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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풀밭에 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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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 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오리까.

바라면 바라볼쑤록
천리(千里) 만리(萬里) 생각이 아득하여
구름장을 타고 같이 떠도는 내 마음은,
애달픈 심란스럽기 비길 데 없소이다.
오늘도 만주(滿洲) 벌에서는 몇 천명(千名)이나 우리 동포(同胞)가
놈들에게 쫓겨나 모진 악형(惡刑)까지 당하고
몇 십명(十名)씩 묶여서 총(銃)을 맞고 꺼꾸러졌다는 소식(消息)!

거짓말이외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말 같사외다.
고국(故國)의 하늘은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무심(無心)하거늘
같은 하늘 밑에서 그런 비극(悲劇)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안땅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상팔자지요.
철창 속에서라도 이 맑은 공기(空氣)를 호흡(呼吸)하고
이 명랑(明朗)한 햇발을 쬐어 볼 수나 있지 않습니까?

논 두렁에 버티고 선 허자비처럼
찢어진 옷 걸치고 남의 농사(農事)에 손톱 발톱 달리다가
풍년(豊年) 든 벌판에서 총(銃)을 맞고 그 흙에 피를 흘리다니………

미쳐날듯이 심란한 마음 걷잡을 길 없어서
다시금 우러르니 높고 맑고 새파란 가을 하늘이외다
분(憤)한 생각 내뿜으면 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이 들듯하외다

19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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