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문화·민속/한국의 연극/한국의 신극/창작극의 해설과 감상
창작극의 해설과 감상〔개설〕
[편집]創作劇-解說-鑑賞〔槪說〕한국의 희곡사(戱曲史)는 그 역사도 짧고 고전적인 가치를 가질만한 작품도 매우 적다. 한국의 연극은 대개 동양연극이 그러하듯이 제의적(祭儀的) 요소와 놀이적 요소를 강조하고, 스펙터클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연극의 치밀한 구성을 무시했고, 문학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이와같은 바탕에서 희곡이 생성·발전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희박하기 마련이고 혹 가면극이나 인형극에 사용된 대본이 있다한들, 그것은 희곡으로서의 완전한 체재를 갖춘 작품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한편 고전 희곡의 전통이 없는 가운데 근대극으로서의 발전을 본 신극(新劇)이 불과 60여 년 만에 우수한 희곡을 양산(量産)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게다가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이 36년간이나 계속되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희곡사를 적막하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다. 191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작희곡의 수는 500여 편이 넘고 동원된 작가만도 100여 명을 헤아린다. 물론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질에 있어 2천년의 역사를 가진 서구(西歐)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적막하다는 표현이 옳지만 그래도 그 중에 한국적 풍토와 한국인 특유의 정신문화를 대변할 만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희곡의 형식을 갖추고 처음 오리지널한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10년대 즉, 개화 초기로서 계몽주의적인 내용을 담은, 희곡으로서는 유치한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주로 판을 친 작품들은 일본의 신파극(新派劇)을 그대로 번안한 눈물짜내기 멜로드라마들로서 서구적 근대의식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창작희곡으로 기억할 만한 작품은 전혀 없었다.
한국의 연극이 신파극을 탈피하고 근대극의 터전을 닦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창작극의 경우 서구의 새로운 사조(思潮)가 수입되면서 구제도(舊制度)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 또 기성윤리와 도덕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는 한편 일제의 무단정치(武斷政治)에 의한 3·1운동의 좌절로 인한 가중되는 압제에 대한 울분과 민족의 새로운 자각에의 외침이 짙게 풍기게 되었다. 특히 사회사상가로서의 사명과 현실과의 갈등에서 오는 지식인의 고민을 그린 김우진(金祐鎭)의 작품들은 이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아직도 그 대사가 생경(生硬)하고, 작가의 주장이 표면에 지나치게 노출되며, 인물이 유형화(類型化)된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결점들이 시정되고 도입 초기에 있었던 어설픈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연극이 완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유치진(柳致眞) 등이 활약한 1930년대인데 사실 한국에서 본격적인 희곡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토막> 이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대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썼는데, 그것은 농촌이 바로 조국의 상징이며, 정신의 고향이고 일제의 탄압과 착취에서 가장 피해를 받고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촌을 테마로 한 저항적인 활동도 일제의 사상(思想) 탄압이 가중되면서 불가능해지자 작가들은 리얼리즘의 예봉을 꺾고 낭만주의적 사극(史劇)이나 소박한 인정극(人情劇)으로 방향을 돌림으로써 모처럼 우수한 창작극이 생산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다만 그로 인해 황무지였던 사극 분야가 개척된 것은 하나의 수확이었다. 한국 작가의 최대의 수난기는 일제말로서, 이 시기는 '국민연극'이란 미명 아래 친일적인 어용(御用)연극을 해야 했던 시기로, 한국연극의 암흑기라 할 수 있다.
8·15광복은 그러한 작가들에게 더할 수 없는 환희를 안겨주었지만 한편 극계는 좌우익(左右翼)으로 갈려 좌익의 이데올로기 선전극이 한창이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우익진영작가들은 민족연극 수립의 새로운 사명을 실천하기 시작, 일제의 잔인성을 상기시켜 주거나 독립운동을 테마로 하는 민족의식 고취의 역사·시대극 또는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희곡을 썼다. 그런 가운데서 오영진(吳泳鎭)만은 특이하게 해방 후의 사회악을 통렬히 풍자하는 희극을 써서 비극만 보아오던 관객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흉작을 면치 못한 시기였다.
그 흉작이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립극장의 개관과 사회 안정 등으로 만회되리라 예상됐지만, 6·25전쟁과 전후의 어수선한 상태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 시기에는 전쟁의 비극(차범석, 이무영), 공산주의(유치진), 전후의 혼란과 사회악(임희재, 주평)을 소재로 한 희곡이 압도적이었고, 대체로 리얼리즘 계열의 연극이었는데 전쟁을 치른 한국에서 훌륭한 희곡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 체험을 직접 치렀지만 미처 여과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사건의 배경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현대의 도시생활로 옮겨지고 농촌이 제외되었다는 것이 큰 변화이다. 그 외에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서 색다른 것은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버릴 수 없는 영원에의 꿈을 추구한 작품(김경옥, 오학영) 들이다.
신극(新劇) 60주년을 맞은 1960년대와 1970년대도 초기에는 한국연극의 부흥기를 만난 듯 30-40대 중진들의 활동이 활발했고, 또한 신인들의 등장이 눈부셨다. 그들은 몇 개의 부류로도 묶을 수 없을만큼 다양한 재능과 개성을 발휘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없었던 일로 매우 고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신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특색을 굳이 말한다면 젊다는 것 이외에 역사와 현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 하고, 사회 현실보다는 현대인의 내면적인 정신과 심리에 관심을 가졌으며, 제재의 리얼리즘 연극의 수법이 아닌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려고 한 점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의 창작극무대로 주목받은 작품들로는 우선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오른 작품들 중에서 골라낼 수가 있다. 이들 무대들은 희곡과 실연심사를 거쳐서 무대에 오른 작품들이거나 수상경력을 가지고 초청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초청공연된 대구의 극단 '달구벌'의 최현묵 작·이상원 연출 <뜨거운 땅>, 공식참가작인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조광화·김창화 연출 <여자의 적들>, 극단 '전망'의 장윤환 작·심재찬 연출 <여시아문>, '국립극단'의 이근삼 작·김광림 연출 <춘향아 춘향아>, 극단 '신시'의 김상열 작·연출 <님의 침묵>, 극단 '동수'의 정찬 작·오은희 각색·김동수 연출의 <슬픔의 노래>, 극단 '연우무대'의 김광림 작·연출 <날 보러 와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작·권호성 연출 <블루사이공>, 극단 '서전'의 홍원기 작·박계배 연출 <진짜신파극>, 극단 '미추'의 최인훈 작·손진책 연출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등이다. 연극제에는 이 밖에도 번안 뮤지컬인 '학전'의 <지하철 1호선>과 역시 명작의 재해석인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이 등장했으나 이들은 순수창작의 의미에서는 제외되어야 할 것 같다.
<뜨거운 땅>은 제13회 전국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884년에서 1919년까지 국채보상운동·삼일운동 등을 배경으로 국채보상운동·독립운동을 해온 청년과 친일 매국노 등을 주인공으로 하여 우리의 근대사에서 끌어낸 얘기로 무대의 전체적인 앙상블에서 평가를 받았다.
