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일생/혼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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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姻篇(혼인편)[편집]

금봉이가 손 선생을 따라 아버지의 집에 돌아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나서 양력설이 앞으로 며칠 남지 아니한 어느 날, 금봉의 집에는 큰 소통이 일어났다. 그것은 금봉의 아버지 정규가 서사 김서방의 아내와 밀통한 것이 김 서방의 눈에 띄어서, 눈에 뜨인다는 것보다도 동시 포착이 되어서 김서방이 정규를 간통죄로 고소하다고 위협한 것이었다. 원래 김 서방은 미인 금봉을 아내로 삼을 줄로만 믿고 있다가 바로 초례날에 금봉을 잃어 버리고 닭 대신에 거위로 정규 집 어멈한테 장가를 든 것이, 비록 정규가 붙여 주마 한 재산 때문에 참기는 하였지마는 매양 불평이었다. 금봉은 당연히 내 것이라 하는 생각이 김 서방의 가슴을 떠나지 아니하는 데다가 어멈이란 것이 얼굴은 예쁘장하지마는 도무지 행뚱거리기만 하고 아무리 하여도 좋은 아내로 믿어지지 않을 뿐더러 김 서방을 항상 넘보고 뾰롱뾰롱 대답질만 하여서 김 서방의 분을 더욱 돋았다. 게다가 정규는 김 서방에게 주마 한 재산을 차일피일하고 명의를 옮겨 주지 않을 뿐더러 별로 필요도 없이 밤낮출장만 보내는 것을 수상하게, 불쾌하게 여기다가 한번은 안성 다녀 오라는 것을 그러마 하고 밤에 집에 돌아와 정규가 아내와 동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온 동네가 떠나 가도록 소리를 질러서ㅎ일의 증거를 삼고 정규의 의복을 증거품으로 몰수한 후에 톡톡히 망신을 주고는 간통죄로 고소를 한다고 날마다 정규 집에 와서 야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김 서방의 야료보다도 정규의 처의 야료가 더욱 심하였다. 남편을 대하기만 하면 욕을 퍼붓고 매어 달려서 옷을 찢고, 한번은 오줌 있는 요강을 남편에게 뒤집어 씌운 일까지 생겼다.

또 김 서방의 아내는,

『나는 이제 주인 영감마님 때문에 이런 몸이 되었으니 살아도 이 집에서 살고 죽어도 이 집에서 죽는다 하여 건너방에 와서 드러누워서는 욕설을 하거나 때리거나 꼼짝도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 정규는 금봉이가 일본 간후로 절반은 홧김에, 절반은 김 서방에게 주어야 할 재산을 생돈에서 때에 내지 아니하고 공돈으로 벌어 볼 양으로 인천서 기미에 손을 태어서 조츰조츰 집어 넣는 것을 수만원을 집어 넣어 버려서 이제는 김 서방한테 주고 싶어도 줄 길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이 아무리 돈과 계집 밖에 ahfs다 하기로니 성한 정신으로 김 서방의 아내를 건드릴 리는 없었다. 김 서방의 아내가 정규의 집의 어멈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런 맘도 먹고 있었고러 그 어멈이란 것이 또 호락호락하지를 아니하여 무슨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서 삼갔으나 금봉이 사건과 금전상의 실패로 화가 나게 되매 정규는 절제력을 잃어 술을 과음하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원인 ---정규의 이성을 호리게 하는 모든 원인 중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규의 아내가 근래에 와서 시름시름 병을 앓게 되어 입맛이 젖히고 몸이 수척하여서 히스테리 중세가 나는 데다가 꿈에나 무꾸리에나 우물에 빠져 죽은 전실---금봉의 어머니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금봉의 어머니가 전신에 피와 물을 흘리면서 정규 부처가 자는 방으로 쑥 들어 와서는 무서운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정규는 장정이 세어서 그런 것이 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아내의 입으로써 그러한 말을 들을 때에는 마음에 두렵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였다. 죽은 아내가 그립기도 하고 불쌍한 생각도 나고 자기가 그 외 생전에 심히 잘못하였다는 후회도 가끔 생겼다. 그때에는 비록 처녀 장가라는 맛에 일시 금봉의 어머니를 소박하였지마는, 지금 아내가 도무지 변변치 못한데 진저리가 난 뒤로는 전 아내의 생각이 간절히 날 때가 많았다. 그가 일찍 남편에게 불공한 말을 한 일이 있는가. 집안을 불화케 한 일이 있는가. 그가 시앗을 본 줄 안 뒤에도 그는 불쾌한 빛을 드러낸 일이 있었는가. 그러하던 것이 오늘날 집 꼴은 무엇인가. 날마다 안방에서 큰소리요, 한 달에 몇 번씩 큰 소동이 생겼다. 이것 저것 하여 정규는 죽은 전실을 가끔 생각하던 차에 아내의 꿈마다 전실의 모양이 보인단 말을 듣고는 소름이 끼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 모두 원인이 되어서 정규의 심사는 항상 불평하고, 심사가 부평하기 때문에 지혜가 흐렸다. 지혜가 호리기 때문에 무엇이나 하면 다 P상 과 틀린 결과를 낳았다.』

<허, 내가 늙었군. 손에 풀이 죽었군.>

하고 정규는 혼자 한탄하였다.

<원 이렇게 운수가 비색할 수가 있나?>

하고 화도 내었다.

가만히 앉았든지 잠이 들려고 누었든지 머리 속에 나는 생각은 모두 금봉 이년 때문야. 그년 때문에 내 집 운수가 쇠운으로 들어 가고 말았어>

하고 애꿏은 말 금봉을 원망도하였다. 그는 세상이 뜻과 같이 안되는 세상임을 아플이만큼 절실하게 깨달았다.

<에라. 빌어 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하고 정규는 호려서 마침내 김서방의 아내를 건드린다는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정규의 취중에 나온 일시적인, 무의시기적인 허물은 아니었다. 평소에 먹어 오던 일념이 취중에 외지력의 마비라는 기회를 타서 실현된 것이었다.

<에익, 내가 왜 그짓을 하였던고?>

하고 정규는 후회하였으나 무론 벌써 늦었다.

『자, 어떻게 할 테요? 이제는 내 계집은 이 주사가 맡고 금봉은 나를 주시오.』

하고 김 서방은 눈을 부라리고 대들었다.

『이건 왜 이 모양이오? 내가 팔자 기박해서 십수년 동안 당신 집서 사 노릇을 했소마는 제 계집을 뺏기고도 암말도 못할 낸 줄 아셨소? 그래 댁에서는 유부녀를 간통하고도 아무 일 없을 줄 아셨소? 이게 왜 이러우? 아직도 이 주사다리마댕이가 성하고 모가지가 제 자리에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시오? 나도 옛정을 생각하고 아무쪼록 온 편히 해결하리라 하고 꿀떡꿀떡 오늘까지도 참아 온 덕으로나 알란 말요. 내가 발이 경찰서에만 가는 날이면 이 주사는 어떻게 될 줄 아시오? 모르시오?』

하고 평소에는 정규의 앞에서는 말대답도 못하고 고개도 바로 들지 못한 김 서방이 이렇게 호기롭게 대들면 정규는 다만 고개를 폭 수그리고들고 있다가.

『내가 미친 개혼이 씌어서 잘못했네.』

할 뿐이었다.

정규는 차마 금봉이더러,

『얘, 너 김 서방하고 혼인해 다우. 아비를 살려 다우.』

하는 말은 나오지 아니하였다.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평생 대면도 아니하던 아들인현을 불러서,

『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하고 애원하였다. 인현은 금봉이가 달아난 때에, 정규가 쩔쩔 맬 때어.

『아버지, 그러면 어멈으로 대신 신부를 삼으시지요.』

하는 명안을 내인 사람인 까닭이었다.

인현은 아버지의 청을 듣고 아래채 제 방에 와서 금봉이더러,

『얘, 금봉아.』

하고 불렀다.

『오빠 왜?』

하고 금봉은 인현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보며, 아버지가 『무에라십디까? 좀 사람다운 참회나 하십디까?』

하고 빈정거렸다.

『얘,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 우리들은 아버지의 자식이지?』

하고 이상한 말을 묻는다.

『그럼, 이버지야 아버지지. 그런데 그런 소리는 왜 허우?』

『글세 말야.』

하고 인현은 잠간 생각하더니,

『아버지가 이번 일을 저지르구서 진지도 못 잡수시고, 밤에 주무시는지 못 주무시는지는 모르지만, 한숨만 휘휘 쉬시는 것을 볼 때에도 나는 자작 지얼이지, 그만큼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받을 날이 올 때도 되었지 하고 못할 말로 고소하게도 생각하였지마는---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란 말야.』

하고 잠간 말을 끊는다.

『그럼, 아버지도 생가하면 불쌍하시지.』

하고 금봉도 오빠의 감정의 전염을 받아 추연해진다.

『김 서방이 어멈 대신에 너를 아내로 달라고, 이를테면, 제 아내는 아버지가 가지고 널랑 저를 달라고 바꾸자 이를 어찌하느냐고. 저놈의 말대로 아니하면 집안은 망하겠고, 그러다고 너를 차마 그놈을 준다고 할 수도 없고, 그야 아버지란 사람은 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시니까 너를 김 서방을 주고라도 콩밥을 모면하고도 싶겠지마는 네게는 한번 손을 데이셨거던.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 마음대로만 안되는 세상인 것쯤은 배우셨거던. 그러니깐 걱정이란 말이야.』

하고 인현은 조심성스럽게 금봉을 바라본다.

금봉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그럼 오빠는 날더러 김 서방녀석헌테루 시집을 가란 말씀이오?』

하고 대들었다.

『그러기만 하면야 작히나 좋아.』

하고 인현은 싱그레 웃는다.

『웃긴 왜 웃소? 어쩌면 오빠가 그러우? 언제는 달아나라구까지 그러시 구.』

하고 금봉은 톡 쏜다.

『그게야 네가 행여나 좋은 사람이 될까 하구 그래지. 손명규 같은 녀석헌테 팔려 갈 바어야 김서방허구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김 서방은 그래두 손가보다는 인간 가치가 많거든. 적어도 협잡군은 아니란 말이다. 정직한 노동자는 된단 말이다. 정직이란 것이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거든.

너도 이제 손가허구 살아만 보아라. 손가헌테 전염되어서 너두 현잡군이 되고야 말 테니. 어디 안 그렇게 되나 볼까?』

『그럼 일전에는 왜 내가 손 선생허구 혼인한다구 했더니 그러려무나 그러셨수?』

『그럼 무에라구 허니? 벌써 다 작정해 놓고 나헌테는 보고나 하는 것을 내가 무에라구 허니? 또 모두가 다인연이구. 인연이면 운명이란 말이다. 네가 전생에 손 선생허구 무슨 미진한 인연이 있던 게지. 무슨 크게 진 빛이 있어서 그것을 갗아야만 되겠는 게지. 그러기에 너같이 제가 미인인 줄도 알구, 도고하기가 짝 없는 것이농구리와 같은 손가허네 홀딱 반한 것이 아니냐. 도무지 보통 인정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든---금봉이가 손명 규헌테 반하리라구는, 게다가 첩으로.』

하고 인현의 말에는 독이 품겠다.

『첩은 왜 첩이야?』

하고 금봉은 아픈 데를 건드려서 항의하였다.

『그럼 첩이 아니구 여편네가 시퍼렇게 --- 시퍼렇게는 못되나 보더라마는 그래두 아직두 살아 있구---』

『본래 호적에두 아니 올랐다던데. 그리구 벌써 친정으로 가버렸구.』

하고 금봉은 어색한 제 변호를 한다.

『내가 다 알지---빤히 알지』

하고 인현은 마치 늙은이가 젊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들어 볼래? 손가가 말이다. 금봉이란 아가씨가 첩으로는 올 것 같지 않고, 보기 싫은 여편네는 밤낮 앓기만 하지, 도무지 죽지는 않고, 그래서 무슨 핑계를 꾸며서는 친정으로 쫓아 버리구. 그리구는 요새 협잡으로 돈푼이나 생겼으니깐 아마 제 시골 면서 기녀석들 술잔이나 먹이구 이혼이 된 것처럼 꾸며 놓고---설사 손가의본 여편네가 알더라두 오늘 내일하는 판에 들구 날 것도 없겠지 그야. 또 들구 난다손치더라두 친정 오라비녀석들 돈 원씩이나 쥐어 주면 그만이겠지. 그런 것은 그렇게 중대 문제는 아니다마는 네가 구태여 이렇게 무덕의 몰인정한 손가헌테 꼭 시집을 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니? 그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돈푼이나 바라고 그러는가 보다마는 사람이란 명이 없어서 못 살지. 먹을 것 없어서 못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다 인연이지, 인과야, 운명이야』

『그럼 손 선생허구 혼인 말란 말씀이유?』

『그게야 내가 아니?』

『그럼 어떡허란 말씀이유? 사람을 간지리기만 하니. 왜 남의 말 하듯 빈정거리기만 허우?』

그저 한번 그래 본 『게지. 이왕이면 아버지 콩밥 잡숫는 것이나 면해 드려서 효녀가 되어 보았으면 어떨까 하고 한번 너를 건드려 본 것이다.』

하고 인현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허긴 매한가지야』

하고 인현은 한참 동안 게속하던 남매간의 침묵을 먼저 깨뜨리려고 입을 열었다. 평생 마음대로 살아 보지 못하던 누이가 한번 돈이라도 마음대로 써 보자 하고 손명규에게 몸을 팔려는 것이 불쌍도 하였고, 그래도 끝까지 누이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저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에 너무 날카로운 말로 금봉의 자존심을 베인 것이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긴장한 무거운 장면을 좀 녹일 양으로,

『마찬가지는 마찬가지야. 사람이면 대개는 마찬가지거든. 세상에 손명 규보다 나은 사람은 그렇게 혼한가. 다 그렇고 그렇지. 안 그러냐? 너도 지금은 미인이라구 사내들이 죽을지 살지 모르고 덤빚마는 그 미인은 며칠가니? 글쎄 한 십 년 갈까?』

하고 금봉의 얼굴을 바라본다.

『오빠두』

하고 금봉은 좀 누구러지며,

『내가 이제 열 여덟 살인데 설마 스물 여덟 살에 늙기야 할라구.』

하고 웃는다.

『글세, 그럼 한 이십 년. 서른 여덟 살까지는 미인 행세를 할 것 같으냐. 그동안에 아이나 쓸어 낳아, 이빨은 흔들려, 머리는 빠져……』

하고 인현은 자기 아내의 해산 후의 육체의 변천을 연상하였다. 또 돌아 간 어머니의 변천도 연상하였다.

금봉도 오빠의 말에 자기의 눈초리에 잡힐 주름과 어머니 적에 본 것 모양으로 살빛이 변하고 살결이 거칠어질 것을 샹각하고 무슨 끔찍 끔찍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휘-- 한숨을 쉬었다.

『어찌 갔던지---십 년이든지 고작 멀게 잡고 이십 년치더라도 너는 늙을 사람이로구나. 김 서방두 네 나이 사십만 되면 도리어 지금 어멈을 취하지 아니할까. 그러니깐 말야, 나는 인생관을 고쳤다. 나는 사람이란다. 늙을 운명에 있고 죽을 운명에 있으니깐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구. 억지로라두 좋아할 만하게는 되었단 말야. 그러니깐……』

인현의 말이 끝나기 전에 금봉은,

『참말, 오빠허구 언니허구 아주의가 좋아지셨어. 언니두 어떻게 기뻐하시는지.』

하고 감탄하였다. 인현은 느릿느릿한 어조로.

『여지루라도 사랑에 주면 그 사람이 좋아할 것을 그것쯤이야 못할 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나는 무엇이길래. 나도 썩어질 고깃덩어리 아니냐. 불교 문자루 속에는 오줌똥과 피고름이 꼴깍 찬, 흙과 물로 빚어 만든 고깃덩어 리어든, 이 지구상에만 하더라도 하루에 몇 백만씩이나 생기고 또 몇 백만 개씩이나 부서지고 하는 고깃덩어리어든. 그까짓게 그다지 끔찍할 것은 무어 있나. 게다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그렇게 생각하니깐 저를 사랑하고 아낄 생각도 안 나고 누구는 특별히 사랑하고 누구는 특별히 미워할 생각도 아니 나더라. 그러길래 너 동경 간 지 얼마 후부터는 나는 아주 마음이 편안했다. 아버지 어머니 원망도 안허구. 공부 못하는 것 항탄두 안허구, 그저 오늘이면 오늘인가. 또 한밤 자고 나면 또 하루 살았다. 이러구 있으니깐 천하 태평이란 말이다. 그 식으로 생각하면 네가 손가헌테 가기로 김 서방헌테 가기로 별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란 말야.다 그렇고 그렇지. 네 생각엔 안 그러냐?』

하고 어이 없는 듯이(금봉이가 보기에)웃는다.

『오빠, 그게 정말요?』

하고 금봉은 반신반의한다.

『정말 아니구. 왜?』

『아니, 이번 동경서 와 보니깐 오빠가 무척 변하셨어. 도무지 불평해하 시는 게 없구. 본래 침착은 하시지만 더 노성해지신 것 같구. 도무지 이상 하시다 했는데 지금 말씀을 들어 보니까 참말 변하셨구려. 어쩌문!』

『그러냐?』

하고 인현은 시무루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니 고개를 번쩍 들면서,

『금봉아, 너 손가헌테 돈 몇 천원 얻을 수 없겠니?』

하고 금봉에게는 의외의 말을 한다.

『왜요?』

하고 금봉은 자기에게 삼천 육백원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되묻는다.

『네가 김 서방허구 살아 주지를 않는다면 돈으로 헐 수밖에 있니? 어떻 게 해서라두 아버지를 구원해 드려야지. 되겠니?』

『얼마면 될까?』

『글쎄, 한 이삼천원 주면 듣겠지.』

『그렇게 아버지헌테 돈이 없수?』

『흥, 인천에다 다 집어 넣고 집마저 은행어 들어 앉았나 보더라.』

금봉은 제게 있는 돈 삼천 육백원을 내어 놓을까 말까 하고 망석거리다가 이것으로 아버지의 곤경을 구해 드리는 것보다도 오빠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고 싶어서,

『그럼 dpt수.』

하고 아직 은행에 예금도 아니하고 손명규가 준 지갑대로 지니고 다니던 것을 내어서 인현에게 주었다. 인현은 그 지갑을 받다 들고,

『이게 무에냐?』

하고 의심낸다.

『돈이야.』

『얼마?』

『삼천 육백원. 손 선생이 사고 싶은 것 사라고 주는 것을 혹 오빠의 학비라도 보탤까 하고 그대로 가지고 왔지. 오빠 마음대로 쓰셔요.』

할 때에 금봉은 많이 생색이 남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오빠를 마음대로 공부를 시켜 드리리라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 돈 삼천 육백원을 오빠를 주려고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동경서 한푼도 쓰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지니고 온 것은 다만 처음 만져 보는 큰 돈이 아까운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와 오빠의 곤경을 피워 드리노라고 그 돈을 썼다고 하면 손 선생도 반대는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금봉은 마음에 만족하였다.

인현은 지갑 속에 든 돈을 세어 보고 그 금액이 많은데 잠깐 놀라지 아니 할 수 없었다.

『됐다.』

하고 인현은 그 돈 지갑을 품에 넣고 두루마기를 떼어 입고 나섰다.

인현은 우선 아버지를 찾았다. 사랑에는 업고 안에 들이 가니 안에서 왁자지껄하고 또 내의 싸움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현은 잠깐 주저하다가 뜰에 선 대로,

『아버지!』

하고 불렀다.

『왜 그래?』

하고 정규는 성가신 듯이 쌍창을 와락 열고 술취한 듯한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 잠깐만 사랑으로 나오세요.』

하고 계모을 향하여.

『어머니 무엇 좀 잡수셔요?』

하고 인사를 하였다.

나 무엇 먹구 안 『먹는 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내가 죽어 나간들 너희들이 알기나 할 테냐? 알면 춤이나 추겠지.』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남편이 아들을 따라 나서는 것을 다 보지 아니하고 내다 보려는 의현을 어디를 때리는지 절컥 때리면서,

『이자식들 다 급살을 맞아 죽어라. 저 건넌방에 자빠졌는 어멈년허구 함께 급살이나 맞아 죽어!』

하고 악담을 퍼붓는다.

정규는 인현의 입에서 무슨 살아 날 소식이나 들을까 하고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며 몸으로 시들한 모양을 보이고 담뱃대에 담배를 담는다. 인현은 성냥을 그어서 아버지의 담뱃불을 붙여 드리고, 정규가 몇 모금을 빠는 양을 바라보았다. 지나간 며칠 동안에 아버지는 더 늙었다나 하고 인현은 마음이 비감하였다. 안에 들어 가면 아내에게 쪼들리고, 사랑에 나오면 김 서방과 빛장이들한테 협박을 받고, 문밖에 나서면 동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당하였다. 애오개만 해도 시골이어서 정규 집에 어떠한 일이 생겼다 하는 소문은 몇 시간이 못하여서 짜아하게 퍼졌다. 그것도 털을 붙이고 날개를 돋쳐서 아무쪼록 더욱 흉하게 불퀴서 소문이 퍼졌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다.』

하고 인현은 울고 싶었다.

『아버지.』

하고 인현은 진정으로 동정하는 어조로 정규를 불렀다.

정규는 대답 대신으로 눈만을 아들에게도 돌렸다.

『김 서방이 돈을 얼마나 받으면 말썽을 안 부릴 것 같습니까?』

하고 인현은 정규에게 물었다.

『글세 돈이 어디 있니?』

하고 정규는 담뱃대를 입에서 매어 든다.

『아니, 돈을 준다면 얼마나 주면 될 것 같습니까?』

정규는 손으로 목덜미를 만지더니,

『현금으로 이천원만 주면 떨어질 것 같기는 하다마는 어디 이천원이 있니.』

『이천원만 내라구 김 서방이 그래요?』

『제 입으로야 큰소리를 하지마는 저도 우리 집 사정을 다 알거든. 그런데 그녀석이 저임 ○○ 네 가게를 살 말을 비치는 것을 보니까, 한 이천원만 더 주면 될 것 같단 말이다. 그래 돈이천원이 어디서 나와. 식산 은행 삼천원 수형기일이 어저께 지나가서 부도가 나고 안성땅이 경매를 당하게 되어도 헐 수 없는데.』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 작정으로 계셔요?』

『무얼 어떻게 해? 고소를 하겠거든 허라지. 삼 년 징역 밖에 더 지겠니?』

하고 담배를 퍼퍽 빨았다.

인현은 즉석에서 돈 이천원을 내어서 정규를 줄까 하고 지갑에 손을 대었다가,

『그럼 아버지 여기 게셔요. 제가 가서 김 서방을 불러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고 인현은 일어나 나갔다.

김 서방은 마침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요새 홧김에, 또는 돈이 생기리라는 허욕에 밤 늦도록 술 먹는 버릇이 생긴 김 서방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현은 김 서방과 마주 앉는 맡에 단도직입적으로,

『여보 김 서방, 그래 아버지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하고 물었다.

김 서방은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고소허지. 금봉이하구 혼인을 시켜 준다면야 말할 것 없지마는.』

하고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서 뽐낸다.

『금봉이하구 혼인한단 말을 안될 말이구.』

『왜 안될 말이야? 흥, 혼인날 달아난 신부야. 내가 그때에도 여러 가지 사정을 보구 참았으니깐두루 무사했지. 지금이라도 내가 혼인 약속 이행 청 규 소송을 할 수가 있단 말야.』

하고 대서소에서 얻어 들은 지식을 쏟아 놓는다.

『그것은 안될 말이다.』

하고 인현은,

『첫째에는 금보이가 동경 간 뒤에 김 서방은 어멈하구 혼인을 하지 않았소? 김서방이 딴 여자하구 혼인을 하였으니깐. 금봉이하의 혼인 계약은 김 서방 편에서 벌써 해제한 것이란 말야. 그러니깐 그런 억설은 말구. 또 내 아버지가 잘못하신 것은 나는 모르우? 크게 잘못하셨지. 그렇지만 그렇다구 김서방이 우리 아버지를 징역을 hsorl로 무슨 시원할 것이 있소? 안 그러우? 하니깐 말요. 김서방도 대단히 분하겠지. 분한 줄 내가 모르우. 그렇지만 그 분한 것 다 참구 말요. 내가 김 서방을 돈 얼마를 드릴 테니 김 서방 아주 입을 다물어 주시오. 내가 여태껏 김서방보구 한번두 이 일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할 일이 엇어. 그렇지 않우? 내가 초초요. 최후로하는 말이니 내 말대로 해주우.』

하고 김서방을 위협을 하는 듯이 노려보았다.

『안돼요.』

하고 김 서방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하고 인현은 입을 꽉 다물었다가,

『그래 안되면 어떡헐 테요?』

하고 대들었다.

『응, 김 서방 마음대로 해봐. 내 아버지 감옥소에 가시기 전에 어떤 놈은 모가지가 달아나고 말걸, 이 죽일 놈 같으니. 네 가슴에는 칼 들어 갈 줄도 모르단 말 이내. 이놈 네 뻑다귀가 뉘 밥으루 굵은 줄 아느냐!』

하고 인현은 호령을 하였다.

