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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재인식/현대의 가족과 생활/현대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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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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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家族

사회가 발전해 가는 가운데에서 개인은 낡은 가(家)제도나 관습, 또는 봉건적인 모든 관계나 사고방식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 거기서는 인격을 지닌 자유로운 남녀가 서로의 애정에 입각한 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남녀의 애정에 기반을 둔 결합을 출발점으로 하여 가족이 성립되어 가족원의 인간관계는 상호간의 인격 존중을 전제로 한 평등관계로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는 소위 부부가족이라고도 하고, 일대(一代)가족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그것은 부부와 미혼의 자녀들에 의해서 구성되는 비교적 소수인(小數人)의 가족 구성으로서, 자녀들이 결혼하고 이윽고 부부의 어느 한쪽이 죽으면 소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부가족의 형태가 많아져 가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핵가족화(核家族化)'라 부르고 있다.미국이나 그 밖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차차 가족원수가 적어져서 1930년대에는 4명의 선에서 1가족당 3명꼴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12월 31일 현재 전국 총인구 4,851만 7,871명, 가구수는 1,648만 9,107으로 평균 가구원수는 2.9명으로 나타났다. 그뒤로 약간의 변동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다지 큰 것은 못되리라고 본다.아무튼 전체 인구의 증가율로 미루어 보더라도 가족원수가 축소돼 가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렇게 본다면 가족의 축소화 경향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가족은 형태상의 부부가족이 특히 많이 늘어나고 있음이 사실이다. 물론 현대의 가구의 형태가 핵가족적이라고 해서 실질적으로 핵가족적인 생활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원래는 장남이나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 부부가 부모와 동거하게 되어 있었으나 주택의 크기나 직장 관계상, 혹은 부모가 일찍 사망한 탓으로 현재의 형태가 핵가족적이 되어버린 것도 많다. 또 차자들이 새로운 가구를 형성하여 핵가족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장차는 자기네 자녀 내외와 동거할 생각으로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것은 모두 형태는 핵가족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직계가족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가족형태의 변화와 함께 사회의 발전, 특히 현대사회의 전개 속에서 가족의 기능이나 역할 혹은 가족원간의 인간관계나 의식·관심에도 커다란 변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특질은 가끔 대중사회로서 문제화되고 있으나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고도한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출현한 것이다. 거기서는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대량 소비가 가능하게 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향상해 간다. 또한 교통과 통신·정보도 발달하고,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크게 발달한다. 그리고 기업이나 그 밖의 조직(관공서나 학교)이 차차 거대해짐과 함께 노동자도 대량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제까지 자영업자(自營業者:農 ·工 ·商)가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던 것이 차차 감소하고, 화이트 칼라나 노동자가 많아진다. 그리고 교육 수준의 향상이나 정치적 참가(選擧權)도 볼 수 있게 된다. 또 문화도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형태로 매스컴을 매개체로 하면서 광범한 사람들의 관심을 충족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획일적이며 창조성이 없는 문화로 되어 있다.이러한 사회의 구조는 당연히 그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단위가 되어 있는 가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이제까지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기능이 가족집단의 밖에서 이루어지게 되고 거기서 가족기능의 축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가족집단은 생산의 장소에서 소비의 장소로 변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가족원의 근로자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가족원 상호의 직장이 달라지고, 하루 중의 많은 부분을 서로 다른 생활을 하게 되어 가족원의 몇몇은 식사와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집에 붙어 있지 않게 된다. 이에 따라서 생활의식(生活意識)이나 행동의 개인화가 생기게 되고 가족원 상호의 사회적 관심이나 생활태도에 차이를 만들어내어 그만큼 가족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져 가는 면도 보게 된다. 현대의 가족은 애정이라고 하는 정신면만으로 결합된다고 하는 만큼 이와 같은 경우에는 그것은 거꾸로 약점이 되어 때로는 가족붕괴라고도 하는 비극도 초래한다. 게다가 현대는 소외(疏外)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있듯이, 사람들의 생산의 장소나 다양한 사회관계 속에서 그 인간의 충실과 인간적인 발전이 저해되어 톱니바퀴와 같은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소외 상황에 대하여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따뜻한 인간적인 유대에 의한 정서적인 안식의 장소를 가족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 가족의 커다란 문제를 볼 수가 있다. 게다가 현대에 있어서는 가족원간의 갖가지 관계가, 예를 들면 부부·부모자식·형제·자매 등의 관계가 안정되지 않고 동요하는 일이 적지 않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기대와 자녀의 어버이에 대한 기대 사이에 각각 간격이 보일 때가 있으며 또 자녀에 대한 인간성의 형성·사회화의 훈련이라고 불리는 가정 교육도 희미하게 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핵가족과 함께 노인문제가 커다란 과제가 되어 등장하고 있다.이와 같이 현대사회 속에서 가족은 갖가지 문제를 내포하고는 있으나. 그래도 가정이 단순한 도피 장소는 아니며, 사회를 구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창조적인 인간의 기초를 형성하는 장소임에는 변함이 없다.

