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제5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삼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살여울의 농민들은 이 동네 생긴 이래로 처음 당하는 견딜 수 없는 곤경을 당하였다. 집간 논마지기 밭날갈이는 대부분 유정근이가 경영하는 식산조합의 채무 때문에 혹은 벌써 경매를 당하고 혹은 가차압을 당하고 혹은 지불 명령을 당하고 있게 되었다. 빚을 얻어 쓰기가 쉬운 것과 옛날의 신용대부 대신에 신식인 저당권 설정이라는 채권 채무의 형식은 가난한 농민들을 완전히 옭아넣고 말았다. 숭이가 경영하던 협동조합이 농량과 병 치료비와 농구 사는 값밖에는 일체로 대부하지 아니하던 것을 야속히 여기던 살여울 농민들은 잔치 비용이거나 노름 밑천이거나를 물론하고 저당만 하면 꾸어 주는 유정근의 식산조합을 환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여운 농민들은 그것이 자기네의 자살행위인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도장만 찍으면 돈이 생긴다."

고 살여울 농민들이 생각하게 된 지 이태가 다 못 하여 인제는 농량조차도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추수할 곡식을 저당으로 한 장리 벼만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정근의 아버지 되는 유산장은 아들의 수완에 절절탄복하였다. 그래서 금년 봄부터는 모든 재산권을 전부 아들 정근에게 맡겼다.

유산장네 재산은 숭이가 감옥에 들어간 동안에 삼 배가 늘었다고도 하고 사 배가 늘었다고도 한다. 아무리 줄잡아도 갑절 이상이라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정 근은 숭의 집에서 좀더 올라간 곳에 별장이라고 일컫는 집을 짓고, 서울 가서 고등보통학교까지 마치었다는 여학생을 첩으로 데려다가 금년 봄부터 살림을 차렸다. 도회의원에 선거될 양으로 출마하였으나 돈만 몇천 원 없이하고 낙선되고 만 것만이, 이 집의 유일한 실패였다. 그러나 불원간 면장이 될 것은 사실이라고 전하였고, 다음 번에는 반드시 도회의원이 된다고도 하고, 또 동경 어떤 유력한 사람의 추천으로 불원간 군수가 되리란 말조차 있었다. 어찌 갔든지 유산장 집 운수는 끝없이 왕성하는 것같이만 보였다.

그 러나 이 동네에서 개벽 이래로 있어 본 일 없는 차압이니 경매니 하는 것을 당하게 되어 몇 푼 어치 아니 되는 세간에 이상한 종잇조각이 붙고, 오늘까지 내 소유이던 것이 남의 손으로 끌려감을 당할 때에 받는 살여울 농민들의 가슴의 쓰라림은 비길 데가 없이 심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하여 가는 정근에게 그 따위 민간의 불평은 한 센티멘털리즘에 불과하였다. 혹시 불평하는 말을 하는 소작인이나 채무자가 있다고 하면 정근은 서슴지 않고,

"그것은 게으른 자의 핑계다. 약자의 비명이다. 내가 그대네에게 돈을 꾸어 준 것은 급한 때에 그대네를 도와 준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았거든 감사한 줄을 알어라."

이 모양으로 대답할 것이다. 정근은 법률을 배우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무슨 일이든지 법률에 걸리지 않기를 힘쓴다. 정근은 이 세상에 법률밖에 무서운 무엇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그는 사람보다 몇 갑절이나 법률을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지라 그는 요리조리 법률을 피할 길을 찾는 것이다. 그의 정신의 전체는 '법의 그물을 피하여 돈을 모으는 것'에만 쓰였다. 그러나 정근에게도 한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작은갑이의 만기 출옥이다.

정 근이가 작은갑이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갑이가 돌아오면 자기의 횡포에 한 꺼림이 생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비록 보통학교밖에는 더 배운 것이 없고, 또 사람도 그렇게 잘난 편이 아니지마는 작은갑에게는 옳은 것을 위해서는 겁을 내지 아니하는 무서운 성질이 있었다. 그것은 힘으로 누르기도 어렵고 돈으로 사기도 어려운 성질이었다. 이를테면 작은갑은 좀 둔하면서도 직한 벽창호였다. 정근은 작은갑과 어렸을 때의 동무로서 이 성질을 잘 알았다. 숭이가 작은갑에게서 본 것도 이 성질이었다. 정근은 작은갑의 이 성질이 싫고 무시무시하였다. 게다가 그는 감옥에서 삼 년이나 닦여나지 아니하였나. 그는 검사정에서나 공판정에서,

"나는 모르오. 허숭이가 하라는 대로만 하였소."

한다든지,

"조선이 잘되고 어쩌고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돈이 생긴다니까 하였소."

하기만 하였던들 그는 백방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직한 작은갑은 어디까지든지 허숭과 동지인 것을 주장하였다. 검사와 예심판사의 유도함도 듣지 아니하였고 공판정에서도 그대로 뻗대었다.

이것은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미친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정근은 이러한 작은갑을 다만 미친놈이라고만 웃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근이가 작은갑이를 싫어하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작은갑의 아내에 관한 것이었다.

작은갑의 아내는 작은갑이가 옥에 들어갈 때에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열두 살에 민며느리로 와서 열다섯 살에 머리를 얹고(혼인을 하고) 내외생활을 한 지 일년 만에 옥에 들어간 것이었다.

작 은갑이가 옥에 들어갈 때에는 면회하러 온 아버지(돌모룻집 영감님)에게 제 아내를 날마다 숭의 집에 보내어 그 집 일을 도와 주게 하라고 부탁하여서 한 이태 동안은 그리하였다. 그러다가 정근이가 여학생 첩을 해서 따로 집을 잡은 뒤에는 여러 가지로 꼬여서 작은갑의 처를 한 달에 이 원씩 월급을 주기로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학생 첩의 시중을 들렸다. 밥도 짓고 물도 긷고 세숫물도 놓고 빨래도 하고 그리고 자리도 깔고 걷고 어멈 비슷, 몸종 비슷한 일을 하였다. 월말이면 월급 외에 인조견 치마채, 저고릿감도 주었다.

정근이 가 작은갑의 처를 이렇게 불러다가 쓰는 것은 결코 그의 서비스만을 위함이 아님은 물론이었다. 열여덟, 열아홉 살의 통통한 그 육체에 맘을 두었음은 물론이었다. 동네에는 한 달이 못 하여 소문이 났다. 학생 첩과 정근과의 사이에 싸움이 나면 그것은 작은갑의 처 때문이라고들 다 추측하였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가, 너 학생 첩네 집에 가지 마라. 가더라도 해지기 전에 돌아와."

이 모양으로 시아버지의 말을 듣는 일도 작은갑의 처에게는 있었다.

"한 달에 스무 냥이 얼마야요?"

하고 며느리는 뾰로통하였다.

아 들과는 딴판으로 사람이 좋기만 한 돌모룻집 영감님은 그 이상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촌에서 인조견 옷을 걸치고 낯에 분 기운을 보이고 다니는 며느리의 꼴은 시아버지 눈에 아니 거슬릴 수 없는 풍경이지마는 명절이 되어도 며느리 옷 한 가지도 못 해주는 시아비로는 그 이상 더 책망할 수도 없었다. 오직 월말이면 지전 두 장을 꽁꽁 뭉쳐다가 시아버지 앞에 내어놓는 것만 눈물겹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돌아온다는 작은갑이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며느리가 지어 놓은 작은갑의 옷 한 벌을 가지고, 며느리가 번 돈으로 차비를 해가지고 ○○형무소까지 아들 마중을 갔던 것이었다.

작 은갑이가 살여울에 돌아온다는 날(그날은 곧 선희도 돌아오는 날이다) 동네 청년 육칠 인은 저녁차에 두 사람을 맞으러 일을 쉬고 정거장까지 나아갔다. 정선이도 고무다리를 끌며 을란을 데리고 우물께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이 우물은 정선과 을란은 모르지마는, 인제는 벌써 오륙 년 전에 유순이가 바가지로 이슬 맺힌 거미줄을 걷고 식전 물을 길으면서 숭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데다. 순의 무덤이 바로 이 우물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도 이상한 인연이었다. 유순의 무덤은 벌써 새 무덤의 빛을 잃었다. 다른 낡은 무덤과 같이 풀로 덮이었다. 정선은 청명 추석에 을란을 보내어서 이 돌아볼 사람 없는 유순의 무덤과 한갑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보게 하였다. 예수교 학교에서 자라난 정선이라 음식을 벌여 놓는 것은 아니지마는 풀이나 뜯어 주고 꽃포기나 심어 주었다.

