이것들은 또 언제부터나 만났나 하고 두어 번 두 사람을 보았다. 이건영 박사는 심순례를 차버린 후에도 같은 학교의 여자를 둘이나 한꺼번에 희롱하였다. 그러다가 인제는 이화에서는 완전히 신용과 명성을 잃어버리고 일본 갔던 여학생들을 따라다닌다는 소문을 정선도 들었다. 미스 최도 그 중의 하나로 아마 이번에 한 차를 타고 유혹을 하는 모양이로구나 하였다.

"그런데 혼자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이건영 박사는 정선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물었다.

"네, 의사 한 분하고 같이 갑니다."

"의사?"

하고 이건영은 얼른 남편을 잃은 정선과 어떤 의사와의 사랑, 달아남을 연상한다.

"저, 그이가 시골서 병이 나서, 그래서 의사를 청해 가지고 갑니다."

하고 정선은 남편한테 간다는 것이 맘에 흡족하였다.

"그이? 미스터 허가?"

하고 이박사는 한번 더 놀란다.

"네, 농촌사업한다고 시골 가 있었지요. 변호사는 다 집어치고."

하 고 정선은 유순의 편지에서 얻은 지식을 이 기회에 자기의 남편이 자기를 떠난 까닭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이 기뻤다. 실상 세상에는 허숭이가 종적을 감춘 데 대하여 여러 가지 불미한 풍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정선의 귀에 듣기 싫은 풍설은 허숭이가 정선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정선과 김갑진과의 추한 관계를 앎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 농촌사업 좋지요."

하 고 이건영은 자기도 일찍 농민운동을 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오늘날 죽도 밥도 못 된 것을 생각하고 감개가 없지 아니하였다. 사실상 이건영은 귀국한 지 근 일년에 계집애들의 궁둥이를 따르고 살맛과 입술맛을 따른 것 외에, 그러하느라고 다른 일은 한 것이 없었다. 인제는 교회에도 신용을 잃고 교육계에서도 신용을 잃어서, 아직 아무 데도 취직을 못 하였지마는, 그래도 닥터 리를 따르는 그에게 몸을 만지우고 입을 맞추는 여자는 자취를 끊지 아니하였다. 예수교회 계통의 여자들 중에는 이박사는 색마라는 평판이 났지마는, 그래도 그 예쁘장한 얼굴, 좋은 허우대, 말솜씨, 박사 칭호에 홀려지고 싶은 여자가 노상 없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교회 이외의 여자들에게는 이박사는 전혀 온전한 새 사람이었다. 미스 최는 그 중에 가장 재산이 있고 얼굴도 얌전한 여자였다. 이박사는 조선에서 월급생활로는 도저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독신인 것을 밑천으로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 덕으로 거드럭거려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심순례를 사랑한 것은 그건 상인의 딸이라는 것이요, 그 차버린 것은 순례의 집에 재산이 없음을 안 까닭이었다. 미인이요, 부자인 여자―---이것이야말로 이건영 박사의 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 교회 안에는 이러한 자격을 구비한 이가 드물었다. 그는 욕먹는 귀족의 딸이라도 부잣집 딸이면 얼굴과 살이 밉지만 아니하면 장가를 들고 싶었다.

"돈이 제일이다. 욕을 먹으면 어떠냐, 돈이 제일이다."

하는 것이 요새의 이박사의 철학이 되고 말았다. 미스 최는 어떤 술 회사 하는 도평의원의 딸이었다. 미스 최라는 여자 자신은 맑은 정신 가진 이박사가 탐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부모가 상관 있소? 본인만 보면 고만이지."

하고 이박사는 미스 최 교제에 반대하는 옛 친구에게 장담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보는 것은 미스 최 본인보다도 그의 아버지의 돈이었다.

싫 다는 곽박사를 침대차로 들여보내고 정선은 혼자 좌석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침대에 들어가는 것은, 하물며 다른 남자와 함께 침대로 들어가는 것은 마땅치 아니하게 생각한 까닭이었다. 정선이가 바라보니 이박사는 미스 최를 침대로 가자고 유인하나 최도 정선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는 모양이었다. 이박사는 무안한 듯이 혼자 세면소에 가서 세수하고 머리에 빗질을 하고 돌아와 앉는 양이 보였다.