해체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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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體家族

일반적으로 가족 상호간의 기본적 관계가 혼란되어 가족의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가족을 해체가족이라고 말한다. 일체의 가족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가족내의 기본적 관계인 가족의 목표, 가족원 상호간의 지위와 역할, 가치기준, 행동양식, 생활자원 등의 요건이 각각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서 정상적인 상태에 있고, 또 상호 밸런스가 잡힌 상태이어야만 한다.다시 말하면, 이러한 요건이 가족원 상호간에 똑같이 저의(定義)되고 이해되고 승인되어서 그것이 기대된대로 지켜지고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개인적·사회적 여러 조건에 의해서 저해되는 경우, 이것을 가족해체라 하고, 이러한 가족을 해체가족이라고 한다. 해체가족은 정상적인 가족의 요건이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이상(異常)·일탈(逸脫)의 상태에 놓여 있고 상호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 그러한 정상적인 가족의 요건이 가족원 상호간에 정의가 흩어져 있거나, 이해되고 승인되어 있지 않거나, 기대된대로 지켜지고 이행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는 가족이다. 이러한 해체가족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느 계층에나 많건 적건 있게 마련이지만, 현대사회에서만큼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화·산업화·근대화·대중화 등의 현대화 상황과 사회체제의 모순·결함이 해체가족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가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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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家族化

일반적으로는 부부와 미혼 자녀들로 이루어진 비교적 소수이고 내적 구성이 단순한 부부가족이 차차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핵가족은 그것이 비단 현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아무리 역사를 소급해서 보거나 지구상의 모든 지역을 살펴보더라도 인간사회에는 언제나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라고 하는 집단은 기본적으로는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거기에 부모 자식의 관계가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핵이 있어, 그것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대가족과 같은 가족집단도 그것은 몇 개의 핵적 가족의 모임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대가족집단이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발전해 가는 가운데에서 차차 따로따로의 핵적 가족으로 분열해 간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현대의 가족은 인간사회에 보편적이었던 핵가족을 그 순수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 된다.핵가족화는 미국이나 그 밖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20세기 초에 상당히 발전했던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그 가구원수의 면에서 소규모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핵가족은 단순히 가족원수의 축소 뿐만 아니라 그 내적 구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것이 주택사정이나 직장형편 등, 혹은 장래에는 부모와 동거할 예정이나 젊은 동안만 별거한다는 식으로, 형태상 핵가족화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하겠다.핵가족화가 어느 정도 진척하는가는 그 나라의 경제적인 발전을 기본적 요인으로 하면서 사회적 제반 제도나 사람들의 사상이나 의식정도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경제적인 발전이 있으면 각각 부부가족으로서 독립하여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만 경제적 발전이 낮은 나라에서는 당연히 많은 가족원의 협력이나 공동노동에 의하여 상호간 협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부부가족으로서 독립해 갈 경우에 이것을 사회적으로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제도와 사상이 필요하다.