정선은 우물가에 서서 순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을란도 따라서 바라보았다.

"여기 오신 지가 몇 해야요?"

하고 을란은 감개를 못 이기는 듯이 물었다.

"벌써 오 년째다. 우리가 농사를 네 번이나 짓지 아니했니?"

하고 정선은 서울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부모 생각도 나고, 집 생각도 났다. 떠난 지 사오 년이 되어도 소식도 없는 집! 그러나 그것은 그리운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선의 머리는 ○○으로 돌려지었다. 거기는 남편이 흙물 묻은 옷을 입고 있다. 사오 차 면회도 하였고 이따금 편지도 오지마는 앞으로 아직도 이태를 남긴 남편의 돌아올 기회가 망연하였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다. 지평선 위에는 구름 봉오리들이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색채로 변하였다. 논김을 매는 사람들이 석양 비낀 볕에 마치 신기루 모양으로 커다랗게 떠오르는 것이 바라보였다.

"으어허 허으허."

하 는 소리밖에는 말 뜻도 알아볼 수 없는 메나리 소리가 들려 왔다. 배고프고 피곤한 것을 이기려는 젊은 농부들의 억지로 짜내는 소리였다.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장돌림의 당나귀 방울 소리가 들리고 맥고자 밑에 손수건을 늘인 장꾼들이 새로 산가 싶은 부채를 부치며 지껄이고 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작은갑이와 선희 일행이 무너미 고개를 넘는 것이 보였다. 뒤에 따라오는 것은 정선이가 돌모룻집 영감님 편에 부친 제 옷(예전 서울서 입던 옷)을 입고 제 파라솔을 받은 선희였다.

"저기 오시네."

하고 을란도 반가워서 따라갔다. 머리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커다란 계집애다. 정선도 절뚝절뚝하며 몇 걸음을 더 걸어갔다.

청년들은 자기네 힘으로나 빼어오는 것같이 작은갑과 선희를 옹위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떠들고 웃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또 떠들고 웃었다.

"아이 정선이!"

하 고 선희는 정선이가 절뚝거리고 오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와서 파라솔을 풀밭에 내던지고 정선을 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안고 울었다. 작은갑이가 정선에게 인사를 할 때에 정선은 일변 눈물을 씻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작은갑이와 젊은 사람들은 세 여자에게 자유로 울 기회를 주려는 듯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정선과 선희는 언제까지나 서로 안고 울었다. 곁에 을란이도 앞치맛자락으로 낯을 가리우고 머리 꼬리를 물결을 지으면서 울었다.

선희는 한참이나 정선을 안고 울다가 정선에게서 물러나 정선의 화장 아니 한 볕에 그을은 얼굴과 목지지미 치마에 굵은 모시 적삼을 걸친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친 듯한 열정으로 정선의 목을 안고 수없이 그 입을 맞추었다.

"정선이가 더 이뻐졌구나!"

하고 선희는 다시 정선에게서 물러서며 히스테리컬하게 웃었다.

"허 선생 면회하고 왔다. 안녕하시더라. 난 꼭 삼 년 만에 뵈었는데 몸이 좀 부대하신 것 같으시어. 정선이 보거든 잘 있으니 염려 말라고 그러라고. 나는 집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꼭 한 모양이라고 말하라고. 학교에 있을 때보다 공부가 많이 된다고. 서양 유학하는 셈치고 있다고 그러라고. 이태나 더 있어야 졸업이라고. 졸업하고 가거든 새 지식을 가지고 일할 터이니 그 동안에 정선이는 건강과 용기를 기르고 있으라고. 광명한 앞길을 바라보고 애여 어두운, 슬픈 생각을 말라고. 그리고 또 무에라고 하셨더라―---오, 옳지 친정에 한번 댕겨오라고. 정선이 친정아버지께서 감옥으로 편지를 하셨더라고. 필적이 떨리신 것을 보니까 퍽 노쇠하신 모양이니 얼른 가 뵈이라고."

"안 가."

하고 정선은 서울 쪽을 바라보며 눈을 끔적끔적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고개를 도리도리하여 보인다. 선희는 말을 이어,

"그리구, 그리구."

하고 잊어버린 말을 생각하다가,

"오 참."

하고 을란의 손을 잡으며 선희는,

"을란이가 인제는 나이가 많았으니 적당한 신랑을 구해서 시집을 보내라고. 서울로 보내든지 살여울서 혼처를 구하든지 정선이가 을란이 어머니가 되어서 잘 골라서 시집을 보내라고."

"안 가요. 전 집에 있을 테야요."

하고 을란은 고개를 숙이고 정선의 치마꼬리를 만진다. 정선은 을란의 어깨에 올라앉은 귀뚜라미를 집어던지며 말없이 한숨을 쉰다.

"오 그리구 또, 저, 아이구 무슨 말씀을 또 하시더라."

하고 선희는 말을 잊어버린다. 세 여자가 울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날은 아주 저물어 남빛 어두움이 달냇벌을 덮었다.

"을란아, 밥."

하고 정선이가 놀랐다.

"아이그마."

하고 을란이가 집을 향하고 달려간다. 정선과 선희도 집을 향하고 걷기를 시작한다. 몇 걸음을 가다가 정선이가 우뚝 서며,

"선희, 순이 무덤이 저기라우."

하고 선희에게 시루봉 기슭을 가리켰다. 선희는 깜짝 놀라는 빛으로 정선이가 가리키는 데를 본다. 그러나 어두움은 완전히 유순의 무덤을 가리어 버리고 말았다.

"한갑 어머니 무덤두 저기구."

하고 정선은 또 한번 그곳을 가리켰다.

선희는 두 무덤이 있다는 쪽을 향하여 이윽히 묵상하였다. 시루봉의 원추형인 윤곽이 마치 한 큰 무덤인 것과 같이 남은 빛에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봉우리 위에는 새로 눈뜨는 별 하나가 반짝거렸다.

'불쌍한 순이 누운 곳이 저기라네.

무덤은 아니 보이고,

저녁 하늘에 별 하나만 깜박인다.'

선희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그것으로 시를 만들어 유순의 무덤에 새겨 세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희와 정선은 동네 사람들을 피하여 동네를 에돌아서 집으로 향하였다.

작 은갑이가 집에 돌아온 길로 보고 싶은 이는 물론 그의 아내였다. 혼인이라고 해서 석 달도 다 못 되어서 떠난 해, 그때에는 아직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아니하였지마는, 지금은 열아홉 살이 되어 성숙한 부녀가 되었을 아내는 작은갑이의 가장 그리운 사람일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보구 싶어!"

하고 옥중에서 소리를 지르다가 간수한테 야단을 당한 일까지 있었다.

작 은갑은 전보다 퇴락한 집을 보았다. 다 썩어 문드러진 바자울, 바잣문, 여러 해 영을 잇지 못해서 여기저기 홈이 파진 것 등 작은갑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아니한 것이 없지마는 가장 섭섭한 것은 아내가 눈에 안 보이는 것이었다. 혹시나 죽었나 하는 무서움까지 있었다. 모두 엉성하게 뼈만 남은 동생들이 반가워하는 것도 시들하였다.

작은갑은 수줍은 맘에 아내가 어디 갔는가를 물어 볼 용기는 없었다.

"어디 앓지나 않었니?"

"아이구, 겨울에 손발이 언다던데."

"글쎄,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 고생이냐."

이러한 말을 해주는 어머니와 일가, 동네 어른들의 말에 작은갑이는,

"예."

"무얼요."

이러한 마음 없는 대답을 하고 밖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면 아내인가 하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동넷집 아이들이 모여들고 늦도록 홰에 아니 오른 닭들이 끼룩거리고 들어오고 동넷집 개까지 모여들어도 아내의 빛은 안 보였다.

"어따, 시장하겠다. 어디 먹을 게 있나."

하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손수 밥상을 들고 들어와서 작은갑이 앞에 놓는다.

"어디 갔어요?"

하고 작은갑이는 참다못하여 어머니를 향하고 묻는다.

"누구? 응, 네 처?"

하고 어머니는,

"어디 일 갔어. 인제 오겠지."

하고 갑자기 시들한 어조로 변한다.

'죽지는 않았군. 어디로 가지도 않았군.'

하고 작은갑이는 적이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아무렇기로 남편이 삼 년이나 옥에 있다가 돌아온다는데 무슨 일을 갔기에 이렇게 늦도록 아니 오는가 하고 불안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반은 죽고 반만 산 사람 모양으로 아무 말도 없고 아무 표정도 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저녁상을 물려도 아내는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지붕 낮은 방은 벌써 어둡다. 그래도 아내는 안 돌아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뒷설거지를 하고 있고 아버지인 돌모룻집 영감님은 토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작은갑은 화를 내어 마당에서 왔다갔다하다가 부엌을 들여다보며,

"어디 갔소? 이렇게 어둡도록 안 오니?"

