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바라문교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바라문교[편집]

婆羅門敎 Brahmanism

바라문교는 <베다 성전(聖典)>을 받들고 사제자(司祭者) 바라문이 지도하는 종교이다. <베다 성전>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고대의 것은 <리그 베다>이다.

베다 성전[편집]

Veda 聖典

기원전 1000년 이후로 접어들어 카스트적인 농촌사회의 성립과 함께 제사가 중요시 되었다. 제사의 의례(儀禮)가 더욱 더 복잡화됨에 따라서 제사에 관계가 있는 어구 문장(語句文章)이 수집되어 <베다 성전>이 편찬되었다. <베다>는 바라문교의 근본 성전의 총칭으로서 4가지 종류의 구별이 있다.

(1) <리그 베다>-제신(諸神)에 대한 찬가(讚歌)의 집성이다. 이는 제신을 제단으로 권청(權請)하여 찬송하는 것을 관장하는 권청승(勸請僧:호토리)에 속한다. (2) <사마베다>-가영(歌詠)의 집성이다. 이것은 일정한 선율(旋律)에 맞추어 가영(歌詠)을 하는 가영승(歌詠僧:우도가토리)에 속한다. (3) <야주르 베다>-제사(祭詞)의 집성 제물을 바치고 제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행제승(行祭僧:아도후바류)에 속한다. (4) <아타르바 베다>-재앙을 불제(拂除)하는 양재(攘災)·주저(呪詛) 등 주로 주법(呪法)에 관한 구절을 집록(集錄)한 것이다.

이것은 최초에는 <베다 성전(聖典)>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으나 후에 베다에 넣게 되어 제식(祭式) 전반을 총감하는 기도승(祈禱僧:브라만)에 속하게 되었다.

각 베다의 주요 부분을 본집(本集:상히타)이라고 일컫는데, 이것은 찬가·제사(祭詞)·주자(呪詞) 등의 집록(集錄)이다. 오늘날 베다라고 할 때에는 보통 이 부분을 말한다. 각 베다 본집에 부수하는 문헌으로서 <브라흐마나(祭儀書)>와 <아라니야카(森林書)>와 <우파니샤드(奧義書)>가 있다.

<브라흐마나>는 각 베다 본집에 대한 설명적 문헌이다. 이것은 제사의 실행 방법을 규정하며 혹은 찬가·제사(祭詞)의 의의나 목적을 설명하였다.

그밖에 제사의 기원을 밝혔으며, 무수한 신화·전설을 함유하고 있다. <아라니야카>는 특히 삼림(森林) 속에서 전수(傳授)되어야 할 비의(秘義)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칭이 붙었는데, 제식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도 철학적 문제에도 언급하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별칭으로 <베단타>라고도 호칭하거니와 당시의 여러 가지 비설(秘說)의 집성서(集成書)이다.

이상의 <본집(本集)> <제의서(祭儀書)> <삼림서(森林書)> <우파니샤드> 등을 총괄하여 '베다'라고 하여, 천계문학(天啓文學:스루티)이라 부른다(이것은 聖傳文學 스물티에 대칭하는 이름이다) 인도인은 일반적으로 천계문학을 인간의 저작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것은 영원한 존재여서 옛 성선(聖仙)이 신비적 영감에 의하여 감득한 계시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 문헌은 동시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리그 베다> 본집 이외는 대부분 기원전 1000년부터 500년경까지 순차로 제작된 것 같다.

리그 베다[편집]

Rig Veda

<리그 베다>는 인도·유럽인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문헌 중의 하나이다. 또 인도 최고의 문헌이다. <리그>라는 말은 찬가의 뜻이며, <베다>는 지식이라는 뜻이었으나, 전이하에 바라문교의 성전을 뜻하게 되었다.

이것들은 1017개의 찬가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에 11개의 보유(補遺)의 찬가가 있다. 이 찬가는 대략 기원전 1200년∼1000년에 제작되어 기원전 1000년∼800년경에 현재의 모습과 같이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3000년 후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로 암송(暗誦)에 의하여 전해졌다.