정선은 잠깐 졸다가 정거하는 고요함에 깨었다. 유순의 편지를 받은 후로 하루 종일 흥분되었던 까닭에 몸이 몹시 피곤하였다. 이건영 박사가 빨간 넥타이를 펄펄거리며 왔다갔다하는 양이 보였다. 개성이다. 개성이면 알 사람도 많으리라 하고 차창으로 내다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왔다갔다하였다.

"굿바이."

하 는 서양 여자의 소리, 그도 귀익은 소리에 정선은 고개를 안으로 돌렸다. 그것은 오래 이화에 있다가 지금은 평양에 교장으로 가 있는 홀 부인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그를 홀 부인이라고 부르지마는 기실은 그는 아직 시집가 본 일도 없는 미스 홀이었다. 그는 문에서 들어온 첫 창 앞에 서서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차가 떠났다. 미스 홀은 조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정선은 마주 가서 홀 부인의 가방을 받았다.

"아, 정선이!"

하고 홀 부인은 반가운 듯이 정선의 손을 잡고 어깨를 만졌다. 이박사는 홀 부인을 몰랐기 때문에 두어 자리 건너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하고 홀 부인의 등뒤에 정선의 어깨를 치는 이가 있었다.

"아이, 순례야."

하고 정선은 어깨를 치는 손을 잡았다.

"언니, 어디 가우?"

하고 순례는 반가움을 못 이기어하는 듯이 정선에게 매어달렸다.

순례라는 말에 이박사는 얼굴에 피가 갇히었다. 순례의 얼굴이 눈에 번쩍 나타나자 이박사는 바깥을 바라보는 것처럼 창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미스 최도 이박사의 당황한 양이 눈에 띄었다.

"이리 오세요. 여기 자리 있어요."

하고 정선은 순례의 눈에 이박사가 보이지 아니하도록 순례를 한편 옆에 끼고 제 자리로 걸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순례의 눈에는 이박사의 뒷모양이 눈에 띄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것이 이건영인 줄을 알기에 넉넉하였다.

순 례의 발은 땅에 붙었다. 순례의 눈에는 유리창에 비치인 이건영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례를 실컷 희롱하고 돈이 없다고 박차 버린 이건영이다. 순례의 가슴에 일생 가도, 삼생을 가도, 미래 억만생을 가도 고쳐질 수 없는 아프고 쓰리고 아린 생채기를 내어 놓고 달아난 이건영이다. 슬픔을 모르는 순례에게 피가 마르는 슬픔을 박아 준 이박사다. 사람은 다 천사로 알던 순례에게 사내는 모두 짐승이요 악마라는 쓰디쓴 생각을 집어넣고 달아난 이박사다. 순례는 이박사가 그 동안 이여자 저여자 살맛과 입술맛을 보며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한 이건영 박사를 오늘 여기서 만날 줄이야.

순 례는 그 일이 있음으로부터 도무지 밖에를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이박사를 만날까 두려워함이었다. 도무지 이건영 박사를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맘 한편 구석에는 이박사를 그리워하는 생각이 있으면서도 이박사를, 그 얼굴을, 그 눈을, 그 입술을 자기의 몸을 두루 만지던 그 손을 보기가 무서웠다.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는 귀신을 만난 것과 같이, 맹수를 만난 것과 같이 기색해 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친 사람이 되어서 이건영의 모양 낸 양복을 찢고 빨간 넥타이로 목을 매어 죽이든지, 그 말 잘하는 거짓말, 유혹하는 말 잘하는 혓바닥을 물어 끊어 버리든지, 그 여러 여자의 입술을 빨기에 빛이 검푸러진 입술을 아작아작 씹어 버리든지, 그 여러 처녀의 살을 맘대로 만지던 손을 톱으로 잘라 버리든지 결딴을 내고야 말 것 같았다.

