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양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최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남북한 정부의 극단적 대립,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심각한 위축, 국토의 파괴적 개발 등은 대다수 국민들의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식인으로서 더 이상의 침묵은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우리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현 정부를 방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21세기 시대정신의 첫째는 소통과 참여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소통과 참여의 정신과 맞서고 있다. 자유로운 인터넷 의사소통에 재갈을 물리고,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집회를 탄압하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면서 공중을 억압하려 하고 있다. 또한 공권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자의적으로 남용하여 전직 국가원수의 비극적 죽음을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수없이 많은 투쟁을 통해 국민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해온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다.
21세기 시대정신의 둘째는 화해와 평화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 들어 남북한의 화해와 신뢰를 대결과 불신이 밀어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를 일삼고 있어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남북한 관계 뿐 아니라 계층 간의 갈등도 깊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한 세기 동안에 걸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층간의 반목이 심각한 상태인데, 현 정부는 역사적으로 퇴장하는 신자유주의를 붙들고 계층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더불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으며 영세사업자들은 재정적 파탄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1월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재개발 사업 때문에 발생한 용산참사는 5개월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시대정신의 셋째는 생명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과잉 생산과 소비가 인류의 생존공간인 지구의 환경을 크게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자각이 높아지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에서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자연의 훼손이 결코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한반도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대규모 토건사업에 집착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현 정부는 대운하사업의 이름이 바뀌고 다소 축소된 형태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소통과 참여, 화해와 평화, 그리고 생명이라는 시대정신은 곧 다수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존중하고 다음의 사항들을 실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ㅡ. 언론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
ㅡ. 북한과 냉전적 대결을 중지하고 평화적 관계를 복원하라.
ㅡ. 특권층 편향의 정책을 중단하고 국민의 통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라.
ㅡ.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즉시 중단하고 친환경적 정책을 추진하라.
ㅡ. 시대착오적 권위주의적 통치를 즉시 중단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회복하라.
2009년 6월 10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한양대학교 교수 일동
■ 명단
강성태, 고보형, 김명수, 김상수, 김성제, 김영환, 김용수(국제문화대학), 김용헌, 김현식, 김호영, 김홍균, 김희근, 나명수, 박규태, 박성호, 박진호, 박찬승, 방승주, 서경석, 손태원, 신동민, 신영전, 심영희, 오영근, 오혜근, 오희국, 위행복, 유성호, 윤상인, 윤영민, 이도흠, 이병관, 이상민(사회과학대학), 이세종, 이은규, 이인호, 이재복, 이현우, 이훈, 임지현, 전성우, 전형필, 정진태, 정태수, 정호경, 주재범, 차혜영, 최윤형, 최종현, 최태현, 탁선미, 한충수, 한홍열, 허선, 황성기(이상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