<여자들의 적들>은 가부장의 권위와 권력, 거기에 대응하는 여성의 삶을 가마, 거세, 전쟁, 겁탈, 어머니, 살해 등이 나오는 옛날 이야기 같은 형태로 여자의 적은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끌어낸 작품이다. 이 무대는 젊은 작가 조광화의 등장이라는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여시아문>은 우리의 고전 <춘향전>에서 탐관오리 변학도의 학정을 희화적인 모양으로 그려내 권력의 횡포와 남용을 풍자했다. 이 무대는 <색시공>으로 무대에 도전한 바가 있는 연극기자 출신의 작가 장윤환의 오랜만의 신작으로 주목받았고, 마당극 형식으로 꾸며진 무대는 배우들의 장기를 살린 활력있는 무대로 평가됐다.
<춘향아 춘향아> 역시 춘향전을 사랑과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다시 읽어낸 작품이다. 옥에 갇힌 춘향을 구해내기 위해 출도하려던 어사 이몽룡은 자신의 아버지가 탐관오리 변학도와 얽혀 있는 부패한 권력의 내부를 발견하고 떠돌이가 되어버린다. 이 무대는 신인배우 곽명화의 춘향역 발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국립극단의 연극제 공식참가 첫 사례로 얘기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는 전국환·서희승 등이 좋은 연기자로 꼽혔다. <여시아문>과 <춘향아 춘향아>는 '민예'가 소극장무대에 올린 재미극작가 장소현의 <춘향이 없는 춘향전 사또 96>과 함께 우리 고전을 소재로 한 새로운 창작으로 이들 작품들은 1996년 연극무대에서 고전의 재해석·재구성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님의 침묵>은 1983년 초연작으로 초연 당시의 주역인 배우 김갑수가 다시 등장한 뮤지컬이었다. 시인이며 승려이며 독립투사였던 만해 한용운에 대한 찬가로 쉬운 노래와 볼거리로 엮어진 무대였다.
<슬픔의 노래>는 계엄군으로 광주항쟁 진입에 참여해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으로 방황하는 슬픔과 광기의 인물인 연극배우와 피해자인 영화학도,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인 기자 등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한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교향곡 <슬픔의 노래>의 작곡가 헨린 구레츠키를 취재하러 폴란드에 간 기자의 시각으로 광주항쟁의 비극을 다시 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을 각색한 오은희는 뮤지컬 작품을 주로 해온 젊은 작가로 이 작품의 각색에서 능력을 보였고, 박지일·남명열·정원중과 초연 때 참가배우인 이대연 등이 모두 좋은 연기로 평가를 받았다.
<날 보러 와요>는 희곡과 무대 모든 면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해서 범인을 찾아내려는 형사들의 어려운 수사과정을 그려내면서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멀어지는 진실에 대한 되풀이되는 질문을 던진다. 짜임새 있는 희곡, 박진감 있는 전개, 네 명의 용의자역을 한 배우 류태호를 비롯한 연기진의 앙상블 등으로 좋은 평가와 갈채를 받았다.<불루 사이공>은 1989년 창단 이후 <들풀> <우리로 서는 소리> <꿈꾸는 기관차> 등을 만들면서 차근차근 힘을 키워온 젊은 극단이 만든 수작이었다. 월남전, 거기 참여했던 김상사, 그의 월남아들과 한국의 딸, 고엽제의 피해,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후유증 등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김추자의 히트송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적절하게 사용한 음악이나 손병호를 중심으로 꾸민 연기진의 모습이 어우러져 좋은 무대로 평가를 받았다. 이 무대는 1996년에 등장한 상당수의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돋보이는 무대로 월남전을 다룬 희곡의 짜임새로도 인정을 받았다.
<진짜 신파극>은 아직도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상당히 날카롭게 냉소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천황이 항복을 하고 이 땅에서 물러난 후에도 계속 일본천황을 숭배하면서 온 가족을 데리고 무인도에 들어가 일본인보다 더 철저하게 일본식으로 사는 노인과 비정상적인 가족관계 속에서 병든 삶을 사는 그 식구들, 노인이 숨긴 보물을 차지하려고 섬을 찾아온 그의 손자 등이 펼치는 얘기를 그야말로 신파극 같은 모양으로 보여준다. 무대는 희곡의 재치를 따르지 못했고 작가의 의도를 구체화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최인훈 연극제에서 공연을 갖고 실연심사를 거쳐 연극제에 참가한 작품으로 긴장감을 공연의 주축으로 해서 아주 천천히 얘기하는 방식으로 깨끗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배우와 함께 조화되면서 움직인 무대장치의 돌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무대는 나중에 베이징에서 열린 베세토 연극제에도 참여했다. <진짜 신파극>이 일제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젊은 작가의 냉소적인 비판을 보여준 것이었다면 <제국의 광대들>은 그 시대를 딛고 일어서보려는 중견작가의 열정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배우협회가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윤대성 작·박원경 연출에 강계식 선생 팔순기념공연이라는 명목이 붙었고, 원로·중견·신진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무대였다. 이 작품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형된 이토 히로부미가 지금까지 늘 되풀이되어온 일본정치인들의 각종 망언들과 함께 계속 살아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늘의 대학생 혁재로 하여금 안중근 의사가 되어 그때마다 이토를 저격하는 환상체험을 껐?만든다. 역사를 보고 역사의 꿈을 캐내려는 작가의 이상이 선명하게 드러난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뮤지컬 전문극단 '에이콤'이 1995년 연말에서 1996년 정초로 이어지는 무대에 내놓은 <명성황후>나 국립극단이 2월 무대에 올린 <반도와 영웅>도 일본식민기를 전후한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어서 1996년 창작무대의 한 맥으로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인에 의해 자행된 명성황후 사해사건을 다룬 뮤지컬 <명성황후>는 1996년 대형뮤지컬의 선두로 많은 관객를 얻었다. 무대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재판정에서 오히려 공을 자랑하고 치하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을 해서 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세력을 견제하려 했던 명성황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얘기한다. 대형무대의 방만함과 함께 명성황후의 모습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문열 작·김광림 재구성·윤호진 연출·김희갑 작곡으로 만든 이 무대는 많은 관객호응을 얻어내 대형 창작뮤지컬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로 그 후 많은 뮤지컬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명성황후>로 시작된 1996년의 창작뮤지컬 무대는 '환퍼포먼스'의 <'96고래사냥>, '서울뮤지컬컴퍼니'의 <쇼 코미디>, '에이콤'의 <겨울나그네> 등의 대형무대와 '서울뮤지컬컴퍼니'의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필두로 한 소극장 뮤지컬들이 있었고 시립가무단의 창작무대로는 <시집가는 날>의 리바이벌과 오은희 작·최종혁 작곡·손정우 연출의 <빅토르 최>를 의욕적인 무대로 꼽을 수 있으며,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우리 음악과 춤을 바탕으로 한 '미추'의 총체무대 <하늘에서 땅까지>는 손진책·박범훈·김지일 등 마당놀이에서 모아진 힘들이 시도한 대작이었다. '서울창무단'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외국공연을 겨냥하고 만든 노래와 춤이 있는 무대였고, 국립국악원이 제작하고 극작가 정복근·연출가 한태숙 등 연극세력이 참가한 <세종 32년>도 총체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만든 무대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많아진 뮤지컬무대를 통해서 새로운 뮤지컬 배우들이 부상하고 다양한 분야의 무대참여가 유도됐다. 또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서는 번역극(飜譯劇)에 대한 반성으로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려는 노력이다. 그 일환으로 신극이 범한 최대의 실책인 전통극과의 단절을 재검토, 한국연극이 가진 고유한 자원을 재발굴하고, 이를 현대극에 도입시키려는 몇 가지 중요한 시도가 실험되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제는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규한
[편집]閨恨
1막.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 작. 1917년 1월 <학지광(學之光)> 11월호에 발표.
