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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의 연출과 연기〔개설〕
[편집]唱劇-演出-演技〔槪說〕1908년 '원각사(圓覺社)'의 창립은 신극(新劇)의 시발점인 동시에 창극의 무대를 보게 되는 귀중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인기(一人技)인 판소리의 형식이 분창(分唱)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각기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며 노래로 그 맡은 바 인물을 표현하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창극의 연출은 전문적인 연출가가 없었고 그 무대표현도 유치하였다. 1908년대라면 서구에서는 근대극 수립을 위하여 사실주의 연출과 연기가 한창 논의될 때인데, 원각사 무대는 대개 흰포장으로 뒤를 막고 배경도 고정되지 않고 흔들흔들한 미비한 화폭이었다.
중국의 경극(京劇)이나 일본의 가부키(歌舞伎) 무대는 무대와 연기와 연출이 일정한 형식에서 전통예술로 계승·발전해 왔는데 창극은 우리 고유의 형식무대와 연출·연기를 갖지 못하여 출연한 창극배우들이 무대에서 왔다 갔다 하며 무계획한 연기를 하는 연출이었다. 물론 무대 조명 시설도 없어서 그저 백광(白光)의 전등불이 고작이었다.
1930년 '조선음률협회(朝鮮音律協會)'의 조직과 1932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의 발족은 전근대적인 그때까지의 창극을 일보 전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출 방법은 신극의 아류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신극적인 연출, 신극적인 연기에 창을 붙였고 춤이 가미되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도달한 것도 창극으로서는 큰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상태는 조금도 개선·향상되지 못하고, 1949년부터 일기 시작한 여성국극단의 수많은 공연은 오히려 일보 후퇴한 느낌이 있었다.
1962년에 발족을 본 '국립국극단(國立國劇團)'은 국극정립정신에 의해 비로소 그 형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는 동기를 가졌다. 1962년에 '국립국극단'이 시도한 <흥보가>(연출 이진순)는 이런 뜻에서 의의가 있었다. 즉 연출의 방향을 한국적인 고유의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 첫째 목표였다. 무대장치는 다목적 사용무대(多目的使用舞臺)로, 즉 간략하나마 동양화적(東洋畵的)인 화풍에 한 장면이 다음 장면에까지 응용되며 또는 한두 쪽의 변화로 간단히 다른 장소로 변경시킬 수 있었으며 무대 전면의 좌측에는 악사석, 우측은 도창석(導唱席)으로 설정하였다. 도창이라 함은 창극의 시초와 끝을 창과 아니리와 발림으로 진행시키고, 극 사이 사이에 설명과 묘사를 하여 다각도로 변하는 무대장면을 유기적으로 끌어가는 역할이다. 여기에서 창극 연기자들의 연기 방법은 소위 신극적인 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판소리에 있는 아니리(대사)와 발림(형용동작)을 주로 그 연기면에 사용한다. 그러나 아니리와 발림(혹은 너름새)만으로는 창극 표현이 부족하다.
창극이 우리나라 고유의 연출과 연기를 발휘하려면 한국적인 민속에서 창극의 극적 요소와 연기면을 보충할 수 있어야 할 줄 안다. 그렇다면 탈춤·가면극·인형극의 극적 형식을 가미시킴으로써 창극은 서구적인 연극 형태를 빌지 않는 독특한 고유의 우리 창극으로 무대화할 수 있어야 하며, 신극적인 대사는 창극에는 적합지 않고 대체로 아니리 조(調)로 대사를 사용하여야 한다. 연출은 이러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공한 사람이 맡아 새로운 고유의 창극 무대미학을 추구하여야 할 줄로 안다.
창극의 연기는 어디까지나 본격적으로 창을 전공한 사람, 즉 위에서 말한 창극의 무대를 이해하며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연기인이라야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명창이라 할지라도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창극 연기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창극 연기자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창극 연기자는 우선 창을 완전히 공부하고, 고전무용·탈춤·민속극의 기본적인 훈련을 거치고 전문적인 연기공부와 신체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창극 자체도 완전히 정립이 되지 못하였고 연출과 연기에 있어서도 앞으로 개발해야 할 많은 문제점이 있다.
