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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를 회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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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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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지기만 하면 조선 특히, 요즈음의 조선에도 (이러한) 초인초업(超人超業)이 있었느냐고 반드시 세계가 놀라 감탄하게 될 자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과 그가 제작한『대동여지도』의 큰 업적이다. 그렇다. 그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누구에게든지 보일만 하고 언제까지든지 전해질 위대한 업적이다. 누구라 말해줘도 무엇을 한 사람인지 얼른 아는 이가 세상에 그리 많지 못할 정도로 그는 아직 알려지지 못한 불운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로든지 조선이나 조선인이 그가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 스스로 심적(心的) 강자(强者)임을 위로도 하고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김정호나『대동여지도』라는 조선의 국보이다. 조선에 어떤 보배가 있느냐고 남이 물을 때에 다만 몇 가지로 한정하더라도 반드시 끼워 넣어도 낭패 보지 아니할 것이 진실로 이 사람(김정호)의 일이다.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이 그 물건(『대동여지도』)이고, 물건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신적 감응과 분발의 끝없는 샘은 단지 조선의 보배라고만 하기에 아까운 것이 그 사람의 그 물건이다.

(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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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선생은 고산자(古山者)라는 이름으로 간혹 세상에 알려진『대동여지도』의 제작자이고 각자(刻者)이며 또한 그에 대한 순사자(殉死者)니, 진정한 의미로 국보적 인물이 조선에서 한결같이 밟는 운명의 궤적(軌跡)을 유난히 선명하게 밟아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업적임에도 가장 도리 없고 말할 수 없는 화액(禍厄)을 당한 이가 그이다. 혹 황해도에서 출생했다는 것밖에 세계(世系)도 분명하지 않은 그는 생애에 대한 전기적 자료가 거의 다 소멸되었다. 다만 아무것도 다 없어지더라도 그것(『대동여지도』) 하나만 남아있고, 그것이 그의 손끝에서 나온 한 가지만 알려졌으며, 그로 하여금 조선에서는 물론이요 세계에까지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이게 하기에 넉넉한『대동여지도』만은 다행히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렇다 다행히 남아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큰 공로가 함께 할 수많은 조선가치의 완성자이더라도 그들에 관한 기록이 다 없어지고, 또 한편의 작품이라도 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인류의 영원한 정신적 양식이 됨직한 그의 인격 충족적 아름다운 행적이 이제 와서 도무지 미궁에 빠지게 되었지마는, 그 인물의 전적인 표현이요 정신의 표현인『대동여지도』는 갈수록 빛나는 힘으로써 그 권위를 학계에 떨쳐간다. 이것이 있는 곳에 김정호의 생명은 한결 같이 약동(躍動)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이것이 있는 곳에 김정호를 지주(支柱)로 하여 그 위대한 찬란함을 구름 비늘 같이 보여준 조선의 마음이 무엇이랄 수 없는 큰 활기를 우리의 축 쳐진 신경에 전달함을 생각하면 구구한 일생이 전해지고 전해지지 않음은 별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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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때의 사람이 꿈도 꾸지 못하는 마음의 씨앗을 어디선가 얻어가졌다. 무슨 인연으로 말미암아서였는지 그 씨앗이 가장 이상적인 육성을 이루어, 드디어 조국의 완전한 영유(領有)는 그 정확한 도적(圖籍)의 성립에서 비롯한다는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온갖 생활의 무대요, 온갖 문화의 밭인 국토의 현실적 이해가 온갖 경험과 조치의 첫 번째임을 깊이 깨달은 그는 한참 밀려들어오는 세계의 풍조에 면하여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될 조국에 대해 국토적 자각이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될 참되고 올바른 지도를 자기의 손으로 제작하리라는 큰 꿈을 세우게 되었다. 깊은 자각이 큰 결심으로 바뀔 때 이를 위해 온갖 희생을 하리라는 의연한 빛이 그의 눈썹 사이에 가득하였다. 정확한 현황을 알기 위해서는 전국의 산천을 샅샅이 답사함을 사양치 아니하였으며, 진실된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온갖 서적을 낱낱이 조사하여 검토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라갔으며, 이를 위해 수십 년 동안 과객(過客)이 되었다. 그만큼 하면 삼천리 산하의 형승이 긋지 않아도 지도로 눈앞에 선명해질 때, 어떤 측면에서도 당시의 지식과 기술의 극치를 보인 조선 공전(空前)의 정확한 지도가 한 폭 한 폭씩 그의 손끝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말하자면 객관적 존재일 따름이던 조선의 국토가 그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가장 밝고 확실하게 조선인의 주관적 영토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선 국토의 주관적 창조 노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보하고 쌓여서 그 역학적 변화의 산물인 학문적 광휘(光輝)가 거의 포화상태로 저의 내부에 넘쳐나건마는 임자인 조선은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배가 곯고 옷을 몸에 걸치지 않아 생기는 것은 멀쩡한 미친놈이라는 조롱뿐이었건만 빛나는 조국의 큰 사명을 스스로 짊어진 그의 뜨거운 손을 멈추게 할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었다. 인간의 모든 것인 소유와 욕망 및 사랑하는 처까지 이런 와중에 빼앗겼으나 이 대사(大事)의 앞에는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 남은 과년한 딸과 함께 안 것은 그림이고, 그린 것은 판각(板刻)으로 차례 차례 한 손 끝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어 나갔다. 북풍참우(北風慘雨)의 생활을 보낸 지 수십 년에 속으로 쌓이기만 하던 대광명(大光明)이 마침내 겉으로 드러나는 곳에『대동여지(도)』란 위대한 보물이 철종 신유년(1861) 조선의 소반 위에 덩그러니 얹히게 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위대한 보물이었다. (동아일보 1925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