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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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이 오면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黃昏)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同志)의 관(棺)을 메고 나간다
만장(輓章)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襚衣)조차 못입힌 시체(屍體)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同志)들은 옷을 벗어 관위에 덮는다.
평생(平生)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이하 6행은 일본 총독부 검열로 잘려져 나감)
동지(同志)들은 여전(如前)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親戚)도 애인(愛人)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 송장들은
관(棺)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 19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