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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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편집]

고(誥)와 면(冕)에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연경에 가기로 결정되고, 그 수원까지도 작정된 뒤에도 수양은 특별한 준비라는 것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도 따로이 없었다. 국가의 일에 대하여는 늘 온갖 각도로써 온갖 사물을 관찰하여 아무런 일에 다닥칠지라도 거기 대처할 준비가 충분하였는지라 「사행(使行)」이라고 따로이 별다른 마음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짐도 또한 별다른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떠나는 날을 기다리며 그날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고구려와 고려 때의 강역을 좀 상고하여 보았다. 요동의 광막한 지역─본시 고구려의 강역이요, 그 뒤 고려가 선 뒤에도 그 강역을 회복하고자 여러 번 움직여 보았으며, 더욱이, 여말(麗末)의 우왕(禑王)은 요동정벌의 대군까지 일으키려다가 실패하였고, 아조(我朝)에 들어서 아버님되는 세종대왕이 온 국력을 기울여서 육진을 개척하며, 야인 토벌에 주력한 것도 이 고구려 구구의 회복을 도모하는 복선이었다. 명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는지라, 표면(현재는) 명나라의 강토인 요동을 회복하련다는 눈치만은 보일 수가 없었으나, 북진(北進)은 늘 게을리 하지 않았었고, 이 북진정책에 대하여 명나라에서 항의를 하고 책망을 할지라도 그런 항의는 묵살하고 북진정책은 그치지 않았던 바이다. 이 지역에 대한 지식을 좀 얻어두기 위해서였다. 인정, 풍속, 기후 산물 등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런 것밖에는 특별히 준비가 필요 없었다.

수원들이 결정된 날 저녁, 수양은 한 번 좌참한 허후(左參贊 許詡)와 만났다. 일부러 허후를 찾은 것이었다.

그 전날 어전에서 수양이 자청하여 연경행을 지원할 때에 허후는 거기 대하여 반대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나으리. 나으리가 가신다는 건 좋지 못한 줄 생각합니다.』

허후는 늙은 눈을 들어 수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수양의 뜻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현재의 정부에는 없었다. 모두 수양을 싫어하고 꺼리기는 하였지만 워낙 억세고 위압력이 있는 위에 중실의 장로라는 지위를 가졌는지라, 반대하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런 데다가 일전 김종서가 수양의 주먹에 된 피를 흘린 일까지 있어서 수양이 무슨 의견을 말하면 모두들 유유낙낙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허후는 수양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를 하였다. 수양은 이 뜻 안 한 정면 반대에 눈을 허후에게로 돌렸다. 하도 야위기 때문에 「수응재상(瘦膺宰相)」이라는 칭호를 듣던 아버지(세종 때의 좌의정 허조─許調)를 닮아서 싸리채같이 수척한 허후는, 또한 성격까지 아버지와 한 판으로 한 푼의 융통성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허정승의 융통성 없는 성격은 부처 생활까지도 너무 엄격하고 규율적이어서, 세상에서는 「허 정승은 음양 지도를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라」는 소문까지 높아서 허정승으로 하여금, 「내가 음양을 모르면 후(詡)와 눌(訥)(허정승의 아들들)은 어떻게 생겼겠느냐」 하였다는 일화까지 있는─그런 아버지의 아들이라, 역시 한 푼의 융통성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지내본 바로서, 허후는 수양을 배척하고 멀리하려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던 허후가 정면으로 반대하므로, 수양은, 불쾌하다기보다도, 괘씸하게 보기보다도, 다만 의외로 생각하였다. 더구나 수양 자기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등진 사람들까지도 아무 딴말이 없는데 허후 혼자서 반대하므로 더 기이하였다.

『왜─ 무엇이 좋지 못하오이까?』

허후의 반대하는 말에 반문하는 수양의 음성은 고요한 편이었다.

『네. 다를 이유가 아니라, 지금 국상이 어제의 일이고, 유주(幼主)께오서 당국(當局)하신 이 때, 대신들도 아직 주상 전하께 익지 못하고, 전하 또 의지하고 의논하실 데 없으신 이런 때에, 종실의 어른이신 나으리께서 거증하서서, 좌우편을 잘 융화시켰고 단합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오서는 아직 신하들에게 생면이시고, 치국에 미숙하신 이 때, 나으리 같으신 분이 안 계시면 군신간의 융화를 바라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으리께서 나라를 떠나시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수양이 섭정을 해야 한다. 적어도 군신간의 돌쩌귀는 되어야 한다 하는 뜻이었다.

