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군을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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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일][편집]

H군이 죽은지가 벌써 넉 달이 되었다. 첫여름에 죽어서 벌써 늦은 가을이 되었으니, 그의 무덤에 났던 풀도 지금은 서리를 맞아 말라버렸을 것이다.

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H군의 애인 C는 서리 맞아 마른 풀잎사귀를 뜯고 애통하고 있을 것이다. 장래 많은 청춘의 산 같은 희망과 꽃 같은 애인을 두고 가는 H, 홀로 살아 남아 외로운 무덤을 지키고 우는 C, 아아 이 무슨 비참한 일인고.

二[이][편집]

나는 이 불쌍한 청년, 나의 심히 사랑하는 친구, 조선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믿고 바람이 많던 H의 일을 회억해 보자. 오늘은 그가 죽은지 일백 스무째 날이니, 그의 눈물과 피로 된 짧은 역사를 회억해 보자. 나의 슬픔은 아직도 새로워서 그를 생각할 때에 그의 역사의 두서를 찾을 여유가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회억해 보자.

이렇게 그에게 대한 회억을 적어 놓는 것이 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것도 같고, 또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는 귀한 슬픔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도 같다. 내가 만일 오래 살기를 하나님께서 허하신다 하면, 내가 백발을 날릴 때에 등불 밑에 이 책을 펴 놓고 가버린 친구의 옛 기억을 울기도 할 것이다.

또 나 밖에도 세상에는 그를 알고 사랑하던 이가 있을 것이다. 별로 이름도 나지 아니한 그, 세상에 널리 버물리지도 아니한 그, 이 사람 저 사람 교제도 많이 하지 아니한 그는 아는 사람도 많지는 아니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이 있고, 어려서부터 같이 놀던 동무들이 있고, 그보다도 그를 생명같이 사랑하다가 그를 무릎 위에 누이고 임종하고, 그리고는 차마 그의 고향과 분묘를 떠나지 못하여 묘하에서 일생을 보 내려는 C가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와 같이 그를 생각하고 울려니와, 이 책이 또한 그들의 귀한 슬픔을 보존하는 그릇이 되면 얼마나 다행일까.

H여! 그대가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난지 일백 이십 일 되는 날에 나는 그 대를 제사하는 표로 이 회억을 쓰노라.

三[삼][편집]

이월 어느 눈 많이 오는 날 밤에 H가 나를 찾았다. 그것이 재작년. 십여 년 만에 그를 만나는 나의 기쁨이 어떠하였을까! 그의 반가움은 얼마나 하였을까. 우리는 만나서 서로 안고 서로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말이 막혔었다.

어떻게 억하여 말이 나오랴.

H가 안주로서 그날 밤에 나를 찾으마고 한 편지를 받고, 나는 유리창을 때리는 눈 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발자취를 알아들을 양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알아들을 줄로 믿던 까닭이다. 터벅터벅 발자취 소리가 날 때에 나는 누구냐고 묻지도 아니하고, 대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문빗장 빼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난 줄을 직각했다고 하였다. 그처럼 그는 나를 그리워하고 나는 그를 그리워하였다.

H가 열 일곱 살 적에 T역에서 대륙의 방랑의 길을 떠나는 나와 작별한 후 로 만 팔 개년을 지난 그 날에는 벌써 이십 오의 청년이었다. 그의 아버지 모양으로 하얀 그의 얼굴에는 새까만 구레나룻을 깎아버린 자국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몹시 까맣고 빛나고 항상 어린애의 웃음을 담은 눈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진실로 그는 영원한 어린애였다. 그가 구주 탄광의 광부로, 동경의 막벌잇군으로, 대의사 집 서생으로 표랑한다 하더라도, 아무러한 인생의 악풍파도 그대의 영혼에서 어린애 같은 이 천진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비록 팔년 만에 만나건마는, 옛날 O학교 기숙사에서 보던 그와 꼭 같은 그를 나는 보았다.

H도 나를 그렇게 보았던가. 나도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었던가. 그렇게 무섭고 그렇게 큰 수없는 풍파 속에 부대껴 난 내가 역시 O학교에서 그대의 교사로 있을 때와 같이 어린애 같던가. 아니, 나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 영혼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고난과 죄악의 보기 흉한 낙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대의 순결한 영의 눈은 반드시 그것을 보았을 것이언마는, 그대는 옛 정을 생각하고 천사의 웃음으로 나를 안아 준 것이다. 그것이 말 할 수 없이 고마웠다.

