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일생/처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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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女篇(처녀편)[편집]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금봉(李金鳳)이가 난 것은 인천 바다에서 일본 군함이 아라사 군함을 격침하여 일로 전쟁이 터지던 갑진년이었다. 서울 계동 막바지, 뒷산에는 솔발이 있는, 금봉의 아버지 이 정규(李正圭)의 집은 이름이 이 정규의 집이지 기실은 당시 정부를 반대하던 이 집을 지키는 사람에 불과하였다. 당시 애국자로, 영웅으로 들날리던 노백린(盧伯麟), 이갑(李甲) 같은 사람들이 밤이면 모여서 천하의 경륜을 토론하노라고 고담준론하던 집이었다. 금봉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손과 무릎에서 귀염을 받는 일이 많았다. 금봉은 그렇게 귀염을 받을 만하게 어여쁘게 생기고 또 숙성하였다.

『금봉아,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될래? 나란 부인이나 약안 부인이 되어라.』

금봉은 이렇게 그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그때에는 나란 부인전이니 약안 부인전이니 하는 서양의 애국 여성의 전기들이 많이 유행하였다.

「약안아」, 「나란아」하는 것도 금봉의 이름 중의 하나였다.

금봉의 아버지도 미남자였다. 그는 그때 헌병 정교를 다나다가 그만두었고, 금봉의 어머니는 당시 미인으로 이름이 높던 계향이라는 기생으로서 돈도 없고 지위도 없는 금봉의 아버지 정규에게 그 풍체에 반하여 제 재산을 다 가지고 시집을 온 여자였다. 그는 자기의 성이 민씨라 하여 본래는 양반의 씨라고 자랑을 하였으나 사람은 점잖은 집에서 자라난 여자와 같은 단아함이 있었다.

이 정규는 본래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노백린씨가 육군 부령으로 눈에 들어 정교까지 올라 가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웃사람의 눈에 잘 드는 타이프의 사람이었다. 인물 풍채도 묘하거니와 백령 백리하여 웃사람이 생각하는 일까지 미리 알아 차리는 사람이었다.

금봉의 위로 인현(仁鉉)이라는 세 살 더 먹은 사내 아이가 있고, 금봉의 밑으로 은봉이라는 연년생의 동생이 있었다. 모두 인물이 좋았었다.

일 ․ 로 전쟁이 끝나고 을 사신조약이 맺히고 경술년 합병이 될 때까지에 금봉의 집에 다니던 이들은 다 해외로 망명해 버리고 말았다. 그 통에 그 집은 금봉의 아버지 정규의 소유가 되어 버리고, 그 밖에도 이모저모로 정규는 만은 돈을 모았다.

그들이 해외로 달아날 때에 이 정규에게 어떤 사명을 맡긴 것은 사실이지 마는 그는 멀리 떠나 간, 사람들과 한 약속까지 지키지 아니하여도 좋은 줄 알뿐더러 도리어 그리 아니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이로운 것이 있기 때문에 모른 체해 버리고, 집도 팔아서 애오개로 옮기고, 해외에 나간 이들에게 대해서는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만큼 약은 사람이었다.

금봉이가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 보통 학교에 들어 가는 해에 금봉의 어머니는 우물에 빠져서 자살을 해버렸다. 그것은 남편 되는 이 정규가 돈푼이나 생기게 된까 본래 기생이던 아내가 싫어져서 그랬는지 처녀한테 유처취처로 장가를 들고 본 아내 민씨를 소박한 까닭이었다.

금봉의 어머니 민씨는 기생 티를 안 보일 양으로 참 애를 썼다. 머리를 쪽지는 것도 여염집 부인답게 하고 금비녀까지도 아니 꽂았고 의복도 수수한 것으로만 입었다. 그리고 평생에 좋아하던 거문고와 양금도 팔아 버리고 말았다.

계향의 거문고라 하면 계행이가 기생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장안에 소문이 높았었다. 노백린, 이 갑 같은 이들도 계향의 거문고를 사랑하여서 가끔 들었다. 계향은 다만 고전적인, 가령 도도리라든지를 알 뿐 아니라 보통 사람이 모르는 여러 가지 곡조를 탈 줄 알았고, 또 자기가 새 곡조를 짓는 일도 있었다. 그는 장엄한 것, 이 모양으로 정말 음를을 알아서 자유 자재로 아뢰는 재주를 가졌었다.

정규는 양금은 듣기 좋아하였으나 거문고 소리는 싫다고 하였다.

『왜 거문고를 싫다고 하시오?』

하고 계향은 남편에게 가끔 말하였다.

아들인현이가 양금을 가지고 장난할 때에는 계향은 이런 말로 책망하였 다.---

『거문고 소리는 깊고 무겁고 점잔하기 군자답지마는 양금 소리는 옅고 가볍고 방정맞으니 거문고를 좋아하고 양금을 좋아하지 말아라.』

그래도 아이들은 이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고 인현이나 금봉은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십여 세가 넘어서부터는 인현은 어머니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금봉은 양금을 배웠다.

『듣기 싫다! 네 어미 모양으로 기생이 되련?』

하는 정규의 꾸중이 내릴 때에는 계향은 혼자 울었다.

계향이가 정규의 눈 밖에 나면 날수록 거문고와 양금이 정규의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계향은 단연히 그가 그처럼 사랑하던 거문고와 양금을 줄을 끊어 버리고 마침내 팔아 버릴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민씨는 아내 되기를 힘썼으나 「 」 마침내 참다 못하여 열 다서 살, 열 두 살, 열 한 살 먹은 세 아이와, 또 젖먹이 하나를 계모의 손에 남기고 우물에 몸을 던져서 자살해 버린 것이다.

그는 남편에게 한 장, 아이들에게 한 장, 유서 두 장을 써놓았다. 그 유서는 궁체 아름다운 글씨로 이러하였다.---

『첩은 죽나이다. 첩이 죽지 아니하고는 가장의 마음을 편히 할 도리가 없기로 죽나이다. 어린것들 뒤에 남기니 가슴이 아프오나 또한 팔자인가 하 오며, 첩이 가지고 온 이백 석지기로 부족하나마 네 아이 공부나 잘 시켜 주시기 바라나이다. 첩이 죽은 뒤에는 네 아이를 돌아볼 사람이 없사오니 수원 마님이 마음도착하고 아이들도 정이 들었사오니, 아이들은 수원 마님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죽는, 죄 많어는 처 민 씨 읍혈 상서.』

이것은 남편에게 한 유서였다. 옛날 조선식 아내의 덕을 배우려는 계향은 한 마디도 남편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서 죽는다고 하였다.

수원 마나님이란 이는 근 십 년이나 이 집에 와서 바누질도 하고 살림도 보살피고 있던 마누라다. 본래 수원 살았다고 해서 수원 마나님이지 지금은 남편은 물론이어머니와 아들도 딸도 다 죽어 없어진 무의 무탁한 늙은이다.

『그렇게 마음씨가 착하신 어른이 왜 이같이도 액이 많으시우?』

하고 수원 마님의 세 아들, 두 딸이 하나씩 하나씩 죽을 때마다 계향은 마나님에게 이렇게 위로하는 말을 하였다.

『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렇지요.』

하고 마나님은 마지막으로 막내 아들이 죽을 때쯤은 물조차 말라서 마올 것이 없었다.

남편에게 한 유서는 이렇게 냉정하지마는 그 자녀들에 한 유서에는 열정이 넘치었다. 마치 싸고 싸 두었던 계향의 열정을 마지막으로 그의 뒤에 남기는 자녀들에게 퍼부어 버린 듯하였다---

『엄마는 죽는다. 어린 너희를 두고 엄마는 죽는다. 엄마는 기생이 되어서 몸이 천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못하여 엄마는 죽는다. 금봉 아, 은봉아, 너희는 계집애니 일생에 꼭 한 남편만을 섬겨라, 그리하되 얼굴이나 재주나 돈으로 남편을 고르지 말고 꼭 덕으로 남편을 골라야 한다.

여자의 일생이 한번 몸을 더럽히면 영영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쌍한 어미를 거울 삼아서 부대부대 너희는 내가 걷는 길을 밟지 말이라.

금봉아, 너는 양금을 좋아하니 네 마음이 가벼울까 걱정이다. 천품이 가벼웁더라도 잘 닦으면 무거워질 수 있으니 거문고 소리와 같이 무거운 여자 가 되어라.

은봉아 너는 웬일인지, 너무도 말이 없고 수심빛만을 띠었으니 남이 보면 청승맞다 아니하겠느냐. 네 형은 너무 팔랑팔랑해서 걱정이요, 너는 너무 무거워서 걱정이다. 어미가 주었다면 그렇지 아니하여도 남들이 청승맞게 볼 터이니 아무쪼록 늘 웃고 기쁜 빛을 가지기를 바란다.

인현아, 네야 사내 대장부요 네 아버지의 맏아들이니 어떠하랴. 또 네 천성이 군자다우니 나는 너를 많이 믿는다마는, 오직 걱정되는 것은 네가 너무도 고집이 센 것이다. 사내가 뜻이 굳은 것은 좋지마는 너무 굳기만 하고 휘어야 할 때에 휠 줄을 모르면 부러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어린 동생들을 어미 대신 거느리고 고생이야 오죽하겠느냐마는 불쌍한 어미를 생각하여 부대부대 대장부가 되어라. 더욱이 젖먹이 동생 부탁한다.

어린 너희들 두고 죽는 어미를 무정하다고 원망하지 말아라. 내가 죽어 버리는 것이 너희들의 장래에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불쌍한 어미를 생각하고 부대부대 좋은 사람들이 되어라. 지하에서 어미는 눈을 감지 않고 너희들이 잘되는 것만 보고 있으련다. 죽는 모.』

아내의 유서를 떼어 본 정규는,

『미친년, 서방이나 얻어 가겠지 죽기는 왜 죽어! 세상에서 우리 집을 흉 가라ㅗ 아니하겠나.』

하고 역정을 내었으나 아이들한테 한 유서를 보고 나서는 그래도 마음이 좀 언짢든지 아무 말도 없어 금시 학교에ㅓ 돌아 온 인현에게 그것을 던져 주었다.

이 유서를 발견하고야 비로소 계향이가 죽은 줄을 안 것이었다. 계향은 지난밤에 이 유서를 써놓고 죽으려 하였으나 이 날이 인현의 학년 시험이 끝나는 날인 것을 알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벤또」까지 다 싸주고 아 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대문 밖까지 바래 주고 들어와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하고 인현은 유서를 읽고 허둥지붕하였다.

웬걸 아직 죽었겠니? 엄포겠지. 어디 갓 자빠져 있겠지.

하고 정규는 태연하게 가게로 나가 버렸다. 그 가게라는 것은 미곡, 소금, 숯, 어물 등속을 휘뚜루 놓고 파는 데였다.

어때에 금봉이와 은봉이가,

『어머니!』

하고 학교에서 돌아 왔다.

『어머니 돌아가셨다.』

하고 인현은 안방에서 울고 앉았다가 동생들을 보고 소리를 쳤다.

『무어? 어머니가 어째요?』

하고 금봉과 은봉도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방바닥에 놓인 어머니의 유서를 보고 한꺼번에 소리를 내어서 울었다. 형들이 우는 것을 보고 아랫목에 누워서 놀던 젖먹이도 울었다.

『왜들 우니? 사위스럽다.』

하고 문을 열어 젖히는 것이 서모 김씨였다. 삼 남매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서모를 홀겨보았다.

『아 요년들 보게. 누굴 보고 고따위로 눈깔을 홀겨. 바로 독사눈깔들 같고나. 아이구 소름 끼쳐, 조년들이 나를 못 잡아 먹어서.』

하고 김씨는 문을 벼락같이 닫고 통통거리고 나가 버린다. 그가 있는 곳은 아랫방이라고 하지마는 사랑채나 별당 모양으로 된 딴채였다. 아직도 안방 차지는 민씨가 하고 있었고 김씨는 이 안방을 노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아 이들이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하는 말에 하도 대견해서 안방 문을 열어 보았던 것이다. 민씨가 없어지면 안방 차지는 내 차지라고 생각하였다.

『왜들 울어?』

하고 정규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던지 가게로부터 다시 안방으로 들어 와서 우는 자녀들을 보고 호령을 하였다.

『어머니가 어디서 돌아 가셨수?』

하고 금봉이가 원망하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 삼층장 설합에 삐죽 나오게 그 편지가 끼어 있두구나.』

「안방 어느 구석에 아내의 시체가 있는가」하고 찾기나 하는 듯이 두리번두리번하며,

『원 어디로 갔담?』

하고 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침내 수원 마나님이 뒤란 우물가에서 민씨의 신발하고 비녀를 찾아서 그가 우물에 빠져 죽은 것이 판명되었다. 민씨는 자기가 신던 나들이 신발을 우물가에 가지런히 놓고 신 운두에 걸쳐서 비녀를 놓았던 것이다.

정규는 자녀들과 집안 사람에게 민씨가 우물에 빠져 죽었단 말을 발설 말 것을 엄하게 명령하고 그저 갑자기 죽었닥 꾸며서 삼일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정규는 아이들이 거상 입기를 금하고 무론 아내의 궤연도 베풀지 아니하였다. 개화 세상에는 그런 것이 다 쓸데 없는 짓이라고 말하고, 김씨의 청에 의하여 무당을 불러서 한바탕 집가심 굿을 하고, 뒤란 우물을 메워 버리고, 그리고 안방 세간과 아랫방 세간을 바꾸고, 아이들은 수원 마나님과 함께 아랫방으로 쫓겨 배려오고, 김씨는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금봉은 날이 갈수록 미인이 되었다. 열 둘, 열 세 살 때에 벌써 남자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 하얀 목, 셋별같이 빛나는 눈, 그 조화 잘된 몸 모양, 그 보들보들해 보이는 조그마한 손, 그 걸음걸이, 모두 다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더구나 눈을 한번 치뜨면서 상그레 웃는 양을 볼 때에는 같은 여자 동무들도 활홀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금봉이는 너무 이뻐.』

하고 비평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그는 과연 너무 예뻤다. 하나님이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예쁜 여자를 낳았는가. 그것은 한 막의 비극을 꾸미기 위함인가.

학교의 상급생들은 다투어 금봉을 사랑하였다. 동성연애였다. 그들은 이 성에게 대하나 다름 없이 가슴을 두근거리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손을 잡고 몸을 만지며 뺨을 비볐다. 이런 일이 다 금봉을 더욱 조숙하게 만들었다.

날마다 학교에 오고 가는 길에 뒤를 따르는 남학생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간혹 점잖은 남자가 한사코 뒤를 따르는 일도 있었다.

『언니, 저 사내가 또 따라 오우.』

하고 같이 가는 은봉이가 입을 막고 웃었다. 은봉도 얼굴이 미운 편은 아니 나 금봉에게 비기면 빛이 없었다. 게다가 은봉의 눈에는 젖은 빛과 흐르는 빛이 없어서 그 얼굴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금봉의 눈과 얼굴에는 여름날 저녁때의 노을 빛과 같이 쉬임 없는 변화가 있다.

이것이 사람들의 눈을 차암하는 것이었다.

금봉은 공부로도 보통 학교 일년부터 첫 자리였다. 산술도 잘하고, 기억력도 좋고, 특별히 창가를 잘하고. 오직 부족한 것이 그림과 습자였다. 그러나 다른 과정의 점수가 이 두 과정의 부족함을 보충하고도 남았다.

<저 애가 무슨 일을 내고야 말지.>

하는 생각을 하는 선생도 있었다. 금봉을 시기하는 동무들은 적지 아니하였으나, 그러나 금봉은 남녀를 물론하고 거의 모든 선생의 사랑을 받아싸. 금봉은 그 용모와 행동이 아름다운 것 외에 마음씨 쓰는 것이 다정스럽고 인자하였다.

금봉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 중에 손명규(孫明圭)라는 이가 있었다. 이이는 본래는 산술 선생으로 들어 왔으나 동경 물리 학교에 일 년쯤 다닌 것 밖에 학력이 없어서 다만 법정한 자격이 없을 뿐더러 산술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였다 그렇지마는 그가 . 어떻게 교장의 신용을 얻었는지 늙고 점잔하여 학교에 출근을 잘 아니하는 교장은 어느새에서무주임, 교무주임, 회계, 다 젖혀 놓고 손 선생을 통해서 행정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손 선생은 교장의 불정이라고 지목을 받았지마는 세력이 확립된 뒤에는 누가 감히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손 선생은 간악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두꺼비 선생이라는 별명을 듣는 모양으로, 얼굴이 둔하게 생기고 목이 대받고 어깨가 쑥 올라 가고 한모양이 우직하다는 인상을 줄 법하지 간교하다는 인상은 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우직한 듯한 것이 교장의 신용을 얻은 큰 밑천이었다.

더구나 그의 퍼렇고 두껍고 뒤둥그러진 두 입술은 도야지 주둥이를 연상케 하였다. 그 입술 모양은 둔한 욕심꾸러기를 표시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손 명규 선생에게는 몇 가지 심상치 아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는 얼굴에 비겨서는 날카로운 눈이요, 둘째로는 도무지 말이 없고 웃지도 아니하고 무슨 중대한 생각을 하고 긴급한 일을 보느라고 바쁜 듯한 그의 태도였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Tlr 학교를 샅샅이 돌며 하인들을 보고 꾸지람을 하였다. 직원실에 앉았노라면 거의 반드시 어느 모퉁이에서나 손 선생의 털털한 음성으로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깨끗이 치이지.』

『저 꽃나무에 물 안 주었구먼.』

이런 종류의 꾸지람이었다.

손 선생이 이렇게 자리에 붙어 앉지 못하는 까닭 중의 하나는 그의 임질 일 것이요, 또 그의 양미간에 늘 고통의 주름살이 있는 것도 이 임질일 것이다. 분명히 손 선생의 성격을 좀 음침하고 까다롭게 하였다.

교장의 주장으로 이 학교에는 미남자 선생은 일ㅊ로 채용하지 아니하였다. 교장에는 미남자 선생은 일체로 채용하지 아니하였다. 교장의 말에 의하건댄, 여학교 교사가 미남자면 학생 편에서 마음이 움직이기 쉬우니 위험 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학교 교사는 손 선생 모양으로 괴상하게 생긴 사람이 아니면 얼굴이 곰보거나 낯빛이 검거나, 어쨌으나 모양 없는 사내들 뿐이었다. 서무주임 오 선생이라는 이가 교장에게 불신임을 받는 것도 한 가지는 그가 미남자인 까닭이요, 그리고도 쫓겨 나지 아니하는 까닭은 그가 자주 학생과 접촉하지 아니하는 직분을 띤 까닭이었다.

손 선생은 곰보는 아니었으나 이 학교 선생들 중에 재일 흥험게 생긴 사람이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합하여 손 선생은 교장의 신임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손 선생의 학생들 간의 평판은 여러 가지였다.

『그래 보여도 마음은 착하단다 야.』

하고 손 선생을 변호하는 아이도 있고,

『병신 마음 고은 데 없다고, 음충맞아요.』

하고 사정 없이 악평하는 애도 있었으나 대체로 학생들이 짛고 까불고 할 만한 드러난 허물은 없어싸. 두꺼비 선생은 학생에게 무슨 부탁을 받았을 때에는 심히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귀찮을이만큼 정성스럽게 잘 보아 준다는 젓은 학생들 간에 거의 일반으로 인정되는 장처였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손 선생을 찾는 학생이 많았다. 더구나 손 명규가 재단법인 이사로 당당하게 교장을 대리하게 된 다음부터는 그리하였다.

집에서 고통으로만 지내는 이 금봉도 손 선생에게 다나는 학생 중의 하나였다. 가정에 고통이 많은 금봉은 손 선생에게 집안 사정을 다 말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손 선생 집에 놀러 가는 일도 있었다. 손 선생은 물론 금봉을 동정하였다. 손 선생에게 받는 지극한 동정은 금봉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어머니는 죽어서 잃고 아버지는 산대로 잃은 다정한 처녀 금봉은 굶주린 어버이의 사랑을 손 선생의 동정에서 보충하였다.

손 선생의 부인은 허여멀끔하게 마르고 눈만 커다란 병인이었다. 그는 늘 팔목과 무릎이 부어 가지고 쑤신다고 앓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얻은 임질로 관절염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는 무식한 구식 여자였으나 퍽으나 친철한 부인이었다. 더구나 오래 병으로 누워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는 것을 반가와하였다.

『금봉이 왔니? 어쩌면 저렇게 이뿔까. 함박꽃 같구나.』

이렇게 손 부인은 금봉이를 보면 칭찬하고 그 뼈만 남은 손으로 금봉의 손을 만졌다.

『어떤 복 있는 사람이 남편이 되랴노?』

이런 소리도 하였다.

평생에 웃는 낯을 안 보이던 손 선생도 금봉이와 단둘이 대할 때엔씩하고 웃는 일이 있었다. 웃을 때에는 그 멀뚱멀뚱하던 눈이 가늘게 잡아 늘여지고 얼굴의 근육 전체가 씰룩거렸다. 그러한 웃음을 볼 때에는 금봉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다만 아버지다운 웃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손 선생 집에서는 자녀간에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랫방에는 여학생 한둘이 늘 기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언제나 오래 붙어 있지 않고 한 달이나 두 달 있다가는 나가 버렸다. 금봉이가 이 집에 다니기 시작한 때에는 북간도에서 온 여학생 하나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잡혀 가서 학비가 안 오게 되기 때문에 손 선생이 불쌍히 여겨서 데려다 두었다 고 한다.

손 선생은 이 밖에도 학비 없는 학생을 여러 사람 도와준다고 하였다.

북간도에서 왔다는 학생은 서 정순(徐貞淳)이라고 하는 아이인데, 퍽 얌전한 여자였다. 단지 몸이 약한지 혈색이 좋지 못하였다. 금봉은 반이 다르지마는 곧 정순과 친하였다. 정순도금봉은 반이 다르지마는 곧 정순과 친하였다. 정순도금봉은 반이 다르지마는 곧 정순과 음에 슬픔이 많았었다.

그 아버지는 감옥에 잡혀 가고 그 오빠는 운남인가 귀주인가로 무관 배우러 간다고 가버리고는 소식이 없다고 해서 금봉을 보고는 늘 슬퍼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금봉이가 고등과를 졸업할 날이 며칠 남지 아니하였다. 나 이가 열 일곱 살. 금봉은 너무 예뻤다. 금봉 자신도 아침에 체경을 대하고는 스스로 자기의 예쁨에 황홀하는 일이 있었다. 남들이 모두 미인이라고 떠들어 주는 것이 듣기 싫지는 아니하였다. 가끔 여왕과 같은 프라이드를 느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눈 아래로 보이고 그의 앞에는 오직 봄빛과 같은 행복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무정한 것도 인제는 대수롭지 않고 계모의 독살도 인제는 우스웠다. 인제는 아무 때이라도 마음만 나면 이 불쾌한 둥지를 박차고 자유로 봄빛 속에 날개를 쳐서 그의 왕국인 꽃 피고 새 노래하는 동산으로 갈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졸업한 뒤에 금봉의 소망이 동경 유학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음악을 배우려 함이었다.

하루는 금봉은 집에 들아와서 오빠인 현을 보고,

『오빠, 난 동경 갈 테유.』

하였다. 인현은 술이 얼근히 취하여서 두 손을 깍지를 겨서 배개를 삼아 배 이고 누운 체로,

『동경은? 누가 학비 주든?』

하고 누이의 말을 꺾어 버린다.

『아버지더러 달라지.』

하고 금봉은 화가 나는 듯이 외면해 버린다.

『흥. 아버지가 한푼을 주시겠다.』

하고 인현은 벌떡 일어나며, 아버지가 벌써 네 신랑감을 『 골라 놓고 혼인날까지 받아 놓으신 모양이더라.』

하고 하품을 크게 한다.

『뭐요?』

하고 금봉은 반신 반의로 인현이 편으로 고개를 들렸다.

그 말이 농담인가 아닌가를 인현의 표정으로 판단하려는 듯이.

『네 신랑감을 골라 놓았단 말야.』

하고 인현은 금봉을 흝어 보았다.

『누구?』

하고 금봉은 자기를 따라다니고 편지질하는 여러 남자들을 생각해 보아싸.

또 그동안에 결혼하였다는 누구 누구도 생각해 보았다.

『김 서방이란다.』

하고 인현은 담배 연기를 기차 굴뚝 모양으로 푸푸푸하고 뿜었다.

『김 서방이라니?』

하고 금봉은 눈을 쫑깃하였다.

『저 서사 말이지. 김치록(金致錄)이 말야.』

하고 인현은 다시 방바닥에 엎드려서 신문을 본다.

『뭘요?』

하고 금봉은 제 귀를 의심하였다. 서사 김치록이란 사람은 계모 김씨 연줄로 데려 온 사람이다. 게모하고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마는, 아주머니, 여보게 하는 사람이었다. 낯가죽이 팽팽하고 잔소리들 많이 하고 돈을 받아 들이는 데는 도무지 사정이 없어서 정규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다.

지난 가을에 상처하고 어린것들이 있단 말도 들었다. 그는 아침 일찍 가게에 와서는 밤 늦게 가게를 들이고 집으로 돌아 가는, 나이가 삼십이 넘은, 턱수염이 뽀죽하게 난 사내였다.

『아버지가 김 서방이 없이는 장사를 못하겠어서 네 남편을 삼는대. 졸업 만 하면 혼인을 시키신다고 아까 아버지가 나를 부르셔서 일르시더라.』

하고 인현은 보던 신문을 집어 내던지고 다시 두 손을 깍지를 껴서 베개를 삼아 누웠다.

『그래 오빠는 무어라고 했수?』

『무어라고 해? 네, 그랬지.』

『네 밖에 할 말이 없었수?』

하고 금봉은 소리를 빽 질렀다.

『내 따위가 네 안 하면 벌 수 있니?』

『난 달아날 테야.』

하고 금봉은 뽀로통하고 인현의 방에서 뛰어 나갔다. 인현의 방이란 것은 이 체의 건너방이요, 이간 마루 하나를 새에 두고 이간으로 되어 있는 방이 금봉이와 은봉이와 수원 마나님이 거처하는 방이었다. 금봉의 어머니가 죽을 때에 남긴 젖먹이는 그후 일 년이 못하여 골연화증이라는 병과 영양 불량으로 죽어 버렸다.

금봉은 손 선생 집에나 가리라 하고 대문으로 뛰어 나가다가 가게 앞에서 아버지 정규와 서사 김치록이가 섰는 것을 보았다. 금봉은 못 본 체하고 가려 하였으나 처음 치록의 눈에 띄고 다음에는 아버지의 눈에 띄었다. 그들은 다 마고잣 바란이었다.

『어디 가니?』

하는 것은 정규의 조선식 아버지다운 무서운 음성이었다.

『동무 집에 가요.』

하고 금봉은 멈칫 섰다.

『전기불이 들어 올 때에 어디를 가? 좀 할 말이 있으니 안방에 들어 가 있어.』

하고 정규는 서사 치록이와 같이 하던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금봉은 오래간만에 안방에를 들어 갔다. 안방에는 김씨가 며느리인 인현의 처를 불러 세우고(인현은 작년에 장가를 들었다),

『왜 그렇게 속알머리가 없느냔 말이야?』

하고 꾸중을 하고 있었다. 인현의 처 인숙(仁淑)은 고개를 숙이고 앞치마 고름을 만지고 있었다.

『언제나 철이 난단 말이냐.』

하고 김씨는 금봉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더 할 말을 중지하는 모양으로 며느리더러 나가라고 하였다. 며느리라는 것은 시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으러 생긴 물건이라고 금봉은 생각하였다.

금봉은 이복 동생의현(義鉉)이가 떨어지려는 코를 들여 마시면서도화를 그리고 앉았는 것을 한 팔로 안으면서 그 곁에 앉았다.

『누나, 이거 잘 그렸지?』

하고 아마 기관차가 연기를 뿜고 가는 모양을 그릴 양인듯한 그림을 금봉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참 잘 그렸네. 누가 그렸니?』

하고 금봉은 이 저능아 동생에게 불쌍한 생각을 느끼면서 물었다.

『내가.』

하고 의현은의가 양양하게 때가 시꺼멓게 묻은 손가락으로 제 가슴을 가리켰다.

『어머니, 나 돈.』

하고 이 작품을 완성한 어린 화가는 금봉의 팔을 뿌리치고 어머니께로 가서 손을 내어 민다.

『돈은 웬 돈?』

하고 김씨는 그 날카로운 눈을 흘겼다. 원래 모든 것이 뽀족하게 생긴 김씨는 이렇게 성난 모양을 보일 때에는 더욱 뽀족하여졌다. 턱도 뽀족하고 입도, 코끝도, 눈초리도 뽀족하였다. 그는 며느리에게 대한 분풀이, 금봉에게 대한 분풀이를 금봉이가 보는 앞에서 털어 놓은 것이 습관이다.

『과자 사먹을 테야. 미루꾸, 이이.』

하고 의현은 발버둥치고 울기를 시작한다. 벌써 아홉 살이 되었건마는 보통 학교에도 못 들어 가고 하나 들을 세어서 열까지도 세일 줄 모르는 저능아다.

『돈이 어디 있드냐. 네 형, 누나치다꺼리하고 네 과자 사줄 돈까지 있드냐?』

하고 김씨는 짜증을 내이며 의현을 때린다.

의현은 벌떡 나가 자빠져서 숨이 막힐 듯이 울고, 의현의 누이 옥봉은 의 현이가 우는 것을 보고 운다. 옥봉은 의현이와 같이 장구통 대가리가 아니요, 제 어머니와 같이 뽀족하게 생긴 계집애였다. 그도 금년에 보통 학교에 들어 갈 나이지마는 열까지도 세이지 못하였다.

『아이, 왜 때리세요?』

하고 금봉은 의현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의현은,

『왜 이래, 이 큰 여우년이, 서방질만 하고 돌아 다니는 년이.』

하고 저능아에게서 흔히 보는 엉큼스러운 소리를 하면서 금봉의 낯에 침을 퉤 뱉았다.

『이애가. 그게 다 무슨 소리냐!』

하고 금봉은 머쓱하여 물러 앉았다.

『너희들이 얼마나 동생을 미워하면 어린 것이 그런 소리를 하겠니?』

하고 금봉을 한번 흘겨 보고는 의현의 따귀를 서너 개 때리면서,

『이녀석, 누나더리 그게 다 무슨 소리냐?』

하고 눈을 흘겠다.

『아야아 야아 야아야.』

하고 얻어 맞은 의현은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어머니를 막 할퀴며, 엄마가 안 그랬어 『 ? 큰 년은 큰 여우구 작은 년은 작은 여우라고. 두 년은 꽁지를 내두르구 서방질만 돌아다닌다고 안 그랬어?』

하고 발악을 한다.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그랬지 뭘.』

하고 잠깐 방관하고 섰던 옥봉이가 울며 의현의 역성을 든다.

『이 망할년 같으니! 뒤어져라!』

하고 김씨는 이번에는 옥봉이를 자막대로 막 후려갈겼다.

『어머니 어머니, 아 어린애들을 무얼 그리시우?』

하고 금봉은 몸으로 두 아이를 가리었다. 그러는 서슬에 엎구리와 어깨를 두어 번이나 얻어 맞았다.

『비켜라, 비켜!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누구를 위하노라고 그러니?

내 자식 내가 때리든지 죽이든지 네가 무슨 상관야? 누굴 생각하는 게냐?』

하고 김씨는 성난 것, 무안한 것 어울려서 한참이나 악을 쓰다가 자막대기 르 내어 던지고,

『왜들 이래?』

하고 정규가 들어 왔다.

『나를 왜 함께 있지 못할 식구들과 함께 살라우? 행랑방이라도 한간 얻어서 나를 이해들허구 따루 살게 해주지 않구. 내가 생송장이 되어서 나가는 것을 보아야 속이 시원하겠소?』

하고 김씨는 남편에게 하소연하였다. 마치 지금 이 풍파가 금봉의 잘못으로 나 생긴 것처럼.

『넌 어디를 그리 돌아 다니느냐?』

하고 정규는 아내의 하소연은 못 들은 체하고 금봉을 노려 본다.

『제가 어딜 댕겨요? 날마다 학교 파하면 곧 집에 오는데.』

하고 금봉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정규는 좀 사색을 순하게,

『들으니까 돌아 다닌다든데. 말 같은 년이 어디를 다녀? 아까도 전기불이 들어 왔는데 어디를 가더냐 말이다? 그놈의 학교도 내일부터라도 댕기지 말아라. 졸업은 해서 무얼 해 ? 그깟놈의 졸업장에서 밥이 나오니, 옷이 나오니? 들으니까 요새 학교에 댕기는 년들 모두 잡년들이라더라. 그 돈의 학교에 댕기다가는 계집애들 다 버리겠다.』

하고 한참 누슨 궁리를 하다가,

『너는 제 김 서방하고 혼인 정했으니 그리 알어. 자식새끼 낳고 살림을 해야지. 여자란 과년되면 시집 가서 살림을 해야 쓰는 것이야. 이월 스무 이틑날로 날을 받았으니 그리 알어. 그리고 내일부터는 학교 파하거든 얼튼 집에 와서 안방에 들어 와서 부엌 이로 보고 바느질도 배워. 무엇하러 덜렁거리고 돌아 댕겨. 괘니시리.』

하고 장죽에 담배를 담아서 물고 길게 늘여서 성냥불을 담배에 옮긴다.

『아버지!』

하고 금봉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일본 공부 갈 테야요.』

『무어?』

하고 정규는 빨던 담뱃대를 입에서 빼고 딸을 노려 본다.

『학교에서 절더러 동경 공부를 가래요.』

『무슨 공부?』

『음악이오.』

『음악이라니? 음악을 배우려거든 기생 조합에를 가지, 그래 그런 것을 배우러 일본까지 가?』

『음악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야요.』

『그 개떡 같은 소리 말아. 일본을 가면 돈은 누가 주구?』

『아버지, 저희들 공부시켜 주셔야지요.』

『무어? 고등과까지 공부시켜 주었으면 끔찍하지, 그래도 부족하단 말야?

더 공부시킬 돈 없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 유서에도 어머니 가지고 오신 이백 석 거리로 저희 사 남매 공부시키라고 안 했어요? 그런데 순이는 죽구, 오빠도 고등 보통 학교만 졸업하구 말구, 저 일본 가 공부하는 학비는 대어 주셔야 안해요?』

하고 금봉은 죽을 용기를 다 해서 속에 먹었던 말을 내쏘았다.

『이년 봐라. 뭐 어쩌고 어째?』

하고 정규는 담뱃대를 재떨이에 놓고 금봉이 편으로 돌아 앉는다.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하고 김씨가 여태껏 듣고만 있다가,

『그래 그게 아버지 앞에서 하는 말법이야. 원 세상에. 이애들 물들겠다.

흥, 딸 잘 두셨소.』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린다.

금봉의 의외의 강경한 말에 정규는 한참이나 숨이 막힐 지경으로 성이 났다가,

『너 이년, 그래 그게 애비 앞에서 하는 말야? 응? 낫살이 그만하면 부무의 은혜라는 것도 생각할 만한땐데, 무엇이 어쩌고 어쩌해?』

『아버지가 우리 삼 남매를 위해서 하신 게 문엇이야요? 어머니를 돌아 가시게 한 것도 아버지구 우리 사남매를 저 아래채로 내려 쫓은 뒤에야 먹는지 굶는지 한번 와 보신 일이나 있으세요? 순이가 죽도록 앓아도 유모하나 대주셨어요? 의사 한번 불러 주셨어요? 아버지가 한번 들여다나 보셨어요?