하고 수줍은 것 다 제쳐놓고 물었다.

"퍽도 안달을 한다. 산 사람이 오지 않을라구. 그렇게 계집이 보고 싶거든 가보려무나."

하고 어머니는 솥에다 숭늉 바가지를 내동댕이를 치며 어성을 높였다.

"마중 가보렴."

하고 아버지가 작은갑에게 말을 건다.

"어디 갔어요? 날마다 이렇게 늦어요?"

하고 작은갑은 아내를 오래 떠난 남편이 가지는 일종 본능적인 의심을 느꼈다.

"가(그애)레 그래두 돈을 벌어서 우리집에서도 돈을 만져 본단다. 저 홰나뭇집 정근이 학생 첩네 집에 가서 일해 주고 먹고 한 달에 이 원이야. 요새에 그만한 벌이는 있나."

하고 돌모룻집 영감님은 며느리의 하는 일을 변호하였다.

"뭐요?"

하고 작은갑은 눈이 뒤집힘을 깨달았다.

"아, 굶어 죽기어든 그 원수놈의 집에 가서 종 노릇을 해주어요?"

"그래두 한 달에 먹구 스무 냥이 어딘데. 스무 닢을 어디서?"

하고 돌모룻집 영감님은 끙끙 하고 앉았다.

작은갑은 간다온다 말없이 휙 집에서 나왔다.

작 은갑은 정근의 학생 첩의 집이라는 데를 향하여 빨리 걸었다. 그 동안에도 작은갑은 동네 길들이 더러워진 것을 보았다. 가운데가 불룩하던 길이 인제는 가운데가 우묵하게 패였다. 집들도 모두 윤을 잃었다. 숭이가 애써 이뤄 놓았던 동네의 문명을 정근이가 모조리 깨뜨려 버린 것이었다.

작은갑은 황혼 속에 귀신같이 서 있는 한갑이네 집을 보고 우뚝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을 생각하였다. 그것이 모두 다 정근의 소위인 것을 생각하고 이를 갈았다.

작은갑은 한갑의 집을 지나서 보리밭과 삼밭 사이로 등성이를 올랐다. 거기 심겄던 낙엽송이 모두 말라죽은 것을 보았다.

마루터기에 올라서려 할 때에 작은갑은 눈앞에 희끗한 무엇을 보았다. 작은갑은 우뚝 섰다. 그 희끗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작은갑은 길가 풀숲에 납작 엎드렸다. 그래 가지고는 사냥하는 사람 모양으로 가만가만히 기어올라갔다.

두 사람의 안고 섰는 양이 황혼빛에 희미하게, 그러나 윤곽만은 분명하게 하늘을 배경으로 나떴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고 희롱하는 것이 보였다. 작은갑의 사지의 근육은 굳었다. 호흡도 굳었다.

"아이, 고만 놓으셔요."

하는 것은 분명히 작은갑의 아내의 음성이었다.

"내일도 오지?"

하는 것은 정근의 음성이었다.

"그럼요."

"작은갑이가 못 가게 하면 어찌할 테야?"

"아이 노세요. 누가 보는 것 같애."

하고 여자는 몸을 빼어 내려고 애를 썼다.

"흥, 오늘 밤에는 작은갑이허고 오래간만에 정답게 잘 터이지."

하고 정근은 여자를 땅에 앉히려는 태도를 보였다.

"아이, 작은갑이가 보면 어떡허우?"

하고 여자는 애원하였다.

"그깟짓놈 보면 대순가. 내가 주재소에 말 한마디만 하면 그놈 또 징역을 갈걸. 그놈 징역만 가면 우리 같이 살아, 응."

하고 정근은 여자를 번쩍 안아 들어서 땅에 내려놓는다.

"이놈아!"

하고 작은갑은 뛰어 나섰다.

정근은 서너 걸음 달아나다가 작은갑에게 붙들렸다. 작은갑은 정근의 멱살을 잡아서 끌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는 땅에 엎더진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우고 떨고 있었다.

"이놈아!"

하고 작은갑은 한 주먹을 높이 들었다.

"난 잘못한 것 없네."

하고 정근은 한 팔을 들어 작은갑의 주먹을 가리었다.

"내가 다 보았다. 저기 숨어서 내가 다 보았어."

하고 작은갑은 주먹으로 정근의 따귀를 서너 번 연거푸 갈겼다.

"아니, 아이구 아이구."

하고 정근은 작은갑의 주먹을 피하며,

"아니야, 자네가 잘못 보았네, 가만. 아이구 내 말을, 아이구 한마디만 듣게, 아이구, 글쎄 아이구."

"이놈아, 네가 주둥이가 열 개가 있기로 무슨 할 말이 있어. 옳지 인제 내가 네 몸을 죽이고야 말 터이다."

하고 작은갑은 정근을 땅에 자빠뜨려 놓고 타고 올라앉았다.

작은갑과 정근이가 격투를 하는 동안에 작은갑의 처는 둘 중에 한 사람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서 집으로 달려 내려가 시아버지를 보고,

"아버님, 저 큰일났습니다. 둘이 큰 싸움이 났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그 말에 벌써 누가 누구와 무슨 일로 싸우는 지를 알았다. 그리고 영감님은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이 싸운다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 리하여 가까스로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정근은 제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갑은 아버지에게 끌려서 집으로 내려왔다. 영감님은 또 앞에 무슨, 큰, 불길한 일이나 생기지 아니할까 하여 속으로 겁이 나고 '어서 죽어 버려야' 하는 자탄을 발하였다. 영감님은 자기가 못났기 때문에 재산을 못 만들어서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큰소리 못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 보니 작은갑도 목과 낯에 시퍼렇게 피진 곳이 여러 곳이요, 코피가 흘러 적삼 앞자락이 뻘겋게 물이 들었다.

이날 밤에 작은갑의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하려나 하고 겁을 집어먹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애초에는 남편이 자기를 건드리면,

"왜 이래?"

하 고 뿌리쳐서 핀잔을 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정근을 때려눕히고 막 때리는 양을 보고는 겁이 나서 감히 남편에게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작은갑은 밤이 새도록 곁에 아내라는 여자가 있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였다. 작은갑의 아내는 도리어 자존심을 상하는 불쾌감을 느꼈다.

아침에 일찌거니 작은갑은 뿌시시 일어나서 정근의 집을 찾아갔다. 어깨와 옆구리와 아픈 데가 많다.

마당에 화초도 심고 서양 종자 사냥개도 놓고 말도 매고 상당히 부르주아식으로 꾸민 정근의 '학생 첩의 집' 문 밖에 선 작은갑은 짖고 대드는 개를 발을 굴러 위협하며,

"정근이! 정근이."

하고 무거운 어조로 두어 번 불렀다.

"누구셔요?"

하고 건넌방 문을 방싯 열고 내다보는 것이 '여학생 첩'인 모양이었다. 작은갑은 그 여자의 말은 들은체만체하고,

"정근이! 날세, 작은갑이야. 한마디 할 말이 있어서 왔네."

하고 신을 벗고 마루 끝에 올라선다. 이 집은 서울 집 본으로 지었다.

학생 첩이라는 여자는 작은갑이라는 말에 혼비백산하였다.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나 보는 것같이 몸서리를 쳤다.

작은갑은 들어오란 말도 없는 주인의 방에 들어섰다. 일본식 모기장이 앞을 탁 가리었다. 작은갑은 모기장을 한 손으로 움키어쥐어 득 잡아당기어 걷어 버리고 정근이가 누운 곁에 펄썩 앉으며,

"정근이!"

하고 한번 더 크게 불렀다.

정근은 비로소 잠을 깬 것처럼 찌그러진 눈을 떠서 작은갑을 바라보았다. 정근은 도장과 돈 있는 곳을 한번 생각하고 만져 보고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정 근이, 내가 온 것은 다름이 아니야. 자네 한 사람 때문에 허변호사라든지, 백선희 씨라든지, 또 내라든지 아무 죄 없이 징역을 지게 되고, 그뿐 아니라 자네 한 사람 때문에 모처럼 살아가려던 동네가 다 망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곰곰 생각하니까 자네를 죽여 버리는 것이 이 동네를 살리는 일이 될 것 같아. 그래서 자네를 내가 마저 죽여 버리려고 왔네."