가족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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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構成

현대에 있어서 핵가족 혹은 부부가족이란 말이 흔히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현대 가족의 내적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통계 자료가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가족 기능의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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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機能-縮小

개개인의 생활을 사회가 충분히 보장해 주지 못하였던 전근대사회에서는 가족원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그리고 오락이나 교육 등 생활의 모든 면이 많건 적건 가족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사회의 발전, 경제력의 상승 등에 따라 분업과 전문화가 이룩되어 사회적으로 기능이 분화해 감에 따라 인간생활에 관한 갖가지 기능을 전문적으로 해내는 제기관 제조직이 성립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가운데에서 생산에 관한 기관(機關)의 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의하여 급속히 진전되게 된다. 또 이와 관련된 기관이나 국가의 정치나 행정의 확충·정비도 도모된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당연히 대량의 노동자나 화이트 칼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 때까지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영(自營) 농상공업자로서 혹은 그 가족 종사자로서 집을 생산의 장소로 해서 노동에 종사해 왔다. 그것이 차차 집을 떠나 노동자화·샐러리맨화해 가게 된다. 집은 이미 생산의 장소로서는 그다지 의의를 갖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다.생산적 기능을 잃어 갈 뿐만 아니라 교육·종교·오락 등의 제기능도 사회 쪽에서 연구하고 정비하여 전문화해 감으로써 가정 밖에서 얻게 되어 간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세탁이나 식사나 육아와 같은 일상생활의 면까지 가족 외의 기관에 맡겨버리는 경향마저 보인다. 때로는 가족기능의 기본원칙인 공주(共住)·공식(公式) 같은 일까지 결여되는 경우도 있다.이와 같이 가족이 차례차례 그 기능을 다른 기관이나 조직에 맡겨 버린다면 나중에는 그 존재의 의미마저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생기지만 결코 그럴 리는 없다. 현대사회에는 현대의 가족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기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즉, 현대사회는 갖가지 면에서 인간관계를 냉담하게 만들고 기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소외되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기 쉽게 되어 있다. 그런 경우에 가족이라는 집단만이 오직 하나 남겨진 장소로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따뜻한 인간적인 유대에 의한 정신적인 안식처를 제공하게 된다. 또 가족이 해내는 중요한 구실로는 자녀들의 양육이 있다. 키운다는 일 속에는 '하나의 인간으로 만든다' '세상에 나가서 남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갓 태어난 그야말로 생물적인 개체로서의 젖먹이 때부터 시작하여 유아기·소년기로 일관하여 양육이 가능한 것은 부모이며 가족이라는 집단 뿐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인간의 '사회적인 퍼서낼러티'가 형성되어지고 사회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교육'이라는 기능은 현대에 있어서의 가족에게 과해진 중대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원의 근로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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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員-勤勞者化

현대사회에서는 화이트 칼라나 노동자와 같은 근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나 사회나 발전에 수반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고 한편 각 가족에 있어서도 경제적 요인이나 생활수준의 향상을 지향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취업을 하게 되어 있다. 또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과 같은 자영업을 영위하고 있는 집안 사람들도 그 자영업에 취업하기보다는 다른 산업에 근로자로서 취업하게 되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종래 같으면 당연히 그 자영업의 후계자로 간주되는 장남이 근로자화할 뿐 아니라 현재의 경영주마저 근로자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히 농촌 가족에 현저하다. 현재 농촌에서는 농업에만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이러한 일들은 당연히 이제까지의 가족의 형태나 가족원의 상호관계를 변화시키게 된다. 즉, 경제적인 것을 장악하는 사람이 권위를 가질 가능성이 크지만, 가족원 하나하나가 근로자로서 소득을 얻게 되면, 거기에는 권위의 분산과 상대적인 독립이 생기기 쉽게 된다. 또 집 이외의 장소에서 일하는 까닭에 공동생활을 하는 시간과 장면이 적어진다. 그리고 차차 관심이나 생활 태도나 의식(意識)에 차이가 생기고 또 개인적으로 되어 간다. 그 결과 부모는 자녀들, 자녀는 부모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아내와 남편간에도 감각의 틈이 생겨 충돌하거나 오해를 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현대가족은 애정이라는 정신적인 면으로 결합하고 있는만큼 이 문제는 지극히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원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와 기회를 갖도록 하는 일이 요망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의 기회가 적어지고 있는데 텔레비전이 안방으로 파고들어 텔레비전에 의해서 말이 적어지게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텔레비전을 통하여 서로의 생각이나 의식을 표현하고 의견을 교환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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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婚 현대의 가족에 있어서 결혼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로운 남녀의 서로간의 애정과 합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즉,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며 과거와 같이 어느 집안과 어느 집안의 결혼이라는 문벌간의 결혼이 아니다. 어느 가문에 시집 온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와 결혼했다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의 것은 아니지만(우리나라에는 아직 이와 같은 통계자료가 없으므로) 일본의 통계 조사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결혼 목적에 대한 비율 (주부 2,000명에 대한 조사)