한국 근대극으로서는 최초의 희곡다운 희곡이다. 이 극은 당시 지식인, 특히 도쿄(東京) 유학생들이 대부분 안고 있던 고민을 대변해줌으로서 시대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데, 그 고민은 구식결혼(조혼)의 질곡과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유연애와의 상극에서 오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 극의 비극성(悲劇性)은 오히려 인습적인 결혼에 의해 희생된 본처의 정신적 파탄에 있다. 춘원은 사실성에 입각해서 이 작품을 쓰고 있지만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비극적 단면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사실적인 표현을 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거의 상징적인 효과까지 얻고 있다.
병자 3인
[편집]病者三人
4장.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 1863-1944) 작. 한국 최초의 지상(紙上) 발표 희곡으로 1912년 11월 17일부터 25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1910년대의 희곡으로서 잔존하는 작품 가운데 그 작가가 직접 연극활동에 참여, 당시의 연극현실을 작품 속에 반영시킴으로써 후대에 당시의 연극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갖는 작품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조일재는 바로 윤백남과 더불어 '문수성(文秀星)'의 창단 동인이며, 연기자일 뿐만 아니라 극본을 제공하던 문사(文士)로서 연극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당시 극본의 무대화(舞臺化)는 구술(口述)을 통한 설명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고 한편 기타 무대상연의 관례 때문에 극본 자체의 완벽성이 결여되어 있어, <병자 3인>도 오늘날의 희곡에 견주어 보면 치졸하고 미숙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여권(女權) 옹호로서 남성 우위(男性優位), 여성 하위의 현실을 완전히 전도시킨 매우 소극적(消極的)인 극이다.
여학교 교원인 아내의 남편은 교사시험에 떨어져 그 학교의 하인이 된다. 그는 다시 시험을 치라는 아내의 독촉에 귀머거리 위장을 한다. 의사인 아내의 남편은 한의학을 한 엉터리 교의(校醫)로서 오진(誤診)을 추궁하는 아내에게 벙어리 행세를 한다. 교장인 아내 밑에서 회계로 있는 남편은 공금을 유용하고 장님을 가장한다. 그러나 남편들의 위병(僞病)은 아내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폭로되고 마는데 이러한 대립과 갈등에 견디다 못한 남편들이 차라리 '감옥소에 가는 것이 상팔자'라고 집단적인 항거를 하자 아내들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화해를 한다.
운명
[편집]運命
1막 2장. 윤백남(尹白南, 1888-1951) 작. 1918년에 씀. 1921년 예술협회에서 창립공연을 가졌다. 이기세(李基世) 연출. 1930년 출간.
그릇된 기성윤리와 유교(儒敎)의 폐습이 낳은 부권(父權) 남용을 고발하고 밀려오는 해외 사조(思潮)에 맹목적으로 영합하는 젊은이에게 경각심을 주어 새로운 도덕과 양속(良俗)을 일으키자는 개화기의 희곡이다.
무대는 하와이의 호놀룰루. 직업이 전도사(傳道師)이기 때문에 서양사람과 교섭이 많고, 무엇이고 서양 것이라면 덮어놓고 숭배하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딸 박메리는 사진에서만 본 남자를 찾아 하와이로 간다. 그녀는 이화학당(梨花學堂) 출신의 인텔리 여성으로 일본 유학생인 애인 이수옥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려고 했지만 서양을 동경하는 허영 때문에 결국 하와이로 와서 양길삼과 결혼한다.
그런데 양길삼은 나이 많은 구두수선공으로 전혀 교양이 없는 자였다. 얼마 후 이수옥이 미국 유학차 하와이를 들르게 되었을 때 박메리를 만난다. 그는 여자가 사기결혼을 했음을 안다. 한편 이 옛 애인을 만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양길삼의 친구는 여자를 위협, 정조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남편에게 알린다. 노기충천한 양길삼은 이들이 만나고 있는 현장을 급습하여 일대 격투가 벌어지는데 격투 중 양길삼이 들고 있던 칼을 빼앗으려던 이수옥이 잘못하여 그 칼로 양길삼을 죽인다. 결국 이수옥은 유학의 꿈도, 애인과의 재결합의 희망도 무산된 채 감옥으로 가야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산돼지
[편집]山-
3막. 초성(焦星) 김우진(金祐鎭, 1897-1926) 작. 1926년에 씀. 미발간(未發刊).
1920년대초의 신극운동의 선구자로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지식층'이 직면한 윤리와 에고, 이기(利己)와 이타(利他), 사회와 개인 등 절실한 문제에 도전하여 그 해결에 대해 고민한 끝에 패배한 김우진의 사상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이다.
작가가 그러했듯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이 극의 주인공은 회사의 전무이지만 그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있었다. 그 언제나 자신을 그 시대의 사회개혁자(社會改革者)로 자처하고 있는 반면, 사회적인 압력과 가정의 굴레 속에서 자기의 위치에 대해 번민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있었지만 그들이 과연 친어머니며 동생인지 늘 회의하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어느 사원이 그 책임을 전무에게 전가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그런 일에 이미 신경을 쓸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었지만 역시 그 충격으로 고민하다 병을 얻는다. 그때 꿈에 과거에 동학군(東學軍)으로 투쟁하던 아버지가 나타나 그의 가정의 복잡성을 다 설명하고 앞으로 그가 해야할 일은 이 시대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야 할 산돼지, 즉 사회개혁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꿈을 꾸고 난 뒤 그가 진 막중한 사명과 그 사명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큰 장애 앞에 더욱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의 과거 애인이었고 그동안 외지(外地)에서 남성 편력을 일삼던 여인이 나타나 결혼을 청한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녀와의 사랑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조명희(趙明熙)의 초기 낭만시 '봄 잔디밭 위에'가 계속 흘러나오는 가운데 좌절된 한국의 지식인의 운명과 고뇌를 그린 이 작품은 마치 햄릿을 한국에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니체와 스트린드베리를 깊이 연구했고, 버나드 쇼에 경도(傾倒)되면서 페이비안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김우진의 희곡은 그의 생과 철학을 구체화시킨 것이었는데, 작품속 주인공의 실패를 그는 윤심덕(尹心悳)과의 현해탄의 정사로 끝맺고 말았다.
아리랑 고개
[편집]2막. 춘강(春崗) 박승희(朴勝喜, 1901-1964) 작. 1929년 '토월회(土月會)'에서 재기공연을 했다. 연출 박승희. 주연 석금성(石金星), 이백수(李白水), 윤성묘(尹星畝), 박제행(朴齊行).
일본사람에게 빚을 갚지 못해 땅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민족 수난의 현실을 다룬 이 작품은 일제의 토지착취, 경제착취로 울분 비탄에 빠져 있던 한국인의 슬픔을 흙, 고향, 조상의 묘 등 단순하면서도 매우 감각적인 대사와 처녀들의 아리랑 노래를 사용하여 당시 대단한 감명을 주었었다. 희곡 자체로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다만 그 시대적 상황과 민족 감정에 작품의 내용이 잘 맞았던 것이었다.
