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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항주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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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杭州)는 나의 제이(第二)의 고향(故鄕)이다. 미면(未免)계관(鷄冠)의 가장 로맨틱하던 시절(時節)은 이개(二個)성상(星霜)이나 서자호(西子湖)와 전당강변(錢塘江邊)에 핍류(逼留)하였다. 벌써 십년(十年)이나 되는 옛날이언만 그 명미(明眉)한 산천(山川)이 몽매간(夢寐間)에도 잊히지 않고 그 곳의 단려(端麗)한 풍물(風物)이 달콤한 애상(哀傷)과 함께 지금도 머릿속에 채를 잡고 있다. 더구나 그 때에 유배(流配)나 당(當)한듯이 호반(湖畔)에 소요(逍遙)하시던 석오(石吾), 성재(省齋) 두분 선생(先生)님과 고생(苦生)을 같이 하며 허심탄회(虛心坦懷)로 교유(交遊)하던 엄일파(嚴一波), 염온동(廉溫東), 정진국(鄭鎭國)등(等) 제우(諸友)가 몹시 그립다. 유랑민(流浪民)의 신세(身)―, 부유(蜉蝣)와 같은지라 한번 동서(東西)로 흩어진 뒤에는 안신(雁信)조차 바꾸지 못하니 면면(綿綿)한 정회(情懷)가 절계(節季)를 따라 간절(懇切)하다. 이제 추억의 실마리를 붙잡고 학창시대(學窓時代)에 끄적여 두었던 묵은 수첩(手帖)의 먼지를 털어 본다, 그러나 항주(杭州)와는 인연(因緣)이 깊던 백낙천(白樂天), 소동파(蘇東坡) 같은 시인(詩人)의 명편(名篇)을 예빙(例憑)ㅎ지 못하니 생색(生色)이 적고 또 고문(古文)을 섭력한 바도 없어 다만 시조체(時調體)로 십여수(十餘首)를 벌여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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