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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무장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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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의 무장야(無藏野)는
몹시도 쓸쓸하였다.
석양(夕陽)은 잡목림(雜木林) 삭장귀에
오렌지 빛의 낙조(落照)를 던지고
쌀쌀바람은 등어리에
우수수 낙엽(落葉)을 끼얹는데
나는 그와 어깨를 겯고
마른 풀을 밟으며 거닐었다.

두사람의 시선(視線)은 아득이
고향(故鄕)의 하늘을 더듬으며
「쏘프라노」와 「바리톤」은
나직이 망향(望鄕)의 노래를 불렀다,
내 손등에 떨어진 한 방울의
따끈한 그의 눈물은
어린 정(情)에 아름다운 결정(結晶)이매
참아 씻지를 못했었다.

이윽고 나는 참다못하여
끓어 오르는 마음을
그의 가슴에 뿜고 말았다
손을 잡고 사랑을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말이 없었다
능금 같이 빨개진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은채…………

그의 작은 가슴은
비 맞은 참새처럼 떨리고
그의 순진한 마음은
때아닌 파도(波濤)에 쓰러지는
해초(海草)와 같이 흔들렸을 것이다.
햇발이 우리의 발치를 지난 뒤에야
그는 조심스러이 입을 열었다.
내가 좀더 자라거든요
인제 세상을 알게 되거든요

나는 입을 다문채
무안에 취(醉)해서 얼굴을 붉혔다.
깨끗한 눈우에다가
모닥불을 끼얹어 준것 같아서…………
가냘픈 꽃가지를 은 것처럼
무슨 큰 죄(罪)나 저질른듯하여서…………
말없이 일어서 지향 없이 거닐었다.
쓸쓸한 황혼(黃昏)의 무장야(無藏野)를—

1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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