김영일의 죽음
[편집]金英一-死
3막 4장.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 작. 1920년에 씀. 1921년 동우회(同友會:도쿄에 유학중인 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 순회극단 공연. 주연 유춘섭(柳春燮), 허일(許一), 마해송(馬海松). 1923년 출간.
1920년대의 신극운동(新劇運動)이 근대극으로서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을 때 '동우회' 극단의 참신한 연극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그들의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많은 공명을 받았던 작품이 <김영일의 죽음>이었다. 한국인의 가난과 부(富)의 불공평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박애정신을 호소하고 있다.
도쿄의 고학생 김영일은 니체의 초인의 얼굴을 가진 열렬한 기독교신자이다. 그에게는 엿장수인 고학생 학우 두 사람이 있었는데, 김영일의 모친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권유, 모 회사 중역인 부유한 한국인 학생에게 가서 귀국 여비를 사정하도록 한다. 그러나 거절당하자 격분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고 그들은 출동한 형사에게 체포되어 유치장 신세를 진다. 때는 마침 겨울이라 쇠약한 김영일은 폐렴에 걸려 석방된 뒤 하숙방에서 병사한다. 그는 죽으면서 친구들에게 위대하고 진실한 '나'라는 것을 존중하고, 그리고 사람은 다같이 운명에 학대받는 불쌍한 존재이니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토막
[편집]土幕
2막.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 1905-74) 작. 1933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에서 공연. 홍해성(洪海星) 연출.
유치진의 처녀 희곡이며 극연(劇硏) 최초의 창작극이기도 한 이 희곡은 한국 리얼리즘 희곡의 백미(白眉)로, 그 뛰어난 극작술은 외국의 어느 희곡에 비해도 별로 손색이 없다. 이 극은 비록 1920년대의 한국의 몰락해 가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한국적인 것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유치진이 비록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과 오케이시를 연구했고, 그 영향이 실제 이 작품 속에 상당히 드러나 있지만, 그가 그들의 모방을 넘어서서 한국인의 생활과 언어와 감정을 가지고 이만큼 진실되고 강렬한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빵보라는 인물의 창조에 매우 뛰어나서 그의 희극성은 오히려 비극성을 극대화시켰고, 어머니가 아들의 백골을 들고 읊조리는 대사는 모리야 부인의 그것처럼 생(生)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일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비극이 지니는 보편적 진실을 획득하고 있다.
이제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는 병서네 일가(一家)의 유일한 희망은 일본에 돈벌이간 아들뿐이다. 마침 아들의 친구가 일본을 가게 되어 그들은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그러나 구장이 찾아와 2년 전 신문을 보이며 명수가 일본서 독립운동(그들은 독립이란 뜻을 모른다)을 하다 종신형(終身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그렇지만 병서부부는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을 믿는다.
한편 빚 때문에 집까지 빼앗긴 공처가 빵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가 병서의 토막에 묵고 있던 그의 처를 구걸질하다 만나서 돌아오지만 그날 밤으로 가족을 데리고 정처없이 유랑의 길을 떠나고 만다. 그날 밤 병서의 처는 아들 생각에 실성한 사람같이 행동하면서, 아들을 맞기 위해 머리를 빗고 밖에 불을 밝힌다. 그때 우편배달부가 소포 하나를 주고 가는데, 그것을 뜯어보니 아들의 백골(白骨)이 든 상자였다.
촌선생
[편집]村先生
3막. 이광래(李光來, 1908-1968) 작. 1936년 <동아일보(東亞日報)> 신춘문예 당선작. '극예술연구회' 10회 공연. 허남실(許南實) 연출.
극연(劇硏)의 작가 발굴 작업으로 시험된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이 희곡은 일제의 착취가 심해가던 농촌을 배경으로 자기의 향토(鄕土)를 지키자는 주제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송해운(宋海雲)이란 촌선생은 강렬한 향토애를 가진 촌로(村老)로 사재(私財)를 털어 야학교(夜學校)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 선생에게는 달훈·달근 두 형제가 있었다. 달훈은 현대교육을 받고 도시여성과 결혼한 후 낭만적인 농촌을 그리는 아내를 데리고 귀향한다. 그러나 그들은 농촌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환멸과 실망을 느낀다. 한편 달근이는 무식하나 농촌의 사정을 정시(正視)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가을이 되자 달훈의 결혼빚 때문에 야학교사 양도의 선고를 받는다. 이러한 사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달훈은 서울에서 올 퇴직금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막상 도착한 것은 딸의 편지를 받고 장인이 퇴직금으로 사서 보낸 인삼 등속이었다. 촌노인은 아들의 교육이 헛되었음을 질책하고 그들을 서울로 돌아가도록 명하고 자기는 소를 팔아 도망가려 했던 달근을 데리고 끝까지 향토를 지킬 것을 선언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촌선생의 의지의 표출은 지사(志士)적인 인물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준다.
혈맥
[편집]血脈
3막. 김영수(金永壽, 1911-1979) 작. 1947년 문교부 주최 제1회 전국연극경연대회 작품상 수상.
8·15광복 후의 민족의 감격과는 대조적으로 나날의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하층민의 생활을 묘사하는 가운데, 작자는 "40년 동안을 그렇게 슬프게, 비굴하게 살아오구두 그래도 아직도 모자라서 우리는 나 하나만을 찾구 나 하나만을 내세워야겠고?" 하며 과거의 역사를 반성, 힘을 합쳐 내 집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워야 할 정신을 일깨워주려는 작품이다.
일제시대의 방공호(防空壕)에 살고 있는 땜장이 목판장수, 복덕방 거간을 중심으로 댄서, 암거래상, 노동자 등 28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 중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자는 일본에서 공부를 한 원칠뿐이다. 그는 기대가 컸지만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무력한 생활을 하고 있어, 폐결핵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내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목판장수 형과 늘 충돌을 일으킨다. 땜장이는 본처의 딸을 술집으로 보내자는 술장수 후처의 졸림을 당하나, 딸이 복덕방 거간의 아들과 도망쳐 공장에 취직하자 숨을 돌린다. 홀아비 복덕방 거간은 새장가를 드는데 그 계집에게 생명처럼 아끼던 돈을 도둑맞고 자살을 한다고 야단이다. 원칠은 무력한 생활을 청산, 돈을 벌기 위해 공사장(工事場)에 나가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오면서 형수가 먹고 싶다던 것을 사왔으나 이미 형수는 죽어 있었다. 형수의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멀리서 지경다지는 소리가 점차 높아져 온다. 광복 후의 사회상의 단면(斷面)을 매우 리얼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맹진사댁 경사
[편집]孟進士宅慶事
오영진(吳泳鎭, 1916-74) 작. 1942년에 쓴 시나리오를 1943년 작자 자신이 희곡으로 개작, 1944년에 '태양극단'에서 초연했다. 그 후 '신협(新協)'(1951년 이광래 연출)과 '실험극장'(1969년과 1972년 나영세 연출)에서 공연되었다. 1964년 국제극예술협의회 파리 본부에서 영문과 불문으로 번역되고 영화로는 1957년 도쿄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최고 희극상을 획득했다.