四[사][편집]

겨우 피차에 손을 놓고 각각 자리에 앉자말자, H는 심히 말하기 어려운 듯이,

『그 사람이 선생님을 뵈러 오기로 했어요.』

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 사람?』

하고 나는 얼른 생각이 아니 났으나 곧,

『응 그이?』

하고 안주서 부친 H의 편지를 생각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

『 선생님, 이 여자는 미인도 아니요, 재원도 아닙니다. 다만 천진한 여자 입니다. 같은 학교에서 반년 동안 교사로 있으면서 교제하는 중에 저는 그 를 존경하게 되었읍니다. 「거짓이 없음」, 이것은 조선 사람 중에 보배가 아닙니까. 저는 이것을 사랑합니다. 선생님도 그를 사랑하실 줄 믿습니다.

그도 선생님을 뵈옵기를 원합니다. ……저는 속히 그를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싶읍니다.』

나는 이 편지를 보고 속으로 「응」하고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은 일이 있었다. 이 사람이 C다. C가 오늘 저녁에 나를 찾아온다.

『그래, 그이가 내 집을 아시오?』

한즉, H는,

『녜, 안대요.』하였다.

『몇 시에 오시기로 했소?』

한즉, 그는,

『일곱 시에 오라고 했어요. ……일곱 시에는 꼭 올 것입니다.』

하고 H가 시계를 본다. 나도 시계를 보았다. 일곱시다.

나는 그를 맞으러 대문 밖으로 나갔다. 황토마루 큰 길에는 눈이 하얗게 깔리고, 주먹 같은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데, 다니는 사람도 없고, 전차조차 어디 멀리서 웅웅할 뿐이다. 비각께를 바라보노라니, 과연 웬 그림자가 사뿐사뿐 걸어온다. 여자다.

『C씨셔요?』 한즉,

『K 선생님이시어요?』한다.

이 모양으로 C는 내 집에 들어왔다. 그때에 H는 일어나 목례만 하였고, C는 잠깐 허리를 굽혔다.

전등 불에 가로 비친 C는 H군의 말과 같이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정한 얼굴의 윤곽에 속눈썹 긴 큼직한 눈이 심히 천진하게 또 다정스럽게 보였다.

H는 애써 C에게 말을 붙이나, C는 정답게 대답을 아니하고 부득이하여 외마디 대답을 퍽도 쌀쌀하게 하였다.

〈응, 쌀쌀한 사람이로군.〉 나는 이렇게 판단하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나는, 〈아마 H는 따르고, C는 쫓기는 모양인가.〉 이렇게 의심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눈치를 보고 앉았는 것보다도 서로 만날 기회가 드문 애인들에게 조용한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하여, 나는 과일 사 온다는 것을 핑계로 두 사람만을 방에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까운 과일 집을 다 버리고 야주갯골목까지 들어가서 아무쪼록 시간을 오래 허비하여서 귤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들어와 본즉, 두 사람의 얼굴에는 별로 흥분된 빛도 없고, 아까와 같이 평연냉연하였다.

그리고 귤을 먹고 열 시 반이나 되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두 사람은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자리에 누워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고 H가 그의 애인으로 말미암아 행복되기를 심축하였다.

五[오][편집]

그리고는 H는 전주 S학교로 교사로 가고, 그의 애인 C는 동경 여자 대학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는 자주 편지도 없었다. 그러나, 〈아마 애인끼리 통신하기에 바빠서 그런 게지.〉 하고 나는 심상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 사월에 H는 내게 이러한 편지를 하였다.

『…… 선생님, 저는 삼사일래로 무섭게 토혈을 하였읍니다. 월요일 둘째 시간에 역사를 가르치다가 갑자기 토혈이 되어서, 곧 돌아와 누워서부터는 여태껏 토혈을 하다가 오늘이야 좀 그쳤읍니다. 토혈한 분량이 너무 많아서 안색이 다 창백하여지었읍니다. 동경 있을 때에도 한 번 토혈을 한 일이 있었으나, 삼사년내로 별 일이 없더니, 도로 더치었읍니다. 그러나 인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일부터는 또 교수를 하렵니다. 아마 속에 있던 부정한 피를 다 쏟아버린 것 같읍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끗게 하시려고 그러 신 것입니다. 선생님! 저를 위하여서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저는 죽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저를 부르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이제부터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이전 O학교에서 절더러 「너는 이 찬 세상을 덥게 하는 자가 되라」하시었읍니다. 저는 일찍이 교훈을 잊어 본 일이 없읍니다. 그런데 아직 저는 세상을 덥히는 일을 하지 못하였는데, 세상은 더욱더욱 식어갑니다. 저는 이 몸과 맘을 다 태워서 이 세상을 덥히고야 죽겠읍니다. 저는 항상 이 뜻으로 기도를 드리거니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저는 건강한 몸이 되어서 오는 하기 휴가에는 선생을 찾겠읍니다.