정선은 순례를 안다시피 하여서 자리에 끌어다가 앉히고,

"글쎄, 그 사람은 왜 보니. 그까짓 건 잊어버리고 말지. 또 미스 최라나 한 여자를 후려 데리고 가는구나. 일본 유학생이래. ○○여학교에 교사로 간다는데 귀축축하게 따라가는걸."

하고는 해쓱해지는 순례의 낯을 본다.

순 례는 본래 연약한 여자는 아니지마는 이건영 박사를 생각하면 곧 빈혈을 일으키고 기절할 듯하였다. 오늘도 뜻을 굳이 먹고 참았으나 눈앞이 노랗게 됨을 깨달았다. 순례는 정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이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억제하는 도리였다.

홀 부인은 순례의 맞은편에 말없이 앉아서 한참이나 기도를 올리는 모양이었다.

홀 부인은 이화에 있는 동안 순례를 딸같이 사랑하였다. 그는 순례를 부를 때에 사실상 딸이라고 불렀다. 그는 순례가 조선 처녀답게 순진하고, 말없고, 무겁고, 그리고도 지혜가 밝고, 감정이 예민한 것을 사랑하였다. 순례가 이건영 박사에게 농락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홀 부인은 한선생을 찾아가서 크게 항의를 하였다. 순례는 이박사와의 혼인에 대한 말을 일체 아무에게도, 홀 부인에게도 알리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정선, 그 사람 닥터 리요?"

하고 홀 부인은 비로소 입을 열어서 정선에게 물었다.

"네."

하고 정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홀 부인은 몸을 기울여서 이박사가 앉은 곳을 흘겨보았다. 그리고는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는 듯이 두 손을 깍지를 껴서 틀었다. 입 속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한참이나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나 이박사 그저 둘 수 없소. 말 한번 해야겠소."

하고 홀 부인은 모자를 벗어 놓고 일어났다. 홀 부인은 이박사의 곁으로 걸어갔다.

"이박사시오?"

하고 말을 붙였다. 이박사는 벌떡 일어났다.

"나 미스 홀이오."

하고 홀 부인은 미스 최에게 대하여 잠깐 목례하고 그 곁에 앉았다. 이박사는 악수를 기다리고 손을 내밀었으나 홀 부인은 손을 내밀지 아니하였다.

"이박사, 심순례 사랑한 일 있습니까."

하는 홀 부인의 어성은 칼날 같았다.

"네, 잠시, 저, 어떤 사람의 소개로 교제한 일 있지요."

하고 이박사는 좀 당황하였다. 상대편인 심순례가 지척에 지키고 있으니 이박사의 웅변도 나올 예기를 꺾임이 되었다.

"내 가 다 압니다. 한선생, 이박사를 믿고 사랑해서 이박사에게 심순례 소개하였고, 이박사 한선생께 말씀하기를 그 여자, 심순례 맘에 든다고 혼인한다고 말하여, 이박사, 심순례 두 사람 밤에 같이 놀러 나가고, 혼인식 아니 했으나 혼인한 부부 모양으로 팔 끼고 다니고, 심순례 마음에 이박사 내 남편이라고 믿게 하고, 그러하나 다른 여자―---그 여자 나 잘 아오. 내 학생이오마는 나 이름 말 아니 하오. 다른 여자 부잣집 처녀 욕심나서 심순례 교제 끊고, 또 다른 여자 둘, 아니 셋, 심순례 한가지로 사랑하는 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가, 또 미스 최."

하고는 미스 최를 바라보며,

"용서하시오, 나 미스 최 누구신지 잘 알고, 잘 알므로, 미스 최 듣는 데서 이 말씀 하오."