결혼의 목적


비  율


두 사람의 애정을 결실시키기 위한 것


   40.0%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위안·휴식처를 만들기

위하여


   20.7


자기의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19.2


자손을 낳아 기르기 위하여


   12.1


남들이 그렇게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습관이므로


    5.1


오래 계속되어 온 가문을 유지·계속시키기

위하여


    2.7

부모와 자녀의 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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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母-子女-別居

현대의 가족은 부부가족의 형태가 매우 많아졌다. 그것은 곧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부모와 별거한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동거는 세대 차에서 오는 가치관이나 인생관의 상위,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나 복잡한 인간관계 등에서 자연히 오해나 충돌, 혹은 긴장상태가 조성되기 때문에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계(家系)를 이을 장남 부부마저도 별거하는 예가 적지 않다. 단, 이런 경우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죽으면 동거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는 부부가족이 아니라 직계가족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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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人問題

부모와 아들 부부가 동거하는 복합적인 가족에 있어서도 부모가 노령에 이르면 그 부양과 공경(恭敬) 같은 문제, 혹은 노령화(老齡化)에서 오는 자기 중심성, 자기 폐쇄성, 활동성의 감퇴, 고독감·시기심·질투심의 왕성화·불평 불만과 같은 심리적 행동적인 것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충돌과 같은 가족관계의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현대가족에 있어서는 부모와 아들부부가 별거하는 부부가족적 경향이 높아진 데에서 부양에 대한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심리적·행동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가족관계의 문제는 대체로 회피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촉진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현대의 가족에 있어서의 노인문제는 특히 중요한 문제로 되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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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현대와 같이 핵가족화의 진행에 따라서 2세대(世代)에 걸친 부부의 동거가 적어지거나 2차대전 후의 민주화 속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가 사회화한 일도 있고 하여 최근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는 가족은 얼마든지 있으며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시어머니 쪽은 노령화에 따른 자기 폐쇄성과 활동성의 감퇴 혹은 시기심 질투심과 같은 특징을 차차 강하게 나타내게 되고 특히 가족 가운데에서의 권위나 역할을 잃게 되는데 대하여 반발하며 고집이나 편견과 심술로서 가족원을 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옛날의 가문 의식을 배경으로 하여 며느리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수도 있으며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의식마저 가질 때도 있다.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는 옛날에는 가족에 있어서의 인간관계 가운데서 지극히 중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게 한 일도 많았다. 현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케이스가 때로 나타나는데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는 여전히 거기서 생성되는 인간관계의 트러블이 크건 작건 존재하고 또 그러한 가능성이 저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문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는 가족이라기보다 부모와 장남 부부가 동거하며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가족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부부 쪽에서는 노인 부부의 가족내에서의 역할을 인식하고 체력과 능력에 알맞은 일을 하도록 주선하여 이것을 평가할 것이고 또 필요한한 상의를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편 노인 내외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그리고 생활태도나 의식을 이해하고 가족의 운영에 협력하여 생활 속에서의 새로운 활동 분야나 취미 및 관심을 가지도록 힘쓰는 것이 좋다. 특히 중요한 것은 노부부와 아들 부부간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도록 즉 대화의 기회를 많이 가지도록 하여 서로가 잘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핵가족화해 가고 있는 현대가족에 있어서는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데에서 이와 같은 배려는 필요 없는 것 같이도 생각되겠지만 별거하기 때문에 더욱이 이와 같은 조치가 강조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단절되어 버리기 쉽다. 핵가족화가 형태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진보되어 있는 외국에서도 부모와 아들 부부의 주택간의 거리는 '수프를 가지고 가도 식지 않을 거리'라고 하고 있다. 거기에는 생활은 따로따로일지 모르지만 역시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관계가 요구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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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母-子息-關係