<李 眞 淳>
창극의 대본
[편집]唱劇-臺本
창극에서도 신극에서와 같이 대본을 필수로 한다. '원각사' 시절의 창극 형태와 같이, 판소리의 창자(唱者)들이 배역을 나누어 판소리를 분창(分唱)하는 소박한 형태에서는 판소리의 창자들이 판소리의 사설과 가락을 모두 외고 있으므로, 간단한 약속 하에 서로 교대하며 불러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창극이 창극다운 형태를 갖추기 위하여서나 판소리를 창극으로 편극(編劇)하는 경우에는 대본이 필요하다. 창작창극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오페라의 대본이 순수연극의 대본과 다른만큼 창극의 대본도 순수연극의 대본과 다른 면이 있다. 우선 창극은 극중인물의 창과 대사, 그리고 무대 밖에서의 도창(導唱)으로 엮어가므로 이 세 가지를 적당히 배합하여야 한다. <춘향전>의 경우, 흔히 광한루 장면과 어사 출도 장면은 많은 대조가 된다. 전자에서는 본래 판소리의 이 대목은 방자와 이도령의 대화가 창으로 아기자기하게 엮어져 있으므로 그것을 그대로 옮겨 씀으로써 창이 주가 되게 구성하는 일이 많은 반면, 어사 출도 장면에서는 본래 판소리의 이 대목에서 자진모리 장단의 서사적인 장면묘사를 빼면 아니리로만 구성되므로, 이것을 창극으로 무대화했을 경우 자진모리로 부르는 대목은 극중 인물의 연기로 대체되고 아니리 부분은 모두 대사로 엮어가므로 창이 결핍된다. 따라서 광한루 장면과 어사출도 장면은 음악적 균형이 깨지고 있다.
창극은 판소리형 가락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므로 대본에서 창 및 도창으로 불리어지는 부분은 판소리 사설과 같이 4·4조의 운문으로 쓰는 것이 무리가 없다. 판소리를 창극으로 편극할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현행(現行) 판소리의 사설을 차용하는 것이 판소리 '더늠'을 살리는 데 좋고 그 더늠을 외고 있는 창자들에게도 편리하다. 따라서 현행 판소리사설이 아닌 고본(古本)을 차용하면 그만큼 창자들에게 불편하다.진양과 같은 느린 장단과 자진모리와 같은 빠른 장단으로 부를 경우, 다같은 길이의 대사일지라도 그 시차가 크므로 이 점은 창극의 대본작가·작곡가·연출가·연기자가 고찰해야 할 문제이다. 또 오페라에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있는 것처럼, 창극에도 간단한 대사로 처리하는 경우와 극중인물이 한바탕 소리하여 연기자의 창에 대한 기량을 발취하는 '아리아' 부분의 설정을 대본에서 미리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극중장면을 동시에 도창으로 묘사할 경우에는 극중장면과 도창과의 시차가 없도록 해야 한다.