여름에는 빈대, 모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들 밤을 새우는데 모기장 하나, 빈대약 한 봉지 사주셨어요? 겨울에 방에 놓은 물그릇이 얼기로 아버지가 아시기나 하셨어요? 왜, 왜, 어머니가 유언하고 물려 주신 재산으로 오빠 공부도 안 시키세요? 왜 오빠가 의학 전문 학교애 애써 입학까지 한 것도 입학금도 안 주어서 끌어 내리셨어요? 왜 그러셔요? 그리고 왜 날더러는 어디를 시집을 못 보내셔서 가게에 부리는 하인녀석한테로 시집을 가래요? 왜 다 같은 자식인테 우리 삼 남내는 그렇게 미워만 하세요?』

하고 금봉은 흥분에 겨워 울기를 시작한다.

정규는 금봉의 말에 전신을 덜덜 떨고 숨결만 씨근씨근한다. 정규의 생각에도금봉의 말이 옳지 아니함은 아니었다. 가슴에 뜨끔뜨끔 찔리는 구절도 많았다. 그러나 아비의 위신으로, 또 아내 김씨엑 대한 면목으로 분하기도 그지없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 frjt인가, 어떻게 처지를 할 것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정규는 금년에 몸이 좀 나고 머리에 센터럭이 나기 시작함으로부터 젊었을 적 팔팔한 기운이 많이 줄어서 욕심은 전보다 늘었으나 지혜와 예기는 휠씬 못하였다. 후처 김씨의 양칼에 부대낀 까닭이라고 수언 마님은 비평하였다.

이때까지 마루에서 엿을 듣고 앉았던 김씨가,

『아니, 저년을 가만 두시우? 저 금봉이년을 가만 두어요? 그리고 아버지 노릇을 하우? 원 세상에, 계집애년의 말버릇이. 아니 저년을 가만 두어요?

이 무릉태야.』

하고 미닫이를 와락 열어 젖뜨리며,

『이년, 그런 말법 어디서 배웠니? 그래 이년, 내가 너희들을 밥을 굶겼단 말이냐, 헐을 벗겼단 말이냐? 여름엔 홋것 주고 겨울 되면 솜옷 주고, 이년, 그래 내가 잘못한 것이 무어길래 아버지 앞에서 나를 잡니, 응? 또 겨울에 방이 찼다니, 그래 이년 어디가 얼어 문들어졌니? 종로를 막아 놓고 가는 사람들을 다 붙잡고 물어 보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나.

야청 하늘이 나려다 보지. 또 이년 무엇이 어찌해? 김 주사더러 가게에 부리는 하인녀석이라고/ 이년, 그런 아가리 놀리는 법 어디서 배웠니? 김 주사가 어디가 부족하단 말이냐/ 지채가 너만 못하단 말이냐. 사람이 너만 못 하단 말이냐 기생년의 ? 자식헌테는 너무 괗지. 괘해. 소복을 할 년 같으니라구.』

하고 주먹으로 마룻바닥을 땅땅 친다.

『돌아 가신 어머니는 왜 건드리시우?』

하고 금봉은 새로운 분이 울라서 계모를 홀겨ㅛ 보았다.

『아, 조년 보우. 조년이 독사 같은 눈깔로 나를 노려보우.』

하고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뛰어 들어와 금봉의 앞에 바싹 다가 앉으며,

『이년, 그래 나를 흘겨 보면 네가 나를 어찌할 터이냐?』

하고 온 동네가 드 듣도록 악을 쓴다.

금봉은 복받쳐 올라오는 분을 참았다.

금봉은 얼마 뒤에 아랫방에 돌아 와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울었다. 안에서는 내외 싸움이 났다. 김씨는 남편더러 금봉이를 가만 둔다고 발악을 하고, 정규는 아내더러 하인들과 동네가 부끄러우니 떠들지 말라고 소리르 질렀다.

수원 마나님과 은봉은 창에다가 귀를 대고 안에서 오는 소리를 엿들었다.

기운이 다 진한 수원 마나님은 런 긴장한 장면에서도 가끔 꼬박꼬박 졸았다.

『미친 것, 무엇하러 아버지보고 그런 소릴 해.』

하고 인현이가 울고 엎더진 금봉의 등을 만져 주었다.

『얘 금봉아. 금봉아』

하고 인현은 엎더져서 우는 금봉의 어개를 흔들면서,

『글세 울긴 왜 우니? 못나게시리 나도 아버지헌테 공부시켜 달라고 퍽 울어도 보았다마는 우는 것이 다 쓸데 없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머니도 아버지 앞에서 퍽 우신 모양인데, 울어도 쓸데 없길래 돌아 가셨지. 울지 말아. 우리 아버지가 눈물로 움직이실 아버지가 아니시다. 금물이나 눈에서 흘린다면 움직이시겠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도 위인시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이 늘 말하기를, 사람이 꼭 한 목적만을 가지고 일생을 나아가 면 위인이 된다더라. 우리 아버지처럼 한 목적으로 나가시는 이가 어디 있니? 그저 돈! 아버지가 아시는 것은 돈뿐이다. 날더러 공부를 그만두고 가게에서 김 서방 심부름을 하라는 것도 돈 때문이요, 또 너를 김 서방에게 주랴는 것도 돈 때문에 아니야. 아마 우리 어머니허구 함께 사시게 된 것도 어머니란 사람보다도 돈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버지가 지금--- 어머니헌테 장가를 드신 것인데,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몰라.

아마 지금 --- 어머니가 부자집 딸인 줄 kdf고 속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잠깐 외도로 나갔나 보아. 허지마는 지금 와서는 지금 어머니도 우리들 학 비 안 주는일에는 매우 힘을 쓰시늠 모양인가 아버지의 주의에 공명하게 된 것인데, 아버지 편으로 보아서 재일 유해 무익한 것이 돈만 쓰려 드는 우리 삼 남매란 말이다. 만일 우리 삼 남매가 어머니 모양으로 일제히 우물에 빠져죽으면 아버지는 이 집이 흉가라고 값이 떨어진다고 염려를 하시겠지마는, 우리가 어디 바다나 강 같은 데만 가서 죽으면 매장비도 안들고 집도 흉가가 안되고 아버지에게는 그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그래도 자식에게 대한 정리가 조곰은 있나 하고 여러 번 시험을 해보아 Twlakss 도모지 없으시더라. 모르지, 지금 어머니 몸에 낳은 아이들에게는 어떤지---그러나 그 애들헌테도 애정은 없을걸, 우리도 아버지 모양으로 무 정하게 태어났으면 좋을 텐데, 아마 우리는 어머니만 닮았나보다. 어머니만 닮았으니까 우리도 어머니의 운명을 다라고 실은데 아마 미치랴나 보아.』

하고 웃는다.

금봉은 엎딘 채로, 우는 채로 오빠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며,

『오빠, 왜 그렇게 숭한 소리를 하우?』

하고 근심스럽게 인현을 바라본다.

인현은 금봉과 달라서 얼굴이 약간 거무스레한 편이나 그 동긋름한 판이며 꿈꾸는 듯한 눈이며, 모두가 어머니 모습이었다. 따라서 거울에 비치어 보 는 금봉이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게 무슨 숭한 소리냐. 죽거나 미친다는 것이?』

하고 인현은 눈에 떠돌던 아니러니컬한 웃음까지도 거두어 버리고,

『이런 집에서, 이런 세상에서 사느니보다는 죽거나 미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러니. 너는 여자니까 좋은 남편을 얻어 시집을 가면 이 집에 있을 필요도 없고 앞이 트일 날도 있겠지만 내야 이 집 맏아들로 태어났으니까 죽기 전에는, 그렇지 아니하면 미치기 전에는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하게 생겨먹었단 말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하고 인현은 고개를 숙인다.

『오빠, 오빠.』

하고 금봉은 아까 울던 제 설움을 잊어 버리고 인현의 침울에 등화가 되어서,

『오빠, 어떻게 하면 내가 오빠를 도와 드릴 수가 있겠수?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나 다 할 터이야. 이 몸을 누가 사주는 이가 있으면 팔아서라도. 오빠 그런 숭한 소리 말아요. 오빠는 우리 셋 중에 대장이 아니 오 나허구 은봉이허구를? 지도하고 나가야 될 지도자가 아니오? 왜 그렇게 약한 생각을 먹수?』

하고 눈 위에까지 축 늘어진 인현의 머리 갈기를 끌어올려준다.

『금봉아.』

하고 인현은 수그렸던 고개를 들며,

『네 말이 옳다. 내가 그래도 너희들의 형이니까 너희들을 도와 주어야 옳겠지. 너희들의 지도자가 되어야 옳겠지. 그런데 내게는 힘이 없구나. 이 세상에서는 역시 돈이 힘인데, 내게야 돈이 있니? 요새에는 내가 아주 아버지 눈 밖에 나서 어디 빛 받으려도 안 보내신다. 받아가지고 달아날까 보아 서 그러시겠지. 용돈도 하루 삼십전씩 김 서방헌테서 타서 쓴다. 돈만 없는 것이 아니야. 내게는 돈만 없는 것이 아니야. 요새에 와서는 점점 의지력도 없어지고 야시모 없어지고---인재 공부할 생각도 없다. 살 생각까지도 차차 없어져. 어머니가 유언에 날더러 고집이 세다고 그것을 삼가라고 그리셨지?

인제는 고집도 없다. 어째 전신에 벼도 없고 힘줄도 없고 살뭉텡이만 남은 것 같애. 그리고 정신도 없어. 아마 내가 미치랴나보다. 미쳐만 주었으면 해롭지도 앉지마는, 웬걸 그렇게 쉽사리 미치기나 할라구. 짓고생을 하고 고민을 하고 난 끝에나 미치는 목이라도 오겠지.』

하고 마치 나이가 지긋해서 인생의 각자지 번민을 다 겪고 난 사람과 같은 소리를 한다.

앞에 분홍꽃 동산만 바라보고 있는 금봉이나 은봉의 마음으로는 인현의 생각에 동정은 하나 꼭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는 없었다.

『오빠, 왜 그렇게 자꾸 숭한 소리를 하시우?』

하고 금봉은 무슨 크게 흉한 것이 올 조짐이나 같아서 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모든 흉한 것은 다 내게로 옵소사. 모든 길한 것은 다 너희들께로 옵소 사.』

고 인현은 벌떡 일어나서 제 방으로 가더니 한참 있다가 댓치각되는 캔버스 하나를 가지고 와서 금봉의 앞에 놓으면서,

『이거 무엇인지 아니?』

하고 묻는다.

『아이구머니! 어머니야!』

하고 금봉과 은봉은 일시에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얼굴과 웃깃까지를 그린 ---아직 초벌로 그린 계향이었다.

『어머니 겉으냐?』

하고 인현은 만족한 듯 아 그림을 바라보며 웃는다.

『그럼, 어머 니 겉구 말구!』

하고 금봉은,

『이것 보셔요. 어머니 겉지요?』

하고 졸고 앉았던 수원 마나님을 흔든다.

『응, 참말! 어쩌문!』

하고 수원 마나님은 졸리는 눈을 껌벅껌벅한다.

『아이 참, 그런데 어쩌면 어머니 사진 한 장이 없을까.』

하고 은봉이가 낯을 찡긴다. 은봉은 오빠와 형과의 슬픈담화가 끝난 것만 기뻤다.

『왜 사진이야 없으셨나?』

하고 수원 마나님이 다시 졸던 눈을 뜬다. 그도 졸면서도 이야기는 듣고 있는 모양이다.

『무당헌테 무꾸리를 하면 아씨가 가지셨던 물건에서 동티가 난다고 해서 지노기할 때에 사진이란 사진은 다 찾아서 불을 놓아 버리셨지---지금 마님 이.』

하고 입맛을 다신다. 아씨라는 것은 물론 금봉의 어머니요, 지금 마님이란 것은 물론 금봉의 계모다.

『네에?』

하고 삼 남매는 놀랐다. 그들에게는 이것은 처음 듣는 뉴우스였다.

『왜 사진만인가?』

하고 수원 마님은 근래에 드물게 신이 나서,

『사진만 없앤 것이 아니라 아씨 손이 갔던 것이야 다 찾아서 없애 qjuT 지. 값가는 것은 팔구.』

하고 설명을 더하였다.

삼 남매도 그들의 어머니의 유물인 장을 팔아 버리고 양복장을 사다가 준 것은 기억하였다.

『참 아까운 것 판 것이 있다우. 나는 이 말을 아니하랴고 했더니 오늘 말을 하우마는, 어머니 그 거문고 말요. 왜 저 서방님이 팔지 마시라고 울던 거문고 말요. 계동 집에서 이리로 이사해 올 저에 다락 보꾹에서 그거문고를 찾았다우.』

수원 마나님의 말을 가로막고 인현이가.

『아니, 그 거문고는 팔지 않았어요? 양금허구 함께 내가 안 판다고 우는 것을 어머니가 아범 시켜서 들리고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요.』

하고 흥분한 어조로 묻는다.

『글세.』

하고 수원 마나님은,

『그것은 자세히 알 수 없는데, 아무려나 내가 이삿짐을 묶노라고 다락을 치이는데 보꾹에서 그 거문고가 나왔단 말야. 아이! 얼마나 놀랍고도 반가운지. 아씨 세간이라고는 다 없애 버렸는데 이것 하나가 여기 남았구나, 인제 이걸 보시면 당장에 서낭에 난다고 없애 버리시겠구나 하고 눈물이 나겠지. 그래 그 거문고 집을 벗기고 보니깐, 왜 그 줄에 매다는 주머니 안 있수? 그 주머니가 이상하게 불록하길레 열어 보니까. 잊히지도 않수. 금비 나 세 개, 비취옥비나 세 개, 그리고 큰 구슬 한 개가 들고는 종이 조각에 다가 「이 거문고와 구슬은 인현이를 주고, 이 비녀 새쌍은 금봉이와 은봉이와 금순이가 자라거든 주시기를 비나이다」하고 썼겠지요. 잊히지도 않아. 그래서 어찌할까 하다가 마침 아버니 음성이 들리길내 거문고를 들고 내려 와서 보여 드리고 그 종이 쪽지도 보여 드리고, 그것이 보꾹에 있더라 고 여쭈었지. 아버니랑 어머니랑 모르시게 세 분께 드릴 생각도 났지마는 어른을 속여서는 못쓰겠구.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시구는 집구석에 이런 것이 있으니깐 어찌 집안이 편안하겠느냐고, 이것을 이렇게 감초아 둔 것은 나와 내 자식들이 병나 죽으라는 예방이라고 야단을 하시고, 그러시니깐 아버지께서도 나를 보시고 이런 것 나왔단 말을 애어 도련님과 아가씨들에게 발설 말라구 하시구는 이사짐을 묶다 마시고 그 거문고를 드시고 어디로 나가 버리셨지. 아마 갖다 파셨겠지.』

하고 웃고름으로 눈물을 씻는다.

인현이도 울고 금봉이와 은봉이도 울었다.

인현은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인현은 그 어머니의 심사를 샹각한 것이다.

인현이가 사랑하던 거문고---그것을 남편 때문에 팔았다가 다시 그것을 차마 놓치지 못하여서 따라 가서 찾았거나 도루 사왔을 것을 상상하였다.

그리고는 남편의 눈에 뜨일 것이 두려워서 다락 보꾹에 달아 두었다가 아마 죽기를 결심한 날에 그 주머니 속에 사 남매에게 주는 기념품을 넣고, 또 그 쪽지에 유언을 써넣었을 것이다. 아무리 무정한 남편이라도 죽은 아내의 아 마지막 유언---그것도 자기가 죽은 지 퍽 오래 뒤에야 발견되라고 예상한 유언만은 이행해 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 간절한 뜻은 조롱과 저주 중에서 유린되고 말았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인현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이 아프고, 그 어느 주구에게 대하여 원수를 갚고 싶은 듯한 생각까지도 났다. 그러나 그 원수가 갚아질 수 없는 원수 ---아버지인 것을 생각할 때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마나님두. 그래 그 말씀을 인제야 하시우?』

『어쩌면 칠팔 년이 되도록 그 말을 아니하신담.』

하고 금봉과 은봉은 눈물을 씻으면서 수원 마나님을 원망하였다.

『내가 어떻게 그 말을 하우? 지금은 세 분이 다 철이 나섰으니 말으 하지. 아직 세 분이 어렸을 적에 말을 했다가 그 말이 아버지 귀에 가면 큰일 날라구』

하고 수원 마나님은 가창을 열고 밖을 내다 보며,

『돌쇠놈이 노와서 영탐을 하고 엿을 들어다가는 마님께 일러바치니깐 말하기두 무서워. 애어 그런 말씀 내지 마시우!』

하고 세 사람에게 당부를 하고는, 이런 이야기를 발설한 죄나 씻으려는 듯이 슬며시 일어나서 나가 버린다.

『금순이도 살 줄 아시구.』

하고 금봉이가 죽은 어린 동생을 생각하면서 흘쩍거렸다.

인현은 제가 그리던 그림 쪽을, 높이 치어 들고,

『어머니! 어머니!』

하고 초혼하듯이 불렀다.

금봉은 어느 날 하학 시간에 복도에서 손 선생을 기다려 만나서,

『 선생님, 오늘 시간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손은 그 어리석어 보이는 눈을 크게 뜨며,

『왜?』

하고 반문하였다.

『좀 선생님께 여쭐 말씀이 있어서요.』

하고 금봉은 손의 눈치를 보았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 내 곧 가께.』

하고 아주 무심한 듯이 이 사실로 들어 가 버린다.

금봉은 사직골 손 선생의 집으로 갔다. 바로 사직단 대문을 오른편으로 끼고 돌아서 얼마 아니 가는 집이다.

손의 집에는 손의 부인이 앓고 누워 있었다. 그는 전보다 더 쇠약한 모양이었다.

『왜 입원을 아니하십니까?』

하고 금봉은 딱해서 물었다. 이 우중충한 안방에 혼자 누워서 꽁꽁 앓는 병인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글세 병원에라도 가보았으면 『 좋겠지마는 손 선생이 가라고 아니하는 것을 어떻게 가나.』

하고 손 부인은 아이구 아이구하고 앓는 소리를 하고 나서,

『내야 인제 이러다가 죽지. 어서 죽기나 해야겠는데 죽지도 않구. 자식이 있나……』

하고 전에 없이 비감하였다.

『 선생님이 어떻게 사모님을 입원하시게 아니하십니까?』

하고 금봉은 손 부인의 다리를 밟으며 물었다.

『어서 죽기를 바라는데 입원이 무슨 입원인가.』

하고 손 부인은 전에 없이 원망스러운 말을 한다. 금봉은 퍽 이상하게 생각 하였다. 그러나 그 이상 더 물어 불수도 없었다.

요와 이불에는 까맣게 때가 묻고 베갯잇도 더럽고 머듯하였다. 뼈만 남은 손 부인의 팔과 손에는 오래 묵은 때가 덕지덕지하였다. 금봉이도 그 결에 앉았기가 싫었다. 방안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병인의 몸에서는 이와 구더기가 기어 나올 것 같았다. 이 속에서 간호해 주는 사람도 없이 앓고 두러누운 손 부인이 불쌍도 하거니와, 사람이 병들면 이렇게 추해지는 가 하여 정이 떨어졌다. 금봉은 자기의 옥으로 깎은 듯한 토실토실한 손을 보고 손 부인의 참혹한 해골과 대조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언제까지 살더라도 손 부인과 같이 이런 참혹한 꼴은 안될 것 같았다.

금봉은 불쾌한 생각을 돌리려고,

『정순이 아직 안 왔어요?』

하고 물었다. 정순은 북간도서 온 아이로, 아버지는 감옥에 붙들려 간, 진실한 예수교 신자로, 동창들에게 예수라고 별명 듣는, 손 선생님 집에 와 있는 학생이다.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하고 손 부인은 숨이 막힐 듯이 고통을 하고 나서,

『정순이도 나갔지. 우리 집에 와서 한 달을 넘기는 사람이 있나?』

하고 오늘은 말마디마다 불평이 있다.

『왜요? 언제 나갔어요?』

하고 금봉은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손 선생이 가만 두나? 집에 온 지 열흘이 못해서 건드리려 드니 배겨 나나. 그동안 왔다 나간 학생이 몇인지 모르지.』

『어머나!』

하고 금봉은 눈을 크게 떴다. 도무지 믿어지지를 아니하였다.

『그저 깬가 아랫방에서 깩깩하고 정순이가 소리 지르는 소리가 나길래.

옳지 내일은 또 정순이가 나가는가 보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식전에 정순이가 눈이 뻘겋게 부어 가지고 나헌테 와서, 사모님 저는 어디 다른 데 동무가 오라고 해서 갑니다, 그러겠지. 그래, 오잘 가거라 하고 나는 그 애가 성하기나 했으면 하고 빌었지--- 사람인 줄 아니? 손 선생이 사람은 아니다. 요새에는 금봉이를 노리나 보아. 조심해야지.』

『아이 사모님두. 』

하고 금봉은 반은 진정으로 반은 손 부인을 위로하느라고,

『 선생님이 설마 그러실라구요. 저희들을 자식같이 귀애하시는 것을 사모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게지. 어떻게 설마 그러시겠옵니까?』

하기는 하나 노상 의심이 없지도 아니함였다. 금봉은 자기 아버지가 집에 두는 유모나 안잠재기나 계집애나 밴밴한 것이면 거드려서 가끔 풍파 일으키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반이나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손 부인도 좀 지나쳐 생각하는 것 만 같았다.

『설마? 흥.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이 모진 목숨이 왜 죽지를 아니하고……』

하고 손 부인은 그 해골 같은 팔로 방바닥을 한번 두드리고는,

『설마가 무에야.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했지.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니깐 아마 딸 모양으로 귀애하는 것이거니 하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만 생각했어. 열 계집 안 건드리는 사내 없다고, 남편이 어떻게 노상 오입안하기야 바랄 수 있나 해도 설마 제가 맡아 가르치는 제자야, 인형을 쓴 사람으로야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내이랴 하고 나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가했어. 건너방에 커다란 여학생을 다려다 놓고 단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꼴을 보면 마음에야 싫지 좋을 리가 있나. 아내의 마음이란 남편이 암코양이를 가까이해도 샘이 나는 것이어든, 그러니깐 손 선생이 여학생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지. 싫기는 싫어도 여학교 선생이니깐 할 수 없거니, 또 제가 가르치는 제자니까 딸과 같거니,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아무개가 불쌍하니 집에 갖다두까, 아무개가 갈 데가 없으니 집에다 갖다 두까 하고 날보고 의논을 하면, 아이 가엾어라, 그러시구려, 그래왔지. 내가 금봉이보고도 언제나 한번이나 선 ㅅㅇ을 으심하는 소리 하던가? 없지, 없었지. 설사 손 선생이 허물이 있기로소니 내가 내 남편의 흥담을 누구를 보고 한단 말인가. 한 마디 없었지. 아이구 아니구나. 저약 좀 집어 주어 먹으면 한참은 좀 아픈 것이 낫지마는 얼마 지나면 도루 그턱, 그져 죽어야 낫지.』

하고 금봉이가 「이거요?」「이거요?」하다가 짐어 주는 조그만한 우리병에 든 동글납작한 알약을 두 개를 내어서 먹는다. 그것은 마취하는 약으로, 손 이 아는 의사에게 얻어다가 주는 것이다.

손 부인은 약을 먹고 입을 다시고 나서,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깐 손 선생은 거짓말쟁이야. 여학생들을 집에 끌어 오는 것은 다 흑심을 가지고 끌어 오는 것이야.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요새에는 손 선생이 금봉이를 노리는 모양이니 조심하란 말야. 금봉이 불쌍하단 말을 요새에 노하고, 내가 금봉이는 참 이뻐, 얌전하고 이쁘고, 뉘집 며느리가 되겠느지 참 이쁘기도 하지---이런 소리를 하면 손 선생은 이쁘기야 무엇이 이뻐 하고, 금봉이가 이쁘지 않다고, 얌전하지도 않다고, 그저 불쌍한 하다고 그러는구먼. 이게 병이거든. 이쁜 사람을 이쁘지 않다고 하는 것이야요. 사내들이란 그렇게 음충맞어. 정순이두 저기 원 재주도 있고 얌전은 하지마는 얼굴이 못 생겨서, 어쩌고 어쩌고 하더니 기어이탈을 내고야 말아요. 금봉이도 조심해. 응? 나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학생들 중에 금봉이가 제일 정이들어. 나도 저런 딸이 있었으면, 금봉이를 낳은 금봉이 어머니는 얼마나 이쁘고 얌전하셨던고 하고 노 그렇게 생각한다우. 애어 손 선생 가까이하지 말아요. 겉으로는 그렇게 점잖은 척하고 어리숙해 보여도 여자라면 아주 정신이 없어요.』

하고 부인은 머리말에 물을 찾는다. 금봉은 아직 물이 남은 대접을 들고 나가서.

『더운 물 없수.』

하고 어덥더려 물어 보고는, 없다는 대답을 듣고 손수 수통에서 물을 떠 가지고 와서,

『더운 물이 없습니다. 냉수를 잡수셔서 어떻게 해.』

하고 머리맡에 놓았다.

『언제는 더운 물 먹어 보았나.』

하고 부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속에 붙는 불을 끄려는 듯이 벌떡벌떡 반 대접이나 들이킨다.

손 부인의 하소연을 듣고 금봉은 인생이 황혼과 같이 암담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손 선생이 아무리 음충맞다 하더라도 내야 설마 어떻게 하랴 하고 자존심을 가졌다.

금봉의 마음에 그리는 남편은 인물 잘나고 부자요, 대학이라도 동경 제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의 직업은 문사나 변호사나 의사일 것 이요, 전문 학교 출신이라든지 교수 이하의 교원이라든지는 금봉의 남편의 망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손 선생 따위는 도무지 문제도 되지 아니하였다. 그런 것을 손 부인이 그처럼 염려하는 것이 도리어 자기를 모욕하는 것만 같았다.

손 부인은 금봉이가 떠다 준 냉수를 벌떡벌떡 마시고 머리가 귀신같이 된 머리를 역정스럽게 때묻은 베개에 내어 던졌다. 금봉은 비뚤어진 그 베개를 바로 잡아 주었다.

부인은 서너 번 입맛을 다시더니,

『내 말을 허수히 듣지 말아요.』

하고 또 말을 시작한다---

『요새에 손 선생이 새로 장가 들 생각이 여간이 아닌 모양이야. 그도 그렇기도 하겠지. 내가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앓아서 귀신이 다 되었으니 그  만도 하지. 그렇거든 첩을 얻어. 누가 말라길래. 나도 이 집에 와서 아들 못 낳아 바친 것이 죄니깐 씨앗 보는 건 원망도 안 하우(손부인은 자기가 아이 못 낳는 것이 남편의 탓인 줄은 모른다. 손 선생은 친한 의사에게 정액을 검사해 달란 결과로 임질 때문에 생식 세포가 기운이 없는 듯하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것은 그 의사가 손에게 아주 절망을 주기를 두려워함이요.

기실은 생식 능력이 전혀 없음이 증명되었다. 이것을 부인은 무식해서 모르는 까닭에 자기가 아이 못 낳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하지마는 인제 날더러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라? 그건 안될 말이지. 아무리 졸라도 안 될 말이지. 우리 부모가 나를 어떻게 귀히 길렀다구. 그나 그뿐인가. 손 선생을 학비를 누가 대어 주고, 지금 먹고 사는 것이 다 뉘 덕이라고. 그런데 인제 내가 나이 많고 병이 들었다구 날더러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나가라?

그거 안될 말이지. 내가 송장이 되어서 나간 뒤에는 마음대로 하래. 어떤 년허구 살든지 어떤 년을 또 나와 같이 병신을 만들어 놓든지 내가 알 것 아니지만 내가 아직 실날 같은 목숨이라도 불어 있는데 나더러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라구? 안될 말이지. 아, 참 내 도장……』

하고 부인은 요 밑에 손을 넣어서 허겁지겁 무엇을 찾는다. 금봉은 요를 들고,

『이거야요?』

하고 조그마한 수주머니를 대신 찾아서 보였다.

『응, 그거. 그 속에 내 도장이 있어』

하고 손 부인은 비로소 안심을 하면서, 그 주머니를 만져 보아 분명히 도장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그 주머니를 요 밑에 깊이 집어 넣고,

『금봉이.』

하고 부른다.

『네』

하고 금봉은 침울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면서 대답하였다.

『내가 이혼장에 도장만 안 찍으면 이혼은 못하지?』

하고 움쑥 들어간 눈으로 금봉이를 바라본다. 그 흰자위만 남은 듯한 눈에는 불안이 가득하였다.

『글쎄요.』

하고 금봉이는 의심스러운 대답을 하였다. 금봉의 생각에는 만일 도장만이 필요하다면 다른 도장을 파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서 이 가련한 병자의 안심을 깨뜨리기는 차마 못하였다.

『아마 꼭 이 도장을 찍어야 하나 보아. 그러기에 날마다 날더러 도장을 찍어 내라고 졸르지.』

하고 손 부인은 다시 요 밑으로 손을 넣어서도 장 주머니를 만져 보고 안심하는 듯이 잠시 눈을 감더니,

『우리 오라비가 살아Tdaus야 제가 언감생심 날더러 이혼을 해 달래? 다릿 마댕이가 부러질라구. 생때 같은 사람이 왜 줒는담. 인제는 나를 누가 때려 죽인대두 말해 줄 사람두 없구.』

하고 부인은 비죽비죽 운다.

금봉의 팔뚝 시계가 여섯시를 지나도 손 선생은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전 가겠읍니다』

하고 외투와 목도리와 책보를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부인의 말을 듣고 나 니 손 선생을 대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여서 안 보고 가는 것이 도리어 좋을까 하였다.

『가아? 손 선생헌테 할 말이 있어서 왔던가?』

하고 부인은 작별 인사 대신으로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니야요, 사모님도 오래 못 뵈었구……』

하고 금봉은 손 선생께 할 말이 있어서 왔단 말을 차마 못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나와서 구두끈을 막 다 매는데 손 선생이 터덜거리고 들어오다가,

『왜? 가? 일이 좀 생겨서.』

하고 금봉의 앞을 딱 막아 서며,

『자, 들어가 저녁이나 먹고 가지.』

하고 금봉의 책보퉁이를 빼앗는다.

『아니야요. 늦게 들어 가면 집에서 걱정하시는 걸요. 가겠어요.』

하고 금봉은 손 선생이 빼앗았던 책보퉁이를 도루 빼앗으려 하였으나 손은 주지 아니하고,

『자, 들어 가. 무슨 할 말이 있다지? 말이나 하고 가렴.』

하고 금봉의 팔을 잡아서 강제로 마루에 끌어 올리려 든다. 평생 구두끈을 매는 일이 없는 손은 발을 내어 둘려서 구두를 벗어 던지고 마루에 울라섰다.

금봉은 할 수 없이 구두끈을 다시 끄르고 마루에 올라섰다.

금봉의 마음에는 이렇게 남의 뜻을 거절 못하는 부드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금봉의 숙명적 약점이었다.

손은 분주히 건너방으로 가서 불을 켜놓고 도루 내다보며,

『자, 이리 들어와!』

하고 금봉을 재촉하였다.

금봉은 안방으로 들어 갈까 건너방으로 돌어 갈까 하고 잠깐 망설이다가 손이 부르는 대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손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기가 싫어서 망설이고 서 있는 것을 손은 금봉의 어깨를 떠밀어서 아랫목에 다가 갖다 앉힌다. 금봉은 좀 무시무시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손은 부루루 안방으로 건너 가서 문을 열고 고개를 쑥 디밀며,

『어때? 그 약 먹으니까 좀 덜 아프지?』

하고 아내에게 병문안을 한다.

『괜찮아요.』

하고 부인은 힘없이 대답한다.

그리고는 손은 문을 벼락같이 도로 닫고 건너방으로 건너 와서 외투를 벗어 걸고 금봉이와 마주 앉는 위치에 앉는다. 금봉은 손이 안방에 건너 간 새에 손이 앉히던 자리를 버리고 윗목에 와서 외투도 입은 채로 끓어 앉았다.

손은 금봉이를 처음 앉혔던 자리를 잊어 버린 듯이 아무 항의도 아니하고 금봉이가 앉았던 wkl에 펄석 앉아서 시린 손을 녹이는 듯이 두 손을 자기 무릎 밑에 넣고 허리는 꾸부리고 고개를 번쩍 들고 금봉의 소곳한 모양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다. 손은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외투 벗어!』

하고 손은 금봉에게 명령하였다.

『괜찮아요.』

하고 금봉은 반항하는 듯이 한 개 안 채우고 남았던 단추를 마저 채웠다.

『 선생님.』

하고 손은 그 두껍고 검푸른 입술을 벌려서 희고 넓적한 이빨을 보였다.

『저의 집에서 저를 공부를 더 안 시키신대요.』

하고 금봉은 이왕 왔던 길이니 하려던 말이나 다 하자하고 말을 시작했다.

『아버님께서 학비를 안 주신단 말이지?』

하고 손은 눈을 끔벅끔벅벅하였다.

『네에, 그리고 졸업하는 대로 곧 혼인을 하라구요』

하고 금봉은 고개는 숙인 채로 눈을 한번 치떴다. 그 눈은 반짝 빛이 났다.

이때가 금봉이가 가장 아름다운때다.

『혼인?』

하고 손은 놀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네에.』

금봉의 입에서 나은 혼인이란 말은 손을 아프게 때렸다.

『혼인? 누구허구?』

하고 손은 무릎에 넣었던 두 손을 때어서 마치 서양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 때에 하는 모양으로 가슴에 겼는다.

금봉은 집에 있는 서사허구 혼인하란다는 말은 자존심을 상해서 할 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어디 정해 놓으신 데가 있어요. 혼인 날짜까지도 받아 놓으시고.』

『무어? 혼인 날짜까지 받았어?』

『네에.』

『그럼 금봉이는 어떡헐 테야?』

『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지요.』

손은 눈을 스르르 감고 한참이나 생각을 하더니,

『그러지 않아도 금봉이를 교비생으로 일본 유학을 시켜 볼까 하고 운동을 해보았지마는 학교 재정 형편이 전같지를 못해서……』

하고 또 눈을 감는다.

이 학교에서는 일 년에 한 사람씩 교비로 동경이나 내량의 여자 고등 사범 학교에 유학을 보내는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손이 학교에서 채를 잡은 뒤로는 웬 셈인지 학교의 수입은 해마다 줄었다. 교장은 아직도 손을 신임 하지마는 손을 신임하는 이는 교장뿐이요, 다른 이사들과 직원들은 학교의 재정을 문란하게 한 책임이 손에게 있다고 하여 손을 공격하였다. 더구나 근래에 손이 학생들에게 손을 대인다는 소문이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퍼지 기를 시작함으로부터는 손이 하는 말에는 아무쪼록 찬성을 하지 아니하게 되었다. 손이 금봉이를 기어이 교비로 유학을 시키려고 많이 애를 썼지마는 다른 이사들은,

『학교에서 빛을 지면서 어떻게 유학생을 보내오?』

하고 듣지 아니하였다.

금봉의 유학을 다른 이사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또 따로 있었다. 그것은 이 학교가 본래 귀족에 관계가 많은 학교인만큼 학생에도 양반 집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런데 금봉은 그 아버지가 애오개 가게 장사하는 사람일 뿐더러, 도무지 학교를 위하여 힘을 쓰는 일이 없고, 그 어머니는 기생이요, 또 그 재산은 부정하게 남의 것(노백린, 이 갑 등의 것)을 횡령한 것이며, 금봉의 어머니가 우물에 빠져 자살한 것이며, 게다가 아직 졸업 시험도 끝이 나기 전부터 손은 금봉이가 으레 수석으로 졸업이나 할 것처럼 금봉을 치살려서 금년도 교비 유학생은 으레 금봉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미웠다. 이런 모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다만 금봉의 일본 유학이 방해가 될 뿐더러, 금봉이가 그처럼 미인이요 재주가 있다고 하면서도 졸업 때가 가깝도록 상당한 집에서 청혼도 별로 없는 것이었다.