리그 베다의 종교[편집]

Rig Veda-宗敎

당시의 아리아인은 매우 종교적인 민족이었다. 그들은 각 가정의 제화(祭火)에 손수 제물을 봉납하였으며, 또 그 외에 대규모적인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제신(諸神)을 찬가와 찬사로써 받들어 기쁘게 하고 그것에 의하여 현실적인 생활상의 행복을 얻으려고 하였다.

<리그 베다>의 종교는 다신교이다. 원시 인도·유럽인의 시대와 같이 제신의 대부분은 주로 자연계의 구성요소·제현상이거나 혹은 그들의 배후에 있다고 상정(想定)된 자연의 지배력을 신격화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한 것이다. 예컨대 천신(天神) 디아우스, 태양신(太陽神) 수리야, 사비투리, 푸샨 효홍신(曉紅神) 유샤스, 뇌정신(雷霆神) 인드라, 폭풍신(暴風神) 로도라, 풍신(風神) 바유, 우신(雨神) 파리쟈냐, 수신(水神) 아파스 등이다. 그런데 이들에 관한 신화가 발달되는 데 따라서, 원래 자연현상에 의거하여 상정된 제신들은 더욱 의인적(擬人的)으로 표상(表象)되어, 각각 독자적인 성격과 성행(性行)이 이루어졌고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또한 상호간에 혼교되어 자연현상과의 상통은 갈수록 희박해져서 각 신(神)의 모습은 당시의 아리아인의 사회생활에 규정되어 있는 점이 많다. 이렇게 되어 비를 내리는 신(神) 인드라에 이상적인 전사(戰士)로서의 모습이 투영되어 당시 가장 많이 숭배되었다(佛敎에서는 帝釋天이 된다).

또 정주민(定住民)으로서 집단생활을 영위하여 도덕적 자각이 높아짐과 함께 지난날의 천공신(天空神) 바루나는 천칙(天則=리타)의 옹호자·율법신(律法神)·인륜(人倫)의 유지자로서 표상되어 자연계와의 관계는 거의 단절되게 되었다(佛敎에서는 水天이 된다). 그리하여 아리아인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제사가 점차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따라서 제사의 여러 요소가 신격화되어 신으로 숭배되었다(火神 아그니, 酒神 소마 등). 기도주신(祈禱主神) 브리하스파티와 같은 신도 새로이 세워졌다. 추상적 관념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일도 행해지게 되었다(예컨대 信仰-슈랏다 無限-아디티, 말(言)-바크).

신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신성을 구비하여 강력하고 현명하다고 믿어졌다. 신들은 광채에 가득차 있고 불사(不死)이므로 영원한 젊음을 보전하면서 정의의 편에서 악마(惡魔)·원적(怨敵)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인간미를 담아 신비(神妃)에게 떠받들려 신자(信者)가 바치는 신주(神酒)인 소마에 취하고, 최대의 미사로 엮은 찬가를 좋아한다. 무기(武器)를 손에 잡고 거가(車駕)를 몰리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뽐내며 천공(天空)을 거닌다. 그 행동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하지는 못하며, 때로는 사음(邪淫)·불화·폭행 등도 보이고 있다.

신들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는데, 인간의 운명·고락은 신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신은 인간의 사악을 벌주지만 속죄하는 자의 죄는 용서한다. 신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관인대도(寬仁大度)를 보이고 친목우의(親睦友誼)의 정이 있어 은혜에 충만해 있다. 다만 준엄한 율법신(律法神) 바루나가 아리아인 일반에게 공포(恐怖)·외경(畏敬)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유일한 예외였다.

신들은 대개 명료한 개성이 없고, 오히려 동일한 속성·호칭·업적을 공유하고 있다. 어떠한 신도 찬가의 주제가 되었을 때는 최상급의 찬사를 받아 흡사 다른 신들의 위에 군림한 것같이 보인다.