인현의 호령에 김 서방은 고개가 수그러졌다. 김 서방은 인현의 성미를 안다. 어려서부터 인현은 음울하고 말도 없고 하지마는, 한번 성이 나면 무서운 아버지한테라도 대어 들어서 눈에서 피가 나오도록 우는 아이였었다.

더구나 근래에는 절반 미친 사람으로 가정 안에서나 친구간에나 소문이 나서 아무도 그를 건드리기를 꺼리는 처지다. 이런한 이현이가,

『네 가슴에 칼 들어 갈 줄도 모르느냐?』

하고 노려볼 때에는 김서방은 제 가슴에 칼 들어올 것이 의심 없는 듯하여 두서웠다.

원체 아내가 아까와서 말썽을 일으키는 김 서방도 아니다. 금봉은 탕믕 나지마는, 다만 하루라도 안아 보고 싶은 마음이 볼 일 듯하지마는 금봉이가 제 손에 아니들어 올 것을 모르는 김 서방도 아니다. 또 이 정규를 징역을 보낸댔자 신통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줄을 모르는 김 서방도 아니다. 거의 다 망해 가는 이 정규의 집에 부어 있어야 은사 죽음으로 공 없는 심부름이나 할 것 밖에 아무 소득이 없을 것 같고, 이제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는 몸이 이런 통에 난 한밥 매에 내지 못하면 일생신세가 끼벅꺼벅할 줄을 알 만한 지혜는 가진 김 서방이라 한푼이라도 돈을 더 얻으려고 하는 것이 이 모든 나문제를 제출한 이유였다. 그런데 인현이가 이처럼 나가다가는 저는 거위도구력도 다 잃어 버릴 듯하여서 인현의 위협에 고개가 수그러진 것이었다.

인현은 김 서방의 수구러진 눈치를 보고 벌떡 일어나면서,

『어디 헐대로 해보오.』

하고 나오려 하였다.

『잠깐만 앉으우.』

하고 김 서방은 인현의 소매를 붙들었다.

『왜 이러우?』

하고 인현은 소매를 뿌리쳤다.

『나를 돈을 얼마나 주시려우? 나도 십여 년을 댁에서 일을 보다가 이 망신까지 당했으니 이제 다시 뉘 집에 가서 서사 노릇을 할 수도 없구, 어떻게 여편네나하나 얻어서 죽이라두 끓여 먹구 살아갈 밑천이나 주셔야 안 하겠소? 그러니 날 얼마를 주시려우?』

하고 김 서방은 애원하였다.

인현은 도로 주저 앉았다. 김 서방에게 대한 가여운 생각이 났다. 인현은 쾌히.

『나도 김 서방의 사정을 생각하길래 현금 이천원을 마련해 가지고 왔으니, 만일 김 서방이 다시는 고소르 하느니, 내 누이를 어쩌느니 하는 소리를 말겠다고 무슨 문적 하나만 써 준다면 내가 당장에 돈 이천원을 내어 놓겠소.. 만일 그렇지 아니한다면 김 서방이 고소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는 나 할 일을 하려우.』

하였다.

김 서방은 이리하여 간음죄로 이 정규를 고소한다고 한 것은 전연 오해에서 나왔다는 것과 퇴직금으로 현금이천원을 받은 것을 심히 감사하다는 연유을 글로 써서 도장을 찍고 인현에게서 돈 이천원을 받고 또 간음이 오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어멈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기로 하였다.

인현이 이교섭에 성공하여 김 서방을 끌고 사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한테로 갔다.

이리해서 이 사건은 원만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금봉과 손명규의 결혼도 정규가 인현의 공로를 보아서 쾌히 허락하였다. 인현은 내심으로는 금봉이가 손명규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마는 다 제 업보요 인연이라, 제 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렸다.

『할 수 있니? 다 제 인연이지.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하고 인현이가 금봉이에게 최후의 동의를 할 때에 금봉은 눈물을 흘리며,

『오빠, 손 선생이 부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줄은 알아. 그렇지만 자기가 하도 나를 사랑하니 나는 손 선생을 새 사람을 만들어 볼라우. 예수도 믿게 하고 예배당에도 잘 다니게 하고 다시는 협잡도 말게 하고 그 재산가지고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게 할라우.』

하고 자신 있는 양을 보였다.

『네 마음만은 좋다마는 그리 될까?』

하고 인 혀는 더 말하지 아니하였다.

수단이 능한 손 명규는 파머라는 늙은 서양 선교사를 주례 목사로 하기에 성공하였다. 그는 선교사 중에 인격자로 상당히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손 명규가 주례 목사를 서양 사람 중에서 택한 까닭은 조선인 목사중에는 자기의 내력을 알까 두려워함이었다. 아무리 명규의 일이 서울에 다소 소문이 높기로니 귀머거리 파머목사에게까지 그 소문이 갈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손명규는 혼인 식장을 예배당으로 하기를 꺼렸다. 어떤 서양 사람의 집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어느 교회 학교의 조그마한 강당을 쓰고 싶었다. 만일 큰 예배당을 쓴다고 하면, 첫째는 모일 사람이 적을까 염려요. 둘째는 본 아내 집에서 혼인 식장에서 야로를 할까 봐서 염려있다. 그러나 이 속도 잘 모르는 금봉은 일생에 다만 한번하는 이 좋은 일을 왜 구석에 숨어 하랴. 당당히 큰 예배당에서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또 주례할 목사 파머도.

『혼인 식장, 하나님의 집 예배당 좋소.』

하고 에 배당설을 주장하므로 명규는 무시무시한 것을 부득히 서울에서도 가 장 이름 높은 어느 예배당으로 정하고 청첩을 발송하였다.

혼인날인 정월 어느 날.

그래도 혼인 식장인 예배당에는 한가한 부인들과 또 미인 금봉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더구나 어떤 신문에는 명규가 금봉을 후려 내인 연애 기사까지도 씌었기 때문에 의외의 방면의 군중도 와서 좌석은 반이나 찼다. 그러나 금봉의 모교 방면에서는 한 사람도 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방학에 돌아 와서 아직 동경으로 가지 아니한 최 을남과 강영자가 참석하였고, 조 병걸과 심상태와 을남의 오빠 최형식도 참석하였다.

식장 정면에는 화환이 십여 틀이나 있고 식장 천정은 만국기와 오색 줄로 장식이 되었다. 이예배당에서 혼인식을 거행하던 중에 이처럼 찬란한 장식은 처음이라고들 수군거렸다.

『일 등 미인이 일등 추물하고 결혼하는 날.』

이라고 아는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웃었다.

풍금 소리가 났다.

찬란한 옷을 입은 금봉의 모양이 나타날 때에는 군중의 눈은 모두 그리로 쏠렸다.

『참 미인이다!』

하고 소리를 내어서 찬탄하는 이조차 있었다.

바틈하고 뚱뚱하고 목이 대바툰 신랑이 고개를 수구리고 눈을 뒤룩거리며 들어오는 양이 보일 때에는 희중은 한숨을 쉬었다.

『신부가 아깝고나!』

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신랑과 신부와 남녀 들러리가 죽 주례 목사 앞에 늘어섰다. 들러리들의 의복도 일습을 다 새로 장만하여서 주름 잡히고 누렇게 된 모양은 하나도 없었다.

키가 크고 머리가 벗어지고 코 안경을 쓴 파머 목사가 회중을 한번 둘러 보면서,

『오늘은 신랑 손명규, 신부이 금봉, 혼례식을 거향합니다.』

하고 간단한 기도를 마치고 문답을 하려 할 때에 회중에서 웬 조선옷 입은 사람이 목사 앞으로 뛰어 나가며,

『목사님, 이 혼인 못할 혼인입니다. 손명규는 앓는 아내가 있습니다.

나는 그 아내의 오라빕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신부의 앞에 바싹 들어 가며,

『여보세요, 이 사람헌테 속지 마세요. 이 사람은 아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외다. 왜 얌전한 양반이 이런 몰인정한 협잡군의 첩으로 가신단 말씀이오?』

하고는, 들러리들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신랑의 어깨를 잡아서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려 세우면서,

『여보, 내 누님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백주에 남의 처녀를 속여서 결혼을 한단 말요? 당신이 공부는 뉘 돈으로 하고 가는 뼈가 뉘 밥으로 굵었는데, 그래 협잡으로 내 누님을 민적에서 매고, 자 검사국으로 갈 길이나 차리시오.』

하고 그 사람은 너무도 흥분이 되어서 소리도 잘 나오지 아니하였다.

『이 사람 미친 사람이오.』

하고 손 명규는 목사와 회주에게 대하여 변명하려 하였으나, 목사는 고개를 서너 번 설레설레 흔들더니 퍼들었던 책을 접어 들고,

『나 이 혼례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고 나가 버리고 만다.

『하하!』

하고 누가 크게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이 소리에 많은 사람들도 따라서 웃었다.

금봉은 정신이 아득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맨 앞줄에 앉았던 을 남에게 붙들려서 우선 걸상에 앉았다. 신랑 손명규는 정신 잃은 사람 모양으로 멀거니 서 있었다.

을남의 오빠 최 형식이가 뛰어 들어서 손명규의 처남이라는 사람을 끌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 사람은 두어 번 안 끌려 나가려고 반항하였으나 마치 형식의 앞에서는 기운을 쓰지 못하는 듯이 순순히 끌려 나갔다. 구경군들은 다들 볼 것이 없다는 듯이 일어나 나갔다. 한 십 오 분쯤 지나서는 끝까지 하회를 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사정에 있는 사람만 한 수십 명 남아 있었다. 최 형식의 알선으로 이 남은 사람들끼리 호텔 피로연회장으로 가서 우물쭈물 혼인을 해버리고 신랑과 신부는 신혼 여행하려던 것도 할 경황이 없어서 그냥 호텔에 숙소를 정해버렸다.

금봉은 일생에 처음 당하는 욕을 보아서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아니하였으나. 이틀 사흘 지나는 동안에 이러저럭 말도 하고 웃기도 하게 되었다.

을남이 남매가 그래도 가끔 찾아 와서 이야기도 하고 화투도 하고 마작도 하고 놀았으나, 그들마저 동경으로 간 뒤에는 금봉의 집에는 구구인지 알 수도 없는 손명규의 손님 밖에 찾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손 명규는 끔찍하게 금봉을 사랑하였다. 무슨 대단히 필요한 일이 있기 전에는 도무지 대문 밖에도 나가지 아니하고 꼭 금봉과 이마을 마주 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랑함이 너무도 무식스러워서 금봉의 세련된 연애욕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손 명규의 끊임 없는 육적 사랑은 혼인한 지 얼마가 못되어서 도리어 금봉이로 하여금 멀미가 나고 진저리가 나게 하였다.

금봉은 남편과 잠시하도 떠나는 것이 좋아서 진고개로 종로로 돌아 다니 기를 시작하였다. 집에 둔 인력거를 타고 나가라고 남편 명규는 거의 명령 하다시피 하지마는 청청하게 맑은 날 그런 것을 타기는 싫었다.

『기생이오? 밤낮 인력거만 타고 다니라니.』

하고 뾰롱뾰롱 반대를 하였다.

금봉은 마음껏 단장을 하고 핸드백을 들고 길거리로 걸어 가는 것이 즐거웠다. 길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저를 한번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 기뻤다. 인사동 골목에는 벌써 금봉이가 주의 인물이 되었다. 가끔 양장을 하고 다니므로 또 그 시절에는 양장이 드문 까닭에 양장 미인이라고도 하고, 또 가끔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자동차 미인이라고도 하였다. 지금부터 십 오륙년 전인 그 시절에는 서울에도 자동차가 퍽 드물었다.

잠간만 타도 사 오 원 돈은 집어 주어야 할 때다. 이때에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민 부자쯤이나 되었을까? 그러한 자동차를 금봉은 거의 날마다 타고 다녔다.

명규가 퍽은 금봉과 동부인해서 다니고 싶어하였으나 금보은 번번이 뵤롱 뾰롱 거절읗 하였다. 명규는 금봉이가 혼자만 나가 다니는 것이 염려도 못 마땅하기도하여금봉이가 어디 나간다면 노 눈살을 찌루리며,

『무엇하러 어딜 가?』

하고 항의를 하였다.

『그건 알아 무엇해?』

하고 금봉은 더욱 뾰로통하였다.

『젊은 여편네가 무엇하러 날마다 나가 돌아 다녀? 남들이 미친년이라고 하게.』

하고 명규는 강하게 항의를 한다.

『내 발로 나돌아 다니는데 무슨 걱정야?』

하고 금봉은 툭 쏜다.

『남편의 말 안 듣고 고따위로 주둥아리 놀리ㅏ가는 다릿마댕이 불지지.

다시는 쏘다니지도 못하게. 오늘은 나가지 말어!』

하고 명규는 남편의 권위를 세우려 한다.

『다릿마댕일 분질러 보아. 못 분질러도 사람은 아니지.』

하고 금봉은 더욱 반항적으로 나간다.

금봉이가 인현을 보고 말한 바와 같이 명규를 예배당에도 다니게 하고 협잡도 그만두게 하고 돈을 사회를 위해서 쓰게 한다고 하던 그러한 꿈은 혼인한 이튿날에 벌써 깨어지고 말았다. 명규는 종교라든지 도덕이라든지 예술이라든지 인정이라든지 이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임을 금봉은 깨달았다. 금봉이가 피아노를 치면서 남편의 눈치를 보면 남편은 골Vo로 오관을 떼거나 꿈벅꿈벅 졸고 있었다. 금봉이가 진고개 가서 좋은 그림을 사다가 걸어도 한번도 눈도 거들떠 보는 일이 없었다.

남편을 찾아 오는 사람은 대개 남편과 같은 종류의 인물이었다. 혹시 남편에게 긴한 친구라고 안방에 불러 드려서 금봉이를 소개하는 작자가 있으면, 그는 대개 명규가 안 보는 틈을 타서는 힐끔힐끔 금봉에게 음탕한 눈짓을 하는 것들이 있었다. 혹시 친구들 청해서 저녁을 대접할 때에 가만히 듣노라면 한다는 소리가 모두 음담패설이 아니면 무식스러운 소리요, 극히 정당한 소리라야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까짓 녀석들을 무엇하러 집에 불러 들이시오? 밥을 먹이려거든 요리 집에나 가서 멕이시구려.』

하고 금봉은 손님이 아직 건넌방에 앉았는데도 듣겠건들어라 하고 남편을 보고 앙탈을 하였다.

<이런 사내하고 어떻게 일생을 사나?>

하고 금봉은 한숨을 짓는다.

금봉은 기도하는 습관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얌전하던 태도도 차차 없어 지고 오직 전보다 발달된 것은 단장이었다. 웃감을 바꾸어 들이고, 구두를 맞추고, 화장품을 사들이고, 그리고는 날마다 눈썹을 짓고 연지를 찍고, 이런 것만이 발달되었다. 마치 거울에 비치는 제 자태의 아름다움에 취해서나 살자 하는 것 같았다.

금봉은 길에 나서면 깨끗한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세상에는 깨끗한 남자 가 수없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깨끗한 남자 중에서 어떻게 나는 이 따위(손명규)를 골라 잡았는고 하며 울고 싶었다.

<손 명규란 사람 하나를 구원한다고?>

하고 금봉은 어리석던 제 결심을 비웃었다.

금봉은 다시금 임학재를 생각하였다. 임학재는 지금 서대문 형무소에 있지 아니한가.

금봉은 봄이라고 해도 아직도 쌀쌀한 어떤 날 혼자서 집을 나와서 인왕산을 향하였다. 사직단 뒤 솔숲 속으로 비록 대낮이라도 혼자 가기는 무시무시한 길을 금봉은 정열에 타는 가슴을 안고 걸었다. 골짜기에는 아직 다 녹지 아니 한 눈이 얼음같이 남아 있었다.

삼월 만세 통에 학교들이 휴학이 되어서 이날은 일요일도 아니지마는, 깨끗한 남학생들이 둘씩 셋씩 인왕산으로 올라 가는 것과 마주 내려 오는 것을 만났다. 그들은 어디를 혼자 가는 아름다운 금봉을 걸음을 멈추고는 바라보았다. 금봉은 이 모르는 젊은 사내들도 다 반갑고 그리운 것 같았다.

그 남자들과 옷기슭이라도 한번 스쳤으면 이 고적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동성이를 다 올라서 인왕산을 향하고 성을 타고 얼마고 올라 가다가 금봉은 무서운 생각이 났다. 길이 차차험하여지고 호젓함이 더욱 심하여짐에 금봉은 더 올라갈 용기를 잃고 비탈을 돌아서 백련암(白蓮庵)을 들러 잠간 법당을 엿보고는 다시 비탈을 돌아서 서대문 감옥(그때에는 형무소가 아니요 감옥이다)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갔다. 바윗돌에 걸터 앉아서 수건으로 이 마에 맺힌 땀을 씻으면서 형무소를 바라보았다. 석고 모형과 같이 보이는 그 속이 어디가 어딘지 알랴. 금봉은 다만 멍하니 그리운 학재를 그 감옥 속에 그리고 있었다.

저 속 어느 방에 학재가 있으리라 하면 못 견디게 더 그리웠다.

내가 왜 동경서 좀 담대하게 <그에게 내 살을 고백하고 매어 달리지 아니 하였던고.>

하고 금봉은 울고 싶었다.

동경 있을 때에는 금봉은 날마다 옥중에 있는 학재를 위하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지마는, 손명규의 사람이 된 뒤로는 학재를 생각할 새도 적었 다. 도리어 생각 속에 들어오는 학재를 떠밀어 내쳤다. 남의 아내로서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것은 죄라고 하였다. 도리어 생각 속에 들어오는 학재를 떠밀어 내쳤다. 남의 아내로서 다른 남자를 생학할 수 없는 때에, 명규가 미울 때에 학재는 곧 금봉의 눈앞에 나섰다. 그러할 때마다 금봉은 굳세게 학재를 안지 못할 것을 후회하였다. 명규를 학재에게 비기면 마치 돼지와 사슴과 같다고 금봉은 생각한다.

명규를 대할 때에는 북더기와 구린내 나는 진창 속에서 주둥이로 먹을 것만 찾노라고 꿀꿀거린는 돼지가 생각혔다. 그러나 학재는 마치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서서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는 숫사슴과 같았다. 그리고 금봉이 자신은 마땅히 그의 뒤를 따라 암사슴이 아니었던가 어찌하다가 이 구린내 나는 돼지 우리의 빠졌는가 하였다. 그러나 학재는 마치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서서 덜리 하늘가를 바라보는 숫사슴과 같았다. 그리고 금봉이 자신은 마땅히 그의 뒤를 따라 암사슴이 아니었던가. 어찌하다가 이 구린내 나는 돼지 우리에 빠졌는가 하였다.

인사동의 그 화려한 집, 옛날에는 미 충정공이 계셨다는 집이 돼지 우리 가 되었다고 금봉은 서대문 형무소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만일 그 집에 임 학재를 남편으로 삼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금봉은 학재의 말을 기억한다. 그것이 어는 때이던가. 자기가 성경과 간디의 전기를 선물로 사다 주던 학재의 생일날이던가. 또는 이노가시라에서 비를 만나던 날이던가. 또는 숙희하고 둘이 놀러 갔던 날하던가. 분명치 아니하나 학재는 특히 놀러 갔던 날하던가. 분명치 아니하나 학재는 특히 금봉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나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일신의 행복을 찾아서는 안되오. 우리는 여러 사람의 행복을 위 하여서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데서 기쁨을 얻어야 하오. 인생은 풀리오. 그 영광은 풀잎의 이슬이니 우리는 스러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영광을 찾아야 하오.』

그 말을 들을 때에 금봉은 감격하였었다. 과연 홇은 말씀이다 하였다. 그리고, 그런데 내가 임 선생을 <연야로 사랑해서 쓰겠나? 내가 잘 수양해서 높은 인격자가 되어서 임 선생의 동지가 되도록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금봉은 가슴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을 조그마한 두 손으로 꼭 덮었던 것이다.

그리고 금봉의 마음은 사랑의 불길에 대해서는 너무도 저항이 약하였다.

밝히 말하면, 이성의 사랑이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아버지의 음란한 성격을 받음일까. 그 어머니의 다정다감함을 받음일까.

<그러나……>

하고 금봉은 한숨을 짓는다.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난 것이 나니냐. 인제는 내 몸은 명규에게 더럽혀졌고 명규의 몸에 붙여서 결박을 지어질 몸이 아니냐. 인제는 내게는 깨끗한 처녀성도 없고 마음대로 임 선생을 사랑할 자유도 없지 아니하냐. 이제는 동창의 친하던 친구들조차 손가락질을 하는 돈에 팔려 간첩이 아니냐. 이제는 하나님을 부르고 기모도 못할 몸이 아니냐.>

하고 금봉은 혼인 식장의 대망신을 생각한다.

<차라리 내가 왜 그 자리엣 죽지를 아니하였던고!>

할 때에 지금의 자기의 모양이 차마 볼 수 없게 더럽고 수치스러움을 본다.

<오빠 말씀이 옳았다.!>

하고 금봉은 인현이가 자기의 혼인, 손명규를 바른 길로 끌어 보겠다던 공상을 비웃던 말을 기억한다. 아무리 변명하여 탐낸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이십만 원이 금봉의 것이 되었나? 금봉의 이름으로 옮겨 준다던 소유권은 여지껏 감감이다. 그럼다고 내외가 된 오늘날에 어서어서 그 이름을 옮겨 달라고 앙탈할 염치도 없었고, 또 하루 건너 내외 싸움을 하는 오늘에 와서는 옮겨 달랬지 옮겨 줄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그까짓 냄새 나는 돈!>

하고 금봉은 혼자 뽐내어 보지마는, 그것이 제 이름으로 옮아 오지 아니하 는 것이 몹시 아쉬워서 혹시나 남편의 마음을 오지 아니하는 것이 몹시 아쉬워서 혹시나 남편의 마음을 돌릴까 하고 이삼일 연하여서 남편의 환심을 사려고 아양을 떨어도 보았으나. 그 구령이 다 된 남편이 금봉의 고만한 얕은 꾀에 넘어갈 같지도 아니하였다.

『돈이나 떼어 내어.』

하고 을남이는 싱글싱글 웃으며 금봉이에게 훈수를 하였지마는, 원체 똑바로 밖에 갈 줄 모르는 성격을 타고 난 금봉에게는 그런 음모는 할 줄을 몰랐다.

이제는 처녀성도 <잃고 돈도 못 얻고, 다시는 임 선생을 사랑할 자격도 없고……>

하고 생각하면 금봉은 이생에 누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음을 느꼈다.

<저 속에는 임 선생이 계시다.>

하고 금봉은 다시금 형무소를 바라본다. 형무소 주위에는 황토를 들인 옷을 입고 간수에게 끌려 다니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양이 보인다. 그 속에 학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 재판소를 미결수를 실어 가는 것인가. 커단 자동차가 시커먼 옥문에서 나오고는 옥문이 닫혀 버린다. 그 속에는 임숙희가 있지나 아니한가. 삼월 초하룻 날 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옥에 붙들려 들어 갔다. 그중에는 금봉의 동창들도 이 싸. 만일 누가 그몽이더러도 만세를 부르러 가자든지, 비밀 인쇄물을 돌리라든지, 돈을 내라든지. 한 마디만 하였더라도 금봉도 감옥에를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금봉의 동창들은 금봉을 돌려 내이서 이러한 의논에는 참네도 시키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그것이 다 적막하였다. 마치 금봉은 모든 사람의 사회에서 쫓겨 나서 인사동의 허울 좋은 돼지 우리 속에 돼지 같은 손가의 육욕의 노래개가 되어 있는 듯함을 느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아니하여금봉은 처음에는 종로 경찰서에, 다음에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용이 되었다.

그것이 ○○ 부인회라는 불은 단체의 간부를 집에 숨겼다는 것과 그들에게 비밀 출판물을 인쇄하는 편의와 금전을 공급하였다는 것이었다. 그 간부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 정희와 몇 그 동지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끝에 마침내 금봉의 집을 택하였던 것이다. 밤중에 금봉의 집이 경관대에게 포위 수색을 당할 때에는 마침 금봉의 집 아랫방에서 등사판으로 비밀 서류를 등사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금봉이도 섞여 있었다.

금봉이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서 숙희, 기타의 동지들을 만났다. 한 감방에 수십 명이나 수용된 그들은 거의 유쾌할이만큼 이야기하고 떠들었다.

원체 수용자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단속을 못함도 있지마는, 어떠한 정책상으로 자유 방임하는 경향도 없지 아니하였다.

금봉은 첫째로 지긋지긋한 남편의 곁을 떠난 것이 기쁘고, 둘째로 지금까지 거의 파문의 상태에 있던 저를 동지들이 아랑곳해 주는 것이 기뻤다.의금 봉 일파가 공판에 회부되자 처음으로 금봉을 방문한 것은 새로 변호사를 개업한 심 상태였다. 상태는 말쑥한 옥색 춘추복에 금테 안경을 쓰고 새로 산 접이 가방을 옆에 껴서 변호사의 위엄을 갖추었다. 학생복을 입었을 때보다도 더욱 날씬하고 더욱 살빛이 희고 더욱 눈이 빛나는 것 같았다.