"사람 살리우!"

하고 정근은 소리를 치며 일어났다. 그러다가 작은갑의 눈을 보고는 문득 태도가 변하여 작은갑의 앞에 절하는 모양으로 엎드리며,

"살 려 주우. 내가 다 죽을 죄로 잘못했으니 살려 주우. 우리가 앞뒷집에서 자라난 정리를 생각해서 목숨만 살려 주우. 여보, 여보, 이리 와서 인사드리우. 우리 어려서부터 친구가 오셨소. 여보, 애희, 이리 오우. 차라도 만들고. 우선 이리 와서 인사부터 하구."

하고 정근은 반쯤 정신나간 사람 모양으로 허둥댄다. 아홉시가 지나면 주재소장이 들르기로 되었지마는 인제 여섯시도 다 안 되었으니 아홉시까지는 무사히 지내도록 온갖 수단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낸들 사람을 죽이고 싶겠나, 그렇지마는―---"

하고 말하려는 작은갑을 가로막으며,

"그 야 자네가 분하게 생각할 줄도 알아, 그렇지만 그건 오해야. 자네 입옥 후에 자네 아버지가 무얼 좀 도와 달라고 그러시니까, 그때 마침 이 집을 지었고 해서 참, 자네 부인더러 우리집 일을 좀 보살펴 달라고 그랬지. 그게 벌써 삼 년 아닌가. 그 동안에 매삭에 먹고 이 원이라고 정했지마는 돈일세, 옷감일세, 또 양식일세 하고 자네 집에 간 것이 해마다 백 원 어치는 될걸. 허지만 다 아는 처지니까―---그래, 그래 나는 잘못한 게야 있지―---그저 모두 잊구 오해를 풀어 주게. 응, 그럼 자네가 분할 테지, 그럼 오해될 것도 없지. 응, 그저 다 오해야."

작은갑은 정근의 말 뜻을 짐작하느라고 정근의 눈과 입과 손을 눈도 깜짝 아니 하고 바라보다가,

"응, 나도 내 아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닐세. 젊은 며느리를 자네와 같은 색마의 집에 보내는 우리 아버지가 그르지. 또 내 아내가 절개가 곧으면야 누가 무에라기로 까딱 있겠나. 그러니까 나는 내 아내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네.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오지자웅을 알 수 있나. 다만 내가 그 여자의 서방이니까 자네를 죽인 칼로는 그 계집마저 죽일 수밖에 없지. 분통이 터져서 못 견디겠으니까―---그렇지마는 내가 자네를 죽이려는 것은 이 동네를 위해서야. 자네가 삼 년만 더 살아 있다가는 이 동네가 쑥밭이 되고 말 것이요, 삼 년이 되기 전에 자네와 자네 집 식구는 이 동네 사람들의 성난 손에 타 죽거나 맞아 죽거나 찔려 죽거나 할 터이니, 그리 되면 살여울 동네는 온통 쑥밭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말야, 나허구 자네허구 죽어 버리면 이 동네는 산단 말일세. 자네도 죽기는 싫겠지. 나도 죽기는 싫어. 그렇지마는 꼭 자네를 죽이고야 말 테니 그리 알게."

하고 한 손에 들었던 수건뭉치를 탁 털어서 날이 네 치나 되는 일본식 식칼을 내어 든다.

"이 사람, 제발 살려 주게. 이 사람, 작은갑이 제발 살려 주게. 무에든지 자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살려만 주게. 여보, 이리 좀 와요."

하고 정근이가 미닫이를 열어제치려는 것을 작은갑이가 정근의 팔을 꽉 붙들어서 제자리에 앉힌다.

정근은 제 몸의 어느 구석에 칼날이 들어가는 줄만 알고,

"아고고."

하고 눈을 희번덕거린다. 그러다가 작은갑의 손에 들린 칼에 피가 흐르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야 숨을 헐떡거린다.

여학생 첩이 덜덜 떨고 엿듣고 있다가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간다. 주재소로 가려는 것이다.

"오 주재소에 보냈구나. 그렇지만 순사가 오기 전에 너는 벌써 죽었을걸."

하고 작은갑은 칼을 들고 정근에게 대들었다. 정근은,

"여보, 가지 마오! 이리 오오."

하고 학생 첩을 불렀다. 그리고는 더 말도 못 하고 작은갑의 앞에 합장하고 빌었다.

여학생 첩은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돌아 들어왔다. 작은갑의 앞에 엎드려서 빌었다. 말은 못 하고 그저 수없이 절을 하였다.

"이놈, 너는 법률밖에는 무서운 것이 없는 줄 아니? 세상에는 법률보다 더 무서운 것도 있다."

하고 작은갑은 을렀다.

"응 알았네, 알았어. 내 자네 하라는 대로 함세. 저 종이하고 내 만년필하고 가져와. 자 불러요, 내 쓸 테니. 무에라고든지 자네가 쓰라는 대로 쓸 테니. 자 그 칼은 좀 놓아요. 내가 이거 손이 떨려서 어디."

하고 정근은 종이를 앞에 놓고 붓을 든다. 작은갑은 잠깐 주저하더니,

"그래 써라. 허숭과 협동조합을 모함한 것은 전연 무근한 것을 네가 지어내인 것이지? 내 말을 받아 써!"

정근이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 쓴다.

"인제 내가 물은 말에 네 대답을 써라, 털끝만치도 속이면 안 돼!"

하고 작은갑은 칼을 흔든다.

"그렇소."

하고 정근이가 답을 쓴다.

"왜 무근한 소리를 했어?"

"협동조합이 생기기 때문에 영업에 방해가 되고 또 허숭 씨가 동민의 존경을 받는 것이 미워서 그랬소."

하고 정근은 똑바로 쓴다.

"허숭을 감옥에 보낸 뒤에 고리대금과 부정수단으로 모은 돈이 얼마나 되나?"

하고 작은갑이가 묻는다.

"한 오륙만 원 되오."

"그만만 되어?"

"아니, 실상 그밖에 안 되네. 게서 더 될 게 있나?"

하고 정근은 입으로 대답한다.

"지금 동민에게 지운 채권은 얼마나 되고."

"일만 한 팔천 원 되오."

"그 나머지는 다 청산하고?"

"그렇소. 더러는 부동산을 사는 형식을 취하고 더러는 강제집행을 하여서 다 청산을 하였네."

"고대로 써!"

정근은 그 말을 쓴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그 일만 팔천 원 채권은 포기하고 그 동안에 모은 육만 원에서 절반 삼만 원은 동네 교육기금으로, 또 절반 삼만 원은 협동조합기금으로 내어놓는다는 표를 쓰게."

"이 사람, 그렇게 다 내놓으면 나는 무얼 쓰고 사나?"

"자네는 본래 재산도 있고 또 협동조합을 하거든 거기 일 보고 월급 받지."

정근은 작은갑이가 시키는 대로 삼만 원은 동네의 교육자금으로 삼만 원은 식산자금으로 살여울 동네에 기부한다는 표를 쓰고, 연월일 씨명을 쓰고 도장을 찍고 증인으로는 학생 첩이 도장을 찍고 또 작은갑이가 도장을 찍었다.

작은갑이는 이러한 일이 어떻게 하면 법률상 효과가 생기는지를 잘 몰랐다. 다만 도장 한번 찍은 것이 오늘날 법률에는 면하지 못할 책임을 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다.

정근은 자기가 비록 이렇게 증서를 쓰고 도장을 찍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협박으로 된 것이라는 한마디면 이 일이 뒤집혀질 것을 잘 안다.

작은갑은 정근이가 쓴 표를 받아서 집어넣고 칼을 수건에 싸서 조끼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서 정근의 손을 잡으면서 친구다운 태도로,

"여보게, 자네가 정말 이 표대로만 하면야 이 동네에서 자네네 부자 생사당 짓고 동상 해 세우지 않겠나. 그리 되면 자네네 집도 잘 살고 동네도 잘살지 않겠나. 꼭 이 약속대로 하여 주게."

하고 손을 잡아 흔들었다.

정 근은 작은갑의 태도에 놀랐다. 첫째로 작은갑이가 칼을 들고 저를 죽이러 온 것은 아내에게 대한 분풀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아내와 정근과의 간통을 이유로 돈이나 달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대해서 정근은 논이나 여남은 마지기 주기로 결심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작은갑은 이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비치지 아니하였다. 그의 요구는 자초지종으로 순전히 동네를 위한 것이었다. 살여울 동네를 위한 것이었다. 정근에게는 이런 일상은 상상할 수 없는 의외의 일이었다. 자기 같으면 이런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돈 몇천 원 떼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삼만 원으로 조합자금을 삼고 삼만 원으로 교육기관을 세우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도 났다.

