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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사상/현대의 사상/분석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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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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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은 철학 연구에 있어서 언어분석의 방법이나 기호논리의 활용이 불가결하다고 믿는 이들의 철학을 총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석철학은 특정한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토대로 하여 고정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학파가 아니라 철학하는 방법의 경향이 유사한 학파를 지칭한다.

분석철학의 시대적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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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析哲學-時代的區分

현대 분석철학이 발전되어 온 과정은 4기로 구분하여 논할 수 있다.

<1기(1900-1920년 전후)>

독일의 프레게가 선구하였고 영국의 러셀 등이 대표한 논리주의적 수학기초이론은 분석철학의 산실(産室)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러셀과 무어 등의 신실재론을 비롯해 케임브리지 분석학파와 논리적 원자론 등이 분석철학의 탄생을 알리는 구실을 하였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던 퍼스의 기호논리와 프래그머티즘도 분석철학의 범주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2기(1920-1945년 전후)>

분석철학이 본격적으로 학파의 성격을 띠고 출발한 것은 논리실증주의를 표방한 때부터다. 1920년대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슈리크의 지도로 결성되고 카르납 등의 주역을 담당하였던 빈 학단과 이에 동조한 구미 각지의 학파나 학자들은 논리적 분석과 경험적 검증을 강조하는 논리실증주의를 내세웠고 종래의 형이상학을 배격하였다. 이들은 국제회의와 기관지 <인식>을 통해 공동연구에 착수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나치 정권의 위협 때문에 중단되었고, 논리실증주의자들 대부분이 유럽으로부터 미국과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3기(1945-1960년 전후)>

그리하여 분석철학이 미국과 영국을 본거지로 하여 전개된 시기가 이 때이다. 처음에는 논리실증주의의 일반적 프로그램에 많이 동조하였으나 세부적인 면에서 비판이 대두하여 분석철학 내부에서 활발한 공방전이 벌어진 시기다.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 분석학파를 계승 발전시킨 옥스퍼드 일상언어학파(日常言語學派)가 출현하여 일상언어의 분석이 필요함을 역설하였고, 포퍼 등의 비판적 합리주의와 미국의 콰인 등의 신프래그머티즘은 강경했던 논리실증주의의 의미기준을 비판하였으며, 카르납 등은 보완책을 마련하여 논리실증주의를 수정·개방하였다.

<4기(1960-1990년대 후반)>

그동안 논의된 분석철학의 성과들이 널리 적용되는 한편, 분석철학적 논의의 세계도 미국과 영국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유럽 각지로 다시 전파되어 국제적인 공동연구의 광장을 마련한 시기이다. 그 광장의 역할을 하는 '국제회의', '국제적 연구소', '국제학술지 및 학술총서' 등의 활동이 오늘날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분석철학과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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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析哲學-科學哲學

위의 구분은 광의의 분석철학을 논한 것이며, 협의의 분석철학은 영국의 일상언어학파만을 뜻한다. 오늘날은 '과학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분석철학을 지칭하기도 한다. 엄밀히 보면 '분석철학'은 철학의 학파적 성격을 지닌 데 반해 '과학철학'은 철학의 한 '분과'를 지시하므로 양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석철학자들이 과학철학 분야를 다루고 있고 현대 과학철학이 주로 분석철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분석철학자라고 호칭하는 자들 중에는 '분석철학'보다 '과학철학'이란 명칭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만큼 양자를 혼용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찍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분석의 방법' 못지 않게 '종합'과 '통일'의 방법을 모색하였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노이라트, 카르납, 모리스 등이 주축이 되어 파리, 코펜하겐, 케임브리지, 보스턴 등지에서 '통일과학에 관한 국제회의'를 다섯 차례나 연차적으로 개최한 바 있으며, 노이라트는 193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국제통일과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38년부터 <통일과학 백과전서>라는 총서를 기획, 미국에서 이를 계속 발간하였다. 노이라트가 편집하던 <통일과학 논단>은 그가 사망한 직후(1946), <종합 Synthese>이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속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인식론, 방법론 및 과학철학에 관한 세계 굴지의 잡지인 가 라이렐 출판사에 의해 네덜란드와 미국 보스턴에서 출간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1959년부터 현재까지 <종합총서> Synthese Library가 계속 출간되어 분석철학 4기의 특징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잡지나 총서 중 하나가 '종합'이란 명칭을 지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분석철학이 편협하게 일방적으로 '분석'만을 일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철학과 분석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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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分析-方法