철학사상의 맹아[편집]

哲學思想-萌芽

<리그 베다>에 나타나는 신들의 개성이 불명료하여 그들 사이의 구별이 판연하지 않으므로, 이미 <리그 베다>속에 여러 신들은 일신(一神)의 이명(異名)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는 사상이 표명되고 있다.

고래(古來)의 확고한 신들의 신앙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전통적 관념은 이미 자명한 것이 아닌 것으로 되어 바야흐로 새로운 사색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신들도 초월한 보다 근원적인 세계원리(世界原理)를 탐구하게 되었다. <리그 베다>의 약간의 철학적 찬가들은 각각 어떤 형태의 세계원리를 상정하여 다양한 현상세계의 성립 원인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우주창조에 관한 당시의 견해는 대략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우주창조의 건조(建造)에 비교하는 것과, 하나는 출생에 준하려고 하는 것이다.

건조(建造)에 비유하는 대표적인 것으로서는 기도주신(祈禱主神)의 세계창조론이 나타났다. 또 '황금(黃金)의 태자(胎子)'를 말하는 찬가에 의하면 태초에 황금의 태자(胎子)가 나타나 만유(萬有)의 유일한 주재자가 되었다. '만유를 만드는 자'를 말하는 찬가에 의하면 그는 모든 방향(方向)에 눈·얼굴·팔·발을 가졌으며 그 양팔과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인 것이다. 이상의 모든 찬가의 창조관이 일신교적(一神敎的)인 데 반해, 원인(原人)으로부터의 찬가는 범신론적이다. 원인(原人:푸르샤)은 천두(千頭)·천안(千眼)·천족(千足)이 있으며, 기존(旣存)·미존(未存)의 일체인 것이다. 그의 4분의 3은 하늘에 있는 불사자(不死者)이다. 신들이 그를 희생수(犧牲獸)로 삼아 제식을 행하였을 때 찬가·가영(歌詠)·운율(韻律)·제사가 생기고, 또 말·소·양·산양(山羊) 등의 짐승이 무리가 생기고, 그 입에서 바라문이 생기고, 그의 양쪽 팔에서 왕족(王族), 그의 두 눈(兩眼)에서 서민이, 그의 두 발에서 예민(隸民)이 생겼다. 달은 그의 심장에서, 태양(太陽)은 그의 눈에서, 인드라와 아그니(火神)는 그의 입에서, 풍신(風神)은 그의 호흡에서 생겼다. 그의 배꼽에서 공계(空界), 머리에서 천계(天界), 발에서 지계(地界), 귀에서 방위(方位)가 생겼다고 한다. '유(有)가 아니며 무(無)도 아닌 것'을 말하는 찬가에 있어서 범신론적 사색은 절정에 달하였다. 그에 의하면 태초에는 무(無)도 없고 유(有)도 없고 천(天)도 없고 공(空)도 없고 죽음도 없고 불사(不死)도 없고 낮과 밤의 구별도 없어 암흑에 뒤덮여 있었다. '저 유일자(唯一者)'만이 바람이 없이도 호흡하고 있었다. 우주만유(宇宙萬有)는 광명없는 물결이었다. 그 유일자에게 의욕(意欲)=카마)이 생겼다. 그 의욕을 원동력으로 하여 만유를 발생시켰다. 신들도 우주의 전개보다 후에 나왔다고 한다. 말(言=바크)을 최고 원리로 아는 사상도 나타났다. 전체로서는 일원론적(一元論的) 경향이 강하였다. 내세에 대해서는 육체는 죽음과 함께 멸망하나 영혼은 불멸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영혼의 관념은 마음·호흡을 의미하는 말(마나스·프라나·아트만·아스 등)에 의해 표현되고 있었다. 사자(死者)의 영혼은 이미 사망한 부조(父祖)가 통행한 길을 따라 영원토록 광명이 있는 낙토(樂土)로 가서 그곳에서 자기 혈연들과 재회한다고도 한다. 그 낙토는 사자(死者)의 왕 야마가 지배하는 왕국이며, 최고천(最高天)에 있으며, 광명·녹음(綠蔭)·주효(酒肴)·가무(歌舞)·음악에 싸인 행복한 이상경(理想境)이다. 야마는 사자(死者)의 왕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사자에 대한 심판자로 간주되어 불교에 채용되었고, 중국에 전해져 도교의 상상(想像)이 가미되어 염마(閻魔)란 무서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에 반해 천상(天上)의 왕으로서의 모습은 불교에서는 야마천(夜摩天)으로서 전하여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천계의 낙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특히 제사와 바라문에 대한 보시와 고행을 해야 할 것이며, 또 전장에서 전사한 용사도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타르바 베다의 사상[편집]