"그럼 자네는 무고죄로 나를 고발하지는 않겠나?"

하고 정근은 작은갑에게 다졌다.

"자네가 지금 약속한 일만 한다면야 고발이라니 말이 되나. 내가 자네 집 심부름을 해주어도 싫지 않지."

"또 내가 자네 부인과―---아무 일도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혹시 오해로라도 말야―---그런 일을 문제로 만들지 않겠나."

"자네가 지금 약속한 일만 한다면야 절대로 그런 일은 없지."

"고마우이. 그럼, 내 약속대로 함세. 나도 사람 아닌가. 나도 오늘 자네 정성에 감격했네. 저를 잊고 동네를 생각하는 그 의사적 풍도에 감격했네."

하고 정근은 겨우 떨던 몸이 진정되고 또 파랗던 입술에 핏기가 돌며 손을 내어밀어 작은갑의 손을 청하였다. 작은갑은 쾌하게 손을 내밀어 정근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자 네가 만일 약속대로 아니 하는 날이면 이 칼은 언제나 자네를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네. 오늘 동네를 모아서 동네에 이 일을 발표하세. 좋은 일이란 마음 난 때에 해버려야 하는 것이야. 그럼, 내 가서 일들 다 나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을 유치원집에 잠깐 모아 놓겠네, 자네가 모이란다고 자네 심부름으로."

하고 작은갑은 일어나서 정근의 집에서 나왔다. 정근은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작은갑은 동네 집집에 다니며 정근의 뜻을 대강 말하고 모두 유치원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반신반의로 어리둥절하였다. 천하에 돈밖에 모르는 정근이가 무슨 흉계를 피우는 것인가 하면서도 유치원으로 모였다.

한 시간이 다 못 하여 작은갑은 다시 정근의 집으로 왔다. 정근은 바로 밥술을 놓고 있었다.

"다들 모였네. 모두 칭송이 자자하이."

"좀 앉게."

하고 정근은 어쩔 줄 모르는 듯이 작은갑을 바라보았다.

정근은 두루마기를 떼어 입고 모자를 쓰고 작은갑을 따라 나섰다.

유 치원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영양불량으로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다리들도 가늘었다. 사흘을 더 살 수가 없을 것같이 참혹하였다. 모인 사람 중에는 아침을 굶은 사람도 있었다. 만일 오늘도 정근이가 좁쌀 창고를 열지 아니하면 자기네끼리 모여서 창고를 깨뜨리고 꺼내 먹자는 의논까지도 있었다. 눈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굶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들 들어가십시다."

하고 작은갑은 사람들을 방으로 들이몰았다. 사람들은 정근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사 년 만에 처음으로 모이는 모임이다. 숭이가 이 동네에 있을 때에는 가끔 동네 일을 의논하느라고 모였으나 숭이가 잡혀간 뒤로는 한 번도 모여 본 일이 없었다.

유치원은 벽이 떨어지고 비가 새고 먼지가 켜켜이 앉았건마는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였다. 선희는 어제 감옥에서 돌아오는 길로 이 모양을 보고 울었다.

작은갑은 사람들이 다 자리에 정돈하기를 기다려서 사회자석에서 일어섰다. 그 곁에는 주재소에서 감시하러 온 경관이 둘이나 정모를 쓴 채로 앉아 있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하고 작은갑은 입을 열었다. 동네 아이들도 무슨 구경이나 났는가 하고 기웃기웃 들여다보았다. 머리들이 자라고 때가 끼고 모두 귀신같이 되어 버린 아이들이다. 숭이와 선희가 있을 때에는 아이들은 이렇지 아니하였다.

"유정근 선생이."

하고 작은갑은 뒤에 앉힌 정근을 바라보며,

"우리 살여울 동네를 위하셔서 돈 육만 원을 내어놓으시기로 하셨습니다. 삼만 원은 교육자금으로, 삼만 원은 협동조합자금으로 육만 원을 내어놓으시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사람을 부르셔서 이렇게 자필로 증서를 쓰셨습니다."

하고 정근이가 손수 쓴 증서를 낭독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보인 뒤에,

"그 뿐 아니라 우리 살여울 동네 사람에게 지운 빚 일만 육천여 원을 모두 탕감해 주시기로 하고, 여기 이렇게 표지를 다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회가 끝난 뒤에 각각 나오셔서 우리 유정근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유정근 선생이 그 동안에 우리 동네에서 원망을 받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우리는 그 불쾌한 묵은 기억을 다 달내물에 띄워 내려보내고 오늘부터 새로이 우리 은인이요 우리 동네에 은인인 유정근 선생을 새로 맞게 되었습니다. 유정근 선생은."

하고 다른 종잇조각을 꺼내며,

"우 리 지도자 허숭 선생에게 미안한 일을 하셨다는 것과 또 백선희 선생과 맹한갑 군에게도 미안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에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기쁘게 이 불쾌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십시다. 허숭 선생이 앞으로 이태 동안 더 옥중의 고초를 보시더라도 유정근 선생이 이런 고마우신 크신 일을 하셨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서 유정근 선생에 고맙다는 뜻을 표하십시다."

하고 손을 드니 모인 사람들이 다 일제히 일어난다.

"원,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노인도 있었다.

"다들 앉으십시오."

하고 작은갑은 정근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하라는 뜻을 표한다.

정근은 일어나 읍하고,

"나 는 그 동안 지은 죄가 많습니다. 첫째로 옳은 사람들을 모함했고 그 밖에도 지은 죄가 많습니다. 나는 작은갑 군 때문에 눈을 떴습니다. 작은갑 군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건마는 작은갑 군은 나를 용서하였습니다. 작은갑 군은 내게는 재생지은을 주신 이입니다. 동네 여러 어른들께도 지은 죄가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내가 철이 안 나서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로부터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 살여울 동네를 위해서 힘쓰고자 합니다. 우리 살여울 동네가 조선에 제일 넉넉하고 살기 좋고 문명한 동네가 되도록 있는 힘을 다하려고 합니다."

하고 정근은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키느라고 잠깐 말을 끊었다.

정근은 눈물을 삼키고 나서,

"저는 이제 여러분 앞에 자백합니다. 첫째로 유순은 애매하였습니다. 허숭 군이 미워서 허숭 군을 잡느라고 내가 한갑에게 없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유순을 죽인 것은 이놈입니다."

하고 제 가슴을 가리키며,

"그 리고 허숭 군이나 한갑이나 백선희 씨나 여기 계신 작은갑 씨나 다 애매합니다. 나는 처음 일본서 돌아와서 허숭이가 동네에서 채를 잡은 것을 보고 불쾌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집이 허숭이 때문에 못 살게 된다고 생각하고 허숭 씨를 미워했습니다. 옳은 사람을 모함한 나는 소인입니다. 죄인입니다. 열 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한 죄인입니다. 만일 허숭 씨나 한갑 씨가 경찰에서나 검사국에서나 예심정에서나 공판에서나 내 말을 하였다 하면 그이들은 다 무사하고 나는 무고죄로 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숭 씨는 일절 그러한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몹쓸놈은 그것을 다행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양심은 있어서 자나깨나 괴로웠습니다. 순이가 밤마다 꿈에 나를 원망했습니다. 순이는 내 열촌 누이가 아닙니까. 나는 이제 모든 죄를 자백합니다. 나는 작은갑 씨에게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가 무슨 죄인 것은 말하지 아니하겠습니다마는 죽어도 마땅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작은갑 씨는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나는 내 모든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잡혀가서 징역을 져도 좋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마음에 편하겠습니다. 나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죄만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모든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여러 어른께서 나를 때리시든지 죽이시든지 맘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백 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합니다. 만일 목숨이 남으면 나는 살여울 동네를 위해서 허숭 군이 하던 일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 많은 놈이라 무슨 낯을 들고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하고 정근은 울음에 소리가 막힌다.

입석한 경관들은 서로 돌아보며 눈을 꿈적거린다. 청중들도 모두 복잡한 감정에 잠겨 있었다. 정근은 눈물을 씻으며,

"지금 작은갑 씨가 말씀한 것은 다 내 뜻입니다."

하고 더 말할 수가 없이 감정이 혼란하여 밖으로 나가 버린다.

방에서는,

"유정근이 만세."

하고 외치는 소리가 세 번 들렸다.