몸이 좀 노곤하여 이만 그치오며, C에게는 잘 있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선생님, C를 믿고 사랑해 줍시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놀랐다. 그리고 이월에 왔을 때에 그가 좀 숨이 차 하고 가끔 외마디 기침을 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러 나 그 뒤에는 별로 근심될 만한 기별도 없기로 아마 관계치 아니한가보다 하고 안심을 하고, 하기 휴가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六[육][편집]

그러나 웬 일이지 하기 휴가가 되어도 H는 서울로 오지 아니하고, 또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는 나도 어느 시골로 가서 팔월 말에 나 돌아와 본즉, 그동안에 와 쌓인 편지축에 H에게서,

『 선생님, 저는 볼일이 있어서 지금 부산으로 갑니다. 어찌되면 부산이나 마산에서 여름을 지내고 팔월 말경이니 선생님을 뵈올까 합니다.』

한 극히 간단하고 무미하게 써서 대전 일부인 맞은 엽서 한 장과, 또,

『 선생님! 저는 좀 괴로운 일도 있고 또 몸도 곤하여서 바로 집으로 내려 갑니다. 남대문 역에서 H.』

라 한 더욱 까닭 알 수 없는 엽서 한 장이 와 있다. 일부인을 검사해 본즉, 대전에서 한 것은 칠월 이십일이요, 남대문에서 한 것은 칠월 이십 오일이다. 그런즉 부산 가서 겨우 삼일을 유하여서, T군 그의 집으로 간 모양이다. 대관절 부산은  무엇하러 갔으며, 갔으면 또 왜 T군으로 곧 돌아갔으며, 맘은 왜 괴로운고? 나는 C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마 C를 부산으로 불렀다가 C가 정한 기일에 오지 아니하므로, 그는 화를 내고 T군으로 달아난 것이다. 그렇다 하면, H와 C와 사이에는 무슨 흔단이 생긴 것이나 아닌가, 또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병이 더친 것이 아닌가, 나는 근심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T군으로 편지를 하려 할 때에 H에게서 또 편지 한 장이 왔다 ─.

『 선생님, 저는 어머님 모시고 어제 옥호동으로 약을 먹으로 왔읍니다. 어머님이 그리워서 서울도 안 들르고 뛰어 내려와서, 또 잠시라도 나 혼자만 어머님을 모시어 보고 싶어서 옥호동으로 모시고 왔읍니다. 선생님, 진실로 어머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저는 어머님의 사랑에 웁니다. 제가 맘이 약해진 것입니까. 몸은 혈담은 좀 보이나 대단치는 아니합니다. 저는 신앙으로 살랍니다. 결코 결코 죽지 아니합니다.』

이 편지를 본즉 더욱 실련의 기색이 있다. 나는 전후를 종합하여 실련이로구나 하고 단정하였다.

그럴 때에 C에게서 엽서 한 장이 왔다.

『 선생님, 생은 동경으로서 재작일에 입경하였나이다. 노곤으로 배방치 못 하옵나이다. H씨의 주소를 아시옵거든, 표기처로 하교하여 주시옵기를 바라 나이다.』하였다.

『재작일 입경?』

방학이 다 지난 끝에 어째 왔을까. 나는 몸소 방문도 하고 싶었으나, 도리어 좋지 아니할 듯하여, 엽서로 H가 T군으로 간 것과 아직 옥호동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뜻을 답장하였다. 그리고는 또 아무 소식도 없이 가을이 되었다.

七[칠][편집]

가을도 다 지나고, 겨울도 지나고, 금년 이월경에 전주에서 H의 편지가 왔다 ─.

『 선생님!

너무 오래 막혔읍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허물치 아니하시고 용서하실 줄을 믿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그처럼 깊이 사랑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제 가 세상에 온 후에 어머님을 제하고는 선생님만큼 저를 사랑해 주는 이가 없는 줄을 믿습니다. 어머님의 사랑과 선생님의 사랑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선생님의 사랑이 제게는 더욱 귀한 사랑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모양으로 사람을 믿으려고 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요 딸인 사람을 믿으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아무리 하여도 사람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사람은 거짓됩니다. 적더라도 조선 사람은 거짓 덩어리입니다. 선생님께서 조선 민족이 부활할 길이 거짓을 버림에 있다고 하시었거니와 인제야 저도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까지에 얼마나 세상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고 조롱을 받았겠읍니까. 그러나 저는 모든 허물을 제게만 돌리고 더욱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려 하였읍니다. 세상이 지금까지에 얼마나 저를 속였겠습 니까. 그러나 저는 그들을 참으로 대하려 하였읍니다. 제가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참된 용기를 줍소서 하고 하나님께 빌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읍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 사람을 더 사랑할 수가 없이 되었고, 더 믿을 수가 없이 되었읍니다. 저는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의심하게 되었읍니다. 선생님 ── 저는 하나님까지도 미워하고 의심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잘못이지요? 역시 저는 사람들 ── 저 불쌍한 동포들을 사랑하고 믿어야 하지요? 그래라 하시면 또 그리하도록 힘쓰겠읍니다. 또 하나님께 빌고, 또 십자가에 피를 흘리고 달린 예수를 바라보고 울겠읍니다.