창극의 작곡
[편집]唱劇-作曲
오페라의 경우 대본은 작곡가에게 넘어가 먼저 전곡(全曲)을 하나의 음악 예술품으로 완성시킨 뒤에 지휘자와 연출가에게 넘어간다. 창극의 경우에는 대본이 연출가와 작곡가에게 넘어가고 창극의 지휘자가 따로 없으므로 작곡가가 연기자에게 창 부분을 구전(口傳)으로 전수하여 음악을 지도하며, 연출가가 창극의 전체 진행을 지휘하므로 오페라에서의 지휘자 역할까지 겸하게 된다. 창극에는 아직 서양음악에서 뜻하는 창극 작곡가가 따로 없고, 판소리 및 창극의 연기자 중 작곡할 능력의 보유자가 작곡을 맡는데 서양음악에서처럼 악보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의 극중인물과 극적 상황에 따라 판소리의 음악적 이디엄에 맞게 장단(長短)과 조(調)를 짠다. 먼저 대본의 사설을 4·4조의 운문으로 창에 맞게 고치고, 독창·교창(交唱)·제창(齊唱)을 설정하고 판소리에서 쓰이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 등의 장단과 우조·평조·계면조·경조·설렁제 등의 조를 편성한다. 가락은 대부분 판소리식의 것을 빌려 쓰므로 엄밀한 의미의 작곡이 아닌 편곡의 경우가 많고 어느 범위 내에서는 창자의 즉흥적인 창에 맡기게 되므로 엄격한 고정선율(固定旋律)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창극 연출가의 준비
[편집]唱劇演出家-準備
창극에서의 연출가는 순수 연극에서의 연기뿐만 아니라 연기·대사·창·음악·무용·도창·민속놀이 및 한국적인 몸짓(mime) 등을 종합·통일하여 하나의 종합예술로 완성시키는 어려운 작업이 부과된다. 창극은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歌舞伎)에서처럼 무대와 연기와 연출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져 계승·발달된 것이 아니므로 한국적인 양식의 종합예술적인 창조는 하나의 예술 장르의 창조만큼이나 어려운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창극의 연출가는 한국의 고유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것을 창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는 창조적인 능력을 겸해야 한다. 따라서 대본에 나타난 극작가의 표현과 더불어 창극 형식의 창출(創出)이라는 작업은 순수연극의 연출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과거에 무계획하게 신극식의 연출을 창극에 적용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은 창극사(唱劇史)에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창극의 배역 결정
[편집]唱劇-配役決定
창극은 연출과정에서 순수연극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순수 연극과 오페라의 차이와 같이 연출 방법이 다를 뿐이다. 오페라에서는 창자의 성역(聲域)에 따라 배역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젊은 여자 주역은 소프라노, 그 상대가 되는 여자역은 메조 소프라노(혹은 알토), 젊은 남자 주역은 테너, 그 상대가 되는 남자역은 바리톤(혹은 베이스)으로 정해지는 예가 있으나, 창극에서는 남녀의 성별은 있어도 성역의 구분은 없다. 따라서 창극의 배역결정은 성역에 의하지 않고 연기자의 개성과 기능에 의한다. 다만 음질(音質)은 배역 결정에 구실이 되는 수가 있다. 특히 여성창극단은 여성만이 출연하기 때문에 중후한 음질의 소유자는 남자역을 하는 예에서 볼 수 있다. 판소리에서는 아니리와 발림이 서투른 경우에도 창으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이른바 '소리광대'가 있으나 창극에서는 창 기능뿐만 아니라 아니리와 발림, 즉 연기력이 필수가 된다.
창의 연습
[편집]唱-演習
대본에 나타난 창 및 도창 부분은 창극 작곡자의 창에 대한 지도로부터 시작된다. 오페라처럼 악보에 의한 개인 연습이 선행되는 것이 아니고, 작곡자가 장단과 조를 지시하고 직접 창을 불러서 구전, 심수(口傳心受)하는 것이다. 판소리일 경우에는 어느 정도 고정선율(固定旋律)이기 때문에 전수생에게 리듬과 가락뿐만 아니라 창법까지도 하나하나 교수한다. 그러나 창극의 경우에는 창자들이 어느 정도 판소리의 창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장단과 조 그리고 가락의 골격을 지시하지만 세부 창법과 같은 것은 창자의 기량에 맡기기 때문에 창자의 창법에 의한 개성이 배역마다 심하게 노출되기도 한다. 도창은 일반적으로 원로급 창자가 맡게 되므로 장단과 조(調)만 지시하고 나머지는 창자의 음악성과 표출력에 맡긴다. 제창의 경우에는 다수의 출연자가 같은 가락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합동 창 연습이 필요하다.