극도로 흥분한 정근은 거의 본정신을 잃은 듯하였다. 그는 주재소에 자현한다고, 자현해서 허숭의 죄를 없이한다고 주장하였다. 작은갑은 굳이 만류하여 숭의 집으로 끌고 왔다. 정근은 정선과 선희를 보고,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하고 일본 무사 모양으로 마루에 엎드렸다.

작은갑은 정선과 선희에게 대하여 정근이가 심기일전한 전말을 대강 말하였다. 그리고 동네를 위하여 돈 육만 원을 내어놓고 일만 육천여 원의 채권을 포기하였단 말을 하였다.

정 근은 눈물 섞어 숭과 순이와의 관계는 자기가 다 지어냈다는 것과, 숭과 선희와 관계에 대한 악선전도 다 자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과, 숭이가 자기의 죄를 다 알면서도 법정에서 한마디도 발설치 아니하였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자기는 경찰에 자현하여 숭과 선희와 한갑이와 순이와 작은갑이의 애매한 것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정선과 선희는 정근의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위로하였다. 정근은 미친 듯이 흥분하여 스스로 억제할 바를 몰랐다.

정근은 이러한 큰 결심을 한 이튿날 ○○형무소에 허숭을 면회하였다. 허숭은 더운 감방에서 그물을 뜨고 앉았다가 유정근이라는 사람이 면회를 청한다 하여 일변 놀라고 일변 의아하면서 간수에게 끌려 나갔다.

정근은 숭의 얼굴이 나타나는 맡에,

"도무지 면목이 없네. 오늘 나는 자네에게 사죄를 하고 앞으로 해나갈 일을 의논하러 왔네."

하고 단도직입으로 온 뜻을 말하였다.

숭은 대답할 바를 몰라서 다만 물끄러미 정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모든 죄를 다 깨달았네. 그리고 동네 사람들헌테 자백을 했네. 인제 자네허구 한갑이헌테만 자백하면 마지막일세."

하고 그 동안 모은 돈 육만 원을 산업기금과 교육기금으로 살여울을 위하여 내어놓기로 하였다는 말과 남은 채권 일만 육천여 원을 탕감했단 말을 하고,

"이 런 것으로 내 죄가 탕감되리라고는 믿지 않네. 나는 검사국에 자현해서 자네가 무죄한 것을 변명할 결심도 가지고 있네마는 그렇게 한다고 꼭 자네가 무죄가 될는지가 의문이야. 그래서 똑바로 말이지, 나는 세상에 있어서 자네가 나올 때까지 자네가 하던 일을 해보려고 하네. 나는 그것이 자네 뜻인 줄 아네, 안 그런가."

숭은 아직도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한다. 도무지 이것은 믿기지 아니하는 일이다. 정근이가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놀려먹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자네가 내 말을 안 믿으리. 그렇지마는 나는 자네를 미워하고 적으로 알아서 없애 버리려고 하다가 필경은 자네의 인격에 감복한 것일세. 나는 새사람이 되려네. 자네를 따르는 충실한 제자가 되려네. 나를 믿어 주게."

하고 정근은 두 손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경 찰에서나 법정에서나 자네가 나만 끌어넣으면 죄는 내가 지고 자네는 무사하였을 것을 나는 아네. 그렇지만 자네는 나를 끌어넣지 아니하고 애매한 죄를 달게 지지 않았나. 나도 사람일세. 사람의 마음이 있는지라 삼사 년이 지난 오늘날에라도 제 죄를 깨달은 것이 아닌가. 이 사람, 나를 믿어 주게. 이처럼 말을 하여도 나를 못 믿나?"

하고 정근은 또 한번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정근 군, 고마우이. 나는 인제 자네를 믿네. 기쁘이. 살여울 하나만 잘살게 되면야 나는 옥에서 죽어도 한이 없네."

하고 숭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어서 할 말만 해!"

하고 간수가 재촉을 한다.

"네, 할 말을 하지요."

하고 정근은,

"그러면 내가 이 육만 원 돈을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할 것을 일러 주게. 무엇이든지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하려네."

숭은 이윽히 생각하다가,

"서울 가서 한민교 선생을 찾아보고 그 어른을 살여울로 모셔 오게. 그래서 그 어른이 하라는 대로만 하게. 자네 한선생 알지?"

"응, 말은 들었지. 뵈온 일은 없어."

"한선생이 가장 조선을 잘 아시네. 조선에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가장 잘 아시는 이가 그 어른이니, 그 어른께 만사를 의논하게."

하고 숭은 한선생을 생각하였다.

"그 어른이 살여울에 오시겠나?"

"오시겠지."

"그럼, 내가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가겠네. 가서 자네 말을 하고 한 선생을 만나겠네."

하고 잠시 더 할 말을 생각하다가,

"자네 부인, 따님, 다 무고하시니 염려 말게."

하고는 간수의 재촉으로 숭의 얼굴은 가리어졌다.

정근은 처음 경험하는 감동을 가지고 물러나왔다.

다 방골 현의사는 일찍 저녁을 먹고 등교의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쏘이고 있다. 현의사는 사오 년 전보다는 뚱뚱해졌다. 그러나 남자도 모르고 아이도 아니 낳아 본 그는 중년 여성의 태가 있는 중에도 처녀와 같은 태가 어딘지 모르게 있었다.

현의사는 옛날 모양으로 탁자 위에 즐겨하는 울릉차 곱뿌를 놓은 채로 요새에 와서 맛을 붙인 웨스트민스터를 피우고 있었다.

"길아, 누구 오셨나 보다."

하고 현의사는 고개를 들었다.

소 리에 응하여 뛰어나오는 사람은 열육칠 세나 되어 보이는 흰 양복 입은 미소년이었다. 계집애는 낫살만 먹으면 서방 얻어 가는 것이 밉다고 하여 사내아이를 두는 것이 요새 현의사다. 길이란 이 사내아이의 이름이다. 현의사는 이 아이를 고르는 것을 마치 미술품을 고르는 것 모양으로 살빛을 보고 골격을 보고 손발을 보고 눈, 코, 입을 보고 음성을 보고 별의별 것을 다 보아서 고른 것이다.

"네?"

하고 길이가 현의사의 곁에 오는 것을 현의사는 담배 내를 길의 낯에 푸 하고 뿜으며,

"귀먹었니? 대문에서 누가 찾지 않어?"

하고 길의 볼기짝을 때린다.

"오, 또 이박사가 왔군."

하고 길은 댄스하는 보조로 걸어나간다. 과연 이박사였다.

"굿 이브닝 닥터."

하고 이박사는 단장을 팔에 걸고 파나마를 벗어 번쩍 높이 들고.

"글쎄, 왜 순례 같은 여자를 버려?"

하고 현의사는 누운 채로,

"어때? 인제야 이건영이가 심순례 신들은 매겠소? 흥, 앙아리 보살이 내렸지. 백주에 그런 여자를 마대. 그리구는 그게 뭐야. 이 계집애 저 계집애, 나중에는 남의 유부녀 궁둥이까지 따라댕기니. 흥, 어때?"

하고 피에드네(서양식 아웅)를 해보인다.

"닥터, 이건 너무하지 않으시우?"

하고 이박사는 싱글싱글 웃는다.

이 박사도 그 동안에 몸이 나고 얼굴에는 마치 술꾼이나 건달에게서 보는 뻔질뻔질한 빛이 돈다. 오륙 년 전의 얌전하던 빛 점잖던 빛은 다 없어졌다. 이박사는 신발 신은 채로 한 발을 마루에 올려 짚고 탁자 위에 놓인 웨스트민스터갑을 집으며,

"글쎄, 여자는 여자답게 가늣한 궐련을 먹는 게지, 웨스트민스턴 다 무에야."

하고 한 개를 꺼내어 입에 문다.

"흥, 무슨 상관야. 오늘도 어디서 한잔 자셨구려?"

하고 현의사는 담뱃불을 이박사에게 준다.

"인생에 실패한 나 같은 사람이 술이 아니면 무엇으로 사오? 당신이나 내나 다 일생에 패군지장이거든."

하고 맛나는 듯이 담배를 깊이 들여 빤다.

"당신이나 패군지장이지, 내가 왜 패군지장이오? 나는 당신네 같은 패군지장을 구경하고 사는 사람이라나."

"길아!"

하고 이박사는 길의 손을 잡아 끌며,

"나는 네가 부럽고나."

하고 싱글싱글 웃는다.

"왜요?"

하고 길은 무슨 장단을 맞추어 몸을 우쭐거린다.

"너는 이런 주인아씨 같으신 미인 곁에 밤낮 있으니까 부럽지 아니하냐, 하하하하."

하고 길의 어깨를 툭 치고는 현의사를 향하여,

"자, 나서우!"