누가 금보에게 관한 말을 물으면 동무들이라도,

『그 기생의 딸.』

『거가게 장수 딸.』

하고 좋지 못하게 말하는 이도 적지 아니하였다. 선생들 중에도 금봉의 미와 재주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정이(본래 말로 지체가) 좋지 못한 것을 끼려서 힘써 추천하는 이가 적었다. 이럴수록 손 선생이 금봉이를 천사같이 추켜 세우는 것이 미웠다.

금봉이는 이러한 사정을 몰랐다. 자기로는 인물로나 재주로나 학교의 여 왕이어서 직원이나 학생이나 기타 누구나 다 자기를 우러러 보고 부러워하 는 줄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리수해 보여도 속으로는 밝고 음흉스런 손은 이러한 사정을 대개 짐작하고 있었고, 이 학교에서의 자기의 지위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짐작하고 있다. 손은 제 죄를 모를 사람은 아니다. 학교 소유지의 마름과 짜고 해마다 학교의 추수를 적지 않게 횡령하는 것이라 든지, 학교의 현금 예금을 유용하여 사사 이익을 보는 것이든지, 이런 것은 교장이 장부를 보 줄 모르는 무룽태 노인이기 때문에 아직 발라 맞춰 간다 하더라도 언제나 한번 희계 검사라는 문제만 나는 날이면 발각이 되고야 말 것을 손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나 그뿐인가 사오년래에 . 버려 준 여학생이 오룩인이나 되니, 다행히 그들이 잉태를 아니하고, 또 남이 부끄러워서 감추는 덕에 아직 무사하지마는, 고삐가 길면 밝히는 날이 있을 것도 손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지금 손이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발각되어서 자기가 학교를 쫓겨 나기 전에 마음에 드는 계집애 하나늘 손에 넣고, 그리고 학교 재산을 이리저리 흑작실을 하여 먹을 수 있는 대로 먹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때에 걸린 것이 여자로는 금봉이요, 학교 재산으로는 평택에 있는 한 이천 석 추수하는 논을 팔아서 강원도로 옮겨 사는 것이었다. 만일 이 통에 일생 먹을 것을 장만하지 못하면, 또 틈발리 마음에 드는 여자를 장만하지 못하면 손에게는 영원히 그러한 기회는 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손이 금봉이가 혼인한다는 말에 아니 놀랄 수가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럼 내가 한번 가서 아버님께 말씀을 해볼까?』

하고 손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안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셔도 안됩니다. 오빠가 의학 전문 학교에 입학까지 한 것도 입학금을 안 주어서 끌어 내리셨는데요. 아들 공부 안 시키는 어른이 딸 공부 시키겠어요?』

하고 금봉은 웃었다.

『그래두 내가 한번 가서 말해 보지.』

하고 손은 큰 결심으 한 듯이.

『만일 말씀해서 안 들으시면……』

하고는 안방에 말이 들릴까 보아서 가만히,

『만일 아버지가 안 들으시면 내가 금봉이 학비를 대주께. 그리고 음악 학교에 입학하면 상으로 피아노 하나 사주께』

하고 고개를 쑥 내밀면서 다정스럽게 말한다.

그리고는 금봉의 대답도 듣지 아니하고 외투를 입고 모자를 아무렇게나 머리에 집에 던져서 비뚤어지게 쓰고, 그리고는 안방으로 퉁퉁거리고 건너 가더니 문을 열고,

『여보, 내, 저, 금봉이 집에 좀 다녀오리다. 아버지가 학비를 아니 준다니, 내가 가서 좀 담판을 해주고 올라우.』

하고 역시 아내의 대답도 듣지도 아니하고 퉁퉁거리고 건너방으로 와서,

『자, 가---』

하고 금봉이를 재촉한다.

금봉은 마음에 합당치는 아니하나 하릴 없이 일어나서 안방에 가서 hs 부인께,

『저 갑니다.』

하고 인사를 하였으나 손 부인은 보지도 아니하고 대답도 아니하였다.

금봉은 손 부인의 태도에 귀밑까지 후끈함을 깨달으면서 손을 따라 나섰다. 안 올 것을 왔다, 아니할 말을 했다. 하고 무슨 불길한 일을 저지른 것만 같아서 찜찜 하였다.

손은 사직골서부터 야주개 전찻길까지 마치 곁에 금봉이가 따라 오는 것도 잊어 버린 것ㅊ럼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집에 넣고 한편 어깨를 다른 편 어깨보다 좀 더 높이 으쓱 웅숭그리고, 마치 길 가는 것까지도 잊어 버리고 무슨 생각에 취한 사람과 같았다.

이것을 볼 때에 손 부인에게 들은 손 선생의 흠담이 모두 거짓말인 것 같았다. 곁에 여자가 있더라도 눈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인격자인 손 선생을 병자인 부인이 공연히 오해하는 것만 잩았다. 그래서 좀 마음이 놓였다.

집 앞에 다다르니 금봉의 아버지 정규는 웬 자전거에 잔뜩 짐 실은 사람 하나를 붙들고 김 서방과 함께 힐난하고 있었다.

『글세, 이녁은 돈 남길 장사 한다고 물건은 사오면서 남의 돈은 안내인단 말요?』

하고 정규는 어성을 높였다.

『이 그믐 안으로는 꼭 들여 놓겠습니다. 이것을 갖다가 설 대목을 보아야 아니합니까?』

하고 그 자전거 남자는 빌었다.

『안되오. 이 짐 여기 두고 가서 돈 가지고 와서 찾아가오.』

하고 정규는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금봉은 아버지의 이렇게 천착스러운 꼴을 손 선생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아버지 곁으로 가서 아버지의 소매를 끌며,

『아버지, 우리 학교 손 이사 선생님이 오셨어요.』

하고 정규의 주의를 끌었다.

이때에 손이 정규 앞으로 와서 모자를 벗고 극히 공손하게 정규에게,

『안녕하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였다.

정규는 손 선생을 잘 알아 보지 못하는 듯이 싱겁게 고개를 끄떡하며,

『네, 내가 이 정규입니다. 이떻게 선생께서 이렇게 왕림해 계시오니까?』

하고 아주 점잖게 아주, 귀족적으로 인사를 하였다. 정규는 근년에 돈냥이 생기고 낫살이 먹게 되면서부터 돈에 손해 없는 한도 내에서 양반 행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규는 물론 손 선생이 누구인지를 알아 보았다. 손 선생은 학교 기금, 기타 문제로 두어 번 정규를 찾아 왔던 일이 있다. 그렇지마는 정규는 별로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대하여는 아모쪼록 아는 체 아니하는 버릇이 있었다. 버릇이라는 것보다도 그것은 이해 관계를 따진 정책이었따. 그랫 돈 내라는 일로 밖에는 오지 아니하는 손 선생에게 대하여 서는 초면 인사를 한 것이었다.

『이리 들어오시지요.』

하고 정규는 손을 인도하여 사랑이라고 일컫는 가게 옆방을 향하고 몇 걸음을 걷다가 다사 그 자전거 있는 곳으로 가서 김 서방에게 몇 마디 신칙을 하고 왔다. 그동안에 손 선생은 가게에 벌여 놓은 곡물, 어물 등속을 바라 보고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리 들어 오시지요.』

하고 정규는 손 선생을 방으로 인도하였다. 방은 단간방이요, 방바닥은 얼음장같이 찼다.

『돌쇠야. 담배 사오너라.』

하고 정규는 지갑에서 백동전 두 푼을 내어 들고 소리를 쳤다.

『조일 한 갑 사오너라.』

『담배 안 먹습니다.』

하고 손은 사양하였다.

『그 어떻게 담배를 안 잡수시오?』

하고 정규는 내어 들었던 돈을 도로 지갑에 넣어서 조끼주머니에 넣었다.

도배도 검고 장판도 검은 방에 십촉 전등은 유난히 어두운 것 같았다.

『큰따님이 졸업을 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시오니까?』

『내에. 저 미거한 것을 가르치시노라고……』

하고 정규는 특별히 감사하다고 일컬음 것도 없이 이만하고 끊었다. 또 졸업한 기회로 돈이나 내라는 거시 아닌가 하고 마음에 잔뜩 귀찮아한다.

『큰따님을 동경으로 유학을 보내시지요.』

하고 손은 본문제에 들어가서,

『학교에서도 큰따님의 재주를 아껴서 교비생으로라도 보내고 싶지마는, 작금년래로는 학교 재정 형편이 전 같지를 못해서 유감입니다. 그렇지마는 큰따님과 같은 재주를 그냥 썩히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하고 정규를 바라보았다. 정규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고 금봉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손 선생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금봉을 향하여,

『넌 들어 가려무나. 왜 학교 파하는 대로 와서 부엌일, 바느질 배우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말을 안 듣고 커다란 계집애가 어디를 늦도록 돌아 다니기만 한단 말이냐? 어서 들어 가!』

하여 아주 양반다운 어조로 금봉을 책망하여 들여 쫓아놓은 뒤에,

『여자가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넉넉하지요. 인제 그만 하면 음식 만들고 옷 꿰어 매는 것이나 배워 가지고 시집살이를 해야지요. 그것이 아직 철이 안 나서 음악을 배우네 무엇을 배우네 하고 공연히 마음이 들떠서 그러니, 선생께서도 그래서 못 쓴다고 좀 단단히 훈계를 하여줍시오.』

하고 손의 말문을 미리 꽉 막아 버린다.

그래도 손은,

『글세 범상한 사람이면야 영감 말씀대로 하는 것도 좋지마는 큰따님 금 봉이로 말씀하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있기 어려운 재질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고 구변과 뱃심을 부리려 할 때에 정규는 손의 말을 가로 막고,

『말씀하시는데 미안합니다마는, 그것은 다 쓸데 없는 말씀이지요, 지자는 막여부라고, 그애가 그렇게 뛰어난 애도 못되구요…⋯』

『아니 천만에, 그것은 영감께서 잘못 아시거나 너무 겸사를 하시는 말씀이시지, 큰따님으로 말씀하면 참으로……』

『천만에, 천만에! 애비가 제 자식을 모르겠습니다. 선생 같으신 이가 그렇게 추어 주신다고 기뻐할 내가 아니구요. 어쨌으나 내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알고요. 또 내 마음대로 할 터이니, 더 말씀 아니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뚝 잡아 멘다.

손은 대체 이런 사람도 있나, 이런 말법도 있나. 하고 한참은 하고 어이 가 없어서 물끄러미 정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규는 인제 할 말 다 하였 다는 듯이 장죽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아서 피워 물고 몸을 돌려서 손에게 등을 향하고 유리창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그 자전거군이 어찌 되었나 하는 것이 궁금도 하거니와, 손에게 더 말대꾸하기 싫다는 빛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만큼 핀잔을 당했으면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가버렸을 것이지마는, 손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성내는 것이 매양 불리한 줄을 아는 동시에, 아무러한 장애가 있더라도 하려던 말, 하려던 일은 다 하고야 마는 뱃심이 있다.

인제는 창피해서라도 일어나 가려니 하고 정규가 손이 간다고 작별할 때에 할 인사말까지도 다 마련해 놓고 있을 때에, 의외에도 손은 태연하게.

『만일 학비가 문제가 되신다면 내가 대어 주겠습니다. 아무렇게 해서라도 금봉이는 동경 유학을 꼭 시켜야 하겠습니다.』

하고 정규에게는 천만 의외인 새 제안을 하였다.

정규는 하도 의외여서 담뱃대를 입에서 매어 들고 한참이나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다가 담뱃대를 재떨이에 엎어 놓고, 단단히 차리고 손에게로 돌아 앉으며,

『노형은 대관절 얼마나 돈이 많으시길래 남의 집 딸자식 학비까지 대어 주신다고 하시오?』

하고 이제는 손더러 자못「노형」이라고 부르고 존대하는 것도 반쯤 낮추었다.

『내가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따님의 재주를 아껴서, 따님의 전정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요.』

하고 손은 열성과 힘을 들여서 선언하였다.

『대단히 고맙소이다. 그처럼 내 자식의 전정을 위해주시니.』

할 뿐, 정규는 다시 담뱃대를 집어 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럼 허락하십니까?』

하고 손을 다졌다.

『무얼 허락해요?』

하고 정규는 고개도 돌리지 아니하고 비웃는 어조를 묻는다.

『내가 학비를 대어서 따님을 유학시키는 것 말씀야요.』

그제야 정규는 손에게로 돌아 앉으면서,

『글세 이런 성화할 말씀이 있나, 원. 애비 된 사람이 안 시킨다는데 왜 노형이 그다지 성화를 하시오?』

하고 담뱃대 든 손으로 상앗대질을 한다.

『왜 그리고집을 하십니까?』

하고 손을 아직도 공격을 그치지 아니한다.

『고집이라니? 고집은 이녁이 하면서 날더러 한다고 그러오?』

하고 정구의 말은 점점 존대를 잃는다.

『그럼 영감께서는 기어이 따님을 더 공부를 아니 시키시고 시집을 보내셔야 하겠단 말씀입니까?』

하고 손은 적에게 대하여 마주 폭탄을 던졌다.

내 딸을 시집을 보내든지 『 혼자 늙히든지 그것까지 학교에서 아랑곳할 것이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정규의 말에는 다시 존대가 붙는다. 손의 말에 세 번째 나은 그 「영감에서」라는 문자가 퍽 정규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정교 노릇밖에 못해 본 정규는 남에게 「영감」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래서 말 없이 일어나서 외투를 입고 말뚝에 걸린 모자를 벗겨 쓰고,

『갑니다.』

하고 구드를 신고 나섰다.

손은 일생에 이처럼 망신을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정규는 따라 나 오지도 아니하고 잘 가라는 인사도 아니하고, 혼잣말로, 마치 손이 들이라 하는 듯이.

『어 미친 녀석이로군. 내 그런 추군추군한 녀석은 처음 보는군.』

하고 중얼거렸다.

문밖에 숨어서 자초지종을 다 엿듣고 섰던 금봉은 어쩔 줄을 모르고 손 선생의 뒤를 따라 나갔다. 대문을 나서서 몇 걸음을 가서야 금봉은 한걸음 빨리 걸어 손의 곁으로 바싹 다가 서며,

『아이, 선생님 괜히 오셨어요. 저는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아이 선생님.』

하고 미안한 뜻을 표하였다.

손은 금봉의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금봉이가 곁에 따라 오는 것을 아는 체도 아니하고, 몇 걸음을 가다가 우뚝 서서 고개를 쑥 내밀어 어두운 속에 금봉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금봉이, 염려 말어, 금봉이 학비는 내 당해 주께 일본가! 금봉이, 마음만 변치 말어!』

하고는 금봉의 손을 더듬어 악수를 하였다. 금봉은 미안과 감사와 아울러서 손 선생의 손뚜껑 같은 손을 힘껏 쥐었다.

금봉은 애오게 마루터기에서 손과 작별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로 아버지에게 호출을 당하였다.

『너 이년! 그래 그 미친 녀석헌데 가서, 응, 애비가 학비를 주느니 안 주느니, 응, 시집을 가라느니 어쩌느니하고, 그녀석더러 나를 좀 훈계를 해 달라고, 응, 하소연을 하였단 말이냐! 응, 이년, 애비 꼴은 무엇이 되고, 고이한 년 같으니! 그도 사람이나 사람놈 같으면 모르지, 도야지 주둥이에 두꺼비 상바닥을 해가지고, 원, 이건 인사를 아나, 체면을 아나, 핀잔을 아 나, 흥, 학비를 당해 주어? 그놈이 왜 네 학비를 당해 주어? 네 친삼촌이란 말이냐 외삼촌이란 말이냐, ? 그놈이 속이 음충맞이서 딴 생각을 두고 그러지. 그래 요새 세상에 제 돈 가지고 남의 딸자식 학비 대주는 부처님 어디 있다든? 아무리 철 한푼어치 없는 년이기로 그것에 속아? 원 그따윗놈이 학교 이사야? 학교는 잘되겠다. 그런 놈들 밑에서 배우니까 자식들이 애비 말도 안 듣게 되는 것이야. 이년 다시 그런 녀석을 따라다녔단 보아라. 어서 딴전 말고 애비시키는 대로만 해!』

하고 정규는 의외에 은화하게 금봉이를 훈계하고 말았다. 이만하면 온화한 것이었다.

『오, 들이니깐……』

하고 김씨가 곁에 있다가,

『네가 학교에 갑네 하고 어떤 사내 집에 놀러 댕긴다는 소문이 있더니 아마 그게 그 녀석인가 보구나. 아직 귀밑에 피도 아니 마른 계집애가 왜 밤중에 남의 사내를 E라 댕겨?』

하고 꾸중을 하였다.

『아이, 어머니두. 그 어른은 교장 다음가는 우리 학교 이사 선생이랍니다.』

하고 금봉은 분통이 터지려 하였다.

『교장 다음 아니라 교장 할애비로 간대도, 행사가 불상놈이지 왜 과년한 남의 지 계집애를 끌고 댕겨? 또 따라는 왜 댕기고? 기생이드냐. 줄줄 남의 사내를 따라다니게?』

하고 김씨는 바르르 떨었다.

금봉은 「기생이냐」는 말에 제 입술이 문드러져라 하고 깨물고 분함을 참았다. 그리고 졸업식 하는 날로 이 집을 뛰어 나리라 하고 굳게굳게 결심하였다.

졸업식날이 왔다. 금봉은 예상한 바와 같이 우등 첫째로 졸업을 하게 되어 졸업식날에 졸업생을 대표하여 답사를 하는 직분을 맡았다. 이날 금봉은 연분흥 치마에 연분흥 저고리를 입고 흰 스타킹에 검은 구두를 신었다. 졸업 증서가 수여되고 교장의 훈사와 내빈의 축사가 끝난 뒤에 금봉은 여러 백명 손님의 주목을 흠뻑 한 몸에 받으면서 연단 앞에 나섰다. 금봉의 모양은 바로 꽃 한송이였다. 금봉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미리 준비하였던 답사를 말하였다. 그의 음성은 음악이요, 그의 말은 시였다. 금봉은 시 짓기를 좋아하였거니와, 이날의 답사는 결코 일장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요, 모교와 여러 선생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 깊은 모교가 여러 선생과 또 정든 동창을 떠나는 가슴 아픈 정을 간곡하게 발표한 서정시였다. 그것은 낭독이 아니요 연설이었다.

금봉의 담사가 끝나매, 늙은 교장 아울러 일동은 일제히 박수하였다. 여자들 중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이조차 있었다. 그러나 답사를 마치고 돌아 서는 금봉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자기의 일생의 이 첫번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보아 주는 이가 누구냐. 어머니는 죽어서 못 오고, 아버지는 살아 있으면서도 계모의 눈치를 봄인지, 진실로 자기를 미워함인지, 오지 아니하였고, 오빠는 도무지 사람 모이는 데를 가지 않는다 하여 오지 아니 하고, 어디 대리할 사람이 없어서 서사 김 서방이 구질레한 꼴을 하고 학부형석에 와 앉았다.---이런 생각을 하고 금봉은 자리에 돌아 와 앉기도 전에 울음이 터져서 식이 다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다.

강당 밖에서 김 서방이 앞서 나와서 지키고 섰다가,

『오늘 참말 잘하셨소. 천상 선녀 같았소.』

하고 싱글싱글하며 반말지거리를 붙였다.

금봉은 김 서방을 보고,

『무엇하러 왔소?』

하고 날카롭게 바늘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화가나는 이 자리에 김 서방이 가장 남편인 체하는 꼴이 더욱 금봉의 화를 돋구었다.

김 서방은 머쓱하여 물러서면서,

『아버니께서 가보고 같이 오라고 그러십데다.』

하였다. 김 서방의 기쁨으로 울렁거리던 심장은 이 견디지 못할 핀잔으로 아주 뛰기를 그쳐 버리는 듯하였다.

이윽고 졸업식이 파하여 손님들은 다과회석으로 들어가고, 졸업생과 할생 들은 우루루 마당으로 밀려 나왔다.

『아이구 언니, 인제 떠나면 언제 만나?』

『아이 금봉아, 오늘 참 잘했어 어쩌면!』

『너 일본 간대드구나. 넌 좋아.』

금봉을 붙들고 동무들은 이러한 소리들을 하였다. 여자들이 한번 떠나면 다시 만나기는 심히 어려운 것같이 생각되어서 평소에 그리 정답게 지내지 아니하던 동무들까지도 서로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작별하기를 섭섭하게 여 겼다.

『저이가 누구야? 네 오빠? 네 하스?』

하고 어떤 동무가 김 서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물을 떼에는 금봉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 망할 녀석이 < 왜 가지를 아니하고 아직도 여기서 기웃거려?>

하고 흙이라도 한 줌 짐어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금봉은,

『망할 것, 우리 집 상노야.』

하고 가볍게 대답하였다.

『얘야, 너의 집에선 시집 가라고 안 하니?』

하고 어떤 동무는 걱정이나 하는 듯이 개를 흔들며,

『자꾸만 시집을 가라니, 부모들은 왜 그리 시집에 상성이냐. 가고 싶다 는 학교에는 안된다고, 가기 싫다는 시집만 한사코 가라니, 너는 안 그래, 금봉아?』

하는 이도 있었다.

『집에 두면 구찮으니깐 그러시지들.』

하고 한 애가 깔깔 웃었다.

『시집 안 가는 여자 어디 있나? 여자로 생긴 것 다시집을 가나 보더라 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럼, 시집 가서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쫓겨 나는 사람도 있고, 과부 되는 사람도 있고, 소박더이로 지지리 천대받는 사람도 있고, 가지각색이지. 그중에는 의초 좋게 잘 사는 내외도 있겠지마는.』

하고 어떤 키 작은 애가 말을 하니, 곁에서 누나,

『망할 것, 아주 시집이나 여남은 번 다녀 온 것처럼 말하네.』

하고 깔깔 웃는다.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데까. 고추당주 맵다 해도 시집에서 더 태우리란다 애. 난 사집 안 가!』

하고 한 애가 가슴을 쑥 내민다.

금봉은 동무들의 이런 모든 소리가 자기 하나를 두고 하는 말만 같았다.

그래서 다만 인사성으로 상긋상긋 웃을 따름이요, 더 대꾸를 아니하였다.

『금봉이, 금봉이!』

하고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금봉이보다 두 반 앞서서 졸업한 이 학교 동창으로, 지금이 이 학교 교비생으로 동경 여자 고등 사범 학교에 가 있는 강영자(姜英子)라는 이였다. 그는 봄방학에 집에 돌아 왔다가 모교의 졸업식에 참네한 것이었다.

강영자도 손명규 선생의 알선으로 교비생이 된 여자였다. 그도 재주는 있으나 본래 그리 좋지 못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서 손 선생의 추천이 아니면 도저히 이 학교 교비생이 될 자격은 없었다. 손 선생은 이 학교에서는 마치 대원군 모양으로 양반 타파에는 큰 공로자였고, 또 강영자를 교비생으로 추천할 때까지에는 제가 가르치는 제자에게 손을 대일 생각까지는 나지 아니하였었다.

금봉은 영자에게 불려 들어갔다. 그것은 손 선생이 있는 이사실이었다.

손 선생은 없고, 거기는 ud자보다도 한 해 전 졸업생으로, 역시 이 학교 교 비생인 최 을남이도 있었다. 최 을남이도 손 선생의 추천을 받은 교비생으로, 그도 영자와 같이 동경 여자 고등 사범 학교에 있었다.

금봉은 처음에는 을남의 사랑을 받았고, 을남이가 졸업한 뒤에는 영자의 사랑을 받아서, 두 사람을 다 언니라고 부르고, 영자도 을남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처럼 사이가 좋았다.

『요으오메데도 우(축하하오)!』

하고 을남은 금봉의 손을 잡아 옆에 있는 교의에 앉혔다.

을남은 금봉을 옆에 앉혀 놓고 마치 어머니가 귀여운 딸이나 바라보듯이 말 없이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가,

『아이 언니두, 왜 그리 바라보시우?』

하고 금봉은 붉힌 낯을 두 손으로 싼다. 열 서너 살 때에 을 남에게 귀염받던 심리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

『참 미인야.』

하고 을남은 황홀하였던 끝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이,

『어쩌면 금봉이가 그렇게 미인이 되었어. 어렸을 적에도 이뻣지마는 우리가 학교에 있을 적보다는 열 갑절은 더 이뻐진 것 같야. 안 그래, 영 자?』

하고 빙긋빙긋 웃고 앉았는 영자를 본다.

『참 이뻐.』

하고 영자는 오직 한 마디로 인사를 치를 뿐이었다. 그는 수줍고 말이 적었다.

『샘이 나서 어떡허니.』

하고 을남은 시치미를 떼고,

『인제 금봉이가 동경을 가면 남학생들이 지랄을 할 것이다. 우리 따위가 가도 한타스두 타스씩은 꽁뮈를 줄줄 따라 댕기는데, 글쎄 요것이 동경바닥에 가보아요. 모두들 정신이 빠질 터이니, 안 그래 영자? 내가 사내 같으면 그야말로 부귀와 생명을 다 희생하고라도 금봉이를 사랑할 테야. 왕국과 제국을 다 희생하고라도. 그까짓 왕국은 무엇이고 제국은 다 무엇이야. 이런 미인이 천 년에 하나가 날지 만 년에 하나가 날지 아니? 이 우주가 벼르고 별러서 요것을 하나 낳아 놓았지.』

『남자는 모름지기 이 금봉이를 사랑할지어다.』

한다.

영자는 입을 싸고 웃으면서,

『참 언니는 구변도 좋소. 마치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나오는 세리프 한 구절 같구려!』하고 웃음 소리를 아니 내려고 애를 쓴다. 영자는 얼굴이 좁음하고 몸이 강강하게 생기고 얌전한 타이프의 여자인테 대하여, 을남은 육체가 풍부하고 눈이 빛나고 입이 좀 넓은 약간 헤벌어진 듯한 쾌활한 여자였다. 을남은 영문학을, 영잔ㄴ 가사과를 배우고 있었다.

『아이 언니두!』

하고 을남은 금봉을 붙들어 앉히며,

『정말야. 동경바닥에 너를 내다 놓아도 너보다 더 이쁜 여자는 일천 구백 삼십년까지는 없을 것이다---앞으로 십 오년은.』

하고 끝끝내 금봉을 칭찬하다가,

『그런데 이 손 선생이 웬일이야. 어디 갔다가 우리 여기 두고 간 줄을 잊었나 보다. 족히 잊을 위인이어든.』

하고 금봉의 미인 타형을 뚝 끊고, 새로 각설로,

『그런데 말이야. 왜 금봉이를 불렀는고 하니 말야, 손 선생이 금봉이를 일본을 못 보내서 아주 허겁지겁이시거든, 그래 날보고 의논을 하시길래, 내가 이랬지, 손 선생이 금봉이를 학비를 당해 준다는 것이 세상에 말썽이 될 것 같아서 혐의쩍거든 내가 금봉이를 학비를 당해 주는 것으로 하자고, 그랬더니 말야. 손 선생이 어째 찜찜해 하시거든. 내 곧 알아 차렸지.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오빠가 금봉이를 가까이할 핑계를 줄까 봐서 그러는 모양이어든.』

『설마?』

하고 영자가 항의를 한다.

『그야 그럼, 강영자씨가 계시니깐 우리 오빠가 언감생심 그럴 염려는 없지마는, 손 선생이야 그것을 아나? 그래서……』

하고 을남이가 영자를 보고 윙크를 하는 것을 영자가 얼굴을 고추같이 빨갛게 물들이며,

『아이 언니두! 그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우?』

하고 고개를 돌린다.

『영자, 농담이니 노여지 말라구.』

하고 을남은 영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나서, 그래 내가 이랬지 『 , 그러면 영자가 학비를 당해 주는 것으로 하시지요.

영자는 오빠도 없으니, 하고 그랬더니 손 선생이 그 큰 눈을 뒤룩뒤룩하시겠지. 하하하하. 어떻게 우스운지.』

하고 한참 웃고 난 뒤에,

『어때? 그러면 괜찮지. 그러면 금봉이 아버지도 아무반대도 없으실 터이지?』

하고 금봉을 바라본다.

『그래두 아버지는 안 허하셔』

하고 금봉은 수심을 띤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살 흔든다.

『왜?』

『학비 줄 돈이 없어서 그러시나,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니깐 그러시지. 남의 학비를 얻어 쓴다면 아버지 망신된다고 야단하셔.』

을남은 금봉의 말에 낙심한 듯이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학비를 주시지도 않구. 남이 준다는 것을 받지도 못하게 하구. 그 아버지 어디 쓰겠나. 갖다가 조선 호텔 앞 고물상에 나 팔아 버리지. 서양 사람이나 골동품으로 사가라구.』

하고 웃지도 않는다.

영자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는다. 금봉이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

아직도 손 선생은 안 들어 온다.

『그럼 별 수 없네.』

하고 을남은,

『금봉이도 달아나지. 일본으로 달아나. 난 안 달아나구 영자는 안 달아났다. 조선에서 딸 일본 가거라 하고 선선히 허락할아버지가 몇이나 될라구』

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이 영자를 바라본다.

『글세, 금봉이 아버지가 여간 극성 패시야지. 달아나면 붙들러나 dkl 오 시까?

하고 영자는 근심하는 빛을 보인다.

『그보다도 걱정이 있어.』

하고 을남이가 갑자기 침울해진다.

영자와 금봉은 을남을 바라본다.

『요새에 손 선생의 평판이 대단히 좋지 못한 모양이야.』

하고 을남은 어성을 낮추어서,

『우리 있을 적에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이번에 와서 들어 보니깐 손 선생이 학교 아이들을 많이 건드렸대. 세상에서 하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마는, 우리가 알기에도 족히 그럴 위인 아니야? 사람이 좀 이상하지. 안 그래 영자? 내가 알기에는 그이가 남학비 당해 줄 재산이 있을 것 같지 아니한 데, 어떻게 금봉이를 학비를 당해 부모와 여러 형제서 근근히 계량이나 하고, 학교에서 받는 월급이라야 백원이나 되나? 게다가 부인은 앓구, 무슨 돈으로 금봉이 학비를 당해 준다는지 모르지. 돈보다도 글쎄. 왜 그다지 글쎄. 금봉이를 일본을 보내려고 애를 쓸까. 무슨 딴 생각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금봉이 손 선생이 금봉이게 무슨 수상한 것 없어? 말로라도 말야.』

하고 미안한 듯이 금봉이를 바라본다.

『아니!』

하고 금봉이는 확실히 부인하였다. 그 순간에는 마치 노성한 여자와 같았다. 그러나 금봉은 손 부인이 하던 말으 한번 더 기억에서 끌어 내일 때에 불쾌한 생각이 없지도 아니하였다.

『설마 어떻겠어요?』

하고 영자가 한 마디 넣는다.

『그야 금봉이만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야 염려 없지마는, 그래도 남의 식은 밥 한 술이라도 받으면 어렵거든. 금봉이 정신 차례! 사내가 여자에게 친절히 할 때에는 대개는 제 욕심이 있어서 그러는 줄만 알아요. 여자가 한번 사내헌테 넘어가면 그 다음엔 넝마야.』

하고 을남은 자기가 아내 있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받는 고통을 생각해 본다.

영자도 을남과 같이 침울해진다. 금봉도 길게 한숨을 쉬인다.

기어이 금봉은 손 명규의 학비를 받기로 하고 아버지 몰래 동경을 향해서 떠나기로 되었다. 우에노 음악 학교 입학 시기는 이미 놓쳐 버렸으니 일 년 동안은 동경 어떤 사립 음악 학교에서 준비를 하기로 되었다.

을남과 영자는 방학 동안에 하루라도 더 집에 있는다고 해서 사월이 되거든 가기로 하였으나, 금봉과 김 서방과의 혼인날인 음력 이월 이십 이일은 양력으로 삼월 이십 팔일이었으므로 그 전에 도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금봉은 삼월 이십 오일 밤차로 남대문을 떠기다로 작정하고 집에 있는 며칠 동안은 아주 얌전하게, 아버지 뜻을 받아서 앞치마를 입고 부엌일도 보고 또 바느질도 배우는 체하였다.

김 서방이 저를 보고 싱글싱글하더라도 핀찬도 아니 주었다.

그러다가 예정한 날짜보다 하루 늦어서 이십 육일, 즉 혼인날 전전날에 금봉은 저녁상을 치르고 영자 집에 다녀온다고 당당하게 아버지한테 말미를 얻어 가지고 인현에게만, 귓속으로 일본 간단 말을 하고, 자기의 혼인을 위 해서 잔치를 차리노라고 북적북적하는 집을 빠져 나왔다. 정규는 금봉이가 마음을 잡은 것을 기뻐하여 안심하고 말미를 준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정규는 딸을 찾아오는 동무 중에 강영자를 가장 얌전하게 보았던 것이다.

금봉은 집을 떠나는 것이 섭섭한 것도 모르고 그저 일본으로 가게 된 것만 기뻤다. 지금까지 괴롭고 쓰리던 집 생활이 이것으로 다 청산된 것 같았다.

남대문역을 피하여 용산에서차를 타기로 하였다. 영자의 집에서 손 선생 과 을남을 만나서 손 선생은 먼저 표도 사고 짐도 부치노라고 정거장으로 나가고, 금봉은 을남과 영자 두 언니와 함께 차 시간 임박해서 정거장으로 나갔다. 금봉의 짐이란 것은 손 선생이 준비한 이부자리, 기타 여자의 일용품 등속이었다.

용산역에서 금봉은 손 선생과 두 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도 평택까지 갈 일이 있어서.』

하고 손 선생도 같이 차를 탄 타는 뜻을 표할 때에는 금봉은 한끝 겁도 나고, 한 끝 부끄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을남이가 금봉이를,

『아까 일른말을 잊지 말어!』

하는 듯이 눈을 끔적할 때에는 차에서 뛰에 내리고 싶은 생각까지도 났다.

그러나 금봉은 가다가 죽을지언정 다시 집에는 아니 들어 가리라고 결심하였다.

<죽으면 고만이지.>

하고 금봉은 처녀성을 죽기로써 지키리라는 처녀다운 결심을 하였다.

『동경서 만나, 응?』

『우리도 사월 초닷새 전으론 가께.』

이러한 말로 을남과 영자는 금봉에게 작별 인사를 주고 차가 플랫포음을 벗어나기까지 두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고 섰는 것을 금봉은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금봉의 눈에는 아직을 남과 영자 두 사람의 모양이 보이는데, 그 두 사람의 눈에는 금봉이가 아니 보이는지, 둘이서 돌아 서서 빠른 걸음으로 출구를 향하고 나가는 것이 금봉에게는 퍽 섭섭했다. 금봉이가 창으로 내밀었던 고개를 들이키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을 때에 손 선생은,

『여기 앉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보아서 점령하고 있던 창 밑에 자리를 금봉에게 사양하였다.

『 선생님, 여기 앉으시지요.』

하고 금봉은 이웃 사람이 다 들을 만한 큰소리로 사양하는 말을 하였다. 금봉은 이웃 사람에게 자기와 손과는 사제간이다. 하는 것을 선언하여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서 앉아.』

하고 다시 권할 때에야 금봉은 비로소 손 선생이 주는 자리에 앉았다.

차는 우렁한 소리를 내이며 한강의 철교를 건넌다.

금봉은 아무것도 아니 보이는 허공에 빨가숭이 몸이 혼자 둥실 나뜬 것과 같은 불안을 느꼈다. 더구나 도무지 같이 간다는 뜻을 보이지도 아니하던 손 선생이 곁에 같이 간다는 뜻을 보이지도 아니하던 손 선생이 곁에 같이 타고 오는 것이 의심도 스럽고 겁도 났다.

<나는 어디로 가나?>

하고 금봉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는 심히 좁았다. 한 자리를 혼자 잡아 가지고 누워서 자는 체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대개는 한 자리에 셋씩않고도 서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 금봉이가 앉은 자리에는 금봉이와 뚱뚱한 손 선생이 앉고, 그리고 웬 동저고릿바람으로 캡을 쓴 이십 내외된 청년이 궁 등이만을 조금 붙이고 가로 앉았다. 스 티임이 어지간히 더운데다가 손 선생의 몸이 금봉의 옆에 꼭 붙어서 금봉은 번열함을 느끼는 동시에, 비록 여러 겹의 웃으로 새를 막았다 하더라도 남자와 이렇게 몸을 마주 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불안하여 초조한 생각이 났다.