『손 선생도 안녕하시고 댁내가 다 무고하시니 안심하셔요.』

하고 상태는 극히 친절하게 말을 붙였다.

금봉은 자기 남편도 으레잡혔으려니 하였는데 손 명규는 모든 책임을 금 봉에게 지우고 자기는 모른다고만 버티어서 일주일 만에 놓여 나온 것이었다. 금봉은 그와 반대로 경찰에서 동정적으로,

『너는 마음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지?』

하고 책임을 경하게 하려고 물을 때에도,

『내가 하고 싶으니깐 했지요.』

하고 대답하였고

『네 남편도 아느냐?』

할 때에는,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깐 몰라요.』

하고 남편의 책임을 벗기는 답변을 하였다.

심 상태 외에도 셋이나 변호사를 더 대었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마는, 일심에서 정희마니 일 년의 체형을 받고 금봉과 기타는 징역 육 개월, 삼 년간 집행유에의 언도를 받고 여름 몹시 더운 어느 날 석양에 출옥하여서 인사동 집으로 돌아 왔다.

『그건 다 무슨 철없는 짓이야?』

하고 명규는 금봉을 책망하였으나 싱글싱글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을 하였다. 금봉은 감옥에서 나온 것이 조금도 기쁘지 아니하였다.

이 모양으로 일 년의 세월이 지나간 어느 날. 손명규는 이삼일이나 소식이 없이 안 돌아 오던 끝에 금봉이 혼자서 동무들을 청해 놓고 마장을 하고 있을 때에 (그동안 금봉은 j의 매일 마장으로 소일을 하였던 것이다) 문득 다수의 정사복 경관이 달려 와서 금봉을 앞을 세우고 가택 수색을 행하였다. 반 시간 동안이나 법석을 한 끝에 명규의 금고와 책상에서 모든 서류를 압수해 가지고 가버렸다.

『웬일이야?』

하고 겨유 숨을 돌린 동무들이 금봉을 향하여 물을 때에 금봉도 영문을 알지 못하고 어린둥절하였다.

그러나 금봉은 마음에 지피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첫째로 근래에 남편의 태도가 매우 초조한 것이었다. 그는 집에 돌아 오면(매양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 왔다) 아무 말도 아니하고 이따금 짜증까지도 내고 그리고는, 아침에는 일찍 밥도 아니 먹고 어디를 나갔다. 이것을 보고 할멈은,

『영감마님이 어디 첩치가를 하셨나 보아요.』

하고 근심까지 하였다.

둘째로 마음에 지피는 것은, 근래에는 전화가 오면

『안 계십니다.』

하고 금봉이가 대답하면 저편이 매우 불쾌한 소리로,

『밤납 인 계시다니 언제나 계시단 말이오.』

하고 화를 내고 끊는 그러한 경우가 많고, 마침 남편이 집에 있을 때에 전화가 오더라도 그것이 아침 일찍이라도 남편은 성가스러운 듯이,

『없다고 그래. 어디 시골 갔다고 그러라니까.』

하고 도무지 전화를 받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 십여 일 전 어느 날 밤 일이었다.

남편은 그날 웬일인지 일찍 돌아 와서 매우 유쾌한 태도로,

『여보, 어서 세수하고 차리고 나서우.』

하고 싱글벙글하였다.

이런 일은 근래에 드문 일이다. 금봉도 노상 불쾌하지는 아니하였다.

『왜? 어디 가우?』

『우리 저녁 먹으러나 나가.』

『난아, 세숫물 놓하라.』

하여 하인 계집애에게 명령을 하는 일변, 금봉은,

『오늘은 웬일이오?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원.』

하고 한번 상긋 웃었다.

『무에 웬일야? 자, 어서 차려.』

하고 명규는 장문을 열고 웃을 고르고 섰는 금봉을 한번 끼어 안고 억지로 입을 맞추고는 자기 사무실인 안사랑으로 나가 버렸다.

금봉은 세수하고 단장하고 옷을 갈아 입기에 사십 분은 허비하여서,

『어서 나와, 어서 나와.』

하는 남편의 재촉을 사오차나 받고,

『그렇게 급하거든 혼자 가구려.』

하여 한바탕 가네 안 가네 하는 옥신각신이 있은 끝에 내와가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가 하였더니, 장충단 옆에 있는 일본 요리집 ○○정이라는 데로 몰았다.

『일본 음식 오래 못 먹어 보았지, 히히.』

하고 명규는 칼라와 넥타이를 끄르면서,

『오늘은 일본 음식을 먹어, 응? 목욕이나 허구.』

한다.

<어째 이런 데를 끌고 왔을까?>

하고 금봉은 근래에 심상치 아니한 남편의 태도를 생각하면서,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하고 남편의 일동 일봉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명규는 그저 유쾌하게 평생 안 먹던 술도 먹고 계집 하인을 붙들고 농담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태도에는 금봉에게 대하여 좀 아첨하는 듯한 어색한 점이 있었다.

금봉은 가슴에 불안한 그림자를 품은 대로 저녁을 마치고 남편의 속을 떠도 볼 겸,

『이제는 활동 사진 구경이나 갑시다.』

하고 건드려 보았다.

『활동 사진? 활동 사진은 훗날 보구 오늘은 마누라가 좀 어려운 일을 해 주어야겠어,히히.』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 그저……』

하고 금봉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이 작자가 내게 무슨 어려운 청을 하노라고 이다지 요공인구?>

하고 금봉은 수그리고 앉은 남편의 고슴도치 같은 자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고 명규는 정히 말하기 어려운 듯이 웃는 것도 같고 경련된 것도 같은 얼굴로,

『저 김알지?』

하고 금봉의 눈치를 본다.

『하구 많은 김에 어느 김 말이오?』

하고 금봉은 좀 불쾌해져서 톡 쏘았다.

『에이, 저, 거시기, 김광진이 말야. ○○은행 지점장. 왜 우리 집에서 하루 마장도 했지.』

하고 명규는 떠듬떠듬한다.

금봉은 얼른 그 사람이 생각났다. 서울 가까운 어는 시골 부자. 수완보다도 돈으로 된 취체역으로서 지점장, 젊은 여자의 얼굴을 힐끗힐끗 보기 잘하고 코 밑에는 채플린 수염 있는 사람. 모오닝 입고 왔던 사람, 깊이는 없으나 귀공자 타이프로 생긴 미남자,

『그런데 그 김이 어째했단 말이오?』

하고 금봉은 화는 듯이. 남편은 바라도 아니 보고 먹으라고 내어온 멜론마 온실 포도를 이쑤시개로 긁적거린다.

『그런 게 아니라, 이봐, 좀 어려운 말이지만 꼭 들어주어야 되겠어, 무슨 말인구 허니 말야, 내일 안으로 돈만원을 꼭 써야 할 텐데 말야, 급한 수형이거든, 수형이 부도가 되면 내 신용은 꽉 막혀 버리거든, 수형이 부도가 나면 신문에까지 나구 은행 거래는 아주 막혀 버리구 말아요. 실업가가 수형 부도가나면 죽는 게나 마찬가지어든.』

『왜 그 숱한 재산 다 무엇했수? 이십만 원이니 삼십만 원이니 하던 것은 다 누굴 갖다가 주어TTn? 난, 원 돈이라구는 동경서 당신이 내 몸값으로 준 삼천 육백원 밖에는 만져 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했소.』

하고 금봉은 재산을 제 이름으로 해주마 하던 명규의 거짓말에 대하여 평소에 속에만 두고 내놓지 못하던 불평을 이 기회에 한번 내쏘았다.

『그게 그럭저럭 수속이 늦어서.』

하고 명규는 좀 어색해서 어리광 모양으로 머리를 긁적 긁적하며,

『내일 일만 피우게 해주면 얼른 수속을 마칠 테야.』

하면서도 속으로는,

<인제는 네 이름으로 넘겨 줄 것은 빚밖에 없다.>

하고 쓴웃음을 웃었다.

금봉도 자기 남편이 한다던 공장도 시시해지고 또 기미를 한다는 소문도 들어서 재산이 병이 든 줄은 짐작도했지마는, 언제 물어도 늘 잘되노라고만 대답하고 얼마만 지나면 큰 수가 난다고만 하므로 기연가 미연가 해와Tw마는 설마 그 이십만 원 재산이 다 없어졌으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말야, 어떻게 하는고 하니 말이지, 내가 이런 소리를 n 번 할 것도 아니구 허니 말야, 내외간에 어떡허나, 안 그래?』

『무엇이 안 그렇단 말요? 어떡허란 말요?』

『다른 게 아니란 말야……

『말야는 좀 그만두고 헐 말만 해요. 왜 사내가 그렇게 비루 허우?목이 달아나더라도 헐 말은 분명허게 허지.』

『그 말을 들으니께 안심이 되우. 다른 게 아니라 말야. 김광진이헌테 내가 말은 해놓았는데---당신이 기즘 김을 찾아가서 내가 담보할테니 염려 말구 그 돈을 돌려주라구--- 내게 말이지----그 말 한 마디담허구 오란 말야. 날 살려 주는 줄 알구.』

하고 명규는 스스러운 사람에게 하는 모양으로 한번 굽신하고 절을 한다.

그것은 명규가 근래에 돈 얻으러 금융 기관이란 금융 기관에는 다 돌아 다니면서 애걸하는 통에 얻은 습관이었다. 아내에게 굽신 절을 하고 나서도 수줍은 생각이나서,

『내 이렇게 절을 할게.』

하고 또 한번 일본식으로 이마가 압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히히하고 웃는다.

『그게 다 무슨 소리요? 내가 담보를 하다니?』

하고 금봉은 눈을 크게 떴다.

금봉은 「우리 집이 망했구나」하는 생각과, 「미인계라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일어났다. 그러나 금봉이 자신도 놀란 것은 마음 한 구석에 김광진을 만나보고 싶은 호기심도 생김이었다. 그러나 금봉은 이 여잗비 못한 생각을 얼른 눌러 버리고,

『날더러 왜 밤에 남의 사내를 찾아가란 말요?』

하고 가장 정당한 항의를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죽고 사는 문제란 말야.』

하고 명규는 시계를 내어 보면서 초조하였다.

『그럼, 나 혼자만 가란 말야.』

하고 금봉은 갈 결심을 보였다.

『그래, 내 그 집꺼정은 바래다 줄게.』

하고 모처럼 다 된 금봉의 결심을 깨뜨릴까 보아서 명규는 얼른,

『가면 김이 말을 꺼낼 테니, 그때에 당신이 담보하노라구. 책임을 지노 라구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것이야.』

하고 애원하였다.

금봉은 여러 가지 의심도 있었으나 또한 여러 가지 호기심도 있어서,

『그럼 당신 말대로 가긴 가오마는 난 도무지 도깨비 장난만 같수. 아무려면 대수요?』

하고 나섰다.

명규는 셈을 치르고 십원 한 장을 하인에게 행하하고 전화를 한번 걸어 보고는 자동차를 불러 타고 ○○장을 나섰다.

빗방울이 자동차의 창을 쳤다. 차는 신마찌 창기촌 앞을 지났다. 창기들 이 횟됫박을 쓰고 입술은 쥐 잡아 먹은 고양이 모양으로 빨갛게 칠을 하고 문밖에 나와 서서 지나가는 사람의 소매를 끌었다. 금봉은 밤의 창기집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나도 창기의 신세가 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몸서리를 치고 한숨을 쉬었다.

차는 창경원 앞을 지나서 동소문을 나서너 성북동으로 돌았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해드라이트에 비치어서 번뜻번뜻하는 것이 금봉에게는 퍽 신기하게 보였다.

차는 어떤 대문 앞에 섰다.

『여긴가?』

하고 자다가 깬 듯이명규는 밖을 내다보았다.

『네, 이것이 김 자작댁 정자입니다.』

하고 운전수가 자동차 문을 열었다.

명규도 내리고 금봉이도 따라 내렸다. 길가로는 석축이 있고 석축 위에는 산울이 길게 뻗은 것이 정원이 넓다하는 것을 보였다

『그럼, 자동차는 여기 세워 놓고 다녀와. 나는 저기 다녀서 집으로 갈게.』

하고 명규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 어둠침침한 곳에 혼자 내 러벼진 금봉은 무서웠다. 그러나 운전수각 보는 앞에서 「여보, 여보」하고 달아는 남편을 부를 수도 없어서 「될 대로 되어라」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나옴인지 웬 열 칠팔세 되어 보이는 말쑥하게 생긴, 그러나 상노같이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금봉의 앞에 허리를 굽히며,

『인사동서 오셨에요?』

하고 위아래를 훑어 본다. 말만은 경어를 쓰지마는 손님을 존경하지는 않는다는 눈치가 금봉에게도 보였다. 늙은 자작 대감의 아들인 김광진이가 성북동 정자에를 나와 잘 때면 반드시 웬 못 보던 여자가 초저녁에 자동차를 타고 나왔다가는 아침에 돌아 가는 것을 늘 보는 상노는 금봉을 보고도 「또 이게로구나」한 것이었다.

금봉은 엡을 하지, 해라할지 몰라서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이리 들어오시지요.』

하고 상노가 우산을 금봉에게 주고 몇 걸음 앞서서 자갈 깐 길로 들어가다가 우뚝 서서 금봉을 돌아보며,

『자동차는 돌려 보내시지요.』

하였다.

이 말은 민감한 금봉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었다.

『기다리라고 했어.』

하고 상노를 한번 노려 보았다. 자동차가 다닐 만한 길을 취임하게 걸어서 뼈대는 조선집이나 내부 수장은 양식으로 한 집에 인도되어 본래는 대청이 던 응접실에 금봉은 선 패로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응접실은 전부 서양식으로, 테이불이나 의자나 다 낡기는 낡았을망정 화려한 고급품이었다. 이 집 늙은 주인이 옛날은 공사로 외국도 다니고 대궐 안에도 자주 다니던 사람인 것이 방 차려 놓은 것만으로도 보였다.

아까 그 상노가 차 한잔을 갖다가 놓으며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였으나, 금봉은 여전히 버티고 서 있었다. 금봉은 서 있는 것을 무슨 큰 위험에 대한 준비인 것같이 생가하는 듯하였다.

이윽고 조선 옷에 항라 두루마기를 입은 주인이 나왔다. 한번 보던 얼굴이라 금봉은 허리를 굽혔다. 주인도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dll 앉으시지요.』

하고 주인의 자리일 듯한 큰 h파에 금봉이더러 앉기를 권하고 자기는 맞은 편에 있는 교의에 앉았다. 금보도 앉았다.

『비오는데 어려이으셨습니다.』

하고 김은 전과 달리 대단히 점잖았다. 금봉은 김의 점잖은 태도에 얼마쯤 안심되었다.

『성복동은 처음이신가요?』

하고 김이 말머리를 잡으려는 듯이 묻는다.

『네 --- 두어 번 원족은 나와 보았읍니다마는.』

하고 금봉은 어려서 선생님을 따라 나왔던 것을 생각하였다.

『산골짜기니까요. 그러나 물소리가 좋아요.』

하고 대문 밖 개천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대문 밖에는 폭포라고 할 만한 데가 있어서 오래가문 끝이지마는 그래도 물소리가 들려 온다.

『또 새소리도 들립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안 들립니다마는, 꾀꼬리도 울고 두견도 울지요 허허,』

하고 아직 삼십이 얼마 넘지 아니한 그연마는 마치 오륙십이나 된 노인과 같은 점잖은 어조다.

금봉은 다만 「네에」할 뿐이었다. 금봉은 이런 귀족의 집에는 처음 오기 때문에 말을 어떻게 해야 옳은지 몰랐다.

『부인께서 재주가 많으시고 또 시를 잘 지으신다는 말씀도 들었지요. 나도 날마다 주판을 가지고 놀지마는 문학이나 음악이나 예술을 퍽 사랑은 합니다.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르지요. 내 누이는 음악 공부를 합니다마는.』

또 금봉은, 「네에」할 뿐이었다.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 몇 살이나 되었느냐 이런 밀도 묻고 싶었으나. 아직도 혀가 마음대로 돌지 아니할 뿐더러, h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알 수 없는 어떤 위험을 더 부르는 것 같았다.

과자와 과일과 아이스크림 나왔다. 특히 흰 설탕과 흰 크림을 친 빨간 딸기가 얼음 같은 컷 글라스 대접에 담긴 것이 탐스러웠다.

『잠수셔요. 이 딸기는 집에서 재배한 것입니다. 신선하니 하나 잡수어 보셔요.』

하고 김의 권하는 말이 더욱 탐스러웠다.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점잖고도 은근할까?>

하고 금봉은 철저하게 상스ㅓ운 자기 남편과 비겨서 김광진을 마치 이 세상 사람은 아닌 것같이 생각하였다.

금봉은 권하는 대로 딸기를 몇 개 집어 먹었다. 과연 신선하다.

『딸기란 미인이 잡수시기에 가장 합당한 과일이로구나 하는 것을 지금 깨달았습니다. 붉은 입술 흰 이 세에 딸기가 물리는 것, 그것은 참 아름다 운 색채의 조화입니다.』

하고 가장 감탄하는 모양으로 김은 고개를 약간 끄덕거렸다.

금봉은 잠간 부끄러웠으나 그 말까지도 듣기에 좋았다. 그 말하는 목청과 억양이 마치 음악 같다고 생각하였다. 때로 자기를 뜷어지게 바라볼 때도 있고, 싱그레 웃을 때도 있으나. 그것이 다 버르장머리 없다거나 음탕해 보이지 아니하고 다 법도가 있는 것 같았다. 영국, 법국 물을 먹은 사람이라 과연 다르구나 하였다.

이때에 상노가,

『운전수가 밖에서 기다리리까 여쭙니다.』

하고 주인과 금봉을 절반절반 향하여서 여쭙는다. 그 상노의 태도와 말법까지도 아까와는 다르게 법도가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를 세워 두셨던가요?』

하고 김은 잠간 금봉을 바라보더니,

『얘, 자동차 가라고. 얼마냐고 물어 보아서 차비는 주고, 차는 가라고.』

하고 상노에게 명한 뒤에,

『가실 때에는 집의 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며 금봉을 안심을 시킨다.

이렇게 거의 한 시간이나---그 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그처럼 능란하게, 유쾌하게 김은 금봉을 접대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이억이 억 화제를 끌어 내는지, 그것도 조금도 억지로 하는 빛 없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 내어서 어느새에 그리 된 지 모르게 금봉도 말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도무지 스스럽거나. 어려운 생각이 턱 마음이 놓이도록 김은 금봉을 얼렀다.

『그런데……』

하고 김은 잡담을 뚝 끊으며,

『오늘 좀 오십시사한 것은……』

하고 말을 하려다가 멈칫하더니,

『미안합니다마는 잠간 저를 따라 오세요. 좀 보여 드릴 것도 있고.』

하고 먼저 일어나서 앞선다.

금봉은 서슴치 않고 따라 일어나서 김의 뒤를 따랐다.

금봉은 김의 뒤를 따라서 복도를 몇 굽이를 돌았다.

어떤 곳에서는 김은,

『여기는 충충태가 있습니다. 온, 전등이 꺼져서.』

하고 금봉의 허리를 한팔로 살짝 안아서 끌어 올리고, 어떤 곳에서는,

『여기는 화분들이 있어서 발에 채이시리다.』

하고 금봉의 팔을 껴서 인도하였다.

마침내 어느 방에 늘어 갔다. 그것은 조선 가옥을 양식으로 꾸민 것이 아 니요, 순전히 양옥이었다. 창에는 자주로 꽃 무늬 놓인 커어튼이 늘여지고, 방 한 옆에는 금빛이 번쩍번쩍하고, 침대에 하얀 서양 침구가 덮여 있고, 서양식 하얀 망사 모기장을 천정에 달아서 침대 머리에 모아 걸었고, 벽과 방바닥은 초록빛 많은 것으로 꾸밌다. 그리고 침대 바로 옆에 전화를 놓은 작은 탁자가 하나. 침대에서 먼 쪽에는 창츨 gig하여서 큰 라이팅테스크가 있고, 그 곁에는 서양 선교사의 집에서 흔히 보는 빙빙 돌리는 걸상 하나가 놓였다. 이 방이 서재 겸 침실로 씌우는 방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도 큰 안락 의자에 금봉을 않히고자기는 보통 의자에 앉으면서.

『이 방은 가친이 법국 공사를 다녀오셔서 지은 신방입니다. 이 침대는 그때 위으로서 하사하신 것인데 덕수궁 석조전 안에 놓으셨던 것이라고 합니다. 보세요, 여기 이렇게 이화표가 있지요? 헤헤. 앉으신 이 교의도 하사하신 것이어서 여기 이렇게 이화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낡고 그것도 옛날이니까요.』

하면서 김은 일어나 책상에서 반대편 구석에 놓인 장에든 양주병 두 병을 내오고, 또 금봉이가 보기에 빙수 그릇 비슷한 벌떡한 유리잔 두 개와, 좁고 길다란 유리잔 두 개를 내다 놓더니 침대 곁에 있는 전화 탁자를, 전화는 방에 내려 놓고 끌어다가  금봉의 앞에 놓고 처음에 조선 소주병같이 생긴 병에서 노란 술을 좁ㅇㄴ 유리잔에 따르고 다음에는 자기 잔에 따라서 들면서,

『약주는 안 잡수시겠지만 이것 한잔만 잡수어 보셔요.』

한다.

금봉이가 한 모금을 먹고 도로 놓는 것을 보고 김은 연방 권해서 기어이 그 한잔을 다 먹이고는 이번에는 새병을 펑하는 hfl를 내면서 뽑아서 거품 이 부그르르 이는 것을 벌떡 한잔에 따르며,

『이것은 샴페인이라는 사이다 같은 것입니다. 한잔만 잡수어 보세요.』

하고 제가 먼저 들며,

『아시겠지마는 이 술은 서양서는 무슨 축하할 일이 있을 때에 먹는 것입니다. 그저 시원한 것이니 잡수어 보세요.』

하고 잔을 높이 든다.

금봉은 이것이 다 옳지 안 한 일인 줄은 알면서도 웬일인지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이 권하는 대로 샴페인 한잔을 마셨다. 위스키 한잔 과 샴페인 한잔은 금봉의 정신을 어릿어릿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금봉은 두 뺨이 후끈거림을 깨달았다. 김은 차차 더 흥분이 되는 금봉의 얼굴을 빙그레 웃는 낯으로 바라보면서,

<과연 미인다.!>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김은 금봉에 근 e 술을 권하지 아니하고 자기만 위스키 한두 잔을 더 따라 먹고는 병을 닫치고 여송연한 개를 붙이면서,

『용서하세요.』

하였다.

『어서 잡수세요.』

하고 금봉도 어이 없는 듯이 웃었다. 자기도 근래에 손가락이 노랑도록 담배를 피우게 된 까닭이었다.

『그런데……』

하고 기은 푸른 연기가 여라 가지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피어 오르는 여송연을 재떨이에 놓고 벌떡 일어서더니, 책상 곁에ㅔ 놓였던 검은 가죽으로 된 서류 가방을 갖다가 재떨이를 한쪽으로 밀고 펴놓으며,

『오늘 오십시사한 뜻은……』

하고 사무적 교섭으로 들어 간다.

금봉은 김의 이방향 전환에 깜짝 놀랄이만큼 정신이 들었다. 마치 꿈의 세계에서 갑자기 깨어난 것 같았다.

금봉은 제가 온 뜻을 잠간 잊고 분홍 안개 속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쩌면 이렇게 마음을 풀어 놓았을까?>

하고 자기의 몸가짐, 맘가짐이 처녀 적과 달리 방탕함을 깨달았다.

『네.』

하고 금봉은 얼굴의 근육을 수축시키고 김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어, 손 선생에 관해서 여쭈어 볼 말씀도 있고, 또 어, 이를테면 부인의 승낙을 청할거소 있어서……』

하면서 손명규에 관한 서류를 골라내어 놓는다.

『첫째로, 무론 내외간이시니까는 다 아시겠지마는 이야기릐 순서상, 응, 손 선생의 재산 상태를 제가 ds다고 할 수 있읍니까마는, 손 선생의 신용 상태---적어도 제가 관계하는 한에선 말씀입니다---신용 상태에 관해서 먼 저 여쭐말씀이 있는데---예, 일언이폐지하면 손 선생은 지금, 은행의 거래 상으로 보면 중대한 위기에 계십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말이 길겠지마는, 일언이폐지하면, 손형은--- 에, 손 선생은 금액 만원에 다하는 헛 절수를 뗀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하며 헛 절수를 띤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나서 연필 머리로 테이불을 똑똑 두드리면서,

『이러한 부정한 수단---이를데면 사기지요---그것을 내가, 어, 제가 발견한 것은 벌써 오래지마는 아무쪼록 내 힘껏은 뒤를 보아 드리려고 했지마는, 어디 무한량으로 그럴 수야 있어요. 그래서 부득이 단호한 처분을 아니 할 수 없느네요. 그리하자면 내일 오정 안으로 손 선생이 현금 만원만은 입금을 아니하시면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내 책임도 책임이니까』

하고 한참 금봉을 바라보다가,

『부인께서 한 만원 내일 오정으로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여송연을 들어서 몇 모금 빤다.