하여 미스 최에게 변명을 한 후에, 다시 이박사를 대하여,

"또 미스 최 돈 보고, 이박사 사람 보고 사랑 아니 하오, 돈 보고 사랑하오. 내가 잘 아오. 미스 최 돈 보고 또 사랑하오. 그러할 수 없소. 하느님, 하느님 보시고 있소. 사람 속여도 하느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도무지 속일 수 없습니다. 나 심순례 딸같이 사랑하오. 심순례 참으로 좋은 여자요. 그 심순례, 이박사 때문에 병 났소. 병 나서 공부 못 하고 불쌍해서 내가 평양으로 데리고 가오. 당신 만나는 것 심히 무서워하오. 당신 서울 돌아다니니까 만날까 무서워하므로 내가 집에 데리고 가오. 이박사 회개하시오. 하느님 믿고 예수 말씀 잘 생각하시오."

하고는 이박사의 대답도 안 듣고 일어나 버렸다.

홀 부인은 일어나면서 이박사와 미스 최를 한번 돌아보았다. 이박사의 낯빛은 파랗게 질리고 입술은 보랏빛이 되어 떨었다. 미스 최는 이마를 창틀에 대고 우는 모양이었다.

"오해요, 오해요!"

하는 뜻을 이박사는 영어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목 밖에 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오해?"

하고 홀 부인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려서 한 걸음 이박사의 곁으로 다시 가 서며,

"오 해요? 내가 이박사 오해했습니까. 대단히 기쁜 말씀입니다. 이박사 그렇게 악한 사람 아니라고 내가 믿게 되기 바랍니다. 이박사 젠틀맨이요, 크리스천이요, 조선 동포의 리더―---지도자 되어야 할 양반이오. 나 이박사 그렇게 인격 없는 사람이라고―---그렇게 남의 집 딸 유혹이나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믿고 싶지 아니합니다. 내 생각 다 오해라고 하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오해 풀리도록 심순례와 나 있는 앞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이박사는 따라오려고 아니 하였다. 그는 다만 힘없는 소리로,

"홀 부인, 전혀 오햅니다."

한마디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오해라는 말씀만으로 오해 도무지 풀리지 아니합니다. 지금 오해 푸실 기회, 마지막 기회 드려도, 그 기회 아니 쓰시면 이박사 변명할 아무 재료 없는 것을 내가 알 것입니다."

하고 홀 부인은 자리에 돌아와 버렸다.

이 등 차실에는 손님이 없었다. 만주가 뒤숭숭하고 또 병이 든다고 하여 객이 적은데다가 있는 이도 침대로 들어가 버리고 남은 것은 홀 부인, 정선, 순례, 이박사 일행밖에는 두어 사람밖에 없었다. 홀 부인이 이박사와 말하는 동안에 정선은 순례에게 여러 가지로 위로하는 말을 주었다.

"글쎄, 그까짓 녀석을 왜 못 잊어버리니? 그 녀석이 개지, 사람이냐."

이렇게도 정선은 말해 보았다. 그러면 순례는,

"그래도 어디 그렇소. 나는 안 잊히는데."

하였다.

"무섭다면서?"

"무섭긴 해도 안 잊히는 걸 어찌하오? 세상 사람들이 그이를 숭보면 듣기가 싫여."

하고 순례는 웃는 듯 우는 듯 낯을 감춘다. 그는 웃는 체 우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그 녀석이 너헌테 다시 오려든?"

"그야 그렇지, 언니. 그래두."

"도루 오기로 네가 받자 하겠니?"

"도루 오면 받지 어떡허우? 내가 이제 다른 데로 시집 못 갈 바에야."

"시집은 못 가니? 혼인했다가 이혼도 하는데, 무어 어쨌다고. 너 그녀석께 몸은 아니 허했지? 처녀는 아니 깨뜨렸지?"

"처녀란 어디까지가 처녀요, 언니? 나 처녀 같지가 아니하고, 꼭 그이의 아내가 다 된 것만 같은데."

"이애도, 처녀가 무엇인지, 우먼이 무엇인지 모르니?"

"난 모르겠어. 난 이만하면 벌써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우. 내 맘이 그런 걸 어떡허우."

하고 순례는 또 운다.

이러한 때에 홀 부인이 돌아왔다. 홀 부인은 우는 순례를 본체만체 하고 창을 바라보나 그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다. 홀 부인은 일부러 화제를 돌리느라고,

"정선이 어디 가오?"