『벌써 수원이야.』

하고 손 선생은 어깨로 금봉의 턱을 비비며 창으로 내다보았다. 금봉은 고개를 담벼락 쪽으로 돌려서 손 선생의 몸이 제 낯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금봉의 생각에 얼굴은 더욱 남자의 몸에 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금봉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영 졸리지는 아니하였다.

꼼빡 졸기만 하면 도적맞을 무엇이 있는 것만 같아서 눈을 감을수록 전신의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이봐.』

하고 또 얼마 후에 손 선생이 금봉이를 불렀다.

『네.』

하고 금봉은 자다가 깨는 모양으로 눈을 떴다.

『요담이 천안인데, 천안서 내려서 온양 온천에 가자고 내일 낮차로 갈까?』

하고 손 선생은 금봉의 눈치를 본다.

『아이, 바루 가세요.』

하고 금봉은 손 선생의 말을 거절하였다. 금봉은 여태껏 이처럼 선생의 말을 단박에 거절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금봉의 속에 있는 무슨 힘이, 또 혹은 금봉의 밖에, 위에 있는 무슨 힘이, 또 혹은 금봉의 밖에, 위에 있는 무슨 명령이 이 단호한 처치를 취하게 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아차로 가면 낮배를 타게 된다 말야. 낮배는 밤배보다 배도 작고 또 사람도 많이 타구. 그래서 낮배는 멀미가 더 나. 그러니께 온양 가서 자고 내일 낮차를 타면 밤배를 타게 되거든.』

하고 손 선생은 자기의 제안에 이유를 주었다.

『싫어요. 그냥 가요. 선생님은 평택에서 내리시지 않습니까. 전 낮배라도 괜찮아요.』

하고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는 듯이 금봉은 눈을 감아 버렸다.

천안이 지났다.

<인제 살아났다.>

하고 금봉은 속으로 웃었다. 열 일곱 살 되는 금봉도 인제 와서 손 선생의 속을 다 안 것 같았다. 저를 귀애 주는 것, 야오개 마루터기에서 제 손을 잡은 것, 아무 말도 아니하다가 오늘 밤에 같이 차를 탄 것---이것들이 다 무슨 뜻인지를 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손 선생이란 사람이 저 천길 만길 되는 지옥 밑에서 정욕에 주려서 싱글벙글하는 동물과 같았다. 한껏 불쾌하기도 하지마는, 또 자기가 이 동물의 꾀에 넘어가지 아니한 것이 유쾌하기도 하였다.

이 유쾌한 생각에 금봉은 꼬빡 졸았다.

『퍽 곤한 모양이야. 잘 자는데.』

하고 손 선생이, 금봉이가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웃으면서 말을 붙인다. 금봉은 깜짝 놀라는 듯이 팔뚝 시계를 보았다. 새로 세시!

『아이구. 내가 몇 시간을 잤어?』

하고 금봉은 낯을 붉혔다. 금봉은 아직 어린애였다. 금봉이가 자는 동안에 맞은편에 앉았던 일본 사람이 내리고 그 자리에 갓에 감투 받쳐 쓰고 깃 느즛한 두루마기 입은 노인이 앉아 있고 그 곁에는 젖먹이 어린애 안은 젊은 부인이 있었다.

『세 시간이나 잤지.』

하고 손 선생은 싱글벙글 웃었다.

『이 다음이 어디야요?』

『대전이 얼마 안 남았어. 그러지 않아도 깨우려고 했어.』

『 선생님 평택서 왜 안 내리셨어요?』

하고 금봉은 책망하는 듯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금봉이가 자나깐 내릴 수가 있나?』

하고 손은 둘러 대었다.

『왜 평택 서 안 내리셨어요?』

하고 금봉은 한번 더 손을 책망하였다.

금봉의 「왜 평택 서 안 내렸느냐」는 책망에 손을 잠깐 무안하여서 고개를 숙였다. 얼마 있다가 손은 답변할 재료를 꾸며 내어서.

『아무려면, 밤에 내리기로 밤중에 일보나. 자, 대전서 내리자구. 계룡산 알지? 계룡산 구경할 겸 유성 온천에서 목욕이나 하구 내일---인제는 애일로 아니로구먼, 이따가 오후 네시 차를 타고 부산 가면 밤배 시간이 되거든. 암만 해도 밤배가 나아.』

하였다.

『아이 싫어요. 계룡산은 이 다음에 보지요. 선생님은 대전서 내리셔요.

저는 바로 갈 테야요.』

하고 금봉은 얼른 머리 속에 좋은 꾀가 하나 나는 것을 붙들어.

『그러다가 아버지가 찾아 떠나시든지 하면 어찌합니까. 어서 동경을 가 버려야지.』

하였다.

『괜찮아. 자 내릴 준비해.』

하고 손은 시렁에 얹은 가방을 내리려 든다. 손의 것을 내릴 때까지는 가만 두었다가 금봉의 것을 내리려 할 때에는 금봉은 일어나서 손 선생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 선생님. 저는 대전서 안 내려요. 그냥 보내 주셔요.』

하고 금봉은 애원하는 눈으로 손의 눈을 바라보았다.

손은 시렁에 손을 얹은 채로 잠깐 주저하였으나 부득부득 금봉의 바스켓도 내려 놓았다.

마침 승객들은 대개 잠이 들어서 금봉이와 손과의 이 연극을 주먹하는 이 가 적었지마는, 맞은 편에 앉은 노인은 이 해괴한 꼴을 장히 괘씸하게 보는 듯이 가끔 손 선생과 금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외면하였다. 캡을 쓴 그 청년은 매우 흥미가 있는 듯이 곁눈으로 열심히 사건의 발전을 주목하고 있었다. 젖먹이를 안은 젊은 부인은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이라 하는 듯이 눈을 내려 뜨고 있었다.

『다이덴, 다이덴.』

하는 역부의 소리가 들리며 차는 전기불이 휘황한 대전역에 섰다. 개찰구에 자다가 나온 듯한 사람 오룩인이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내려.』

하는 손은 자기 외투를 떼어 입고 모자를 비뚜름히 머리 위에 던지고, 금봉의 외투를 벗겨서 금봉의 무릎 위에 놓아 주고 자기는 두 손에 짐을 들고 서너 걸음 문을 향하고 걸었다.

『전 안 내려요!』

하고 금봉은 귀찮은 듯이 화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플랫 포음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

『그 왜 그리 말을 안 들어!』

하는 손 선생의 소리가 들려 오지마는, 금봉은 모른 체하고 있었다. 그까짓 짐 가지고 갈 테면 가거라. 그까짓 차표도 안 주겠거든 말아라. 그까짓 학비도 싫거든 고만두어라 하고 금봉은 손이 학비라는 미끼로 제 처녀성을 산 듯이 생각하는 꼴을 보고 분개하였다.

『왜 안 일어나 글쎄?』

하고 손 선생은 성도 나고 무안도 한 얼굴로 금봉의 옆에 와서서.

『글세 왜 안 일어나? 거, 원 그런 고집두 있나. 내렸다가 오후 차 타고 가면 마찬가지라니까 그러네. 자, 어서 일어나!』

하고 금봉의 무릎 위에 놓인 외투를 집어 들고,

『자, 어서 일어나.』

하고 명령을 한다.

금봉은 소리소리 질러서 악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차간을 돌아 보매 사람들이 부끄러워서 그도 못하였다.

그리고 다만,

『전 안 내려요.』

『바로 가요.』

『 선생님만 내리셔요.』

하고 꼭 같은 몇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게 승강하는 동안에 어느덧 대전 정거장의 정거 시간도 거의 다 가서 따르르하는 발차 전의 전기 신호가 울었다.

손 선생은 마침내 지갑을 꺼내어서 금봉의 차표를 내어 금봉의 무릎 위에 내던지고 자기의 짐만을 들고 뒤도 안 돌아 보고 차에서 내려 버렸다.

금봉은 뒤를 따라가 작별 인사라도 할 생각을 하였지마는 꾹 참고 가만히 창만 내다 보고 있었다. 손이 터덜거리고 나가는 데로 통한 지하도를 향하고 가는 모양이 보였다. 금봉은 그것도 보기 싫어서 눈을 창으로부터 차 안으로 돌렸다. 오랫동안 정거에 사람들은 반 남아 잠을 깨어서 담배들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 지나간 한 막의 불쾌한 연글을 누치 챈 사람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화끈화끈하여 낯을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처녀 금봉은 이 밖에 취할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차가 떠났다. 금봉은 손이 내어 던지고 간 차표를 집어 넣을 생각도 아니 하고 담벼락 구석에다 얼굴을 박고 울었다.

무엇인지 이름 지을 수는 없지마는 분하고 설었다.

날이 훤히 밝아서 세면소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에 낯을 비취일 때에는 눈에 충혈이 되고 통통 부었다.

차가 부산 부두에 닿아 금봉은 짐을 들고 혼자 내려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하고 한참 어릿어릿하다가 부두에서 배를 보고는 그리로 향하여 발을 옮겨 놓으려 할 적에 문득 뒤에서,

『금봉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어떻게 놀랐는지 손에 들었던 바스켓을 땅바닥에 떨어뜨릴 뻔하였다. 그것은 대전서 분명히 내린 손 명규 선생이었다. 그는 금봉이한테 그 핀잔을 당하고 차를 띄어 내려서 나가 버리려 하였으나, 그래도 금봉이가 못잊혀서 다른 차간에 올라탔던 것이다.

금봉은 미처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에 이뤄진 습관대로.

『 선생님!』

하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였다.

『혼자 내버리니 마음이 놓여야지. 그래서 딴 차간을 타고 따라 왔지.』

하고 손 선생은 반가운 듯이 웃으며 금봉의 집을 받아 들었다. 이때, 아침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이때의 손 선생의 웃음은 어젯밤 대전서와도 달라서 믿음성 있는 손 선생의 본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든지 친철하고, 제가 그만큼 망신을 주었건마는 노하지도 아니하 고 여전히 친절한 손 선생이 금봉에게는 가엾게 보였다. 천안이나 대전서 그저 아버지가 어린 딸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러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은혜높은 선생님께 버릇 없이 한 것이 아닌가--- 금봉은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아침 안 먹었지?』

하고 손을 배를 향하고 몇 걸음 가다가 멈칫 서며 금봉에게 물었다.

『안먹었어요.』

하고 금봉은 악의 없이 대답하였다.

손은 물끄러미 금봉을 바라보더니 금봉의 눈에 아무의심이나 악의가 없는 것을 보고는,

『아직 배 떠날 시간이 한 시간이나 있으니 우리, 저, 정거장 호텔에 가서 아침이나 먹고 와. 십 오분이면 먹고.』

하고 청한다.

금봉은 지난밤 일을 지나고 손 선생의 이청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선선하게.

『그럼 그러세요.』

하고 허락을 하였다.

손 선생은 두 손에 든 짐을 덜렁거리면서 부리나케 달음박질을 쳐서 자동차 하나를 붙들어 놓고 금봉을 바라보았다. 금봉은 손에게 대하여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 자동차를 향하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지게꾼들이 수없이 금봉이를 바라보고 섰는 것이 금봉에게는 이상하였다.

금봉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해운대 온천을 향하고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처음 보는 부산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손 선생은 바깥 경치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금봉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금봉이가,

『저 산 옆대기에 집들을 짓고 살아요.? 왜 그래요?』

묻는 바람에 비로소 밖을 바라보며,

『응, 경치가 좋으니까 그렇지.』

하고 웃는다.

『평지에는 땅값이 비싸니깐 그런 게지요.』

하고 금봉이가 손 선생의 말을 농담으로 돌린다.

『잘 아는구먼.』

하고 손 선생은 금봉이만 바라본다.

『저 바다 보세요!』

하고 금봉이가 처음 보나. 왜?』

하고 손도 바른손 편으로 보이는 부산만을 힐끗 본다.

『바다가 아주 파아래요. 도무지 물결이 없구. 낮배로 갔으면 좋을걸 그랬어.』

하고 금봉은 잠깐 후회하는 빛을 보인다.

그까짓 거 해운대를 『 . 가보면 어떡허게. 접쪽 등생이에 올라 서면 일본까지 바라보일걸.』

하고 손이 웃는다.

『네에? 설마 일본이야 바라보일라구. 대마도겠지.』

하고 금봉도 처음 웃는다.

『대마도는 일본이 아니고 영국인가?』

하고 손은 농담을 한다.

『저것 보아, 벌써 풀이 포릇포릇했어요.』

하고 금봉은 길가를 가리키나 손이 고개를 쑥 내어 밀 때에는 벌써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여기는 서울보다 더우니깐.』

하고 손이 설명을 한다.

『남쪽이니깐 여기는 산빛도 서울보다는 다른 것 같애. 어째 고동색이 야.』

하고 금봉은 혼잣말을 한다.

『여름이 되면 퍼렇지.』

하고 손이 쿵하면 웃는다.

금봉은 손 선생이 도무지 경치에 흥미가 없어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 선생님은 바다 좋아 아니하셔요? 강을 좋아하시오?』

하고 손을 바라보았다.

『그저 다 그렇지. 별로 좋아할 것도 없구. 그까짓거늘 보는 거.』

하고 손은 보이는 산과 바다를 일부러 보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버린다.

<참 이상도 하다.>

하고 금봉은 손 선생이란 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으로 손의 옆 모 양을 이윽히 바라본다. 하늘에 닿은 듯한 가슴이 불룩한 장산을 바라보고 또 해운대 고개를 넘을 때에 보이는 퍼어렇고 질펀한 동해 바다와 오룩도의 기묘한 모양을 보고 금봉은 처음 보는 이 웅장한 경치에 취하면서도 손에게 대하여는 물어 보려고도 아니하고 또 같이 감탄하기를 청하려고도 아니하였다. 손에게는 금봉이 자기가 가진 감각을 가지지 아니한 것 같았다. 손의 신경 작용이 금봉의 신경 작용과는 전혀 다른 것같이 생각했다.

자동차는 기운차게 소리를 내이며 해운대 온천 호텔에 닿았다.

조용하고 경치 좋은 「방」이라는 손 선생의 주문에 머리를 빗다가 말고 나오는 듯한 하녀가 잠깐 사무실에 들어가 물어 보고 나와서는,

『사아 도우소(이리 오시오. 하는 뜻.)』

하고 앞을 섰다.

방은 아래층 남향이었다. 복도에서 방으로 들어 가는데 문이 두 겹이요, 그리고도 오자시끼(방)와 문과의 사이에는 조그만한 즈기노마(협실)가 있었다.

방으로 두 사람을 인도한 하녀는 그 열인 많이 한 눈으로 이 손님들이 어떤 손님인 것을 한번 보고 알아 내이려는 듯이 힐끗 한번 흝어 보고는 위선 화로에 불을 가져오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무쇠 주전자를 화로에 갖다가 놓고, 차와 과자를 가져오고, 그리고는 「유까다」와 「단젠」이라는 옷 두 벌을 갖다가 가지런히 놓고,

『자, 갈아 입으세요.』

하고 금봉을 한번 힐끗 본다.

『갈아 입을까?』

하고 손은 외투를 벗고 저고리와 조끼를 벗을 때에 금보은 외면하고 「도꼬 노마」의 족자와 꽃을 보다가 마침내 살짝 일어나서 빛이 환히 비치인 튓마루에 나가서 마당과 담 너머로 보이는 영양 불량과 바람과 부대끼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잘못 왔다. 내가 왜 왔나?>

하고 금봉은 손을 따라서 이런 데 온 것을 후회하였다.

호텔 식당에서 손이 밥을 느리게 먹어서 뱃시간을 놓쳐버렸으니 밤배까지 아니 기다릴 수는 없고, 손은 부득부득 그 감질난 온천에를 가자고 하고.

또 대낮이니 어떠랴 하여 따라 오기는 왔지마는, 와 본즉 아니을 데를 왔구나 하는 후회가 난 것이다.

금봉은,

<딴 방이나 잡아 달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으나, 금봉의 돈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 선생의 돈을 얻어 쓰면서 그렇게 염치 없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나는 목욕 아니하면 고만이지. 갈아 입지도 아니하면 고만이지.>

하고 마음을 잡으려 하나, 첫째로 들어올 때마다 유심하게 경멸하는 눈으로 힐끗힐끗 보는 것이 부끄럽고, 둘째로는 손 선생 보기가 부끄럽고, 그보다 도 금봉이 자신이 부끄러웠다.

금봉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섰을 때에, 이봐 자 어서 갈아 『 , , 입어, 일본 여관에 들면 의례히 이것을 갈아 입는 법이야.』

하는 손 선생의 말이 들렸으나 금봉은 못 들은 체하고 튓마루 저편 더 먼 끝으로 가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등뒤로 사뿐사뿐 걸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아씨, 무얼 그리 보고 계셔요? 서방님께서는 벌써 갈아 입으시고 기다리시는데, 어서 아씨도 갈아 입으시고 두 분이 함께 목욕이나 하시지.』

한다. 아주 친한 사람에게나 하는 말 같다. 금봉은 「옥상(아씨)」,「단나상(서방님)」하는 하녀의 소리에 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왜 내가 머리를 틀어 얹었노.>

하고 차를 타기 전에 강영자의 집에서 머리를 튼 것을 후회하였다. 더구나 「두 분이 함께 목욕이나」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금봉의 전신의 피가 머리로 몰려 올라오는 것 같아서 앞이 아득아득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금봉은 몸을 팩 돌리며,

『아씨가 다 무어야. 그 어른은 우리 아저씨요.』

하고 하녀를 노려 보았다.

『아라소? 고멘나사이네(그러세요? 잘못되었습니다.)』

하고 하녀는 금봉을 향하여 싱긋 웃고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금봉은 하녀가 자기의 말을 믿지 아니할 것 같아서 애가 키웠다.

『어서 이리 와 목욕해야지. 온천에 와서 목욕도 안해?』

하고 이번에는 「단젠」을 입고 발을 벗은 손 선생이 금봉을 따라 나왔다.

『목욕하고 그리고 나서도 실컷 구경할걸』

하며 금봉이 곁에 와 선다.

『손 선생님 어서 목욕하세요. 전 이따가 하지요.』

하고 금봉은 뒤도 돌아 보지 아니하였다.

『그럼 내 먼저 목욕하고 오께 옷이나 갈아 입어요.』

하고 손은 들어가버린다.

손 선생이 분명히 목간에를 가는 것을 귀 짐작으로 알고는 금봉은 방으로 들어 와서 화로에 손을 쪼이면서 두리번두리번 방을 둘러 보았다.

<퍽 깨끗한 방이다.>

하였다. 금봉은 화로 옆에 놓인 그 「단젠」이라는 소매 넓은 두렁이를 만져 보았다. 이것은 아마 남자만 입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혼자 달아날까 보다.>

이렇게 금봉은 양미간을 찡기며 중얼거렸다.

<계집애가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혼자 책망도 해보았다.

그렇지마는 금봉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같아서 달아날 힘이 없었다.

『나만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설마 어떨라고.>

하고 금봉은 무엇인지 분명히는 몰라도 몰기 바로 앞에 다닥드린 듯한 위험에 대하여 싸워 내일 결심을 하였다.

이윽고 손 선생이 젖은 타올을 들고 들어왔다. 시커멓게 털이 난 손의 두 정강이가 눈에 뜨일 때에 금봉은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

<저 손이 옷을 입으러 들거든 나가리라.>

하고 벼르고 있을 때에 손은 그냥 화로 옆으로 와서 펄석 주저 앉았다.

『에, 시원하다.』

하고는 손 선생은 모가지를 만지면서,

『참 온천이란 좋은 게야.』

하고 웃었다. 그리고,

『어서 가서 목욕해. 아무도 없어.』

하고 금봉을 본다.

『네에.』

하고 금봉은 일어서며,

『목욕하는 데가 어디야요?』

하고 물었다.

『이리 와. 바로 여기야』

하면 손은 앞서서 나간다. 금봉은.

<하녀를 불러서 인도를 시키면 고만일걸.>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손 선생의 뒤를 따라 섰다.

『여기야.』

하고 손 선생은 손수 문을 열며,

『이게 옷 벗어 담는 테구. 이 저울은 체중다는 데구. 저기, 저기가 물 아니야』

하고는 나가 버리고 만다.

금봉은 문고리를 걸려 하였으나 고리도 없고 잠글 아무 장치도 없었다.

금봉은 체경 앞에 가서 제 얼굴을 한번 비치어 보고 돌아 서서 저고리 고름을 끄르다가 마릇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손뚜껑같이 큰 그 발자국은 분명히 손 선생의 발자국이었다. 그것을 보고 금봉은 끄 렀던 저고리 고름을 다시 매었다. 금시 이 방에 어떤 남자가 목욕을 하고 나간 것을 생각할 때에 도저히 자기가 목욕을 하고 나간 것을 생각할 때에 도저히 자기가 목욕할 수는 없었다.

금봉은 교의에 털석 걸터앉아서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멍하니 있었다.

<내가 왜 집을 떠났던고?>

애오개 있는 집을 생각하였다. 비록 불화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도무지 꺼리는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는 집, 더구나 오빠와 동생과 수원 마나님과 (올케는 약간 남자 같지마는) 같이 사는 그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빈대, 벼룩 끓던 아랫방이 그리웠다. 모두 남, 모두 적인 속에 외톨이로 나선 자기의 신세가 외롭고 퍽도 위태위태하였다.

『왜 목욕 안 하세요?』

하고 하녀가 그 주리하게 갈아 입으라고 성화하는 옷을 가지고 들어 와서,

『어디가 아프세요?』

하고 묻는다.

『아니, 인제 목요할 양으로.』

하고 금봉은 일어나 다시 옷고름을 끌렀다. 덥고 맑고 깨끗한 물에 몸을 잠그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더구나 애오개는 목간이 멀어서 겨우내 두세 번 세일 만하게 밖에 목욕을 못해 본 금봉에게는 이 조용하고 깨끗한 목욕이 더욱 유쾌하였다. 사람이 불 때어서 끓이지 아니한, 이 자연히 샘솟는 더운 물이라는 생각도 금봉에게 흥미를 주었다.

금봉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나 아니할까 하고 마음이 오마조마 하였으나, 차차 마음이 놓여서 실컷 전신에 때를 씻고 마리까지 감고, 그리고는 또 푹 몸을 물에 잠고고 유쾌하게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는 몸을 말리노라고 따뜻한 시멘트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손으로 물장난을 하였다.

문득 금봉은 이상한 것, 지금까지에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제 몸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부드럽고 불그레한 살빛, 팔과 다리와 몸의 선, 불룩한 젖가슴, 그리고 제 몸을 처음 보는 듯이 놀리는 눈으로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 보았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제 몸에 어린 듯이 금봉은 사르르 눈을 내려 감았다.

금봉의 가슴은 까닭 모르게 뛰었다.

금봉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떠서 한번 더 제 몸을 돌아보았다. 바로 일 분 전에 볼 때보다도 제 몸은 더 아름다운진 것 같았다. 지나간 일 분 동안에 제 아름다움이 더 자란 것 같았다.

<참 이뻐! 내가 어쩌면 이렇게 이쁠까?>

하고 금봉은 스스로 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이 상긋 웃었다.

<내 몸이 움직이는 모양은 어떨까.>

하고 금봉은 머리 속에 제 몸의 여러 가지 자세와 또 움직이는 선과 리듬을 그려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잡지책이나 그림에서 보던 여자의 여러 가지 포오즈를 생각해 보았다. 만일 금봉에게 회랍 조각에 관한 지식과 서양명화를 많이 본 기억이 있다고 하면 자기를 거기도 비겨 보았을 것이다.

금봉은 마침내 일어나서 지금까지 머리에 그리던 여러 가지 포오즈와 움직임을 하여 보았다. 그것이 다 아름답고 유쾌하였다. 혹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꼬는 태도 지어 보고, 모든 근육에서 힘을 빼고 시름없이 앉은 태도 지어 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금봉의 머리 속에는 어려서 노부령, 이참령 같은 어른들에게 듣던 나란부인이니 약안 부인이니 하는 애국적 여장부들이 어떤 태를 지었을까 하고 앞에 수만 명 병마를 놓고 싸우란ㄴ 명렬을 내리는 위엄 있고 무서운 태도도 지어 보았다. 그러나 혼자 우스워서 거의 소리가 날 만하게 웃어 버렸다.

한참 이 모양으로 감은 머리를 풀어서 뒤로 늘이고 여러 가지 포오즈와 동작을 하며 유쾌하게 목욕탕 가으로 거닐다가 문득 광선의 방향이 알맞추 자기의 그림자를 고요한 물빛 속에 비치인 것을 발견하였다, 금봉은 멈칫 서서 물빛 속에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반가운 듯이 웃었다. 그림자도 웃었다.

<아아, 어떻게 난 아름다운 내 몸인고. 아직 그림자, 네 눈에 밖에는 뛰어 본 일 없는 이 몸이다. 어떤 사람의 손은커녕 입김도 닿아 본 일이 없는 이 숫 색시의 몸이다. 어머니께서 낳아 주신 대로 고대로 꽁꽁 싸가지고 온 내 몸이다. 하늘의 불로 닦인 마음, 땅의 맑은 물로 씻긴몸, 봄날 아침 볕에 방싯 열리려는 꽃봉오리와 같은 내 몸, 봄날 아침 볕에 방싯 열리려는 꽃봉오리와 같은 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이다,>

<이 아름다움은 누구가 볼 아름다운인가. 이 보드라움은 누가 만질 보드 라움인가?>

하고 금봉은 사르르 누늘 감았다.

<당신은 누구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내 몸과 마음을 은 통으로 가질 당신은 누구요? 당신의 성명은 무엇이며 살기는 어디요?>

하고 금봉은 혼자 묻는다.

<나는 아직 당신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의 얼굴은커녕 당신의 웃자라고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나를 가지실 당신이 어디 제신가 하고 생각해 본 일도 없습니다. 나는 저 강남 더운 나라깊은 산골 높은 벼래 위에 혼자 핀 향기 높은 난초 모양으로 혼자 자라고 혼자 피었습니다. 아직 나를 찾아 온 이는 없습니다. 혹시 벼래 밑으로 지나간 사람들이 있엇 내 향기에 발을 멈추고 우러러 본 사람은 있었겠지마는, 그것은 다 하잘 것 없는 초동들이었습니다. 정말이야요. 나는 아직 당신을 못 보았습니다,>

<당신은 어디 계시오? 언제 나를 찾아 오셔서 내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에 사시려 합니까?>

<당신은 내 집 앞으로 노 지나다니면서도 내가 여기 있는 줄을 모르십니까? 내가, 아무도 없이 고요한 황혼에, 또 천지 만물이 다 같이 잠든 재잠에 혼자 거문고를 울리고 앉았으면 당신께서 그 소리로 내가 있는 줄을 아시고 내 문을 두드리시렵니까?>

<당신은 누구시며 어디 계십니까? 내가 이렇개 꽃봉오리를 열게 되어도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내 문전에 들리지를 아니합니까? 지금 생각하니 당신께서 오시마 한 기약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아때 ․ 금봉의 환상이었다.

금봉은 아직 성명도 모르고 한번 본 일도 없는 사람이 그리워짐을 깨달았다. 혹은 그 사람이 지금 동경에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런 공상을 하매, 금봉은 전에 모르던 일종의 그리움, 설운 듯한, 애타는 듯한 일종의 그리움을 깨달았다. 금봉의 얼굴에서는 명랑하고 어린애다운 빛이 스러지고 졸리는 듯, 침울한 듯 빛이 들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가슴의 울렁거림과 전신의 피가 갑자기 온도와 속력을 높이는 듯함을 깨달았다. 그 「당신」이라는 사람을 금시에 이 자리에서 만나고 싶도록 초조함을 깨달았다. 금봉은 그 사람이 썩 잘나고 건강한 장부가 자기의 바로 앞에 섰는 것 같은 반가움을 깨달았다. 금봉은 피로운 듯이 한번 몸을 꼬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금봉은 부끄러움이 생겨서 눈을 가리우고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자기가 지금까지 한 일이 모두 부끄러웠다. 비록 말은 없 으나 저 담벼락까지도, 저 창으로 들여다 보는 푸른 하늘까지도, 밝은 볕까지도 j를 보고 있었지나 아니한가 하여 낯이 화끈함을 깨달았다. 더구나 맨 나중에 물속에 비치었던 자기의 그림자, 그때의 그림자의 몸의 포오즈와 얼굴의 표정, 그 웃음에 어깨 음탕한 빛이 있던 것 같아 낯을 들 n가 없도록 부끄러웠다.

양금을 좋아하지 「말어라」,「덕 있는 사람을 남편으로 삼아라」, 「군자다워라」---이러한 금봉의 어머니의 말들이 날카로운 채찍을 돌고 제 벌거벗은 몸을 후려 갈기는 것 같았다.

금봉은 울고 싶었다. 만일 머리가 조금만 더 말랐으면 곧 뛰어 나가고 싶었다.

<내가 머리는 왜 감았던고?>

하고 금봉은 입술을 깨물었다, 금봉은 문득 서 정순을 생각하였다. 그의 청승맞다 할이만큼 엄숙한 표정을 생각하였다. 그의 기숙사에 있을때에나, 또 손 선생 집 아랫방에 있을 때에나, 언제나 제 책상 뒷벽에는 꿇어 앉아서, 두 손을 합장하여 눈만큼 치어 들고 고개를 약간 뒤로 잦기고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를 울리고 있는 예수를 그린 그림자, 또 그밑에는 머리를 뒤로 풀어 늘이고발까지 가리워지는 희고 얇은 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위체 있는 옛 화상과 같이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젊은 아름다운 여자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정순은 다른 애들이 비웃는 것도 무릅쓰고 자기 전에는 꼭 그 그림의 여자의 자세대로 하로 자기 전 기도를 울리고, 아침에는 다른 애들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또 그 모양으로 기도를 울린다는 말은 학생들은 대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정순을,「성모 마리아」니, 「천추당 수녀지」하고 놀려먹었다---금봉은 문득 이 생각을 한 것이었다.

<만일 정순이가 나 모양으로 여기서 혼자 목욕을 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에 더욱 부끄러웠다.

그래서 금봉은 마치 지금까지 지은 죄를 회개나 하는 듯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정순의 벽에 붙인 기도하는 여자와 같은 자세를 지어 보았다.

그 자세는 금봉의 마음을 엄숙한 데로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금봉은 그 자세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금봉은 언젠가 한번 천주교당에서 미사 구경을 한번 한 일이 있었다. 주교라는 사람이 금실과 자주빛 실과로 짠 듯한 제복을 입고 흰 연기가 피어 오르는 향로를 두드면서 배아스와 같은 음성으로 제문을 외우고, 그 앞에는 머리에 눈과 같이 흰 ,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린 네모난 헝겊을 쓰고, 몸에는 풀기 하나도 없어 발뒤꿈치까지 축축 늘어진 장삼을 입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양을 보았다. 그것도 생각했다.

금봉은 일생에 처음 경험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저도 모르게,

『하나님!』

하고 불렀다. 그러나 그 뒷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기도할 줄을 몰랐다. 그는 예배당에라고는 두어 번 정순에게 끌려서 크리스마스 구경을 가본 일밖에 없었고, 가정에서는, 대다수의 우리의 가정이 그러한 모양으로, 예수교나 불교나를 물론하고 종교란 것은 도무지 없었다. 만일 금봉의 가정의 멤버(아버지, 어머니, 오라비, 동생, 수원마님, 김 서방, 어멈, 돌쇠까지도)에 종교적 감정이나 관련이 있다 하면 그것은 사람이란 길흉 화복을 다 팔자에 타고 난다. 사람이 죽으면 아마 귀신이 있나 보다. 그러나 죽어도 ㅜ기신 없는 사람도 있나 보다, 죄를 지면 벌을 받는다고 하나 경찰서에 안 잡혀 갈 만한 일이면 염라대왕도 묻지 않나 보다. 인생의 행복이란 돈에서 오는 것이요, 가정의 불화는 팔자에서 오는 것이다. 선심은 쓴다는 것은 종은 일이지마는 아니 써도 괜찮고, 남이나 세상 이야 어찌 되든지 저만 돈이 있으면 그만이다. 동넷집이 다 불에 타면 내 물건 사 줄 사람이 없는 것이 걱정이나, 그 밖에는 별 관심이 없다---이 모 양이다. 종교란 것은 도무지 없었다. 어디서 굴러 온지 모르는 금봉의 아버지 정규는 조상 제사까지도 지내는 일이 없었다. 종교적인 것이라고 금봉이가 집에서 보았다면 그것은 무꾸리와 고사와 굿이었다. 이것도 귀신에게 빌지 아니하면 아니 될 특벌한 필요가 있기 전에는 아무리 그 처가 졸라도 정규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돈이 드는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교 전도 부인이 전도를 오면 김씨는,

『우리 집에선 절에 댕겨요.』

하고 거절하고 중이나 여승이 동냥을 오면은,

『우리는 예수 믿어.』

하여서 쫓아 버렸다. 이것이 금봉이가 자라난 가정의 유일한 종교와의 관련 이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금봉은 문득 하나님을 불렀지마는 더 말할 바를 몰랐다.

이때에 퉁퉁 퉁퉁하고 복도로 걸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지금 지었던 자세가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일까 부끄러운 듯이 얼른 예사로 앉아서 발에 묻은 물방울을 씻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아까 하녀가 다른 손님은 아침에 다 떠나고 한 사람도 없으니 염려 말고 실컷 목욕을 하라고 했으니, 들어 온다면 하녀려니 하고 마음 놓고 있었다. 문이 드르르 소리를 내고 열리더니,

『거 웬 목욕을 그리 오래 해. 응, 머리까지 감았구먼』

하고 손 선생이 고개를 쑥 들이밀면서,

『난 하도 오래 안 나오길래 무슨 일이나 생겼다구. 점심 들어 왔어. 온천 좋지?』

하고 싱글싱글하며 물끄러미 보다가 금봉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몸을 오구리고 뭉개는 것을 보고는,

『얼른 나와서 밥 먹어.』

하고 문을 벼락같이 닫고 나가 버린다.

이 불의의 습격에 금봉은 숨이 막히고 피가 다 돌기를 그치는 듯하였다.

<망할 녀석 사내 녀석이, 왜 여자 목욕하는 데를 와? 더러운 녀석.>

하고 금봉은 혼자 종알대었다.

<그녀석을 물을 한 바가지 탁 뒤집어 씌워 줄걸.>

하고 금봉은 너무나 분하여서 울었다. 제 그림자 밖에는 일찍 본 일이 없는 제 몸을 손가에게 보인 것이 마치 지극히 소중한 무엇을 똥개천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그렇게도 깨끗하고 아름답던 몸이 손가의 눈살 한번에 더럽혀지고 보기 싫어진 것 같았다.

<그 상판대기, 눌깔딱지, 주둥아리, 돼지, 두껍이, 악마.>

하고 금봉은 치를 떨면서 거의 곁에서 들릴 만하게 손 선생을 향하여 욕을 퍼부었다, 금봉은 분주히 뛰어 나와서 옷을 입고 머리를 틀었다.

처음 배운 솜씨라 도무지 잘 틀어지지를 아니하여 화를 내이면 내일수록 더 아니 되었다. 금봉은 머리채를 한손으로 쥐이고 마룻바닥에 펄썩 주저앉아서 울었다.

<내가 왜 그녀석을 다라 여기를 왔을까?>

하고 금봉은 혼자 몸부림을 하였다.

손 명규는 방에 앉아서 목욕탕에서 본 금봉이의 몸을 수없이 여러번 눈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손명규는 비상히 건강한 몸을 가졌다. 그는 자기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병을 알아 본 일이 없었다. 그가 병원에를 가거나 약을 먹는 것은 오직 화류병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지을 때에는 감정이라든지 양심이라든지, 사람의 부드려운 부분이 될 재료를 전부 뼈와 근육에만 쓴 것 같았다. 그는 몸에 비겨서 머리가 작고, 머리가 작은 중에도 대뇌가 있어야 할 이마가 엄청나게 좁아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뜰 때에는 눈썹과 이마전이 마주봍을 것 같았다.