『제가 만원이 어디서 납니까? 무엇을 잡히기 전에야 ---집이라도 잡히기 전에야.』

하고 금봉은 못 견딜 수치를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말씀이야요……』

하고 김은 사무적인 어조에서 동정을 품은 예사 사람의 어조로 변하여서,

『내가 조사시킨 바에 의하면 말씀야요, 손 명규씨 명의에 있는 재산은 다 은행이나 금융 조합이나 또는 사채로 이번, 삼번까지 저당이 되고 더 돈이 나올 데가 없습니다. 혹시 부인 명의로 있는 재산이나 있는지요? 물론 있으시겠지마는……』

하고 또 연필 장단을 치면서 금봉을 바라본다.

금봉은 더욱 낯에 모닥불을 붓는 듯한 수치를 깨닫는 동시에, 손 명규가 제 이름으로 옮겨 주마 하던 재산을 제계는 한 마디 알리지더 아니하고 다 없애 버린 것을 남의 입을 통해서 듣는 분함을 강하게 깨달았다.

『저는 몰라요.』

하는 금봉의 대답은 떨렸다. 금봉은 손끝과 발끝이 싸늘하게 식어 올라 음을 느꼈다.

『네에.』

하고 김은 의심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떡끄떡하며,

『허, 그럼 부인 명의로는 재산이 없으십니다고려?』

하고 눈을 감는다.

물론 금봉의 명의로는 집 한 채도 없는 것을 모르는 김이 아니다. 다만 금봉의 대답을 좀 들어 보고가 싶어서 물은 말이었다.

금봉은 머리가 혼란하여졌다. 그래도 조만간 이십만 원 재산의 절반 심만 원이라도 제 이름으로 넘어오려니 하고 sola으로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이 김의 말로 다 깨어지고 보니 천지가 캄캄해졌다. 이제는 금봉에게 무엇이 남았나! 처녀도 없고 애인도 없고 돈도 없고,

<아아, 나는 인생의 거지로고나.>

하고 그몽은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말씀야요……』

하고 김은 금봉의 괴로운 시간을 단축하려는 듯이 먼저 입을 연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이제는 손형으로는 돈 한푼돌릴 수 없는 형편이고, 내일 오정 안으로 돈 만원이 안되면 손형은 감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사세가 이렇게 되었단 말씀이지요. 그런데 손형이 손 선생이 연일 나를 찾아 와서 그야말로 눈물을 흘려 가며 조르시니, 암만 조르시더라도 말씀야요 받을 수 없는 돈을 꾸어 드린다는 것도 말이 아니요, 또 그것도 생산 자금이면 몰라도 도무지 다시 살아 나지 못할 돈이란 말이지요. 그러나 나 도 시하에 달린 사람이 만원 돈을---그야 쓸 as한 데면 쓰지요마는, 그래서 좀 말씀하기도 어떠합니다마는 이렇게 말씀했지요. 내가 손 선생을 신용할 수는 없으니 부인께서 책임을 지신다면 그 돈을 돌려 드리마고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 부인께서 내 집에를 오시게 된 것입니다.』

하고 잠간 말을 그치고 금봉의 무표정한 낯빛을 바라보더니.

일이 이렇게 된 것인데 『 --- 어찌하시겠습니까. 부인께서 책임을 지시겠습니까?』

하고 말을 끊는다.

『제가 책임을 지다니요?』

하고 금봉은 어쩐 영문을 몰라서 묻는다.

『일언이폐지하면, 부인께서 저헌테 돈 만원을 차용하신다는 표를 써놓으시는 게지요.』

하고 김은 아주 수월하게 말한다.

<어떠허잔 말인가? 날더러 책임을 지라니 나를 어떡허잔 말인가.>

하고 금봉이는 매맞은 사람 모양으로 물끄러미 김을 바라보았다.

<설마 손이 돈 만원을 받고 나를 팔아 먹기야 할라구.>

이러한 생가고 해보았다.

<그렇다면 무얼 보고 내게 돈 만원을 준달까? 아무래도 수상하다.>

하고 의심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내일 오정 안으로 돈 만원이 아니 되면 남편은 징역을 산다고 한다.

<밉거나 곱거나 남편은 남편이지.>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이러한 끝에 금봉은 확실한 해결도 마음에 짓지 못하고,

『그럼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면……』

하고 김은 약속 수형 용지를 내어 만년필로 쓸 것을 다쓰고는,

『여기다가 서명 날인을 하세요.』

하고 금봉의 앞에 내어 놓는다. 금봉은 김의 만년필을 받아서 고운 글씨로 분명하게 주소와 이 금봉(李金鳳)이라는 씨명을 쓰고는,

『도장은 안 가지고 왔는데요.』

하였다.

『안 가지고 오셨거든 내일찍으시지요.』

하고 김은 그 수형을 접어 넣고 곧 소절수첩을 내어서, 「一金一萬圓」라도 쓰고 수취인을 이 금봉(李金鳳)으로 작정한 소절수 한 장을 써서 봉투에 넣어서 금봉의 앞에 놓고,

『이제 보실 일은 다 끝났습니다.』

하고 일어나서의 아까 뽑았던 샴페인 병을 들고 와서 두 잔에 가득 부어 놓으며, 자 축배로 한잔 『, 드시오. 저도 어째 시름을 놓아서 기쁜 것 같습니다.』

하였다.

열 한시나 지나서 김이 자기 집 자동차로 금봉을 안동하여 인사동까지 바래다 주었다. 금봉이가 내릴 때에 김이 내어미는 손을 금봉은 힘껏 잡았다. 지극히 부드러운 손이었다.

금봉이가 집에 돌아 와 보니 남편은 눈이 멀뚱멀뚱하니 대청에 앉았다가 금봉을 안경 위로 바라보며,

『되었어?』

하고 금봉은 화를 내면서 문을 벼락같이 닫고 안방으로 들어 왔다. 김의 세련된 모양을 보고 온 금봉의 눈에는 명규는 더욱기나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명규는 한참이나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아내를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 왔다. 부모에게 얻어 맞기를 두려워하는 일 저지른 아이 모양으로.

명규는 슬슬 눈치를 보면서 깔아 놓은 자리를 밀어 놓고 금봉과 어깨가 스칠이만큼 가까이 앉는다. 금봉의 입김에서 술 냄새가 맡혔다.

『술 먹었어?』

하고 명규는 문득 불쾌한 질투심을 느꼈다. 명규는 아내를 김의 집 문전에 데려다 두고 집에 돌아 와서는 아내의 정절을 믿기는 믿으면서도 마음에는 불쾌한 의심과 질투가 복받쳐 오름을 깨달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비록 아내가 훼절을 하여서라도 돈 만원을 얻어 왔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도 아니 하였지마는.

『술만 억어?』

하고 금봉은 남편에게 등을 향하고 홱 돌아 앉는다.

술은 왜 먹어.

하고 명규는 책망하는 어조였다.

『뻔뻔스럽게, 아가리가 열이기루 무슨 소리 소리야? 괜히 칼부림 나기 전에 저리 가!』

하고 금봉은 명규 편으로 돌아 앉으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저, 저 하인들 듣겠구먼, 그런데 돈은 됐어?』

하고 명규는 어떠한 욕이라도 참을 뜻을 보였다.

『하인들 들으면 어때. 동네방네 떠나 나가도록 악을 쓸걸, 말짱한 남의 계집애 속여서 꾀어다가는 집 한 간안 남겨 두고 돈 다 없애고, 그리고는 몸 팔아서 돈 벌어 들이라고 헌다구. 세상에 이런 사내놈은 나무 작두에 모가지를 잘라 죽여야 헌다구. 흥, 내가 못 그럴 줄 알고.』

하고 금봉은 평생에 입에 담아 보지도 못하던 하등 욕설을 퍼부었다. 그것은 동네에서 내의 싸움할 때에 들은 소리와 금봉이 계모가 남편에게 대들 때에 하던 어조를 배운 것이었다.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내가 누구를 속였어?』

하고 명규는 끙끙댄다.

『누구를 속였어? 내가 누구를 속였어? 누구 앞에서 그런 빰빰한 소리를 해? 동경 와서 날 꼬일 때에 무에라고 했어? 좀 생각해 보아. 집이랑 땅이랑 다 내 이름으로 문서 내주마고 했지? 서류까지? 다만들어 놓았았노라고 했지? 어디 말 좀 해보야. 내! 내! 그 재산 다 내! 내! 왜 안 내! 그리구는 남더러 몸을 팔아서 돈을 얻어 오라구? 에이 퉤! 똥물에 튀길 녀석 같으니!』

하고 금봉은 남편의 낯에 침을 뱉는다. 그 침이 audr의 콧등에 붙어서 부루루 흘러 내린다.

『누가 몸을 팔랬어?』

하고 명규는 그 침을 씻으려고도 아니한다.

『그럼 팔라는 게 아니구 무에야? 밤중에 계집을 남의 사내 혼자 있는 외딴 정자에 갖다 맡기고 슬며시 빠져오는 게 몸 팔라는 게 아니구 무에야?

무에야?』

하고 금봉은 남편의 따귀를 붙이고 싶은 것을 참았다.

그리고 다만 이를 갈았다.

『그래, 몸을 팔았나?』

하고 명규는 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안 팔아? 젊은 게집 젊은 사내가 자정이 넘도록 한방에 있었으면 다 알겠지. 술 실컷 먹고 실컷 놀구 왔지. 왜 못 놀아. 누가 무서워서 못 놀아?』

하고 금봉은 분과 술이 한꺼번에 취한 듯, 독이 오름을 깨달으면서,

『내가 무엇하러 이놈의 집에를 또 왔어?』

하고 울었다.

『그러지 말어.』

하고 명규는 금봉의 등을 어루만지며,

『내가 다 잘못했어. 잘못했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이번에 다 정리만 되면 모두 다 금봉이 이름으로 해줄게.』

『내 읾으로 해줄 것은 무엇이 있던가? 한푼어치도 남은 것이 없다던데?』

『그건 누가 그래? 광진이가 그래?』

『왜, 세상이 모르나? 다들 알지.』

『그 미친 녀석이 그런 소리는 왜 해? 망할 녀석, 그러나 저러나 그건 됐어?』

『그저 그거야?』

하고 금봉은 명규 편으로 돌아 앉으면서,

『돈 만원에 제 계집을 팔아 먹으러 들어?』

하고 노려보았다.

『응, 점잖지 못하게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점잔? 요 꼴에 또 점잔?』

『하안들 듣는다니까. 그건 됐어? 돈 말야.』

금봉은 김광진이가 준 만원 소절수를 남편에게 줄까 말까하고 망설였다.

망설였다기보다도 아까왔다. 이 일 만원은 제가 가지고 싶었다. 남편이 다 거덜이 났다니 이것마저 놓쳐 버리면 다시는 그만한 돈도 구경할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남편에게 아니 줄 수는 없어서,

『그럼, 여보, 그만원 중에서 나를 삼천원만 떼어 주오.』

하고 조건을 제출하였다.

『그러지, 내 삼천원은 줄게.』

하고 명규는 선선히 대답하고 나가더니 삼천원 소절수한 장을 써 가지고 들어 왔다.

『자, 받으라구.

하고 금봉에게 주었다.

<오, 이것이 헛 절수라는 것이구먼, 은향에 가두 돈 안쥬눈 졸수,>

하고 금봉은 김광진이가 하던 말을 생각하고 명규의 소절수를 내어 던졌다. 「헛 절수」라는 말에 명규의 눈은 번쩍 빛났다. 김이 금봉에게 이런 소리까지 다 하였나 gkfEodpp 질투와 모욕당하였다는 감벙이 복받쳐 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명규는 다시 꾹 참고,

『아니, 이건 받아 두어, 내일이라도 가지고 가면 돈 될 테니.』

하고 방바닥에 던져진 소절수를 집어서 금봉의 손에 쥐어 주었다.

금봉은 문득 명규가 불쌍한 생각이 났다. 성낼 만할 말을 그렇게 많이 해도, 김광진이와 실컷 놀고 왔다는 말까지 해도 성을 내지 못하는 남편이 불쌍했다. 그 눈을 뒤룩뒤룩하고 죽어 줍시오 하고 앉았는 꼴이 측은하였다.

얘 쟤 하고 콧물을 씻겨 주던 어린 여자 앞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게 된 남편을 더 못 견디게 구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금봉은 독살을 거두고 김광진의 만원 소절수를 내어서 남편의 앞에 던졌다. 그리고는 베개 위에 얻드려서 느껴 울었다.

금봉이가 다시 고개를 번쩍 든 때에는 명규는 그만원 소절수를 두 손으로 든 채 정신 없이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튿날 조반도 먹는 듯 마는 듯 명규는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삼사일을 도무지 소식이 없더니 이렇게 경찰이 가택 수색을 온 것이었다.

그래서 금봉은 남편이 불들린 것이 혹시나 이 만원 관계나 아닌가 하였다.

경관들이 다녀 간 뒤에 마장하러 왔던 동무들은 슬몃슬몃 다 가버리고 집에는 금봉 혼자만 남았다. 방이나 마루나 경관들이 어질러 놓은 서류들이 넘너른하였다.

시계가 세시를 치는 소리에 금봉은 정신ㄴ이 들어서 친정 오빠인 현이한테 급한 일이 있으니. 좀 와 달라는 편지를 써서 하인을 보내었다.

금봉이가 명규하고 혼인(?)을 한 뒤에는 인현은 한번 잠깐 다녀 가고는 다시는 발 그림자도 아니하였다.

『오빠, 왜 좀 안 오우.』

하고 금봉이가 불평을 하면,

『손가 보기 싫어서 안 간다.』

하고 금봉에게 대해서까지 냉담하였다. 그래서 금봉도 인현을 야소하게 생각하여서 친정에도 아니 갔지마는, 그래도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형제 밖에 믿을 데가 없어서 오라는 편지를 한 것이었다.

금봉이가 한인에게 편지를 주어 보낸 지 한 시간이나 한 때에 인현이가 왔다. 인현은 머리를 헙수룩하게 기르고 루바시카(아 남자가 입는 적삼) 을 입었다. 인현의 눈은 마치 미친 사람의 눈 모양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빠!』

하고 금봉은 이 변상된 인현을 껴안을 듯이 마주 내달아서 구두끈을 끌러 주었다. 인현의 양말은 때가 묻고 발가락이 나왔다.

인혀은 아주 무표정으로 도무지 세상 만사에 내 마음을 끄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이 미루에 올라 와서는 명규의 책상 앞 회전 의자에 걸터앉아서 콧등까지 내려 은 머리를 끌어 오리고 루바시카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금봉은 냉수에 짠 수건을 갖다가 인현에게 주며,

『오빠, 세수하세요.』

하고 인현의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둔 손톱에 까맣게 때가 낀 것을 보았다.

『괜찮다.』

하고 누이를 한번 슬쩍 보고는 미친 사람 모양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체의 미인화의 액이 걸린 것을 보고는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고개를 픽 돌렀다.

『오빠!』

하고 금봉은 교의를 끌고 와서 인현과 마주 앉으며,

『오빠! 어쩌면, 왜 오라고 했느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느냐. 한 마디 묻지도 아니하우.』

하고 원망스럽게 인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글쎄 한번도 안 오우?』

하고 금봉은 둘째 원망을 말하였다.

『손가 보기 싫어서 안 왔지.』

하고 인현은 처음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난 밉지 않수?』

『너도 밉지.』

『왜?』

『손가넘과 마찬가지어든. 마찬가지길래 함께 살지.』

『어쩌문 오빠두. 그 밖에는 할 말이 없수?』

『…………』

『내가 못 살게 되었다우. 오빠.』

『…………』

『손가는 경찰서에 붇들려 가구. 재산은 한푼어칟 없어지구. 다 없어졌대. 김광진이가 그러는데, 김광진이라구 아우. 오빠? 저 김자작 아들 말야.

영국인가 불란선가 오래 있다가 온 부자 말야--- 그 사람이 그러는데 우리 집은 아주 쫄닥 망하구 말았대. 그리구 손은 붙드려 가구.』

하고 금봉은 울멀울먹한다.

『하하하하』

하고 인현은 유쾌한 듯이 웃는다.

인현이가 웃는 것을 q고 울먹울먹하던 금봉은 눈이 세모가 나도록 부나여서

『왜 웃수? 고소해서 웃수? 넘운 솔 윤 서 종울 허눈대 웃는 데가 어디 있단 말이오?』

하고 소릴 질렀다.

인현은 웃음을 그치고 금봉의 노연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또 한 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입은 다문 채로,

『흠흠흠흠.』

하고 웃는다.

금봉은 어이가 없어서 인현을 바라만 보다가,

『오빠, 어쩌면 좋수?』

하고 다시 애원하는 태도로 묻는다.

인현은 길게, 휘파람을 불 듯이 한숨을 쉬더니,

『그래도 아직도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나는 누구 말마따나 세상은 왼통 허무한 줄만 알았어니 그래도 아직도 이차라는 것이 남아 있어, 그러다가는 하나님까지도 잊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웃었어.』

하고 또 빙그레, 그러나 적막하게 웃는나.

『그건 다 무슨 소리요?』

하고 금봉은 항의한다.

『손가가 콩밥을 먹는 것이 그래도 세상에 이치란 것이 있는 증거가 아니냐? 또 네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슬퍼하게 된 것이 그래도 아직 세상에 이치란 것이 있는 표적이 아니냐? 그러다가는 하나님도 잊게 되겠는 걸,』

하고 인현은 또 웃는다.

『어쩌면 오Qen 그렇게 무정허우?』

하고 금봉은 마침내 성을 내면서.

『동생이 우는 것을 보고 같이 울어 주지는 못하더라도 어Waus 씩씩 웃고 앉았수?』

하고 낯을 붉힌다.

『금봉아.』

하고 그제야 인현은 부드럽고 다정한 음성으로,

『먼저 웃을 일은 웃고 나서 울 일은 울자꼬나. 어디울 일이 이 세상에 한두 가지만이냐? 허지만 말이다. 네가 우는 일은 조그마한 일이고 세상에 그래도 아직도 인과의 원리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을 큰일이어든. 인과의 이치가 아주 죽어 버리는 날이면 우리에게 전연 희망이 끊어지는 날이란 말이다. 하나님이 말영이나신단 말이 있거니와, 정말 하나님이 망령이 나서 잘하는 놈을 못되게 하고, 잘못하는 놈을 잘되게 하게---그처럼 하나님이 망령이 나셨다고 하면 우리는 볼 일 다 본 것이어든. 그런데 말이다. 우리 아버지 되시는 꼴을 보고, 또 손가가되는 꼴을 보면 하늘이 아주 망령이 난 것도 아니란 말야. 그러니까 당장 내 아버지가 망하고, 매부---그것도 매부는 매부지---매부가 망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슴이 아픈 일이지. 더구나 아직 어린애 같은 네가, 내가 이 세상에서 오늘까지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네가 네 말대로 쫄딱 망하는 양을 보는 것이야 피눈물이 날 일이 아니냐.

그렇지만 세상 이치란 아주 죽거나 미쳐 버리지만 아니하면 네나 내나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단 말이야. 세상도 바로 될 희망이 있고, 그러니깐 내가 우선 웃은 것이야. 거뻐서 웃었단 말이다.』

하고 인현은 마치 울 준비를 하는 모양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수그린다.

인현의 말을 듣고 금봉은 지금까지 오빠에게 o하여 노염을 품었던 제 천 박함을 뉘우쳤다. 비록 절반 미친 의 말 같은 인현의 말이지마는, 그 속에는 깊은 진리가 품겨 이쓴 것같이 금봉은 느꼈다. 남편이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금봉이 자신이 벌을 받는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td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염치로, 무슨 자세로 금봉이가 이 불행을 당하는 것을 앙탈하랴---금 봉은 이렇게 깨았다.

『오빠, 오빠, 내가 잘못했수. 내가 오빠에게 성을 내어서 잘못했수.』

하고 사죄하는 진정을 표하려는 듯이 소닐을 마주 비를 었다.

인현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어쨌으나 기막힌 일이다. 아버지는 저 꼴이시고 너는 또 저 꼴이 되고.』

하고 또 휘파람 불듯이 한숨을 내어쉰다. 그는 한숨을 휘파람 불 듯 쉬는 습관이 된 것이었다.

『왜? 아버지가 또 어떻게 되셨수?』

하고 금봉도 새로운 근심을 더하였다.

『흥, 아버지는 하나님이 망령이 나신 줄로 꼭 믿으시는 모양이어든. 하나님이 망령이 나셨으니깐 죄를 져Tejk도 하나님이 그것을 벌할 생각을 lwdj 버리거나, 혹시는 죄값으로 복을 주는 수도 있는 것같이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아버지가 망령난 하나님이니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도 곧잘 주고, 아버지 자기 모양으로 말야. 그러기에 도무지 고칠 줄을 모르시지.』

『왜? 아버지가 h 어느 여편네를 건드리셨수?』

하고 금봉은 아버지의 버릇을 생각하고 묻는다.

『왜 아냐? 어멈을 또 건드렸단다.』

『어느 어멈? 다른 어멈?』

『김 서방 여편네를 건드리다가 또 김 서방한테 들켰어.』

『언제?』

『한 열흘 되었지.』

『그래서?』

『또 고소하다고 벼르고 있어.』

『고소도 안 하구?』

『아직은 어르기만 하구 있지. 집안은 난 가구.』

『아이, 저를 어째!』

『무얼 어째?』

『아버지가 붇들려 가면 어떡허우?』

『붙들려 가는 게 옳은 것 같아 전번에도 괜히 네 돈만 없애구. 나는 그 땡[무사하게 해결한 것을 도리어 후회하고 있다 물 빚은 물고 받을 벌ㅇㄹ 받고. 그래 물 빚은 물고 받을 벌은 받고. 그러는 게야. 그래야 이치가 살지 않니? 벌 받을 사람이 벌을 안 받고 있으면 세상이 침침해.』

하고 인현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버지도 늙은이가 그게 무슨 채신머리야?』

하고 금봉은 짜증을 낸다.

『사람이란 두 가지만 없어지면 할 수 없나보더라. 무엇이 두 가진고 하니, 첫째는 야임이라는 혼이 없어지고, 둘째는 명예라든가 체면이라든가 하는 세상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보면 아버지처럼 된단 말이다. 나이를 암만 먹어도 쓸데 없는 모양야. 너두 양심과 명예감이 두 가지만 다 잃어 버리는 날이면 무슨 일을 못할 줄 아니?』

하고 인현은 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너는 아직 그것이 좀 남았지?』

하고 휘파람 한숨을 쉰다.

『아이, 오빠두.』

하고 말로는 하의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바로 명치끝을 찔린 듯함을 느꼈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란 양심과 명예감을 팔아서 사는 것이 두 가지가 있어. 그것은 뭔고 하니, 돈과 계집, 사내로 치면 말이다. 아버지도 보니까 이 두 가지가 관계 안된 때에는 점잔도, 있고 염치도 암만 못하지 않거든. 헌데 돈이나 계집이라면 그만 변심이 되고 마신단말야.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어머니가 돈 욕심이나 계집 욕심은 없이 낳아 주셨으니까 크게 지옥 가 일은 못해 보 고 말 것 같다마는.』

하고 잠간 주저하다가, 너는 너는 왜 미인으로는 『 , 태어나서, 또 돈 욕심도 아버지좀 닮아서 늘 마음이 안 놓인다.』

하고 금봉의 실심한 얼굴을 바라본다.

금봉은 숨이 가쁘고 얼굴이 화끈거림을 깨달았다. 인현의 말이 수없는 바늘이 되어서 전신을 속속들이 꼭꼭 찌르는 것 같아 아팠다.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했다.』

하고 인현은 험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그런데 대관절 네 남편은 무얼하닥 붙들려 갔단 말이냐? 이제는 돈도 수십만 원 있다더니 사기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정치 운동으로 붇들려 갈 위인도 못되고 대관절 어찌 된 일이야?』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나도 몰라요.』

하고 금봉은 곤경에서 빠져 나온 것만 다행이 여겨서 마음을 펴며,

『재산은 한푼 안 남기고 다 없어졌대.』

하고 제가 김광진한테서 만원 어어 오던 저말을 말할까 하다가 양심에 걸려서 그만두고. 따라서 생긱 내의 싸움에 관한 것도 건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명규가 며칠 동안 근심하는 빛이 있더니. 그리고는 며칠 집에를 안 들어오더니 경찰서에서 가택 수색을 왔더란 말을 하고,

『그러니 오빠 내가 어떡허면 좋아요?』

하고 의논을 하였다.

『재산이 다 없어졌어?』

하고 인현이가 뜻있는 듯이 묻는다.

『응, 응, 다 없어졌대.』

『다 없어지는 것도 모를고 있었어?』

『몰라, 내가 어떻게 아우?』

『네 명의로 있는 재산을 네가 몰라?』

『웬, 내 명의로 해주었나 날 속였지.』

하고 금봉은 김광진의 별장에 갔다 온 날 밤에 명규와 싸우던 것을 기억한다.

『그 돈을 무엇에다 다 썼어?』

『모르지, 누가 아우?』

『물어 보지도 못해? 손가헌테.』

『말을 하나.』

『그럼 어떻게 알았어?』

『김광진이가 그러더라니깐.』

『김 광진이?』

『그, 저 김 자작아늘 말야. 성북동.』

하다가 금봉은 멈칫 말을 끊는다.