그러나 선생님! 너무 과하지 아니합니까. 이것은 제약한 영이 견디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닙니까.

저는 아직까지 선생님께 고백을 아니하고 있었읍니다. 고백 아니하는 것이 죄다, 어서 말씀을 드리자 드리자 하면서도 수줍어서 말씀을 못 드리고 있었읍니다. 제가 말씀 아니 드리더라도, 선생님께서는 벌써 아실 줄은 믿었읍니다.

C는 제 애인이올시다. 저는 안주서부터 C를 사랑하였습니다. 처음 볼 때에 벌써 C의 천진한 것이 맘에 들었고, 날이 지날수록 제가 C를 연모하는 맘이 깊었습니다. C도 저를 사랑하는 듯하였읍니다. 그는 제 의복 빨래까지도 하여 주었고, 저와 악수까지도 하였읍니다. 그러다가 제가 안주를 떠날 때에는 피차에 뜻을 말하고, 피차에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으로 가고, 저는 이곳으로 왔읍니다. 제가 토혈을 하여가면서도, 매주에 삼십 시간이나 노력한 것은 그의 학비를 위함이었읍니다. (그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고아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위하여 토혈은커녕 목숨을 내어버리는 것조차 아깝지 아 니합니다. 만일 제가 죽어버리더라도, 그가 살아 남으면 제 뜻을 이어서 일을 하리라, 나는 죽더라도 너만 잘 되어라, 이렇게 생각하여 왔읍니다.

선생님, 그렇지마는, 요새에 그의 마음은 변하였읍니다. 그는 가난하고 병신인 저를 헌신짝처럼 차내어버렸읍니다. 지금 제가 병이 중한 줄을 알면서도, 한 달이 넘도록 통신이 그쳤고, 또 전하는 말을 듣건댄, 그는 어떤 남자와 상애의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그를 믿으려고 애를 썼읍니다. 전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딸로 그를 믿어 볼 양으로 이를 악물고 애를 썼으나, 인제는 애를 더 쓸 애도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여기까지 쓰고도 대여섯 줄을 잘 알아보지 못하리만큼 지어버렸다. 전후의 어세로 보건대, 아마 그 지어내버린 것은 C를 원망하는 말인 듯하다. 흥분김에 혹독한 말을 썼다가, 그의 신사적 기독교인적 양심이 그를 금하여 지어버린 모양이다. 편지에 쓰기만 금하는 것이 아니요, 아마 그가 심중에 생각하기도 억지로 참았을 것이다. 밉기는 미우면서도 안 미워하자, 의심은 하면서도 믿자, 하고 애쓰는 H의 심정이 나타나는 듯하여 몹시 가련하였다.

지어내버린 대목부터는 흥분이 버썩 줄어지었다 ──.

『 선생님! 또 기침이 나고 토혈이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죽지 아니하겠읍니다. 제가 큰일을 이루어 나를 배반한 제 계집과 나를 속이는 제 세상으로 하여금 내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려 죄 사하기를 빌기까지 저는 결코 결코 죽지 아니하렵니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는 H를 위안할 도리를 찾아야 하겠고, 둘째로는, C의 의향을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곧 H에게 간단하고 힘있는 답장을 썼다 ──.

『사랑하는 아 우여!

군은 지금 시험을 받는 중이다. 신앙에 굳게 서라! 비록 C가 군을 배반하 였다 하면 C를 차버리라. 군이 생명같이 사랑할 가치 없는 자를 위하여 왜 오뇌하는가. 「가련한 가치 없는 여자여 회개하라」하고 일갈해버리라. 그 만한 일에 실망 낙담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고 인성을 의심하는 것은 군답지 못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학교를 떠나 나에게로 오라. 우선 휴양할 도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굳세라. 믿음에 굳세라. 군아!』

이렇게 격렬한 편지를 하였다.

그랬더니 사흘 만에 곧 답장이 왔다.

『 선생님!

주신 글을 받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었읍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세게 서기로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곧 오라고 하시었으나, 학기도 일 개월 밖에 아니 남았으니, 지금 떠나면 가련한 학생들은 어찌합니까. 저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못 떠나 역두에서 우신 것과 같이, 저도 그들을 위하여 웁니다. 저는 이 어린 조선의 아들들을 위하여 결핵균이 먹고 남긴 생명을 바치려 하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학기를 마치고야 가겠읍니다.