손 명규는 고등한 이성이나 감정 작용이 부족한 대신에 잘 먹고 잘 소화 하고, 그리하고 성욕이 강하고 물욕도 많고, 남이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꾀를 생각해 내일수가 없었다. 한번 하겠다 한 것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의지력도 있었다 이러한 . 사람은 무슨 필요로 하나님이 세상에 내이셨는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손 명규는 금봉을 꼭 제 것을 만들고야 말리라고 결심하였다. 손은 어Es 처녀를 완전히 제 것을 만드는 길이 무엇인지를 아나. 어떤 물건을 w 것을 만들자면 재판소에 소유권 등기를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줄을 이미 알게 속여 넘겨서라도 매도 증명서에 도장만 찍혀 놓으면, 그리하고 제 판소에 등기만 해놓으면, 자히든지 팔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완전한 「제 것」이 되는 줄을 잘안다. 그는 처갓집 재산을 제 소유로 만드는 데 이 실험을 하여서 확실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 원리를 손명규는 처녀에게 사용한다.

잡힐 듯 안 잡힐 듯, 빠져 나가려는 여자를 제 것을 만드는 데는 그의 몸을 빼앗는 것이 첩경이라고 믿고 있다. 몸만 한번 빼앗아 버리면 싫다고 가라고 해도 여자편에서 도리어 따라 온다는 것이 손의 여자관이다. 그는 벌써 수십 명에게 이 방법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다. 금봉이가 지금은 이 실험 재료가 된 것이었다.

<제가 아무리 도고하고 때끈거리기로 내 손에 걸린 담에야.>

하고 손은 혼자 웃었다.

<이거 무얼하고 아니 와?>

하고 손은 다시 목욕탕을 따라 가려고 일어설 적에 금봉이가 들어 왔다.

『거, 웬 목욕을 그리 오래 해?』

하고 손은 다시 주저앉았다.

방에는 밥상 물과 밥통이 들어와 놓여 있었다.

『자, 밥 먹어. 그리고 산보나 좀 허구---저 동해 바다 바라보는 고개까지나 가보아야지. 그리고 한잠 자야지.』

하고 손명규는 금봉의 뾰롱통한 표정을 못 본 체하고 저 혼자 지껄였다.

금봉은 입맛도 안 나는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손 선생이 부시럭거리고 양복을 주워 입는 것을 귀로만 듣고 있었다. 며칠 동안 잠도 잘못 자고 노심한 것도 있어서 목욕을 하고 나니 한잠 자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자, 산보 나가. 좋은 바다 구경 시켜 주께.』

하고 손 선생이 외투까지 입고 서서 금봉이를 재촉하였다.

『 선생님 혼자 다녀오셔요. 저는 모이곤해요.』

하고 금봉은 지어서 웃었다.

『그러면 옷 입기 전에 그렇게 말을 할 것이지. 남 옷다 입은 뒤에 그런 소리를 하는 법이 어디 있담.』

하고 손은 성이 난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옷 입으시기 전에 『제가 안 간다면 선생님도 안 가실까 보아서 그랬지요. 선생님 산보 나가시거든 저는 집에서 한잠 자려고 그랬습니다. 선생님 꼭 한 시간만 댕겨오셔요. 제가 그동안한 잠 자께요.』

이것은 금봉이가 밥을 먹는 동안에 궁리해 내인 계책이었다.

『왜 내가 있으면 못 자나?』

하고 손은 외투를 다시 벗으려 든다.

『아이, 어서 다녀오셔요. 선생님 안 가시면 저는 안자요---』

하고 금봉은 몸을 흔들었다.

손은 찌풋한 낯으로 벗으려던 외투를 다시 입고 미닫이를 탁 닫치고 나가 버렸다.

손이 나가는 것을 보고 금봉은 거의 소리가 나도록 웃었다. 손이 저를 끌고 나가려다가 실패하고 혼자 성이나서 나가는 것이 금봉에게는 퍽 유쾌하였다.

손이 나간 뒤에 금봉은 하녀를 불러서 자리를 깔아 달레고. 문고리가 없는 것을 부족하게 생각하면서 웃간과 새에 있는 장지도 담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금봉은 한참이나 눈을 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노라고 좀체로 잠이 들 지 아니하였다.

손명규는 혼자 밖으로 뛰어 나왔으나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산에도 취미가 없고 바다에도 취미가 없는 손은 무안한 바람에 이 길로 한참 저 길로 한참 기웃거리고 돌아 다녔다. 인제 들어 갈까 하고 시계를 내어 보았으나 아직도 여관에서 나은 지 십 분도 다 넘지 아니하였다. 한 시간 후에 들어 오라고 금봉이가 부탁하였다고 그 한 시간을 꼭 지킬 필요도 없지마는, 그래도 곧 들어가기는 쑥스럽기도 할뿐더러, 이왕이면 금봉이가 잠이든 동안에 들어 가는 것이 유리할 듯하여서 손명규는 마침 어선 두 척이 해운대 온천에서 동쪽 코숭이에 있는 어촌을 향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리고 발을 향하였다. 어선에 농어나 수조기나 좋은 생선이 있으면 사다가 꿇여 먹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얼마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가다가 손은 뒤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섰다. 그것은 동래에서 해운대 온천으로 오는 정기 차인지 모른다.

<요것이 혼자 쏙 빠져서 달아나지나 아니할까>

하는 생각이 손의 머리에 번개같이 일어났다. 금봉의 뾰로통하던 표정, 자꾸만 다녀 오라고 상그레 웃기까지 하던 것이 모두 저를 내어 봬 놓고 달아 나려는 끠인 것만 같이 손에게는 생각했다. 손은 명함집을 꺼내어서 금봉의 차표를 찾아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제자리에 있었다. 그렇지마는 그것이 제 야심의 눈치를 채고 서울로도로 달아날 생각은 아닐까. 어디 가서 몸을 숨겨 버리지나 아니할까. 그러면 그것은 모처럼 낚시에 걸린 큰고기를 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금봉이를 놓아 버린다 하면, 학교 소유의 평택 논 삼천 석 나는 것을 팔아서 철원으로 옮겨 사는 것도 절반 이상의 의미를 잃어 버린다.

발각되면 징역 질 모험 아니하고라도 이 큰 흥정 하나에 오륙만원은 제 것이 되는 것이요. 만일 콩밥 먹을는지 모를 각오를 한다면 십만 원 하나는 일 없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운수가 좋아서 제 손으로 그 논 값을 받게만 되면 삼십만 원에 가까운 돈을 몽땅 들고 상해니 하르빈으로 달아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어디를 가든지 돈과 금봉이만 가지고 가면 일생 향락은 그 손에 있는 것이지마는, 금봉이가 달아난다면 일생의 계획은 다 틀려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손 선생은 자동차가 금봉이를 싣고 떠나기 전에 여관에를 갈 양으로, 외투 자락을 너풀거리고 씨근벌떡거리면서, 거의 구보로 하다시피 여관을 향하고 달려 왔다.

손이 한 사오십보나듯 미쳤을 때에 자동차는 도로 떠나 버렸다. 손의 눈에는 분명히 자동차 뒤창으로 어떤 여자의 머리쪽을 보았다. 그것이 금봉인 것만 같았다.

손은 하녀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돌아 볼 새 없이 쿵쿵거리고방으로 갔다. 방 밖에 슬리이퍼 한 켤레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야 한숨을 내어 쉬었다. 손의 이마와 등에 땀이 흘렀다. 손은 다른 건강은 좋아도 발이 두껍고 발바닥이 평바닥이 되어서 걷기나 뛰는데는 꼭 질색이었다.

손은 문밖에 서서 시계를 내어 보았다. 나간 지 삼십오 분이었다.

손은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샛장지가 닫힌 것을 보고 금봉이가 어떻게 자기를 경계하는지를 알고 픽 웃으면서 가만히 셋장지를 열었다. 손은 겨우 제 몸이 모을 고 서서 들어 잔 수 있을 만하게 장지를 방싯 열고, 도루 지 소리가 아니 나도록 방에 들어가서 입을 방싯 열고 모으로 누워서 잠이 든 금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금봉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섰던 손명규는 본래 얼마 되지 아니히던 이성의 힘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오직 불길 같은 충동만을 가진 동물로 화하여 버렸다. 손은 잠깐 전신을 떨다가 몸을 금봉의 가슴에 던지듯이 하면서 금봉의 목을 꽉 겨안고 그 뒤둥그러진 검푸른 입술로 금봉의 뺨과 입과를 물어뜯듯이 빨았다.

『으악!』

하고 깜짝 놀라는 소리를 지르며 잠을 깬 금봉은 겨우 자유로운 한손을 들어서 손의 따귀를 수 없이 갈겼다.

그러나 입은 손명규의 입으로 막혀서 숨만 막힐 듯하고 도무지 소리가 질러지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가까스로 한손으로 손 선생의 넥타이를 잡아서 힘껏 뒤로 잡아당기었다.

『금봉이, 소릴랑 지르지 말어. 내가 잘못했으니 소릴랑 지르지 말어.』

하고 손명규는 금봉의 목을 놓고 뒤로 물러앉았다. 금봉은 몸이 자유를 얻자마자, 이불을 차고 일어나는 길로 피 섞인 침을 튀튀하고 손명규의 낯바닥에다가 뱉았다.

금봉은 악을 쓰는 바람에 혀끝과 입술을 깨문 것이었다.

『아서,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손 선생은 한팔로 대드는 금봉을 막고 일변 고개를 돌려 금봉이가 뱉는 피 섞인 침을 피하였다.

『자는 얼굴을 보니까 하도 귀엽길래 그랬지.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니께』

하고 손명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전신을 발발 떨고 덤비는 금봉을 향하여 빌었다.

금봉은 소리도 못 지르고 마치 침이나 밷고 할퀴기나 하는 것으로 손명규의 폭행에 대한 원수를 갚기나 하려는 듯이 팔팔 뛰었다.

그러나 금봉의 입에서는 더 나올 침이 없었다. 혓바닥이 타고 목이 타는 것을 약간 적시는 것은 자기의 혀끈과 입수에서 솟아 나는 빨간 피가 있을 뿐이었다.

『금봉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니께. 다시는 안 그런단 밖에 어떻게 하란 말야?』

하고 손 선생은 팔과 고개를 돌려 금봉의 손과 침을 막고 뭉개고 있다.

금봉을 마침내 기진하여 방바닥에 쓰러져서 목을 놓아 울기를 시작했다.

하녀가 장지를 방싯 열고 잠깐 엿보다가 도로 나가 버린다.

손명규는 다시금봉에게 덤벼 들어서 기어이 야욕을 달해 볼 생각도 해 보았다. 방바닥에 쓰러져서 울고 있는 금봉의 몸 모양은 더구나 손의 충동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첫째는 금봉의 입에서 흐르는 피가 그를 무섭게 하였다. 둘째로는 모처럼 내 것이 다 된 금봉을 선불을 맞혀서 아주 제개서 달아나게 gf 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손은 모든 것을 잠시 연기하고 금봉의 비위를 맞추기로 새로 결심을 하였다.

『금봉이, 보아요. 내가 이렇게 잘못했다고 비니, 나를 좀 보아요.』

하고 손은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네가. 금봉이가 너무 귀애서 그랬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가 금봉이를 사랑은 하지마는. 그렇게 불측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야. 내 속을 금봉이도 알지 않어?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내가 잠깐 미친 개 혼이 씌여서 그랬어. 금봉이 오해 말어. 내 다시는 안 그러께.』

하고 몸을 움직여 금봉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다.

금봉은 손의 팔을 홱 뿌리치고 장지를 쫙 열어 젖히고 언제든지 달아날 준비를 하고 서서 비로소 입을 열어.

『엑, 이 더러운 녀석 같으니! 저를 선생이라고 아비같이 따르는 계집애들을 버려 주기로 위협을 하는 개 같은 녀석 같으니! 남들이 다 누구도 버려 주었다. 누구도 버려 주었다 해도 사모님까지 그렇게 말씀을 해도 나는 설마 인형을 끼고야 그러랴 하고 그래도 너를 사람의 혼이 있는 놈으로만 알았다. 오늘 보니깐 그 말이 다 옳구나. 네 말과 같이 녀는 사람이 아니라 미친 개 혼을 쓰고 난 놈이다. 엑, 이 더러운 자식 같으니! 내 몸에 손가락 하나만 대어 봐라. 내가 네 모가지를 물어 뜰어 줄일 터이니.』

하고 퉤하고 손 선생을 향하여 침을 한번 뱁고는 밖으로 뛰어 나가 버린다.

금봉은 손 선생이 부르는 것도, 하녀들이 붙드는 것도 다 뿌리치고 구두 끈도 매지 아니하고. 외투도 안 입은 채 여관에서 뛰어 나와서 부산으로 향한 큰길로 달아났다.

늙숙한 하녀가 눈을 멀뚱멀뚱하고 가는 금봉의 뒷 모양을 바라보고 섰는 손명규를 보고 어깨를 툭 치며,

『아직 애숭인데. 그렇게 마구 다루면 되우. 영감도 죄 많은 양반야. 호호호.

하고 웃는다.

금봉은 발이 어디 놓이는지도 모르고. 또 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손명규의 검푸른. 뒤둥그러진 입이 제 얼굴에 닿았던 것을 생각하면, 칼이 있으면 그더러운 입이 닿았던 자리를 끊어 버리고 싶었다. 손가놈의 더러운 손이 닿았던 모가지도 끊어 버리고 싶었다.

도무지 이 욕과 이 원통함을 어떻게 하면 씻을 수가 있을까, 아아 내 몸은 인제는 <, 더러워졌고나. 고이고이 소중하게 간직하였다가 사랑하는 어떤 이에게 바치려던 선물이 악마의 더러운 발에 짓밟혀 버리고 말았고나.>

금봉은 가다가 말고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몸부림을 하고 울어도 보고 또 달음박질을 쳐도 보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저를 미친년으로 여길 것도 꺼릴 여유가 없었다.

이날 밤 하관 가는 연락선에 금봉은 혼자 탈 수가 있었다. 손 선생이 하관까지만 같이 간다는 것을 부두에서 야료를 하다시피하여 가까스로 테놓았다.

금봉이가 배에 올라서 선실에 들어 가지 아니하고 사닥다리 곁에 배가 떠날 때까지 서 있는 것은 손 선생의 전송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선실에 들어 가 있는 동안에 손 선생이 슬며시 배를 타지나 아니할까 겁을 내어서 파수를 보는 것이다.

손은 부두에 서서 배 위에 있는 금봉을 우러러 보며,

『오늘 바람이 좀 있으니 얼른 가.』

『가다가 중로에 들르지 말고 바로 동경으로 가.』

『동경 가거든 잘 갔다고 전보하고 곧 편지해.』

이런 소리를 하였다. 금봉은 듣는둥 마는둥하고 여러 종류의 선객들이 배에 오르는 모양과 구경군. 전송객들이 왔다 갔다하는 향을 보며, 손명규가 배에 오르지나 않나 하는 것만을 알기 위하여 가끔 시선을 손에게로 던졌다. 손은 그 시신이 올 때마다 고마운 듯이 싱글싱글 웃었다.

기의 배 떠날 시간이 다 되엇청년 남녀 한쌍이 바로 사닥다리 밑에서 경관에게 힐난을 받고 있었다. 경관은 두 청년 남녀가 입으로 부르는 대로 무엇을 분주히 받아 썼다.

청년은 학생복에 다갈색 외투를 입고 검은 소프트를 쓰고, 여자는 일본 여학생 모양으로 하까마와 하오리를 입고 아얀 일본 버선에 일본 짚실을 신었다. 파란 맛이 나는 전기둥빛 때문인지 그들의 얼굴은 창백한 빛을 띄었으나 모두 준수하였다. 경관이 좀 우락부락하건마는 그 청년은 모자도 벗지 아니하고, 그렇다고 성도 내이지 아니하고 침착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배에서는 사닥다리를 걷어 올린다는 딸랑딸랑 쇠가 났다. 그래도 두 청년 남녀에게 대한 조사는 끝이 나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이 시선은 이 두 남녀에게로 모였다. 금봉이도 이 두사람이 무사히 배를 타주었으면 하고 속이 졸였다.

한 경관은 청년의 팔을 꽉 붙들어 파출소로 끌고 가려는 모양으로 보였으나 나중에 은 역시 사복한, 경관 하나가 그냥 보내라 하여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배에 올랐다.

금봉의 몸을 스치고 두 사람이 선실 쪽으로 걸어 갈때에 금봉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깨달았다. 그 남자는 금봉이가 애오개서 학굥 다닐 때에 전차 속에서 가끔 보던 성명 모르는 남자였다. 금봉은 두 남녀가 가는 뒤를 바라 보았다. 그들은 뒤도 아니 돌아보고 선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배는 마지막으로 길다란 고동을 불고 두드럭 두드럭 기관도는 소리와 철 철철철 물 헤치는 소리를 내이면서 돌기 시작하였다.

『잘 가』

하고 손 선생이 모자를 벗어서 내어두르는 것을 금봉은 잠깐 고개를 숙여서 대답하고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선실로 들어 가버렸다.

금봉은 배를 타는 것이 처음이었다. 쿵쿵쿵쿵 울리는 진동과 음향, 방안이 깨끗은 하면서도 코에 들어오는 이상한 냄새, 배의 흔들림, 이러한 것이 모두 합하여 금봉의 가슴속에 대단히 불쾌한 어떤 감각을 주었다. 본래도 피곤한 몸과 마음이지마는 갑자기 갱신을 못하게 맥이 풀려 버리는 것 같고. 그러면서 생명의 위험이 목전에 박두한 듯한 어쩔 줄 모르는 불안이 있었다.

금봉은 선실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싶었으나, 먼저 들어 온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아 버리고 가운데 밖에는 남은 데가 없었다. 금봉은 이러저리 헤매다가 몸을 가눌수가 없어서 아무 데나 비인 자리를 잡고는 풍침을 꺼내어서 짐도 다 풀어 넣을 새가 없이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다.

배는 점점 더 흔들리기를 시작하여서 금봉은 머리가 천 근이이나 되고, 오장이 다 뒤집히는 것 같음을 깨달았다.

금봉은 참다 못하여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우고 비틀비틀 토할 곳을 찾아 나섰다. 조선옷 입은 여자 하나가 비틀거리고 걸어 가는 것은 선실에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금봉이가 이를 악물고 나오려는 것을 도로 삼키며 출입구 문 어귀를 잡고 쓰러지려 할 때에 누가 나와서 붙들어 주는 이가 있었다.

그 붙드는 손은 금봉을 안는 듯이 하여 토할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금봉은 쓴 물이 나오도록 토하고 난 뒤에야 조금 정신이 들어서 사방을 돌아 보았다. 그의 눈에 뜨인 것은 서너 걸음을 뒤에 선 학생복 입은 청년이었다. 비록 모자를 벗고 외투를 벗었더라도 아까 배 탈 때에 보던 그 청년인 것이 분명하였다.

금봉은 외면하여 눈물과 입을 씻고 청년의 앞에 걸어와서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고맙습니다.』

하는 떨리는 말과 함께 낯을 붉혔다.

청년은 말 없이 잠깐 고개만 숙여서 답례하고는 금봉의 팔을 붙들어서 자리로 데려다 주고, 그리고는 또 토하는 타구와 입가 실물 한 컵을 떠다 주고, 그리고는 또 인삼 한 뿌리를 가지고 와서,

『이걸 물고 계시오. 내 동생도 이걸 물더니 좀 낫다고 그럽니다.』

하고는 금봉이가 고맙다는 말도 할 새 없이 가버리고 말았다.

금봉은 그 청년을 만난 것이 기쁘고, 이러한 인연으로라도 그 청년이 자기를 기억하게 된 것이 기뻤다.

<아, 그러면 그 젊은 여자는 그이의 아내나 애인이 아니라 누이 동생이던가.>

할 때에 금봉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달았다.

그가 누굴까. 어떤 집 자손일까. 혼인을 했을까. 그 얼굴이나 몸가짐, 말씨를 보아서는 점잖은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인 것이 추측되었다. 그 누이도 그려하였다.

만일 금봉이가 멀미가 아니 났더면 이보다 많이 공상을 하였겠지마는, 배가 난바다에 나옴을 따라서 금봉은 자는 듯 어린 듯 거의 의식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가다가 정신이 들면 행여나 그 청년이 머리맡에 섰지나 아니한가 하고 둘러 보았다.

아침에 배가 시모노세끼에 닿은 때에 그 청년과 그의 누이 동생 둘이서 금봉을 찾아 왔다. 그 누이라는 여자도 멀미에 먹으나 볶인 듯하여 눈이 할딱하였다. 그러나 그는 세수도 하고 머리도 만진 것이 보였다.

『배멀미는 육지에만 내리면 곧 나아요.』

하고 누이라는 여자가 금봉을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얼른 세수터에 가서 타 올에 물을 적셔다가 금봉을 주어서 세수를 하게 하고, 그 청년은 금봉의 짐을 찾아서 자기네 짐과 함께 보이에게 맡겨 주었다.

『동경까지 가세요.』

하고 누이가 물을 때에 금봉은,

『네. 동경까지 가세요?』

하고 금봉도 도로 물었다.

금봉은 새 친구 두 사람과 차에 한 자리에 탈 수가 있었다.

그 청년은 임학재(任學宰)라 하여 동경 모대학에 다니는 이요, 그 누이는 숙희(淑姬)라 하여 역시 동경의 어떤 교회 학교 전문부에 다니는 이었다.

『저는 전차 속에서 몇 번 선생님을 뵈온 것 같아요.』

하고 금봉이가 말할 만하게 된 것은 차가 오까야마를 지나서였다. 경치를 이야기하고, 점심을 같이 먹고하는 동안에 이 초면의 세 청년은 자연 친숙하게 된 것이다.

금봉은 전차 속에서 임학재라는 이 청년이 언제나 두발을 꼭 모으고 두 손을 읍하여서 아랫배에 드리우고 눈을 푹 내려 깔고 몸을 꼿꼿이 하고 있던 모양을 희억한다. 기차를 타고서는 창밖 경치도 바라보고 숙희나 금봉을 향하여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마는, 두 발을 꼭 모으고 몸을 꼿꼿이 하는 자세만은 도무지 변하지를 아니하였다.

숙희는 눈어림에는 학재를 많이 닮았으나 학재보다는 살이 좀 많고 좀 더 쾌활하고 장난꾸러기인 맛이 있었다.

학재는 소리를 내어서 웃는 일이 없지마는, 숙희는 깔깔대기도 하고 어리광도 부렸다. 이 둘도 아버지만 갈고 어머니가 달랏 학재를 낳은 어머니는 돌아가고 계모로 들어 온 유씨(柳씨)부인이라는 이가 숙희를 낳았다고 한끝 슬펐다. 그것은 이 두 남매의 애정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동북 동생 이상인 것을 본 까닭이었다.

『금봉이도 우리 학교에 들어 와. 내가 명년에 졸업하더라도 일 년은 같이 있지 않어?』

『나도 언니 계신 학교에 들어 가게 해주어.』

차가 하꼬네를 넘을 때쯤해서는 두 여자는 이렇게 말하도록 친숙해졌다.

『에그, 언니두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시우?』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생겼어? 오빠, 난 어떡허우? 금봉의 앞에서는 빛을 잃으니.』

이러한 회화도 주고 받게 되었다.

『우리 오빠는 나무로 깎아 놓은 사람이란다. 여자는 도무지 사람으로 안 보시구. 안 그렇수. 오빠?』

이런 소리로 숭글숭글하게 숙희는 사람을 웃겼다.

『내가 나무면 너도 나무지.』

하고 학재는 빙그레 웃었다.

『왜 그래. 오빠는 나무구 나는 사람이야. 오빠의 피는 아마 개구리 피 모양으로 싸늘한가 봐.』

숙희는 이러한 소리도 하였다. 숙희의 이 말에는 근거가 없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학재가 어떤 여자한테서 사랑의 편지를 받으면.

「나 같은 사람을 그처럼 생각하여 주심은 심히 감사하오나. 나는 그 호의를 받지 못하겠사오니 용서하시옵소서.」 하는 편지 한 장을 써 넣어서 돌려 보내는 것을 규칙으로 정한 것을 숙희가 아는 까닭이었다.

숙희는 학재를 사랑하기 때문에 제가 얌전하다고 보는 여자를 가끔 학재의 하숙에 끌고 가기도 하였고, 또 숙희가 보기에 학재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몇 여자가 있는줄을 알지마는, 학재는 다만 인사를 할뿐이요. 도무지 여자에게 흥미를 가지지 아니하는 줄을 아는 까닭에 「오빠는 나무로 깎은 사람야」하는 것이 입버릇이 된 것이었다.

『우리 오빤 나무야. 금봉이도 우리 오빠를 사랑할 생각 말아요.』

학재가 자리에 없는 동안에 숙희는 금봉에게 이런 말을 하고 웃었다.

금봉은 동경에 와서 숙희 남매의 진력으로 숙희가 다니는 전문과에 입학 하고, 숙희와 같이 기숙사 한방에 있게 되었다.

숙희도 학교에서 신용이 없지 않지마는 학재는 기독교 청년회 이사장, 학생회장 등으로 동경에 있는 조선 학생께뿐 아니라, 서양인 선교사측에도 신용이 있었다. 모 정찰에서는 주목을 하지마는, 다른 모든 방면에서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일본말은 물론이어니와 영어도 잘하고 연설도질하고 글도 잘 쓰고 품행 방정하고 점잖고 일에 성의 있고---이러한 인격의 빛으로 임 학재라면 비록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홈담하는 사람은 없었다.

홈담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편협하다는 것과 냅들성이 부족하고 너무 조촐하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는 음악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과는 없고 서양 칼리지 식으로 되어서 영어와 영문학을 중심으로 고등 상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과정에는 철학도 있고 생물학도 있고 역사도 있고 일본 문학도 있었다. 성경을 가르치고 날마다 채플에서 찬미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음악은 피아노와 풍금과 「고도」라는 일본 거문고 선생이 있어 수의로 몇 시간이 든지 배울 수가 있었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에 한하여 중등 교원 자격이 있었다. 학교는 동 경시의 본래는 한편 구석이었지마는, 지금은 시가의 가운데에 있는 산림 속 이어서 밖에서 바라보면 거의 집이 보이지 아니할 만하였고, 건물도 일부분은 신축한 것도 있지마는, 대부분은 사십 년이나 전에 지은 고대식 벽돌 집인데다가 벽에는 담장이 덩굴이 덮여서 여름이 되면 지붕을 제하고는 집의 몸뚱이를 푸른 담장이 잎으로 감아 버릴 것 같았다.

기숙사만은 연전의 화재 때문에 새로 지어서 좀 명랑한 기분이 있지마는, 모두가 음칙하고 깊숙하여서 서양그림에서 보는 중세기식 수도원과 같았다.

금봉은 도무지 이런 환경이 처음이었으나,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속에 모두 백발이 된 늙은 서양 선교사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무슨 딴 세상과 같았다. 이런 것이 다 금봉의 마음에 들었다.---

『학교가 모두 우중충하여 도깨비나 나올 것 같지? 그래도 있어 보면 좋아, 딴 세상 같아서. 하하하하』

하고 숙희가 웃을 때에 금봉은 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황송한 것 같았다.

금봉은 학교에 들어온 지 삼사 일이 지낫 좀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아버지와 손 선생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에게는 제 불효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누누이빌고, 반드시 잘 공부 하여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터이니 안심하라고 하고, 종교 속에서 교욱하는 깨끗한 학교에 들어 와 있으니 더구나 마음 놓으시라고 말하고, 김 서방에게도 미안하지마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길게 써 붙이고, 손 선생에게도 연락선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서 좋은 학교에 입학하였다는 말과, 비 록 음악과는 없지마는 얼마든지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말과, 학비를 주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여자답게 간절히 말하고, 공부가 끝나면 선생의 은혜를 생각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일생을 깨끗하게 교욱 사업에 바치고 싶다는 결심까지 말하였다.

금봉의 정신 상태는 이 두 편지를 아주 유쾌하게, 아주 정성스럽게 쓸 수가 있었다.

금봉이가 동경으로 달아난 줄을 모르는 정규의 집에서는 밤을 새워 가며 잔치를 차렸다. 김씨도 계모티를 아니 보일 양으로 몸소 사람들을 감독하 노라고 들락날락하며 잔소리를 하였다.

정규도 새 옷을 갈아 입고 사랑에 앉앗 치하오는 손님들을 접대하였다.

『어, 참 이런 경사사 없소이다』

하고 동네 노인들이 치하하는 말을 하면, 정규는.

『고맙소이다. 무슨 경사랄 게 있습니까?』

이렇게 대답하였다.

김 서방은 넘치는 기쁨을 싸고, 그러나 밤까지는 신랑의 자격으로가 아니 요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 자격으로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며 일을 보았다. 늦도록 일을 보고 밤에는 친구들에게 붙들려,

『이놈, 여편네 생기고 재산 생기고……우선 한턱 내라.』

하여 동네 청요리집에서 늦도록 술을 먹었다.

오직 무관심하게 있는 것이 인현과 은봉이었다. 인현의 처도 부엌에서 헤어날 새가 없고 수원 마님도 앉아서 졸새가 없으나. 인현과 은봉은 할 일이 없어서 아랫방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오빠, 시간이 되면 어떡하우?』

하고 은봉이가 걱정을 하면 인현은,

『무얼 어떡해? 아버지는 야단을 하시고 김서방녀석은 헛물을 컬 테지.』

이런 소리를 하고 웃었다.

『아이 그래두, 오빠가 아버지헌테 미리 말씀을 하우, 언니는 안 온다구.

오늘 오시라는데, 오시면 오정이 아니우, 인제 두 시간 밖에 없는데 어여 오빠.』

하고 은봉은 신부 없는 초례청의 살풍경을 상상하고 마음을 졸였다.

『말하겠거든 네 나 하려무나. 왜 날더러 하래? 나는 색시 없는 혼인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한번 구경이나 할란다. 그리구 김 서방 녀석이 사모 관대에 아주 거드럭거리고 왔다가 헛물을 켜고 돌아서는 꼴을 구경을 할란다.

하하하하. 자식을 제 물건으로 알고 아무 년하구나 아무 놈하구나 제 마음대로 붙여 주려던 아버지가 망신을 하고 야단을 하시는 것도 역사적 광격일 걸, 하하하하 너도 가만 있다가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훌륭한 연극 구경이 나 해. 하하하하』

하고 인현은 아주 유쾌한 듯이 웃는다.

이러한 말 속에는 인현이가 마음에 있는 여자와 혼인을 못하고 아버지가 자기가 고른 여자와 억지로 혼인을 하게 된 분풀이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두 오빠』

하고 은 봉은 시간이 닥쳐 올수록 애졸을 하는 것을 인현은,

『그렇게 애가 타거든 네가 금봉이 대신 김 서방허구 혼인을 하려무나.』

하고 성을 내었다.

『큰아가씨, 큰아가씨 계셔요?』

하고 어멈이 창밖에서 찾는다.

『왜 그래』

하고 인현이가 쌍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냄이 성적하는 사람 『 , 왔다구. 큰아가씨 얼른 안으로 들어오시라구 그러세요.』

하고 어멈은 방아늘 휘둘려 보며,

『큰아가씨 안 계셔요?』

하고 눈이 둥그레진다.

인현은 쌍창을 벼락같이 닫으며,

『큰아가씨 어디 나갔읍니다구. 들어오거든 안으로 들어 가라지.』

하고 어멈의 신 끄는 소라가 사라지기를 기다려서 인현은,

『흥, 큰아가씨 지금 대마도 다 지나갔겠다. 가만 두어. 어서 오정이 안 되나.』

하고 시계를 본다.

은봉은 한숨을 쉬었다.

『오빠, 그렇게 마음이 착하시던 오빠가 어쩌면 저렇게 변하셨수?』

하고 은봉은 슬픈 눈으로 인현을 바라보았다.

인현은 동생의 이 중대한 말에 깜짝 놀래었다.

『오빠가 전에야 어디 한 마디나 그런 빈정거리는 말씀을 하셨수?』

하고 은봉은 눈물을 흘리며,

『요새에는 오빠가 입만 열면 빈정거리는 말을 하셔.』

하고 고개를 숙였다.

금봉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노상 어린애같이만 알았던 은봉의 입에서 이런 어른스러운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현은 또 한번 놀랐다.

『그게 다 아버지 교훈이다,』

하고 인현은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아버지가 날더러 그렇게 되라시니까, 내가 그대로 순종을 해야 효자란 말이다. 금봉이로 말해도 혼인날 달아났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 다 아버지의 훈계대로 한 것이어든. 인제 보아라. 널더러는 돌쇠 녀석헌테 시집을 가라고 할 테니.』

하고는 무서운 표정이 풀어진다.

『오빠는.』

하고 은 봉은 웃는다.

『오빠두는 왜? 인제 두구 보까? 며칠이 안되어서 널더러 금봉이 대신 김서방헌테로 시집을 가라고 하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돌쇠놈헌테 가라고 할 테니. 두구만 보아. 내기하까? 너는 그러면, 그때에는 아마 일본으로 뛰어갈 힘은 없으니까 아마 수녀원으나 갈 테지, 저 종현 첝교당에 있는 여원말야 오 정동에도 하나. 있지 영국 수녀원이 너는 본시 우리 삼 남매 중에 제일 마음이 착하니까. 그리고 제일 종교적이나까. 너는 나 모양으로 빈정거리는 패도 안되고 금봉이 모양으로 반항하고 제 마음대로 나가는 패도 안되고 꼭 수녀가 될 것이다. 수녀가 좋다. 그까짓 시집은 가서 무얼 하니? 어디 김서방녀석이나 돌쇠놈보다 나은 놈은 그리 있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수녀가 제일 좋겠더라. 나도 중이 되고 싶은 때가 있어. 미치지 아니하면 중이 될는지 모르지.---네 을 케 보려무나. 나같은 놈헌테 걸려서 어떻게 고생을 하나. 생각하면 가엾지. 너는 별 수 있드냐. 아아. 대관절 우리 삼 남매는 다 어떻게 되는 게야?』

하고 잠깐 멀거니 생각하다가,

『은봉아, 겉은 어머니라도 많이 닮기는 금봉인데 속으로 제일 많이 어머니를 닮은 것은 네야. 네 얼골에는 아버지 모습이 많이 있다고 남들은 그러 는데 네게는 아버지 성질이 별로 없어. 인제 나이를 먹으면 나오랴나?』

하고 은봉이를 뜷어지게 본다. 아내에게 도무지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현은 비록 발표는 하지 아니하여도 두 누이 동생에게 있는 사랑을 다 쏟고 있었다. 인현은 제가 학생 적에 마음을 두었던 여자는 잃어 버리고, 사랑하는 두 누이는 캄캄한 앞길을 향하고 미끄러져 들어 가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수?』

하고은 봉은 기쁨과 슬픔을 섞어서 물었다.

『응, 얼굴은 고런 것 같지 않지마는 마음이, 성미가 네가 마음이 퍽 매 울 것이다.』

하고 인현은 한번 길게 한숨을 쉬이고,

『아버지의 고집과 네 매운 마음과가 충돌하는 날이 오지 맙소서.』

하고 눈을 내려 감았다.

은봉도 인현의 기분에 물이 들어 시무룩하였다.

어멈이 두어 번 드나들고, 다음에는 수원 마나님이 나오더니. 오정이 가까워 오매 정규가 몸소 아랫방에를 나와서 잔뜩 화가 난 언성으로.

『인 현아!』

하고 불렀다.

인현은 누워서 딩굴다가 벌떡 일어나서 마루에 나왔다.