『김 광진을 네가 어떻게 아니?』

『우리 집에 놀라두 왔오,』

『집에 놀라 와서 그런 소리를 해?』

『아니, 내가 그 집에 간 일도 있지.』

『내가 그 집에?』

하고 인현은 의심스러운 듯이 눈을 크게 뜬다.

『응, 손이 갔다 오라고 해서 갔어요.』

『손이? 무엇하러?』

『돈 꾸러, 난 왜 가라는지 몰랐지마는 가 보니깐 그 일이야. 돈 만원.』

하고 금봉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고 치마 꼬리를 만적거린다.

『그래, 김광진이헌테네 집 재산이 다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단 말이로구나?』

금봉은 고개를 숙인 채로 끄덕끄덕하였다. 인현도 「미인계」라는 odrkr을 하였다.

『그래 김광진이가---김 자작의 아들이 네게 친절하게 하던?』

『네에.』

『왜?』

『그건 내가 어떻게 아우? 그아가 본래 친절한 사람이 되어서 내게도 친절하게 하겠지.』

『그래, 그 사람이, 김광진이가 네 마음에 들던?』

『오빠두……』

하고 금봉은 잠간 고개를 돌려서 눈을 흘겠다.

인현은 누이의 그 눈이 도무지 위험성을 뛴 것이라고 이번에도 생각하였다. 금봉이가 「다정한 여자」라는 것을 인현은 그 눈에서도 늘 본다. 그 눈이 여러 남자를 죽이기도 하려니와, 필경은 눈 임자인 저까지도 죽여 버릴 눈인 것같이 생각했다. 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간절한 인현은 누이의 그 눈을 변하게 할 수만 있으면 변하하게 해주고도 싶었다. 금봉도 제 눈의 힘을 자각하였다. 이 눈으로 한번 흘려 보는 날에는 어떠한 남자라도 제 앞에 무릎을 끓지 아니치 못할 것을 믿고 있다.

하나님이 왜 무엇하려고 <, 저런 아름다운 매력 있느 눈을 만들었을까. 어찌하였으나 그것은 상서로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인현은 금봉의 눈을 볼 때에는 생각하였다. 인현은 지금은 비록 mlal하지마는, 죽은 어머니도 눈은 도저히 금봉을 따르지 못하였다. 금봉의 눈은 누국를 닮은 것일까. 기어 다닐 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아이, 눈도 예쁘기도 하다」하는 칭찬을 하였다. 손명규도 그 눈에서 나오는 무서운 금줄은줄에 팔다리를 챙챙 감긴 사내라고 인현은 생각한다. 만일 김광진 이가 누이의 이 눈을 보았으면, 누이가 김광진에게 이 눈의 힘을 한번만 썼으면 반드시 벌써 꽁꽁 욹혔으리라고 인현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금봉의 눈은 또한 막의 회비극을 연출하고야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현은,

『금봉아, 너 다시는 김광진을 만나지 말아라.』

하고 명령조로 말하였다.

금봉은 인현이가 제 속을 꿰뚫고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인현의 말 뜻을 알았다.

『안 만나지요.』

하고 금봉은 시무묵하였다.

인현은 정색하고,

『김 광진뿐 아니라, 너는 도무지 젊은 남자를 안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 그런고 하니, 너는 너무 미인으로 태어났다. 더구나 네 눈에는 무서운 힘이 있어, 남자들고혹하는 무서운 매력이 있단 말이다. 네가 동경 갈 때까지는, 처음 손가하고 혼인할 때만 해도 그닥지는 않더니, 지난 일 년 동안에 너는 더욱 변하였다. 네 눈에는 더욱 무서운 힘이 생겼어, 그것이 너늘 대하는 남자들헌테만 화근이 아니라, 필경은 네게 화근이 될 것 같단 말이다. 손가를 만난 것만 해도 네 눈 때문이지마는, 그것은 서막이란 말이다. 나는 직각적으로 김광진이라는 인물이 비극 배우로동단을 한 것 만 같이 느껴지는구나. 까딱 잘못하면 넌 여러 남자를 파멸시키고, 대한히 방정맞은 말 같다마는 마침내는 너 자신을 파멸시길 것같이만 생각이 된다.

네미가 네게 복이 되는 것보다 화가 되기가 쉽단 말이야. 어머니는 안 그러시냐?』

하고 마치 상장이가상을 볼 땡[ 하는 모양으로 눈도 끔쩍하지 아니하고 금봉을 바라본다.

금봉은 오빠가 제 어여쁨을 찬양하는 것만은 기뻤으나, 그 어여쁨이 화의 원인이 되리라는 말이 마치 꼬 귿 fdj 맞을 예언만 같아서 몸이 오싹함을 깨달았다. 김광진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무대에 나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김광진과 밤 늦도록 이야기한 뒤로부터는 금봉의 마음에 그 그림자가 사라지지 아니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의 힘을 가지고 저를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인현의 말대로 하면, 심 상태, 조 병걸, 임학재간은 인물들이 다 금봉이가 주연하는 연극에 각기 한 소임씩 말을 것만 같았다.

금봉은 자기가 주연 배우가 되고 임학재, 김광진, 심 상태 이러한 인물, 그 밖에도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여러 인물들이 들며 날며 한 빅ㄱ을 연출할 것을 상상하는 것은 유쾌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손명규 따위는 한 어릿광대로 한바탕 구경군의 웃음을 받고는 무대에서 스러지고, 금봉이 혼자만 무대에 서서 관중의 주목을 일신에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비극으로 파멸될 때에는 파멸되더라도 관중의 누목의 표적이 되는 것만은 기쁜 일이었다. 천하의 주목 속에서 자기가 비극 주인공으로 처ㅣ후의 막을 닫칠 것을 상상하는 것도 퍽 유쾌한 일인 것 같았다. 여자로 태어나서, 모든 남자들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미인으로 태어나서, 한 사람의 아내로 가정 구석에서 늙어 썩는 것보다 많은 사람의 주목 속에 비극 주인공으로 스러지는 것이 빛나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내가 어째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하까.>

하고 금봉은 동경 학교에 있을 때의 경건하고 정결하던 기도의 생활을 희상 하였다.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제 자세를 생각하면 그것은 말할 수 없이 거룩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 거룩하던 생애를 jfl고 음탕한 생애에 발을 들여 놓으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서 사탄의 나라로 즐겨 들어 가려는 것인가. 나는 지금 갈림길에 섰나?>

하고 금봉의 눈앞에 「오른편은 하늘길, 왼편은 지옥길」하고 써 붙인 패목을 보았다. 그리고 두 편으로 갈라져서 끝없이 구름 속에 사라진 두 길을 보았다.

<나는 어는 새에 왼편 길에 발을 들여 놓았구나.>

할 때에 금봉은 소름이 끼쳤다.

『오빠, 내가 어떡허면 좋수?』

하고 금봉은 진정으로 인현의 지혜를 빌고 싶었다. 반쯤 미친 듯한 오빠의 머리 속에는 금봉이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지혜가 있는 것 같았다.

『수녀가 되려무나.』

하고 인현은 거의 소리 지르다시피 큰 음성을 내었다.

『수녀?』

『너 예수 믿노라고 했지? 그러니까 수녀 되는 것이 네게는 가장 안전한 길이란 말이다.』

『수녀가 되다니? 수녀가 되면 무얼하우?』

하고 금봉은 낙심하는 어조였다.

『수녀 몰라? 저 종현 천주교당에랑, 또 정도 영국 성공회랑 왜 수녀들 안 있니? 길다란 검은 치마에 하얀 고깔을 쓰고 염주를, 아니 염주가 아니라, 저 십자가를 늘이고, 왜 그런 수녀들 안 있어?』

금봉은 전에도 인현이한테서 수녀 되라는 말을 한두번 들은 일이 있는 wrjt을 기억한다. 그러나 자기가 수녀가 되어서 검정 치마에 흰 고깔을 쓴 그런 청숭맞은(금봉은 청승맞다고 본다)꼴을 할 생각은 꿈에도 그려 본 일이 없다.

『아니 오빠두. 내가 수녀가 왜 되우.』

하고 금봉은 어이 없이 웃었다.

『왜, 수녀는 너만 못한 사람이 되는 줄 아니?』

『난 잘은 모르지마는 청년 과수가 되거나, 무슨 큭 실연을 하거나 이 세상에서는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 수녀가 되지 내가 왜 수녀가 되우? 아이 참.』

하고 금보은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서 웃는다.

『그럼 금강산 들어 가서 중이나 되렴.』

하고 인현은 좀 불쾌한 듯이 말한다.

『중?』

하고 금봉은 머리를 깎고 동냥 오는 중들을 생각하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뜬다.

『응, 참, 햠릿에 그런 데가 있지. 오필리아더러 그랬나? 너는 수녀가 되어라 하고. 오빠도 그것을 보고 그러시우?』

하고 깔깔대고 웃는다.

『수녀 되고 중 되라는 것이 그렇게 우스우냐?』

『그럼 우습지 않구. 오빠더러 중이 되라면 우습지 않겠수? 오빠가 이렇 게 장삼을 입구, 가사를 메구, 목탁을 두드리면서, 나무 아미타불 음 아루 늣게 사바하---이러면 우습지 않겠수?』

하고 금봉은 참말 우스워 못 견딜 듯이 허리를 굽히락펴락하고 웃었다.

금봉이가 웃는 WRJT을 인현은 가여운 듯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다 하는 듯이 「 」 두어 번 고개를 흔들었다. 인현은 누이의 총명함을 아직까지도 믿고 있었다가 이제 그 총명에 의심이 난 것이었다. 인현은,

<여자의 얕은 총명이라는 것인가.>

하고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금봉더러,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비극과 파멸로 끝나는 네 앞길을 내 눈앞에 분명히 보는데, 너는 네 욕심이, 네 탐욕이, 네 어리석음이, 네 눈을 가리워서 그것을 못 보는 모양이다. 너는 필경 흉악한 네 운명, 불교에서 말하는 네 전생이생의 업보로 결정된 길을 끝끈 내 걸어 가고야 말 모양이 로고나.』

하고 한번 더 휘파람 한숨을 쉰다.

인현의 말에 금봉은 무서웠다. 운명의 길, 업보의 길, 비극과 파멸의 끝이란 것이다. 몸서리치게 무서운 힘을 가지고 금봉의 혼을 때렸다.

그러나 금봉은 행복되고 영화로운 생활의 소망을 버릴수가 없었다. 비록 손 명규와의 혼인 생활이 쇠통 실패에 돌아 가고 말았더라도, 앞길에 한량 없는 쾌락의 꽃동산이 저를 L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손 명규와의 생활이 실패였기 때문에, 거기서 예기하였던 쾌락과 만족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거기서 도리어 쾌락에 주리고, 만족에 주림만 날카로워진 것이어다.

<내가 이 생활만 깨뜨리고 나서면야 이보다 즐거운 생활이야 수두룩하지.>

하는 신념이 금봉에게 있었다.

인현은 금봉에게 아무 실제적인, 금봉의 마음에 맞는 지혜를 주지 못하고 가버렸다. 금봉은 다시는 오빠의 지혜를 빌 생각을 버리고 제 지헤대로 해 나아갈 생각을 하였다.

<날더러 수녀가 되라구. 날더러 중이 되라구.>

하고 금봉은 아침 단장을 하면서 거울에 비치인 혈색 좋은 제 얼굴을 보고 혼자 웃었다. 오빠의 말과 같이 제 웃는 눈이 대단히 맘에 들어서 여러 가지로 예눈을 해보았다. 가느스름하게 떠보기도 하고, 무심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눈도 해보고, 성내는 눈도 해보고, 지이 친 누도 해보고, 애원하는 눈도 해보고, 추파를 흘리는 눈도 해 보았다. 그리고 상그레 웃는 눈도 해 보았다. 그것들이다 마음에 들었다.

<김광진이가 만일 내 뒤에 섰다 하면……>

하고 금봉은 가정하여 본다. 김광진은 필시 그 귀족적인 체면을 다 집어 치우고 덥석 저를 껴안을 것이라고 단정할 때에 금봉은 혼자 만족하게 웃었다 김광진은 아무 때에나. 마음대로 꺼내어 가지고 늘 수 있는, 장안에 넣어 둔 장난감같이 생각했다. 일한 생각을 하면 금봉은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그러기로 어쩌면 임학재는 그 모양야.>

하고 금봉은 동경 시대의 임학재를 그려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임학재는 좀 유치하고 단순한 것 같지마는, 그래도 임학재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립고 정다왔다. 그 임학재가 어쩌면 자기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아니 하였을까. 그는 임학재는 예사 사람과 달라서, 제 몸보다도 조선이란 것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보다도 정의를 동경함도 있었겠지마는, 그렇게로 남자가 어쩌면 그렇게도 꼬장꼬장할까. 임학재가 출옥하였다는 말만 들으면 금봉은 기어이 한번 만나리가 하였다.

손이 공판에 회부되어서부터 금봉의 집에 자주 출입하는 남가가 있었으 니,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변호사 심상태였다. 새로 변호사를 개업하여 아직 일도 많지 아니한 그는 손명규 사건을 자진하여 담인하여 가지고 그 사건에 대한 의논을 핑계로 평소에 보고 싶던 금봉의 집에 출입하게 된 것이었다.

자진 변호로 말하면, 심 상태는 개업 이래로 걱의 전부가 자진 무료 변호였다. 만세 사건 피고들에 대한 자진변호가 그의 유일한 사무였고, 돈 될 사건이라고는 어떤 젊은 과부의 남편의 유산을 상속하는 사건에 관한 것인 데, 이 사건은 상태가 특별히 흥미를 가진 사건으로서 역시 시초에는 자진 변호를 하였던 것이 차차 r 젊은 과부의 눈에 들어서 상태는 마침내 주임 변호사가 되어 일심에서는 벌써 이기었다.

『너 수 났구나.』

하고 상태의 친구들이 놀려먹을 때에는 상태는 노상 듣기 싫지도 아니하였다.

이 상태가 금봉의 집에 출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심상태는 벌써 금시게 줄을 늘이고 핪진 양복을 힙었다. 그것이 다 저 젊은 과부의 손에서 나은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송사를 이겨만 놓으면 돈과 계집이 한꺼번에 생긴다.>

하고 상태는 요새에 한창 기쁜 판이었다. 게다가 금봉의 남편 사건이 생겨서 하루는 한씨라는 젊은 과부의 집에, 하루는 금봉의 집에 다닐 수 있게 된 상태의 기쁨은 비길 데가 없었다.

상태는 마치 학생 시대를 지난 지 벌써 수십 년이나 된 사람같이 차리고, 말하고 행하였다 그의 , . 말에 의하건대, 조선 법조게에는 지식으로나 변론으로 자기 이상 가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상태는 몇 번이 안되어서부터 금봉의 집에 올 때에는 대문 중문에서 찾지도 아니하고 안으로 들어 왔다. 어떤 때에는 셋하는 금봉도 보고, 어떤 때에는 자리옷만 입은 금봉도 보고, 한번은 웃통을 벗고 머리 감는 금봉을 본 일도 있었다. 만일 금봉이가 아니 보이면 상태는,

『아씨 어디 가셨니?』

하고 제 집 모양으로 대청에 올라 앉아서 양복 저고리를 벗어 놓고 칼라를 떼고 세수물을 떠오라고 호령을 하였다.

금봉과 말할 때에는,

『금봉씨!』

하고 이름도 부르고,

『웬일인지 금봉씨가 점점 더 미인이 되어 간다니 정말이오.』

하고 반말지거리로 금봉에게 농담을 붙이게까지 되었다.

금봉 편에서도,

『저리 나가요! 남 벗고 세수하는데 왜 들어 와.』

하고 손으로 물을 떠서 상태에게 끼엊게까지 되었다. 속으로 「축축한 사내」하는 멸시하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상태가 허물 없이 구는 것이 싫지도 아니하였다.

『남편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아씨는 집에서 단장만 하고 있어?』

하고 상태가, 금봉이가 체경 앞에서 모양을 내고 있는 것을 들여다 보면서 빈정대면 금봉은 상태의 팔이나 옆구리를 꼬집기까지 하였다.

금봉은 이제는 소중하게 지킬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동경 있을 때에 금봉이가 있는 힘을 다하여서, 목숨을 다하여서까지 지키려던 것은 그의 처녀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없다. 아내로서의 정조라 하면, 자기는 호적에도 들지 못한 허울 좋은 첩이었다. 손명규는 금봉과 혼인(?)을 할 때에 민적 등본을 위조하였지마는, 본마누라의 동생이 혼인 식장에서 야료를 한 때에 발각이 나고, 그후로는 그것을 위조할 필요도 없어쏘, 또 쪽밤송이 모양으로 그 본마누라는 죽을 듯 죽을 듯하면서도 도무지 죽지를 아니 하여금봉은 아직도 입적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설사 입적할 기회가 생긴다손치더라도 이제는 손명규의 아내로 법률적 보장을 받고 싶은 욕망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무엇을 보고? 돈도 없는 명규, 전중히 audr. 애초에 사랑 있어 만났더냐? 생각하면 제일생을 망쳐 준 원수의 명규 녀석---이렇게 금봉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더 지킬 것이 무엇인고 ? 깨끗한 생활?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고 기도하는 생활? 그것도 집어 치운지가 오랜 오늘날에는 처녀 적에 남달리 많이 가졌던 수치심조차도 이제는 거의 다 날아 가고 말았다.

이 모양으로 지킬 것이 없어지며 점점 날카로와지는 것은 본능적 충동뿐이었다. 그중에도 스무 살 된 여자의 새로 깨어 가는 성욕, 예절 없는 음탕한 사내와 일 년 남아 동거하는 동안에 훈련된 동물적인 모든 욕망, 그리고는 화투나 마장이나 활동 사진이나 음담, 젊은 사내와 시시대고 싶은 생각, 게다가 상대는 가장 능란하고 세련된 수단으로 금봉의 이 정욕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하였다. 만일 상태가 남성ㅈㄱ인 의지력을 가진 인물이었던들 금봉은 벌써 상태에게 몸을 허하였을 것이다. 행이랄까 불행이랄까, 상태는 입으로만, 또 눈으로만 금봉을 긁을 뿐이요, 손을 내어 밀 용기를 못 가진 인물이었다. 금봉이 편에서 손을 밀기를 고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못난 사내!』

하고 밤 늦게 상태가 돌아 간 뒤에는 금봉은 무엇을 잃은 듯이 상태를 욕설하였다.

상태의 말과 눈으로 정욕의 자극만 받고 만족을 얻지 못한 금봉은 김광진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남편이 붙들려 간 뒤에 금봉은 김광진을 찾아서 남편에 관한 것을 더 물으려 하였으나, 이럭저럭---이럭저럭이라는 것보다는 용기가 없어서 그것을 못하였다. 그러다가 공판날을 앞둔 저 몇 날 전에 금봉은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서,

『잠간 뵈옵고 여쭐 말씀이 있는데요.』

하고 광진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통하였다.

『오시지요.』

하는 것이 광진의 대답이었다.

금봉은 유월이라 하여도 어지간히 더운 날 밤에 성북동 김광진의 별장으로 갔다. 전번에 처음으로 여기를 찾아 올 때에는 유혹을 받을까 겁을 내이면서 찾아 왔지만,s 이번에는 김의 유혹을 받기를 바라면서 찾아 왔다. 금봉은 여러 가지 유탕적인 장면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상기한 얼굴로 김을 만났다.

금봉의 표면 이유는 김이 앐ㄴ하여 공판 전에 남편의 사기등 죄에 관한 고소를 취하하게 할 수가 없을까 하는 의논을 함이었다. 김은 금봉이게 대하여서 깊이 동정하는 뜻을 표하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요, 은행이나 금융 조합 같은 법인 관계니까 고소를 취항기가 어려우리라고 근심하느 말을 하였다.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금봉은 여러 가지 대접을 받고 마침내 술 대접도 받았다. 금봉은 술이 취할 필요를 느꼈다. 술이 취하는 것이 제 소원을 성취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하고 한잔만으로도 취하던 위스키석 잔이나 먹고 김에게도 세 번이나 술을 따라 주었다.

열 한시나 되어서(꼭 요전 모양으로) 금봉은 집으로 돌아 왔다.

『영감마님께서 기다리셔요.』

하고 문 여는 어멈이 말할 때에는 금봉은 깜짝 놀라면서,

『영감마님이라니?』

하였다.

『노 오시는--- 그 변호사 어른.』

하는 대답을 듣고야 금봉은 안심이 되었다.

『어딜 rfl 늦도록 돌아 다니오?』

하여 상태는 마치 남편이 아내나 책망하는 어조로 말을 붙인다.

『놀라 다니지.』

하고 금봉은 관자놀이가 쑥쑥 쑤시고 눈이 무거움을 느끼면서 상태에게는 인사도 아니하고 방으로 들어 가더니,

『오순아, 냉수 한 그릇 떠 온, 왜 자리끼를 안 놓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상태는 씩 웃으면서 혼잣말 절반으로,

『어디서 약주를 단단히 자셨군.』

하고 「흥」하는 소리를 일부러 크게 한다.

금봉은 매우 목이 마른 듯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안방에 앉은 채로,

『난, 영감마님이 기다리신다길래 깜짝 놀랐지.』

하고 혀가 꼬인 소리로 중얼거린다.

『왜, 영감마님한테 야단 만날 짓을 하고 왔나보구료.』

하고 상태가, 금봉이가 앉아 있는 안방을 기웃하고 들여다 본다.

안방에는 생초 모기장이 방에 가득하게 치어 있고 금봉은 길다란 베게 한 편 끝을 뻬고 누워 있었다. 후끈후끈한 바람결이 모기장을 흔들었다.

『굿나잇. 난 가오.』

하고 상태는 일부러 쿵쿵거리고 마루를 울렸다.

『가지 말어.』

하는 조르는 소리가 방에서 나왔다.

지금 아씨께서는 『약주가 취하신 모양이니까 내 내일 오리다.』

하면서도 상태는 무엇을 찾는 것처럼 어름어름하고 신발은 신지 아니하였다.

『가지 말아요, 할 말이 있다니깐.』

하고 이번에는 금봉의 음성이 좀 컸다.

상태는 이튿날 아침에도금봉의 집에 있었다. 하인들은 부엌에서 입을 삐죽거렸다.

상태가 간 뒤에도 금봉은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밥도 안 먹고 울었다.

『술김이야, 술김이야!』

하고 금봉은 어젯밤 하룻밤 흘린 눈물을 지어 버리려는 듯이 베게에 낯을 비비며 울었다.

그 후에는 상태가 찾아 와도 없다고, 어디 시골 가셨다고 하여서 금봉은 상태를 따버렸다. 전화통에는 솜으로 밸이 올리지 않게 막아 놓고 도무지 받지 아니하였다.

『내가 어쩌다가 이 꼬락서니가 되었어.』

하고 금봉은 그날 밤의 일을 뉘우치고는 울었다.

『쾌락? 아이, 몇 백, audc 천 갑절의 고통을 가지고 오는 쾌락.』

하는 금봉은 혼자서 몸부림을 하였다.

『누가 알리라구. 김인들 그런 광고하며, 심인들 그런 광고할라구.』

하고 스스로 위로도 하여 보나 그것은 쓸데 없는 일이었다. 금봉이 자신이 그날 밤을 아주 잊어 버리기 전에는 그 젖은 옷 입은 듯한 고통을 면할 수 없었다.

『하인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어떡해.』

하고 금봉은 아무쪼록 하인들과 눈을 마주치기를 피하였다. 더구나 공판날 피고석에 초초하게 앉은 남편이 연해 고개를 방청석으로 돌려서 저를 찾는 양을 보고는 금봉은 기절한 듯하였다. 무에라고 변론을 하고 있는 심 상태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남편이 징역 일 년의 판결을 k도 간수에게 끌려 나가면서 눈을 멀뚱멀뚱하고 한번이라도 더 사랑하는 금봉을 보려고 고개를 뒤로 돌리다가 간수에게 핀잔을 당하고 등덜미를 밀려서 몰려 나가 스러지는 남편의 뒷 모양을 보고는 금봉은 소리를 내어 울고 방청석에 쓰러졌다.

금봉은 남편을 감옥으로 보내고는 지극히 근신하는 생고 얼굴이 초췌하였다.

『하나님,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셔요. 네』

하고 미친 사람 모양으로 울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에라, 내친 걸음이다.>

하는 생각도 나서 김광진과 심 상태를 찾을까 하기도 하였으나, 그럭저럭 지리한 장마도 지나가고 찌는 더위도 겪는 동안에 raqhd은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달마다 있을 것이 두 달째 끊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심화로 입맛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 마침내 그것이 입덧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금봉은 어릴 때 어머니가 입덧이 나면 도무지 아무것도 못 먹고 구역질 만 하고 중병인같이 되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어머니가 그때에.

『전생에 죄가 많으면 입덧이 심하대. 전생에 선공덕을 잘 닦은 사람은 애기를 수월히 선대.』

하고 수원 마나님 보고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입덧은 유전한다는데 우리 금봉이도 후제 이렇게 고생을 하면 어떡해.』

하고 어머니가 제 머리를 쓸어 줄 때에,

『숭해라, 난 아이 안 낳아요.』

하고 어른들을 웃긴 젓을 금봉은 생각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아비 모를 자식을 배고 입덧이 나서 이 고생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무슨 바라지도 아니하였을 것이다.