Atharva Veda-思想

<아타르바 베다>는 <베다 성전(聖典)> 중의 하나인데 최초에는 <베다 성전>으로서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았으나 후에 베다에 들게 되었다. <아타르바 베다>는 주술을 본령으로 하는 것으로서, 하층계급의 풍습신앙도 전하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주법(呪法)에 사용하는 시구(詩句) 사이에 우주의 최고원리를 말하고 고상한 철학적 개념을 혼합하고 있다. 어느 철학적 찬가에 있어서도 우주의 창조 및 유지를 유일한 최고원리의 공용(功用)에 돌리고 그 원리에 최고신으로서의 위치를 공여하고 있다. 최고원리로서는 호흡·시간·편조자(遍照者)·애욕(愛欲), 만유의 지주(支柱) 등이 최고원리로 찬탄(讚嘆)되고 있다. 그리고 대지·태양·황소·암소 등이 최고자로서 찬탄되고 또 베다 학생, 바라문교로의 개종자(改宗者), 제식(祭式)의 잔찬(殘饌) 등 바라문교의 입장에서 의의(意義)있는 것이 세계의 최고원리로서 찬탄되고 있다.

브라흐마나의 사상[편집]

Brahmana-思想

<브라흐마나>는 <베다 성전(聖典)>의 각 본집(各本集)에 부수하는 것 중에 본집의 설명적 문헌이다. <브라흐마나> 문헌은 모든 베다 본집의 편찬이 일단 완결된 후에 만들어졌으며 제식실행(祭式實行) 방법의 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규정하고 있다. <브라흐마나>에 나타나는 바라문들은 이미 신들에게 봉사하는 경건 공순한 사제자(司祭者)는 아니고, 그의 주력(呪力)에 의하여 신들까지도 구사하는 주술자이다. 그들이 실행하는 제사에는 주술적 의의가 깃들여 있었다. 당시의 바라문 학자들은 개개의 제식의 실행과 우주의 모든 자연현상과의 사이는 밀접한 대응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제사는 불가사의한 영력을 갖는다고 생각하였다. 하나하나의 제식의 구성이 자연계에 있는 모든 사물의 상징·모방이라고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제식의 실행이 자연계의 변화, 사시(四時)의 운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세계 창조신으로서는 새로이 조물주(造物主:푸라쟈파티)라고 하는 근본 신격(根本神格)이 등장하였다. 그 어의(語義)는 <자손의 주(主)>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자손·가축의 증식 보호(增殖保護)를 위한 신이었으나, 후에는 창조신의 지위에 추존된 것이다. 조물주의 창조신화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서로 모순되어 상호간의 일치제합(一致齊合)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들에게는 공통의 유형이 인정된다. 즉 우선 조물주가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욕망을 일으켜서 노력·고행하여 열력(熱力)을 낸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여러 종류의 순서를 거쳐서 일체의 사물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내세의 관념에 대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서 공덕(功德)을 쌓은 사람은 내세에 복락(福樂)을 향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선업(善業)을 쌓은 사자(死者)는 야마의 왕국으로 가지만 천계에 있어서의 복락은 영구히 계속하는 것은 아니고, 어느 경우에는 천계(天界)에 있어서 재차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거듭 죽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였다.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한 제사를 실행하여 여러 가지 선업을 행하였다.