하고 물었다. 이박사 사건 때문에 정선이가 어디 가는 것도 물을 새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시골 가서 병이 나서 의사를 데리고 갑니다."

하였다. 그리고 정선은 이 대답을 하는 자기의 신세를 순례보다 퍽 행복되게 생각하였다.

정선에게 허숭의 뜻을 들은 순례는 감탄하는 듯이,

"나도 그런 일이나 했으면."

하였다. 그 말이 퍽 간절하였다.

"이애는."

하고 정선은 어린 동생이나 딸을 귀애하는 듯이 제 손수건으로 순례의 눈물을 씻고 얼굴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며,

"네 가 그래 그 시골을 가서 살아? 오줌 똥 냄새가 코를 바치고, 빈대 벼룩이가 끓고, 도배도 장판도 없는 흙방에서 전등이 있나, 전화가 있나. 아침 저녁 만나는 사람이라고 시골 무지렁이들인데 네가 그래, 서울서 생장한 애가 그 속에서 살아?"

하고 정선은 순례의 슬픔을 잊게 할 겸 깔깔 웃었다.

"왜 못 사우? 시골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보다 더 순박하고 인정이 많다는데―---난 시골 가서 살고 싶수―---할 일만 있으면."

하 고 순례는 제 손을 본다. 그것은 세숫물밖에는 개숫물도 못 만져 본 손이다. 낫자루, 호미 자루는커녕 부지깽이 한 번도 못 잡아 본 손이다. 정선의 손은 더구나 그러하였다. 그들의 손은 노동이라고 하면 끼니때에 수저 잡는 것, 학교에서 연필 잡고, 피아노 치는 데나 썼을까. 분결같이 희고, 붓끝같이 고운 손이다. 굳은살 하나, 거스러미 하나 없는 손이다. 그 손들은 도회에 있으면 사내들에게 장난감밖에 아니 되는 손이다. 오곡이 되고, 백과가 되고, 필육이 되고 하는 농촌 여자의 손―---검고, 거칠고, 크고, 굳은살이 박이고, 모기가 앉아도 주둥이 침이 아니 들어가고 거머리가 붙어도 피가 아니 나오는 손이다.

"흥."

하 고 순례는 기껏 어멈의 손을 상상하여 제 손과 비교해 보았다. 도회 여자는 손으로 벌어먹지 아니한다. 그는 이쁘장한 얼굴과, 부드러운 살과, 아양으로 사내의 총애를 받아서 벌어먹는다. 이 세 가지만 구비하면 그 여자는 가만히 누워서 보약과 소화약이나 먹고 남편이라고 일컫는 남자의 장난감만 되면 일생 팔자가 늘어진 것이다(만일 그러한 팔자를 늘어진 팔자라고, 늘어졌다는 팔자가 좋은 팔자라고 할 양이면 말이다).

"그럼 언니는 어떡허랴우? 허선생은 시골 가셔서 농촌사업을 하시는데, 언니는 혼자 서울 있수?"

하고 순례는 아까보다 원기를 회복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억제력, 슬픔과 괴로움을 누르는 억제력만은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럼, 왜 나 혼자 서울 못 있니?"

하고 정선도 제 말에 의심이 없지 아니하면서 대답하였다.

"아니 참."

하고 순례는,

"그게 말이 되우?"

하고 가엾게 웃었다. 홀 부인은 순례가 웃는 것만이 기뻤다.

"왜 말이 안 돼?"

하고 정선은 여전히 자신 없는 항의를 하였다.

"어디 두고 보까."

하고 순례는 이번에는 좀더 쾌활하게 웃었다. 정선도 웃고 홀 부인도 웃었다.

정 선이가 ○○역에 내린 것은 이튿날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아니한 때였다. 이박사는 어디서 내렸는지 알 수 없고 미스 최만이 눈이 붉어서(울고 잠 못 잔 탓인 듯) 부끄러운 듯이, 그러나 정숙스럽게 정선에게 인사를 하였다. 홀 부인과 순례는 물론 벌써 평양에서 내렸다. 정선은 일본식으로 허리를 굽히는 미스 최의 손을 힘있게 잡으며,

"이박사와 약혼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오, 아버지는 약혼을 하라지마는…… 아직 아니 했어요."

