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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북경의 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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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世紀末) 맹동(孟冬)에 초췌한 행색(行色)으로 정양문(正陽門) 차참에 내리니 걸개(乞丐)의 떼 에워싸여 한분(分)의 동패(銅牌)를 빌거늘 달리는 황포(黃包) 차상(車上)에서 수행(數行)을 읊다.』

나에게 무엇을 비는가?
푸른옷 입은 린방(隣邦)의 걸인(乞人)이여
숨도 크게 못쉬고 쫓겨오는 내 행색(行色)을 보라,
선불 맞은 어린 짐승이 광야를 헤매는 꼴 같지 않으냐.

정양문(正陽門) 문루(門樓) 위에 아침 햇발을 받아
펄펄 날리는 오색기(五色旗)를 치어다보라.
네 몸은 비록 헐벗고 굶주렸어도
저 깃발 그늘에서 자라나지 않았는가?

거리거리 병영(兵營)의 유량(嚠喨)한 나팔(喇叭) 소리!
내 평생(平生)엔 한번도 못들어 보던 소리로구나
호동(胡同) 속에서 채상(菜商)의 웨치는 굵다란 목청
너희는 마음껏 소리 질러보고 살아 왔구나.

저 깃발은 바랬어도 대중화(大中華)의 자랑이 남고
너희 동족(同族)은 늙었어도 「잠든 사자(獅子)」의 위엄(威嚴)이 떨치거니
저다지도 허리를 굽혀 구구(區區)히 무엇을 비는고
천년(千年)이나 만년(萬年)이나 따로 살아온 백성(百姓)이어늘―

때 묻은 너희 남루(襤樓)와 바꾸어 준다면
눈물에 젖은 단거리 주의(周衣)라도 벗어 주지 않으랴
마디마디 사무친 원한을 나눠 준다면
살이라도 저며서 길바닥에 뿌려 주지 않으랴
오오 푸른옷 입은 북국(北國)의 걸인(乞人)이여!

[호동(胡同)은 골목]

19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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