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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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편집]

수양이 정부에서 김종서와 충돌을 한 직후에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그 소문은 수양의 사설 고문(私設顧問) 한명회(韓明澮)가 얻어듣고 수양께 재빨리 품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라 종실 대군들이며 정부 당상들의 분경(奔競)을 금합시사고 왕께 계청을 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계청하기는 헌부에서요, 대사헌 기건(大司憲奇虔)이 이 임에 당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흠.』

명회의 보고를 듣고 수양은 머리를 기울이고 생각하였다.

『그러굽쇼. 나으리 이현로(李賢老)가 이것을 대신들에게 건책했다는 물론(勿論)입더이다.』

『글쎄, 이현로도 그 맛 일은 할 위인이지만 좌상 김종서가 발안해서 이현로를 추겨 헌부를 동케 했을걸.』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은 서로 다투어가면서 정치며 시사며에 간섭을 하는 것을 금한다 하는 것이었다. 대군과 정부 당상관들의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이었다. 대군과 정부 당상관들의 분경을 금한다 하나, 정부 당상관까지 낀 것은 대군들만을 상대로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참 목표─상대는 대군들만임이 분명하였다. 당상관 운운하였지만 지금 당상관 중에 「금지 당할 만큼 과격히 분경」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또 대군들 운운하지만 숙행(叔行)이 되는 양녕, 효령 등이며 어린 동생(수양의)들도 대궐에 드나들기는 하지만 「분경」이라고 지목 받을 만한 일도 없고 단지 수양 자기와 (간간 입궐하는) 안평을 목표로 한 것이 분명하였다. 이현로도 그 맛 일은 할 만한 사람이나 김종서야말로 가장 의심둘 사람이었다. 종서의 성격도 성격이려니와 현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수양에게 난항하는 최선봉이요, 엊그제 수양 자기와 정면 충돌까지 한 그였다. 그때의 야인들은 관찰사의 독단으로 쳐서 물리쳤다 하니 다행이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 했더면 또다시 충돌이 있고야 말했다.

이런 관계로 보아 수양의 궁중 출입을 가장 싫어하고 가장 꺼릴 사람은 김종서였다.

『나으리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명회는 수양의 의견을 물었다.

『그야 정부에 말해서 삭여 버리도록 하게 하지.』

『쉽게 되리까?』

『그야 되구 말구!』

『어디 나으리 수단을 한 번 봅시다.』

『수단까지 쓸 게 있겠나?』

웃음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이튿날 수양은 예궐하는 길에 수찰로서 안평을 대궐로 불렀다. 그러고 들어온 안평에게 분경법 문제를 꺼내었다. 아직 수양만큼 침착할 나이가 못되는 안평은 「각신들이 왕자의 분경을 금하도록 상계를 한다」는 형의 말에 주먹을 부르쥐며 성을 내었다.

『그래 형님은 그 모욕을 감수하실 작정입니까?』

『이미 헌부가 계청을 했으니 일을 사전(事前)에 막지는 못 했지만 대신을 시켜서 도로 철회하도록 하세나.』

『어떻게 해서……』

『염려 말게!』

일은 수양 혼자서 당할 것이로되 안평의 배행(陪行)이 필요하였다. 분경을 금한다 하는 것은 그 목표가 수양 한 사람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니까, 이런 일에 수양 혼자서 나서기는 쑥스러운 노릇이었다. 백부 양녕이 함께 해 주면 가장 좋지만 늙은 백부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다.

수양은 다른 동생들은 물리치고 안평과 단 둘이서 정원에 하인을 보내서 도승지 강맹경(都承旨 姜孟卿)이를 대군청으로 청하였다.

수양이 맹경이에게 논집한 주지는 대개 이러하였다.

─지금 헌부에서는 종친들의 분경을 금하는 법을 계청하였다 하는데, 그 주지는 어디 있는가. 「분경」이라는 악명을 씌워서 이것을 금한다 하는 것은 요컨대 종실(더욱이 대군들)을 자주 궁중에 못들어 오게 하려는 것이다.