한국의 연극은 신극(新劇) 이후부터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희극(喜劇)의 풍토를 개척하는데 소홀해 왔고 따라서 볼만한 작품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불모(不毛)에서 <맹진사댁 경사>가 나왔다는 것은 극히 드문 예외라 하겠다. 한국의 전통극은 독특한 해학(諧謔)과 풍자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계승·발전시킬 작가는 없었다. 그러한 터에 오영진이 나와 그 작업을 1940년대에 훌륭히 해냈다는 것은 희극 작가로서 오영진의 역량과 재능을 입증하는 것이고 나아가 한국의 현대 희극이 지향해야 할 한 이정표(里程標)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그는 1970년에도 그와 같은 계열의 희극 <허생전>을 써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구(舊)결혼제도의 모순과 인습을 풍자한 이 작품의 내용은 한국의 고유한 생활풍속과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남독녀의 외딸을 가진 맹진사(그 자신은 진사 자리를 돈으로 산 사람이다)는 오직 돈 많고 지체높은 김대감집과 사돈이 된다는 허영에서 사위될 사람을 보지도 않고 혼인승낙을 한다. 그런데 그 사위가 다리를 전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이에 놀란 맹진사는 몸종인 입분이로 하여금 딸 갑분이 대신 혼인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혼인날에 나타난 신랑은 신체에 전혀 이상이 없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신랑은 불안하여 어쩔 줄 모르는 입분이에게 자기가 다리를 전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마음씨 고운 여인을 택하기 위한 기지(機智)였다면서 입분을 아내로 맞을 것을 선언한다.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
[편집]-機關車
6장. 임희재(任熙宰, 1922-1971) 작. 1956년 '신협(新協)' 공연. 김규대(金圭大) 연출.
6·25를 치르고 난 뒤 전쟁이 휩쓸고 간 한국사회를 반영시켜 무질서한 사회, 도덕의 타락, 재래 가치관의 붕괴, 인간 존엄성의 상실 등을 고발한 1950년대의 수작(秀作)이다.
난리에 패가한 윤시중의 고가(古家)에 하숙한 한창선은 건강한 체격을 지닌 기관차 운전수로서 인생을 마치 기관차 운전하듯 살아간다. 이러한 그에게서 주인여자 영애는 무력한 남편에게서 충족받지 못한 욕구불만을 해소시키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인다. 이 집에는 한창선 이외에 낙선 민의원과 퇴직 군수가 식객(食客)으로 있고 실명 상이군인이 들어있다. 어느날 대전에서 영애의 이복동생 영자가 찾아온다. 그런데 그녀는 백만원의 현상금이 붙어있는 여자였다. 이를 눈치채고 동회 공금을 유용한 윤시중과 그의 식객들은 그녀를 팔아먹을 기회를 노린다. 영자는 한창선과 어울려 다니고 영애는 상심한 나머지 입원까지 한다. 한편 아내를 찾아 몇 년을 헤매던 상이군인은 그녀가 자기 아내임을 확신하고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데 그녀는 그가 남편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날 밤 그는 결국 자살을 한다. 그 사이 윤시중은 애지중지하던 가보(家寶)를 팔아 동회 빚을 갚으려 하다 낙선 민의원에게 사기를 당하고 나서 영자를 찾는 포주 하윤호와 거래를 한다. 그런데 영자는 한창선의 구애도 뿌리치고 총총히 대전으로 떠난다. 그녀가 기차를 놓쳐 다시 돌아온 것은 상이군인의 자살(自殺)이 밝혀지고 하윤호가 그녀를 찾으러 온 뒤였다. 그러나 영자가 하윤호가 찾던 여자가 아님이 밝혀지면서 윤시중과 퇴직 군수의 추행(醜行)이 드러난다. 이를 본 한창선은 '인간을 믿는 건 어렵고 여기가 싫어졌다'면서 떠난다.
이 작품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의 유사성(類似性)에서 그 흥미를 찾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적인 유사성일 뿐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한국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편집]-自由戀愛-謳歌-
7장. 하유상(河有祥, 1928- ) 작. 1957년 국립극단 현상입선작으로 박진(朴珍) 연출.
1950년대의 희곡이 거의 비극이고 희극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 작품은 당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1910년대에 춘원(春園)이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나서 40년이 흐른 뒤 달라진 세태(世態)를 반영하는 이 희극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결혼에 대한 의식의 변천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연애결혼을 하기 위해 투쟁했던 경력을 가진 부모는 자식들의 새로운 연애에 접하자 반대한다. 어머니는 중매결혼을 주장하는 파인데 그 이유는, 연애결혼에 실패하여 첫날밤에 미국으로 달아난 남편을 기다리는 큰딸이 이층방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큰딸을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자유의사로 불행해진 본보기'로 보고 남은 두 딸의 자유연애에 제동을 가한다. 그러나 평생 불행할 줄만 알았던 큰딸의 남편이 과오를 뉘우치고 돌아와 재결합함으로써 웃음을 되찾게 되자, 자유연애는 할 수 있는 것, 해도 좋은 것이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둘째 딸도 무사히 연인과의 결합이 가능해진다.
산불
[편집]山-
5막. 차범석(車凡錫, 1924- )작. 1962년 '국립극단' 공연. 이진순(李眞淳) 연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희곡 가운데 대표적인 희곡의 하나이다. 사상과 권력과 당파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려온 민족의 비애를 바탕으로 아무 의식없이 끌려 다니는 무지한 인간들이 겪는 애증(愛憎)의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오히려 이데올로기를 떠난 인간의 원색적 나상(裸像)을 매우 사실적으로 부각시킨 데 있다.
무대는 1951년 겨울,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소백산맥의 어느 두메마을이다. 이 마을은 아군과 적군이 번갈아 들어오는 동안 남자는 거의 멸종된 과부마을로서 가난과 공비의 약탈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본능적 욕구의 해결이 더욱 시급하다. 어느날 밤 빨갱이들에게 속아서 공비(共匪)가 된 전직교사 규복이 심한 부상을 당한 채 탈출, 점례네 헛간에 숨는다. 과부 점례는 그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마지 못해 집 뒤에 있는 대밭에 숨겨주지만 차츰 애정으로 바뀌어 몸을 맡긴다. 이 사실을 눈치챈 역시 젊은 과부인 사월은 점례를 위협, 남자를 공유(共有)하기로 한다. 마을에 소문이 떠돌게 되고, 그때 사월이 임신증세를 보인다. 사태는 바뀌어 국군이 진군하여 공비가 은신하기 좋은 대밭을 불사르겠다고 한다. 대밭을 아끼는 점례 어머니와 규복을 아끼는 점례는 완강히 거부하지만 드디어 대밭에 불이 붙는다. 이때 움 속에 숨어있던 규복은 도망쳐 나가려다 총에 맞아 죽고, 그와 정을 통한 것이 드러났던 사월은 자살을 한다. 극적 상황의 설정이 좋고 죄없는 한국여인의 시련이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물 있사옵니다
[편집]이근삼(李根三) 작. 1966년 '민중극장' 공연. 양광남(梁廣南) 연출.
이근삼 특유의 위트를 살려 현실적 가치질서를 전도시켜 현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허점을 풍자한 소극(笑劇)이다. 작자는 이 극에서 독특한 화술(話術)과 간략한 무대장치의 교묘한 활용 및 주인공의 다각적 이용(해설자, 사건의 주도자, 도구 운반자 등)으로 빠른 템포를 유지, 세태 풍자극이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에서 구출해 주고 있다.