하고 낯을 붉힌다.

정선은 이박사가 어디서 내렸느냐 하는 말도 묻지 아니하였다. 아마 미스 최에게 물리침을 받고 평양에서 내려서 또 어떤 부잣집 딸을 고르기로 작정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혹은 순례의 뒤를 따른 것이나 아닌가 하였다.

"실례 말씀이지마는 이박사 주의하세요. 못 믿을 남자입니다."

하고 손을 흔들었다. 미스 최의 눈에서는 새로운 눈물이 쏟아짐을 정선은 보았다.

정거장에는 살여울 동네 사람 하나가 나와서 등대하고 있었다. 정선이가 어제 아침에 허숭에게 전보를 놓았던 까닭이다. 그 동네 사람은 이등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바라고 섰다가 마주 와서,

"서울서 오시는 윤정선 씨시우?"

하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그 사람은 정선과 곽박사의 짐을 받아 들었다.

그 리고는 정거장 밖으로 앞서서 나왔다. 밖에는 동네 사람이 이삼 인이나 나와 있었다. 그들은 다 이번 황기수 사건에 잡혀갔다가 일심에 무죄판결을 받아 나온 사람들이었다. 주범 맹한갑만 삼 개월 징역의 언도를 받아 공소하고, 다른 일곱 사람은 혹은 무죄로, 혹은 집행유예로 다 나왔다. 그들은 이것이 다 허변호사의 덕이라 하여 나온 뒤에는 숭의 집 일을 제 일같이 보았다.

그들은 정선과 곽박사의 묻는 말에 대하여 허숭의 병이 중하지마는 그리 위험치는 아니하다고 하였다.

무 너밋고개에는 남녀 군중이 삼사십 명이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번 재판이 있은 후로, 사람들이 무사히 나온 후로 동네 사람들의 숭에게 대한 존경이 갑자기 더하였다. 다구나 숭이 제 일가 사람들도 아랑곳 아니 하는 동네 사람들의 염병을 구완하다가 병이 든 것을 보고는 동정이 심히 깊었다. 그들은(그 중에 돈푼이나 지니고 사는 거만한 몇 집을 빼고는) 하루에 한두 번씩 숭의 집에 문병을 가고, 숭은 정신을 잘 못 차리지마는 양식과 나무와 일습을 대었다.

정선은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많이 마중을 나온 것에 놀랐다. 구경을 나온 것이 아닌가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마치 오래 멀리 가 있던 친족이나 만나는 듯이 반가워하는 빛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여 마치 외국 사람이나 대하는 듯이, 내외나 하는 듯이 말도 잘 붙여 보지 못하였으나 정선이가 차차 한마디 두마디 말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친해져서,

"차에서 밤잠을 못 자서 곤하겠군."

하고 반말을 하는 아주머니조차 나서게 되었다. 정선은 그러는 동안에도 눈을 돌려서 유순이라는 계집애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럼직한 아이는 없었다.

"자, 어서 가보아야지. 이러구 있으문 되나."

하는 어떤 노인의 재촉으로 정선을 에워싼 진이 풀리고, 정선은 동네를 향하여 걸음 걷기를 시작하였다. 주재소에서 경관이 나와서 정선과 곽박사를 붙들고 몇 마디 물었다.

정 선의 일행이 우물 앞에 다다랐을 때에 유순이가 마주 나왔다. 유순은 앞선 곽박사를 위하여 옛날식으로 길가에 돌아서 길을 피하였다. 그리고는 몇 걸음을 더 걸어오다가 정선을 바라보고는 머뭇머뭇하다가 아무 말도 없이 정선에게 길을 피하였다.

"순아, 이이가 허변호사댁이다."

하고 어떤 부인네가 유순에게 말하였다. 이 말에 정선은 기회를 얻어 발을 멈추고 돌아섰다. 정선은 손을 내밀어 유순의 손을 잡고,

"유순 씨세요? 나 윤정선이야요. 편지 주신 거 고맙습니다."

