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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필경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우를 갈(耕)며 나간다.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犁)요, 유일(唯一)한 연장이다.
거치른 산기슭에 한 이랑(畝)의 화전(火田)을 일려면
돌뿌리와 나무 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붓대가 몇 번이나 꺾였었던고?

그러나 파랗고 빨간 「잉크」는 정맥(靜脈)과 동맥(動脈)의 피
최후(最後)의 일적(一滴)까지 종이 우에 그 피를 뿌릴 뿐이다.
비바람이 험궂다고 역사(歷史)의 바퀴가 역전(逆轉)할 것인가
마지막 심판(審判)날을 기약(期約)하는 우리의 정성(精誠)이 굽힐 것인가
동지(同志)여 우리는 퇴각(退却)을 모르는 전위(前衛)의 투사(鬪士)다.
「박탈(剝奪)」, 「아사(餓死)」, 「음독(飮毒)」, 「자살(自殺)」의 경과보고(經過報告)가 우리의 밥벌이냐
「아연(俄然)활동(活動)」, 「검거(檢擧)」, 「송국(送局)」, 「판결언도(判決言渡)」, 「오년(五年)」, 「십년(十年)」의
스코어를 적는 것이 허구한 날의 직책(職責)이란 말이냐
창(槍)끝 같이 철필(鐵筆)촉을 베려 모든 암흑면(暗黑面)을 파헤치자
샅샅이 파헤쳐 온갖 죄악(罪惡)을 백주(白晝)에 폭로(暴露)하자.

스위치를 젖쳤느냐 윤전기(輪轉機)가 돌아 가느냐
깊은밤 맹수(猛獸)의 포효(咆哮)와 같은 굉음(轟音)과 함께
한 시간(時間)에도 몇 만(萬)장이나 박아 돌리는 활자(活字)의 위력(威力)은,
민중(民衆)의 맥박(脈搏)을 이어 주는 우리의 혈압(血壓)이다.
오오 붓을 잡은 자(者)여 위대(偉大)한 심장(心臟)의 파수병(把守兵)이여!

1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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