─왕의 지친을 자주 입궐치 못하게 하자는 것은 그 까닭이 둘 가운데 하나이겠으니, 일자는, 대군들을 의심함에서 나오는 일이겠고, 그렇지 않으면 대군들에게 의심받을 일을 행하면서 대군들의 눈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재상들이 스스로 자기네들을 의심한다는 것은 말이 서지 않는 것이니, 필시 대군들을 의심하기 때문에 이런 거조에 나온 것이다. 우리 대군들이 의심받는다는 것도 유야무야 중에 삭이지 못하겠거니와,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우리를 의심하시도록 하는 일도 묵과할 수 없다.

─우익(羽翼)을 잘라버려 전하로 고립무원(孤立無援)케 하는 것은 어떤 필요로 하려는 일인지는 우리는 길이 없으되, 우리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니 첫째로는 국가로 보아서 어리신 임금을 고립무원케 하여서 권간(權奸)에 맡겨둘 수 없고, 둘째로는 우리 종중이 가장 우두머리 되시는 분을 남의 농락에만 맡겨둘 수 없다.

─우리는 국가의 휴척(休戚)으로 이 국가 위난한 때니 지금 도리어 재상들이 우리를 멀리하려 하니 이는 우리를 의심하기 때문인지 혹은 우리에게 의심받을 일을 하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계략에 눈뜨고 속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억울한 사정과 재상들의 알 수 없는 심정을 전하께 상서해서 그르고 옳은 것을 재단해 줍시사고 빌려 하였지만 혹은 이 거조가 재상들의 지휘 명령이 아니고 유사(有司)의 착오로 이런 일이나 생기지 않았는가 해서 먼저 대신께 이를 고하는 바이라, 그 속사정을 알아 가지고, 전하께 대죄(待罪)를 하든가 변명을 하든가 하려는 바이다.

이만치 이르고 수양은 도승지를 돌려보냈다. 과연 도승지가 돌아가자마자 정부는 욱적하며 사인(舍人)들이 낭패하여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정원(政院─承旨)의 공기도 당황해지고 헌관 간관(憲, 諫官)들이 몸소 달음박질로 이리 저리 다니고─꽤 소란하였다.

이윽고 영의정 황보인이 몸소 늙은 몸을 대군청으로 옮겼다.

『나으리. 용서해 주십쇼.』

좌정하면서 인은 코를 방바닥에 비비었다.

『헌부의 철없는 소년들이 뉘게 품하지도 않고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려. 헌부소년들도 알아보니 나으리네─대군네들이 아니고 화의군(和義君─세종의 서자)이라 기타 먼 종친 몇 분과 재상들을 지목한 겐데 전하는 동안에 와전(訛傳)이 되어서 나으리께 오해를 샀군요. 하여튼 명목이 문신(文臣)으로 말 한 마디 변변히 하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위인들이니까 나으리께서 관대히 보아 주세야지 어쩝니까. ─더벅머리들도─ 뒷갈망도 못할 일을 왜 한담. 허허, 참 이런 일로 상(上)께 글월까지 올려서 성심을 번거롭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나으리 살피세요.』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변명하였다. 수양은 이 늙고 겁 많고 우둔한 인의 변명을 고소하면서 들었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대감네들이 아시고야 그런 일을 하도록 버려 두시겠오이까. 내 그런 줄은 알었지만 그래도─ 하고, 아까 강승지한테 말했던 것이외다.』

『온, 나으리두, 왜 그런데 추호라도 의심을 두신단 말씀이오? 팽복시충심(膨腹是忠心)이요 만부시적성(滿腑是赤誠)이어늘, 나으리도. 허허허.』

『암. 내 큰실수외다.』

『헌부 더벅머리들을 기회 봐서 좌천을 시키도록 계청을 하겠습니다. 아참, 나으리도 좌천해야 하겠군요. 실수를 하섰으니.』

『그럽시다. 대군을 소군으로 할까.』

『소소군으로 하서야지.』

『그럼 극미군(極微君)으로 합시다그려.』

『허허허허.』

『에에. 오해 풀리니 가슴이 시원하군.』

『피차일반이올시다.』

─팽복시겁(膨腹是怯)이요 만부시저(滿腑是惿)로다.

『그럼 대감. 해오(解誤) 축하로 극미군이 한 턱하리다.』

『사양치 않으리다.』

이 정승 치하의 백성들이어!

수양의 고소(苦笑) 가운데는 탄식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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