우파니샤드의 사상[편집]

Upanishad-思想

<우파니샤드>는 베다 본집에 부속되는 문헌의 하나로 <베단타>라고도 한다. <우파니샤드>라고 하는 말은 원래는 시좌(侍坐), 근좌(近坐)로부터 다시 '비밀(秘密)의 회좌(會坐)'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것이 다시 전용되어 비밀(秘密)의 의의(意義), 비설(秘說), 비교(秘敎)라고 하는 의미가 되었고, 후에는 그 비설(秘說)을 수록한 일군(一群)의 문헌 명칭이 되었다. 고본(古本)으로서 중요 <우파니샤드>의 성립 연대는

<브라흐마나> 및 <아라니야카>의 성립보다 후이고 불교 중흥기보다는 그 이전이 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적 특징[편집]

Upanishad-思想的特徵

<우파니샤드>는 제사에 의탁하는 설명과 신화적 요소를 아직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사상을 서술하는 데도 체계적·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비유와 비교에 의지하는 일이 많다. 후세의 철학서와 같이 추상적 사색의 결과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도 신비적인 영감에 의하여 얻은 확신을 표명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사제(師弟)·부자(父子)·부부(夫婦)간의 대화, 혹은 지식인 사이에 있어서의 토론형식을 취하여 저술되고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베다 성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상과 비교해 보면 분명한 신흥사상으로서, 때로는 당시의 일반인사의 눈에는 신기하고 이색적인 감상을 준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신사상의 대부분은 비밀리에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전해지고, 혹은 새로운 사상가들 사이에서 귀엣말로 비전(秘傳)된 데 그쳤을 뿐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된 일은 없었다. 다만 <우파니샤드>의 경우는 특수한 철학설이 자주 개인(바라문뿐만이 아닌 왕족)의 이름과 결부해서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독립된 철학적 사색의 의의가 이 시대 이후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너무도 다종다양해서 도저히 일률적으로 개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 사상의 공통된 특징은 '지식 중시'사상이다. 이미 <브라흐마나> 문헌에서도 제식의 비밀적 의의를 알고 제식을 실행한다면 그 제사의 효과를 일층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식은 고래로 우주 및 인생의 모든 현상을 상징적으로, 또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고 있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제식의 참다운 뜻을 추구하는 데 따라서, 다시 더 나아가 우주 및 인생 그 자체의 형이상학적 의의를 고찰하게 되었다. 최초에는 자연과 인생과 제식에 관한 어떠한 사물이나 요소가 절대시되었으나, 나중에는 아트만이나 브라만을 절대자로서 상정하게 되었다. 이 아트만이나 혹은 브라만을 안다면 우리들은 절대적인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이 해탈(解脫)이다. 그것은 제사에 의해서는 달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원래 브라만은 신성(神聖)하여 주력(呪力)에 충만한 베다의 언어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베다의 찬가(讚歌)·제사(祭詞)·주사(呪詞) 및 그 속에 내재(內在)하는 신비력까지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에 있어서의 제사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베다의 말로 하는 비밀주력(秘密呪力)에 의하여 신들이나 인간을 강제한다거나 구사하는 의례였다. 그렇다면 비인격적인 베다의 말이나 비밀주력이 신들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제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라문의 패권(覇權)이 확립됨에 따라 브라만이 특별히 중요시되었고, 마침내 그것은 세계의 근본원리의 명칭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다. 브라만이 중성적 원리(中性的 原理)인 데 대하여 아트만은 오히려 인격적 원리이다. 아트만이라는 것은 원래 '기식(氣息)'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변전되어 생기(生氣), 신체(身體)로 되고 다시 자아(自我), 자기(自己), 영혼(靈魂)에서 다시 본체(本體), 만물에 내재(內在)하는 영묘(靈妙)한 힘(力)을 의미하는 술어로 되었다. 그리하여 아트만으로부터 세계창조가 설명된다고 하는 동시에 아트만을 인식해야 한다고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다. 또 아트만이 절대시되는 것과 동시에 아트만은 브라만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자주 강조되었다. 아무튼 현상세계의 잡다한 형상의 근저에 최고원리로서 유일자(唯一者)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잡다한 상(相)은 그 유일자(唯一者)로부터 분화되며, 그것으로부터 유래하며 혹은 그것에 지배되며, 그것에 의존하여 성립하고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우파니샤드> 전반에 통하는 유력한 사상이다. 옛 우파니샤드에 나타난 철학설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샨딜랴의 브라만·아트만 동일설[편집]