저는 믿음에 굳게 섰으니, 염려 마십시오.』

이 답장을 받고 잠시는 안심하였으나, 다시 생각하여 본즉, 이것은, H군의 일시적 결심이 아니면 억지로 한 결심일 것이다. 실련에 쓰린 상처가 그렇게 용이하게 하릴 리가 없을 것이다. H는 피를 토하며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피를 토하며 배반한 C를 위하여 애통할 것이다. 이렇다 하면, H 의 심신은 날로 쇠약해 갈 것이요, 그의 생명은 결핵균과 실련의 비애로 조석에 먹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 이 책을 취했다. C의 의향을 알아보아서, C와 H와의 애를 회복하도록 하자. 이것이 H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작정하고, 나는 백방으로 C의 근상을 염탐한 결과 이러한 보도를 얻었다 ──.

C는 H에게서 학비를 얻은 관계로 H에게 대하여서 사랑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기실은 달리 애인이 있다. 있어도 하나만 아니다. C는 음분한 여자가 되어서 여러 사람을 경쟁을 붙이어 놓고는 그것을 구경하기를 기뻐한다. 동경에서 C의 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요새에 C의 어여쁜 눈매에 홀려 다니는 청년이 누구누구 사오인은 되고, 그중에서 P부에 부호로 유명한 S가 가장 C의 환심을 산 모양이다. 처음에 C가 영어를 배운다 하여 S의 하숙에 출입하였으나, 지금은 일주일의 반 이상은 S의 하숙에서 유숙한다. 그래서 허위로라도 H를 사랑하던 체하던 것까지 끊어버리고, 인제는 아주 S의 애첩이 되어버렸다.

이 모양으로 보고 온 듯이 소상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뿐인가, C가,

『내가 그까짓 가난뱅이 폐병장이를 사랑해요? 제가 공연히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지.』

하고 H를 비웃더란 말과, 그 말을 할 때의 어조와 표정까지를 전한다. 그러고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은 C도 모를 뿐더러, H도 모르는 사람이요, 나하고는 상당히 친하고 또 믿을 만도 한 사람이다. 그러고 본즉, 나는 그 말을 아니 믿으려 하여도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실망하였다. H와 C와의 애를 복구해 보려던 계획은 수포에 돌아가고 말았다. 인제는 그와 정반대 되는 계책을 쓸 수밖에 없다 하였다.

그것은 H로 하여금 아주 C를 발길로 차내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마 내가 C에게 관하여 들은 바를 고대로 H에게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어찌나 하고 얼마 동안을 보냈다.

그러할 즈음에 H에게서 또 편지 한 장이 왔다. 이번에는 퍽 침착한 어조로,

『 선생님!』

저는 의지의 사람으로 스스로 믿었더니, 제 역시 사람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마음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 변한 것인가 하여 스스로 기뻐합니다.

저는 C를 미워하고 의심하는 것이 잘못임을 깨달았읍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C를 의심합니까. 어떻게 생명을 바치어서 사랑하던 사람을 의심합니까.

C를 의심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 인성을 의심하는 것 이요,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할 일입니까 ──. 이것은 저로는 못할 일입니다.

아직도 C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읍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일주 이차씩 정다운 편지를 쓰기로 하였읍니다. 그래서 그 첫 편지를 지금 막 써 놓았읍니다. 그 편지 속에는 지금까지 제가 그를 의심하고 미워한 것을 자백하고, 그 죄를 사하여 주기를 청하였읍니다. 또 C는 반드시 용서하여 주리라고 믿습니다 ──. 사랑은 용서가 아닙니까.

저는 처음 작정과 같이 C를 사랑하겠읍니다. C를 믿겠읍니다. C야 나에게 어찌하든지 저는 여전히 뜨거운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겠읍니다. 설혹 영원히 C를 만나지도 못하고, 영원히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일이 있다 하더 라도, 저는 C를 옛날의 C로 믿고 사랑하려 합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는 슬픕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거룩한 기쁨이 있어야 옳을 것이언마는, 그래도 슬픕니다 ──. 가슴이 쓰립니다.

이제는 토혈은 그쳤읍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약간 신열이 나고 허한이 나고 또 가끔 객담에 피가 섞입니다. 아무리 믿음에 굳세자 하여도, 제 생명이 오래 믿겨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안 죽읍니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오래 살아서 세상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이 많읍니다.』

이 편지를 읽고는, 나는 부끄러운 맘이 생겼다. 과연 H는 갸륵하다. 과연 H는 예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고, 내가 그에게 C를 차 내버리라고 편지한 것이 심히 부끄러웠다. 하물며 내 조사한 C의 근상을 H에게 알리려는 생각은 그만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H의 이 태도를 찬양하면서도, 웬 일인지 그 뜻을 편지로 말할 용기도 없어서,  이내 답장을 아니하 고 말았다.