<이 뱃속에 든 아이가 뉘 아일까? 김광진의 아일까. 심상태의 아일까?

아무리 하여도 남편의 아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건마는.>

금봉은 이런 생각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입덧은 어떤 날은 더하고 어떤 날은 덜하였다.

심한 날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하루 종일 일어나지를 못하여 호구 조사 왔던 수사가 장질부사 환자가 아니냐고 딱딱걸T다. 여름도 다 지나고 가을도 반이나 지난 어떤 날 아침에 금봉은 뱃속에서 무엇이 꼬물거림을 느꼈다. 「아이가 논다」는 말을 들어서 아는 금봉은 이것이 뱃속에 든 아이의 태동이란 것인 줄 알았다. 뱃속에 든 한 방울의 생명,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는 조그마한 한 알맹이 세포가 자라고 자라서 이제는 꼬물꼬물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신비하고 또 반갑기도 하였다.

<이것이 어미의 본능인가.>

하고 금봉은 「나도 어미가 되려는구나」하는 무서움 절반 반가움 저반의 야릇한 느낌을 가졌다.

금봉은 가끔 제 배에 손을 대었다. 뱃속에 있는 생명은 날로 확발하여지고 체경에 비추인 제 모양은 날로 변하였다. 아무Wf hr 배가 홀쪽하도록 하 노라고 저고리 품을 넓게도 goh고 몸을 앞으로 숙여도 보지마는, 나날이 커지는 배는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금봉은 한숨을 쉬었다.

죄의 씨를 뱃속에 넣고 있는 금봉은 더욱 히스테리성이 되어서 금방 웃었다가 울었닥 공연히 화를 내었다가, 집안 사람도 견디어 낼 수가 없을 지 ㅇ경이었다.

<이것을 떼어 버리고 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벌써 떼어 버렸더면 좋을 것을……>

해보기도 하였다.

<저절로 녹아 버렸으면, 이것이 왜 자꾸 자라.>

하고 제 주먹으로 배를 쥐어 지르기도 하지마는, 또 어떤때에는 이것이 나오면 어떻게 생겼을까, 김광진이나 심상태를 뒤집어 쓰고 나오면 어떡하나, 김광진이처럼 머리가 남북이 내어 밀면 어떻나, 심상채 모양으로 눈이 할딱하면 어떡하나, 아비는 안 닮고 꼭 어미 하나만 닮아 주었으면, 이러한 생가도 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남편이 무얼 날짜를 꼽아 보리, 제 자식으로 알고 좋아하려니, 그러면 아무 걱정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또 어떤 때에는,

<그게 무슨 못난 소리야. 남편이 나오거든 바로 말하지. 바로 말하고 받을 것을 받지.>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남편이 나올 기약이 아직도 두 달이 남았거니 하는 이월 어는 눈 내리는 날. 금봉은 배가 뜨끔뜨끔 아픔을 깨닫고 미리 말하여 두었던 산파를 불렀다. 병원에 입원할 형세도 못되고, 친정에서 누구를 청해 올 사람도 없었다.

젊은 산파는 우권을 가지고 집안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해산에 쓰일 제구를 마련케 하였다.

『애기 옷은 어떻게 해요?』

하고 산파가 물을 때에 금봉은 안간힘을 쓰면서도 손으로 장을 가리키면서,

『저 삼층장 맨 맽층에 어린애 옷을 지어 두었어요. 포대기도 있고.』

하고는 낯을 붉혔다. 어린애가 자랄 대로 자라서 입덧이 가신 서너 달 동안 금봉은 울며불며 저주를 하면서도 새로 나올 어린애릐 옷을 장만하였다.

보들보들한 난목과 포근포근한, 햇솜과, 그리고 남편이 주고 간 삼천원 나머지에서 어린애 담요, 처네 등등, 살 것은 사고 값 줄 것은 값 주고 제 손수할 것은 손수 하여서 차곡차곡장에 쌍하 놓았다. 잘할 줄도 모르는 바느질도 한숨 섞여 하늠한 뜸뜨다 하인 만들어와도 집어 감추면서 지은 것들이었다.

배는 띄엄띄엄 아팠다. 아침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때가 되도록 재오치지를 아니하였다.

『저녁을 많이 잡수셔요.』

하고 산파는 심심 파적으로 소설을 보다가는 한 마디씩 하면서 「난산인가 보군」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많이 잡수셔서 기운을 내야 합니다.』

하고 이게 스물 서넛밖에 안된 산파는 제가 아기를 여럿 낳아나 본 듯이 가끔 산부의 배를 만져 보았다.

<얼마나 아프려는고?>

하면 금봉은 무서웠다.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아이가 거꾸로 앉지나 않았어요? 한번 더 잘 보아주세요.』

하고 금봉은 아이가 거꾸로 앉아서 다리가 먼저 나오면 어렵다는 것도 생각하고 아이가 나오다가 걸리면 골ㅇㄹ 깨뜨리고 각을 떠서 꺼낸다는 말도 생각하였다. 그리고 잡지에서 본 자간이라는 것도 생각하였다. 아이를 비롯다가 졸아 버리고 죽는다는 것도 생각되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정신을 안정할 수가 없고, 마치 몸이 허공중에서 곤두박질을 치는 것같이 붙 접할 데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왜 겁을 집어 ajrd.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 오래 살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다고. 꺼벅꺼벅한 신세밖에 남은 것이 무엇이길래.>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때에,

『에그머니, 영감마님이!』

하는 어멈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봉은 배가 뜨끔하고 아프려 할 때 「에그마니, 영감마님이」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씨는 애기를 비릇으십니다.』

『애기?』

이렇게 남편과 어멈의 문답하는 소리도 들렸다.

금봉은 정신이 아뜩해짐을 깨달았다.

명규는 금봉이가 누워 있는 안방에 들어섰다.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고 이 적삼 바람으로 대님도 안 치고 허연 양말을 신었다. 금봉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자는 체하고 눈을 김고 있었다. 명규는 곁에 선 젊은 여자 산파를 보고, 아마 산파려니 하고,

『괜찮겠어요? 순산이 되겠어요?』

하고 물었다.

『순산하시겠지요.』

하고 산파는 「웬 녀석이야」하는 듯이 탐탁지 않게 대답한다.

『여봐, 내가 왔어, 가출옥이 되어서 나왔어.』

하고 audr는 금봉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치 감기로 앓는 사람 위문 이나 온 듯이 금봉의 머리를 만져본다. 이맛전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금봉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하고 몸을 틀면서 눈을 떴다.

금봉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왜 울어? 울지 말어.』

하고 명규는 금봉의 손을 더듬어서 잡았다.

『왜 기별도 안 하셨소?』

하고 금봉은 남편의 픔도 안 맞는 광목 바지 저고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기별할 새가 있나? 누가 미리 알았나?』

『그 옷은 어디서 났소?』

『간수장더러 한 벌 사다 달라고 했더니, 그놈의 애가 이걸 사왔구먼.』

하고 앞섶이버으는 저고리를 한번 고개를 숙여서 보고 픽 웃는다.

『여보, 노마 어머니.』

하고 금봉은 침모를 부른다.

『네에.』

하는 노마 어머니의 대답은 얌전한 구식 며느리의 어조다.

『이리 들어 와요.』

하는 금봉의 말에 긴 모시 치마에 머리를 금방 빗고 난 듯이 깨끗하게 쪽지고 눈을 폭 내려깐 침모가 사뿐사뿐 들어 와서 명규에게 대하여 인사하는 모양인지 분명치 아니한 인사를 하고 아마 여기 일이 있으리라 하는 장앞에 선다.

나으리 옷 내드려요 『. 그 회색 삼팔 바지 저고리허구 모본단 조끼허구.

아니구 배야, 또 그 저 마구자 안 있소---아이구, 그리구 저 두루마기두, 버선두. 가운데 층에 있수.』

하고 금봉은 배가 아파서 더 말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다.

『입원을 해야지.』

하고 명규는 대님을 치면서 금봉을 본다.

『어디 입원할……』

하다가 금보은 집 사람들 들을 것을 꺼려서 돈 없단 말은 아니하고,

『집에서 낳지요. 저이가 받아 주시니까.』

하고, 남편이 자기가 집을 떠난 지가 이백 팔십 일하고도 사십여 일이나 더 지난 줄을 아니 모르나 하고 눈을 감았다. 원체 자상할 줄을 모르는 남편이라 그런 것은 모를 것도 같고, 또 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갖은 꿍꿍이를 다 하는 것을 보면 다 아는 것도 같았다. 아직까지는 자기가 집 떠난 날짜를 꼽아 보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무슨 기회로 그것을 꼽아 볼 생각이 나면 어떡하나 하였다.

그러나 배 아픔이 점점 재쳐서 오 분의 진통의 간격이 삼분으로 이 분으로 몰아칠 때에는 오직 천지가 암혹하여지는 듯한 아픔뿐이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이런 아픔도 또 있나?>

금봉은 진통과 진통과 사이에 잠간 빤한동안에 이런 생각을 한다.

『어서 죽여 주어요!』

실로 죽기보다도 더 아픔이었다.

깜박깜박 저인을 잃었다가 정신이 들어서 눈을 떠보면 남편이 눈을 뒤룩뒤룩하고 제 손을 꼭 붙들고 앉았는 jt을 금봉은 보았다. 남편의 눈에는 분명히 동정과 불안이 있었다. 그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맺혔다.

<아아, 미안해라. 이번에 살아만 나면 정숙한 아내가 되어 드리리라.>

하고 금봉은 기운 없는 손으로 남편의 손을 쥐어다. 금봉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아서, 왜 울어? 잠긴만 참어, 심 의사 불렀어.』

하고 명규는 그 커다란 손으로 금봉의 눈물을 씻었다.

다시 진통이 온다. 잠간 늦추었닥 오는 진통은 더욱 la하였다. 마치 몸이 캄캄한 허공중에서 천길 만길 떨어지는 듯하다가는 또 환한 빛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둥실 두일 떠오르는 거도 같았다. 그러다가는 아뜩 의식을 잃어 버리고, 그러다가는 씻은 듯 부신 듯 눈이 번쩍 띄었다. 그래서 눈을 떠보면 남편과 산파가 마치 한 천년만에 서로 만나는 사람 모양으로 눈앞에 나섰다.

<사람이 나고 죽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그동안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몇 천년이 지났느지 알 수 없었다. 한번 진통을 겪는 h안에 하늘과 땅이 몇 번을 번복하는 것 같았다. 또 제 몸이 몇 천 마리 먼 허공길을 날아 건너 딴 세상에 내려 앉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눈을 떠보면 이마에 땀을 흘리고 눈을 뒤룩거리고 앉았는 남편이 있었다.

<한 생명이 나오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하고 금봉은 생명의 신비를 느꼈다.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온통 갈갈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고 구만리 허공을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못 내려 올 듯이 몸이 부살같이 날아 올라가는 것을 느끼는 마지막 진통이 왔다.

『힘을 써요! 힘을 써요!』

하는 소리가 어디서 모기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금봉은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것같이 생각이였다. 그리고는 오직 환한 빛의 세계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마치 인생의 힘드는 일을 다 마치고 하늘에 울라 버린 모양으로,

『으아! 으아!』

하는 처음 듣는 소리에 금봉은 하늘로부터 세상으로 내려 왔다. 눈을 번쩍 뜨니, 남편이 있고 심 의사가 있고 산파가 있었다.

『따님입니다.』

하고 산파가 웃으면서 금봉에게 보고하였다.

「따님」이란 말이 금봉에게 본능적으로 섭섭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또, 내 팔자와 같은 생명이면 어떡허나, 더구나 정당치 아니한 향락의 씨!>

하고 금봉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는 의사도 제 맥을 보고 남편은 대단히 근심하는 눈으로 씨근씨근하고 앉았었다.

『정신 차려!』

하는 남편의 굵다람 녹 소리가 들렸다.

금봉이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의사는 잡았던 금봉의 팔목을 놓으며,

『괜찮으십니다. 산후에 흔히 이렇게 뇌빈혈이 오지요. 아무 염려 없습니 다.』

하였다.

산파는 갓난이를 싸서 안아다가 금봉의 옆에 누이며, 자 애기 보셔요 『 , . 어쩌면 이렇게 잘 나고 크셔요. 이머리 보셔요. 삼칠 일은 lsks 애기 같아. 어쩌면 어머니께서 미인이시니깐 이 애기는 더 미인 될 걸 뭐, 그렇지?』

하고 어린애를 또닥또닥하는 시늉을 한다.

<미인! 저주받을 미인!>

하고 금봉은 보기가 무시무시하면서도 곁에 누운 새 생명을 본다.

<누구를 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치 철편으로 둥덜미를 얻어 맞은 것같이 아팠다.

<빨간 핏덩이다.>

하고 금봉은 고개를 좀 들여다 보다가 그만두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김광진과 같은 이마가 보이면 어쩌나, 심 상태와 같은 눈 모습이 보이면 어쩌나, 하고 금봉은 영원히 어린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기나긴 겨울 밤이 다 지나고 처마끝에서 참새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의사도 가고, 산파도 아침에 또 오마하고 가버렸다.

『좀 자!』

하고 명규는 금봉을 위로하였다. 어린애는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줄곧 울었다.

『어, 요년이 왜 이리 울어!』

하고 명규는 싱글벙글하고 볼 줄도 ahm고, 들을 줄도 모르는 어린애를 들여다 보면서 중얼거렸다.

자기는커녕 금봉의 신경은 갈수록 흥분하였다.

『내 잘 테니까 주무시우.』

하고 금봉은 진정으로 남편이 가엾어서 방그레 웃으며,

『감옥에서 가진 고생을 gkl다가 집이라구 나오니 이 꼴이구.』

『왜? 무슨 꼴이야? 이쁜 딸이 하나 odruTsmsep, 게서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

『이것이 귀여우우?』

『그럼, 귀엽지 않구? 나이 사십에 첫 자식인데 안 귀여워? 이제 아버지가 되었는데.』

하고 명규는 웃지도 아니하고 아주 정색으로 말한다.

『어서 가서 주무시우, 나도 자리다.』

하고 금봉은 더 말하기가 마음이 괴로워서 눈을 가모자는 체하였다.

『어서자, 난 자는 걸 보고야 갈 테야.』

하고 명규는 이제 겨우 울음을 그치고 자는 어린애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었다.

명규는 어떤 날 금봉을 보고,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꼬?』

하고 물었다.

『아무렇게나 지으시구려.』

하고 금봉은 어린애를 젖을 빨리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제 항렬은 칙할 선잔데, 계집애도 항렬을 다나 원? 안 달아도 상관 없지만.』

하고 명규는 금봉의 대답을 기다린다.

『항렬이나마나 착ㄹㄴ선자면 좋구려.』

『어미도 악하고 아비도악하니까 학할 선자가 당하지는 않지마는.』

『악하기는 왜? 세상에 어디 학한 사람 있나? 다 그렇구 그렇지.』

『당신은 착하신지 모르겠소마는, 나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악한 계집이외다. 아가, 넌 왜 착한 어미를 못 만나고나 같은 악한 어미를 만났니? 하고 많은 어미 아비, 하고 많은 집에 이런 데를 왜 태어났니?』

하고 금봉은 벌써 애틋한 정이 든 어린 자식을 흔들며 울고 싶었다.

『원 쓸데 없는 소리를 다하징. 어린애 이름이나 지으라니께.』

하고 명규는 못마땅한 듯이 혀를 챈다.

하고 명규는 못마땅한 듯이 혀를 챈다.

『나는 내 마음에 괴로워서 그래요.』

하고 금봉은 또 눈물을 흘린다.

『또 운다. 울면 몸도 안 추서고 젖도 안 난다고 안 그래 의사가? 글쎄 울기는 왜 밤낮 울어? 집안 경사가 났는데 울기는 왜 울어, 방정맞게. 마음이 괴로울 건 무어야? 나 원 괘니시리.』

『경사가 무슨 경사요?』

『자식이나, 변변치 못한 남편이라두 남편이 감옥살이를 하다가 죽지 않고 돌아 와, 그만하면 경사지 무에야?』

『난 내가 이것을 뱃속에 둔 대로 죽어 버렸더면 경살 뻔했소. 내가 왜 안 죽고 살았어? 하도 죄가 많아서 그 죄값을 다하기 전에는 죽지도 말라는가 보아.』

하고 금봉은 더욱 느꺼서 운다.

『원, 별 요사스러운 소리를 다 하네. 전에는 안 그러더니 왜 저 모양일까.』

하고 명규는 대단히 못마땅하여 일어나 나가 버린다.

남편이 친절히 하면 친절히 할수록, 어린애를 구애하면 귀애할수록 금봉은 괴로웠다. 차라리 남편이,

『이년! 이 죽일 년, 서방질한 년!』

하고 발길로 차주었으면, 종로 네거리로 머리채를 끌고 돌려 주었으면 그것이 도리어 더 편할 듯하였다.

『곧을 정자 정선이라구 지을까?』

하고 명규는 또 어린애 이름 짓는 문제를 가지고 금봉의 방으로 들어 왔다.

금봉은 마침 어린애 똥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명규는 그 기저귀를 집어서 노란 똥을 유심히 보더니,

『똥빛이 좋구먼.』

하고 밖으로 내어 놓으며,

『앗다 애기 똥기저귀 빨아라!』

하였다.

『졀 참견을 다 하시우.』

하고 금봉은 웃었다.

『곧을 정자가 어때? 여자란 정조가 제일이니께.』

하고 명규는 노란 똥귀저기를 본 것이 유쾌하였다.

『정조는 여자에게만 제일이구 남자에게 제 몇이오?』

하고 금봉은 아무쪼록 남편의 홍을 깨또리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정렬 부인이란 말이 있지, 정렬 장부란 말 어디 있나? 남자면 충신이나 영웅이구 여자면 양모 현처, 열녀 그렇지.』

하고 명규는 금봉이가 유쾌한 것을 보고 더욱 유쾌하여진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하고 또 금봉의 낯은 흐린다.정자나 선자나 다 제 가슴을 찌르는 글자이지 마는, 제발 어린 딸만은 정하고 선하기를 바라고 싶었다. 선자가 남편의 집 항렬이든지 말든지.

『정선이, 손정선이, 부르기 좋은데, 정선아, 손정선씨. 손데 이젠상-- 일본말로도 부르기 좋은데, 그래 정선이라고 짓고 출생 신고를 해야지』

하고 명규는 퍽 기뻐한다.

『흥, 어머니는 뉘 이름으로 허우?』

하고 금봉은 문득 불쾌해진다.

『뉘 아름이라니?』

하고 명규는 다 알면서도 뚱딴지를 부린다.

『첩년의 속에서 나왔으니 어떡허느냐 말요?』

하고 금봉의 말소리에는 칼이 있었다.

『원, 딴 소리.』

하기는하나 명규는 할 대답이 없었다.

『무엇이 딴소리야? 이혼했노라고 나를 속여 데려 오고는 무엇이 딴소리란 말요?』

『원, 그것이 며칠 살겠길래 그래?』

『난 남 죽기 바라고 싶지는 않소. 내가 그렇지 않아도 죄가 많은 년이 첩으로 들어 왔으면, 아로 들어 왔거나 속아서 들어 왔거나 국으로 있지, 본마누라, 본마누란가 왜 큰마누란가, 큰마님이시지---큰마님인가 아씬가 남 죽기를 바라요? 난 싫어요. 싫어요! 이 어린애는 당신 부인이 낳으신 것으로 민적에 넝기도 싫고 또 당신 자식으로 민적에 넣기도 싫으니 내 사생 녀로 민적에 넣어 주어요. 서명두 손 정선이라구 말구 이 정선으루. 왜 손 간 가 무어? 내가 낳았으니깐 이가지.』

하고 금봉은 또 울기를 시작하였다.

금봉은 애초부터 명규에게,

『이것은 당신의 씨가 아니오.』

하고 말을 분명히 일러 주려고 하였다. 이번에 남편이 방에 들어오면 그 말을 하리라 하리라 하고 결심은 하건마는, 차마 그 말이 아니 나와서 지금까지도 못하였다. 첫 번에 남편이 어린애 이름 지을 문제를 내일 때에는 이번에야말로 똑바로 말하리라 하고 결심하였으나, 남편이 어린애를 귀애하는 것을 보고는 차마 그런 말이 아니 나와서 못하고 이번에도 단단히 마음을 먹었건마는, 여태 두 번 밖에는 말을 못하였다. 만일 정선을 제사생자로만 입적을 시키먼 얼마쯤은 마음이 가뿐할 것도 같아서 죽을 기를 쓰고 이 문제를 끄집어 내인 것이었다.

그러나 명규는,

『괜히 말 같지 않은 소리만 하는군.』

하고 정선을 자기의 장녀로 입적을 시켰다.

금봉은 의외에 일찍 몸이 추서서 어린애가 백날을 바라볼 때에는 거의 전 모습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어린애를 배기 전보다 세 살은 더 먹은 것같이 노성한 태가 생기고, 언어 동작까지도 눈에 뜨이게 노성하여졌다. 어머니 본능이 눈뜬 것이어니와, 아이 난 뒤로 계속해 은 깨끗한 슬픔의 생활이 그의 몸에 종교적인 빛을 더한 것이었다.

『또 누구를 보자기를 씌었누?』

하고 금봉은 남편이 오늘 호기를 부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웠다.

『우리 이제는 굶으나 먹으나 똑바르게 삽시다.』

하는 금봉의 말도 명규에게는 별로 힘있는 인상을 주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명규는 자고 나면 세수도 하기를 잊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눈을 감았다 떴다, 마치 점치는 장님, 모양을 하였다. 그럴 때에 금봉이가,

『무슨 생각하시우.』

하고 물으면, 명규는 귀찮다는 듯이 양미간을 찡그리며,

『일한 생각허지.』

하고는 또 눈을 감고 몸을 흔들흔들 흔들었다.

『거, 무얼, 그리 궁상을 떠우? 똑바른 길로 살아 나가는 무슨 궁리가 그 리 많수? 그 경칠 협잡할 궁리 좀 말아요.kscks 가게라도 하나 내고, 담배 가게라도 하나 내고 정직하게 살아 갈 생각이나 해요. 난 그 협잡으로 벌어 들인 밥은 구역질히 나서 못 먹어요. 감옥살이까지 했으면 그만이지 무엇이 부족해서 아직도 협잡할 생각을 꾸미고 있수? 하난ㅁ이 무섭지 않수?』

하고 금봉은 화를 내어 방안에 놓은 것을 이리저리 집어 던진다.

『글세 왜 이래 꽤니시리』

라고 명규도 마주화를 내어 금봉을 한번 노려 보고는,

『하나님 다 늙어 돌아가시구 벌써 소상 대상 다 치뤘어.』

하고는 제 재담이 잘된 것을 만족히 여겨서 씩 웃는 것이었다.

『상해에다가 사업을 벌인다.』

하고 금봉은 상해란 말이 퍽 좋았다. 이 조선에서 가슴 졸이고 있는 것보다는 상해로가는 것이 어떻게 좋을지 몰랐다.

그러면 오늘 결심을 중지할까 하고 금봉은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늘 결심이란 것은 손님이 다 모인 자리에서, 김광진이랑 심 상태랑 다 모인 자리에서 금봉은 자기의 가슴속에 묻었던 비밀을 다 말하고 정선이가 손명규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다 선언해 버리고 자기는 집을 뛰어 나와 오빠인현의 말대로 수녀가 되든지 여승이 되든지 또는 간호부가 되든지 하여 이 부자연하고 부도덕하고 불쾌한 생활을 청삲 버리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 선언으로 손명규와 김광진과 심 상태와 및 이러한 거짓의 껍데기를 씌우고 탐욕의 껍데기를 씌운 무리의 가면을 벗겨 보리란 것이었다.

이것은 정선의 백날을 차린다는 것이 작정됭이래로 줄곧 생각해 오던 문제였다.

회칠한 무덤 「 」, 「양의 껍데기를 쓴 이리」---금봉은 짧은 인생에나마 접해 본 사람은 다 그러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참」이것을 어디서 보았나? 「옳음」이란 것이 어디 있던가. 사람들은 돈과 음욕과 시기와 중상과 음모와 이것으로 일생을 살지 아니하는가. 남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금봉이 자신이 오늘R지 걸어 온 길로 rrjt이 아닌가. 왜 금봉은 명규헌테 시집을 갔나? 돈 때문에 아닌가. 왜 명규를 싫어하게 되었나? 역시 돈 때문이 아닌가. 왜 금봉은 아비 모를 자식을 낳았나? 음욕 때문이 아닌가. 명규의 정성 에 움직였다둥, 그 사랑에 감복하였다는둥, 명규를 깨끗한 생활로 인도하려 함이라는둥, 이런 것은 모두 다 거짓의 껍데기가 아니었던가.

<흠, 무엇하자는 거짓의 껍데기야?>

하고 금봉은 혼자서 제가 썼던 거짓의 껍데기를 차버리려 하였다.