Sandilya-Brahmana,Atman-同一說

샨딜랴는 만유의 진리를 브라만이라 부르고, 그것은 우리들이 경험하는 일체의 사물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브라만은 또 우리들의 본래(本來)의 자기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아트만이며, 신체 속에 존재하는 황금의 원인(原人) 혹은 심장(心臟) 내부에 존재하는 아트만이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절대자로서의 브라만 또는 아트만은 극대하고도 또 극소한 존재이다. 인간은 의향(意向:크라토우)으로 된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있어서 의향을 갖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와 같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람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만유의 진리를 명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떠난 뒤 이 아트만에 합일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조금도 의혹이 없이 반드시 그와 같이 실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웃달라카의 유론[편집]

Uddalaka-有論

"이 만유(萬有)는 이 미세한 것을 본성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것은 아트만이다. 그대는 그것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웃달라카와 그의 아들과의 대화 속에 아홉 번 반복되고 있다. 이 구절은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구절과 함께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시하는 2대의 문장(二大文章)으로서 유명하다. 그는 더 나아가서 절대자가 어떻게 현상계의 차별상을 전개하느냐 하는 과정을 문제로 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태초에는 유(有)뿐이며, 유일한 것이요, 이에 대립하는 제2의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유(有)는 정신성을 구유하고 있는 것이어서 신격으로서 표상되고 있다. 유(有)로부터의 전개에 대하여 웃달라카는 신화적 설명을 하였다. 이 유(有)가 우선 '내가 많아지련다. 번식(繁殖)하련다'라는 의욕을 일으켜서 불(火)을 창작해 내고, 계속하여 물(水)을 만들어 내고, 다시 식물(食植)을 창작해 냈다. 화(火)·수(水)·식물(食物)도 역시 신격으로서 표상되고 있다. 그뒤에 유(有)는 다시 의욕을 일으켜서 <생명(生命)으로서의 아트만>에 의하여 불·물·식물 속에 들어가 현상세계의 명칭 형태를 전개하여, 그 3자를 각각 3중(三重)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 한 개의 원소가 각기 타의 두 개의 원소와 결합하여 그것이 질료(質料)로 되어 일체의 물체를 성립시키고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도 자연계에 있어서와 같이 불·물·식물의 3원소이나 진실한 자기는 아트만이며 유(有) 자체이다. 사람이 각성 상태(覺醒狀態)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에는 그 본래의 자기에서 괴리(乖離)하고 있으나, 사람이 숙수(熟睡)할 때는 유(有)와 합일하여 진실한 자기에 도달하고 있다. 일체의 생물류는 유를 근저로 하여 거기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들은 유를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유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우리 인격의 근저에 잠재하고 있다. 그것은 흡사 소금을 물속에 넣었을 경우에 우리들은 눈으로 소금을 지각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소금이 물속에 용해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이 떠났을 때 이 육체는 멸망하지만 그러나 생명의 본체는 죽는 일이 없다. 그것은 진실한 것인 아트만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한 사람은 무한한 생존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스승에 의해 만유의 진리인 유(有)를 깨달으면 사후 완전하게 유와 합일한다(이것이 解說의 境地이다). 그것은 마치 붙잡혀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속박 기반(束縛羈絆)을 벗어버리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야지냐발키아의 아트만론[편집]