주인공 김상범은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정직하고 상식적으로 살아오는 동안 늘 실패와 손해만 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휴지 한 장이 계기가 되어 사장의 눈에 들게 되자, 세상에는 출세(出世)의 지름길이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행동을 개시한다. 먼저 상사인 경리과장이 회사돈을 유용한다고 모함하여 성공,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사장의 며느리이며 비서인 성아미와 박전무와의 스캔들을 이용, 임신중인 그녀와 결혼한다. 암흑가의 건달과 타협, 그에게 강도질을 하게 하고 뒤에서 총을 쏘아 회사에 큰 공로를 세운다. 드디어 그는 상무가 되고 사장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못하다. 대학교수를 집어치우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형과 밤잠도 거의 자지 않고 공부해서 입사시험에 합격한 동생은 오히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왜 그럴까?
작자는 김상범의 어처구니 없는 희극 속에서(작가는 그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비애(悲哀)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토끼와 포수
[편집]-砲手
5경. 박조열(朴祚烈) 작. 1965년 '민중극장' 공연. 김정옥(金正鈺) 연출.
1960년대의 신인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인 박조열의 데뷔작이다. 그는 연극적인 센스와 언어감각이 예민해서 인물 설정이 치밀하고 액션의 발전이 경쾌할뿐더러 점층적 발전 끝에 파열하는 대사의 그 코믹한 맛은 일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높이 살 만한 점은 진부한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고 세련되며 전혀 구질구질한 때가 없다는 점이다.
포수 장운(화가)은 전에 만난 일이 있는 토끼(인형 제작가인 미망인 민혜옥)를 잡으려고 그녀 건넌방에 세들어 온다. 혜옥은 응접실에 빨랫줄과 말뚝으로 경계선을 만들며 그를 강도니 뭐니 하지만 여자마음을 꿰뚫고 있는 유들유들한 장운은 오히려 사냥욕을 일으킬 뿐이다. 첫눈에 그가 좋아진 혜옥의 딸 민영은 혜옥도 차츰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 한다. 명랑한 그녀는 꽉 막힌 곤충학도 기호를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며 사랑하는데 혜옥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자 여자를 설득시키는 최고의 무기는 용기와 계속성이라는 장운의 조언(助言)을 듣고 기호는 술을 마시고 용기백배, 약혼식을 선언한다. 이에 혜옥은 그만 아연해진다. 한편 장운이 기호 때문에 마신 술로 병이 나서 눕자 혜옥은 하녀를 시켜 장운 모르게 병구완을 한다. 마침 기호의 아버지가 신부의 선을 보러온다. 그런데 기호는 장운이 장인이라 해놨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혜옥의 남편, 민영의 아버지 노릇을 한다. 혼사(婚事)가 성취되고 모두 나가 둘만이 남게되자 장운은 혜옥 앞을 사자 같은 여유만만한 자세로 왔다 갔다 하다 "여보" 하고 부른다. 혜옥은 잠시 주저하다 입만 움직여 "예" 한다.
환절기
[편집]換節期
5막. 오태석(吳泰錫) 작. 1968년 국립극장. 경향신문 공모 희곡 당선작품 '국립극단' 공연. 임영웅(林英雄) 연출.
1960년대 신인작가 중에서 가장 재기(才氣)에 넘치는 오태석의 첫 장막희곡으로서, 그 이전의 단막극(單幕劇)에서 보인 극작가로서의 가능성을 확고히 해준 작품이다. 이 극의 특색은 한마디로 그 내용과 형식이 참신한 데 있다. 그는 종래 보아오던 논리적 인과관계에 의해 직선적 발전을 하는 사건 위주의 연극과는 달리,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나타나 연쇄적 반응을 일으키며 구심점을 향해 선회 운동을 하는 내면적 액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드라마의 표현은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연극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삼고, 연극이란 놀이를 매우 즐기고 있는 것인데 이 점은 한국 연극에서 대단히 희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 극의 구심점은 결혼해서 전혀 배색이 안 돼 곤혹을 느끼는 젊은 두 부부가 같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공통색채를 발견하는 과정을 더듬는 것이다.
5년 전 조대빈과 약혼녀 이정애, 김형주와 한나영은 설악산에 갔다가 김형주의 아이를 가진 이정애가 불바위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을 겪는다. 그 후 김형주는 기억 상실증의 정신 이상자가 되었으며, 조대빈과 한나영은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설악산 사건은 그들에게 언제나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3년전에 한나영은 이정애의 아이가 자기에게 태어나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망상 때문에 아이를 지운 일이 있는데 다시 임신한다. 한편 조대빈은 김형주를 하루 3시간씩 집에 데리고 오도록 한다. 그는 이 부부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한나영은 남편이 그와 공모하여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급기야는 외출해 버린다. 조대빈이 아내가 임신 중임을 안 것은 이때이다. 아내가 돌아왔을 때 그는 김형주를 데리고 온 것은 그를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다고 밝히고 아이를 낳기를 권하자 아내는 또 이정애의 아이인 것 같아 마음에 안 내키니 김형주를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은 조대빈은 그 청을 들어주고 두 부부는 비로소 그들을 잠식하던 어두운 그늘을 말끔히 지우고 공동의 색채 속에 안주한다.
이 극은 사회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인간의 심리를 넓게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투시함으로서 흘려버리기 쉬운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파헤친 것인데 그것이 바로 현대의 부부상(夫婦像)을 예각적으로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달집
[편집]3막 4장. 노경식(盧炅植) 작. 1971년 '국립극단' 공연. 임영웅(林英雄) 연출. 백성희(白星姬) 주연.
이 작품은 한국의 토착적 인간상을 부각시켜 보려고 했다는 점,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전형화(典型化)하는데 성공했다는 점, 사용된 전라도 사투리의 대사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생활과 의지에 완전히 일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작이 되었다.
1951년 음력 대보름을 전후한 남원(南原) 가까운 산골, 성간난 노파는 작은 아들 창보(그의 처는 호열자로 죽었다)와 큰손자 원식의 처인 순덕 모자를 데리고 살고 있다. 노파의 남편은 3·1 운동 때 헌병대에 끌려갔다 나와 죽었고, 큰아들은 일제 때 징용에 끌려가서 죽었다. 간난 노파(老婆)의 보람은 군대에 간 원식이 허리를 다쳐 곧 돌아온다는 것과, 멋 모르고 빨치산이 된 작은 손자 만식의 무사귀가이다. 그러나 만식은 간밤에 이웃 마을에서 피살되고, 이어 습격한 빨치산들에 창보와 순덕이 납치된다. 그들은 다음날 돌아오지만 순덕은 이미 욕을 당한 뒤였다. 간난 노파는 이를 불용납, 단호히 그녀의 가출을 명한다. 창보는 이를 완강히 반대,모자 싸움 끝에 간난 노파가 남편 면회를 갔다 헌병대에서 젖을 보인 일, 만주에서 돌아오다 자기의 처가 로스께 놈한테 욕을 당한 것을 노파가 용서 못해 처가 기어이 약을 먹고 자살한 것을 호열자로 죽었다고 조작한 일 등을 폭로하고 뛰쳐 나간다. 잠시 후 원식이 봉사가 되어 돌아오자 이튿날 순덕이 목매달아 죽는다. 하지만 노파는 요지부동, 곧 새봄이 오면 서둘러야 할 농사일을 먼저 채비한다.