<제가 심은 씨는 제가 거둔다!>

금봉은 벌써 제가 심은 씨를 거둘 때가 된 것을 느꼈다. 저만 아니라, 손명규나 김광진이나 심상태나 기타 누구나 다 저희들이 심은 씨를 저희들이 거두고야 말하고 시치미를 뗀다.

『계집애나 버려 주고 협잡이나 해야 신이 나시는구려.』

하고 금봉은 불쾌한 듯이 눈을 흘긴다.

『다 괜한 소리야. 내가 미우니께 모두들 그런 소리를 지어 내지. 내 마음에야 당신 밖에 있었나?』

『고맙소이다. 황송하외다.』

하고 금봉은 이어 없는 듯이 웃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영절스럽게 뚝 잡아 떼우? 허긴 그만이나 하길래 협잡군 이라지.』

하고 빈정대었다.

『어떤 놈이 나를 협잡군이래! 그놈을 붙잡으면 gutqkekr을 빼어 줄 테니!』

하고 명규는 분개하는 양을 보인다.

『그건 안될걸. 당신더러 협잡군이라는 사람의 혀를 다 뽑으려 들면 당신 이 천 년은 살아야 되리다. 후후후후.』

하고 금봉은 소리를 내어서 웃는다.

명규는 금봉의 말 뜻을 잘못 알아 듣는 듯이 물끄러미 금봉의 웃는 양을 바라보고 있더니 문득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이어서 싱그레 웃으면서,

『날더러 남의 계집애를 버려 주느니, 협잡을 하느니 하는 것은 마치 금봉이더러 서방질을 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단 말야.』

하고 제 말에 매우 만족해서 껄껄대고 웃는다.

명규는 금봉이만은 절대로 정조를 깨뜨리는 일이 없을 것을 굳게 믿었다.

그것은 금봉이가 도무지 만만히 떨어지지 않던 제 경험으로 보아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명규의 말은 천근 되는 몽뚱이가 되어 금봉의 정수리를 내려 갈겼다 금봉은 아뜩하는 .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 용기가 없어서 정선을 안고 둥개둥개를 하며 마루로 나가 버렸다.

어두운 비밀을 가슴에 감추고 살아가기가 어떻게 못할 일임을 금봉은 아프게 느꼈다. 하루바삐 이 비밀을 나면의 앞에 툭 털어 버리고 매를 맞거나 칼을 맞거나 쫓겨나거나 하여 받을 거을 받아 버리지 아니하고는 못견딜 것 같았다.

정선의 백날이라고 명규는 집에서 떡을 하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만드는 이외에 요리집에서 음식을 가져오고 손님을 청하였다. 이것은 다만 딸의 백 날을 축하하는 것뿐 아니라, 또 옥에 다녀 나온 후로 한 백날 지났으니 세상에 대한 창피함도 좀 가시어서 다시 세상에 참네하려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되고, 겸하여 김광진이라든지 심상태라든지 자기가 특별한 호의를 받은 사람에게 대한 사례의 뜻도 겸하고, 또 손명규는 아직도 못 살게 되지는 아니하고 이러한 기구가 있다 하는 것을 보이자는 뜻도 있었다.

『오늘 술 따를 계집애 몇 개 부를 테야.』

하고 명규는 금봉에게 동의를 청하였다.

『술 따를 게집애를 어디서 불러 오우?』

『기생 말야. 기생을 술 따를 계집애라고 하지.』

『마음대로 하시구려. 그렇게 돈이 있수?』

『그럼 돈 없어? 내가 누군데.』

하고 명규싱그레 웃고 뽐내었다.

『거, 장하시구려. 돈이 어디서 났수?』

하고 금봉은 빈정대는 태도였다.

『좋은 일이 하나 생겼어, 상해에다가 무슨 사업을 하나 벌이게 되었는 데, 조선 물산 갖다 팔고 중국 물산 조선으로 사 보내고 가만 있어 그 말은 천천히 하고 저 광대 하나 부를까. 박춘재 불러서 재담이나 들을까. 무당 소리도 듣고 그 왜 제석풀이 안 있어? 당신 좋아하지?』

『아무려나 하시구려, 그렇게 돈이 많거든.』

하고 금봉은 여전히 뾰로통한 것은 풀지 아니하였다.

손 명규 집 사랑에서는 기생의 소리와 취한 손님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김광진은 . 귀족답게, 심 상태는 신 귀족답게, 다른 손님들도 다 각각 제 문벌과 제 지위를 대단히 높은 것으로 보아서 다들 체면을 차렸으나, 차차 술이 취해 감을 따라서 말이 어룰해지고 체면이 비틀거리기를 시작하여 기생을 껴안고 점잖지 못한 모양을 하는 이도 생기고, 이놈아, 저 놈아 하고 말도 차차 상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글세 이 옴두꺼비같이 생긴 놈이 어떻게 그런 미인을 후려 내었느냐 말이야.』

하고 어는 금융 조합 이사라는 사람이 손명규의 등을 두드리매,

『이놈. 내가 네 애비다. 그 양반은 네 어머니시구.』

하고 손명규가 제법 대꾸를 하였다.

『이놈아, 양, 우리 며느리- 네 처이리 나오래라. 손녀 안고 이리 나오래. 시아버니께 나붓이 절을 해야 안 하느냐. 어, 이거 남 흉보겠다. 이놈아. 얘.』

하고 ○○ 사랑이라는 고리 대금하는 조합의 사장이 말을 가로챈다.

『허, 이런 변이 있나?』

하고 처음에 손명규를 아들이라 하고 며느리라고 부른 금융 조합 이사가 심상태를 바라보며,

『여보시오 영감, 허 이런 변이 있소? 백주에 이놈이 내 아들 며느리를 제 것이라고 하니 이런 변이 있소? 이건 무에란 말인가. 소유권 확인 소송을 해야 하난 말인가. 여보시오 심 변호사 영감, 우선 사건 감정을 좀 해줍시오, 자, 감정비론.』

하고 술잔을 상태에게 준다.

『아마, 저 박 외사가 이 사건에는 중요하겠는걸요.』

하고 웃는다.

『왜, 혈액 감정을 하게?』

하고 금융 조합 이사가 아는 체한다.

『그렇지요. 혈액 감정을 해야지요.』

하고 심 변호사는 직업적인 권위를 보인다.

『아니 그럼, 피를 뽑아야 하게. 따끔하겠는걸.』

하고 ○○사장이라는 사람이 당장 피를 뽑기나 할 거처럼 팔을 내어 민다.

『허, 버르장 없는 것들 같으니!』

하고 손명규가 기생을 시켜 술을 들려치게 한다.

『그거 피를 뽑을 것까지 없지요. 낳으신 어머니는 아실 테니까.』

하고 김광진이가 한 마디를 던진다.

『어, 참 그 말씀이 옳으시오.』

하고 사람들은 모두 웃어 버렸다. 이러는 판에 금봉이가 산뜻한 모시 치마 적삼에 하얀 양말을 신고 흰 하부다이 처네에 정선을 싸서 안고 나왔다.

사람들은 다 이 젊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여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대개는 와이셔츠까지 벗어 붙이고 있었다. 김광진이만이 얼른 양복 저고리를 주워입었다.

『어, 우리 딸 나왔나? 이리 주어.』

하고 명규가 금봉이 곁으로 가며 팔을 내어 밀었다.

『아스세요.』

하고 금봉은 어린애를 남편에게 주지 아니하였다. 명규는 무료하여,

『자, 다들 앉아요.

하고 제가 먼저 술상 앞에 펄석 앉았다. 다들 앉았다.

『유도는 넉넉하신가요? 아직 좀 수척사신 것 같으십니다.』

하고 심상태가 친숙한 듯이 먼저 금봉에게 말을 붙인다. 금봉은 약간 고개만 숙일 따름이요, 대답이 없었다.

금봉은 빨갛게 상기되었던 얼구이 차차 해쑥해지고 현기가 나느지 몸이 두어 번 흔들렸다.

금봉은 이 방에 들어설 때에 번쩍 눈에 뜨인 것은 김광진의 얼굴임을 직각아혔다.

금봉은,

『없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자식입니다.』

하고 정선을 광진에게 안겨 주고, 남편더러는,

『미안하지마는 정선은 당신의 기출이 아니외다.』

하고 선언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우리 딸 나오나 하고 명규가 어린애를 받으려 할 때에 금봉은 아Er함을 깨달은 것이다.

금봉은 몸이 한편으로 쏠리며 어린애를 떨어뜨리려 하였다. 곁에 앉았던 광진이가 얼른 한 팔로 어린애를 받고 한팔로 금봉의 허리를 붙들었다.

『현기가 나시는 모양이로군.』

하고 광진은 그제야 일어나는 듯 audr에게 금봉을 맡기고 어린애를 제가 아는 채로 안마당으로 들어 가다가 하인에게 주었다.

술 먹던 사람드른 파흥이 되어서 서로 바라만 보고 앉았다.

『어, 내가 갈 시간이 지났는걸.』

하고 맨 먼저 일어난 것은 김광진이었다.

『같이 가세. 주인이나 니오거든 같이 가.』

하고 붙드는 것도 듣지 아니하고 김광진은 명규의 집에서 나왔다.

광진은 사동 골목을 안국동 쪽으로 향하고 걸어 올라오면서 생각하였다 --- 금봉이가 문을 열고 <들어 들어오는 길로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낸 데. 내 눈과 마주칠 때에 금봉의 눈이 어떻게 그렇게 날카로왔을까. 날카롭기보다는 마치, 오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하는 눈이었을까. 그리고 그 어린애를 받아 안을 때에 내 가슴의 설렘. 그 어린애는 내 자식이다. 하는 직감! 허 이상도 한 일이로군.>

김광진은 자식이 없었다. 본처는 소박으로 서양 다녀온 후로 한번도 방을 같이 한 일이 없고 서앙 여자 하나를 데리고 왔던 것도 일 년 동안 살다가 울고 상해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본처는 왜 l론을 안 하느냐하면, 그것은 양반의 체면이라는 것을 앞세우는 가풍 때문이요. 첩장가를 왜 안 드느냐 하면 그것은 영국식 신사도에 어그러진다는 이유로서였다. 그는 도리어 특별히 아내나 첩이라고 이름 지어 놓지 아니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하루 이를 희롱하는 데 재미와 자유를 느꼈다.

금봉에게 대한 것도 그것이었다. 그에게는 사랑이란 일종의 유홍이었다.

그러나 만일 금봉이가 낳은 어린애가 제 자식이라 하면, 여기는 심상치 아니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거 모른 체하면 그만이지. 나중에 금봉의 입으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나는 모른다 하면 그만이지.>

광진은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마는 「내 자식」,「아비와 딸, 그리하고 딸의 어미」, 이러한 관계는 도저히 인력으로 끊어 버릴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비의 본능이라고 할까. 평소에 인생이란 것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 는 것으로 알고, 호의호식에, 있는 술먹고, 생기는 계집 희롱하고, 힘들지 않게, 병도 없이, 걱정도 없어, 애쓰는 일도 없이, 의심나는 일도 없이 순탄하게 공원에 산보하는 모양으로 일생을 살아 가던 광진에게도 정선이라는 조그마한 생명의 존재는 마치 간장이나 쓸개 주머니에 맺힌 돌 모양으로 가끔가다가 뜨끔하고 견디기 얼운 아픔을 주었다.

<남의 아내의 속에서 나온 내 딸.>

이라는 생각은 광진에게 일종의 모욕감을 주었다.

서양의 문학을 읽는 광진은 운명이란 말을 생각하였다. 만일 정선이라는 어린애가 진실로 제 씨라고 하면 그것은 무서운 운명의 작희였다. 그 아이는 일생에 아비 아닌 사람을 아비락 부르고 정말 아비를 같은 장안에 두고 도 아비인 줄 모르고 일생을 갈 것인가. 제 딸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아비로다 못할 것인가. 만일 이 어린애가 낳은 것이 운명의 작희라 하면, 이것은 앞의 몇 막의 희비극의 서막인 것도 같았다. 손명규-- 이 금봉--김광진--정선--이렇게 생각하면 그 속에는 반드시 무슨 운명이 꾸며 놓은 무대에 출연할 배우인 것만 같아서 광진은 무슨 검은 손이 뒤통수를 내려 누르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서 몸에 소름이 끼쳤다.

광진은 안동 네거리를 지나서 재동을 향하고 걸음을 빨리 걸었다. 이 불쾌한 생각을 떨어 버릴 양으로 고개를 흔들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까 우연히 팔에 안았던 그 어린애가 골목이 어두울수록 더 눈에 밟였다.

광진의 머리 속에는,

<sin-punishment-Curse-Catastrophe (벌, 죄, 저주, 파멸)>

이러한 영어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가.>

하고 광진은 단장을 내어 두르며 혼자 중얼거렸다.

정선의 백날에 선언의 목적을 달하지 못한 금봉은 「이대로 가보자」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였다.

금봉의 무겁고 흐린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정선의 웃음과 또 동생은봉이가 금봉의 집에 와 있게 된 것이었다. 정선은 제 운명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모락모락 자랐다. 방긋방긋 웃기도 하고 팔다리도 바둥거리고 주덕도 빨았다.

『아이, 요것이 낯을 가리네.』

『요것이 엄마를 알아 보네.』

『글세 이것 보아요. 젖을 찾노라고 가슴으로 파고 들어 가니.』

하고 금봉은 솟아 오르는 어미의 사랑에 만사를 잊는 순간이 있었다.

은봉은 조카를 사랑하여 업어도 주고 안아도 주었다.

처음에는 한번 두 번 놀러 다니던 것이 집에서 계모의 눈총, 아버지의 밤낮 찌푸린 상 밖에 없는 지옥 같은 집에 있기보다 정든 형의 집에서 갓난이 동무를 하여 주는 것이 유쾌하였다. 그래서 아주 금봉의 집에 와 있게 된 것이었다.

명규가 밖에서 들어 올 때면,

『정선아!』

하고 한번 부르고, 그러고는 대문 안이나 중문 안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애기 아무 일 없나!』

하고 묻고 그리하고는, 대청에 올라 서기 전에 가만히 창으로 방을 엿보아서 정선이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야 퉁퉁거리고 들어오지. 만일 정선이가 자는 것을 보면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다.

『오늘은 똥 몇 번 누었어?』

하고 묻고, 노란 똥을 한번만 누었다고 하면 벙글벙글 웃었다. 그리고는 정 선을 안고,

『오줌 싸라, 오줌 싸라. 아빠 옷에 오줌 싸.』

하다가 정말 오줌을 싸면 좋아라고 웃었다.

금봉은 명규가 이렇게 정선을 귀여워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회로애락간에 도무지 감정을 발표하지 아니하는 남편이 정선을 위하여 서는 차마 볼 수 없으리만큼 슬픔과 기쁨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는 남편에게서 기쁨을 빼앗을 용기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인연이지요. 전생 인연으로 금생에 사랑도 되고 원수도 되는 것이지요.』

하는 동냥 온 승의 말을 듣고 금봉은,

<이것도 다 인연이라는 것인가.>

하여 적이 안심을 얻었다.

하루는 명규가 대단히 기쁜 모양으로 싱글벙글하고 들어 왔다. 금봉은.

『무슨 좋은 일이 있소?』

하고 물었다.

명규는 양복 속 호주머니에서.

『이것 보아.』

하고 봉투 하나를 내어 놓았다.

『그것 무엇이오?』

『글세 보아!』

하고 명규는 봉투 속의 종이를 꺼내어서 금봉의 앞에 펴놓았다. 그것은 명규의 호적등본이었다. 금봉은 놀랐다. 거기는 분명히 처에 이 금봉이라고 쓰이고 또 장녀에 정선, 부에 손명규, 모에 이 금봉이라고 쓰고, 한 달 전에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금봉은 가슴이 울렁거리도록 기뻤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내가 남이 죽은 것을 기뻐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양심이 괴로웠다. 그러나 기뻤다. 비록 원만한 기쁨은 못되더라도 역시 기뻤다.

「첩이 아니다」하는 생각은 여자에게능 여간 큰 자존심이 아니었다.

그까짓 호적면에야 「 」하는 것은 할 수 없어서 하는 어색한 버팀이었다.

그렇지만 금봉은 슬픈 모양을 보이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을 느끼고, 기쁨을 아주 감추어 버리고,

『그이는 어떻게 되셨소?』

하고 남편에게 물을 필요를 느꼈다.

『죽었어.』

하고 명규는 만족한 듯이 대답하였다.

『언제 돌아 가셨소?』

『두어 달 되었어.』

『아이 가엾으셔라!』

하고 금봉은 연전에 효자동 집에서 끙끙 앓으며,

『손 선생 믿지 말아.』

하던 해골만 남은 「사모님」을 생각하였다.

<그이야 어차피 죽을 사람이지.>

하고 금봉은 불쌍한 사모님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역지사지하면 그가 얼마나 금봉을 원망하고 명규를 원망하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금봉은 머리가 쭈볏거렸다.

『그래 장례에 가보셨소?』

하고 금봉은 물었다.

『아니.』

하고 명규는 대답하고 고개를 숙인다.

『어쩌면 장례에를 안 가우? 당신이 상젠데.』

하고 금봉은 담대하게 말하였다.

명규는 한참이나 안 가보았노라고 버티다가 마침내 갔단 말을 자백하였다.

『가구서 왜 속이우?』

하고 금봉은 울고 싶도록 불쾌하였다.

『죽었다는데 안 가볼 수가 있어야지.』

하고 명규는 큰 죄나 지은 듯이 변명하였다.

『누가 가 본 것이 잘못이래? 가고도 안 갔다고 속이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지. 그래 부인이 돌아가셨는데 안 가? 가서 눈도 감겨 드리고, 굴건 제복하고 상제 노릇을 해야지.』

『아니. 제목은 안 입었다.』

이것도 명규의 거짓말이었다. 명규는 처가에서 해준 제복을 입고 상여 뒤를 따랐다 죽은 아내에게. 대한 미안한 마음이 북받쳐서 하관할 때에 눈물도 흘렸다.

『그래 언제 그이가 돌아가셨단 말요?』

하고 금봉은 심문하는 재판관이었다.

『벌써 오랬어, 벌써 졸곡도 지났어.』

하고 명규는 괜히 불집을 일으켰다 하는 듯이 눈을 뒤룩거렸다.

『졸곡에도 갔다 왔소?』

『아니.』

『졸곡을 친정에서 지내나. 당신 집에서 지내야지. 졸곡이 언제요? 집에서 지내게.』

하고 금봉의 얼굴은 푸르락 누르락하였다.

『원 별 소리를 다 하는군.』

하고 명규는 몸을 떨었다.

『어깨 별소리요? 어째 별소리야?』

하고 금봉은 어린애 기저귀로 상앗대질을 하며 남편에게 대들더니, 방바닥에 놓인 호적 등본을 집어서 가리가리 찢어서 명규의 상판대기에 던지며,

『이건 다 무에야? 누가 혼인 신고 하랬어? 전처 졸곡 전에 혼인 신고한ㄴ 법이 어디 있어? 또 내 허락도 없이 혼인 신고는 왜 해? 내가 왜 당신의 아내야? 내가 변호사헌테 가서 그놈의 혼인 신고 정정해 달라고 그럴걸.』

하고 금봉 발악을 하였다.

『허, 이건 생트집을 잡네.』

하고 명규는 일어나 나가 버렸다.

그날 밤 금봉은 무서운 꿈을 꾸었다.

어딘지 모르나 금봉과 명규가 한자리에 누웠는데 죽은 손 명규의 처가 문 여는 소리도 없이 쓰윽 방에 들어섰다. 그 모양은 효자동 집에서 앓은 때 모양이었다. 머리는 흘어지고 몸에는 때가 끼고 그리고 치마 대신 때뭄는 처네를 두르고, 그리고는 심히 슬픈 표정으로 금봉을 굽어 보면서,

『금봉이, 금봉이.』

하고 불렀다.

『아이, 사모님! 돌아 가신 사모님이 왜 오셨어요?』

하고 금봉은 일어나 몸을 피하려 하였으나 몸을 꼼짝할 수가 없고, 남편이 도와 주기를 기다리나 남편은 눈만 뒤룩거리고 있었다.

『금봉이, 그런 법이 없어. 그런 법이 없어.』

하고 사모님은 그 손톱이 긴 손으로 금봉의 몸을 할퀴기나 하려는 것처럼 어름어름하는 것을 보고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게 깨었다.

『이거 봐. 왜 그래? 정신 차려!』

하고 남편이 금봉의 몸을 흔들었다.

금봉은 정신이 든 뒤에도 얼마 동안은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왜 그래? 가위 눌렸어?』

하고 남편은 전기를 켰다.

방안이 환해진 뒤에야 금봉의 눈앞에서 그 무서운 사모님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아이, 꿈자리고 약하다.』

하고 금봉은 남편을 등을 지고 돌아 누웠다.

어느 날 금봉은 옥에서 나온 임학재와 임숙희와 서정희를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할 때에 을 남과 그 오빠 형식과 또 조병걸과 강영자와 심상태와, 말하자면, 동경적 친구들을 다 청하였다. 그들은 모두 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에 저녁을 먹고나서 남자들은 남자들 따로 여자들은 여자들 따로 모여앉아서 한담을 할 때에 금봉이가 양심으로 고민하는 자백을 듣고 을남은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런 케케묵은 봉건적 인습적 도덕관은 다 집어 치워요. 첫째 정조라는 것이 남자들이 경제적 절대권을 가지고 여자를 노예화려고 만들어 놓은 질곡이란 말이야. 남녀간에 서로 마음 맞으면 같이 살고 싫어지면 헤어지고 그러는 것이지. 정조가 다 무슨 빌어 먹다 죽을 게야. 그야 우리가 인습에 젖었으니깐 이성간에 서로 만나고 떠날 때에 슬플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지. 어디 시원한 일만이야 있을 수 있나. 그렇지마는 그만 것은 부스럼이나 생채기와 같아서 세월이 악이어든. 얼마 지나면 다 잊어 버린단 말야. 미쳤다고 묵은 기억을 가지고 울고불고 해? 그것은 마치 몸에 때를 내 것이라고 아껴서 씻어 버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어든. 그러니깐 금봉의 마음을 꼭꼭 찌르는 가시도 때야 때. 묵은 때가 껴서 그런 것이니깐. 그때를 활활 비누질을 해서 닦아 버려요. 시원할테니. 며칠 살지 못할 세상에 쾌락이 w 이리지 양심의 가책이란 다 무엇이야.』

이런 말을 을남이가 할 때에 강영자는.

『원. 언니두 말두 잘 두 허우. 어쩌면 그렇게 청산 유수야.』

하고 웃었거니와. 금봉이도 을남의 이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가뿐하여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것두 말이라구 지껄이구 있니?』

하고 을남의 오빠 형식이가 곁에서 듣다가 을남을 노려본다.

『왜요? 난 이것도 오빠헌테 배운 것이라오.』

하고 을남은 빈정대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미친 오빠가 너헌테 그런 소리를 했어?』

하고 형식은 기막힌 웃음을 웃으며,

『내가 연애의 자유를 말하면 너는 연애란 아무런 놈허구나 마구 하는 자유로 알고, 내가 인습타파를 말하면 너는 좋은 일이구 궂은 일이구 옛 것이면 깡그리 집어 치우려 들구---어째 그 모양으로 극단으로만 달아나느냐?

네 말 같아서야 어디 세상에 법률이니 도덕이니 하나나 남겠니?』

『누가 그까짓 놈에게 남으래? 사내들이 저에게 편하도록만 만들어 놓은 걸. 오빠도 이제는 도루 구식이 다 되어 버렸구려?』

『아서라, 그런 생각을 하겠거든 혼자나 하고 있지.』 남 듣는 데서는 그런 소리 말어! 저러구두 남의 계집애들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해? 어서 사직 해라. 큰일 나겠다. 조선 다 망허구 말겠다. 그래 영자두 을남이 말해 찬성 야?』

하고 형식은 강영자를 바라본다.

『우리끼리---여자들끼리 말하는데 오빠는 왜 뛰어드시우?』

하고 강영자가 을남을 두호한다.

『그럼, 을남 언니 말이 옳지 뭐.』

하고 금봉이도 잠견을 하였다.

『크리스찬두 그런 소리를 해?』

하고 형식이가 금봉을 보고 웃는다.

『모두 오빠가 그렇게 지도하시구는.』

하고 금봉이가 형식에게 눈으 홀긴다.

『오라. 모두 형식이 책임야. 정말야.』

하고 상태도 이쪽으로 와 앉는다.

『허, 이게 내가 자살할 일 생겼군.』

하고 형식이가 웃는다.

숙희는 병걸만 바라보고 학재는 허공만 바라보고 가만히 앉았다.

마리아라는 서 정희는,

『나는 먼저 가요.』

하고 일어선다.

서 정희가 중문으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정희는 수녀 겉애.』

하고 을남이가 한숨을 쉬었다.

정희는 금봉에게는 알 수 없는 무슨 힘이었다. 정희를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도 아니지마는 정희를 대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는 먹고 입고 남녀가네 사랑하고, 이러한 것 밖에 무슨 거룩한 것이 있는 것만 같아서 저절로 합장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도 정희가 중문간으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볼 때에 금봉은 그러한 느낌을 얻었다. 그리고 정희의 가슴속 어느 한편 구석에는 분명 정희와 비슷한 금봉이가 싸늘하고 단정하고 경건한 얼굴로 무엇에 기도를 올리고 끓어 앉은 양이 보였다.

