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창 극/창극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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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의 음악〔개설〕[편집]

唱劇-音樂〔槪說〕

창극은 무대에서 배역을 분담한 창우(唱優)들이 창(唱, 소리)과 아니리(臺辭)를 하고 연기를 하므로 서양음악의 오페라(opera)와 비슷하다. 창극의 창우가 부르는 성악곡, 즉 창은 판소리식의 선율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며 장면에 따라 판소리 선율이 아닌 성악곡을 삽입하기도 한다. 아니리는 판소리식의 아니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지금은 신극(新劇)식의 대사를 쓰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연기는 판소리의 발림을 확대하는 것이 원칙이나 지금은 신극식 연기를 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반주음악은 판소리와 같이 북장단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몇 개의 국악기로 간단히 반주음악을 쓰기도 한다. 무대 뒤 혹은 무대 옆에서 극의 내용이나 장면을 창으로 해설하는 도창(導唱)을 쓰는 경우가 많다.

창극음악의 연혁[편집]

唱劇音樂-沿革

창극은 1905년 원각사(圓覺社) 시절에 종래 한 사람이 북장단에 맞추어 부르던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배역을 분담하여 부르던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무대 뒤에는 백포장을 치고 발림식의 소박한 연기를 하며, 대사(臺辭)에 해당하는 대목은 배역에 따라 나누어 부르고 해설에 해당하는 대목은 딴 사람이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도창이 되었다. 반주는 판소리에서처럼 북장단이 주가 되었다 한다. 원각사 전속 창극단체인 협률사(協律社)를 거쳐 1912년 광무대(光武臺),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를 거치는 동안 창극은 신극적 요소를 차차 도입하게 되었고, 창작창극(創作唱劇)을 상연하면서 신극에 가까운 장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1936년 창극좌(唱劇座), 1939년 화랑(花郞), 동일극단(東一劇團), 1942년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 등에서는 오늘날 볼 수 있는 무대형태를 갖추었다. 8·15광복 후에 국악원(國樂院) 산하단체인 국극사(國劇社)에서는 1946년 1월에 <대춘향전(大春香傳)>을 공연하였는데 배경음악과 무용음악에 궁중음악·대취타 등을 쓰는 최대의 규모로 편성된 때도 있었다. 해방 후 국극사·장악회(掌樂會)·국극협회(國劇協會)·조선창극단·여성국악동호회(女性國樂同好會) 등을 중심으로 창극의 붐을 이루었고, 6·25전쟁 에는 5-6년간 여성국악동지회(女性國樂同志會)·삼성창극단(三星唱劇團)·햇님창극단·여성국극협회·국극석·우리국악단·여성국악단·임춘앵(林春鶯)과 그의 악단 등 많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창극단이 전성기를 이룬 바 있다. 이들 극단이 공연한 창극들은 대부분이 창작창극으로 구성·분장·연기 등이 신극과 거의 같으며, 대사는 구어(口語)와 창(唱)을 반반 섞은 것이었다. 반주음악은 피리·대금·해금·아쟁·장고 등으로 편성된 간단한 합주음악을 썼다. 1962년 2월에 국립극장 전속 창극단체인 국립창극단이 생기고, 국극정립위원회가 결성되어 창극의 정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판소리를 중심으로 창극의 음악적 정립에 성과가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형태가 잡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적인 마임(mime)을 도입하기 위하여 가면과 탈춤발림을 심청가와 흥부가에 썼으나 탈춤과 판소리의 음악적 이질성(異質性)으로 말미암아 좌초에 부딪혀 이 문제는 숙제로 남아 있다.

창극의 종류[편집]

-唱劇-種類

창극은 유래상 3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판소리를 창극화시킨 것으로 판소리의 '더늠'과 사설을 그대로 끌어다가 창극으로 고친 것이며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수궁가> 등이 있다. 이것들은 판소리의 기존 가락인 더늠을 그대로 쓰기 대문에 판소리의 고도한 음악성을 차용할 수 있으나 판소리의 구성을 살리다보니 극으로서 구성이 산만해진 것이 결점이다.

둘째는 더늠이 소멸된 판소리 사설이나 고대소설의 내용을 창극으로 꾸민 것인데 더늠의 구애가 없으므로 연극에 알맞는 구성으로 각색하여 쓴다. 음악은 임시로 작곡 및 편곡하여 쓰므로 음악적으로 봐서 첫째의 것보다 떨어진다. 예컨대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등이 있다.

