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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조선의 자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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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들의 죽음이 너무나 참혹(慘酷)하여 눈물지었노라
그대들의 흘린 피가 너무나 값 없음을 아끼어 울었노라
우리는 흙 한줌 보태기에도 오히려 작은 알몸 뿐이다
강아지에게 던져도 씹지 않을 고기덩이 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생선(生鮮) 같은 청춘(靑春)의 몸을 철로(鐵路)바탕에 쌍(雙)으로 던져
이십년(二十年)이나 자라난 사지(四肢)를 짤리고 뼈를 갈아 버리다니
그 한점의 살 한방울의 피가 그다지 값 없는줄 알았던가

오 약하고 가엾은 이땅의 누이들이여,
그대들이 저주(詛呪)한 모든 제도(制度)는 본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사랑도 허무(虛無)도 마음 속에 떠도는 한조각의 구름장인걸
무엇을 꺼리어 주순(朱脣)을 열어 부르짖지도 못하고
가냘픈 손에나마 반역(反逆)의 깃대를 들지 못했는가
「청천백일(靑天白日)」밑에 팔을 뽐내는 이웃 나라의 여성(女性)을 보라.

사랑에 취(鴆醉)하여 쥐잡는 약(藥)을 사람이 삼키고
인생(人生)이 허무(虛無)ㅎ다 하여 헛되이 생명(生命)을 태질치던 것은
이미 세기(世紀)가 몇번이나 바뀌인 옛날의 비극(悲劇)이다
우리에게서 청산(淸算)된지 오래인 소극(消極)의 감정(感情)이다
가엾다! 그대들은 언제까지나 그 잔혹(殘酷)을 마시며
생목숨 끊는 것으로 유일(唯一)한 자유(自由)를 삼으려는가
어버이와 형제(兄弟)의 은혜(恩惠)를 자멸(自滅)로써 갚으려 하는가

젊고 아름다운 이땅의 여성(女性)이여,
지금은 봄이다! 사월(四月)의 태양(太陽)이 굴르는 폐허(廢墟)위에
기를 펴고 우리와 함께 달음질할 준비(準備)를 하자!
개천 바닥에 콸콸콸 얼음장 뚫는 목소리 들리나니
한 방울의 피라도 혈관(血管) 밖으로 쏟아버리지 말라
가슴 속에는 정의(正義)에 불붙는 새빨간 염통이 방아를 찧거늘
그 소중(所重)한 염통을 양잿물로 썩히거나 철로(鐵路) 바탕에 버리지 말라
나의 사랑하는 조선(朝鮮)의 자매(姉妹)여!

19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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