八[팔][편집]

그러나 H가 C에게 대하여 그렇게 높은 태도를 가진 것을 보고는, 나는 H에게 대한 근심이 덜려서 비교적 안심을 하고 있었다. 사월 오일경이라고 기억한다. 그날이 공일이든지 아침 좀 늦게 일어나 툇마루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대문 밖에 손님이, 왔다고 하기로 수건으로 낯을 씻으면서 나아가 본즉, H가 빙글빙글 웃고 가죽 가방 하나를 들고 섰다. 어쩌면 이렇게도 변 상이 되었을까. 해쓱한 얼굴에 그 유순한 검은 눈만 커다랗고, 먼지 묻은 검은 세루 양복이 해골에다 걸어 놓은 모양으로 쿠렁쿠렁하게도 어깨에 늘어지었다. 나는 한 팔로 그의 등을 안고,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한참은 말도 못하다가 안마당에 들어온 뒤에야 겨우,

『그런데 웬 일이요?』

하였다. H의 자기의 초췌한 모양을 부끄러워하는 듯이 고개를 숙여 자기의 몸을 돌아보더니,

『방학하고 집에 갔다가 학교에 가는 길입니다. 밤차로 와서 지금 내렸어요.』

하고, 잠시라도 서 있기가 거북한 듯이 중병인이 하는 모양으로 소리도 안 나게 가만히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내 아내는 H의 꼴을 보고는, 그만 눈물이 흘러서 안으로 뛰어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날은 H가 내 집에서 자고, 그 이튿날 전주로 떠난다고 하는 것을 나는 굳게 막았다.

『그게 말이 되오? H군이 인제 그 건강을 가지고 교수를 어떻게 한단 말이 요?』

한즉, 그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제가 분필을 놓는 날이면 저도 먹을 것이 없고, C 도 학비가 끊어지니, 할 수 있읍니까.』

하고 부득부득 간다는 것을, 나는 거의 억지로 하다시피 그의 차표를 빼앗고, A절에 거처할 방 하나를 얻어서 정양하면서, 하루 한 번씩 병원에 들어와 칼슘 주사를 맞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가까스로 그를 붙들기는 하였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볼수록 H의 정경은 실로 가긍하였다. 의사의 말은 이 대로 가면 도저히 여름을 넘길 수가 없다고 단언하거니와, 우리가 보기에는 일 개월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사흘 동안이나 병원에를 다녔으나, 전차를 탈 기운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사를 맞아야 별 효험이 없어요.』

하였고, 자기의 기운이 부치어서 못 다닌다는 말을 아니하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하건마는, 자기는 아직도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이,

『 선생님, 한 일년 휴양하면 건강이 회복되겠지요? 건강만 회복되거든 저 도 동경으로 가렵니다. 동경 가서 C를 한 번 만나렵니다.』

하고 적막한 미소를 띠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슬펐다.

H는 아직도 C에게 대해서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아주 믿느냐 하면 무론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주 잊어버렸느냐 하면 그런 것은 더구나 아니요, 그러면 전주서 한 편지 모양으로 C야 자기를 사랑하거나 말거나 배반하거나 말거나 끝까지 C를 믿고 사랑하는 태도를 계속하느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요, 이 세 가지 심적 상태가 연속적으로 그의 흉중에 내왕하는 모양 같았다. 워낙 말이 적은 그는 근래에 더욱 말이 적어지고, 잠시 내 집에 놀러 와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무슨 명상을 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내 아내에게 자기의 심중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아내에게 간접으로 들은 바를 종합하건대, 그는 근일에 C를 원망하는 생각이 점점 깊어지는 듯 하였다. 그는 이런 말까지 하였다고 한다 ──.

『몸이 조금만 건강하여지면, 동경으로 뛰어 건너가서 C를 푹 찔러 죽이고 싶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이를 갈고 여윈 주먹을 불끈 쥐더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에 등에 냉수를 끼얹는 듯하였다. 왜? 어찌면 그 천사와 같은 H의 맘에도 그러한 깊은 원한이 들어갈 수가 있었던가. 「푹 찔러 죽이고 싶도록」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이 날 수가 있을까 하고 일변 놀랍고 일변 슬펐다. 연애란 무서운 것이요, 실련이란 더욱 무서운 것이로구나 하였다.

九[구][편집]

H의 C에게 대한 원한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갔다. 그는 이러한 말도 하였다 ──.

『아무리 토혈을 하니 오라고 해도 안 오고, 병이 위중하다고 두 번 세 번 전보를 놓고 전보환으로 노비까지 부치어도 아니 오고, 못 온단 편지 한 장 없으니, 그런 법이 어디 있읍니까. 그렇더라도 맘이 변한 것이라고는 생각을 아니하였읍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그것이 내가 보내준 노비를 가 지고……응. 내가 아무 때라도 꼭 이 원수를 갚고야 죽을 테야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한 생각을 말라는 말도 아니 나오고, 아주 단념해 버리라는 말도 아니 나오고, 도리어 그의 애끊는 듯하는 말을 더 듣기가 거북하여, 나는 담배를 찾는 체하고 아무쪼록 피하였다. 다만 그의 육체의 생명이 정신의 생명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하나는 결핵균에게 하나는 실련의 원한에게, 먹히어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가 가슴이 죌 뿐이었다. 만일 내가 피를 내어 H를 먹임으로 그의 정신적 생명만이라도 회복할 수가 있다 하면 나는 곧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정, 인정 다 버리고라도 차마 볼 수가 없어서라도 그리하였을 것이다.