하고 재촉한다.

"어디를?"

"음악회."

"심순례 독주회?"

"슈어. 이렇게 표 두 장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고 표를 내보인다.

"그래, 순례 음악회에를 갈 테야?"

하고 현의사는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면서 몸을 반쯤 일으킨다.

"왜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영광스러운 독주회를 한다는데 내가 안 가고 누가 가요?"

하고 이박사는 뽐낸다.

"사 랑하는 사람? 흥, 이박사야 치마만 두른 사람이면 다 사랑하지? 빗자루에 치마를 둘러도 사랑할걸. 흥, 그 싸구려 사랑 대관절 이박사가 미국서 돌아온 후로 모두 몇 여자나 사랑하셨소? 몇 여자나 버려 주고, 몇 여자에게서나 핀둥이를 맞았소?"

"이거 왜 이러시우?"

하고 이박사는 약간 무안한 빛을 보인다.

"이 거 왜 이러시우가 아니오. 인제는 사람 구실을 좀 해보란 말이오. 그러다가 인제 텍사스에서까지 쫓겨나지 말구. 오, 참 거기 타이피스트를 또 사랑한답디다그려. 괜히 그러지 말고 다 늙어 죽기 전에 다만 며칠 만이라두 사람 구실을 좀 해보아요. 세상에 왔다가 한 번도 사람 구실을 못 해보고 간대서야 섭섭하지 않소?"

하고 현의사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볼일 다 보았다는 듯이 또 드러눕는다.

이 박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박사의 마음에도 괴로움이 생긴 것이었다. 인제는 교회도 떠나 버렸다. 점잖은 친구들도 다 자기를 받자 하지 아니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다 자기를 피하게 되었다. 잡지들이 자기를 놀려먹던 기사조차 인제는 써주지 아니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적막한 일이었다.

그 러나 이제 다시 교회에를 다닌댔자 어느 천년에 신용을 회복할 것 같지도 아니하고, 무슨 사회적 활동을 하려 하여도 인제는 거들떠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돈은 벌어지느냐 하면 그리할 밑천도 재주도 없었다. 텍사스에서 돈 백 원이나 받는대야 그걸로는 저축이 될 성도 싶지 아니하였다. 게다가 인제는 나이도 사십이 가까워 오지 아니하는가. 세상에서 버려진 몸은 생각할수록 적막하였다.

현 의사는 만날 적마다 이박사를 놀려먹고 공박하였다. 그러나 현 의사밖에는 그렇게라도 자기를 아랑곳해 주는 이도 없었다. 가끔 현의사에게 아픈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적막해지면 이박사의 발은 현의사의 집으로 향하였다. 처음에는 현의사를 제 것을 만들어 보려고 따라다녔으나 벌써 그 야심을 버린 지는 오래다. 이박사가 보기에 현의사도 하늘에 핀 꽃이었다. 그래도 현의사를 아니 따를 수는 없었다.

현 의사도 귀찮게 생각은 하면서도 이박사를 영접하였다. 영접한다는 것보다도 오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올 때마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희롱하는 모양으로 희롱하였다. 아무러한 말을 하여도 성도 안 내는 것이 좋은 장난감이었다. 유시호 불쌍하게 생각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에는 한번 악수를 하여 주었다. 이박사는 현의사의 손을 한번 잡으면 울 것같이 감격하였다. 현의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내어주면 이박사는 여왕의 손을 잡으려는 신하 모양으로 허리를 굽히고 그 손을 잡았다. 어떤 때에 그 손등에 키스를 하다가 뺨을 얻어맞은 일도 있었다.

'저것은 무엇에 소용이 될꾸.'

하고 가끔 현의사는 이박사를 보고 생각하였다.

"Good for nothing(무용지물)."

하고 입 밖에 내어 말한 일도 있었다.

이박사 자신도 무용지물인 것을 의식하는 모양이었다.

"영어나 좀 가르쳐 보구려."

이렇게 현의사는 이박사의 소용처를 찾아도 보았다.

"허허허허."

하고 이박사는 웃을 뿐이었다.

공 회당은 상당히 만원이었다. 순례의 모교의 서양 사람 선생들도 보이고, 그의 동창인 아름다운 여자들도 떼를 지어서 순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순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딸의 영광을 보려고 맨 앞줄에 와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앉아 있었다. 순례의 어머니는 아직 젊지마는 그 아버지는 벌써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사 년이나 만리타국에 떠나 있던 딸이 돌아온 지가 한 달이 넘었지마는 아직도 밤에 문득 잠을 깨어서는 딸이 멀리 미국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박사와 현의사도 보였다. 시계의 바늘이 여덟시를 가리키고도 이삼 분 더 지난 때에 주최자인 조선음악회를 대표하여 이전의 A교수가 작은 몸에 연미복을 입고 단상에 나타났다. 일동은 박수하였다.

A교수는 이렇게 심순례를 소개하였다.

"이 사람은 우리 조선의 새 천재 한 분을 소개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압니다."

하고 심순례의 약력과 그가 어떻게 아름다운 인격을 가지고 또 어떻게 큰 재주를 가지면서도 힘써 공부한가를 열 있는 말로 설명한 뒤에 A교수는 한층 소리에 힘을 주어서,

"그 러나 이상에 말씀한 모든 아름다운 것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심순례 씨가 가졌습니다. 그것은 조선적인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의 성격이 조선 사람의―---조선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구비하셨거니와 이것은 심순례 씨의 예술에서 가장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연주할 곡조 중에 '아아 그 나라'라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슬픔'은 심순례 씨 자신의 작곡이라 말할 것도 없지마는 서양 사람이 지은 곡조를 치더라도 그의 손에서는 조선의 소리가 우러나옵니다. 한 말씀으로 하면 심순례 씨는 서양 악기인 피아노의 건반에서 순전한 조선의 소리를 내는 예술가입니다. 심순례 씨야말로 진실로 조선의 딸이요, 조선의 예술가라고 할 것입니다."

하고 심순례를 불러내었다.

집 이 떠나갈 듯한 박장 소리에 낯을 붉히고 나서는 심순례는 오 년 전보다 약간 몸이 여위어서 호리호리하였다. 모시 적삼에 모시 치마를 입고 그리 굽 높지 아니한 까만 구두를 신었다. 어느 모로 보든지 미국에 다녀온 현대여성 같지는 아니하고 A교수가 소개한 바와 같이 조선의 딸다운 얌전과 겸손과 수삽이 있었다.

순례는 은사 되는 A교수의 열렬한 칭찬과 청중의 박수갈채에 잠깐 지나쳐 흥분함을 깨달았다. 눈이 아뜩아뜩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순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마치 기도하는 사람 모양으로 일이 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앉았었다.

다음 순간에 순례의 손은 들렸다. 열 손가락이 하얀 건반 위로 날았다. 방 안은 고요하였다. 마치 아무것도 없고 순례가 치는 소리만이 유일한 존재인 것 같았다.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일어났다.

순례가 뒷방에 들어오면 순례를 딸이라고 하는 홀 부인은 순례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순례를 사랑하는 동창들도 순례를 안고 기뻐하였다.

'아아 그 나라'가 연주될 때에는 청중은 거의 숨이 막힐 듯하였다. 그 곡조가 끝나도 청중은 박장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하였다. 그러다가 순례가 무대로부터 사라진 뒤에야 끝없이 박수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러나 순례는 울려 오는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음에 누를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거의 기절할 것같이 기운이 빠짐을 깨달았다. 동창들은 부채를 부쳐 주고 땀을 씻어 주었다. 그러나 순례의 가슴에는 명상할 수 없는 고적과 슬픔이 있었다.

한선생이 들어와서 순례의 손을 잡고 칭찬의 말을 할 때에 순례는 더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내어서 울었다.

마지막은 '사랑하는 이의 슬픔'이다. 이것은 순례가 이박사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에 지은 것을 미국에서 몇 군데 수정한 것이다. 순례는 이 곡조를 아니 하려 하였으나 홀 부인이 굳이 권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넣은 것이었다.

순례는 마지막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곡조는 끝났다. 아아 어떻게 애틋한 선율이냐. 청중은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순례가 피아노에서 일어서려 할 때에 청중으로서 꽃다발을 들고 무대에 뛰어올라 순례 앞을 막아 서는 이가 있었다. 그것은 이박사였다.

이박사는 꽃다발을 순례의 앞에 내어밀었다. 순례는 무심히 꽃을 받아 들고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다음 순간에 순례는 꽃다발을 무대 위에 내어던지고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비틀비틀 쓰러지려 하였다.