이 말이 수양에게는 고마웠다. 문종도 수양의 섭정은 커녕 섭정이 될세라 해서 겁을 냈고, 지금의 대신들은 더욱 더 그런 일이 생길까 기써서 방지하려는 이 때에, 이 정부에 있어서, 허후 혼자서, 수양의 섭정을 바라며, 수양이 지금 이곳을 떠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기위 작정한 일이요, 더욱이, 수양은 이 기회에 그 땅에 가서 선진국의 문물 제도를 견학하려는 심산이 있는지라, 가기를 중지한다든가 할 수는 없었지만, 허후의 말이 지극히 고마웠다. 그래서 허후를 찾아서 한참 이야기라도 하여 보고 싶은 생각이 난 갔다.

허후는 여전히 싸리채같은 꼬장꼬장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수양을 맞았다.

『대감은 어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이번 사행에는 내가 꼭 가야겠오이다.』

단 두 마디의 인사의 뒤에 수양은 이 말을 꺼냈다. 거기 대하여 후는, 역시 애교도 없고, 그렇다고 배척하는 태도도 아닌 표정이었다.

『나으리가 꼭 가신다는 데야 할 수는 없읍지만……』

『대감은 어떤 점이 걱정이 되십니까? 어떤 점이 근심이 되십니까?』

『…………』

『융화가 속히 안 되오리까?』

『글쎄올시다. 전하께서 과히 연소하셔서 대신들을 어려워 하시어요.』

『대감, 나는 종인이라 한겹 막힌 데가 있기 때문에 대신들의 생각이라든가 먹는 마음이라든가를 잘 모르는 데가 있어요. 대감 아시는 대로 어디 말씀해 봐 주십쇼.』

『생일들 뭘 알리까마는, 전하께오서도 대신들을 어려워하시는 모양이지만, 대신들도 역시 전하가 너무 연소하시니까, 어려워하는 것 같어요. 선대왕이며 영묘께 대해서는 좀 억지의 계청이며 상소도 할 수가 있었지만, 금상께는 그걸 못 한단 말씀이지요. 전하 하도 연소하시니까, 무슨 계청할 일, 조를 일이 있어도 못하고 말어요.』

『흠!』

『전하께서도 또한 매한가지로, 무슨 분부하실 일이 계서도 못하시는 모양이야요. 간간 보면 도리어 늙은 내관들이 성지를 엿듣고, 승지(承旨)에게 전해서, 승지에게서 대신에게로─이렇게 전지가 되는 일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군신간에 의사의 소통이나 융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새도 보자면 나으리께서 가운데 계신 덕에, 웃 뜻이 아래로 전해지고 아랫 뜻이 우에 달한 일이 비일비재가 아닙니까? 이런 때에, 나으리 오래 멀리 가 계시면, 군신 의사 소통이 한 동안 끊어지면, 그 뒤간에는 새에 한 겹간이 막히게 되지 않으리까. 생은 이렇게 생각되고, 그것이 근심됩니다그려.』

『참, 내 늘 어느 대관을 조용히 만나면 터놓고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오늘 마침 대감께 뵈니 생각납니다. 내 마음 터놓고 대감께 한두 마디 뭐 물어볼 일이 있는데 대답해 주십시오.』

『무에오니까?』

『지금 삼공 중에 국가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안 아낄 사람이 누구오니까?』

이 말에 허후는 한참을 생각하였다.

『글쎄올시다. 다 과히 늙었아와요. ─사람 늙으면 영기가 꺾입니다.』

『지봉(芝峯)은─영상(領相)은 어떠리까? 사조 역사의─』

후는 또 한참 생각하였다─

『지봉도 늙었아와요. 소년시부터의 교우로 잘 아옵지만─ 늙었아와요. 충의야 뉘게 지리까마는─』 한 뒤에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게다가 식솔이 많으와요.』

『절재(節齋)는? 좌상은?』

후는 또 한참 생각하고야 대답했다.

『절재는 교분이 엷어서 잘 모릅니다.』

대답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수양이 뒤따라 다시 물었다.

『그래도 짐작이야 안 가리까. 어디 말씀해 보서요.』

후는 또 잠시 생각하였다.

『약간 탐욕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노인답지 않게 담력은 아직 있지만. 함길도 절제사 적에도 황금을 즐긴다는 추성이 들리더니, 근자에도, 늙인이답지 않게 야화(野花)라니 하는 야인(野人) 계집애 하나를 구해다 놓고, 말 듣지 않는다고 밤 낮 성화시킨다고 폄들을 하나 봅디다.』

『우상(정본)은?』

『약간 경망합니다.』

『그러면 대감은?』

『가장 다겁(多怯)합니다.』

웃지도 않고 하는 대답이었다.

수양은 탄식하였다.