창극의 대본읽기
[편집]唱劇-臺本-
창극의 연기자에게는 대본에 나타난 연출자의 연출의도를 지시하되 창극 연기자들의 선입견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창극의 연기자들이 초연(初演)인 경우 판소리에서 숙련된 '아니리'와 '발림'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상대역과 대면할 경우는 판소리와 창극의 이질성에 접하게 된다. 창극에는 연출의 전통이 따로 없으므로 숙련된 연기자들은 광복 전후에 성행한 신극식 창극 연기의 후유증을 안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판소리와 창극의 아니리 및 발림의 차이점, 그리고 창극과 신극의 연기의 차이점을 미리 예시할 필요가 있다.
창극의 동작 연습
[편집]唱劇-動作演習
중국의 경극(京劇)이나 일본의 가부키에서는 전통적인 연기나 몸짓이 형식화되었기 때문에 연출자나 연기자는 공통된 표출 방향으로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창극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어려움이 있다. 판소리의 아니리와 발림에 기초를 둔 대사와 연기를 하되 판소리의 아니리와 발림은 무대물로서는 그 표현능력이 좁기 때문에 이것을 확대, 보완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이 작업에서의 표현재료는 탈춤·가면극·인형극·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전통무용 등에서 한국 고유의 동작을 발굴하고 이것을 창극에 도입시켜야 한다. 이 점은 특히 무언극(無言劇)이나 무용극과 같은 몸짓(mime)으로 표현 수단을 삼을 경우에 더욱 강조되어야 하며, 반복되는 리듬으로 몸짓을 할 경우에는 한국 전통음악의 리듬을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연기자와 관객이 모두 공감을 갖는 무언의 약속된 몸짓을 찾는 것은 창극의 정립이라는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리듬의 활용에 있어서 창과 접합할 때 그 배합을 고려하는 것이 음악적인 과제로 남는다. 이를테면 창은 판소리의 중중모리로 부르며 몸짓은 탈춤에서 흔히 쓰는 타령을 쓸 때, 중중모리와 타령이 갖는 악센트의 차이로 창의 음악성을 파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즉 창의 리듬, 몸짓의 리듬. 반주음악의 리듬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야 하겠다.
창극의 일관연습
[편집]唱劇-一貫練習
대사·창·동작으로 엮어서 일관 연습에 들어가 하나의 연속적인 연극의 흐름이 이루어질 때 대본이 갖는 연극으로서의 템포·리듬과 창극으로서의 템포·리듬의 부분적인 차이가 여기저기서 노출된다. 연극적인 템포가 음악성을 압박하거나 음악적인 표현의 강조가 연극적인 긴박감 내지 사실성을 이완시키는 이율배반이 따르는 수가 있다. 이때에 어느 것을 택하여 하나를 우위에 둘 것인지 혹은 양자를 절충할 것인지는 연출자의 재량이겠지만, 종합예술로서의 창극의 예술적 창조력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순수 연극에서는 단순한 동작의 되풀이가 지루한 사족이 될 수 있으나 여기에 음악을 도입할 때는 점증적인 고조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 종합예술의 마력이다. 즉 창극의 흐름은 연극구성적인 흐름과 음악구성적인 흐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연극으로 보아서는 클라이맥스인데, 음악으로 봐서는 이완되는 불균형은 작곡자나 연출가들이 범하기 쉬운 창극의 함정이다.
창극의 총연습
[편집]唱劇-總練習
창과 대사읽기와 동작 연습의 일관연습을 거친 뒤에도 무용·무언극·도창·삽입음악 등의 종합예술의 여러 수단을 동원할 때는 창극은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갖기 때문에 창극의 흐름이 단절이 되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연출자는 무대에서의 진행과 전환이 도창 및 반주음악과 합치되도록 조절해야 하며, 창으로 나타내는 음악적 시간에서 모든 배역이 연극으로서의 시간적 공백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로 메워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