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판 소 리/판소리의 종류
판소리의 종류〔개설〕
[편집]-種類〔槪說〕
판소리가 하나의 민속음악으로서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완성의 단계에 이른 시기는 대체로 조선왕조 숙종(肅宗)조로부터 영조(英祖)조까지의 시기라 생각된다. 또한 판소리의 전성시기는 대개 정조(正祖)조로부터 철종(哲宗) 연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18세기 말경에서 19세기 초까지가 그 황금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저 유명한 판소리 작가이며 이론가인 신재효(申在孝, 1812∼1884)와 8명창(八名唱) 등이 배출(輩出)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판소리에는 열두 소리가 있는데 이를 열두 마당이라고도 한다. 1810년경 간행된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 본사가(本事歌) 대목을 보면, 판소리의 열두 마당을 <춘향가(春香歌)> <화용도타령(華容道打令)> <박타령>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 <변강쇠타령> <왈자타령(曰字打令)> <심청가(沈淸歌)>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옹고집타령(甕固執打令)> <가짜신선타령> <토끼타령> <장끼타령> 등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 철종 때(1852)에 제작된 윤달선(尹達善)의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 서(序)에도 판소리에 12강(十二腔)이 있음을 기록하였고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도 판소리에 열두 판(마당)이 있음이 서술되어 있다. 그 중 열 마당은 <관우희>의 것과 같으나 다만 <관우희>의 <왈자타령>을 <무숙이타령>이라고 하고, <가짜신선타령>을 <숙영낭자전>이라 한 점만이 다를 뿐이다.
이상의 근거로써 최소한 1810년 이전부터 판소리에 열두 판이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재효 때에 내려와서는 그 대부분이 불리지 않았고 그 후에도 차차 줄어서 지금은 겨우 다섯 마당이 불리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화용도(적벽가)> <박타령(홍보가)> 등은 실제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며,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등은 사설(唱本)만 전해오고 있을 뿐 실제로 불리지는 않는 것들이다. <강릉매화타령> <왈자타령(무숙이타령)>은 창본도 전해지지 않고 물론 불리지도 않는 것들이다. 그 중 <숙영낭자전>은 근세의 명창 정정렬(丁貞烈)제가 불리고 있는데 이것이 정정렬 작곡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므로 이것과 철종·고종 시의 명창 전해종(全海宗)의 <숙영낭자전>의 가락과 사설의 전승 관계는 애매한 바가 있다.
판소리의 마당수가 앞에서 열거한 여러 전적(典籍)들에 의해 열두 마당으로 되어 있는 것은 판소리가 꼭 열두 마당뿐이었다는 것보다는, 선인들이 민속적으로 '열둘'이란 숫자를 좋아한 데서 판소리에서도 열두 마당으로 맞추어 일컫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판소리의 레퍼토리는 열둘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나 혹은 이하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姜 漢 永>
판소리 다섯 마당
[편집]판소리 열두 마당 중에 현재 불리어지는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水宮歌)>를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 하여 열두 마당에서 독립시켜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다섯 마당에는 역대 명창들의 '더늠'이 전해지고 있다. <숙영낭자전>은 정정렬(丁貞烈), <장끼전>은 김연수(金演洙)가, <변강쇠전>은 박동진이 복원하여 불렀으나 열두 마당 시절의 가락을 전승한 것은 아니며 새로 편곡하여 부른 것이다.
춘향가
[편집]春香歌
<춘향전>의 한역본(漢譯本) 가운데에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晩華本)>이 있는데 이 책은 영조(英祖) 30년(1754)경에 간행된 것이므로 이에 따라 <춘향가>는 1754년 이전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열두 마당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소리이며, 많은 이본 창본(異本唱本)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열녀춘향수절가>, 신재효 작 <춘향가>, 정북평(丁北平) 창본인 <옥중가>, 이선유의 <춘향가>, 이해조(李海朝)의 <옥중화> 등이 있다. <춘향가>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의 숭고함이며, 많은 설화를 씨줄과 날줄로 하여 엮어 놓았다.
심청가
[편집]沈淸歌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심청가>의 내용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 소리 역시 <춘향가>와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순조(純祖) 때의 명창인 박만춘(朴萬春)이 <심청가>를 윤색(潤色)·개작(改作)하였다는 <조선창극사>의 기술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심청가>는 효(孝)가 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불교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대표적인 창본으로는 완판(完板)·경판(京板)·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흥보가
[편집]興甫歌
이 소리 역시 송만재의 <관우희> 중에 수록된 작품인 것으로 보아, 그 성립시기는 최소한 <춘향가> <심청가>와 거의 같은 시대의 것이거나 그보다 앞섰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8명창 중에 가장 선배인 영조·정조 때의 권삼득(權三得)의 '더늠'이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었다는 점이 뒷받침해 준다. <흥보가>의 주제는 '형제의 우애'이며, 실학(實學)의 영향을 입은 근대적 경제사상이 강조되었다. 경판 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대표적 창본이다.