쓰러지려는 순례는 A교수의 팔에 안기어 뒷방으로 옮김이 되었다. 청중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 중에서,

"저놈 끌어내려라. 저 색마 이건영이놈을 끌어내려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영이가 무대에서 갈팡질팡할 때에 무대 밑으로서 어떤 노인이 뛰어올라와 이건영의 멱살을 붙들고 따귀를 수없이 갈겼다. 그 노인은 순례의 아버지였다.

"이놈, 오늘 내 손에 죽어라!"

하고 노인은 소리를 질렀다. 몇 사람이 뛰어나와서 노인을 안고 이건영을 붙들어 내렸다. 임석 경관이 나서서 청중에게는 해산을 명하고 노인과 이건영을 붙들었다.

순례는 현의사의 손에 치료를 받았다. 십 분 후에는 회장은 고요하게 되고 뒷방에만 순례의 어머니와 홀 부인과 현의사와 한선생과 사랑하는 친구 몇 사람이 말없이 순례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그놈이, 그놈이 어쩌면 또 나선단 말이냐. 그 마귀놈이, 그 죽일놈이."

하고 순례의 어머니는 울었다.

이십 분이나 지나서 순례는 정신을 차렸다. 현의사 안동하여 자동차를 타고 순례는 집으로 돌아왔다.

순례는 아무 일도 아니 생긴 것처럼 한잠을 잤다. 그리고 잠이 깬 때에는 대청의 시계가 두시를 치고 창에는 달이 환하게 비치었다.

순례는 일어나 안방에 들리지 않게 가만히 창을 열었다. 하늘에는 여기저기 구름 조각이 떠 있으나 여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순례는 문지방에 몸을 기대어 멀거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방에서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순례가 정신없이 잠든 동안에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나온 것이다.

"그 놈이 내 딸 속인 놈이오. 그놈이 여러 계집애를 버려 준 놈이오. 그놈이 세상에 나와 돌아댕기면 내 딸이 언제 또 그 변을 당할는지 모르고, 또 남의 딸을 얼마나 더 버려 줄는지 모르니 그놈을 꼭 잡아다가 가두고 내놓지를 말아 주시오."

하고 순례의 아버지는 경관에게 순박한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는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말을 듣고 놓여 나왔다. 나와서는 딸이 편안히 잠들어 자는 것을 들여다보고 내외가 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막 잠이 든 것이었다.

"그놈을 죽여 버리고 마는 것을."

하고 아버지는 잠꼬대로 중얼거렸다.

순 례에게 준 이건영의 타격은 순례에게보다도 순례의 아버지에게 더 아픈 영향을 주었다. 딸을 사랑하는 그는 이 사건 때문에 십 년은 더 늙은 듯하였다. 시체 사람들 모양으로 입 밖에 내어서 말은 아니 하지마는 가끔 비분한 생각이 치밀어서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리해서 이 슬픔은 순례의 아버지의 성격을 침울하게 만들어 버렸다.

순 례는 달을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바라보던 달이요, 이건영과 약혼한 뒤에 그 속에 건영의 얼굴을 그리며 바라보던 달이었다. 어디서든 달을 보면 순례는 건영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순례가 이박사와 단둘이 외출하기를 허락받은 첫날 밤에 남산공원에서 달을 가리키고 산을 가리켜 서로 사랑이 변치 말기를 맹약한 까닭이었다. 그때에 이박사는 순례의 귀에 입을 대고 영어로,

"저 달이 빛나는 동안, 저 하늘이 있는 동안!"

하고 세 번 맹세를 주었다.

그때에 순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순 례는 미국에 있는 동안이나 미국을 떠나서 조선에 올 때에도 이건영에게 대한 생각을 떼어 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달을 떼어 버릴 수가 없는 것과 같이 그 생각을 떼어 버리기가 어려웠다. 반드시 그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건영의 인격에 대하여서는 침을 뱉고 싶게 불쾌한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래도 이모저모로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그의 미운 모양이 순례를 더 괴롭게 하였다.

'내가 왜 이렇게 약해.'

하고 순례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튿날, 한선생이 순례의 집을 찾아왔다. 한선생은 순례의 부모를 향하여 어젯밤에 생긴 일을 위로하고, 순례를 향하여,

"너 여행 좀 안 해보련? 지금까지는 세계에 가장 돈 많고 문명했다는 미국에 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세계에 가장 가난하고 문명 못 한 조선 시골 구경을 좀 해보지."

하였다.

어 젯밤에 일어난 일로 순례에 관한 소문은 반드시 높을 것이었다. 새학기부터 모교에서 교편을 들기로 대개 내정이 되었지마는, 어젯밤 사건이 그 일에 어떠한 방향 전환을 줄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례도 좀 서울을 떠나고 싶고 순례의 부모도 딸이 잠시 어디 소풍을 하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한선생을 따라 살여울에 가보기로 곧 작정이 되었다.

서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순례의 가슴이 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살여울 가면 정선이도 있고 선희도 있지. 너 알지?"

하고 한선생은 순례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럼요."

하고 순례도 오래 못 만난 정선과 선희를 만날 것을 기뻐하였다.

"그래라. 선생님 따라가서 구경이나 잘 해라. 선생님 말 일기지 말구."

하고 순례 어머니는 어린애 타이르듯 말하였다.

밤 열시 이십분, 경성역을 떠나는 북행에는 한민교를 전송하는 사오십 명 남녀가 있었다. 그 전송객 중에는 한은 선생도 있고 홀 부인도 있고 정서분도 있고 현의사도 있었다.

한선생은 안동포로 지은 쓰메에리 양복에 인제는 전조선에 몇 개 안 남은 총모자를 썼다. 한선생은 평생에 소원이던 농촌경영, 농촌진흥운동의 기회를 잡은 것이 기뻤다. 그는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유정근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이이가 유정근 씨요. 전재산을 내어놓아서 농촌운동을 하시는 이인데, 조선에 이런 독지가가 열 분만 나기를 바라오."

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한은 선생의 손을 잡고는 한선생은 유정근을 소개한 뒤에,

"유정근 씨 말씀을 들으니까 정선이가 광당포 치마 적삼을 입고 아주 농부가 다 되었답니다."

하였다.

따르르 하고 차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나자 사람들은 한선생과 마지막 악수를 교환하였다. 맨 나중 한선생이 차에 오르려 할 때에 어떤 농립모 쓰고 고의적삼만 입은 청년 하나가 나와서,

"선생님!"

하고 한선생을 불렀다. 한선생은 발을 멈추고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갑진이올시다."

하고 농모를 벗었다.

"어, 갑진 군인가."

하고 한선생은 놀라며 갑진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갑진의 차림차림을 훑어보았다.

"어서 오릅시오. 저도 신촌까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 한선생의 뒤를 따랐다. 전송하던 사람들도 갑진이라는 말에 한 번 놀라고 그 초초한 행색에 두 번 놀랐다.

차는 떠났다. 한선생은 삼등차의 승강대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일일이 전송하는 인사에 대답하였다. 순례는 한선생의 어깨 뒤에 숨어서 아무쪼록 사람의 눈을 피하였다.

"이리 와 앉게."

하고 한선생은 갑진에게 자리를 권하며,

"그런데, 대관절 그 동안 어디 가 있었나. 이삼 년 동안 도무지 소식을 못 들었네그려."

하고 갑진의 볕에 그을은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지요. 저는 그 동안 검불랑 가 농사했습니다."

"검불랑?"

하고 한선생은 더욱 놀란다.

"네, 평강 검불랑 말씀야요. 허숭 군의 예심 결정서를 보고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검불랑으로 갔습니다. 가서 만 이 년간 농부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번 소비조합 물건을 사러 서울을 왔던 길인데, 선생님이 살여울로 가신다기에 잠깐이라도 만나 뵐 양으로 퍽 주저하다가 나왔습니다."

하고 갑진은 유쾌하게 웃었다.

"어째 내 집엘 안 왔나?"

하고 한선생은 갑진의 수목 고의 입은 무릎을 친다.

"아아직 찾아뵈올 때가 못 되니깐요. 아직 사람이 다 안 되었으니깐요. 사람이 될 만하거든 찾아뵈오려고 했지요, 하하. 도무지 꿈같습니다, 선생님."

하고 웃는다. 그 소리내어 웃는 모양만이 갑진의 옛 모습이었다.

차가 신촌에 서려 할 때에 갑진은 한선생과 악수하며,

"선생님, 제일 선생님 말씀을 안 듣던 저도 필경 선생님을 따르느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명년쯤 한번 검불랑도 와주십시오."

하고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