현대의 가족에 있어서는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중요한 뜻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법률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또는 사회 관습적으로나 하나의 질서 체계를 볼 수가 있었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봉건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좋고 나쁨은 별도로 하고 일단은 안정된 관계였다. 물론 여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판단을 따르고 때로는 집안을 위해서 희생이 되는 수도 있었다. 따라서 거기서는 자식의 인격이 인정되는 일이 없이 어느 문중의 일원이며 모씨네 가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2차대전 후의 민주화 속에서 이와 같은 낡은 제도나 관습과 의식(意識)에서 해방되어 사람들은 인격을 지닌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부모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존재도 아니게 되었다. 현대가족의 원리는 상호의 애정에 입각하여 결합하는 관계라고 하는 정신적인 면에 뒷받침이 되어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애정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것은 아무튼 불안정한 것으로 되기 쉬우며 또 영속성이 결여되기 쉬운 것이다. 조그만 일로 혹은 오해나 자극에 의하여 곧 동요를 초래하는 일이 있다. 부모와 자식의 세대 차에서 오는 생활태도나 의식이나 가치관의 상위가 상호의 오해와 불신을 가져오는 일이 왕왕 있으며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동요를 초래하여 불안정한 것이 되기 쉽다. 게다가 전후(戰後) 우리나라의 상황은 묵은 가치체계 속에서 자란 부모와 가치체계의 붕괴 및 새로운 가치체계가 생겨나지 못한 채로의 혼동 속에서 자라가고 있는 자식들간의 단절은 지극히 큰 바가 되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식에게 있어서는 부모의 가치체계는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수가 있고, 또 그와 반대로 부모가 자식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나 행동의 전부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서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서로 용납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가족으로서 공통의 장소마저 갖지 않게 되는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상호의 무관심·무간섭으로까지 발전해간다.이와 같은 경향은 다시 가족기능의 축소문제와 연결되어 생활공간이나 시간이 가족 이외의 곳에서 쓰여지면 쓰여질수록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절되고 가족 연대감은 희박해진다. 부모와 자식의 사회관심이나 생활행동이 개별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기가 보다 곤란하게 된다.그러나 한편에서는 서로의 인격 존중을 전제로 하여 민주적인 가족 운영하에 새로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각자가 가족내에서의 구실을 다하고, 그에 입각한 권리와 의무를 명백히 하며 항상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해가는 노력이 거듭되고 있다. 물론 이 배후에서 부모 자식간의 애정이 공고하게 결합되고, 또 이와 같은 노력에 의해서 그 애정이 보다 강해져 가는 것이다.이러한 부모 자식관계를 생각할 경우,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버릇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현대에는 자식의 버릇을 가르치는 일이 잊혀지고 있는 경향이 많다. 혹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게 된 면이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서 말한다면 현대에는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란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인 한 자녀의 버릇을 가르치는 일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그러한 경우, 물론 그 방법·내용 등이 문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또한 현대가족이 여전히 자녀들의 양육을 맡아야 하는 중요한 구실을 가졌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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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女敎育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옛날에나 지금에나 변함없는 가족의 기본적인 기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낳아 길러 창조성이 넘치는 인간으로 형성시켜 가며,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며, 사회를 창조 발전시켜 가게 된다면 아이들의 양육만큼 가족에 과해진 중요한 구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교육이라고 하면 어딘지 진부(陳腐)한 것을 상상하기 쉽다. 즉 예의범절이라든지 윤리도덕이니 사회적 관습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녀교육은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서 사회를 창조 발전시킬 수 있는 인간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라든지 사회에 적응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성의 형성은 주로 후천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기초는 2살쯤에서 6살사이에 정해진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동안에 있어서 가족원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매우 크고 또한 중대하다.이제까지의 예의범절이나 윤리도덕이나 사회적 관습 속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또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 가기 위하여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음과 동시에 반대로 사람다움을 저해하고 사회 발전에 장해가 되는 것도 있다. 그러한 저해나 장해가 되는 것을 파괴하고 거기에 새로운 가치체계를 건립하는 창조성을 지닌 인간을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을 학습시키는 일이야말로 자녀교육의 내용이라고 생각된다.그러나 현대사회 속에서는 자녀교육은 현저히 곤란하게 되고 애매한 것이 되고 있다. 인간을 형성한다는 것에서 실리적(實利的)인 것을 노리는 자녀교육으로 변해가고 있다.현재의 부모들이 과거에 자기네가 받았던 자녀교육을 자신감과 권위를 가지고 자녀들에게 전해가는 사회적 기반이 붕괴되고 말았다. 즉 이제까지의 자녀교육 내용은 사회 전체의 가치체계로서 부정되고 만 것이다. 이제까지의 가치체계의 미완성, 그로 말미암은 혼돈상태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속에 놓여지고 있다. 게다가 개인주의적 감각이 파고 들어왔는데, 그것이 이기주의적인 경향을 키우게 되어 자녀교육의 내용이 그에 적응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서 소비혁명, 대중사회적 무드가 생활을 뒤덮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태도나 사회 속에서 대성하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그것보다는 오히려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생활을 즐기는 작은 행복에서 적극적 가치를 발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또 과거와 같은 제도적인 그리고 관습화된 가족에 있어서는 그 나름대로의 일관된 자녀교육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붕괴와 가족원의 개별화 경향 그리고 가족원의 연대감이 희박해지고 있는 현대가족에 있어서는 자녀교육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상실되는 일도 나타나게 된다. 우발적인 자녀교육은 자녀들의 인간성 형성에 있어서 커다란 마이너스를 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자녀교육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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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女敎育-內容