한국적 여인상(女人像)을 3대에 걸친 시대에 배치시킨 착안과 노파의 완고한 보수성을 한국여인의 생명의 원천으로 파악한 작가의 의도는 높이 살 만하다.
포로들
[편집]捕虜-
이재현(李載賢) 작. 5·16 민족문화상 공모 희곡부 당선작. 1972년 '국립극단' 공연. 이기하(李基夏) 연출.전쟁과 휴머니즘의 갈등,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자유와의 갈등을 다룬 최초의 서사적 연극(敍事的演劇)의 성공작이다. 이재현은 이미 1950년대에 데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역사를 조감하는 안목과 새로운 연극 수법으로 이 작품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휴전(休戰)을 얼마 앞둔 거제도 포로수용소, 제네바 협정을 내세워 형식주의 노예가 된 수용소 당국 밑에서 공산분자들은 마음놓고 조직을 확대하고 우경(右傾) 포로들에 대한 테러 행위를 자행한다. 포로 가운데 영철은 부산에 피난 온 옛 고향 애인을 통해 그를 알게 된 군목(軍牧)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송을 희망한다. 두고 온 부모가 계신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그 순수성은 이데올로기에 짓밟히고 그를 역이용하려는 공산분자(共産分子)에게 고문을 당하고 나자 생각이 바뀌지만, 이미 저들은 수용소 소장을 납치하고 저들의 요구를 관철시킨 뒤였다. 신임 소장에 의해 강경한 조처가 내려진 가운데 영철은 저들의 마수를 탈출하려 하지만 그만 피살당하고 만다. 타의적으로 결정된 인간의 비극을 고발하고 각성시킨 수작(秀作)이다.
<韓 相 喆>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편집]소설가인 최인훈(崔仁勳, 1933- )의 두번째 희곡. 1976년 가을 '산하(山河)' 공연, 표재순(表在淳) 연출. 평안도 지방에 전래되어 온 '장수설화'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비극성을 보편적인 인류의 비극성과 연결시킨 역작(力作)이다. 장수설화와 동형인 출애급기(出埃及記)의 바스까제(際)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서에 나타나 있는 상징체계는 메시아의 탄생, 죽음, 그리고 부활이다. 작가는 이런 사고의 바탕에서 고난에 찬 한국인의 비극적 삶과 죽음을 격조 높게 묘사하였다. 사는 데 주눅이 들어 말더듬이까지 된 주인공이 어쩌다 장가를 들어 낳은 아들이 '장수'였다. 마침 뒷산인 용마산(龍馬山)에서 용마가 욺으로써 '장수'가 났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에 관헌들이 이웃 동네까지 와서 '장수'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뒤늦게 자기 아들이 '장수'인 것을 안 주인공은 발견되면 가족 전체가 화를 당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장수'를 눌러죽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방에서 목매달아 죽고 주인공도 따라 자살한다. 그리하여 이 비극적인 세 사람은 용마를 타고 승천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작가 최인훈은 이 이야기를 통하여 자기들의 운명(運命)조차 짊어지고 나갈 힘이 없는 한국인의 고난에 찬 삶을 그리고 있다. 즉 지정학적으로 보아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악정과 가난에 시달려 온 민족의 수난을 매우 비관주의적 각도에서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오영진(吳泳鎭)의 일련의 희극 작품이 신화문학의 희극적 비전에 속한다면 최인훈의 희곡은 비극적 비전에 속한다고 하겠다.
빛은 멀어도
[편집]4막 5장. 박현숙(朴賢淑, 1925- ) 작. 60년대 작품이지만 '성좌(星座)'에 의해 1977년 가을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올려졌다. 김학천(金學泉) 연출. 전후가 시대배경이 된 <빛은 멀어도>는 전통모랄과 새로운 모랄이 부딪치는 세태풍속극(世態風俗劇)이다. 전후의 풍속도를 여성의 시각으로 포착한 이 작품은 가난한 대학생이 부유한 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집 딸과 사랑함으로써 문제가 야기된다. 결혼 과정에서 갖은 수모를 당한 남주인공은 처부모에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고의적으로 애인이 있다고 속인다. 그로 인한 충격으로 아내는 정신이상이 되고 하반신마저 못쓰게 된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그녀의 부모에 대한 증오심으로 해서 불행하게 만든 남주인공은 결국엔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며 장모는 사위를 용서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전후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황금만능주의와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인한 보상을 한 여인이 비극적으로 치른다는 이야기이다.
비교적 진부한 소재와 주제지만 알기 쉬운 내용과 작가의 여성적이고 따뜻한 인간애와 센티멘탈리즘이 전편을 감싸고 있다.
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
[편집]2막 16경. 신명순(申明淳, 1940- ) 작. 1974년 '민예극장' 공연. 허규(許圭) 연출. 1960년대 이후의 한국 정치와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평화를 포식한 끝에 뱃속에 더러운 찌꺼기가 가득 차서 누군가 수술을 해야하는 썩은 우보시에 검은 군대가 진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자유와 평화의 상호관계를 다루고 있다. 검은 군대에 항거하는 게릴라, 금지된 종을 치는 소년, 자유가 없이는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신부(神父), 방관적인 시민, 질서를 요구하는 사령관 등이 얽혀, 대립·갈등하는 음울한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에서 가상의 도시인 우보시와 우보시민이 벌이는 삶의 몸부림은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암시해 준다. 그러나 그런 우화(寓話)가 관객에게 무엇을 암시하려는 것인가에 이 작품의 핵심이 있다. 시민과 군대와 교회라는 세 대립관계에서 작가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냐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작가가 겪는 고뇌와, 창작을 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보시의 어느 해 겨울>은 우화적 수법으로 사회와 정치를 비판한 작품으로서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와 매우 흡사하다.
출세기
[편집]出世記
24장. 윤대성(尹大星, 1939- ) 작. 1974년 '동랑레퍼터리극단' 공연. 김기주(金基柱) 연출. <동아일보> 신춘문예(<출발>)를 통해 데뷔한 윤대성은 사회부조리에 대하여 매우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는 사회문제 극작가이다. <출세기>만 하더라도 대중의 우매성과 매스컴 공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전락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문명공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가 하는 것을 독특한 재치와 희극적 터치로 처리하고 있다. 전에 <목소리>라는 작품으로 매스컴의 횡포를 다룬 적이 있었던 윤대성은 최장기간 지하에 매몰되었던 광부 양창선의 실화를 소재로 <출세기>를 쓴 것이다. 지하에 매몰됨으로써 일약 매스컴의 총아가 되었던 주인공은 진짜 출세나 한 줄 알고 나서지만 곧 그는 매스컴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어 초라하게 귀가한다는 희비극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매스컴의 위력 앞에서 붕괴되고 농락당하는 인간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성 상실의 현대인을 시니컬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24장에 걸쳐 오늘의 사회단면의 요모조모를 스케치하듯 묘사한 작품이 바로 <출세기>이다.