철학은 본래 그 어원이 보여주듯이 인간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사랑(Philosophia)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지혜의 사랑은 오류에 대한 증오를 수반한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신화적 사고를 탈피하여 합리적 사고를 추진하려 한 것이나 소크라테스가 개념 분석에 열중한 것도 모두 애지(愛智)와 오류, 증오의 철학정신의 발현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철학 본연의 사상이 현대 분석철학에서는 언어분석과 논리활용의 도움으로 실현되고 있다. 애매한 언어로 이루어진 개념과 명제들을 명석하게 분석함으로써 그릇된 신념과 독단적 아집(我執)의 함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현대인이 개발한 논리와 과학의 힘을 통해 인간을 진리에 접근시키려는 것이 분석철학의 기본목표이다. 그리하여 분석철학은 종래 형이상학의 독단과 오류의 대부분이 언어오용(言語誤用)에 기인됨을 폭로하고, 과학 속에 잠재해 있는 사이비 과학의 요인들을 가려내 과학의 과학성을 확보하는 한편, 기호논리라는 신무기를 다각적으로 개발하여 철학연구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분석'을 철학의 적절한 방법으로 처음 천명한 사람은 러셀이다. 그는 신실재론의 입장에서 실재(reality)를 분석가능한 복합체로 간주하고, 그때에 철학적 분석은 복합체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존재론적 분석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대상이 실재해야 했다. 그러나 참이면서도 그에 대응하는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 명제가 있음을 발견함에 따라 러셀은 그의 실재론을 거부하고 문맥적 정의(contextual definition) 형식으로 분석하는 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철학적 분석은 쾨르너가 지적했듯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기술이론에서처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용법이나 규칙 및 그 의미 등을 전시해 보이는 전시적 분석(exhibition­analysis)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언어의 경우 문법적 규칙과 논리적 규칙은 혼동하기 쉬우며 단순히 반복하는 언어행동과 법칙·지배적인 언어행동을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전시적 분석은 실제로 수행되고 있는 언어적 행동을 경험과학적으로 연구하여 규칙과 의미들을 전시해 보임으로써 언어적 질환을 치유하는 치료적 분석(therapeutic anlaysis)과 통한다. 이런 분석은 무어, 브로드, 비르겐슈타인의 후기 사상, 일상언어학파 등에서 주로 사용된다.

다른 하나의 분석은 대치적 분석(replacement analysis)이다. 결점 있는 개념을 결점 없는 개념으로 대치하는 분석을 말한다. 전시적 분석은 잘됐건 못됐건간에 언어의 용법을 그대로 전시할 뿐이며 그것을 수정하지 않으면 대치적 분석은 능동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하도록 새 개념으로 대치한다. 대치적 분석에서는 '결점의 기준'을 전제로 하며 그 기준에 의거하건대 피분석항(Analysandum)은 결점이 있으나 분석항(Analysans)은 결점이 없어야 하고, 피분석항과 분석항 사이에는 진리불변(眞理不變)의 대치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대치적 분석의 고전적 예로는 러셀이 역리(逆理)를 일으키는 집합개념을 대치시킨 것을 꼽을 수 있다. 대치적 분석은 인공언어에 의한 분석을 철학연구에 주로 적용시킨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서 현저히 나타나고 있으며, 분석철학 3·4기에 이르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대치적 분석의 피분석항을 명석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적 분석부터 해야 하지만, 전시적 분석을 위해 대치적 분석이 언제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공언어에 의한 분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일상언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양상 논리(Madal logic), 인식논리(Epistemic logic), 내포논리(Intentional logic) 등이 개발되어 일상언어 분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상언어학파와 인공언어학파를 피상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분석철학은 그동안 많은 결점을 노출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된 체계를 고수하려는 학파가 아니므로 결점의 발견은 오히려 새로운 대치적 분석의 계기가 되어 다양한 논리를 창안해 내면서 점진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시행착오적 전진은 미래철학에도 계속될 것이다.

<李 初 植>

마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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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st Mach (1838-1916)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과학사가·철학자.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빈에서 배우고 그라츠 대학의 수학, 프라하 대학의 물리학 교수를 역임. 1895년 빈 대학의 과학사·과학론의 교수가 되었고 오스트리아 상원의원을 지낸 적도 있었다. 물리학자로서는 초음속(超音速) 제트기 연구로 알려져 있고, 초음속의 속도 단위인 '마하 수(數)'는 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그러나 마흐는 특히 과학사, 과학의 인식론적 연구 분야에서 현저한 업적을 보여주었다. <역학(力學)의 발달>(1883)은 역학의 원리나 방법을 해명하기 위해서 그 사적 측면에 따라 비판적으로 역학을 다룬 것으로서 그중에서도 뉴턴 역학의 비판을 통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성립에 영향을 끼친 것은 유명하다. 이러한 연구를 기초로 철학적으로는 영국경험론의 사상을 받아들여 과학인식에 있어서 감각에 주어진 것만을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입장을 제창하고 <감각의 분석>(1886), <인식과 오류>(1905) 등의 철학적 저작에서 그의 사상을 전개했다.

돌이든 나무든간에 이 세계는 결국 감각에서 주어지며 그것을 요소로 해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물을 다루는 과학은 형이상학적인 것을 조금도 인정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단순한 사실, 곧 감각의 기술(記述)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적은 개념으로 많은 사실을 기술하여 사고의 절약을 도모하는 '사유경제(思惟經濟)'가 그 본질이라고 하였는데 당시의 사상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와 같이 모든 과학은 동일한 감각을 다루는 것이므로 여러 과학은 그 취급 태도에 있어서만 다를 뿐, 근저에 있어서는 일치한다는 통일과학(統一科學) 사상도 보여주었다. 감각만을 인정하는 이러한 마흐의 입장은 마르크스 주의자 레닌에게 관념론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실증주의, 통일과학 사상은 현대 논리실증주의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특히 이 학파는 처음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마흐 협회'라고 명명되었다.

인식과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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認識-誤謬 (1905)

마흐의 주저.

부제 '탐구의 심리학 약설(略說)'이 말해 주듯이, 과학적 탐구의 심리 및 논리를 다룬 것으로 많은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인식과 오류>라는 책명은 그중의 한 장(章)에서 딴 것으로 이 장에서는 흥미있는 오류론을 전개하고 있다. 마흐에 의하면 모든 인식은 감각으로부터 출발하고 감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인식도 잘못된 인식도 감각이라는 동일한 심적 원천(心的源泉)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 단계에서는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결과에서만 가능하며, 잘못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해서 곤란한 경우에 부딪히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금후로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가 생기는데, 이 태도가 의도적·과학적 탐구의 시초라고 보아도 좋으며, 이 점에서 잘못은 탐구를 촉진하고 우리를 바른 인식으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이러한 오류론 이외에도 이 책에는 흥미있는 논의가 많다.