하고 웃어 보였다.

"유순입니다."

하고 유순은 학교에서 선생 앞에 하듯이 경례를 하였다.

"이애가 여태껏 허변호사 병구완을 한다네, 어디 친부모 형제를 그렇게 할 수가 있나."

하는 옆의 노인이 유순을 위하여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하고 정선은 유순의 인사에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유순은 낯을 붉혔다.

동네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정선을 맞았다. 그리고 남편의 병을 위하여 근심하고,

"가만히 호강을 해도 좋을 사람이 우리를 위해서."

하여 주는 사람도 많았다. 정선은 자기 남편의 사업이란 것의 뜻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정선이 남편의 집 마루에 발을 올려놓을 때에는 곽박사는 벌써 숭의 병을 보고 있었다.

숭은 마침 정신이 좀 났다. 열은 삼십구도. 복부가 창하여 의사는 관장의 필요를 말하였다.

정선은 병실문 안에 들어서서 앓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탄 입술,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 흐트러진 머리, 그것은 차마 못 볼 광경이었다.

곽의사는 정선을 위하여 병자의 곁으로부터 물러앉았다. 정선은 곽의사가 내어준 자리에 앉으며 남편의 여윈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울었다. 무조건으로 울었다.

숭도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로부터 이 주일 후 숭은 정선에게 부축을 받아 마당으로 거닐게 되었다.

정선은 전심력을 다하여 남편을 간호하였다. 병중에 있는 남편에게서 정선은 전에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적지 아니하였다. 숭도 정선의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정선을 발견하였다.

"병이 낫거든 서울로 갑시다."

하고 하루는 정선이가 달내강가에 앉아서 늦은 가을의 볕을 쪼이며 이야기하였다.

"날더러 서울로 가자고 말고, 당신이 여기 있습시다."

하고 숭은 팔을 들어 정선의 허리를 안았다. 정선은 끌리는 대로 남편의 몸에 기대었다. 남편의 몸에는 벌써 그만한 힘이 생겼다.

"그래두."

하고 정선에게는 아직도 시골에 있을 결심이 생기지를 아니하였다.

"그래, 이 달내강의 맑은 물이 청계천 구정물만 못하오?"

하고 숭은 아내의 낯을 정답게 들여다보았다.

"그야 달내강이 낫지."

하고 정선은 웃었다.

"또, 저 벌판은 어떻고, 산들은 어떻고, 대관절 이 공기와 일광이 서울 것과 같은 줄 아오? 당신같이 몸이 약한 사람은 이런 조용하고 공기 일광 좋은 곳에 살아야 하오. 당신 오라버니도 호흡기병으로 안 죽었소? 여기 있습시다. 우리 여기서 삽시다. 여기서 농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삽시다. 그리고 우리 힘껏 이 동네 하나를 편안한 새 동네를 만들어 봅시다. 이 동네 사람들이 서울서 내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인생 가치로는 더 높소. 또 조선은 십분지 팔이 농민이란 말요. 이천만이면 일천육백만이 농민이란 말요. 나머지 사백만은 농민의 등을 긁어먹고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도 농민의 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만일 양심이 있다고 하면, 좀 갚아야 아니하겠소. 정선이, 서울 갈 생각 마오, 응."

하고 숭은 이번 만나서 처음으로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정선은 마치 처음으로 이성에게 키스를 당하는 처녀 모양으로 낯을 붉혔다. 그리고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은 없고 강 건너편에 아직 코도 꿰지 아니한 송아지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당신이 있으라면 있지요."

하고 정선은 숭을 바라보고 웃었다. 숭의 얼굴에는 살이 붙었으나 아직도 병색을 놓지 아니하였다.