정규는 머리에 빗질도 아니하고 새 옷도 갈아 입지 아니하고 풀대님으로, 아마 세수도 아나한 듯한 아들을 못마땅스럽게 훑어 보며,

『집에 큰일이 있는데 나와서 일을 좀 보는 것이지. 너는 방구석에 만들어 배겨 있어? 그 꼴은 다 무에냐?』

하고 우선 책망을 한다.

『저같은 것이 나가서 무엇을 해요? 하시라면 아따가 상 심부름이나 하지요.』

하고 인현은 아버지의 모본단 마고자에 밀화 단추가 번쩍거리는 것을 구경 하면서 대답하였다.

『그게 애비 앞에서 하는 말대답법이야!』

인현은 대답이 없었다.

『이 금봉이란 년은 어디 갔단 말이냐. 초례 시간이 다되어도 오지를 아니하니.』

『어저께 나가서 안 들어 왔어요.』

『무어?』

『어저께 동무 집에 가서 안 들어 왔어요.』

『강 영자 집에 간다더니 안 왔어?』

하고 정규는 자못 당황한다.

『네에.』

『그런데 너는 찾아 올 생각도 아니하고. 금봉이년이 집에 없단 말도 아 니하고 있어?』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 와요? 어디 있는 줄 알기로니. 김서방헌테 시집 가기 싫다고 나간 애가 제가 오란다고 오겠어요? 아버지가 부르시기로 오겠어요?』

『뭣이? 뭣이 어째?』

『아버지는 김 서방을 사위를 삼으시는 것이 장사에 필요하시니까. 사위를 삼으시랴고 하시지마는, 금봉이는 김 서방헌테 시집 가기가 싫으니까 아니 간단 말씀입니다.』

『머시? 김서방이 무엇이 부족해서?』

하고 정규는 분을 못 이기어서 벌벌 떤다.

『제가 알아요. 김 서방이 무엇이 좋은지는 아버지가 아시고. 무엇이 부 족한지는 금봉이나 알겠지요. 돌아 가신 어머니는 저희들이 보기에는 좋은 어머니언마는 아버지 눈에는 싫은 아내이던 것과 같이, 김 서방도 아버지보 시기에는 천하에 제일 가는 사윗감이겠지요만는, 금봉의 눈에는 남편감으로 아니 보이는 것을 어찌합니까. 다제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지요.』

하고 인현은 마치 법정에 서서 변론이나 하는 모양으로 아주 냉정하게 말하였다.

정규는 아들을 때려야 옳을지 자기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어야 옳을지 몰라서 터지려는 분통이 다 터지기를 기다리면서 아들의 변론을 들었다.

이 집안 망할 자식 『 , 같으니! 이, 대역 부도놈 같으니, 아비를 무엇으로 알고. 이놈이---』

하고 정규는 흉악한 상모를 보인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인현은 울음이 터지며,

『아버지, 제나 금봉이나 은봉이나 얼마나 아버지 말씀을 순종하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아버지께서 저희들 조금이라도 자식으로 아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주신다면야. 저희 삼 남매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불에라도 뛰어들고 물에라도 뛰어 들겠습니다. 저희들은 고아나 다름없습니다. 아버지가 몇 해 만에나 이 아랫방에를 나오십니까? 아버지는 금봉이를 딸로 아시고 김 서방을 주시랴는 것입니까? 요다음에는 은봉이는 돌쇠놈을 주시럅니까? 저는 아버지가 짝 지어 주시는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살아 보니 못 살겠습니다. 저는 제 목숨을 끊어버리더라도 금봉이와 은봉이는 아버지 장사 밑천을 삼으시게 하고 싶지는 아니합니다. 아버지, 금봉이는 벌써 일본 갔습니다. 인제는 k다에 떠 있습니다. 어머니도 일찍 돌아 가시고 아버지헌테는 미움받이하던 불쌍한 자식들이니, 아버지, 이 이상 더 볶지 마시고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지 못하시겠거든 저희들 되는 대로나 내버려 두세요. 아버지』

하고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뭣이? 뭣이 어째?』

하고 정규는 펄펄 뛰었다.

『금봉이년이 일본으로 달아나다니! 이거 집안 다 망했구나. 그년이 차라리 제 어머 모양으로 퉤어지지를 않고, 그래, 혼인날에 일본으로 달아나?

이런 집안 망할 자식들 보았나. 아이구.』

하고 기가 막힌ㄴ 듯이 마루 끝에 쿵하고 걸터앉는다.

『그년이 제 어미 모양으로 뒈어지는 것이 낫구말구 이런 망신을 하구 어떻게 산단 말이냐. 어떻게 갓을 쓰고 댕기느냐 말야. 되지 못한 자식들을 두었다가 머리가 허연 것이 이 망신을 당하다니. 아이구.』

하고 정규는 참으로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인현은 아버지가 자기 망신을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식이 죽는 것이 낫다는 말에 분개하였다. 그래서.

『저희들이 죽는 것이 아버지 망신하시는 것만도 못합니까?』

하고 대들었다.

그렇구말구 애비 『 . 망신시키는 자식은 천 번 죽어도 아깝지 않지. 네놈도 금봉이년 모양으로 애비를 망신을 시키겠거든 차라리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 다 죽어도 좋다!』

하고 정규는 주먹이 으스러져라 하고 마릇 바닥을 때렸다.

『아버지께서 금봉이를 사랑하시면야 금봉이가 달아날 리가 있어요? 아버지께서 딸을 팔아 잡수려 드시니깐 금봉이가 달아났지요. 인제 은봉이도 그렇게 시집 보내어 봅시오. 은봉이는 달아나기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수도원에 가서 승이 되거나 죽어 버립니다. 저도 아버지께서 좀 더 아들로 알아 주시지 아니하시면 저도 달아나거나 미치거나 죽거나 할 것입니다. 아마 미쳐서 달아나서 죽을는지도 모르지요. 저희 삼 남매는 이 음침한 아랫방 구석에서 천덕궁이가 되어서 미칠 공론과 달아날 공론과 죽을 공론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집이 흉가가 되어서 집 값이 떨어지지 않고 죽을까 하는 공론만 하고 있습니다. 이후부터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 망신을 안 시키고 죽을까 하는 것도 연구해 보겠습니다.』

하고 인현은 점점 말이 걱렬하게 됨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인현은 전신이 경련이나 되는 듯이 떨렸다.

그러나 정규는 인현의 말을 어디까지나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이구, 아이구」하는 소리만 수없이 하였다.

은봉은 방안에서 쿨쩍쿨쩍 울고만 있었다.

시계가 열 두시를 치는 소리가 어디서 들린다.

『아이구. 어쩌면 좋은가!』

하고 정규는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절망적 상태에 있었다. 인현이가 말하는 여러 가지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아니하였다. 오직 이 망신의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지 문제였다.

인현은 싱그레 웃었다. 우습고 재미있는 생각이 난 까닭이었다.

『아버지, 좋은 수가 있어요.』

하고 인현이가 정규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무슨 수?』

하고 정규는 물에 빠진 사람 모양으로 인현의 말에 살려달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들으니까 김 서방이 어멈허구 좋아한답니다. 오늘 다차려 놓은 잔치니, 어멈을 성적을 시켜서 신부 노릇을 시키면 어떱니까? 피자체 신분도 맞고, 또 서로 좋아하는 사이니, 아버지, 그렇게 하세요.』

하고 인현은 웃음을 참았다.

정규는 인현을 향하여 한번 눈을 흘기고는 말이 없었다.

『영감마님, 신랑 오신다구 어서 나오십시사구.』

하고 돌쇠가 경둥경둥 뛰어 나와서 말을 전하고는 도로 가버린다.

정규가 「아이구」소리를 연발하면서 안으로 들어간 뒤에,

『다들 나오우, 방에 있으면 주당살이 무섭다우.』

하고 수원 마나님이 나와서 인현과 은봉에게 고한다.

『신랑 왔소?』

하고 인현이가 묻는다.

『모르지요 ---온다고들 그러니깐.』

하고 수언마님도 가버린다.

『은봉아.』

하고 인현이가 방문을 열었다. 은봉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은봉아, 우리두 나가서 신랑 구경하자. 괜히 방에 있다가 주당살 맞을라.』

『난 싫어. 구경이 다 무슨 구경이오?』

하고 은봉은 고개를 쌀래쌀래 흔들었다.

『왜? 이 좋은 구경이 구경이 아니냐. 김 서방녀석이 떡 사모관복을 하 고 말이다. 기러기를 안고 교 배석으로 들어 온단 말이다. 어멈이 앞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신부가 되어서---하하하하. 은봉아, 내가 참 아버지한테 좋은 꾀 아르켜 드렸지. 하하하하. 은봉아. 나와.』

하고 인현은 두루마기를 떼어 입고 안마당으로 들어온다.

초례 구경을 한다고 여편네를 아이들이 차일 친 마당에 가뜩 들어 와 섰다. 마당에는 멍석을 깔고 그 위에다가 화문석을 깔고 주안상을 놓고 대청에는 병풍을 치고 교배상을 놓고 큰 머리 한 한임과 수모들이 오락가락한다. 그들은 다 신부가 아직 아랫방에 있는 줄만 알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인현은 대문 밖에 나섰다. 과연 사린교 한 채가 애오개 마루터기로 넘어 오는 것이 보였다. 함을 인한 임이 벙글벙글 웃고 앞을 섰다.

사린교가 대문 앞에 놓였다.

자주빛 관복에 각대를 띠고 목화를 신고사모를 쓴 김서방이 노란 차면으로 코 아래를 가리우고 나섰다. 그 뾰족한 코끝과 입술, 얇다란 입술을 가리우니 김서방의 상모가 훨씬 좋게 보였다. 그 칼끝으로 꼭 찌른 듯한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의 웃음이 보였다.

인현은 차마 더 오래 보지 못하여 대문 안으로 먼저 들어 와서 입을 막고 혼자 웃었다 웃다가 아버지가. 상을 찌푸리고 사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인현은 웃음을 참고 아버지를 위해서 길을 비켰다.

정규는 김 서방을 끌고 사랑으로 들어 갔다. 사람들은 모두가 웬일인가 하였다.

이럭저럭 한 시간이나 지체되어서 신랑과 신부가 초례청에 나타났다. 성적과 큰머리와 활옷으로 차린 어멈은 언간치 아니한 어여쁜 신부였다. 비록 겨울내 일에 손이 텄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늘만은 한삼으로 가리울 수가 있었다.

쑤근쑤근하는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들렸으나 혼인식은 무사하게 끝이 나고,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사당도 없는 집으로 가버렸다.

정규는 인현의 제안대로 어멈과 김 서방을 타일러서 시흥 논 오십 석지기와 현금 오백원으로 두 사람의 승낙을 얻은 것이었다. 김 서방은 후일에라도 두고두고 「장인」을 졸라서 돈을 더 빼앗을 권리를 보류한 것이었다.

논 오십 석지기, 현금 오백원이란 결코 적은 희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을 깍아 내는 듯이 아픈 일이었다.

게다가 정규의 아픔을 더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정들인 애인인 어멈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규는 속으로 금후라도 만나고 싶은 때에 만날 수 있는 권리를 보류한 것이었다.

『하하하하, 하하핫하, 핫하.』

하고 인현은 아랫방에 돌아 와서 은봉이와 수원 마나님을 보고 허리가 끊어 지도록 웃었다.

『핫 하핫 하, 으하하.』

하고 인현은 가만히 앉았다가도 웃고, 밥을 먹다가도 웃고, 잠을 자다가도 김 서방의 혼인ㅇㄹ 생각하고는 웃었다.

금봉의 생활은 대단히 행복되었다. 학교도 좋고 선생들도 다 인격이 높은 것 같고, 또 동창들도 다 마음에 들었다. 서양 선교사들의 점잖음, 일본 학생들의 예절다움이 다 비위에 맞았다. 임숙희도 이따금 말괄량이 같으면서도 퍽 정직하고 은근하고, 그리고 진정으로 금봉을 사랑하고 지도하여 주었다.

학교의 종교적 기분은 금봉의 마음을 많이 끌었다. 마리아라는 처녀가 남편도 없이 예수를 낳았다든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서 하늘로 올라 가셨다든지. 모든 사람들도 죽었다가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나팔 소리에 다시 살아 나서 심판을 받는다든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를 만드셨다든지. 이러한 말은 다 믿어지지 아니하지마는, 하나님이라는 어른이 우리를 늘 보시고 계시다든지, 예수라는 어른이 우리를 죄에서 끌어 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아픔을 당하신 것이라든지, 기타 성경의 구절이 다 금봉의 마음에 들었고, 사람은 서로 미워할 것이 아니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것이라 하는 것이 더욱 좋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길로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오늘 하루도안 죄 안짓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올리고, 또 밤에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 하루 지은 죄를 자복하고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잠든 동안 편안히 보호하여 주시기를 비는 것도 다 금봉에게는 기쁨이 되었다.

금봉은 이 학교에 들어 온 지 한 달이 다 못되어서 벌써 진실한 크리스찬이 되었다. 도리어 숙희보다도 믿음이 깊어 갔다.

금봉은 기도를 올릴 때마다 부모와 인현과 은봉을 위하여 빌고, 또 손 선생이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좋은 교육가가 되기를 빌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이 지날수록 금봉의 기도에 자주 오르는 이름이 있었 으니, 그것은 숙희의 오빠인 임학재였다.

금봉은 임 학재의 건강을 위하여 빌고 믿음을 위하여 빌고 또 장차 조선을 위하여 큰일을 하는 일군이 되기를 위하여 빌었다. 임학재는 몸이 약하였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히여서는 믿노라고 말하지마는 성경의 어떤 부분 이라든지.오늘날 예수교회의 주장과 예식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서는 단만 아니 믿을 뿐더러, 도리어 날카롭게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더구나 교회의 지도자들인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는 굳센 반감을 가진 모양이었다.

일요일이면 금봉은 숙희를 따라서 흥고 오라는 데 있는 학재의 집에 놀러 가고 거기서 점심을 얻어 먹고, 오후에는 학재를 따라서 조선 사람들끼리 모이는 예배당에 참석하고 그리고는 예배가 파한 뒤에는 학재를 따라서, 혹은 학재의 다른 친구와 함께, 혹은 숙희의 다른 여자 동무도 함께 날이 좋으면 교외나 공원으로 놀러 가고, 날이 궂으면 활동 사진이나 연극장을 구경 하고, 그리고 오후 여덟시 문안까지에 학재의 호위를 받아서 기숙사에 몰아 왔다.

학재가 모자를 벗고 금봉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 서서 가는 뒷모양을 볼 때에는 금봉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쏟아짐을 깨달았다.

오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는 말에 아침 기도를 마치고 숙희는,

『금봉이, 내일이 우리 오빠 생일이야.』

하고 금봉에게 말하였다.

『응응.』

하고 금봉은 가볍게 대답은 하였지마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낯이 화끈함을 깨달았다. 숙희는 물끄러미 금봉이를 바라보더니, 모두 알아차린 듯이 한숨을 한번 지우고,

『오늘 우리, 우리 오빠 생일 선물 사러 나가, 응?』

하고 금봉의 목을 안고 뺨을 비볐다.

금봉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내가 어떻게 선물을 드리나.』

하고 금봉도 숙희의 허리를 안았다.

학재의 생일 선물 말을 숙희에게 듣고는 금봉은 상학하는 중에도 그 생각만 하였다. 무엇을 살까, 무엇이라고 쓸까, 하고.

그 선물 하나로 금봉이가 학재를 사모한다는 뜻도 표시되고, 그리고도 그것은 학재만이 알고 숙희도 모르고, 또 그리고도 그것은 학재가 일생에 몸에 지니고 다닐 것이기를 바랐다. 금봉은 시계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학재가 몸에 지니고는 다니겠지마는 그 밖에는 별로 뜻이 없는 것 같았다. 시계도 병이 나지 않느냐. 선물로 보내기는 너무도 부족한 것 같았다. 만일 학재에게 손이나 발이나 무엇이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을 하나 선물로 보내고 싶었다. 금봉이 제 것을 끊어내어서라도 그것이 학재의 일생에 학재에 붙어 다니기만 한다면 아깝지도, 아프지도 아나할 것 같았다.

<만일에, 만일에, 이 몸을, 마음을 왼통으로 학재에게 선물을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봉은 이렇게 생각할 때에 가슴이 아픈 듯하였다. 금봉은 동래 온천에서 보던 제 몸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였다. 그때에 이 몸을 뉘게다가 선물로 보낼까를 생각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또 그때에 금봉이가 아는 모든 남자를 눈앞에 그려 볼 때에 서대문 들어오던 전차 속에서 몇 번 본 청년, 지금 알고 보니 임학재를 가장 그립게 마음속에 그리던 것을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뜻일까.>

이렇게 금봉은 혼자 생각하있다. 손 선생의 무서운 손아귀를 벗어나서 임학재를 만나게 되고, 또 숙회와 한 학교에 있게 되고, 내일은 학재에게 생일 선물을 하게 된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그러나……>

하고 금봉은 실망한다 금봉이가. 생각하기에, 자기는 임학재에 비기면 도무지 한푼어치 가치도 없는 벌러지인 것 같았다. 금봉이가 동래 온천에서 그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제 아름다움도 학재를 놓고 생각하면 무슨 물건 같았다.

『아이 벌이여 하늘에 가장 빛나는 나의 별이여! 내 손이 닿는 곳에 나려 오소서.』

금봉은 이런 것을 쓴 일이 있다. 금봉이가 보기에 학재는 하늘의 별이었다. 수없는 젊은 여자가 그 별을 보고 사모하는 중에 자기도 그중에 조그마한 하나다. 땅의 어두움 속에 두 손을 두고 사모하는 제 모양이 저 높은ks 하늘의 별에 보일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오후에 금봉은 숙희를 따라서 긴자라는 거리로 나갔다. 숙희는 학재가 어려서 즐겨하던 과자머 과일이며, 그러한 물건을 여러 봉지를 샀다. 농담을 웃고 장난삼아 사는 것 같지마는 숙희가 그 오빠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이 금봉에게 보였다.

『오빠가 대추에 호도를 넣어서 먹는 것을 퍽 좋아했는데 일본은 대추가 없어.』

하고 호도와 마른 포도를 샀다. 그리고 내일 오빠를 끌고 교외로 놀러 나간다 하여 샌드위치를 만드다고 빵과 햄도 사고, 오빠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코코아도 한 통 샀다. 금봉은 숙희가 사는 것을 구경만 하고 다니면서도 그 속에서 학재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얻는 것이 기뻤다. 만일 하나님이 허 하셔서 자기가 학재와 같이 할 기회를 얻는다 하면 이 지식을 다 이용해서 학재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예상 끝에는 반드시 낙심하는 슬픔이 왔다. 자기는 도저히 이 세상엣는 학재 와 같이 할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숙희가 물건을 고르고 있는 동아네 혼자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지었다.

『금봉이두 무얼 사아. 왜 구경만 하고 따라다녀?』

하고 숙희가 여러 번 재촉하였다.

숙희가 살 것을 다 산 뒤에 금봉은 교문관이라는 예수교 서적 파는 집으로 가서 영문 성경학교 영문 찬미가하고,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하고 세 권을 샀다. 간디를 학재가 숭배한다는 말을 숙희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성경은 검은 가죽으로 껍데기를 하고 솔에는 금도금을 한 것이었다.

『참 좋은 것을 사네. 어린 것이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

하고 숙희는 놀려 먹는 모양으로 감탄하였다. 학교에서 돌아 와서 숙희는 금봉이더러 학재 위한 책들 속 겉장에 무슨 말을 한 마디 쓰라고 주장하였다.

『아이, 무엇을 쓰우! 언니두.』

하고 금봉은 낯을 붉혔다. 무엇이라고 쓰고 싶은 마음은 산과 같지마는 쓸 자격과 자유가 없는 것만 같아서 거절하였다. 그 대신에 금봉이가 두르던 삼딸 목도리로책을 쌀 것만 숙희의 말대로 승인하였다.

숙희는 오빠에게 애인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것은 다만 누이 동생으로의 본능뿐 아니라 학재가 매양 숙희가 사랑의 눈을 뜬 것을 경말하는 보복을 하자는 뜻도 있었다. 숙희에게는 두 남자가 있었다.

하나는 숙희 편에서 사랑하는 남자로서 조병걸(趙秉桀)이라는 정치를 배우는 대학생이요, 하나는 심 상태(沈相泰)라는 법률을 배우는 대학생인데, 이는 숙희 편에서는 좋아하지 아니하나 저편에서 숙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다 학재가 원치 아니하는 사람들이었다.

조병걸을 숙희가 좋아하는 까닭은 첫째로 체격이 좋고 잘나고 성품이 걸걸한 것이요, 둘째로는 그가 돈을 잘 쓰는 것이었다. 병걸은 유학생 중에서 가장 회나 잡지에 돈을 잘 내이고, 듣는 바에 의하면, 그는 만 석을 가까이 하는 큰 부자의 외아들이었다.

다만 사랑하기에 걱정되는 것은 그가 아내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자기 더러 물어 보면 어떤 때에는 한번도 혼인한 일 없는 총각이라고도 하고 어려서 약혼만 했다가 파혼했다고도 한다. 그는 아내가 있고 없는 것 같은 것은---아니 도무지 아내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하, 하, 하, 하.』

하고 병걸이가 웃을 때에는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속이 시원하였다. 그에게는 도무지 근심도 걱정도 없는 것 같았다. 학ㄱ교 성적도 뛰어나지도 못하지마는 그렇다고 꼴지로도 가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밤낮돌아 다니기만 하는 것 같으면서 그래도 학교 성적이중으로는 가는 것을 보면 재주가 상당한 모양이라고 숙희는 생각한다.

숙희는 그 오빠 학재를 존경도 하고 사랑도 하지마는 학재가 너무도 꽁하고 도무지 인생의 쾌락이라는 것에 흥미가 없는 것이 맞지 아니하였다.

밤낮 생각하는 것이 무슨 어렵고 큰 문제여서, 혹시 그이야기를 들으면 골치만 아팠다. 그런 크고 어려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위대한 인물이 될 징조인 줄로 생각하지마는, 만일 그러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 가지고 일새 을 살려면 심심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오빠 학재에게 대한 이러한 반감이 숙희로 하여금 병걸에게 마음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체 학비가 넉넉지 못한 숙희는 부자 남편에게 시집가고 싶다는 생각이 속에 깊이 들어 박혀 있었다.

조병걸과는 딴판으로 심 상태라는 청년은 얼굴이 희고 눈이 날카롭고, 빛나고 잠간 대해 보아도 재주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아니 믿지마는 예수교회에를 다니고, 교인 아닌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술도 먹고 담배도 먹지마는 교인이 모인 자리에서는 「오오, 주여」하고 기도를 올리고 술과 담배를 공격하였다.

심상태는 학생간에 말 잘하기와 재주 많기와 또 일에 부지런하기로 명망이 있어서 명망의 점에서는 거의 임학재와 어숫비숫하였다. 다만 사람의 인격을 아노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항상 심 상태보다도 임학재에게 높은 인격의 평가를 줄 뿐이었다.

심상태는 어디를 가나 임학재를 내세웠다. 그러나 학재는 심상태를 신임하는 빛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숙희가 조 병걸을 사랑하건마는 조 병걸은 숙희를 사랑하는 지 아니하는 지 아니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숙희가 병걸과 단둘이만 만날 기회가 있어도 병걸은 조금도 태도를 달리하지 아니하였다. 그저 「하하하하」하고 웃고 떠들었다. 숙희가 보기에 병걸은 아직 여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린애 인 것 같았다. 간혹 숙희가 구경터에를 가면 병걸이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숙희는 약간 질투로 불쾌감을 가지지마는 병걸은 마치 제 동생을 또한 동생 에간 소개하는 모양으로 「하하하하」식으로 제 데리고 온 여자를 숙희에게 소개하였다.

그뿐더러 그후에 다른 데서 만나면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 마치 병걸은 어떤 여자든지 대할 때뿐이요. 작별하고 나면 다 잊어 버리고 마는 것 같았다.

<한 사람만 두고두고 생각할 사람은 아니야.>

숙희는 병걸을 이렇게 속으로 비평하였다.

숙희 자신에게도 더 잘나고 더 유쾌하고 더 돈 많은 사람만 있으면 금시에라도 병걸을 잊어 버리고 새 사람을 사랑할 수 이을 것 같았다. 이 점이 학재나 금봉이에 비겨서 숙희가 다른 점이었다.

조병걸이나 심상태나 숙희가 만나서 알게 되기는 물론 학재의 반연으로였다. 조와 심은 다 학재의 친구였다. 그중에도 심은 고등 보통 학교 시대의 동창이었다.

학재는 동생 숙희가 병거에게 마음을 보내는 눈치를 안다. 그러나 원체 말이 적은 학재는 농담으로도 숙희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마는)숙희는 오빠 학 재에게 애인을 하나 구해 주어서 첫째로는 학재의 입을 틀어 막고 둘째로 제 사랑의 의논동무를 삼고 싶었다. 여기 걸린 것이 금봉이었다.

『무엇이라도 한 마디 써어. 선물을 하면서 아무것도 안 쓰고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고 숙희는 금봉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학재의 방(주인하고 있는 집)에 와서 목욕간 학재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세 무어라고 써요?』

하고 금봉은 낯을 붉혔다.

『나의 사랑하는 임학재 씨라든지 무엇이라든지 쓸 말이 없어서 못 써? 내가 금봉이 속을 모르는 줄 알고-- 내 이미 다 알고 있어.』

하고 숙희는 턱을 치어든다.

『그럼, 이 금봉은 근정이라, 하고 이름만이라도 써, 자.』

하고 학재의 책상 위에 놓인 철필을 들어 잉크를 묻혀서 금봉의 손에 쥐어 준다.

『아이, 참 이 아가씬 이쁘셔.』

하고 차를 가지고 올라 온 주인 마나님이 금봉을 보고 칭찬한다.

『왜. 이 아가씨만 이쁘고 난 이쁘지 않수?』

하고 숙희가 성내는 체한다.

『아가씨도 이쁘시지마는 인제는 어른이시지.』

하고 마나님은 얼른 방패막이를 하고 나서,

『어저께는 조 서방님이 늦도록 노시다가 가셨지요. 무슨 큰 문제나 의논하시는 것 같던데.』

하고 마나님이 숙희의 비위를 긁는다.

『심 서방님은 오셨다가 먼저 가시고 지금 변호사 시험 준비하시노라고 바쁘시다든데.』

하고 마나님은 차를 따라서 두 사람의 앞에 놓는다.

『주인 마누라헌테까지 변호사 시험에 바쁘다는 소리는 왜 해? 뱅충이라니깐.』

하고 숙희가 조선말로 혼자 중얼거린다. 숙희는 심 상태가 고등 문관 시험 치른다고 잘잘거리고 다니는 것이 미운 반면에 조병걸은 고등 문관이니 졸업이니, 그 따위는 도무지 염두에도 두지 아니하는 것이 더욱 갸륵하여 보였다. 심 상태는, 나는 법률가다 하는 것을 간판으로 붙이고 다니지마는 조병걸은 나는 그저 사람이다, 하는 듯이 도무지 구애가 없다고 숙희는 언제가 학재를 보고 비평하였다.

학재가 「기모노」를 입고 손에 수건과 비누 주머니를 들고 방에 들어 설 때에 숙희는 벌떡 일어나서,

『오빠, 컹그래 철레이션스(축하하오)!』

하고 학재의 두 어깨에 손을 얹는다.

금봉이가 일어나서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학재가 답례하고,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이?』

하고 의심스러운 듯이 웃는다.

『오늘이 오빠 생신이오.』

하고 숙희가 눈을 크게 뜬다.

『응.』

하고 학재는 웃는다.

『오빠 생신이자 노는 날이길래 이렇게 선물을 한 아름씩 사가지고 왔는 데, 응이 다 무에유?』

하고 숙희는 입을 뾰죽 내민다.

『앉으세요.』

하고 학재는 하나 밖에 없는 방석을 금봉에게 권하고 저는 책상 앞 다다미 위에 끓어 앉아서 무릎을 감춘다.

『무얼 사 왔니?』

하고 학재는 숙희를 보며 웃는다.

『내가 사온 게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l 금봉씨가 이렇게 정성된 프레젠트를 사오셨단 말이오.』

하고 숙희는 금봉의 보퉁이를 끌러서 성경과 찬미가와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와를 꺼내어 한 권씩, 학재의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어 놓고, 성경 껍질을 젖히면서,

『글세 오빠, 남에게 책을 선물을 보낼 때에는, 여기다가사 받는 사람 이름허구 주는 사람 이름허구를 쓰는 법이 아니우? 그렇지, 오빠? 그런데 암만 내가 쓰라고 해두 이 양반이 안 쓴다누.』

하고 금봉을 한번 흘겨 보고,

『오빠, 이름 안 쓴 건 받지 말고 퇴하셔요. 이름 안 쓴걸 누가 받는담.

안 그래요, 오빠? 자 금봉이가 여기다가 무어라고 써.』

하고 성경책을 금봉의 무릎 앞에 놓는다.

『고맙습니다.』

하고 학재는 엄숙하게 고맙다는 표정을 보이며,

『기념이 되게 이름을 써 주시지요.』

하고 금봉을 본다.

『자 보아, 오빠두 쓰라고 안 하셔?』

하고 숙희가 이번에는 제 만년필을 꺼내어서 금봉의 손에 쥐어 준다.

금봉은 의외로 서슴치 않고 그 만년필을 받아서, 「모세와 같이 되소서 예수와 같이 되소서」 두줄을 한글로 쓰고 一九二二, 五월 ○일 이 금봉상(李金鳳 上)이라고 한문자로 썼다. 금봉은 차마 임 학재씨에게라는 것을 쓸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하고 학재는 성경을 받아 들고 모세와 같이 되소서, 예수와 같이 되소서를 속으로 몇 번 내려 읽고 「이 금봉상」이라는 옷상자가 좀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곱게 접어서 상 위에 놓고 다음에는 마하트마 간--전기를 들어서 금봉의 앞에 놓으며,

『여기도 한 마디 써 주셔요.』

한다.

금봉은 고개를 숙여서 수삽한 웃음을 소리 안 나게 한번 웃고 이번에는 제 만년필을 꺼내어서 간디 책 첫장에다가, 「조선의 간디가 되소서」 한 줄을 쓰고는 제 이름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책상 머리에 세워 놓은 간디의 초상을 바라보았다. 반 이상이나 벌거벗은 간디는 이 가 빠지고 뺘미 쪼그라지고 커단 눈에만 빛이 있었다. 금봉은 학재더러 조선의 간디가 되라고 한 것이 저처럼 마르고 쪼그라진 사람이 되란 것이나 아닌가 하여 마음을 미안하였다.

『우리 오늘 놀러 가요, 다마가와니 이 노가시라니, 네? 오빠, 한 턱 내셔요.』

하고 숙희가 웃으면서,

『나 위해 내시는 것이 아니라 금봉이 위해서 한턱 내셔요. 금봉이가 잠꼬대로 오빠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한답니다.』

하여금봉이로 하여금 어쩔 줄을 모르게 만든다.

금봉이가 잠꼬대로 저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는 숙희의 말에 학재는 미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학재가 다시 고개를 들 때에 금봉이가 치뜨는 눈으로 자기를 힐끗 보는 것을 보았다. 학재는 금봉이 치뜨는 눈에 매력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몸의 선의 . 아름다움과 목덜미와 이마와 뺨과 턱이 심히 아름다움을 느꼈다. 학재는 전신에 어떤 찌르르하는 감각이 도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학재는 다음 순간에 비틀거리려는 정신을 꽉 붙들었다.

<나는 혼인 아니하기로 맹세한 사람이다!>

이렇게 학재는 속으로 한번 다시 생각하였다. 혼인을 떠난 연애라는 것의 존재를 학재는 도덕적으로 부인한다.

예수도 장기를 안 들었다. 그는 서른 세 살에 십자가에 못박힐 때까지 총각이었다. 베드로, 바울도 한번 장가 든 일이 있는지 모르나, 성경에 기록 한 대로 보면, 그들은 예수의 제자가 된 enlh부터는 체자도 없고 집도 없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그 편지에 분명히 「장가 아니든 자는 장가를 들지 말고 시집 아니 간 자는 시집 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예수교의 사도들은 독신 생활을 하였다. 지금도 구교의 신부들은 일생을 독신으로 산다. 예수와 베드로와 바울을 본받아 인류를 구제하기에 전력을 다하기 위하여 가정의 행복을 휘생하는 것이다.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는 것과 같이 가정과 일을 같이 섬길 수도 없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억만 인도 민중을 건지기 위하여 일생을 바치지 아니 하면 안되는 까닭이다. 나 한 몸이 받을 모든 향락---연애, 혼인, 필요 이상의 먹을 것, 입을 것, 집 한 간을 희생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멸망을 향하고 나아가는 민중을 건지랴---이것이 학재의 생각이다. 학재는 예수에서 특별히 배우는 것은 그의 민중을 사랑하는 진정과 정성에서 온 자기 희생의 정신이었다.

간디에서 배우려는 것도 그것이었다. 학재는 조선의 민중을 위하여 제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여러 선배들과 친구들 중에 이와 같은 갸륵한 결심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서도 조선의 민중과 사회가 전보다 많이 나아 지지 못하는 까닭은, 이 결심을 한 사람들이 남들이 누리는 일생의 행복을 저희들도 꼭 같이 누리면서, 그리고 나서 일은 일대로 하자는 생각의 결과라고 믿는다.

그의 대단히 열렬하던 선배와 친구들이 대개는 집을 가지고 처자를 가지게 되면 전에 가졌던 결심과 열정을 잃어 버리고 그저 범상한 사람이 되는 것 이 이 까닭이라고 학재는 믿는다.

또 학재는 그의 선배 중에 처자를 전연히 돌아 보지 아니하고 마치 처자 가 없는 사람 모양으로 오직 민중을 위하여서만 생각하고 일하고 사는 이를 안다. 학재는 그이를 존경한다. 그의 가족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시집 장가를 아니 들어서 집이라는 것을 만들지 아니하는 것이 지사의 정당한 길이라고 믿는다.

학재는 외아들이다. 그의 계모는 숙희와 또 누이 하나를 낳고는 남편을 잃어 버렸다. 학재의 아버지는 십여 년간 집을 버리고 중국 방면으로 방랑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천진에서 관헌에게 붙들려서 조선으로 돌아 왔으나 돌아 온 지 얼마 아니하여 또 어떤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서 아직도 복역 중에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학재는 혼인과 자녀의 생산이 가족을 위한 제 의무인 줄을 안다. 그러나 학재는 그런 가족 중심의 도덕관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였다.

금봉이가 설사 저를 사랑해 주고 또 제 마음속에 금봉에게 대한 사랑이 일어난다 하더라도학재는 결심의 시퍼런 칼을 들어서 그 사랑을 밑둥부터 잘라 버릴 결심이다.

<죽더라도 --->

하고 학재는 금봉의 아름다움이 제 속에 일으키는 이상한 중동을 꾹 눌러 버린다.

『오빠, 산보 한턱 내일 테요?』

하고 숙희는 고개를 숙이고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앉았는 학재에게 말을 붙 인다.

『그러지, 다마가와 갈까.』

하고 학재는 고개를 번쩍 들고 유쾌한 웃음을 보였다.

『나는 이노가시라가 좋아.』

하고 숙희는 이노가시라의 음침한 못가의 살림과 그 주위의 광막한 풀밭과 나무숲을 눈앞에 그렸다.

『어디든지 원하는 데루.』

하고 학재는 더욱 유쾌한 빛을 지었다.

『그럼 우리 이 노가시라갔다가 다마가와로 돌아 올까?』

하고 숙희가 새 안을 내었다.

『네가 그렇게 걸을 듯 싶으냐?』

하는 학재의 말에,

『그걸 못 걸어요? 나는 금강산 비로봉에를 다 올라간걸.』

하고 숙희가 장담한다.

학재는 금봉을 돌아 보았다. 금봉은 상긋 웃기만 하였다.