현대에 있어서 실제로 어버이들이 '무엇을' ' 어떻게' 가르치려 하고 하는가를 조사의 실례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에 따르면 도시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생활 주변의 정돈'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부모 동기에게 애정을 가지고' 또는 '훌륭한 단체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라는 형으로 자녀교육을 생각하고 있고, 농촌의 어머니들은 남자 아이에게 '건강에 주의' '무엇에나 끈기있게'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훌륭한 단체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부모 동기에게 애정을 가지도록' 하는 형이며, 여자아이들에게는 '무엇에나 끈기있게' '주변의 정돈' '마음씨 고운 사람이 되도록'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훌륭한 단체 생활' '부모 동기간에 애정을'이란 형의 자녀교육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개인적·신변적인 자녀교육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하여 예의범절, 남의 인격존중, 정의감 등의 대사회적(對社會的)인 자녀교육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물론 자녀교육은 가정에서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을 보완하고 혹은 가정에서 할 수 없는 자녀교육을 어버이들은 학교나 교사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서의 기대 내용은 '예의 범절'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공중도덕을' 등으로 되어 있으며, 사회에 나와서 집단생활과 사회생활이 스무스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인격을 완성시켜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자녀교육을 하는 부모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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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女敎育-父母-態度

자녀교육을 하는 부모의 태도를 분류해보면 4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현재 아이들로서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현재 지향이거나, '장래 일을 생각하고 자녀교육을 한다'는 미래 지향, 둘째는 왜 자녀교육을 하느냐는 문제로 '본래 인간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므로'라고 하는 이른바 이념적인 교육과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이익이 되므로'라고 하는 실리적 자녀교육, 셋째로 도덕적 행위의 습관화를 바라는 기준을 '자녀교육'의 방법으로서 본인의 자각에 기대하는 자각적 방법을 취하게 하거나 혹은 행위에 갖가지 구속을 가하는 강제적 방법을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이와 같은 분류로 말한다면 현대의 어머니의 자녀교육 태도는 '미래 지향적'이고 '실리적'이고 '내면적 기준'에 의하며 '자각적 방법'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확실한 논리와 태도로서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어버이는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의식이나 행동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자녀교육 방법이 곤란해져 애매한 것이 되어가지 않을 수 없다.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사회의 대중화·소비혁명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 속에서는 과거와 같은 이상주의적 자세나 대성(大成)에의 기대가 상실된 까닭에 조촐한 장래 생활의 안정을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므로 아이들에게 학력을 붙여 주기 위하여 일류교에 진학시키고 큰 회사에 취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제1의 목적이 된다. 3살 때쯤부터 벌써 음감(音感) 교육이니 '미술 교육'이니 하기 시작하여 이윽고 취학하게 되면, 학교에서 교사가 시키는 학과공부, 또 과외공부 혹은 가정교사에게 매달리게 한다. 그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이거나, 평균점과의 차이이거나, 학교의 격(格)문제이거나 한다. 이런 속에서는 인간형성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이상주의적 태도나 정의감이나 창조성과 부모의 기대간의 차가 크기 때문에 아이들은 곧 좌절감 속에서 차차 부모의 페이스로 끌려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부모의 대한 심한 반발이나 저항이 되어 나타나며, 부모 자식간의 격절(隔絶)상태를 만들어 내게도 된다.

