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홍익대학교 교수 시국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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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나라가 갈라지고 역사는 후퇴하고 있으며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은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절차보다는 결과만이 중시되고 공존보다는 승리만이 찬양받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함께 숨 쉬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공동체의 건설은 뒷전으로 밀리고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개발지상주의의 철 지난 망령이 다시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그 먹구름 아래서 자유, 민주, 정의는 사회적 금기어로 전락한 채 서서히 질식사 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동안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묵묵히 대학을 지켜 왔다. 교육과 연구라는 교수의 본분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본래적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수들의 올곧은 목소리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북한의 지령에 의한 행동으로까지 매도되는 최근의 형국을 보면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만을 고수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자유스러워야 할 언론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명시적으로 통제받고 있다.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사생활은 공권력에 의해 선택적으로 침해받고 있다. 허가제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 제21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자유는 사실상 허가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법률에 의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는 상위 권력의 부적절한 재판 개입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훼손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민주주의의 훼손이란 말인가?

둘째,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축소되고 사회적 강자에 대한 특권이 강화되면서 사회 전체의 통합이 급속하게 와해되고 있다. 성과지상주의와 속전속결의 단선적 사고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철거민과 전경들이 잃지 않아도 될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삭감하면서 부유층이 내는 세금은 깎아주는 정책이 경제 활성화의 미명하에 버젓하게 시행되고 있다. 북한의 안보상 위협을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면서도 재벌기업의 이익을 위해 군용비행장의 활주로를 변경하고 있다. 이것이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의 모습인가?

셋째,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집권 초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한 때 우리 국민의 자랑스러운 통합의 상징이었던 서울광장은 시대착오적인 통제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우에 따라 엄청난 환경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대운하 사업은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름만 변경된 채 추진되고 있다. 국민은 공권력에 의해 있어야 할 곳에서 내몰리고, 국민의 목소리는 헛되이 허공만을 맴돌고 있다. 이것이 진정 국민을 섬기는 정부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제 이명박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국민을 섬기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무너져 내린 민주적 법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공권력은 정부만을 바라보지 말고, 국민을 존중하고 섬기는 힘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국민 모두에게 고통의 분담을 호소할 수 있는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지배와 강제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섬김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국가적 난국을 극복하고 정권의 안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정도임을 현 정부는 깨닫기 바란다.

2009년 6월 15일

민주화와 사회통합을 바라는 홍익대학교 서명 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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