아베나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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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Avenarius (1843-1896)

독일의 실증주의적 철학자.

파리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배운 후에 취리히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인식작용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입각해서 전적으로 순수한 경험에 의해서만 세계를 일원적(一元的)으로 설명하려 하는 순수경험(純粹經驗)철학, 경험비판론의 입장을 제창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마흐와 함께 현대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술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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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述學派

과학의 본질은 자연현상을 가장 간단한 형태로, 그리고 완전하게 기술하는 데 있다고 하는 학파.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갈릴레이·뉴턴 등으로부터 시작되는 고전물리학은 그 세부까지 다듬어져 완성의 경지에 달하게 된 것을 반영하여 과학자 자신에 의한 과학 자체의 성격을 명백히 하려고 하는 인식론상의 시도를 하였다.

그중 독일의 키르히호프(1824-1887)·오스트발트(1853-1932), 영국의 칼 피어슨(1857-1937), 프랑스의 두엠(1861-1916) 등은 철저한 실증주의의 입장에서 과학은 자연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찰된 것을 가능한 한 간단히 기술, 속기(速記)한 것으로 그것이 과학의 법칙이라고 주장하여 기술학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프앵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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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Poincare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

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명문으로 사촌형제 중에선 대통령이 된 레이몽 프앵카레(1860-1934)도 있다. 파리의 이공과대학, 소르본 대학의 천문학 교수를 역임. 프랑스 과학원 회원. 또 문재(文才)로서 프랑스어에 기여했다고 하여 문예원 회원도 되었다.

그가 활약한 19세기 말은 수학·물리학 방면에서 커다란 변혁이 있었고 그때까지 절대로 확실하다고 여겨지던 과학에 동요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프앵카레는 박식에 의해 새로운 과학관을 탐구, <과학과 가설>(1902), <과학의 가치>(1905), <과학과 방법>(1908), 유고(遺稿) <만년(晩年)의 사상>(1913) 등 일련의 저작에서 사상을 전개했다.

그 중심은 과학의 이론을 컨벤션(편리성에 근거를 둔 규약)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수학의 진리, 예컨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은 경험과 선천적인 것에 호소하여 어느 쪽이 참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본 명제는 단순한 규약·약속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명제의 진위성(眞僞性)을 묻는 것은 미터법의 진위성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유가 없으며, 단지 우리가 응용할 때 보다 편리한 쪽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규약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임의의 것이 아니라 응용되는 측면에 따라 스스로 규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수학이라면 그것이 응용되는 경험적 세계의 구조에 따라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물리학 등 실험과학의 이론도 규약적 성격을 가지며, 이러한 과학의 고도 원리는 이미 직접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므로 역시 규약이라 보아도 좋다. 이 컨벤셔널리즘(규약설 또는 편의주의로 번역된다)을 중심으로 하는 프앵카레의 과학론은 현대에도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과학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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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方法 (1908)

프앵카레의 세 번째 사상서(思想書)로서 4편으로 되어 있다. 주저 <과학의 가설>의 사상을 과학방법론 측면에서 보충·발전시킨 것이다.

과학의 본질·목적은 많은 사실을 근소한 법칙에 의해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으며, 이와 같은 파악을 위하여 사실을 선택하는 것이 과학의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반복하여 일어나는 단순한 사실을 선택하는 것이며, 이에 의해 보편적인 인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보편적 인식을 위한 사실의 선택이야말로 단순히 실용을 위해서 또는 기분에 따라서 사실을 선택하는 방법과는 달리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실용을 위한 과학이 아닌 '과학을 위한 과학'이며, 인식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해 과학은 존재하는 것이다(제1편 '학자와 과학').

이러한 입장에서 프앵카레는 당시의 새로운 수학·물리학의 발전을 받아들이고 이론을 전개해 갔으며, 제2편 '수학적 추리(數學的推理)'에서 러셀 등의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입장에 반대하고, 수학의 기초는 직관(直觀)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주장하고, 수학의 방법으로서 수학적 귀납법을 중요시한다. 제3편 '신역학(新力學)', 제4편 '천문학'에서도 새로운 실험 사실이나 이론이 이러한 과학론보다 보편적인 인식에 도달하게 만든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제1편에는 프앵카레 자신의 수학상 발견이 "합승마차의 발판에 발을 댄 순간에 이뤄졌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나와 있으며, 발견에 대한 심리학상의 한 가지 재료가 되었다.

파이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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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Vaihinger (1852-1923)

독일 신칸트 학파의 철학자.

독일 튀빙겐 근교 네렌 태생,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강사, 할레 대학 교수 역임. 칸트 연구가로서 출발하였고, 잡지 <칸트 연구> 창간(1895), '칸트 협회' 창설(1905) 등 칸트사상의 부흥에 진력하는 한편, 그 자신 칸트 철학을 실용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알스·오프(AlsOb)(마치 -인 것처럼)의 철학'을 제창했다.

그것은 원자·절대자 등의 학문적 개념은 참된 실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인 것처럼 생각하면 인간 생활에 유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가상적 구성물(픽션)'이라고 하는 현대의 프래그머티즘에 가까운 입장이다.

