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이슬람의 사상/이슬람세계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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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世界-成立 이슬람 세계라고 하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지만, 이슬람교도(敎徒)는 거의 전세계에걸쳐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발상지인 아라비아는 광대한 건조지대로서 3면이 바다이고 대륙에 연결된 북부도 사막지대라고 하는 고립된 세계이다. 그러나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 번영한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江) 유역을 좌우에 두고, 남쪽은 인도양을 통하여 인도나 중국 및 동(東)아프리카와의 교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인도양 방면과 메소포타미아·시리아·이집트 등의 비옥한 델타지대를 잇는 메카에서 출생하였다. 이곳은 변방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세계의 중요지점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구비하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서(西)아시아와 지중해 세계와는 유사 이래 동서 양세력을 각각 대표하여 서로 자주 싸워왔지만, 그 경계는 대체로 시리아 사막 근처였다. 마침 동방세력의 대표자인 사산조(朝) 페르시아와 서방 세력을 대표하는 비잔틴제국이 장구한 세월의 교전(交戰)으로 피폐하여 양국이 다함께 통치상의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을 무렵에, 아라비아에 이슬람의 교단국가(敎團國家)가 출현한 것이다. 그때까지 아라비아의 많은 부족이 하나로 통합되었다고 하는 기록은 없으나, 마호메트가 죽은 후에 메디나에 웅거한 아부 바크르(초대 572 ?∼634), 오마르(2대 644沒) 등의 유능한 칼리프(아라비아어로는 할리파. 예언자의 사후 그의 정치·군사 등의 통솔활동을 대리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의미)에 통솔되자 갑자기 비잔틴제국으로부터 시리아·팔레스티나·이집트 등을 탈취하는가 하면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이란 고원(高原)을 점령하였으며, 다시 동서 양방으로 정복을 계속하여 드디어 동쪽은 인도의 서북부,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쪽은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半島)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이슬람교국(敎國)이 출현하였다. 북쪽은 소아시아와 시리아의 경계인 타우루스산맥을 끼고 비잔틴제국과 대립하였고, 남쪽은 인도양에 임한 형세여서 예로부터의 동서 양세력의 균형은 이 신흥국가(新興國家)에의하여 파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라비아인은 이슬람교(敎)가 일어나기 이전에도 결코 미개한 야만인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서남부의 알만(Alyaman) 지방 등에서는 서기전 수백년 전부터 문화 정도가 높은 왕국이 몇 차례나 흥망을 반복했으나 무엇보다도 황야(荒野)가 많아 거기에 거주하는 유목민은 단순소박하고 진보가 늦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수천년 역사를 지닌 오리엔트의 문화지대를 지배하기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파괴나 학살이 반복되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이것과 정반대였다. 정복을 당한 나라의 백성은 토지와 재산은 물론이요 종래의 종교까지도 보장되었으며, 간소한 세법(稅法)에만 따른다면 그다지 불안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라비아인이 문화에 이해가 있는 현명한 백성이었던 것을 말해주는 점이다. 또 이슬람교가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아울러 인류가 낳은 가장 우수한 종교의 하나였다는 것과 아라비아어(語)가 높은 문화의 흡수에 극히 적당한 말이었던 것도 또한 그러한 성공을 거두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많은 피정복 민족의 협력을 얻어서, 아라비아어와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빛나는 새 문명이 이 광대한 제국을 장식하게 되었다. 제국의 발전에 따라 마호메트의 사후 661년까지의 메디나의 4인(四人)의 칼리프시대가 있었고, 그후 750년까지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중심으로 한 우마이아조 시대가 계속되었으며, 다시 1258년까지는 이라크의 쿠파와 바그다드를 도읍으로 한 아바스조 시대로 변화하였으나, 이슬람 문화가 가장 난숙한 시대는 9∼11세기경이다. 그리하여 이 문화는 유럽에는 물론 인도, 동남아시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