정 선은 남편에게 대해서 시골에 있으마고 말을 해놓았으나 도무지 서울이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서울은 정선에게는 잔뼈가 굵은 데일 뿐더러, 수십 대 살아오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예산이 집이라고 하지마는 벼슬하는 조상들은 만년에나 예산에서 한 일월을 보냈을 뿐이요, 일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산 것이다. 게다가 정선은 시골 생활이라고는 삼방 석왕사의 피서지생활밖에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시골은 외국 같았다. 외국이라 하더라도 야만인이 사는 외국, 도무지 서울 사람이 살 수 없는 오랑캐 나라와 같았다. 그 발 벗고 다니는 촌 여편네들, 시꺼먼 다리를 내놓고 남의 집을 막 드나드는 사내들, 걸핏하면 무엇을 집어가는 아이놈들, 이 무지하고 상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 런데 왜들 그렇게 무지스럽소, 사람들이? 어디 그리 순박이나 하우? 애들은 도적질이 일쑤고. 그 사람들이 오면 무시무시해. 그 사람들 속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났소? 호호, 노엽지 말아요. 당신은 시골 사람 숭을 보면 노엽데다, 호호."

하고 정선은 앓고 난 남편을 괴롭게나 하지 아니하였는가 하여 숭의 기색을 엿보았다.

"그야."

하고 숭은 점잖게,

"농 촌 사람의 성격 중에는 우리보다 나은 점도 있지마는 또 못한 점도 있지요. 바탕은 좋지마는 원체 오랫동안 웃계급에 시달려 지냈거든. 게다가 근년에는 먹을 것조차 없으니 인심이 몹시 박해졌지요. 그걸 누가 다 그렇게 만든지 아시오?"

하고 숭은 정선의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매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그랬을까?"

하고 정선은 어리광하듯 생각하는 양을 보였다.

"양반들, 서울 양반들, 시골 양반들, 조선은 모두 양반들이 망쳐 놓았지요."

"또 양반 공격이로구려."

하고 정선은 새뜩하는 양을 보인다.

"당신네 양반은 큰 양반이지. 내 조상 같은 양반은 작은 양반이고. 죄야 큰 양반 작은 양반이 다 같이 지었지요."

하고 숭은 말을 좀 눅였다.

"그 야, 양반이란 것들이 나라 정사를 잘못해서, 이를테면 국민을 바로 지도하지를 못해서 조선을 망쳐 버린 것이야 사실이겠죠. 그렇지만 백성들은 왜 남 모양으로 혁명을 못 일으키우? 그놈의 양반계급을 다 때려부수고 왜 상놈 정치를 해보지 못했소?"

하고 정선은 상놈 공격을 시작한다.

"도 무지 교육을 안 주었거든. 그리고 유교, 그 중에도 노예주의인 주자학만 숭상해서 그 생각만 무지한 백성들에게 집어넣었거든. 그래서 양반, 중인, 상놈을 금을 그어 가지고는 벼슬은 양반만 해먹고, 중인은 역학이나, 의학이나, 수학 같은 기술 방면에밖에 못 나가고, 나머지 상놈계급은 자자손손이 아전 노릇이 아니면 농, 상, 공업밖에 못 해먹고―---농, 상, 공업이 천한 것이 아니겠지마는 조선 양반들은 그것을 천한 것으로 작정을 해놓았거든. 그리고는 나라일은 양반들만 맡아 두고 했는데, 그 나라 일이란 무엇인고 하니 나라일이 아니라 기실은 자기네 집안이 잘살 길, 요샛말로 하면 제 지위와 재산을 마련하는 데 이용을 해먹었단 말이오. 그분들이 농사개량을 했겠소, 상공업발전을 생각했겠소, 국방을 생각했겠소? 생각이라고는 어떡허면 높은 벼슬을 많이 하고 어떡허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것뿐이었소. 그 중에는 정말 나라를 위한 사람도 있겠지마는 근대에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그러니까 말이오, 양반들이 죄를 지어서 농촌을 저 모양을 만들었으니 양반이 그 죄를 속해야 하지 않겠소. 어디 당신 양반을 대표해서 한번 농민봉사를 해보구려."

하고 숭은 웃었다.

"난 큰 양반 대표고, 당신은 작은 양반 대표로?"

하고 정선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