영국의 신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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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國-新實在論

20세기 초엽, 관념론과의 대립에서 발생한 사상운동이다.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지각의 대상이 존재하는 것은 지각의 작용에 의존하는 것이며 "세계는 의식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하는) 관념론을 비판하고 지각의 대상은 지각하는 자로부터 독립하여 실재(實在)하고 따라서 의식과 그 대상과의 관계는 전혀 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자연적 존재만이 아니라 가치나 의미도 그 자체가 실재한다고 말한다. 이미 18세기의 토머스 리드에게서 그 싹을 볼 수 있으나 1903년 무어가 <관념론의 반박>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적극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무어 이외에도 초기의 러셀, 알렉산더(1859-1938) 등의 사상에 의해 대표되고, 현대의 영국·미국 철학의 주류인 언어 분석을 방법으로 하는 분석철학의 모태가 되었다.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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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Edward Moore (1873-1958)

영국의 철학자.

런던의 근교인 어퍼 노스에서 태어났다. 1892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러셀을 알고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98년 장학금 연구원(펠로)으로 선발되고 그 동안에 자주 러셀과 철학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주저 <윤리학원론>을 쓰고 영국에서 신실재론(新實在論)의 시조가 된 논문 <관념론의 반박>을 발표하였다. 1911년 케임브리지 대학 강사가 되고 1925년에 철학·논리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러셀,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등과 친교를 맺고 영국 철학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다. 케임브리지에서 85세의 생애를 마쳤다.

그의 사상의 근본은 관념론과의 대결이다. 관념론의 근본 전제를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요약한다. 그리고 여기에 내포된 애매성과 혼란을 지적하고 지각의 대상과 대상의 지각과의 구별, 곧 의식의 대상은 그 자체로서 의식의 작용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의 주된 관심은 윤리학에 있었는데 여기서도 가치를 자연적·형이상학적 존재로부터 단절시키면서 그 객관적 실재성을 보장하려고 한다.

특히 체계적 철학을 부정하고, 언어 분석 또는 논리 분석을 이용하여 철학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또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 가는 이른바 분석적 방법을 개발하여 현대의 영국·미국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윤리학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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倫理學原理 (1903)

무어가 트리니티의 장학금 연구원(펠로) 시절, 런던의 패스모어·에드워즈·세틀먼트에서 최초의 윤리학 강의를 했을 때 구상한 것이다.

'머리말' 및 '윤리학의 주제' '자연주의적 윤리학' '쾌락주의' '형이상학적 윤리학' '행위에 관련된 윤리학' '이상(理想)'의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리학의 주제는 ① "선(善)이란 무엇인가" ② "어떤 것이 선인가" ③ "어떤 것이 선에 원인 또는 조건으로서 관계하는가" 하는 세 가지 물음으로 나뉘며, ③은 ②를, ②는 ①을 포함한다. 따라서 윤리학의 근본 문제는 선의 정의를 구하는 ①이 된다.

선은 독특한 성질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성질로서, 분석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선은 정의할 수 없고, "선은 선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선을 정의하려고 하는 어떠한 기도도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예컨대 쾌락이 선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선은 쾌락이라는 정의를 이끌어내는 오류인 것이다. 따라서 선을 욕망·진화(進化) 등의 자연개념으로 정의하는 자연주의는 물론 절대자 등 초감각적 실재(超感覺的實在)로 정의하는 입장도 배척한다.

이 책의 중심 사상은, 윤리적 가치는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의미에서의 존재로부터도 독립하여 실재한다는 주장에 있다. 현대 영국·미국 철학은 이 책이 제기한 것을 문제로 삼으면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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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현대 영국의 철학자·수학자·사회사상가.

웨일스, 트레레크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빅토리아 여왕 밑에서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낸 존 러셀경이다. 일찍 양친을 여의고 조부의 집에서 자랐다. 1890년 18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 수학·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나 처음 수학자로서 출발하였고, 수학기초론(數學基礎論)에 입각해서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논리주의(論理主義)의 입장을 확립하고 화이트헤드와 공동으로 현대 수학의 금자탑이라고 하는 <수학원리>(1910-13)를 대성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그는 수학 연구를 통해서 얻은 논리학의 성과를 그의 철학에 받아들임으로써 철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현대 최고의 영국의 철학자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또 정치·사회 문제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두었고, 특히 사회개량가로서 알려졌으며 사회의 불합리한 제도나 실제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평화주의 때문에 모교에서 추방되고 감옥에 들어갔으며, 또 그리스도교를 부정하고 지나치게 자유로운 결혼관을 내세워 뉴욕 시립대학의 교단에 서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는 사회사상가로서 <사회 개조의 원리>(1916), <교육론>(1926), <행복론>(1930), <권위와 개인>(1949) 등 많은 저작이 있으나,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정열적인 실천가이며 가끔 국제 여론의 지도자가 되어 헌신적인 실천 활동을 하였다. 또한 194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러셀의 철학사상은 흔히 지적되듯이 발전적이며 자주 변했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어 있는 철학에서의 분석적 방법은 일관되어 있고 이에 의해서 과학적인 철학을 수립하려고 한다. 이 방법을 토대로 영국 경험론의 전통 위에 선 인식론을 전개하는 것이 그의 철학인데, 처음에는 대학에서 받은 교육 때문에 헤겔적인 절대정신(絶對精神)만을 참된 실재라고 하는 관념적 일원론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수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이 입장을 버리고 그 반동으로서 이번에는 많은 존재물을 인정하는 다원론(多元論)의 입장을 취했으나 <철학의 제 문제>(1912)에서는 개체와 보편, 감각과 물체를 함께 인정하는 2원론적·플라톤적 실재론의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외부 세계의 인식>(1914)에서는 감각소여(感覺所與, 센스 데이터)만을 확실한 것으로 보고, 사물은 감각소여로부터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명한 견해에 도달했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 원자론이라고 불렀는데 <정신의 분석>(1928)에서는 감각도 물체도 아닌 중립적인 것을 참된 존재로 보는 중성적 1원론(中性的 一元論)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는 언어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그가 단지 논리학, 인식론 중심의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 일반에 깊은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저 <서양철학사>(1945)의 존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수학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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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學原理 (1910-1913)