토별가
[편집]兎鼈歌
<수궁가(水宮歌)>라고도 하며, <관우희> 중에 있는 작품인 점으로 미루어, 영조 30년(1754) 이전의 판소리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별주부(鼈主簿)가 용왕의 병을 고치고자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으로, 충(忠)이 일종의 테마인 듯하면서도 문무(文武)의 상쟁 속에 암매(暗昧)한 지도자를 풍자한 작품이다. 대표적인 창본으로는 완판본·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적벽가
[편집]赤壁歌
일명 <화용도(華容道)타령>이라고도 하는데, 이 소리 역시 <관우희> 중에 수록되었다. 순조·헌종·철종의 3대에 걸쳐 활약한 명창이며,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모흥갑(牟興甲)이 이 <적벽가>로 유명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불려온 창본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고대소설 <삼국지> 중 적벽대전에서 조조(曹操)가 크게 패하는 대목이 그 내용이다. 대표적인 창본으로는 완판본·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9명창 이후 이 소리를 부르는 이가 차차 줄어들어 현재는 정권진(鄭權鎭) 한 사람뿐이다.
변강쇠가
[편집]일명 <가루지기타령> <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한다. 이 소리 역시 <관우희> 중에 들어 있고 판소리 원로의 한 사람이며, 8명창의 한 사람인 송흥록(宋興祿, 純祖∼哲宗)이 <변강쇠가>를 잘 하였다는 서술이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1810년 이전부터 불려온 창본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음탕한 변강쇠와 음녀인 용녀의 난음한 생활을 묘사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성(性)과 육체를 부정한 듯한 내용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려는 것같이 보이며, 실학 사상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창본으로는 신재효본이 있을 뿐이다.
장끼타령
[편집]일명 자치가(雌雉歌)라고도 한다. 이 소리도 1810년 이전에 설화(說話)가 판소리 사설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추측은 순종·철종 때의 명창으로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염계달(廉啓達)이 <장끼타령>을 잘 불렀다는 <조선창극사>의 기록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 후 고종 때의 명창 한송학(韓松鶴)이 이 소리를 불렀으며, 그의 '더늠'인 까투리 해몽(解夢)의 1절이<조선창극사>에 전해 온다. 그러나 현재는 이를 부르는 사람이 없다. 창본으로는 김동욱(金東旭)본·국립도서관본 등이 있다. 꿩을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 남녀의 절개 없음을 풍자한 것이 그 내용이다.
배비장타령
[편집]裵裨將打令
현재 불리지 않고 있는 소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에 이 소리의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810년경 이전에는 많이 불렸을 것으로 생각되며, 누가 불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다. 내용은 제주도에 부임한 배비장이 그곳 기생 애랑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것으로, 유교의 공허한 형식주의적인 관념에 대한 비평이다. 완전한 창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판소리 사설을 소설화한 김삼불(金三不)본이 전할 뿐이다.
옹고집타령
[편집]甕固執打令
1810년대에 간행된 <관우희>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하나로서 <옹고집타령>이 수록된 점으로 미루어, 이 소리도 판소리 전성기 때의 전래설화가 판소리 사설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용은 인색하고 고집세고 욕심많은 불효자인 옹고집을 한 도사(道士)가 도술로써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인데 이 소리 역시 누가 불렀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판소리 사설을 소설화한 김삼불본(本)이 있을 뿐이다.
강릉매화타령
[편집]江陵梅花打令
이 소리도 1810년 이전부터 불려 온 듯하나 현재는 부르는 이가 없다. 창본도 전해진 것이 없으며 단지 <관우희> <교방가요(敎坊歌謠)> 등에 한두 줄의 시로서 그 이름만이 알려졌고 신재효작인 <5섬가(五蟾歌)>의 1절 속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 내용의 단편을 짐작케 할 뿐이다. '강릉 책방 골원을 매화가 속이랴고 백주에 산 사람을 거짓되이 죽었다고 활신벽겨 앞세우고 상예 뒤를 따라가며 이 사람도 건드리고 저 사람도 건드리며 자지예 방울차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또한 굿실네라'.
왈자타령
[편집]曰字打令
일명 <무숙(武叔)이 타령>이라고도 한다. 이 소리가 1810년대 이전의 전래 판소리인 것은 송만재의 <관우희>에 열두 마당의 하나로 그 이름이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써 알 수 있으나 그 후 이 소리를 부른 광대가 없고 창본도 발견되지 않아 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서울 장안의 왈자들의 생활이 그 내용인 것만은 <관우희>의 원문에 의해 짐작할 수 있다.
숙영낭자타령
[편집]淑英娘子打令
송만재의 <관우희>에 의하면 <가짜신선타령>이라고도 하는데 이 판소리도 1810년대 이전부터 전래한 것이다. <조선창극사>에 보면 헌종·철종·고종 때의 명창인 전해종(全海宗)이 이 소리를 잘 했다는 기술이 있어, 조선조 말엽까지만 해도 불리었던 소리로 생각된다. 그러나 창본은 전해오지 않고 <관우희>의 기록에 의해 내용의 개략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한 어리석고 못생긴 이가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한 늙은 선사(禪師)의 지시로 천세해도와 천일주란 것을 얻어 먹고 신선이 되는 줄 알았으나 결국 속고 말았다는 내용이며 현실에서 도피하여 무릉도원(武陵桃源)에 일신을 밑기려는 조선조의 지식인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姜 漢 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