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동양미술의 흐름/일본의 미술/일본의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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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이지 금동 8각등롱[편집]

東大寺金銅八角燈籠 도다이지 다이부쓰덴(大佛殿)의 넓다란 뜰의 중앙에 서 있는 것인데, 다이부쓰덴 관계에서는 유일한 창건 당초의 유품이다. 대불(大佛)에게 바칠 등을 넣기에 꼭 알맞게 대담하게 커다란 형으로 만들어져 지주부(支柱部)에 비하여 불을 넣는 화대부(火袋部)가 유난히 큰 것이 특징이다.

전체가 8각형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도 진기한 점이다. 8면의 화사(火舍) 중에서 4면은 양쪽으로 여는 문으로 만들고 사자문(獅子紋)을 부조(浮彫)하였으며, 다른 4면은 가사형(架裟形)의 투조(透彫) 바탕 위에 답할연화상(踏割蓮華像) 위에 서서 비운(飛蕓) 속으로 천의(天衣)를 펄럭이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음성보살(音聲菩薩)을 부조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밝고 푸짐하며 그 웅대함은 덴표미술의 진가를 잘 드러낸 절품이다.

쇼소인의 보물[편집]

正倉院-寶物

쇼소라는 것은 지방의 국이(國)나 군(郡)의 관청, 여러 대사(大寺)의 제일 창고이고, 쇼소인이라는 것은 그 쇼소가 있는 한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보통명사였는데 오랜 기간 동안에 다른 쇼소가 모두 소멸되어 버렸으므로 오늘날에는 쇼소인이라고 하면 도다이지의 쇼소였던 것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쇼소인에는 수많은 보물들이 수장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고메이(光明) 황후가 부군의 유애품을 도다이지에 헌납한 것을 비롯하여 9천여 점이 넘는다.

보물의 귀중함은 나라시대 당시의 보물들이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세(傳世)되어 남아 있다는 점과 유서(由緖)가 지극히 확실하여 남겨진 기록에 의하여 그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종류나 기법이 다채로와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으며 세계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다는 데에도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일본과 가장 친근했던 한국의 산물이나 중국산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남 아시아·인도 따위 남방지역, 중앙아시아 지방, 더욱 멀리는 사산 왕조 페르샤, 남(南)러시아나 동(東)로마의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등, 당나라를 중개로 하여 전해진 것이 있다. 말하자면 쇼소인 보물들 속에 응축(凝縮)되어 있는 것은 당시의 세계적인 문화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화첩마키에쿄쇼쿠[편집]

花蝶蒔繪挾軾

헤이안의 전기 대표적인 칠공예품이다. 후지다(藤田) 미술관 소장으로서 형식은 갑판(甲板)에 2각(脚)을 순자로 세우고, 하부에는 2단(段)의 고형을 붙이는 받침대를 파내고 있으며, 쇼소인에 전하는 칠공예품과 형식을 같이하고 있다.

갑판에는 천을 바르지 않았으며 전체를 흑칠로 칠하여 갑판을 측면과 다리 밑 받침대에 보상화(寶相華)와 나비를 번갈아 가며 금은 마키에(蒔繪)로 나타내고 있다.

편륜차 나전마키에 수상[편집]

片輪車螺鈿蒔繪手箱

후지와 라 마키에(藤原蒔繪)의 세련된 그림무늬와 정묘한 세공(細工)이 조화된 아름다운 수상이다. 유수(流水)에 적신 우차(牛車)의 차륜문양(車輪文樣) 65개를 나전과 금마키에로 번갈아 배치했다. 마키에에는 소금(燒金)과 청금분(靑金粉)을 적당히 배치하고 색채에 변화를 주고 있다.

도자기[편집]

도코나메·비젠[편집]

常滑·備前

고세도도(古瀨戶陶)는 헤이안시대의 신흥 무사계급이나 사원 등 한정된 범위에서밖에 퍼지지 못했다. 이에 대하여 보다 전국적이고 민중적이었던 것은 야키지메(燒締) 도기였다.