『금봉이가 다리가 아파서 못 가거든 오빠가 좀 업어 주시구려.』

하고 숙희가 시치미를 뗀다.

『너는 누가 업구?』

하고 학재가 웬일인지 오늘은 농담을 다 붙인다. 숙희는 그것이 이상해서 물끄러미 학재를 바라보았다.

『오빠, 어제 저녁에 조병걸씨 왔더라지요?』

하고 말을 해 놓고도 부끄러웠다.

『왔었지.』

『오늘 같이 가잘까? 안됐을까?』

하고 숙희가 장히 어려워한다.

『같이 가도 좋지.』

하고 학재는 농담을 옳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엄숙해진다.

『지금 하숙에 있을까? 그래도 오빠가 원하지 않거든 부르지 마셔요.』

『하숙에 있겠지. 오늘 노는 날이니깐, 웬일일어났겠니? 아직도 자겠지.』

이만하고는 숙희는 오빠의 처분만 기다리고 입을 나물어 버렸다.

학재는 밖으로 나갔다. 반찬 가게에 전화를 빌러 간 것이었다.

이때 간다라는 곳 M이라는 커단 하숙집 삼층 조병걸의 방에서는 병걸과 심 상태가 아직도 이불 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학교가 쉬이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서 어젯밤 늦도록 구경터와 술터로 돌아 다니다가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들어 온 것이다. 심 상태는 조병걸에게 학비를 한 부분 보조받아가지고 시의에 방을 잡고 있지마는 가끔 병걸의 하숙에 와서는 한 이불 속에서 잤다.

『네 이놈, 숙희 빼앗으면 안돼.』

상태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자, 이 사람, 내가 숙희를 마음에나 두나? 자네가 연애를 하겠거든 하고 장가를 들겠거든 들고 마음대로 할게지. 왜 나를 끌어 넣어?』

하고 병걸은 쾌활하게 말하고 웃었다.

『그래도 자네가 암만 해도 강적인 것 같애. 제일단 숙희가 자네를 사랑하는 모양이어든.』

하고 상태는 자못 염려스러운 듯이 그 날카로운 눈으로 병걸의 신문을 보고 엎딘 얼굴을 옆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거기서 무슨 중대한 비밀이나 발견하려는 듯이,

『나보다도 강적이 있네.』

하고 병걸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누구?』

하고 상태는 대사건이라는 듯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자네 본마누라 말일세.』

하고 병걸은 고개를 돌려서 상태를 본다.

『그까짓 거야 이혼해 버리지.』

하고 상태는 가볍게 대답은 하였지마는 가슴이 무득함을 깨달았다.

『이 사람 일부지원이 고한 삼년이라고, 여자의 원한사지 마소.』

하고 병걸은 신문을 밀어 놓고 일어나 앉는다.

『자네 도덕관은 너무 구식이야.』

하고 심상태는 항의를 한다.

『글세, 저편에서 하기 싫다는 이혼을 애써 할 것은 무엇이냐 말이냐? 그냥 두고 천하 미안은 다 내것이라 하고 바라만 보게 그려. 하필 남의 rkma 에 못을 박을 것은 없단 말일세. 얼마 사는 세상이라구. 또 그래 임숙희하고 자네가 혼인을 하기로니 무슨 끔찍한 행복이 올 줄 아나? 또 한 삼 년 살면 새 계집 생각이 날 테지. 그때에 또 이혼할 텐가? 앗게 아서,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고 못 들었나? 나처럼 꾹 참고 있어. 그렇게 보기 싫거어 달라는 것을 그렇게 야박찰 것은 없단 말야.』

『하, 자네는 도무지 불철저하구 시대 착오구.』

하고 심 상태는 입맛을 다신다.

『그런데 여보게, 자네, 저 이 금봉이라고 보았나?』

하고 병걸이가 불현듯 생각이 나는 듯이 상태를 돌아보며 묻는다.

『응, 보았지. 왜 우리 같이 안 보았나?』

하고 상태는 새 웃음으로 이혼 문제 토론의 불쾌함을 씻어 버린다.

『난 그 애가 도무지 안 잊히는걸.』

하고 병걸이가 머리를 긁는다.

『오, 자네 그애를 사랑하네그려?』

『아니! 사랑은 아니하ㅣ로 작정이니까. 사랑할 리는 없지마는 도무지 안 잊힌단 말야. 과연 미인이거든. 어쩌면 그런 것이 생기나?』

하고 병걸은 금봉의 모양을 그리는 듯이 허공을 바라본다.

『응, 어지간해.』

하고 상태도 허공을 바라본다.

이때에 하녀가 방싯 미닫이를 열고,

『죠오상 오뎅와(조서방님 전화 왔습니다.)』

하고는, 난 아직 주무신다구 『 . 지금 몇 신 줄 아세요? 잠꾸러기들이시어.』

하고 들어와 자리를 걷는다.

병 걸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상태는 자리를 걷는 하녀의 볼기짝을 손으로 쓸며,

『자네는 점점 미인이 되어 가네그려. 우리 사랑이나 해볼까?』

하고 웃으나 하녀는,

『야아나 찐상.』

하고 궁둥이에 있는 상태의 손을 버러지 붙은 것이나 때어 버리듯이 탁 쳐서 때어 버리고 몸의 방향을 바꾸어서 여전히 자리를 개인다.

『어디서 온 전화야?』

하고 상태는 방으로 돌아오는 병 걸을 보고 묻는다.

『저어……』

하고 병걸은 실토를 할까 말까하고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비밀을 속에 담아 두지 못하는 겁겁한 성미라,

『저어, 거시기……』

하고 말이 시원히 안 나오는 것을, 상태가,

『장히 말하기 어렵군, 관두게 다 알았네, 어떤 애인헌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단 말이지?』

하고 고개를 돌린다.

『아니야! 이 사람, 내가 애인은 무슨 애인야?』

하고 병걸은 성급한 어조로,

『저어 누구야. 저어 학재헌테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교외로 놀러 안 가 랴느냐고.』

『그래서?』

『오늘이 학재 생일이라나.』

『그래서 아마 학재 누이가 온 모양이야. 아마 이 금봉이두 왔겠지. 어때? 자네 안 가 보랴나?』

하고 병걸은 상태에게 대하여 좀 미안한 빛을 보인다.

그것은 학재가 상태에게 대하여서는 그 누이를 위하여 좀 경계하는 빛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잘들 가게. 내가 오라지도 않는 데를 무엇하러 간단 말인가?』

하고 상태는 좀 불쾌한 빛을 보인다.

남을 면대해서 불쾌하게 하기를 차마 못하는 병걸은 애써서 상태의 비위를 가라앉혀서 같이 가기로 하였다 상태도 말썽은 부리면서도 가고 싶은 길이라 병걸에게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 나섰다 오전 열 한시. 오차노미즈라는 정거장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오차노미즈라는 정거장은 흥고오와 간다는 잡아 매는 다리로서, 동경시의 한복판에 있다.

병 걸과 상태 두 사람은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아침도 먹을 새 없이 하숙을 뛰어 나와서 수루가 다이로 가는 전차를 잡아 타고 오차노미즈 정거장에 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십 오분이나 남았다.

『이럴 줄 알았더면 밥이나 한 공기 먹고 올 것 그랬지.』

하고 상태는 속에도 없는 태연한 빛을 보인다.

『자네는 여자 있는 데만 간다면 허겁지겁이니까.』

하고 병걸은 상태를 놀려먹기는 하나 실상 저도 배가 고프고 등과 이마에 땀이 흘렀다.

『누가 헐 말인데. 자네 이마에 땀이나 씻소. 얼마나 허겁자 겁이면 저렇게 땀이 흐를라고.』

하고 상태가 원수를 갚는다.

『이렇게 땀을 흘리는 사람은 대개 선인이라데. 자네갈이 오뉴월 염천에 도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사람은 벌죄 타입이라든걸,』

하고 병걸은 손수건으로 땀을 씻고 사각 모자를 벗어서 부채질을 한다.

『사람이란 단단해야 쓰는 게지. 자네같이 그렇게 헤식어서 무엇에 쓴 담.』

하고 상태가지지 아니한다.

『그렇긴 그래. 우리가 헤식긴 헤식어, 그 대신에 우리 같은 것은 죄는 못 지어.』

하고 병걸이가 항복을 한다. 그러나 땀을 다 씻고 나서 병걸은 다시 상태에게 대하여 공격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자네는 너무 독해. 내가 헤식은 것으로 인생에 실패는 후독은 없어도 자네같이 독한 사람의 실패는 후독이 있을 걸.』

상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속으로 병걸에게 대하여 「너 같은 것이야」하고 흉보고 비웃었다. 상태는 제가 도무지 감정에 움직이지 아니 하고, 제 속을 남에게 털어 놓지 아니하고,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참으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것을, 또 맞추려 들면 어느 놈의 비위든지 다 맞출 수 있는 자신이 있는 것을 인생의 보배로, 제 인격의 힘으로 믿고 있다. 그와 반대로, 병걸이가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남의 말에 거절 못하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 못하고, 맺힌 데 없고 묽은 것을 큰 결함으로 보고 있다.

병걸이와 같은 사람은 결굴 제 이용물이요, 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병걸이 편으로 보면, 상태는 마음이 표독하고, 양심보다 꾀가 많이 발달하여 결코 마음을 허할 사람이 되지 못하는 줄을 알지마는, 아무리 그러한 상태이기로, 만사에 저를 위하여 호의를 가지는 병걸 자신에게 대해서야 설마 일생에 저버리는, 행동이야 하랴, 이러헤 믿고 있다.

오래 사귀인 정이 이 두 사람의 성격의 틀림을 싸고 덮어 온 것이었다.

『저기 오네.』

하고 상태는 병걸의 팔을 끌면서,

『응, 자네가 사랑하는 이 금봉 아가씨도 오는걸.』

하고 병걸을 보고 웃는다.

병걸도 학재와 숙희와 금봉이가 길에서 정거장으로 내려 오는 충충대를 걸어 오는 것을 보았다. 병걸의 눈이 금봉의 모양을 분명히 볼 거리에 그들이 다다랐을 때에 병걸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깨닫고, 속으로.

<허, 거숭한 일이로군>

하고 스스로 책망하였다.

『아, 학잰가? 나도 불청지객으로 따라 왔네.』

하고 심상태는 낯 가득 웃음을 띄우고 충충대를 여남은 계단이나 마주 올라가서학재와 악수를 하고 숙희와 금봉에게도 다 적당하게 인사와 농담을 붙이고 두 여자가 든 짐을 제가 받아 들고 두어 걸음 앞에서 뛰어 내려온다. 병걸은 상택의 기만한 행동을 탄복하였다.

일행이 이노가시라 공원에 다다른 것은 새로 한시나 되어서였다. 금봉은 그 모래 한 알멩이 없는 검은 흙, 큰 체경을 땅바닥에 자빠쳐 놓은 것 같은 못, 하늘에 솟은 검푸른 「스기」나무의 숲이 다 조선의 경치와 딴판인 특색을 가진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단풍 및 고등색 등 각색 계통을 바탕으로 한 줄이나 무늬 있는 웃을 입은 여자들이 짜작짜작 걸어 가는 것이츠츨로 나선으로나 리듬으로나 퍽 어울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월의 하늘이 젖빛과 같이 흐리고 일광도 조선과 같이 강하지 아니한 이 일본의 자연에 어리는 일본 옷, 그리고 파란 하늘, 획이 분명한 산, 맑은 대기, 너무 밝다고 할 만한 조선의 자연에는 역시 분홍이나 남이나 노랑이 나 초록 같은 밝은 순백색이 아니면 햇볕 그 물건과 같은 순백색이 어울린다는 어떤 선생의 말을 금봉은 생각하였다.

일기는 땀이 촉촉이나기에 합당하였다. 학재가 혼자 앞을 서고 그 뒤에 숙희를 가운데다 두고 병걸과 상태가 좌우에 늘어서고 맨 뒤에 서너 걸음 떨어져서 금봉이가 걸음을 걸었다. 학재는 하늘도 바라보고 못도 들여다 보면서 말 없이 걸음을 걷지마는, 숙희, 병 걸, 상태 세 사람은 웃고 떠들었다.

금봉은 뒤에서 세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으로는 학재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학재의 검은 사아지 양복에 구김살이 보일 때에 그일 때에 금봉은 그것을 입으로 빨아서 매어 주고 싶었다. 학재나 병걸이나 상태나 다 잘난 사람이언마는 금봉이가 보기에는 학재의 몸에서는 거룩한 높은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금봉은 학재의 옷을 오직 제 손으로만 거두고 학재의 먹는 것을 오직 제 손으로만 받들고 싶었다. 금봉의 마음속에는 학재라는 거룩한 이를 모시려는 생각뿐이지 학재라는 남자와 짝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학재의 집의 침모니 찬모가 되더라도 dftod에 학재의 곁에 있고 싶었다.

숙희는 병걸을 향하여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것은 병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귀로 듣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열이면 아홉은 병걸이가 대답하기 전에 상태가 대답해 버렸다. 상태는 병걸보다 입도 빠르거니와 궁리도 빨랐는 대답을 들을 양으로 병걸의 몸에 바싹 다가서서 그 입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병걸은 상태와 대답 경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웃거나 잠자코 있었다.

상태편에서 숙희에게 먼저 말을 붙일 때에는 숙희는 사정 없이 흥미 없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러면 상태는 제가 제 말에 대답을 우물쭈물하고는 동정을 구하는 듯이 고개를 돌려서 금봉을 바라보았다.

상태는 금봉을 돌아 본 무안한 마음으로,

『미스 리는 여기가 처음이시오?』

라든지,

『거기는 길이 질습니다. 이쪽으로 걸으셔요.』

하든지, 뭘요도 없는 말을 붙였다.

금봉은 이러한 말에는 상그레 웃으며,

『네.』

할 뿐이었다.

일행은 굽은 다리르 건너서 못 저편 쪽으로 갔다. 금봉이가 좁은 널쪽 다리를 마지막으로 건너는 것을 상태는 마치 붙들어나 주려는 듯이 지키고 서서,

『다리가 놉니다.』

하고 있었다.

금봉이를 가끔 돌아 보던 상태는, 저를 쓴 외 보듯하고 오늘은 병걸을 더 사랑한다는 뜻을 분명히 보이는 숙희를 내버리고 금봉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벌판이 무사시노라는 벌판입니다.』

하고는 금봉을 한번 힐끗 보고,

『무사시노에는 옛날 고구려 유민이 많이 와 살아서, 그래서 지금도 그 유적이 있다드군요.』

하고는 한번 힐끗 보았다.

「네에」, 「네에」하고 금봉은 상태의 말을 감탄하는 태도로 들었다.

일행은 이노가시라 수풀을 벗어나서 늙은 소나무가 드문드문 박힌 으악새 벌판에 둘러 앉았다. 도희에 있던 사람에게는 흙과 풀의 향기가 기뻤다.

『오빠, 시장하지 않으시우?』

하고 숙희는 지금까지 오빠를 잊어 버리고 병걸에게만 취하였던 것이 미않 여, 「오빠, 오빠」하고 열심히 학재의 비위를 맞추려 든다.

학재는 빙그레 웃으면서,

『어디 어떤 점심이냐? 좀 내놓아라.』

하고 모자를 벗어서 풀 위에 잦혀 놓는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 큰일 났네 그려.』

하고 상태가 커다란 음성으로,

『우리는 입만 들고 왔으니 무얼 먹어? 배는 꼬루룩거리는데.』

『우리도 좀 주시겠지.』

하고 병걸은 숙희와 금봉이가 점심을 꺼내는 것을 보고 먹고 싶은 듯 입맛을 다신다.

『숙희씨, 우리도 좀 주시지요?』

하고 상태가 숙희를 부를 기회를 잡는다.

숙희는 대답이 없다. 속으로는 「숙희씨는 다 무엇이야?」하고 도리어 토라진다.

숙희는 보자기를 풀 위에 펴고 위에 샌드위치를 벌여놓고, 그리고는 저는 병걸의 곁에 앉으면서, 앉을 곳을 몰라 헤매는 금봉을 보고 상태가 「이리 와 앉으셔요」하는 것을 숙희가 금봉의 손을 붙들어서,

『여기 앉아.』

하고 학재의 곁에 앉힌다.

두 여자는 다 자주빛 바탕의 「기모노」에 남빛 나는 「하까마」를 입었다. 학재로부터 오른손 편으로 금봉이, 그다음으로 숙희, 다음에는 병걸이, 그리고 병걸과학재와의 사이에 상태가 앉았다. 상태는 숙희나 금봉이가 제 곁에 오기를 바라고 일부러 자리를 넉넉히 잡고 있었으나 숙희가 이 계획을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상태는 불쾌한 빛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숙희가 떨어져 나간다면 도리어 다행이다. 금봉을 손에 넣어보리라,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숙희 가 훼방을 놓아서 금봉이도 마음대로 안되면 최 을남이라도 얼러 보리라 하였다. 최 을남이는 끌기만 하면 끌려 올 것 같았다.

그러나 최 을남이보다는 강영자가 낫다고 상태는 생각는 될 수만 있으면 부자집, 재산 가지고올 아내가 원이었다. 그러나 강영자는 너묻 찬물에 돌 같아서 손 붙일 틈을 주지 아니하였다.

상태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생각을 계속하였다. 숙희는 한때 저를 좋아 한 적이 있었다. 편지 왕복도 있고 같이 산보 다닌 일도 있었다. 그리하던 것이 어찌어찌하여 병걸에게로 마음이 돌아 섰다. 그러나 병걸은 연애를 할 사람도 아니요, 이혼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병걸은 처녀가 오면 처녀, 기생이 오면 기생, 누구도 물리칠 사람도 아니지마는 한 여자에게 정을 주어 가지고 죽을지 살지를 모르는 그런 위인이 아닌 줄을 상태는 잘 안다.

<흥, 숙희년이 잘못 걸렸지.>

하고 상태는 코웃음을 하였다.

<금봉이란 것이고거 얌전한데……>

하고 그 날카로운 눈으로 금봉을 힐끗힐끗 본다.

<학재녀석은 여자에게 대해서는 나무로 깎아 놓은 등신이니까.>

하고 상태는 안심해 본다. 그러나 만일 학재와 저와 둘이 경쟁을 한다면 학 재에게 이길 기미가 많은 것을 그도승인한다. 재주로나 얼굴로나 구변으로 나 도무지 상태는 학재에게지지 아니하건마는 웬일인지 사람들은 저보다 학 재를 더 존경하는 줄을 상태도 안다. 그것이 불쾌하지마는 또한 사실로 인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 이야기하다가 상태의 입에서 연애 신성튼이 나왔다.

『사랑이란 신성한 것이야. 사랑이란 절대여든.』

하는 것이 그의 겨론이었다.

『사랑이란 일종 욕심이지.』

하고 병걸이가 반대를 하였다.

『이 사람, 그것은 사랑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일세, 취소하게 취소해.』

하고 상태는 회에서 하던 모양으로 들이 셌다.

『아이가, 어쩌면!』

하고 숙희는 눈을 크게 뜨며,

『어쩌면 사랑을 욕심이라고 하셔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욕심이야요 사랑이 ? 욕심 같으면 어찌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하겠어요? 사랑은 욕심이 아니라 희생입니다.』

하고 병걸에게 대들었다.

『옳소, 옳소! 숙희씨 말씀이 옳소, 병걸군 말은 다만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휴우먼 네이처를 모독하는 것이요. 자 병걸이 어서 앗 사리 사죄하고 항복해!』

하고 상태가 기뻐한다.

『이렇게들 들고 날 게야 있다. 자네나 숙희씨의 사랑은 신성한 게지. 우리네 같은 범인의 사랑은 애욕의 별명이란 말일세, 하하하하,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하고 병걸은 유쾌하게 웃어 버린다. 그러나 웃어 버리고 나서도 병걸은 그만하고 마는 것이 불만한 듯이 다시 말을 이어서,

『무엇이나 다 그렇지마는, 원제 사랑이란 것은 있는 것이 아니어든. 누구의 사랑--- 그도 어느 때 누구에게 대한 사랑이란 것이 있지. 사랑 그 물건이란 것은 없단 말야. 어떤 갑이라는 사람이 선한 동기로 어떤 을이라는 사람을 사랑하였다 하면 그 사랑은 신성이겠지. 그러나 어떤 선하지 못한 을이란 사람이 선하지 못한 동기로 누구를 한다 하면 그것까지 신성할 수 야 있겠나. 그러니까 사랑 중에는 신성한 사랑이 있겠지. 해도 보통 요새 청년 남녀들이 사랑입시오 하고 오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식은 나는 모르겠네. 사랑이라는 좋은 가면을 쓰고 일시 정욕의 만족을 구하는 것 만 같애. 안 그런가. 학재?』

하고 학재나 이 뜻을 알아 줄까 하는 듯이 학재를 바라본다.

학재는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그야 그렇지.』

하고 상태가 병걸의 말에 찬성을 하였다.

『동기로나 결과로 나 선한 것을 예정하고 나도 한 말이야. 동기가 불순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어든.』

하고 상태는 자기의 논지를 보충하였다.

『남자의 정조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생각하셔요?』

하고 숙희는 병걸의 말이 이긴 것을 기뻐하면서 to 문제를 꺼내었다.

『여자에게 정조가 필요하면 남자에게도 정조가 필요하지요. 그것이야 물론이지요.』

하고 상태가 단언한다.

숙희는 병걸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못하여,

『말씀하셔요.』

하고 병걸을 재촉한다.

『글세, 우린 그런 어려운 문제는 모릅니다. 여보게 학재 자네 대답하게.』

하고 병걸은 웃으면서 학재에게 밀어 버린다.

『아이!』

하고 숙희는 병걸에게 재촉하는 눈을 보낸다.

『글To, 우리는 벌써 정조를 여러 번 깨트린 놈이니까 말할 자격이 없징.

내 아내는 정조를 꼭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하하하하』

하고 병걸은 웃어 버린다.

『그런 불철저한 소리가 어디 있어?』

하고 상태는 그 빛나는 눈을 숙희와 금봉에게로 굴리며,

『저는 정조를 안 지키면서 상대방더러는 정조를 지켜라---그런 이기주의 가 어디 있어? 형벌에는 남자의 정조라는 것이 문제가 안되었지마는 그것은 구식 사상이어든. 본래 권리와 의무는 쌍방이 대등으로 지는 것이 법리상 원칙인데 정조만이 편무적인 것이 불합리하단 말야.』

하고 또 한번 숙희와 금봉을 바라본다.

『말이야 자네 말이 옳지.』

하고 병걸은,

『옳지마는 자네는 어디 그렇게 남자의 정조를 지켰나. 성경에 말씀이, 여인을 보고 음심만 품어도 간음을 범한 것이라는데, 자네는 모르겠네마는 나는 무수히 죄를 범한 사람이니까. 하하하하.』

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없어, 우리는 없지!』

하고 상태가 열이 나서 장담을 한다.

『글세, 난 모르겠네.』

하고 병걸은 하늘을 우러러 본다.

『거 무슨 소린가. 자네는 내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지, 내가 절대로 정조를 깨트린 일이 없다는데 글쎄 난 모르겠네란 무슨 말인가. 자네 실언일세.

취소하게.』

하고 심상치 아니한 태도로 대든다.

『이 사람, 이다지 아럴 거야 있나. 나는 양심에 물어보니까 죄가 많은 사람이니까 자네도 나와 같은 사람이려니 하고 한 말일세. 자네 그런 일이 없으면 갸륵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다 아실 텐데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염려될 것이 있나. 안 그런가, 학재? 하하하하.』

하고 병걸은 귀찮은 듯이 안경을 벗어서 닦는다. 학재는 또 빙그레 웃는다.

『우리 여자들은 정조를 생명으로 알고 있는데, 안 그래 금봉아!』

하고 길게 한숨을 쉰다. 금봉은 손 선생이라는 남자를 생각하고 자기가 정 조를 보존하느라고 서울서부터 부산까지 오는 동안에 얼마나 애를 쓴 것을 생각하였다.

『어디, 남자라고 다 그런가요?』

하고 상태는 병걸을 가리키며,

『이런 필리스틴이나 그렇지요.』

하고 웃는다.

『글세.』

하고 학재가 의외에 입을 연다---

『아마 정조란 지키기 어려운 것이길래 정조가 중대 문제가 되겠지. 그렇지만 남자나 여자나 세상에 문제가 드러난 사람을 제하고는 다 정조를 지키는 사람으로 보세그려. 결국 저마다 제 양심 문제니까.』

한참 동안 침묵이 계속된다.

『학재, 자네야 설마 정조를 깨트린 일이 없겠지?』

하고 상태가 학재를 본다.

『없다고 믿어 주니 고마워.』

하고 학재가 웃는다.

『나는 없다고 믿지 않나? 자네까지도 날 안 믿나?』

하고 상태는 학재의 대답을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한다.

『내가 알겠나? 자네가 알지.』

하고 학재는 상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허, 이 사람들, 도무지 사람을 안 믿네그려.』

하고 상태는 분개한 빛을 보이며,

『숙희씨는 나를 믿어 주겠지요?』

하고 묻는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고 숙희는 웃는다. 금봉도 고개를 숙이고 터지려는 웃음을 도로 삼킨다.

『자, 인제는 그런, 어려운 문제는 고만두고 산보나 하자구.』

하고 병걸은 유리컵에 남은 물을 다 마시고 일어서면서.

『이런 좋은 자연 속에 와서 돌아 댕기면서 구경이나 하지. 그런 토론해서 쓸 데 있나.』

하고 한번 기지개를 켠다.

『자 앉아!』

하고 상태는 병걸을 끌어서 억지로 앉히며,

『사람이란 무엇에나 철저해야 쓰는 것이어든.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끝을 막아야지. 지금 조선 유학생계를 돌아 보면 것도 없고. 그러니까. 연애 문제라든지 정조 문제라든지 철저하게 연구해서 단안을 내릴 필요가 있거든.

안 그래요?』

하고 학재와 금봉과 숙희를 차례로 둘러 본다.

병걸은 한번 기지개를 켜고 나서 상태에게 붙들려 앉는다. 그러나 눈은 하늘에 피어 오르는 구름만 바라본다.

상태는 민족주의자 모인 데 가면 민족주의자가 되고, 예수교인이 모인데 가면 예수교인이 되고, 또 사회주의자 모인 데 가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유학생 감독부에 가면 온건한 현실 긍정주의자였다. 더구나 병걸이가 말한 그 연설은 최 을남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었다.

최 을남이가 한번 상태와 단둘이 만났을 때에 연애, 이혼의 자유와 정조 무용론을 말할 적에 상태는 그 말이 옳다고 극구 찬양하였다. 그 값으로 을남에게 한번의 포응과 키스를 받았다. 여기 감격하여서 상태는 그로부터 며칠 후인 사회 과학 연구회에서 그러한 연설을 하여, 그때 한층 동경 유학생의 일부에 일어나던 사회주의 경향을 가진 학생들에게 갈채를 받고 을 남에게서는 한번 더 키스와 포옹을 받았다.

그러나 상태는 을남의 키스와 포옹이 아무에게나 주는 것임을 안 때에 도리어 숙희가 더욱 그리워진 것이었다.

넘에 있어서는 대단히 완고(?)하였다. 오늘 상태가 정조론과 연애 신성론을 꺼낸 것은 숙희와 금봉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었다. 병걸은 처음부터 이 동기를 알았으나 모른 체하고 참고 있다가 마침내 밉살스러운 생각이 나서 이 말을 폭로해 버린 것이었다.

좌석이 흥이 깨어져서 일동은 일어나서 걷기를 시작하였다.

또 아까 모양으로 학재가 핲을 서고 그 뒤에 병걸과 숙희가 나란히 섰으나 상태는 금봉의 곁을 따랐다. 상태는 금봉에게,

『이것이 스스끼(으악새)라고, 일본서는 가을이 되면 퍽 좋아하는 풀입니 다. 달밤에 보면 참 좋아요.』

그런 말도 하고,

『동경 유학생계란 아주 부패하였습니다. 미스 리도 퍽 조심하지 아니하시면 유혹되십니다. 여자란 하번 유혹되면 버림의 사람이 되는 것이어든요.

참주의하셔요.』

이런 말도 하고, 무슨 어려운 일이 『 있으시거든 제게 기별하셔요. 제집은 이러한 뎁니다.』

하고 명함에 주소도 적어 주었다.

금봉은 무슨 말에나 「네에」 「네에」할 뿐이었다.

금봉은 상태와 떨어지려고 좀 빨리도 걸어 보고 우뚝 걸음을 멈추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태는 그림자 모양으로 금봉의 곁을 따랐다. 금봉은 자기가 그리워하는 학재의 곁을 따르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상태와 가까이 하는 것이 슬펐다. 세상이란 뜻대로 안되는 것이로구나 하였다.

학재는 혼자 앞서 가면서 아무쪼록 자연 경치에만 마음을 쏟으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오늘 아침 생일 선물에 적은 금봉의 글 구절이 야속하게도 머 리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까닭이었다.

『금봉이는 잠꼬대로 오빠 이름을 부르고 기도한다우.』

하면 숙희 말이 이상한 힘을 가지고 학재의 마음을 뒤혼들어 놓은 까닭이었다. 밝히 말하면, 금봉은 학재의 마음에 꼭 들었다.

학재는 자신 있는 의지력을 가지고 이 설레이는 마음을 눌러 보려 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되지를 아니하였다. 이에 학재는,

<아직 속도 잘 모르는 사람,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희칠한 무덤, 사탄의 유혹, 더려운 정욕.>

이러한 문자를 많이 생각하여금봉이가 그리운 생각을 씻어 버리려 하였다. 학재는 햄릿 왕자가 오필리아를 묻으려는 묘지에서 해골을 들고 하던 말을 생각하였다. 금봉이가 비록 저렇게 아름답더라도 죽어서 썩어지면 냄새나는 송장이요. 해골이 아니냐 하는 생각으로 인생을 달관하려 하였다.

그러나,

『지기 전 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냐?』

하고 누가 곁에서 힘있는 소리로 저를 꾸짖는 것 같았다.

학재는 잠깐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금봉이가 상태와 나란히 서서 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왜 담대하게, 정직하게 금봉이와 가지런히 서서 걷지를 못하나?>

하고 학재는 스스로 책망하였다.

『이 사람, 숙희가 노야T네.. 자네가 금봉이 곁에만 붙어있다고.』

하는 병걸의 말을 듣고 상태는 금봉이 곁을 떠나서 숙희를 따랐다. 이래서 숙희와 병걸과 상태가 한 패가 되고 학재와 금봉이가 앞뒤에 외퇴로 걸었다.

학재는 야속히도 마음을 지배하려는 금봉의 모양을 뗄양으로 동지들이 경영하고 있는 사업 계획을 생각하였다.

학재가 중심이 된 그 사업 계획이란 것은 기미년 사건에 흥분되었던 반동으로 청년의 마음이 이기적 개인주의로 흘러 가는 경향이 있는 것을바로 잡 아서 일종의 정신적인 청년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그 계획의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으나, 옛날 독일의 「루젠드분트」(덕을 닦는희)와 간디의 「사챠그라하」의 장점을 취하고 거기다가 조선의 옛날 정신 운동인 국선도(國仙道)의 정신을 가미한 것으로, 학재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이만큼 그 리스도교적 색채를 띤 것이었다. 물론 직접 행동을 하려는 것도 아니요. 또 단장정치적 색채를 띤 운동을 하려는 것도 아니요, 오직 정신적으로 참된 마음으로 조선의 장래를 위하여 일하겠다는 순결한 청년을 규합하여 훈련하 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학재가 발명한 사상은 아니었다. 학재에게도 그러한 생각이 있기는 있었으나 그 생각을 체계화한 이는 따로 있었다. 학재는 어떠한 기회에 간접으로 그 사상을 받아 가지고 공명하여 제 몸을 이 일을 위해서 내어 놓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학재는 동경 유학생 중에서 삼십 명 가량의 동지를 얻었다. 그때 유학생들로 말하면, 「마르크시즘」으로 기울어진이가 한 부분, 민족적으로 과격한 사상을 가진 이가 한부분, 그리고는 이럭저럭 지나는 이가 한 부분, 그 나머지는 제 개인의 일생만을 생각하거나 향략주의에 흐르는 판이었다. 학재가 동지를 구한 것은 이들 중에서 조선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과격한 분자들 중에서였다.

학재의 이론에 의지하면, 과격한 사상이나 행동은 일시적으로 민중을 선 동시키는 효과 밖에는 없고, 힘없는 민중을 진실로 힘있게 이끌고 훈련하는 길은 온건 착실한데 있다는 것이다. 폭타니나 육혈포를 던지는 것은 일시적 흥분만으로도 될 수 있지마는 민중에게 통일한 정신을 주고 문화 생활의 주체가 되고 창건자가 되는 힘을 주는 일은 오직 변하지 않고 오래 참고 오래 견디는 용기가 있는 이라야 능히 할 수 있다고 이것을 학재는 잡긴 용기, 즉 침용이라고 붙러서 조선의 중견이 될 청년은 모름지기 뛰어단 침용을 가지고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꾸준한 노력을 계속할 정신이 있어야 된다고 학재는 주장하고 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이론은 너무 미지근하여서 청년들의 흥미를 끌기가 어렵다. 학재가 일 년 동안에 삼십 명이나 되는 동지를 모은 것은 그의 인격의 압력과 명철한 이론과 쉬임 없는 정력에서 온 것이었다.

학재는 이 일을 생각하면서 벌판길을 걸었다. 연한 잎사귀가 야드를 한 잡목 숲이 끝이 없을 듯한 벌판을 걸었다.

<연애할 새가 있나?>

하고 학재는 혼자 웃었다.

『오빠.』

하고 숙희가 학재를 불렀다.

『누가 오빠더러 길잡이 하라우? 왜 혼자 자꾸만 가기만 허우. 금봉이는 저렇게 혼자 있는데. 좀 설명두 허구 이야기도 허시구려.』

하고 책망하는 듯이 종알거린다.

학재는 돌아 서서 웃었다.

『저 구름장이 수상한데.』

하고 상태가 학재에게 구름장을 가리킨다.

『비 좀 오면 어떤가. 좀 맞는 것도 좋다.』

하고 병걸이가 웃는다.

구름장이 서남쪽으로 일어나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떤 데는 까맣고 어떤 데는 햇빛을 받아서 희었다.

『사미다레(오월에 오는 비)』

하고 숙희가 하늘을 바라본다.

숙희와 병걸과 상태 일행이 지나가기를 학재는 길을 빜서 기다리다가 금 봉이와 나란히 걷기를 시작했다.

금봉은 천만 의외에 학재의 곁에 걷게 된 것이 기뻣으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상기가 되어서 눈이 다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이게 조오스이라고 동경 사람의 벅그로 흘러 들어가는 물입니다.바로 이 위로 올라 가면 다마가와라는 강이지요.』

하고 학재는 꼿꼿이 뚫린 개천으로 잔잔한 소리를 내이며 흘러 가는 물을 가리컸다.

『네에.』

하고 금봉은 학재의 곁에 바싹 들어 서서 학재가 가리키는 물을 굼어 보았다.

앞선 사람들은 나무숲에 가리어 보이지 아니하였다.

『처음 오셔서 스토오우브를 보기나 아니 되셔요?』

하고 학재는 또 물었다.

『괜찮아요.』

하고 금봉은 치떠서 학재를 보았다.

『성경을 좋아하셔요?』

하고 얼마 있다가 또 학재가 물었다.

『보면 압니까, 그래도 날마다 보기는 보지요.』

하고 금봉은 한 걸음 빨리 걸어 학재와 나란히 선다.

『댕기시던 ○○학교에 졸업생이 많지요?』

하고 학재가 고개를 돌려서 금봉을 보면서 묻는다.

『한 삼백명 되는지요. 본과만은 한 이백명 되구요.』

하고 금봉은 학재를 바라본다.