전3권.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공저. 현대 수학의 금자탑이라고 일컬어지며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에 필적한다고 한다. 순수 수학을 논리학으로부터 이끌어 내려고 시도한 책으로서, 자연수(自然數)·유리수(有理數)·실수(實數)까지 다루었으나 기하학을 취급할 예정이던 4권은 미간으로 끝났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모두 수학자·논리학자였던 독일의 프레게(1848-1925), 이탈리아의 페아노(1858-1932) 등의 선구적 업적을 계승하여 수학의 원리는 소수의 개념·공리(公理)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것은 논리학의 원리에 틀림없다고 보았고, 우선 이 책에서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을 도입·확립하고 거기서부터 수학 체계를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논리학은 수학의 청년기이며 수학은 논리학이 성인이 된 것"이라고 하여, 수학과 논리학을 동일시하는 논리주의의 입장은 형식주의·직관주의(直觀主義)와 함께 수학의 기초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수학상의 업적에 그치지 않았다. 종래의 논리학과 달라 애매한 일상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엄밀한 기호적 표현에 의해 논리학을 구성하는 기호논리학 또는 수학적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논리학을 확립, 언어를 명확히 함으로써 철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리실증주의 철학에 하나의 이상언어(理想言語)를 제시한 것으로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러셀의 경우, 이 논리학의 연구를 통해 얻은 수법·사고방식이 그의 모든 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외부세계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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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世界-認識 (1914)

미국 보스턴에서의 로웰 강연을 기초로 한 러셀의 책.

부제 '철학에서의 과학적 방법이 적용된 영역으로서의'가 말해주듯, 러셀이 말하는 철학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인 논리 분석의 방법이며, 철학상의 중요 문제 중 몇 가지를 취급하고 이 방법의 본질·가능성 및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부 세계의 인식>이라는 책명은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장(章)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선 제1장에서 당시 철학의 경향을 칸트·헤겔 등의 '고전적 전통 위에 선 철학', '진화론의 철학' 및 '논리적 원자론의 철학'의 셋으로 나누고, 앞의 두 가지를 비판하고 제3의 입장을 주장했으며, 이와 관련시켜 제2장에서 철학적 인식에 있어서의 논리학적 사고방식의 특징·역할을 말한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어 제3장에서 외계, 제4장에서 물리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의 관계라는 문제를 다루고, 제5-7장에서 연속과 무한이라는 예로부터의 철학 문제를 논하는데, 수학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각 철학자의 설을 분석·비판한다. 끝으로 제8장에서는 원인의 관념을 분석하고, 다시 자유의지 문제를 다루며, 밖으로부터의 강제적인 힘에 반대할 수 있는 스스로의 욕망에 바탕을 둔 의지의 존재라는 형태로 이를 인정한다.

주제인 외계의 인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은 외계를 자기의 감각을 통해서 아는데, 이 경우 일반적으로 감각으로부터 독립된 물(物) 자체가 외계에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들의 감각에 나타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우리들의 감각에 주어진 것을 분석적 방법에 의해 거기에 포함된 애매한 것, 불확실한 것을 제외하고 보다 단순하고 확실한 것으로 분석해 가면 끝으로 남는 것은 가장 소박한 감각소여(感覺所與, 센스 데이터)뿐이다.

예컨대 테이블을 보는 경우, 눈에 비치는 것은 색뿐이며, 그나마 보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만, 확실한 존재는 그것뿐인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물리적인 존재로 보이는 테이블 자체는 이러한 감각소여로부터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말하며, 논리적 원리를 이용한 경험론의 입장을 구성한다.

사회개조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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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改造-原理 (1916)

제1차 대전 당시 평화주의자 러셀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

그의 정치철학은 전쟁을 피하고 자유와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이 사회를 개량하는 의견을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이 책이며, 국가·전쟁·재산·교육·결혼·종교 등을 다룬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일관된 사상은 철저한 반전사상(反戰思想)으로서 그런 까닭에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 행동의 일반 원리를 추구하고 그것을 '충동'이라고 파악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목적이나 욕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맹목적인 충동이다.

흔히 말하듯이 전쟁은 경제적 동기 등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며, 침략의 '충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도 역시 전쟁 반대에의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인간을 근본으로부터 움직이는 '충동'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타인과의 공유를 허용하지 않는 소유물의 획득·확보에 힘쓰는 '소유충동'과 지식·예술·선의와 같은 사적 소유(私的所有)가 불가능한 가치있는 것을 지향하는 '창조적 충동'이 그것이다. 그중 소유충동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감소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 충동이 정치적으로 구체화한 국가, 제도로서의 전쟁, 재산에 대해 구체적 개량안이 제시된다.