<임 학재씨도 정희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금봉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들어서 저편에 꼿꼿하게 앉았는 학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금봉은 제 속에 여러 금봉이가 있는 것을 생각하였다. 하나는 임학재를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정희 같은 금봉이, 하나는 김광진 같은 잘생긴 부자 귀족을 그리워하는 형영에 뜬금봉이, 또 하나는 심상태거나 누구거나 저를 따르는 남자면 누구하고나 하루 이틀 희롱을 해보자는 을남과 같은 금봉이, 그리고 돈 있고 저를 잘 위해 주는 어리석은 손명규 같은 남자를 따르려 하는 금봉이---이 수두룩한 금봉이가 제 속에 있 어서 때를 따라서 이런 금봉이도 나오고 저런 금봉이도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그림책에서 본 인도 신화의 몸은 하나에 머리 여럿 가진 배암이 생각 나서 몸에 소름이 끼쳤다

<사람은 전생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때어나서 업을 짓는 대로 닦는 대로 이런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저런 사람으로도 태어난다는데. 나는 아마 전생 여러 생에 정희같이도 태어나 보고 을남 언니같이도 태어나 보고 그랬던 가 봐.>

하고 금봉은 동냥 왔던 탑골 승방 노장의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금봉은 을남이랑 영자랑 숙희랑을 바라보며,

『난 암만 해도 정희 언니가 제일 바른 길을 걷는 것 같애. 도무지 모든 정욕을 다 떼고 세상을 멀리멀리 떠난 듯한 얼굴이 그렇게 좋아. 그리고 정희 언니를 보면 내 마음이 다 엄숙해져서. 암만 해도 정희 언니가 우리보다 높은 세상에 사는 것 같애. 글쎄 이게 무에요. 우리 산다는 게? 밤낮 돈이니 사랑이니 하고 도무지 추접스러운 것뿐이야. 그렇지 않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원, 별 소리를 다 하고 있네.』

하고 을남이 깜짝 놀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원 나중엔 별 청승을 다 안떨까?』

하고 웃어 버린다.

학재가 금봉이 말을 듣고 놀라운 듯이 금봉이 쪽을 바라본다.

숙희의 차례로구나 하고, 쟤는 동경서 학교에 『 다닐 때도 곧잘 저런 소리를 했다우, 아주 기도도 열심히 했지. 그 침침한 기도실에 가서는 우리 오빠……』

하고 학재의 출옥하기를 빌던 말을 하려다가 손 명규를 힐끗 보고는 영자들 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삼키며, 혀를 뺀다.

『왜 개는 기도하던 패 아니던가?』

하고 을남이가 숙희를 놀려 먹는다.

『그럼, 나도 그때에야 기도도 하느라고 했지. 그래도 저 금봉 아가씨가 원체 열렬하게 신앙을 가지고 기도를 하나깐 나는 되려 식어졌다니깐.』

하고 숙희는 병걸을 바라본다. 마치.

『그게 다 너 때문에야.』

하는 듯하였다. 사실 그러하였다. 숙희도 병걸과 석왕사에서 깨끗하지 못한 쾌락에 빠지기까지는, 별로 신앙심은 깊지 못하였건마는 잘 때, 깰 때, 밥 먹을 때에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석왕사 사건 이래도 숙희는 몇 번 기도를 올려 보려고 했지마는, 고개도 숙여지지 아니하고 입도 벌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정조 문제에 있어서는 을남의 의견을 옳게 여겼다. 그러나 그 이 학재 닮은 유일한 점---한 곳으로만 나가는 점이, 그의 실천에 있어서는 언제까지든지 둘째 첩이나 셋째 첩으로라도 맹세코 조 병걸을 따르게 한 것이었다.

『숙희 언니나 내가 학교 시대에 먹었던 마음이 옳았지---지금은 타락이 고.』

하고 금봉은 우는 정선을 들고 벽을 향하고 돌아 앉아서 젖을 물렸다.

『저게 무슨 지랄이야? 어린애는 왜 때려.』

하고 명규는 주먹을 불끈 쥔다.

『무슨 상관이야. 내 자식 나 때리기로 무슨 상관야?』

하고 금봉은 더욱 뾰롱뾰롱한다.

『자식은 어미 자식만 돼? 아비 자식은 아니구?』

하고 명규는 항의한다.

『내 자식이야. 단신 자식은 아니야.』

하고 금봉은 홧김에 바른 말을 했다.

『그게 다 무슨 소리야? 계집년들이라는 게』

하고 또 명규는 여성 공격이다.

『알끝마다 계집년들이라지. 사내 녀석은 장하더라.』

하고 금봉이 빈정댄다.

『사내들이 어때?』

하고 명규는 애들 모양으로 대든다.

『오늘 우리 집에 왔던 사내들도 보아.』

하고 금봉은,

『심 상태라는 녀석도 남의 계집의 궁둥이만 따라다니고 주둥이에 발린 거짓말만 짤짤하지. 조병걸이란 것도 싱글벙글 싱글벙글. 허미중이 같은 것이 남의 계집이나 버려 주지. 을남 언니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숙희 언니도 석왕사에 끌고 가서 버려 주었지. 제 계집이 눈깔이 시퍼렇게 살았는 데 말야. 손명규란 작자는 여학교 선생임네 하고 제 딸 같은 어린 계집애들을 모조리---』

하는 금봉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명규가.

『에, 그 말 버릇 고약하다! 주둥아리 그렇게 놀리지 말어.』

하고 남편이요 어른인제 위풍을 보이려는 듯이 몸을 쭉 펴고 눈을 크게 뜬다.

『아이 무섭군. 위엄 있는데, 정말 성난 두꺼비 같은 데, 배때기까지 좀 불룩거려 보구려.』

『허, 그 주둥아리를!』

하고 명규는 주먹이 불끈거리는 것을 참는다.

『왜 좀 듣기 싫어? 그래도 양심 부스러기가 조금은 남았구먼, 그런 옳은 말이 듣기가 거북하니.』

하고 금봉은 질투와 의분과의 섞인 감정으로 가슴이 잦은 방망이질을 하고 숨이 찼다. 도무지 이 세상이 부정한 것이 한 시간도 참을 수 없는 것 같아서 설설 드는 칼을 들고 손명규, 심상태할 것 없이 모조리 모가지를 잘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더러워진 금봉이 자신의 가슴에 그 피묻은 칼을 찌르고 푹 엎어지고 싶었다.

얼마 후에 손명규는 예정하였던 계획이 뜻때로 되었다 하여 상해로 갔다. 상해에 가서 wkl를 잡고는 가족을 그리로 데려 간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금봉은 알 수 없지마는, 명규는 상해 떠날 때에 돈 천원 예금 통장을 금봉에게 주고 이것으로 아직 생활비를 삼으라고 일렀다.

『이번 가면 광동으로, 한구로, 어찌 되면 북경, 천진으로 시차를 다녀야 하겠으니께 아마 겨울께나 올 것 같어, 겨울에 와서 같이 가지.』

하고 명규는 대단히 큰 계획이나 있는 것같이 말하지마는, 금봉이는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고? 아무려나 남편이 어디 가고 없는 것이 다행이다.

」---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정선아, 우리 딸.』

하고 차 떠나기 전에 정거장에서 명규는 정선을 금봉의 팔에서 받아 안고 궁둥이를 치며,

『잘 있어, 아빠 맛난 것, 이쁜 것, 많이 사가지고 오께.』

하며 뺨을 대었다.

그리고 배웅 나온 친구들을 보고는,

『이번 계획은 확실하니께, 후원이나 많이 해주어. 끗빠이.』

하고 서투른 영어 인사까지 하였다.

차가 떠날 때에 금봉은 남편 탄 차를 바라보지도 아니하고 정선을 안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하루는 웬인인지 인현이가 왔다.

『손 선생 상해 갔다우.』

하고 금봉이가 보고를 하였더니 인현은,

『무엇하러 간대?』

하고 그 대답은 더 들으려고도 아니하고.

『손가 상해 갔단 말을 어디서 듣고, 또 다른 말도 들은 것이 있어서 내가 오늘 왔다.』

하고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이 있는 듯이 고개를 수그린다.

『왜 무슨 말요?』

하고 금봉은 가슴에 지피는 것이 있는지라, 도리어 태연한 태도를 지었다.

『너……』

하고 인현은 잠간 주저하다가,

『너 하루바삐 이 살림 그만두고 사람다운 생활을 해보아라.』

하고 금봉을 물끄러미 보나 금봉은 대답이 없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네 과거도 말이 아니어니와, 네 전정이 퍽 위태 해.내 들으니까 어느 술자리에서 김광진이허구 심 상태허구 저 애를 저마다 제 자식이라고 다투더라더라. 그리고 너를 마치 기생이나 갈보처럼 서로 제 것이라고 떠들고, 돌아 가신 어머니까지 쳐들더라니, 그만하면 너도 생각 나는 것이 있겠지. 내 무에라던? 네 눈이 고약하다고, 너는 네 눈 때문에 큰 화를 당하고야 만다고, 그런데 벌써 큰 화를 당했거든……』

하고 인현은 금봉의 더욱 수그러지는 고개를 보고 잠간 말을 그쳤다가,

『그런데, 네 남편이 상해로 갔단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도 내 남편이란 것이 집에 있어야 네가 죄를 안 짓지. 네 남편만 뚝 뜨는 날이면 네 앞에는 맨 유혹이란 말이다. 김광진은 안 오며, 심 상탠들 안 오겠느냐. 그러면 너는 네 눈 때문에 그만 죄에 빠진단 말이다. 나는 차마 네 그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거든. 제 누이 동생이 애비 모르는 자식을 끼고 이 사내 저 사내 놀림감이 되는 꼴을 볼 수는 없단 말이다.』

하고 인현은 더욱 흥분해지며,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 버리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너를 내 손으로 죽여 없애든지……』

하고 제 말이 너무 과도한 것을 깨달아 말을 끊는다.

『오빠는 나를 무얼로 알고 그렇게 모욕을 하시우?』

하고 금봉은 고개를 번쩍 들며 성내는 빛을 보인다.

『응, 그것이 여자의 허영심이라는 것이다. 속으로는 제가 잘못한 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한번 뽐내어 보는 것이. 그러나 금봉아, 이제는 벌써 그런 말재주 부릴 때가 아니다. 네 소문이 세상에 어떻게 나쁘게 났는지 아 니? 세상 사람이란 뒷공론으로는 못할 말 없이 다 하다가도 당자 앞에서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법이니까, 아마 너 보고 면대해서 네 시비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서는 너를 점잖은 가정에 받자 할 수 없는 추하고 더러운 계집으로 알고 있어. 딴은 그렇지 않으나, 그 사람들 말이 옳지 않ㅇ냐.』

『누가 그래요? 어떤 연놈이 무에라고 오빠헌테 내 말을 해요?』

하고 금봉은 발악을 한다.

『하, 그러지 말라니까.』

『무얼 그러지 말아요?』

『오라비니까 이런 피눈물 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돌아 가신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피눈물로 쓰신 유서를 생각하고, 네가 지옥으로 달음질 치는 것을 내 목숨을 주고라도 붙들어 주려고. 금봉아. 이 세상에는 네 용모를 탐해서 장난감을 만들려는 사람은 많겠지 마는. 제 목숨을 내놓고 너를 건져 내려고 할 사람은 천하가 넓다 해도 이 못생긴 오라비 한놈 밖에는 없을 것이다. 금봉아.』

하고 인현은 눈물을 흘린다. 동기의 참다운 이 말에 금봉은 더 뻗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무릎에 엎드려 울었다.

한참 울다가 금봉은,

『오빠 나를 동생으로 알지 마세요. 내가 어떻게 되거나 내버려 두어 두세요.』

하고 애원하는 듯이 인현을 쳐다보았다.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지!』

하고 인현은 비통한 낯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내기 그럴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 소망도 없는 사람이야. 나는 부모도 없고, 처자도 없고, 재산도 없고, 세상 사업 욕심도 없고, 살고 싶은 욕심조차 잃어버린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에 도무지 소망도 없고, 소용도 없는 사람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 하나를 죄에서 끌어 내기 위해서 내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것 같단 말이다. 금봉아.』

하고 금봉의 손을 잡고 운다.

『오빠! 오빠!』

하고 금봉은 인현의 두 어깨에 팔을 걸고 매어 달려서 느끼 울었다. 금봉은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고 또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한 것이었다. 금봉이가 삼 년 전 동경을 향하고 떠날 때에는 자기의 전정에는 오직 광명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와 오늘과 어떻게 변하였는가. 세상이 자기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자기를 가정에 들여 놓치 못할 사람으로 여긴다는 인현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통통통 잔걸음을 쳐서 뛰어 와서 무르팍에 배달리며 「엄마」하고 낯선 외삼촌을 힐끄 보는 정선을 대하기도 가슴이 아팠다.

『그럼 오빠.』

하고 금봉은 눈물을 씻고 정선에게 젖꼭지를 물리며 물었다.

『그럼 오빠, 내가 어떡허면 좋아요?』

『사람다운 일을 하는 생활을 하란 말이다.』

『사람다운 일이 무엇이오?』

『교사 노릇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마는 몇 해 후에는 몰라도 지금은 안될 것이고. 간호부도 좋지. 산파를 배워도 좋고, 그리고 접대에 말한 대로 수녀나 승이 되는 것도 한 길이고. 무엇이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일을 하란 말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농부들이 피땀 흘려서 지은 쌀을 먹고, 직공들이 피땀 흘려서 짠 옷을 입고, 집안에 사람을 삼사인씩 두어서 시중을 들리고 그리고 앉아서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말이다. 한 가지도 인생에 이로운 일을 하지 못하고 밥낮 생각하고 하는 것이, 무에라고 할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죄 짓는 일밖에 하는 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이 점에 있 어서는 나부터 마찬가지지. 네나 내나 외모도 괜찮고. 재주도 남에게지지 않고, 마음이 남달리 악한 것도 아니언마는, 무슨 결함이 있어서 그러한지 도무지 저 자신으로는 불행한 사람이요. 세상에 대하여서는 유해 무익한 사 람이란 말이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야. 우리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 유쾌하게 각각 신념을 가지고 저 갈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어째 우리 남매만 이 꼴일까 아마. 이것이 운명이란 것인가 봐. 중들 말대로 다 하면 전생의 업보란 것인가. 봐. 네나 내나 무슨 비극적 배우 노릇을 할 ---그것도 비장한 비극이 아니라, 아주 지지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운명을 타고 난 것 같애. 너는 성품이 퍽 명랑하기나 하지마는 나는 게다가 침울하지. 너는 향락을 바라고 나아가는 모양이다마는, 나는 밤낮에 생각하는 것이 도무지 뒤숭숭하고 이 세상과는 떠난 일만이란 말이다. 내 또래 젊은 패들도 요새에 민족주의니 사회주의니 청년회니 신문이니 실업이니 하고들 날치고 하지 마는, 나는 그것도 다 시들하고 하고 싶다면 경성부 소제 인부가 되어서 똥통을 메고 뒷간이나 치우러 다니거나 도로를 쓸러 다니거나 그렇지 아니하 면 그만 산으로 들어 가서 중이 되고 싶어, 아이 쓸데 없는 소리를, 곁길로 달아나고 말았다.』

하고 인현은 아까 말길을 찾노라고 잠간 눈을 감는다. 금봉은 인현의 말이 마치 무슨 음악을 듣는 것 같아서 전신에 기운이 다 빠지고 말았다. 몸이 땅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빠나 저나 다 비극적 인물로 태어났다는 말은 몹시도 분명하게 강하게 금봉의 가슴을 두드렸다.

인현은 얼마 있다가 다시 눈을 뜨며,

『네 말을 좀 더 하자. 좀 무시무시한 말 같지마는 나는 가끔 허깨비를 보아. 내가 피묻은 칼을 들고 여러 사람을 찔러 죽이고 미쳐 날뛰는 허깨비를 본단말야. 꿈도 아니요. 생신데 그렇단 말야. 그 죽은 사람들의 의복과 얼굴까지 분명히 보이거든. 그리고 내가 피 흐르는 칼을 들고 날칠 때에 내 심리, 내 감정 그것이 아주 분명하게 느껴지거든. 그렇지만 그게 누군가. 내가 무슨 일로 그 사람들을 죽이는가 하는 것을, 그 허깨비가 지나간 뒤에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기억이 분명하고 소상한 듯하면서도 알 수는 없단 말야.』

하고 인현은 불쌍한 기억을 흔들어 떨어뜨리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흔들더니.

『그래서 내가 어떤 중헌테 그 말을 물어 보지 않았나? 대허라는 늙은 중인데, 저, 왜, 송월동---아마 너는 모르겠다. 내 학교 동창.』

하고 잠간 말을 끊는다.

『알아요. 그 이상한 학생 말이지? 늘 시무룩하고 있는 아니오. 그 부자 집 아들이라는?』

하고 금봉이도 인현이가 고등 보통 학교에 다닐 때에 이따금 놀러 오던 살 빛 대단히 회고 눈 가늘고 빛나던 학생을 기억한다. 그는 부모가 서양 유학까지 시켜 준다는 것도 마다 학고 웬 ss더기 입은 늙은 중을 작은 사랑으로 불러 들여서는 침식을 같이 한다 하여 그 부모가 성화를 한다던 말을 들은 것도 기억하고, 썩 잘난 어떤 부자집 딸한테 장가 들라는 것도 싫다고 한다던 말을 들은 것도 기억한다.

『응, 그 사람 말이다. 황기현이 말이다. 내가 그동안 한 일 년께 황 기현 이와 자주 만났지. 그 집에 오는 늙은 중헌테 그 말을 물어 보았어. 내가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허깨비를 본다는 말을 물어 보았지. 요새에 와서는 그 허깨비가 더 자주 보여서.』

『그래 그 늙은 중이 무에라고 해요?』

하고 금봉도 인현의 그 무시무시한 헛것을 눈앞에 그려 보면서 묻는다.

『그랬더니 그 늙은 중 말이---어, 그거 안되었구려. 그것은 가까운 전생에 당신이 그런 일을 저즈른 일이 있거나 또 가까운 장래에 그런 업보를 받을 일이 있거나 한 것이오. 그런단 말야. 내 생각에도 암만 해도 그런 것 같아. 그 헛것이 전보다 자주 보이는 것은 그때가 가까웠다는 뜻인 것 같아.』

하고 인현은 또 그 헛것을 보는지 멍허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 오빠도! 왜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시우? 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하고 금봉은 몸을 한번 떨며,

『그래 그것을 피하는 길은 없대요?』

『없대. 뭐 인과 관게라나. 업보 관계로 꼭 짜 놓았다니까.』

『무어 그럴라고.』

하고 금봉은 의심스러운 듯이 웃는다.

『그래도 가만 보니까 인과응보가 있나 보더라. 아버지를 보렴. 아버지가 남의 재산을 속여서 빼앗은 셈 아니냐. 이 참령이랑 노 부령이 맡기고 간 것을 그냥 먹어 버리고 말았으니. 그리더니 재물을 못 지녔지. 지금 말 아니다. 또 어머니 덕을 그렇게 많이 입고서 어머니를 그렇게 소박하시더니 지금 어떤가 보아. 말 아니다. 지금 어머니하고 사시는 것이 지옥 생화이어 든. 그리고 자식들은 다 이꼴고, 또 네 남편보려무나 어떤가. 내 생각에는 t상해를 가도 잘되지 아니할 것만 같다. 그야 악한 짓을 하고도 잘되는 듯 한 사람도 있지마는, 대허 말마따나 길게길게 두고 보면 다 제가 심은 씨는 가 거둔단 말이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도무지 이 세상에 와서 하나 도 마음대로되는 것은 없고, 밤낮 마음을 지글지글 끓일 일만 생기고, 게다가 그 뒤숭숭한 헛것이 보여, 도무지 앞날에 큰 비극이 올 것만 같구나.』

오빠 『 , 왜 그런 소리를 하시오? 설마 그럴라고. 다 미신이지.』

『글세 요새 세상에 나같이 젊은 놈이, 또 신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놈이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니면 다 저놈 미쳤다고. 미신의 소리하고 다닌다고 할 줄도 알지마는 생각이 꼭 그렇게 들어 가는 것을 어찌하니?』

『그렇거든 그 태헌가 하는 늙은 중더러 면할 길을 가르쳐 달라지.』

하고 금봉의 생각도 점점 인현의 불길한 생각에 끌려 들어간다.

『태허 말은 지금 생활을 버리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수도나 해보라고. 도의 힘이 업의 힘 밖에 없다고.』

『그럼 그렇게라도 해보시구려. 오빠 마음만 편하게 되겠거든.』

『그겐들 쉬우냐? 아버지 재산 상태가 저 꼴이니 식구들은 어찌하니? 내가 있다고 쇠천 한푼 벌어 들이는 것도 없지마는 굶어도 같이 굶어야지. 그래서 전차 차장이라도 되어 볼까. 그보다도 경성부 소제인부라도 되어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

『그렇게 어렵게 되었소?』

하는 금봉의 말에, 인현은.

『아직 밥을 굶을 지경이야 아니지. 아버지가 또 이럭저럭 남을 속이기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니까. 아버지가 구변이 좋으시다. 그 구변이 병이지 만.』

『그럼 오빠는 오빠 마음대로 하시구려. 설마 언니랑 아이들이랑 굶겨 죽이겠소? 은봉이는 내가 맡고.』

하고 금보은 인현의 절박한 운명이 더욱더욱 무서워 짐을 깨달았다.

인현은 말 없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앉았더니.

『그런데 내 운명은 네 운명과 한데 붙은 것 같다. 내가 오라비로, 네가 누이로 태어난 것이 다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만일 피묻은 칼을 든다고 하면 그것은 네게 관련된 것만 같거든. 왜 그런고 하니, 내 마음속에서 도무지 네 그림자가 떠나지를 아니하거든. 그러니까 내 생각에, 옳지, 내가 너를 건져 내어야만 우리 남매의 악업보를 깨뜨릴 수가 있고나 ---이렇게 생각이 된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그 언젠가도 너를 찾아 왔다가 차마 그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여 중간까지 말하고는 돌아 가고 말았다. 내가 이 말을 해서 네 마음을 괴롭게 하기가 애처로워서 그랬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네가 지금 하여 가는 생활은 당장도 불행이지만 종단은 큰 비극으로 끝마감을 할 것 같단말이다. 그래서, 아무렇게 o서라도 내가 네 생활을 방향 전환을 시켜야겠다---이렇게 결심을 한 것이다.』

하고 인현은 휘파람 소리 나는 한숨을 쉰다.

『그럼 내가 어떡허면 좋아요.』

하고 금봉은 처분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고개를 뒤로 젖힌다.

『어디나 죄 안 지을 데로 가!』

하고 인현은 명령적이었다.

『어디?』

『성당이나 저리나. 그렇지 아니하면 어느 시골이나. 네가 몸에서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광목이나 광당포를 감고 네 그 고운 손이 진일에 보기 숭업게 될 데로 가!』

『그럼 오빠는?』

『오빠는 어디로 가지. 너만 좋은 길을 밟아서 옳은 생활을 하게 된다aus 나는 고대 죽이도 아무 한 될 것이 없다. 어머니 유언에 널랑은 깨끗하게 깨끗하게 일생을 보내게 하라고 아니하셨니? 내가 손허고 혼인하는 것을 반대하지 아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를 손헌테 보내는 것이 죽기보다 싫지마는 가만히 보니까 네가 벌써 손헌테 모든 것을 허해 버린 것 같고, 내가 반대를 하면 네 깨끗함을 깨뜨리게 하는 것 같아서 그것이 두려워서 반대를 아니했다마는. 이제 생각해 보면 그것이---손허고 혼인한 것이 네 인생의 첫 잘못이야. 말하자면 네 모든 불행의 시초요. 비극의 시초란 말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 운명인 게지. 인제부터나 운명 몰래 걸어 갈 도리를 할 수밖에 있나.도의 힘이 업의 힘을 이긴다니, 네가 깨끗한 종교적 생활, 신앙 생활을 하면 운의 줄을 끊어 버릴 수도 있겠지. 도리어 네 생활에도 행복이 오고 세상에서도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지.』

이때에 우편이 배달되었다. 그것은 향항(香港)의 일부인이 맞은 손 명규 의 시커먼 글씨였다. 그 상연은 대강 이러하였다--- 그동안 집에 별인이나 없소? 동사로 온 사람이 상해에 와서는 마음이 변하여 상해에서 영업하자는 목적은 틀어지고 나는 남양으로 가오. 아마 왕복 한 일 년은 될 모양이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가면 좀 더 오래 될는지 모르거니와. 만일 그동안에 내가 미쳐 돈을 보내지 못하거든 김광진헌테 생활을 의뢰하시오. 만일 남양서 자리를 잠거든 속히 가족을 데려 가리다.

『흥.』

『어머니!』

명규 편지를 보고 나서 인현과 금봉은 이런 외마디 탄식을 하였다.

『동사라는 게 누구냐?』

하고 인현이가 묻는 말에,

『모르지요, 나헌테 말하나요?』

하고금봉은 울음을 참노라고 입을 꼭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