Yajnavalkya, Atman-論

야지냐발키아와 그의 아내 마이트레이와의 대화는 유명하다. 그가 출가하여 유행(遊行)생활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에 마이트레이는 '재물과 보화로 충만되어 있는 이 전체 대지가 나의 소유로 되었다고 한다면 이로 인하여 불사(不死)가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하여 야지냐발키아는 "그렇게 된다면 자산(資産)이 있는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재물 보화에 의하여 불사는 얻지 못한다"고 대답하여, 불사에 관한 교의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일체의 만유는 아트만에 불과하다. 아트만은 '위대한 실재'라고도 호칭된다. 일체의 만유는 아트만이 토로해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습기 있는 나무에 불을 붙이면 그 연기가 각 방면으로 뻗쳐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는 또 "아아, 참으로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이 그리운 것이 아니요, 아트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이 그리운 것이다. 아아,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그리운 것이 아니요, 아트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그리운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자손·재보·가축·바라문·왕족·제세계(諸世界)·제신(諸神)·베다·생물류(生物類) 등 일체의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아트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실로 아트만이 보이고, 들리고, 생각되고, 인식될 것 같으면, 이 일체는 알려진 것이다"라고 한다. 그것은 흡사 북(太鼓)을 칠 때에, 그 외측에서 나는 북소리는 포착할 수 없지만 북이나 혹은 고수(鼓手)를 잡음으로 인하여 그 소리를 포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아트만은 순수한 영지(英智)이다. 그것은 안도 없고 밖도 없다. 마치 소금 덩어리가 안도 없고 밖도 없이 바로 맛의 결정에 불과한 것과 같다. 따라서 아트만은 적극적인 개념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무(無)는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주체이다. 따라서 아트만 그것 자신은 이미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인식되지 못한다. 그것은 파악되지 못하는 것이며, 불가설(不可說)인 것이다. 만약 부득이 언어를 빌어 표현하려고 한다면, 다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부정의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으며 더러운 것에 물드지 않는다. 그것은 불사(不死)이다. 우리들의 육체는 여러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어, 그것이 분해되면 육체는 소실되고 죽은 뒤에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트만 그것은 진실로 불멸인 것이다. 이 아트만을, 야지냐발키아는 다른 대화에서, 내제자(內制者)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이 세계 및 일체의 존재를 그 내부에서 지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트만, 즉 내제자(內制者)이다. 그 밖의 것은 전부 고뇌를 가져올 뿐이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인간의 사후의 운명(運命)에 대하여 질문하자, 야지냐발키아는 "이것은 공개하여 말할 성질이 못된다"고 하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업(業)에 대하여 말하기를 "실로 사람은 선업(善業)으로 인하여 선인(善人)이 되고, 악업으로 인하여 악인이 된다"고 하였다.업(業)에 속박되어 있는 윤회의 생존을 해탈하기 위해서는 아트만의 진실된 인식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손·재보(財寶)·세간(世間)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탁발 걸식(托鉢乞食)을 행하여 출가 유행(遊行)하는 생활에 들어가 죄악·오예(汚穢)·의혹을 제거하여 진실한 바라문이 된다. 그의 신체는 오히려 잔존하고 있으나 그것은 흡사 뱀의 허물이 생명 없이 개미 무덤위에 버려져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고 우파니샤드(중기)의 사상[편집]