그리고 창조적 충동에 바탕을 둔 생활이 가장 좋은 생활이며, 본래 이러한 충동이 구체화된 것이어야 할 교육·결혼·종교도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여 역시 구체적 개량안을 제시한다. 러셀의 이러한 견해는 당시의 유럽, 특히 영국 사회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전쟁 방지 사상은 오늘날도 역시 큰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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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Wittgen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 및 무어에게 배우고 빈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건축가로 활약. 친구의 권유로 1929년 케임브리지에 돌아가 철학 강사가 되었으며, 1939년 교수가 되었다. 러셀·무어와 함께 케임브리지 분석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빈 학단의 마흐적 실증주의는 러셀 및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의미의 논리적 분석과 결합하여 비로소 논리실증주의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초기와 후기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논리실증주의에 영향을 준 것은 러셀적 색채가 짙은 초기의 <논리(論理)·철학론에 나타나 있는 엄밀한 논리적 원자론(論理的原子論)> 사상이다. 곧 인식의 최소단위는 개념이 아니라 판단이며, 인식이 의미있는 것은 이 원자인 판단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만가능하다고 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후기가 되면 그는 논리적 원자로 환원되지 않는 애매한 인식이라도 그것이 수행되는 상황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사상은 <철학적 연구>(1953, 유고)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사상이 옥스퍼드 학파의 일상언어 분석에 연결되는 것이다.

논리·철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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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理·哲學論 (1922)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사상을 아포리즘(警句) 형태로 표현한 서적. 러셀이 쓴 서문이 있다.

명제(판단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문장·언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의 논리적 구조와 논리적 추리의 성질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되며, 이어 지식론, 물리학의 제 원리, 윤리학의 차례로 다루고 끝으로 종교 문제를 논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개개의 원자적(요소적) 사실은 판단(명제)에 의해 '모사(模寫)'된다.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꽃은 아름답다'는 판단으로 모사되고 여기서 '꽃' '은' '아름답다' 등의 여러 개념이 형성된다. 개념이 먼저 있고 이것이 결합되어 판단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적 사실의 모사인 판단의 내용(명제)은 상호 독립된 원자적 명제이며, 이것이 '논리적 원자'가 된다.

원자적 사실이 모두 바르게 모사되고 원자적 명제로서 파악되면, 이러한 논리적 원자를 구성함으로써 세계는 완전히 인식된다. 그런데 명제(命題)는 언어에 의해서 객관화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인식은 바로 언어의 조작, 곧 언어의 논리적 분석인 것이다. 따라서 세계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철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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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的硏究 (1953)

이 책의 제1부는 비트겐슈타인이 1945년까지 써 두었던 것이다.

거기에 그의 사후에 남겨진 초고를 제2부로 첨가하여 출판되었다. 취급된 주제는 의미·이해·명제·논리학 등에 대한 개념, 수학의 기초, 의식의 상태, 기타 광범하지만 반드시 논리적 연관이 명백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논리·철학론>을 출판한 후에 그 특징인 논리적 원자론이 너무나 기계적이라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론을 버리고 명제(문장, 판단, 인식, 어느 것이나 같다)는 그것이 사용되는 문맥(文脈)·맥락·상황·전후 관계와 그것이 사용되는 목적에 의해 의미있는 것이 되며, 기계적으로 논리적 원자인 원자적 명제로까지 분석(分析)·환원(還元)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명제 사용이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일상언어의 분석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철학자의 과제는 언어를 그 형이상학적 용법에서 일상적 용법으로 회복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철학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의 모순·혼란·불명료성 등을 치료하는 데 노력했다. 그의 후기의 비교적 유연한 분석 태도는 협의의 분석철학파로서의 일상언어학파에 의해 계승된다.

논리실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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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理實證主義

1922년 슐리크의 빈 대학 교수 취임과 함께 그의 세미나를 중심으로 여러 전공 분야의 학자가 모여 마흐의 실증정신(實證精神)을 계승하고 과학을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하며 세계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공통 목표로 삼는 사상 운동을 개시하였다.

주요 멤버로서는 실링 이외에는 전문 철학자가 거의 없고 과학자가 많았다. 비트겐슈타인은 빈 체재 중에도 이 파와의 교섭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 및 소수 멤버와의 접촉에 의한 영향은 매우 컸다. 1926년에 카르납이 빈 대학에 초빙된 후 급속히 발전하여 그 그룹은 '마흐 협회'를 창설하고, 이윽고 그들 자신의 입장을 '논리실증주의', 그리고 협회를 '빈 학단'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동일한 운동을 지도하고 있던 라이헨바흐(1891-1953)가 가담하고 1930년부터는 기관지 <인식>을 발행. 또 <통일과학 백과전서>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연구 논문을 노이라트의 지도를 받아 시카고에서 발간, 통일과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각지에서 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시민주의(코스모폴리터니즘)가 나치스와 맞지 않고, 슐리크의 서거(1936) 등도 있어서 이 학파는 1938년경에 실질적으로 해체되고, 멤버의 대부분은 영국·미국, 기타 나라로 옮겨갔다.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은 현대 분석철학의 주류의 하나이며, 비판받을 점도 많으나 그 과학적 정신과 냉정한 분석적 태도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

슐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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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itz Schlick (1882-1936)

독일의 철학자. 베를린에서 태어나 빈 대학 교수를 지냈다. 노이라트·카르납 등과 마흐 협회·빈 학단을 창설하였다. 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지도자. 사실과 엄격히 대응하는 명제를 진리로 보는 경험적 인식론, 논리학 및 수학의 선험성(先驗性) 등을 연구했으며, 정신착란에 걸린 학생에게 살해되었다.