가마쿠라시대 이후 계속해서 구워진 6개소의 도기 대생산지 세도(瀨戶)·도코나메·에쓰젠(越前)·시가라키(信樂)·니와(丹波)·비젠(備前)을 총칭하여 6고요(六古窯)라 한다. 헤이안시대까지의 요장(窯場)은 전국에 흩어져 있었으나 가마쿠라시대에 이르자 주로 6고요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게끔 되었다. 이 중에서 세도 이외의 요장에서 구워진 것이 야키지메도기인데 독·항아리·바리(鉢) 따위 일상잡기가 그 중심이었다.

라쿠야키차완[편집]

樂燒茶碗 모모야마시대가 되자 그 때까지 성했던 다도(茶道)가 더욱 번성해져서 도자기계(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센노리큐(千利休)를 비롯하여 뛰어난 다인(茶人)들의 예리한 심미안이 그 무렵의 도자기 발달을 한층 더 자극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임진왜란에 의하여 한국에서 많은 도공(陶工)이 일본에 이주하여 한국의 기술을 널리 전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한국인 라쿠조지로(樂長次郎)에 의하여 만들어진 라쿠야키차완(樂燒茶碗)이 있다. 부드러운 질의 도기로 된 차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조용히 음미하는 마쓰챠(抹茶)에 알맞는 것으로서 대단히 애호되었다.

세도야키[편집]

瀨戶燒

가마쿠라시대에 기형(器形)이나 문양(文樣)에 중국 송원시대 도자기의 영향으로 유일한 시유도기(施釉陶器)를 구운 세도에서는 당대에 있어서도 다갈색의 태유(飴釉)와 회유계(灰釉系)의 황유(黃釉)가 시행되었고, 새로이 중국의 진호(眞壺)를 흉내낸 다호(茶壺) 등이 만들어졌다. 특히 도쿠가와(德川)미술관 소장의 백천목차완(白天目茶碗)은 유명하다.

기세도[편집]

黃瀨戶

세도요(瀨戶窯)가 전란에 의하여 미노(美濃)에 옮겨졌는데, 여기에서 소성(燒成)된 세도도(瀨戶陶)의 작풍(作風)에 의하여 기세도·시노(志野)·오리베(織部)로 나뉜다.

기세도는 기표(器表)의 유색(釉色)이 누른기를 띠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칭이 있다. 그 유약은 종래의 고세도(古瀨戶)의 계보를 따라서 목회질의 회유(灰釉)이고 가장 전통적인 세도요예(瀨戶窯藝)라 할 수 있으나, 유조(釉調)는 현저하게 다르고 특히 불투명한 거친 표면으로 된 것에 당대의 특색이 발휘되었다.

시노[편집]

志野

좀 거친 백토로 만들어진 기부(基部)에 장석질(長石質)의 백색유가 두껍게 입혀진 것이 기본적인 모습이다.

오리베[편집]

織部

이 명칭은 다장(茶匠) 센노리큐(千利休)의 수제자였던 후루타오리베 조시게나리(古田織部正重然)의 지도를 받고 작도(作陶)했던 데서 유래한다. 기발한 기하학적인 무늬나 남만적(南蠻的)인 분위기를 불어넣은 독창적인 의장(意匠)으로 유명하다.

가라쓰야키[편집]

唐津燒

모모야마시대에 일어난 도예(陶藝)로서 일본에 이주한 한국 사람들에 의하여 시작되어 형자(形姿)·문양 등에 한국 도자기(고려자기 및 이조백자)의 영향이 현저하고 일상잡기를 주로 구웠다.

이 가라쓰 야키는 작풍에 따라 오쿠고라이(奧高麗)·마다라카라쓰(斑唐津)·에카라쓰(繪唐津)·쿠로카라쓰(黑唐津) 조센카라쓰(朝鮮唐津=조선을 말함) 등으로 나뉜다.

나베시마야키[편집]

鍋鳥燒

한국인 이참평(李參平)에 의하여 시작되고 일본 최초의 자기(磁器)로서 유명하다. 소메쓰케(梁付)로 불리는 이 자기는 청람색(靑藍色)의 청결한 맛을 지니고 있다. 같은 계통의 자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이마리항(伊万里港)에서 수출되었으므로 이마리야키(燒)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