古 Upanishad(中期)-思想

<시베다 시바다라·우파니샤드>에 의하면 유일(唯一)의 신이 일체의 것을 지배하고 있다. 절대자는 최고 브라만이라고 호칭되지만 그것은 지배자와 경험의 주체(主體:個我)와 경험의 대상(환경으로서의 세계)의 3자로서 나타나고 있다. 개아(個我:주체)는 경험의 대상인 모든 사물에 집착하여 업(業)을 지으면서 항상 윤회 속에 잠겨 있다. 지배자는 유일신으로서 대주재신(大主宰神)이라고도 호칭되며, 루도라라고도, 시바라고도 불려지며, 환력(幻力:마야)에 의하여 전우주를 창조하기 때문에 환사(幻師)에 비유된다. 사람이 순수한 심정을 가지고 이 신에게 신애(信愛:박티)를 바쳐 진심으로 주재신을 생각하고, 그 본성을 알면 주재신은 은총에을 베풀게 된다. 그리하여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에 도달한다고 하는 내관적(內觀的)인 요가의 실천을 설명하고 있다.

정통 바라문의 교학 정비[편집]

正統-敎學 整備

마우리아 왕조시대 혹은 그 전후를 포함한 시대에 정통(正統) 바라문 사이에서는 <베다 성전(聖典)>의 보조 문헌으로서 많은 수트라(經)가 제작되었다. 정통 바라문 편에서 말하는 수트라라는 것은 지극히 간결한 문구로 요점을 표시한 글이다. 수트라는 태고의 현자(賢者)가 제작한 것으로서 성전서(聖傳書)의 일종이라고 한다. 베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전으로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1) <천계경(天啓經)>(<슈라우다 수트라>)-이것은 천계성전(天啓聖典:슐티)인 베다에 직접 기원을 둔 제사의 실행법을 기술한 것이다. (2) <가정경(家庭經)>(<그리히야 수트라>)-아리아인은 옛부터 가정내의 제사의례를 가장부처(家長夫妻)의 손으로 행하고 있었는데, <가정경(家庭經)>은 이와 같은 가정내의 제사를 요약하여 기술한 것이다. 그 속에는 원시(原始) 인도·유럽인의 풍습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3) <율법경(律法經)>(달마 수트라)-이것은 바라문의 처지에서 4성(四姓)의 권리·의무·생활기(生活期)를 규정한 것으로서 후세의 법전(<달마 수트라>)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다. (4) <제단경(祭壇經)>(<슈르바 수트라>)-이것은 제장(祭場)·제단(祭壇)·제화(祭火)의 설치에 관한 규정을 가르치고 있는 서적으로서 인도의 기하학(幾何學) 발달상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상 네 가지 종류의 경전(經典)을 총칭하여 <제사경(祭事經)>(<카루바 수트라>)이라고 부른다. 제사학(祭事學)은 음운학(音韻學)·운율학(韻律學)·천문학(天文學)·언어학(言語學)·문법학(文法學)과 일군(一群)으로 간주되어 이것들은 베다의 6보조학(六補助學)이라고 한다.

문법학의 체계적 수립[편집]

文法學-體系的樹立

문법학은 원래 <베다 성전(聖典)>의 해석학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문법학자는 베다의 정해(正解)와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시 문법학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나 파니니(Panini)가 가장 유명하다. 그가 시작한 문전(文典)은 고전 산스크리트의 표준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카티야야나가 비평적으로 보수하였고, 파탄쟈리가 상세한 주석을 붙여 미세한 점까지 규정하였다. 이 시대 이후 산스크리트는 발음·단어·문법도 거의 동일한 것을 계속 지켜왔다. 그들의 저작은 주로 산스크리트 문법의 세칙에 관한 것이나, 그 속에는 언어에 관한 철학적 고찰도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파탄쟈리는 언어와 그 의미와의 결합관계는 영원불변이며 상주(常住)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어상주론(語常住論)의 주장이 성립되었다. 바라문 문법학자들은 <베다 성전>의 언어는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원형(原型)이라고 생각하여, 어상주론(語常住論)에 의한 <베다 성전>의 상주 영원성(常住永遠性)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베다 성전>의 절대권위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