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라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다수의 우리 국민은 현재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를 당하여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례가 끝난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문행렬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애도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상징하는 그의 삶이 어려운 시기를 사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특히 우리가 반세기 이상 온갖 고난과 희생을 치른 끝에 성취한 민주적 가치가 죽음 앞에 섰다는 위기의식의 소산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현 정권이 출범한 지 반 년도 못 되어, 지난 시대에 대한 과도한 부정, 공공기관 인사의 현저한 독식, 기득권층 중심의 경제 정책과 그로 말미암은 서민 생계의 심각한 위축, 남북화해의 붕괴와 일부 강대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적 외교로 인한 국민적 자존심의 상실 등에 말미암은 총체적 난국을 경험하면서 나라의 앞날을 절실하게 우려하였다. 그런 우려는 때마침 닥친 미국산 쇠고기의 조기수입과 관련한 졸속적인 협상과 거기에서 드러난 잘못에 대한 은폐 기도가 촉발시킨 전국적, 범국민적 촛불시위로 폭발됨으로써 입증되었다.
촛불로 나타난 민심을 현 정권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로 갈 전환점으로 삼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정권은 잠시 반성하는 듯이 호도하더니, 사법부,검찰,경찰을 시녀로 삼고 집회 및 표현의 자유의 탄압, 언론권력의 장악 등을 방어벽으로 삼으면서, 평준화 교육체제의 붕괴, 4대강 살리기로 포장한 한반도 대운하의 추진, 재벌의 언론장악과 거대신문의 방송겸업 추진 등 국민의 여론과 평등을 도외시한 비민주적이고 수구적인 각종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에 따라 '경제 살리기'를 구호로 집권한 정권다운 경제정책은 찾을 수 없는 한편으로, 비정규직의 해소나 지방분권화 같은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회정책은 실종되었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같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마저 유린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들은 일련의 강압책에 국민들이 위축된 틈을 정권안보 유지의 기회로 착각하여, 무분별하게 검찰력을 사주하여 전임 대통령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사하고, 증거와 유죄성이 불분명한 흠집을 사이비 언론을 통하여 유포시켰다. 이는 실정법 상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정치적 보복이라는 치졸한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며 그 결과로 전임 대통령의 처참한 죽음이라는 비극을 초래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국민 대다수를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회개시키지는 못하였다. 조문을 방해하고 화합을 외치는 적반하장이야말로 그의 죽음만큼이나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의 앞날이 사람다운 삶과 나라다운 모양을 쉽사리 갖추기 어려울 만큼 위기에 처한 데 데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한다. 특히 그의 죽음을 통하여 확인된 인권의 존중, 권력의 중립성, 언론의 공정성, 표현과 시위의 자유 등 그가 진전시켰던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에 대한 가치가 봉착한 난관을 우려한다. 이에 현 정권이 전임 대통령의 비극이 가져다 준 진정한 의미의 국민적 통합의 계기를 제대로 받아들여, 참으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로 국가를 운영할 전환점으로 삼기를 바라며, 특별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즉시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범한 과오를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라.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수사의 책임자를 처벌하라.
1. 대통령은 각종 악법의 제·개정을 중단하고, 사법부의 독립성과 검찰·경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며, 언론 장악을 기도하지 말라.
1. 정부는 건전한 정치사회 세력을 적대시하는 망동을 중단하고 포용적 정치를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분열을 더 이상 조장하지 말라. 특히 용산 참사의 피해자,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및 시위 관련 수감자 등 억울한 피해자에 대하여 획기적 구제와 사면을 단행하라.
1. 정부는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양한 언론 매체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현 집권세력은 이러한 요구를 성실히 수용하여 국민적 화합을 이루고 나라의 난국을 타개함으로써, 정권의 성공과 국가의 발전을 아울러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 이러한 요구를 외면한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따름임을 경고해 둔다.
2009. 6. 4.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신라대학교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