노이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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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 Neurath (1882-1945)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빈에서 태어났다. 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지도자. 빈 학단 중에서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 교통 표지에 사용되는 그림글씨처럼 시각화된 언어(아이소타이프)를 연구했다. <통일과학 백과전서> 발간의 임무를 맡았다. 런던에서 객사.

카르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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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Carnap (1891-1971)

현대 독일의 철학자. 독일의 쾰른 근교 우퍼탈에서 태어났다. 빈과 프라하 등의 대학에서 가르쳤다. 처음에는 프레게(1848-1925), 러셀의 영향을 받아 기호논리학에 의한 '세계의 논리적 구성'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이어서 수학자 괴델(1906- )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어 언어의 논리적 결어법(結語法)을 연구. 1936년부터 시카고 대학 교수. 타고스키의 의미론(意味論)을 배우고 논리학 및 수학의 기초를 구명. 논리실증주의자 중에서도 형식화된 인공적인 기호논리학에 의해 명제의 분석을 철저히 한 학자.

세계의 논리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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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論理的構成 (1928)

여러 과학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명제의 유의미성과 진위를 확인하려고 하는 논리실증주의 과제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수행한 카르납의 초기 노작.

기초적 경험은 지정의(知情意)의 융합인 '경험의 흐름'이며, 이 흐름 속의 유사한 경험이 기억되어 감각이 된다. 감각을 통해서 시공(時空)의 질서, 지각(知覺)의 세계, 인간의 신체가 구성되고, 이 기초 위에 물리학적 세계, 다시 그 위에 지식 체계를 갖춘 문화적 세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직접 경험으로부터 지식 체계에 이르는 전 세계의 기계적·논리적 구성은 제 과학의 언어 체계의 축적에 의해 가능해지므로 과학의 언어적 엄밀화와 통일이 필요하다. 러셀적인 논리적 원자론의 착상을 이용하여 세계의 논리적 구성을 시도해 본 것으로서 논리실증주의의 정신과 특징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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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Jules Ayer (1910-1989)

영국의 논리실증주의의 대표적 철학자.

1946년 런던 대학 교수. 1959년부터 옥스퍼드 대학 교수. 초기 논리실증주의자의 대부분은 명제의 의미성을 확인함에 있어서 그 명제의 각 부분이 감각적 경험에 의해 완전하게 검증될 가능성을 요구하였으나, 에어는 조건을 완화하여 언제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경험과학의 명제는 부분적 검증이 가능하면 유의미, 그것조차 불가능하면 형이상학적 명제라고 하였다.

윤리적 명제는 주관적 정서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규범학(規範學)으로서의 윤리학의 성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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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Raimund Popper (1902-1995)

런던 대학의 논리학과 과학적 방법론 교수. 뛰어난 과학철학자.

1964년에 나이트 작위를 받았다.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포퍼는 논리실증주의나 일상언어학파와 긴밀한 교섭을 가지면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일관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의미의 검증이론(檢證理論,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을 때에만 명제는 의의를 갖기 때문에 형이상학의 명제는 무의미하다고 한다)을 그 자체가 현실적 근거를 갖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과학의 방법으로 일컬어져 온 귀납법은 사실 그렇지 않고, 현대과학의 특질은 가설=연역적 방법에 있다고 지적한다.

후자의 언어분석학파에 대해서는 철학을 일상언어의 분석에 국한시키는 것은 정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는 또한 개인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마르크스 주의적 역사관을 배척하고, 사회개혁의 구체적·현실적 방법으로서 '점진적 사회공학(漸進的 社會工學)'을 제창한다.

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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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ard Van Orman Quine (1908-2000)

현대 미국의 철학자로 뛰어난 논리학자.

오하이오주 태생. 대저 <수학원리>에 대한 개선이나 철학적 배려를 바탕으로 한 기호논리학에 대한 수많은 공헌으로 유명하다.

철학상으로는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에서 경험과는 관계없이 참이 증명되는 분석명제(分析命題)와 경험에 의해 진위가 결정되는 종합명제(綜合命題)를 준별하는 논리실증주의에 대하여 그러한 구별은 결코 명확하지도 유효하지도 않다고 비판한다. 또 그는 일상 사용되는 다소 의미가 애매한 자연언어(自然言語)와는 다른, 명료하고 정연한 인공언어의 구축(構築)을 생각하는데 이러한 언어관에 대한 비판은 최근 촘스키 등의 언어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일상언어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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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言語學派

제2차 세계대전 후 라일 교수를 지도자로 하여, F.와이즈만·H. L. A. 하트·J. L. 오스틴·S. 툴민 등 이른바 현대 '옥스퍼드파'가 성립하였다. 이 파는 논리실증주의 운동과 같이 '학파'나 '운동'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개념이나 명제의 의미를 일상언어의 문맥에서 일상언어 그 자체를 사용하여 분석할 것, 그리고 분석을 위해 형식화된 인공적 기호논리학을 사용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점 등에서 '일상언어학파'라고 불린다. 또 개념이나 명제의 의미성은 그 진위와는 별도로 문맥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여, 양자를 동일시하는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한다. 이것은 후기의 비트켄슈타인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협의의 '분석철학'은 이 파의 철학을 말한다.