셋째는 순수 창작창극으로 대본이 새로 창작된 것이며 음악은 둘째의 것과 같다. <호동왕자> <해님 달님> 등이 있다.

창극의 편곡법[편집]

唱劇-編曲法

창극은 판소리를 무대화한 데서 비롯되므로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기존 판소리를 창극으로 편곡할 때는 될 수 있는 한 원곡(原曲)을 그대로 인용한다.

더늠이 소멸된 판소리 사설이나 창작창극의 경우 기존곡이 없으므로 대본에 의하여 판소리식의 창과 아니리를 짜되 판소리의 구성에 따라 조(調)와 장단을 극적 상황에 맞게 한다. 극중인물과 극적상황이 남성적이고 화평한 장면에는 우조(羽調)를 쓰며 여성적이고 슬픈 장면에는 계면조(界面調)를 쓴다. 진양은 서정적인 장면에, 중모리는 서정적인 장면 혹은 서술적인 장면에, 중중모리는 흥겨운 장면 혹은 통곡하는 장면에, 자진모리는 길게 사물이나 사건을 나열하거나 긴박한 장면을 서술할 때 쓴다. 대부분 독창을 쓰고 장면에 따라 중창과 합창을 쓰나 말이 중창·합창이지 실제는 모두 제창이다.

<李 輔 亨>

도창[편집]

導唱

창극에서 무대 뒤 혹은 옆에서 극중의 인물이 아닌 제3인이 극의 내용 혹은 장면의 해설을 창으로 부르는 것으로 대개 중모리 장단이 주가 되며, 장면에 따라 진양·중중모리 때로는 자진모리 장단을 쓴다.

피날레 창[편집]

창극 맨끝 장면은 대합창으로 끝나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는데 이 합창을 서양 음악의 용어를 따서 속칭 피날레 창이라 한다. 중중모리로 '얼시구나 절시구' 하고 부르는 것은 판소리식이고 그 밖에 <성주풀이>를 부르기도 한다. 해방 직후에는 4분의 2박자의 신민요식 피날레 창이 유행해 피날레 창하면 이것을 말하기도 한다.

창극소리[편집]

唱劇-

판소리를 여럿이 나누어 분창(分唱)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므로 초창기 창극의 가락은 판소리 가락과 일치하였으나 창극이 연극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어지면서 창극투의 가락이 생겼다. 이것을 판소리 본연의 가락과 구별하기 위하여 창극소리라 부른다. 창극소리는 첫째로 판소리가락에 비하여 음악적으로도 정연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하다. 그것은 새로 만든 창극대본의 사설에 창극가락을 짜는 이가 단시일에 가락을 붙이거나 창우가 즉흥적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판소리가락에 비하여 인위적으로 장식된 가락이 많이 끼어 있거나 대중이 쉽게 좋아하는 가락이 쓰인다. 그것은 여러 배역의 출연으로 창우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으므로 짧은 시간에 대중에게 쉽게 자기 기량을 발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창극에 맞게 편곡되거나 새로 작곡된 곡이 많다. 이 중에서 유명한 것으론 창극 춘향가에서의 계면조 사랑가와 창극 심청가에서의 뱃노래이다.

계면조 사랑가[편집]

界面調-歌

창극 춘향가에서 불리어지는 사랑가로서, 고제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의 가락과 다르다. 고제 판소리 사랑가는 그 사설이 '만첩청산'으로 시작되고 진양 우조(羽調)로 되었으나 창극 춘향가의 사랑가는 그 사설이 '사랑 사랑'으로 시작되고 진양 계면조로 되어 있다.

뱃노래[편집]

판소리 심청가의 '범피중류'를 창극에 맞게 편곡 내지 작곡한 것으로 전반(前半)은 진양 범피중류의 가락에 민요 뱃노래의 후렴을 간간이 끼웠고 후반(後半)은 자진모리로 작곡된 것이다.

창극의 반주음악[편집]

唱劇-伴奏音樂

창극은 판소리식으로 북반주가 원칙이나 후에 피리·젓대·해금·아쟁·가야금·장고 등과 같은 국악합주가 반주를 맡게 되었다. 독창과 합창에는 성악에 즉흥적으로 제주하고 무용반주음악과 배경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무용반주음악은 살풀이·굿거리·허튼타령·반염불 같은 민속무용이 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