『아조(我朝) 육십 년에 목숨을 아끼지 않을 충의의 대신이 한 사람도 없담.』

『다 늙었아와요.』

『늙으면 충성도 늙으라는 대감의 의견이서요?』

이 말에 후는 당황하였다.

『아니올시다. 천만에. 이런 늙은이들은 해골 묻을 땅이나 어서 구해야 합지요. 그러기에 나으리 같으신 분이 나서 주서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부중에 노소 재상이 충성이 부족한 배는 아닙지만, 용기는 줄었어요. 절재(종서)같은 이도 장년 때는 그렇게도 훌륭하고 비범하더니, 용기는 줄고─그 대신─』

말을 끊었다. 그러나 뒷말은 「탐욕만 생겼다」는 뜻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수양은 머리를 숙였다. 허후의 어제의 고마운 말에 사례하려 왔던 바이지만,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차 기분이 불쾌한 편으로 기울어졌다.

늙어서 용기가 줄었다? 늙으면 혹은 용기도 줄리라. 그러나 충성도 줄랴. 충성이 있으면 충성에 따르는 용기도 줄랴.

예로부터 순국(殉國)한 재상이 다 젊은이었더냐.

아니로다. 충성에 어찌 노약이 있으랴. 그러고 진실한 충성에 어찌 목숨을 아끼랴.

요컨대 이 백성의 마음이 위축된 때문이다. 태조에서 시작하여 정종, 태종의 대를 지나서 나라의 기초가 섬에 따라서 정부와 백성이 한결같이 안심하는 바람에 방심까지 하였다.

세종 재위 삼십여 년간─ 그 말년 수년간을 건강이 상하기 때문에 정사를 동궁께 맡겼다.

「유(儒)」의 한 길 밖에는 모르는 동궁이 더욱이 병약하기 때문에 심약하여, 나라를 북돋우려는 노력은 다 내던지고, 게으른 지도를 하였다.

이 동궁이 섭정을 한 수년과, 동궁이 즉위한 뒤 수년 동안의 정치적 나타는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용기 없는 백성으로 화하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육진 개척의 위업을 이룩한 김종서의 출장입상(出將入相)하던 시절과 지금 단지 겁과 욕과 게다가 늙은이답지 않게 색욕까지 겹쳐가지고 있는 모양을 비겨 보면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짐작갈 것이다.

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지금 어린 임금이 위에 오른 이 때, 그냥 버려 두면 더욱 쇠퇴하여 갈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려 하는 힘은, 그 자리에 받아 멈추기만 하려 해도 힘들 것이다. 하물며 도로 위로 올려 밀려 하면 엔간한 힘이 아니면 성공키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버려 두면 아주 떨어지고 말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 도로 위로 올려 밀 방책을 강구해야겠다.

여기 수양에게 있어서 가장 다행한 것은, 왕의 마음이 전과 달라진 일이었다. 이전 세자시대부터 즉위 초까지는 수양 자기를 두려워하고 꺼리고 피하려 하였다. 그런 때에야 수양이 아무리 좋은 말을 가지고 왕께 아뢴다 해도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양의 한결같은 정성이 통하여 이즈음은 왕도 수양을 꽤 믿고, 수양을 의뢰하고자 한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왕으로서는, 혹은 당연한 결과인지는 모르나, 수양에게 있어서는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아무리 수양이 좋은 의견을 가지고 왕께 좋은 일을 합시다고 한다 해도 왕이 수양을 싫어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왕은 차차 수양을 믿어 온다.

수양은 현재는 단지 종실의 한 사람이라 하는 뿐이지 아무 명목도 없는 사람이라, 따라서 정치에 용훼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 그러나 왕의 신임만 넉넉하게 얻으면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문종이 동궁으로 참결서무(參決庶務)하는 수년간과 문종 등극한 뒤 수년간을, 수양이 가슴에 품고도 시행하지 못한 가지가지의 시정(施政)을 장차 마음대로 베풀게 될 날도 이르겠지.

이 겁만 많고 자기 일신의 영화만 도모하려는 재상들─그것만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이 과한 일이고, 사사에 방해만 되겠거늘 하물며, 그 위에 다른 꾀를 도모하는 형적이 있는 것은 과하기도 너무 과하다.

『대감.』

수양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허후를 찾았다.

『네?』

『지금 삼공은 다 치사하고 선향에 돌아가 노후를 평안히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구려. 대감 의향은?』

『생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봉께는 흠 없는 사이라 권고도 몇 번 해 보았지요. 지봉은 선향에 길게 누워도 부족이 없는데……』

『절재도 그렇지.』

『절재는 조금 더 바라리다.』

『영상 자리?』

『그러믄요.』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만년만 잘 지켰다면 영상 자린들 무엇이 과하랴.

수양은 탄식하였다. 빗나간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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