이에 우리 부처는 최후의 결심을 하였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름으로 한 번 C를 불러 보는 것이다. 좌커나 우커나 H와 C를 한 번 만나게나 하여 주고야 볼 일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H병 위급 즉래.』

라는 의미로 부처 연명하여 C에게 전보를 놓았다. 그리고는 만일 C가 오기만 하면, 한바탕 눈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하리라 하고 잔뜩 벼르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 전보를 놓은 이튿날 C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는 심히 초췌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다른 인사도 하기 전에,

『H가 여기 와 있어요?』

하고 묻는다. 어떻게 그 어조가 비창한지, 우리는 그에게 대한 미운 마음이 다 스러지고 말았다. 인정이란 미묘한 것이다.

우리가 C를 데리고 H의 숙소로 가려고 할 때에 H가 들어왔다. H와 C는 피차에 허리를 굽히지도 아니하고 한 번 슬쩍 바라보고는 딴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서로 미워하는 모양도 안 보이고, 마치 오랫동안 같이 있어 오던 사람들끼리 밥을 먹고 나서 바람 쐬러 나와 앉은 것 같다. 도리어 그 회견 의 광경이 심히 싱거웠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느라고 방 하나를 내어 주고, 가만히 안방에 앉아서 두 사람이 회견한 결과를 근심하면서,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났으니,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맘을 놓으면서 앉았었다.

두어 시간이나 후에 C가 나왔다. 그의 얼굴은 붉었고, 그의 눈은 울음으로 부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한 듯하였다.

一〇[일공][편집]

C는 K지방 어느 여학교로 직을 구하여 가면서 우리에게 H를 위하여 다한 호의를 감사하였다. 그리고는 H의 치료비를 자기가 언제까지든지 벌어 댈 것을 말하였다. 그는 남자와 같은 결단성과 태연함을 보였다. 나는 의문 중에도 그를 존경하는 생각이 움 돋았다.

그러나 처녀가 남자를 데리고 다닌다는 허물로 그 학교와 교회에서 비방과 모욕을 당하고 쫓겨나왔다. 그리고는 H는 T군 어머니의 집으로 가고, C는 W 지방의 어떤 친척의 집으로 갔다.

그 후에 H가 C를 불러서 C도 H를 따라갔다는 기별을 들었다. 그런 뒤에는 혹은 H의 이름으로, 혹은 C의 이름으로, 혹은 엽서로, 혹은 봉서로 매삭 일 이차씩 통신이 왔고, 통신이 올 때마다 간단한 답장을 하였다.

그 편지 중에는 혹은 뜸뜨기를 시작하였다는 말도 하고, 혹은 용한 한의가 있다 하여 그의 처방으로 한약을 먹기를 시작한다는 말도 있고, 혹 H가 근 일에는 공연히 화를 낸다는 말, 혹은 공연히 슬퍼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서부터 H의 필적은 영 끊어지고 C의 필적으로 편지가 올 뿐이다. 이것은 H의 병이 더욱 중하여진 표다.

그러나 금년 정초에 C가 불의에 우리 집에 왔다. 무섭게 초췌하여 마치 중 병인같이 보인다. 더우기 그 손가락은 뼈만 남았다. 그래서 내 아내는 H의 병이 전염한 것이나 아닌가 하여 진찰하기를 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 어때요?」하고 극히 심상한 일인듯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날마다 윷도 놀고 화투도 놀고 웃고 하면서 어디 교사 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웃고 놀다가도, 동무들이 가고 조용해지면 그는 곧 침울하여지고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신세 타령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그의 천진하고 남자다운 성질이 그에게 많은 오해를 가지어온 것이다. 나는 이번에 C를 대할 때에 그에게 진정으로 지금까지 그를 오해하였던 것을 사죄하였다.

마침내 교원 자리는 구득하지 못하고, C는 하릴없이 W지방 친척의 집으로 가느라고 갔다. 그런지 얼마 후에 C의 필적으로 이러한 편지가 왔다 ──.