쉬 쉬 쉬잇
[편집]이현화(李鉉和, 1943- ) 작. 1970년도 <중앙일보> 신춘문예(<요한을 찾습니다>)를 통해 등장한 이현화는 70년대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신진작가이다. 이현화는 기하학적인 극구성과 예리하고 발랄한 대사처리, 시종 위협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조성, 통렬한 냉소로 시대를 풍자하는 작가이다. '자유극장'에 의해 공연된 <쉬 쉬 쉬잇>(金正鈺 연출)도 그런 독특한 작품으로 <누구세요?> <텍서사이스> 등과 함께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혼부부가 여행중에 어떤 침입자에 의해 고초를 당하는 이야기의 <쉬 쉬 쉬잇>은 이 시대의 정신상황을 해럴드 핀터식으로 점검한 작품이다. 즉 오늘의 인간의 내면적 파멸이 원죄의식에서 나온 양심의 하자(瑕疵)라는 잠재의식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시대상황이 주는 외부적 충격에 연유한 것이냐에 대해서 매우 암시적이고 상징적으로 어떤 해답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은 감각면에서나 드라마의 전개에 있어서 외국작가의 수준에 그리 뒤지지 않는 작품이다. 추리극은 첨단적 연극의 한 경향이며 삶의 공포는 핀터라든가 카프카 등이 즐겨 다룬 작품주제이기도 하다.
<柳 敏 榮>
저 별이 위험하다
[편집]김광림 작. 동숭아트센터 개관 5주년 기념공연. 박광정 연출. 신의 인간에 대한 무관심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부재로 위기상황에 빠진 인간상황을 그리고 있다. 김광림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자멸하기 직전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환경오염, 에이즈 같은 불치 병의 만연, 인간상호간의 무관심, 증오, 가치혼돈과 정체감 상실 등으로 인간과 환경이 크게 파괴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술복을 입은 하나님은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환자(이 세상)를 방치한 채 내기 당구에만 열중한다. 이제 인간은 어떤 지푸라기를 잡아야 하는가? 그 해답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탐사가 이루어진다. 작가는 휴머니스트답게 인간상호간에 사랑을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결론짓는다. 부조리적 세계관에 실존주의적 해결책을 접목시킨 셈이다. 연출자 박광정은 선정과 폭력이 충만한 무대로 작가의 절망을 더욱 고통스럽게 부각시켰고 무대미술을 맡은 박동우는 링거병들을 천장에 가득 매달아 중병에 걸린 지구촌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비닐하우스
[편집]오태석(1941- ) 작. 오태석연극제의 두번째 공연.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 이윤택 연출. 전쟁과 공해로 얼룩진 후기산업사회를 배경으로 위선적인 공동선을 표방하는 거대한 조직에 순치되고 파괴되어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비닐하우스는 엄청난 재난에 대비하여 국민들이 집단으로 채혈하는 곳, 사람들은 마치 입영영장을 받듯이 헌혈통지서를 받고 이 곳에 와서 저마다 할당된 양의 피를 뽑는데, 국민적 합의로 세워졌다는 이 기관이 자율과 자발보다는 강요와 통제에 의해 통치된다. 헌혈자들은 죄수 취급을 당하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비닐하우스의 화초같이 고분고분해지도록 사육된다. 세속적이지만 아직도 정의감과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청과시장 중매인이 비닐하우스에 침입하여 조직의 비리와 싸워 마침내 승리한 뒤 수용소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극이다. 마지막 장면의 처리를 놓고 연출자와 작가 사이에 있었던 논쟁이 극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 원래 오태석은 이 침입자마저 조직이 보낸 역정보원으로 설정하였으나 이윤택은 관객의 신뢰를 배반할 수 없다면서 작가의 안을 무시하고 매우 낙관적으로 극을 마무리지었다.
구멍의 둘레
[편집]정우숙 작. 삶이 강요하는 함정의 둘레를 서성이면서 괴로워하는 인생들의 초상을 통해 진정한 고통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극이다. "지옥이 이승보다 더 괴로울까?" 극중의 한 등장인물이 내뱉는 이 대사가 암시하듯, 이 청년여류작가의 절망 또한 두 선배작가 못지 않게 깊다. 기혼여성인 서명인이 주인공으로, 집에서는 병든 시부모를 헌신적으로 모시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편에 순종하며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한다. 남자를 무차별하게 정죄하는 초보적 여성주의를 드러내기 쉬운 설정이지만 작가는 보다 근본적인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시말해 그녀의 가정생활보다는 그녀가 맹인 현수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두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흥미롭게도 가정에서는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역할에 충실한 그녀가 직장에서는 해방된 강인한 여성으로 돌변하여, 위선적으로 예수의 고통을 흉내내는 현수로 하여금 끝내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의 결말은 설사 진실을 마주본다 할지라도 어둠과 고통과 두려움에 둘러싸인 인생의 실존상황은 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생의 부조리를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차갑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혼의 조건
[편집]離婚-條件
윤대성(1939- ) 작. 전통적인 사회통념과는 달리 이 극에서 메마른 가정이나마 지키고자 하는 쪽은 남편이다. 비록 그는 젊은 여자와 외도를 즐기고, 가정에 얽매인 아내와는 반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가정만큼은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아닌 적대가 바탕을 이루고, 서로에게 아물 수 없는 상처만 주고 인생을 소모하며 가정위기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부부. 그러나 놀랍게도 자식 세대에게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결혼제도의 올가미를 씌우는 데 직·간접적으로 공모한다. 25년간의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아내는 술취한 사윗감이 잠자고 있는 침실로 이미 처녀가 아닌 딸을 들여보냄으로써 파혼이 불가능하도록 계략을 쓴다. 반대로 무의미하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결혼생활을 지키려고 애쓰는 남편은 사윗감이 파혼하겠다고 말하자 뜻밖에도 선선히 응낙한다. 그런 그는 사윗감을 술취하게 만듦으로써 아내의 계략이 작용하게끔 한다.
불지른 남자
[편집]-男子
이강백 작. 1980년대에 광주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정재현이 10년 넘게 형을 살고 나와 세상을 돌아보는 일종의 순회극이다.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니 세상이 좋아졌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재현이 둘러본 오늘의 세상은 10년 전 그가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때와 전혀 다름이 없다. 재현은 옛 동지들을 만나보지만 그들은 세상이 변했음을 오히려 더 과장되게 주장하면서 일상의 안일 속으로 잠겨 들어간다. 그러면서 그들은 군사문화를 상징하는 폭탄주를 매일 마신다. 그들이 말하는 변화의 거짓됨과 거짓에 앞장선 자신들의 변절을 잊고자 함이다.
재현의 종말이 매우 충격적이다. 친구의 양로원에 식사보조원으로 취직한 그는 치매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밥을 먹여주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맞아 죽는다. 외세의 지배를 당하던 때가 더 좋았다고 회상하는 노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고쳐주려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작가는 노인들의 치매와 우리들의 건망증을 동일시한다. 10년 전 그가 사회를 향해 의식의 불을 켜기 위하여 불을 질렀지만, '우리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기분을 내면서 불지른 남자를 잊었다. 그가 오랫동안 갇혀 있던 망각으로부터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우리는 냉담하였고, 그의 과거 행위를 비난하였으며, 그를 조롱하다가 끝내 그가 죽은 줄도 몰랐다. 그러나 죽은 재현은 천국에서 다시 우리를 위해 성냥불을 켠다.'
이강백은 가장 주관적인 연극양식인 표현주의적 기법과 극구성을 적용하면서 흑백논리에 의한 인물설정의 결함을 극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