『여름 방학에 댁에 가시지요?』

하는 학재의 묻는 말에 금봉의 머리 속에는 복잡한 가정과 손 선생의 일이 한꺼번에 떠나 와서 갑자기 대답이 아니 나와서 잠간 머뭇하다가.

『보아야겠어요. 숙희 언니는 가시지요?』

하고 간접으로 학재가 가나 안 가나 하는 것을 알아 내려는 계책을 쓴다.

『숙희는 해마다 가지요. 금년에도 유학생 강연단이 갈 것입니다. 숙희도 작년에는 강연하러 돌아 다녔지요. 숙희가 숙기가 좋아서 말을 잘한답니다.

아는 것은 없지마는.』

『방학에 가시지요. 동경은 덥습니다. 해수욕이나 피서지도 있지마는 혼자 가실 만한 데는 없고. 조선 가셔서 동창들이나 찾아 보시지요.』

하는 학재의 말 뜻을 금봉은 알아 듣지 못하였다.

학재도 그 이상 더 설명도 아니하였다.

『어학을 많이 배우시오. 그리고 일본 공부를 많이 하셔요. 일본 사람 동무도 많이 사귀시고 가정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놀러 가시구. 어쨌든지 학교에 계신 동안에 일본과 일본 사람이란 것을 밑두리 아시도록 하셔요.』

학재는 금봉에게 이런 말도 하였다. 무슨 말이든지 하개가 하는 말은 다 진리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학재의 말대로 일본에 관한 것을 힘써 배우고 또 여름 방학에는 집에 가서 동창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찾아 보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무엇이든지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 주셔요. 힘껏은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맹세하였다. 이것은 금봉이가 일생에 처음으로 한 엄숙하고도 정성스 러운 맹세를 한 것이었다. 마치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것을 서약한 것과 같았다. 금봉은 학재에게 대하여 이렇게 저를 맡겨 버린다는 의사를 표시하게 된 것이 한량 없이 기뻤다.

학재는 처녀 금봉의 이 말이 심상치 아니한 말인 줄을 알았다. 그래서 스스로 제가 그러한 자격이 있는가 반성하고 금봉의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중대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하늘에 검은 구름이 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무얼 하고 입때 안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상태의 빛나는 눈이 나타났다. 그는 두 사람을 향하고 걸어 오면서,

『나는 길을 잃어 버린 줄 알았다. 미스 리, 다리 안 아프십니까?』

하고 금봉을 보고 웃는다.

이 날의 이노가시라의 하루는 각 사람에게 각가지 변화를 일으켰다. 심 상태의 마음은 완전히 숙희에게 떠나서 금봉에게로 옮았다.

『숙희는 금봉에게 비기면 문제도 안돼!』

하고 상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그 빛나는 눈을 가늘게 하여 하여금봉을 내 것을 만들게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금봉이가 숙희보다도 넉넉한 집 딸이라는 것이 더욱 상태의 마음을 끌었다.

병걸은 이날에 한걸음 더 숙희와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숙희가 곁에서 보는 사람도 꺼리지 않고 더욱더욱 병걸에게 호의를 가지는 모양이 보일 때에 병걸은 한끝불쾌하게도 생각하면서도 숙희의 정을 가련하게도 생각하였다. 숙희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담대하게도 병걸의 손을 더듬어서 쥐었다.

병걸은 숙희 손이 심히 보드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학재는 어떠한고 하면, 금봉에게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끌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금봉이가 제 곁에서 걷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의 저울대가 흔들려서 혼란 상태에 빠지는 것 같았다. 금봉과 단둘이서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것이 한없이 유쾌하였다. 가끔 금봉이 옷이 제 몸을 스칠 때에는 누를 수 없는 떨림을 깨달았다. 그럴 때에 상태가,

『무엇을 하고 아직 안 와?』

하고 다서면 질투에 가까운 불평까지도 깨달았다.

<아아 이거 안되겠다.>

하고 학재는 비칠거리는 의지력을 채질하여 날뛰는 열정의 고삐를 꽉 붙들게 하였으나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를 아니하였다.

금봉은 어떤고 하면, 이날 하루가 학재에게 대한 사랑과 사모의 정의 불길에 더욱 기름과 부채질을 더하였다.

학재의 곁에 서서 가노라면 가끔 상기하여 눈이 아뜩해짐을 깨달았다.

숙희는 금봉과도 달라서 이제는 처녀기를 지나고 원숙한 아내의 시기라, 금봉과 같이 꿈과 같은, 종교적 동정과 같은 사모와 사랑의 줄을 넘어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도 제 것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탔다.

어느 「스끼야끼」집에서 저녁을 사 먹고 기숙사로 돌아온 숙희와 금봉은 몸과 마음이 갱신을 못하도록 피곤하였다.

『금봉이.』

『응』

『오늘 재미있었지?』

『………………』

『아아.』

하고 숙흐는 하품을 하였다.

숙희와 금봉은 침대에 누워서 저마다 제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금봉이』

『응?』

『조병걸씨 어때?』

『좋은 사람이야.』

『괜찮지?』

하고 숙희는 만족한 듯이 웃고는 한숨을 쉬었다.

『금봉이.』

『응?』

『난 조 병걸씨를 사랑해요.』

하고 숙희는 어떤 때에 금봉에게 밝히 말하였다.

하루는 금봉이가 교실에서 기숙사로 돌아 왔더니 숙희가 웃으면서 편지 한 장을 내어서 금봉에게 주면서.

『내가 때에 보았으니 노여 말어. 응?』

하였다.

그 편지는 심 상태한테서 이 금봉에게 온 편지였다.

글씨도 잘 쓰고 글도 잘되었다. 다만 상태의 말이 그러한 모양으로 글도 지 어서 한 것이 많았다.

금봉은 편지를 다 읽고 낫 숙희의 책상에 집어 동댕이를 치며,

『아이 망칙해!』

하고 낯을 붉혔다. 사랑하니 사랑해 주오. 하는 소설에서 베껴낸 듯한 사랑 편지였다.

『답장이나 해주어.』

하고 숙희가 금봉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답장은? 미쳤나, 답장을 하게.』

하고 금봉은 강한 반감을 보이면서,

『언니두. 그건 왜 떼었수? 그냥 봉한 대로 들려 보낼걸.』

하고 숙희의 책상 위에 나자빠진 이 금봉씨라 한 사각봉투를 노려 보았다.

금봉은 이노가시라에서 상태가 이상한 눈으로 추군추군하게 굴던 것과, 모처럼 학재와 단둘이 있을 때면 세 번이나 불쑥 튀어 나와서 훼사를 놓던 것을 생각하고 상태가 미웠다.

금봉은 숙희가 거의 매일 병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보았다. 숙희는 그것을 금봉에게 감추려고 아니할 뿐더러 어떤 때에는 써놓은 편지를 한번 낭독하고는 금봉의 비평을 구하는 일도 있었다. 숙희의 편지에 대하여서는 병 걸의 답장도 오는 모양이었다. 한번은 숙희가 병걸의 편지를 떼어 보고, 이런 편지가 어디 있담, 하고 화를 내이며 책상 위에 내어 던지고 울려 들었다. 어떤 편지인가 하고 금봉은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것은,

『편지 받았습니다. 이로부터는 그렇게 자주 편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뿐이었다. 과연 간단한 편지여서 숙희가 화를 내이는 것도 당연한 일 이라고 금봉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열정적으로 병걸을 사랑하건마는 병걸이가 그처럼 냉정한 것이 숙희를 위하여서 퍽 미안하였다.

<나도 섣불리 내 심정을 말하였다가 임 선생에게서 저러한 대접을 받으면 어떡허게.>

하고 금봉은 학재를 사랑한다는 것이 더욱 어려움을 깨달았다.

그러나 숙희는 마치 억지로 병걸을 정복하려는 듯이 날마다 병걸에게 편지를 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점점 숙희는 그 쾌활함을 잃어 버리고 조금씩 침울한 기운이 더하였다. 이따금 혼자서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지우는 일도 있고, 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서 부시럭거리도하고,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하는 일도 있었다.

『금봉이, 사랑이란 괴로운 것이야.』

하고 숙희가 한번은 저녁을 먹고 학교 수풀 속으로 산보를 하면서 금봉에게 말을 붙였다---

『가슴이 아퍼 도무지 살고 싶지를 않아.』

『그럴까. 나는 사랑은 행복될 것 같애.』

하고 금봉은 무심코 대답하고 낯이 화끈함을 깨달았다.

『좌우편이 사랑이 맞으면야 행복도 되겠지. 짝사랑은 못할 게야.』

하고 숙희는 나뭇잎 하나를 와락 잡아 뜯는다.

왜 언니가 짝사랑이오 『 ? 조 선생도 언니를 사랑하시는 것이야 사실이지.』

하고 금봉은 숙희를 위로하였다.

『아냐. 조는 남편으로는 쫗아도 애인으로는 마땅하지 아니해. 사랑이란 그다지 소중하게는 알지 않는 모양이야. 사랑 같은 것은 시들 방구로 아는 모양이야. 무엇에나 그렇게 열중하는 사람은 아니어든. 그저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지마는 무엇 한 가지만에 집착하는 것은 구찮게 생각하나봐.』

하고 숙희는 병걸의 성격의 주석을 내인다.

『성미가 활달하시니깐 그러시겠지. 나오지 않는 사랑을 가장 생명이 타기나 하는 듯이 안달을 하는 따위들보다 조 선생같이 천연스러운 이가 도리어 믿음성이 있지 않우?』

하고 금봉은 은근히 상태를 걸었다.

『그야 그렇지, 그렇지만 조에게는 싸늘한 이성의 거울 하나 밖에는 의지의 힘도 없고 열정의 불도 없는 것 같에. 뭐든지 알기는 다 알고 해야 된다 고 말도 하면서도 저는 암것도 덤비어서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왜 조선에 먹지는 않으면서도 좋아는 아니하거든. 담배도 이따금 먹어요. 그래도 먹고 싶지는 아니한 모양이야. 사랑도 알기야 알겠지. 이야기를 보면 횅해요. 그래도 몸소 사랑을 하는 것은 구찮은 모양이야. 어떻게 도무지 「하리아이」 가 없어---사랑할 재미가 없단 말야.』

『아이 언니두. 정말 그러면 왜 사랑을 하시우? 무엇에 반한 데가 있길래 저렇게 야단이시지.』

하고 금봉은 깔깔 웃는다.

그래도 숙희는 웃지도 아니하고 여전히 큰 걱정 모양으로,

『그러기에 말이지. 나도 모르겠어. 왜 내가 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서도 아니 사랑할 수 없으니 걱정 아냐? 보고 싶어서 죽겠으니 걱정 아냐?』

하고 해결을 바라는 듯이 금봉을 바라본다.

『만나 보고 싶거든 만나시구려. 나 같으면 만나겠네.』

하고 금봉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제 말이 거짓말인 것을 생각한다. 저는 그렇게 보고 싶은 학재를 찾아갈 용기는커녕 그에게 편지 한장 쓸 용기도 없는 것을 스스로 비웃는다.

여름 방학이 되어서 학재와 병걸과 숙희와는 다른 여러 유학생들 모양으로 조선으로 돌아 갔다. 학재는 강연단 이십 명 일행을 인솔하고, 병 걸은 베이스보을 단 일행이십 명을 인솔하고 단체 할인으로 조선으로 가고, 그밖에도 혹은 순희 음악단이니 혹은 순희 연극단이니 하는 것이 조직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 갔다. 그들은 전조선 십삼도 큼직큼직한 도시로 돌아 다니며 동포들에게 각 방면으로 새로운 지식도 줄 겸 구경도 하자는 것이었다.

금봉만이 돌아갈 집도 없고, 또 손 선생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서 어학 공부하는 핑계로 동경에 남아 있게 되었다. 손 선생은 금봉에게 여비를 보내고 금강산 구경을 시킨다는 조건까지 제출하고 조선 오기를 졸랐으나 금봉은 영어 힘이 바쳐서 여름 동안에 영어 준비를 아니하면 아니 된다고 하여 똑 잡아떼었다. 그리고 여름 동안에는 기숙사를 쓰지 않기 때문에 금봉은 학재가 있던 방을 지키기로 되었다.

금봉이가 학재의 방에 있게 된 것이 기뻤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학재의 책상 앞에 학재의 방석을 깔고 앉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었다.

금봉은 학재의 이불잇과 요잇, 내복 등속을 깨끗이 빨아서 다려 놓았다.

더 빨 것이 있는가 하고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어서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학재에게서는 한 주일에 한번씩이나 그림 엽서가 왔다.

『오늘은 평양을 떠납니다. 평양에서는 동포들의 영렬한 환영을 받았습니 다. 평양은 왕겁성입니다. 사천년의 옛 서울입니다. 대동강 물결에 조상의 옛날 일을 묻습니다.』

하는 것도 있고,

『대단히 덥습니다. 동경은 얼마나 더운가 하고 염려됩니다.』

하는 것도 있었다. 금봉은 이 몇 마디 안 되는 학재의 편지를 보고 또 보고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금봉은, 학재가 이렇게 가는 곳마다 엽서라도 주는 것이 행여나 저를 사랑해 주는 뜻이나 아닐까 하는 희망도 품어 보았다.

다들 조선에 돌아갔건마는 심상태만이 고등문관 시험을 치른다고 동경에 있어서 가끔 금봉을 찾아 왔다.

그는 산보를 가지고도 졸라 보고 어디 이삼일 여행을 가자고도 졸라 보았으나 금봉은 번번이 좋은 말로 거절을 하였다.

여름 방학도 거의 끝이 되어서 금봉은 학재가 돌아올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을 기뻐하고 있을 때. 어느 비 오는 날 밤에 금봉은 잠이 아니 들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고 누워 있을 때, 아마 자정은 넘어서 상태가 찾아왔다.

『이 밤중에 저것이 찾아 오니 어떡해.』

하고 금봉이가 짜증을 내고 있는 판에 상태가 층층대로 퉁퉁거리고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금봉이가 옷을 고쳐 입고 자리를 다 집어 치우기도 전에 상태는 방에 들어서며,

『큰일 났습니다.』

하고 그 날카로운 눈을 반짝거렸다.

『왜요? 무슨 일야요?』

하고 그렇지 아니해도 가슴이 설레던 금봉은 거의 숨이 막힐 듯이 놀라면서 물었다.

『학재군이 잡혔읍니다그려.』

『네?』

『앉으세요.』

하고 제가 먼저 앉으며 상태는 호주머니에서 전보 한 장을 내어서 금봉에게 준다.

금봉은 떨리는 손으로 그 전보를 받았다---

『임 학재와 일행 다섯 사람은 오늘 새벽 ○○경찰서의 손에 체포되었 다.』

하는 것이었다.

금봉의 머리 속에는 「비밀 결사」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지나간다. 그것은 학재가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어떤 비밀한 단체를 조직하고 있는 줄을 알뿐더러, 이번 강연단이나 베이스보을 단순회도 각 지방에서 동지를 구하 기 위함이란 것을 눈치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일일까요?』

하고 금봉은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상태를 향하여 근심스럽게 물었다.

『글세, 이 전보만 가지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마는 아마 무슨 사건이 발각이 된 게지요. 나는 이런 전보를 받았길래 궁금하실 듯해 미스 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럼 갑니다.』

하고 의외에도 상태는 곧 일어나 가버렸다.

상태가 의외에 말썽 없이 돌아가 준 것은 고마웠으나 학재가 경찰에 잡혔다는 것은 금봉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이튿날도 비가 오락가락하여서 금봉은 학재를 생각하고 집에만 박혀 있었다. 행여나 학재가 놓였다는 전보가 올까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소식이 없 이 날이 저물었다.

밤이 들면서부터 폭풍우가 시작되어 집이 흔들렸다. 뒤껄 양철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곁의 사람의 말도 아니 틀릴 지경이었다. 정전이 되어 전기등이 꺼지는 일도 있었다. 전기등이 꺼질 때에는 번개 빛이 유리창을 통하여 번쩍거렸다.

『이리 내려 오시구려.』

하고 혼자 사는 주인 마누라는 w도 무시무시해서 금봉을 아래층으로 불러 내렸다.

주인 마누라는 보꾹에 모신 남편의 위패 앞에 조그마한 등불을 켜놓고 만수향을 피우고는 딱딱 손벽을 두 번치고는 합장하고 절하고, 이리하기를 수 없이 하였다.

『돌아 가신 지가 얼마나 되셔요?』

하고 금봉은 슬픈 표정을 하였다.

『벌써 칠 년째랍니다.』

하고 마누라는 남편에 관한 몇 가지 말을 하였다.

남편이 죽은 이듬해에 중학교 오학년에 다니던 아드이 해수욕을 갔다가 물에 빠져서 죽고, 고등 소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던 딸 하나는 이 층애 기숙하고 있던 대하갱의 유혹을 받아서 아이를 배고는 그 대학생이 종적을 감추어 버려서 한 달 동안이나 날마다 울다가 철도 자실을 해버렸다고 이야기하였다. 남편의 위패 좌우에 있는 조그마한 두 위패가 그거라고 가리키고 마누라는 눈물을 씻으며,

『실례했어요. 이런 슬픈 말씀을 드려서.』

하고 미안한 뜻을 표하였다.

『아이 어쩌면!』

하고 금봉도 슬퍼졌다.

『그래두 내가 살아 있어서 위패 앞에 불이라도 커놓지 않아요? 산소도 돌아 보고, 염불이라도 해드리고, 나만 죽으면 아무도 없답니다. 시골 가면 친척도 있건마는 누가 동경까지 와서 산소나 돌아 보아 주겠어요? 돌아 보니 무엇하겠어요마는 그래도 내 마음이야 그런가?』

낯에는 잔 주름이 잡혔지마는 본래는 밉지 않던 다정스러운 얼굴을 가진 마누라였다. 금봉은 이 마누라가 이슬픔을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평소에는 유쾌하게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였던가 하고 일변 의심하고 일변 탄복하였다.

『임서방님은 참 얌전하신 양반이야요.』

하고 마누라는 손님에게 미안한 듯하여서 화제를 돌렸다.

금봉은 학재가 경찰에 붙들렸단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마누라는 말을 이어서, 임 서방님헌테 여러분이 『 놀러 오시지마는, 다들 좋은 양반이시지마는, 임 서방님은 참말 좋은 어른이야, 인제 장한 양반이 되시겠지요. 도무지 말이 없으시고 마음이 착하시고 인정이 많으시고. 그리고 술을 잡수시나 담배를 잡수시나. 우리 집에 와 계신 지가 벌써 삼 년째 되시지마는 한번도 밖에 나가서 주무신 일이 없으시지. 자정을 넘기는 일도 없으시지. 어디 요새 학생님들이 그런가요. 한 달이면 서너 번은 밖에 나가서 자고…… 호호호, 아가씨 계신데 이런 말씀을 해서 안됐습니다. 그렇답니다. 요새 젊은 양반들은. 아가씨도 퍽 얌전하셔. 두 분이 내외분이 되셨으면 얼마나 좋은 내외분이실까?』

이런 말도 하였다.

이 말에 금봉은 낯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마누라는 또 남편과 아들과 딸의 위패를 바라보고 소

<자야겠다.>

하고 금봉은 한편 귀를 베게에 딱 붙이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잠이 흐리마리 들려고 할 때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심상태의 말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만지고 옷을 갈아 입고 자리를 걷어 치웠다.

<저것이 왜 올까. 어젯밤에는 곧잘 가더니 저것이 무슨 생각을 품고 이 밤중에 찾아 올까?>

하고 금봉은 화를 내었다.

상태가 쿵쿵거리고 이층으로 올라 왔다.

『아직 안 주무세요?』

하는 상태의 음성은 전과 같이 쾌활하지를 아니하였다.

『네, 자다가 선생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서 일어났습니다.』

하고 금봉은 왜 왔느냐 하는 뜻을 보이며,

『밤에 이렇게 늦게 찾아 오시면 주인이 싫어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고 노골적으로 힐책하였다.

『그런 게 아니라, 큰일 났습니다.』

하고 상태는 이렇게 늦게 온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자신을 보이면서,

『오늘 동경에 남아 있는 조선 학생이 이십여 명이 검거를 당했습니다.

나도 미구에 잡힐 모양인데---내 하숙에도 세 번이나 형사대가 찾아 왔더랍니다. 잡혀 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마는, 잡혀가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관대의 눈을 피해서 천신 만고를 해서 미스 리를 찾아 왔습니다.』

하고 금봉의 곁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무슨 일로들 그렇게 잡혔어요?』

하고 금봉은 놀라면서 물었다.

『다 학재군 사건과 관계가 있겠지요.』

하고 금봉은 상태의 속을 떠보았다. 금봉은 학재가 상태에게 속 말을 아니 하는 줄 잘 안다.

『그게 사……』

하고 상태는 금봉을 눈으로 삼켜 버릴 듯이 바라보며,

『묻지 아니하여도 알 일이 아니야요? 동경뿐 아니라 조선서도 아마 수백 명 붙들렀을 것입니다. 학재군이 위낙 이상가가 되어서 공연히 되지도 아니 할 일을 생각해 가지고는 …… 그래 다들 붙들려 가니 무슨 소용 있어요.

애매한 사람들까지도 --그 사학재군의 동기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마는.』

하고 요령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금봉은 상태가 학재를 공격하는 것이 싫어서. 상태의 말을 중동을 꺾고,

『그럼 선생님은 어떡허실 생각이셔요?』

하고 할 말이 있거든 어서 하고 가라는 뜻을 보였다.

상태는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적긁적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그럼 말씀하겠습니다. 우선 저, 나는, 그야. 내사 나도 남아니까 잡혀 가기로 어떻겠어요? 남아가 일생 살아 가노라면 잡혀도 가고 옥에도 들어 가지요. 더구나 영웅의 일이라는 게 그런 것을 무서워할 것도 아니지마는, 오직 하난 염려되는 일이 있단 말요. 지금 미스 리의 신변의 위태함니다. 내일 새벽에는 미스 리도 경시청으로 끌려 가실는지 모릅니다. 그럼 낌새를 보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단 말야요.』

하고는 더 할 말이 있는 듯하면서도 말이 막힌다.

『저 같은 것이야 뭐 어떨라구요. 어서 선생님이나 몸을 피하시지요. 제 걱정은 마시고.』

하고 금봉은 아직 아니한 상태의 말에 먼저 대답을 하였다.

『아니오. 안됩니다. 제가 미스 리르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고 상태는 자신 있는 어조로,

『내 몸 하나를 희생을 하여서라도 미스 리를 보호할 신성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본 사람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피신할 곳을 마련을 해 놓았옵니다. 그 집은 어떤 집인고 하면, 어떤 백작의 별장인데, 동경서 얼마 아니 가 서 있는 굉장한 양옥입니다. 거기만 가서 있으면 아무 염려가 없도록 다 해놓았으니 나하고 같이 가셔요. 아무쪼록 속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 가실 준비를 하셔요. 위험이 시시 각각으로 가까워 옵니다.』

하고 자기가 먼저 일어나면서 재촉하였다.

상태의 말에 금봉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아니요. 전 안 가요. 전 여기 있을 테야요.』

하고 딱 버티었다.

『어서 고집 마시고 가셔요. 여기 계시다가는 날이 새기 전에 붙들려 가십니다. 붙들려만 가시면 언제나오시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물을 먹이고 갖을 욕을 다 보입니다.』

『그래도 좋아요. 잡혀 가도 좋아요. 여기 있다가 잡혀 갈테야요.』

하고 금봉은 굳은 결심을 보였다.

상태는 제가 꾸떳던 계획이 틀어져서 날심하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금봉은 상태의 기름 발라 반드르르한 머리를 미워하는 눈으로 노려 보았다.

『금봉씨』

하고 상태는 얼마 있아가 고개를 들었다.「미스 리」라고 아니하고 「금봉 씨」하고 부르는 것은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왜 그러세요?』

하는 금봉의 말에는 바늘이 있었다.

『금봉씨, 내가 어떻게, 얼마나 금봉씨를 사랑하는지금봉씨는 모르시지요?』

하고 상태는 애원하였다.

『저를 사랑하시지 마세요. 저만 아니라 아무러한 여자도 사랑하시지 마세요. 부인 있는 어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려 드십니까?』

하고 금봉이가 툭 쏘았다.

『사랑은 신성한 것이 아니야요?』

하고 상태가 심히 엄숙한 태도를 짓는다.

『신성한 사랑이면 신성하지요. 더러운 사랑이면 더럽구요. 선생님 같으신 양반은 사랑 아니하시는 것이 신성하십니다.』

하고 금봉은 상태를 잔뜩 내려 바보았다.

『나는 금봉씨하고 사랑 이론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금봉씨를 사랑하니까, 차마 금봉씨를 버리지 못해서 내 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봉씨가 몸피하실 곳을 정해 놓고 찾아 온 것입니다.』

하고 상태는 말 마디마디 정성을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 . 저는 여기 있을 테야요. 어서 선생님이나 몸을 피하세요.』

하고 금봉은 어서 가라는 뜻을 표하였다.

상태는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심히 낙심되고 수심스러운 모양을 보이더니 고개를 번쩍 들며,

『미스 리.』

하고 무서운 결심이나 한 듯한 표정을 가지고 금봉을 바라본다. 금봉은 이 사람에게 이러한 엄숙한 표정이 있는 것은 의외라고 생각하였다. 도무지 아무 주의도 주장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사람의 눈치 보아 가며 비위만 맞추려 드는 그러한 상태에게도 이러한 엄숙한 일면이 있는가하고 놀랐다. 그래서 약간 무시무시한 생각을 가지면서,

『네.』

하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미스 리를 혼자 두고는 갈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겠습니다. 나는 잡혀 가더라도 미스 리와 함께 잡혀 가겠습니다. 만 일 미스 리가 나를 사랑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럅니다.

그러나 내가 죽기 전에 나는 미스 리를 그냥 두지 아니하랍니다 나는 한번 결심하면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 결심을 관철하고야 마는 의지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여러 번 편지를 드렸지마는 한번도 답장을 아니주셨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한번 먹은 뜻을 변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새여 명을 내놓고라도 미스 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미스 리가 나를 사랑 하시지 아니하시면 나는 정성과 힘을 가지고 미스 리를 정복하기로 결심하고 오늘 밤에 찾아 온 것입니다.』

하는 상태의 말에는 불 같은 열이 있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금봉은 몸이 오싹함을 깨달았다. 상태의 그가느닿고 날카로운 눈에는 빨갛게 독이 오른 것 같았다. 손 선생은 상태에게 비기면 도리어 막아 내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금봉은 주인 마누라를 소리쳐 부를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것은 차마 못하 였다. 또 상태가 제게 대하여 폭행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무엇이라고든지 대답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처지였다.

상태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는 금봉을 바라보고 잠간 싱그레 웃고 나서는 다시 무서운 표정을 가지고, 대답을 하셔요 내 『 . 사랑을 받으십니까. 아니 받으십니까---대답을 하셔요.』

하고 재촉을 하였다.

『저는 선생님의 사랑을 못 받습니다.』

하고 금봉은 늠름하게 대답하였다.

『못 받으셔요?』

하는 상태의 말은 의외에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다음 마디는,

『왜 못 받으셔요? 어디 그 이유를 말씀하셔요.』

하는 것은 심문하는 냉혹한 어조였다.

『저는 벌써 마음을 바친 이가 있습니다.』

하고 금봉은 속으로 학재를 그렸다. 학재를 위하여 마음을 바쳤노라고 말하게 된 것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누구요?』

하고 상태는 놀라지도 아니하였다.

『누구라든 것을 말씀 못 드려요. 그렇지만 저는 마음으로 바친 이가 있어요.』

하고 금봉은 용기를 얻어서 정면으로 상태를 바라보았다.

상태는 금봉의 시선을 피하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 동안 침묵이 있는 뒤에 상태는 고개를 들며,

『다 알았습니다. 미스 리가 누구라고 말씀을 아니하더라도 내가 다 알지 요 임학재군이지요? 그렇지마는 임군은 벌써 마음으로 정한 곳이 있습니다. 미스 리가 아무리 혼자 사랑하셔도 안될걸요.』

하고 빈정대는 듯한 웃음을 웃는다.

상태의 말---학재에게는 마음에 먹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가슴을 칼로 폭 찌르는 듯하였다. 상태라는 사람의 말이 원래 믿기지 않지마는 그래도 금봉은 이 말만은 무심코 들을 수가 없었다. 금봉은 천인 절벽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함을 깨달았다. 그 낙망과 슬픔을 얼굴에서 감추기에는 금봉은 너무도 약하고 어렸다. 그래서 금봉은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멀거니 상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는 속으로 제가 던진 돌이 바로 맞은 것을 기뻐하였다.

『미tm 리, 그렇게 낙심하실 것 없습니다. 원체 학재란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하고 점잖은 상부르지마는 겉으로 보기에 얌전한 사람치고 속 흉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아마 학재가 마음에 먹은 사람이 한 사람만 아닐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두 사람은 되지요. 최 을남이하고 강영자하고, 처음에는 을남이와 좋아하다가 지금은 영자하고 돌라붙었습니다. 영자가 돈이 있거든요.

아마 약혼까지도 했습니다. 나는 미스 리가 학재군헌테 속아 가지고 애를 쓰시는 양이 불쌍해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미스 리를 건져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차므올 내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미스 리를 사랑해 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고등 문관 시험을 치르는 것도 미스 리가 있으니까 기운이 나지요. 이번에 치른 시험이 파스가 될는지는 모릅니다마는 미스 리가 나를 사랑만 해주신다면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습니다. 나는 감옥에 갈 일을 안 할 테요. 미스르는 어떡허고 감옥에를 가요. 나는 미스 리를 위해서만, 우리 「스윗홈」을 위해서만 일생을 바칠 테야요. 그렇지만 미스 리가 내 k랑을 받아 주신다면 나 할 일이 있어요. 나는 꼭 한번 결심한 일을 하는 사람이요. 한번 한 말은 하고야마는 사람이야요.』

하고 상태는 일변 달래고 일변 위헙하였다.

금봉은 상태의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우두커니 앉았더니. 문득 미친 사람 모양으로,

『가세요! 더 말씀 마시고 가세요! 다실랑 오시지 마세요. 어서 가셔요!』

하고 벌덕 일어났다.

그래도 상태가 아니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금봉은,

『심 선생 안 가시면 나는 내려 가요.』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 가려는 것을 상태는 얼른 일어나서 붙드는 핑계 삼아 금봉을 껴안는다.

『노세요!』

하고 금봉은 소리를 치고 몸을 뿌리쳐서 도망하는 듯이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웬일이오?』

하고 주인 마누라가 모기장 속에서 눈을 뜨고 묻는다.

『마나님 아직 안 주무세요?』

하고 금봉은 억지로 웃는 낯을 지으며,

『나 오늘 여기서 자요.』

하고 모기장 밖에 앉는다.

『응 나도 어째 오늘은 잠이 안 오는 구려, 이 생각 저 생각하노라고.』

하고 일어나 앉으며 금봉의 눈치를 본다.

『나 여기서 자요.』

하고 금봉은 모기장 속으로 들어 간다.

주인 마누라는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고만두고 금봉에게 누울 자리를 비켜 주었다. 금봉은 방석을 접어서 베개를 삼고 마누라의 곁에 누웠다.

이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금봉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부대끼다가 잠이 들었다. 마누라는 가끔 고개를 들어서는 금봉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죽은 딸도 생각하고 금봉이가 오늘 당한 이로 상상하여 보았다. 그리고는 제 베개를 금봉에게 배어 주고 저는 금봉이가 베었던 방석을 베었다.

주인 마누라는 금봉에게 대해서 딸에게 대한 듯한 애정을 느꼈다. 그 귀여운 얼굴과 볼록한 젖가슴을 보고 수없이 한숨을 쉬었다.

새벽에 금봉이가 잠을 깨었을 때에는 마누라는 벌써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마나님, 심 선생 갔어요.』

하고 눈을 비비며 물었다.

주인 마누란테서 상태가 아직 가지 아니하였단 말을 듣고 금봉은 어쩔까 하고 머리를 긁었다. 그러나 세수 제구도의 복도 다 이층에 있으나 어떡하나 하고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햇발이 창에 비치이는 것을 보고 금봉은 용기를 내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만일 상태가 버릇 없는 모양을 하면 마누라를 불러서 톡톡히 망신을 주고 또 제 몸이 깨끗하다는 증거를 세우리라 하고.

『 선생님 주무세요?』

하고 금봉은 미닫이를 방싯 열었다. 아직도 덧문을 열지 아니한 방은 캄캄하였으나 판장 덧문 틈으로 들여 쏘는 동창의 햇발이 긴 리본 모양으로 방안의 공기를 어릉어릉, 하게 만들고 그 햇발이 가는 길에는 수없는 먼지들이 일곱 빛 스펙트럼을 반사하면서 오르락 내리락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깨어서 누웠습니다.』

하고 상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상태의 음성은 대단히 침울하였다.

금봉은 덧문 한 짝을 열어 젖혔다. 아침빛은 둑을 터놓은 물 모양으로 방으로 들어 왔다. 금봉은 덧문을 활짝 열었다. 방안은 환하게 되었다.

『미스 리, 이것을 보셔요.』

하고 상태는 애원하는 음성으로 제가 베었던 베개를 가리켰다. 베갯잇이 젖었다.

『더우셔서 땀을 흘리셨어요?』

하고 금봉은 부석부석한 상태의 눈을 보았다.

『울었습니다. 눈물에 베개가 이렇게 젖었습니다.』

하는 상태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금봉은 커다란 남자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금봉은 커다란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상태의 눈물은 금봉을 슬프게 하였다. 금봉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었다.

『미스 리.』

하고 상태는 더욱 슬픈 표정을 하면서,

『나는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아직도 한없이 울고 싶습니다. 미스 리! 남아의 눈물은 핍니다. 미스 리!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하고 상태는 절하는 모양으로 방바닥에 엎드린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아니한다.

금봉은 몸을 돌이켜서 벽을 향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상태란 사람이, 숙희의 말을 듣건댄, 왼통 거짓으로 만 빛어서 만든 사람 같다는데 그에게 이러한 진정이 있던가 하였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도록 저를 사랑한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이는가 하고 가슴이 빽빽함을 깨달았다.

금봉은 마음이 흔들림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나를 이처럼 사랑해 주는 사 람이 처음이 아닌가 하였다. 지금까지 상태를 멸시하고 밉게 본 것이 죄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금봉은 억제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금봉의 어깨는 느낌으로 흔들리고 마침내는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금봉은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벽에다가 이마르 대고 울었다.

상태는 가만히 금봉의 뒷 모양을 바라고 있다가 잠깐 싱그레 웃고는 얼른 다시 아까 모양으로 침울한 표정을 지어 가지고 일어나서 금봉의 뒤로 가서 금봉의 어깨에 한 팔을 걸고,

『우십니까? 울지 마세요. 왜 우십니까?』

하고 어깨에 얹었던 팔을 미끄려 내려서 금봉의 허리를 안았다.

『아스세요! 아스세요!』

하고 금봉은 몸을 빼어서 울음을 그치고 무슨 노래 곡조를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벽장에서 세수 제구와 갈아 입을 외복을 내어 가지고 상태는 보지고 아니하고, 상태가.

『여보세요. 미스 리!』

하고 부르는 것도 듣지 아니하고 아래층으로 내려 가 버렸다.

을 두어 번 다시고 알 수 없다는 듯이 서너 번 고개를 돌이돌이하였다.

상태는 썩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분하였다. 왜 그 기회를 꽉 붙들지 아 니하였던가 하고 아까왔다.

그러나 금봉이가 우는 뜻이 무엇일까. 과연 내 말과 내 눈물에 감동한 것일까. 또는 잠깐 감동하였다. 다시 이성의 힘으로 제 감정을 꼭꼭 묶어 놓은 것일까 하고 창밖을 내다 보았다. 여러 날 오던 비는 개이고 동경에서는 보기 드물게 파란 하늘이 보이고 포병 공장 굴뚝에서는 기운차게 검은 연기가 솟고 있었다. 가을이 가까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