『 선생님! 저는 또 H에게로 왔읍니다. 오라고 독촉하는 편지가 와서 또 왔읍니다. H의 병은 점점 더하여 갈 뿐입니다. 어디 기후나 온화한 데로 데리고 가서 한없이 구호나 하고 싶건마는, 그러할 힘도 없거니와, 인제는 문밖에 나갈 수도 없이 되었읍니다. 밤낮 제 손에 매어달려서, 혹은 웃고, 혹은 울고, 혹은 공연한 떼를 쓰고, 잠도 어떤 날은 도무지 안 자다가는, 어떤 날은 종일 잡니다. 그 어머니는 울기만 하시고 생활은 곤란하고 어찌 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만일 제 몸이라도 팔아서 H의 고통을 덜어 줄 길이 있다 하면, 그것이라도 하겠으나, 그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혼자 울기만 합니다.

H는 항상 선생님 말씀을 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할 때마다 매양 눈물을 흘리오며, 선생님과 약속한 일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설어하옵니다. 지금 H 는 잠이 들었읍니다. 정신이 잠이 들었건마는, 목에 담이 걸려서 가끔 얼굴을 찌푸리고 괴로워합니다. 저는 가끔가끔 그 얼굴을 돌아보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를 받고, 간절한 말로 H와 C를 위로하는 답장을 부치었다.

이월도 지나고 삼월도 지났다. C에게서는 가끔 H의 병상을 말하는 간단한 엽서가 왔으나, 밤낮 「병이 더합니다, 오늘은 H가 울고 있읍니다」, 또는 「오늘은 H가 매우 기뻐합니다만 그 기뻐하는 것조차 무슨 조짐 같아서, 슬프고 무서웁니다」, 또는 「오늘은 웬 일인지 온종일 저를 못 견디게 굽니다, 그래서 저는 울었습니다」 이러한 말뿐이요, 기뻐할 소식은 들리지 아 니하였다.

사월에는 내가 북방으로 여행을 하였고 오월에는 여행 때문에 밀린 사무로 눈 코 뜰 사이가 없이 지냈다. 아내에게 물어 본즉, 그동안 한 일 개월 동안에는 C에게서도 아무 기별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근심이 되면서도, 먼저 편지를 하여서 H의 근상을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말하자면, 날마다 H 의 부음을 기다릴 뿐이었었다.

하루는 꿈에, 내가 어느 오랜 절을 보고 비탈길로 내려오는데, 아래로서 H 가 검은 양복 저고리에 검은 소프트해트를 쓰고 기운없이 올라오는 것을 만 나, 평상시에 하던 모양으로 나는 그를 안고 병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즉 H는 평상시에 하던 모양으로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는 H는 그 오랜 절로 흔들흔들 올라가, 단청한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나 혼자 슬퍼하였다 ──. 그러다가 깨어 본즉 꿈인데, 벌써 일어날 때 가 되었다. 나는 아내더러,

『여보, H가 죽었나 보오.』

하고 꿈 이야기를 하고, 아내도,

『글쎄.』

하고 입맛을 다시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느라고 중문을 나서니까, H가 그 전전날에 죽었다는 부고 엽서가 떨어져 있었다. 참 이상도 하다. H군이 죽어 혼이 있 다 하면,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나를 찾았을 것이다. 아마 그의 혼이 차마 그 불행한 이십 육년 동안을 가지고 오던 육체와 사랑으로 울어 주 는 두 여성 ── 그의 어머님과 C ── 를 떠나지 못하여 일주야 동안이나 주저하고 방황하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나는 도로 들어와서 그 엽서를 아내에게 주고, 이런 말을 하였다.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며,

『H보다도 C가 불쌍해요 ── C는 참 드문 여자예요. 열녀지요.』하였다.

이십일이나 지나서 C가 올라왔다. 그의 형용은 마치 죽으려는 사람과 같이 초췌하였다 그의 남성적인 . 활발도 다 어디로 가고, 극히 연약하고 극히 침울하고 세상에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는 우리를 대하자 말은 없이 울고 쓰러지었다.

이때의 C는 사람같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혼인도 아니하고 정식 약혼조차 아니한 애인을 따라 저 시골 구석 빈궁한 농가에 가서 일년 동안이나 그 애인의 혈담과 대소변을 손수 치르고 마침내 자기의 품속에 안고 운명을 보고 온 C는 결코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였다.

우리는 친동생보다도 더 귀엽게 그를 접대하였다. 이렇게 이주일 가량이나 유숙하여서, 그는 그의 짐을 다 가지고 H의 어머니에게로 갔다. 그는 재봉틀도 놓고 농사도 하면서 H의 어머니를 모시고 H의 무덤 곁에서 생을 마치겠다고 한다.

가을은 깊었다. 서울에도 찬바람이 불거든, 북국의 밤은 응당 찰 것이다.

아마 C는 적적한 한옥에서 이때에는 정히 H를 생각하고 울 것이다.

(一九二四十一月[일구이사십일월] 《朝鮮文壇[조선문단]》 第二號[제이호] 所載[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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