부부의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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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婦-幸福度

경제적 또는 물질적 충족이 행복의 중요한 전제이지만,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이 그대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심리학자는 결혼의 행복감이란 "결혼 생활에서 개인의 생리적 또는 사회적 욕구가 충족된 정서적 평형상태(平衡狀態)"라고 말하고 있다.이 경우 부부 행복이라는 조건속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대하여 가지는 요구가 있고, 그것이 얼마만큼 상대방의 행위에 의해서 충족되느냐가 문제가 된다. 즉 '만족감' 혹은 충족되지 않을 경우의 '욕구 불만'이라는 형태로 포착된다.

부부간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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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婦間-期待

부부의 행복감이나 욕구 불만은 가정에 있어서의 구실에 대하여 아내나 남편이 서로 가지고 있는 기대를 전제로 해서, 그것이 얼마만큼 충족되었다고 느끼느냐, 얼마만큼 기대에 어긋났느냐에 따라서 생겨난다.현실적으로 부부는 서로 가사·육아·경제·레크리에이션·교제·섹스와 같은 가정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하여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단순히 일하기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자녀들과의 가정생활을 즐기려는 기대가 높아졌다.또 남편 쪽에서도 아내에게 대해서는 과거처럼 집을 지키고, 가계를 꾸려나가며 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무드나 버라이어티(다양성)을 주는 센스나,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여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의 대중화·소비혁명·레저붐 가운데서 사생활을 소중히 하고, 생활을 즐기는 마이홈주의적인 경향이 높아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남편은 아직 가족에 있어서의 종래의 남존여비적인 사고방식이나 권위주의적인 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그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순종할 것을 기대하거나, 남편의 생활 페이스에 아내가 보조를 맞춰줄 것을 바라거나, 남편의 행동에 간섭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점도 볼 수 있게 된다.

가족원의 권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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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員-權威關係

과거의 가족의 최고 권위는 뭐라해도 아버지이며, 남편에게 있었다. 전후(戰後) 이것이 붕괴되어 오긴 했지만 현대에도 이념적으로는 부부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가족이면서도 사회적·경제적 조건의 미성숙 등에서 아직 낡은 형태로 권위가 남아 있다. 하지만 가족의 현대화가 진척됨에 따라 가족내의 권위는 보다 상대적인 것으로 되어간다. 현대가족이 애정이라고 하는 정신면으로 결합되는 만큼 정신면에 있어서의 근대화를 볼 수 있으며 남녀평등 의식이나 인격의 존중이라는 생각에서 가족관계가 결합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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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婚

이혼은 말할 것도 없이 두 번 다시는 동일한 인간 구성에 의한 가족관계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가족관계의 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혼율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산업의 기계화, 인구의 도시 집중, 사회의 근대화 속에서 가족이 남녀평등의 개인주의적으로 핵가족화한다는 것은 애정이라는 정신적인 면만으로 결합한다는 것이 되어, 어느 면에서는 깨어지기 쉬운 면을 지니고 있고 가족 해체(解體)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다. 그 예로써 미국이나 영국·스웨덴·덴마크 같은 데에서는 이혼율이 높아가고 있다.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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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出

가출은 가정적인 냉담이나 생활의 불안정을 견디지 못하여 현재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나, 자기의 생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가정에서 떠나 안주할 장소를 구하려고 하는 도피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간에게 불만이나 불평이 생기기 쉽고, 정신적 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상황에 있다. 이른바 인간소외라는 상태가 생활 속에 침투하여 가족관계가 불안정하게 되고 차갑게 되기가 쉽다. 그 때문에 최근 도피행동으로서 가출이 조금씩 늘어가는 경향이 있다.최근의 가출 속에는 돈벌이를 떠난 뒤 그냥 처자를 유기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케이스나, 생활이나 인간관계 혹은 지역사회에서의 구속 등 귀찮은 것에서 도피하여 이른바 '증발(蒸發)'하듯이 갑자기 그 때까지의 생활 전부를 포기하고 가출하는 케이스도 생겨나고 있다. 농어촌 지역의 청소년이나 매스컴 등의 영향으로 도시를 동경하여 가출하는 것이나, 친구들의 꾐에 빠져 가출하는 사람, 또는 가정불화로 자포자기적으로 가출하는 사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