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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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bert Ryle (1900-1976)

영국의 철학자로 옥스퍼드 대학 교수. 철학 잡지 <마인드>의 편집 책임자. 일상언어학파의 중심적 학자.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람들은 여러가지 개념을 '사용하여' 말할 줄은 알지만 이러한 개념에 '대해서' 말하거나 논리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서투르다. 철학 과제는 바로 이러한 일을 실행하는 데 있다. 그것은 새로운 지식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의 논리적 지도를 개정하는 것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에 관한 사상을 일종의 '신화'라고 하여 배척하고 새로운 정신의 개념을 제창하였다.

미국의 신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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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新實在論

20세기 초엽, 영국의 무어나 러셀의 실재론적 주장에 호응하여 미국에서도 관념론에 반대하는 과학주의적인 철학자들이 사상 운동을 일으켰다.

1910년에 하버드 대학의 페리(1876-1957)를 비롯하여 홀트(1873-1946), 마빈(1872-1944), 스폴딩(1873-1940), 몽타규(1873-1953), 피트킨 등 여섯 사람은 신실재론자로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이어 1912년에 공동 저작 <신실재론>을 간행하였다.

개인적인 견해 차이를 넘어서서 그들은 관념론자의 주관적인 견해를 반격하고 동시에 사물은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운동은 심리학에서는 행동주의를 취하고, 공명자도 있었으나 주관과 객관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견해는 이윽고 비판을 받았다.

비판적 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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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判的實在論

제1차대전 직후인 1920년에 드레이크(1878-1933), 러브조이, 프라트(1875-1944), 로저스(1868-1936), 산타야나, 셀라즈, 스트롱(1862-1940) 등 7명의 미국 철학자에 의해 공동 연구 <비판적 실재론 논집>이 간행되었다.

그들은 객관계가 주관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실재론의 지나친 점을 비판하고 직접 알려지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지각소여(知覺所與)뿐이며, 사물은 지각소여로부터의 간접적 추리에 의해서 알려진다고 하여 소여와 대상을 구별하는 2원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각소여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에서 논리적인 '본질'로 생각하는 드레이크 등과 단순한 지각의 복합이라고 보는 러브조이 등으로 갈라진다. 30년대 후반에는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관심이 실재론에 대치된다.

산타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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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antayana (1863-1952)

에스파냐 태생의 미국 철학자·시인·평론가.

생후 얼마 안 되어 양친이 별거하자 처음에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8세 때 어머니가 있는 보스턴으로 갔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었으나 1912년에 사직하고 영국, 프랑스에서 살다가 1925년 이후에는 로마에 정착. 제2차 대전 중에는 로마의 사원에서 가톨릭적 자유사상가로 지냈다.

그의 사상은 어느 학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것으로서 실재론과 관념론을 결합시키려고 한다. 물질적 실재의 존재는 합리적으로는 증명되지 않고, 존재에 관한 신념은 모두 비합리적 '동물적 신앙(動物的信仰)'에 바탕을 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본질'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견고한 자연주의와 아름다운 낭만주의를 결합하려고 하는 것은 산타야나 사상의 특징이다.

이성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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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性-生活 (1905-1906)

전5권. 산타야나의 전기 대표작. 부제에 '인간 진보의 제상(諸相)'이라고 있듯이, 인간 정신의 다변적인 활동 중에 이성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탐구한 역사철학 서적이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성의 전개라고 하는 점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이성은 본능적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본능이 조화된 것이며, 의식된 본성(本性)이고, 자기의 진로와 목표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성적 생활은 정기(正氣)이며 성숙이며 상식이다.

제1권은 '상식에 있어서의 이성'이라는 제목 아래 자연과 정신이라는 두 영역의 기원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은 혼돈한 경험 속에서 자연을 확인하고 질서를 찾아내며 시나 철학을 만들어낸다.

제2권 이하는 각기 사회·종교·예술·과학을 다루고 있다. 끝으로 그는 결국 인간의 생활이나 역사에는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러브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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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Oncken Lovejoy (1873-1962)

미국의 철학자·사상사가.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명예교수를 지냈다. 계간지 <저널 오브 더 히스토리 오브 아이디어즈>를 편집. 비판적인 실재론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실재론을 비판하고 경험과 사건은 전혀 다른 시간구조라고 하여 인식론상의 2원론 입장을 옹호한다. 또 제임스의 프래그머틱한 진리 개념의 애매성을 비판한다.

셀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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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Wood Sellars (1880- ? )

미국의 철학자·미시건 대학 교수.

러브조이 등과 <비판적 실재론>(1916)을 출판. 그에 의하면 비판적 실재론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실재론'을 세련되게 발전시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진화론적 우주론이나 유물론적 존재론이 전개된다. 생명이나 마음과 같은 고차적인 것은 가장 바람직한 조건하에서 출현하였지만 역시 물리적인 것이라고 본다.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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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수학적 논리학)의 대성자 중 한 사람이다.

사적(史蹟)이 많은 영국 남부의 켄트주 램즈게이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영국국교회(英國國敎會)의 신부로 사립학교 교장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역사·종교·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을 함양시켜 주었다. 1880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전공하였으며, 이어 장학금 연구원(펠로)으로 선발되고 강사가 되었다. 1910년에 런던 대학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기까지 러셀과 10년간에 걸쳐 협력하여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논한 고전적인 <수학원리> 3권을 완성하였는데, 이미 1898년의 <보편대수학론(普遍代數學論)>(이 논문으로 왕립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등에 이러한 논리=수학적 관심이 나타나 있었다.

런던 대학 시절에는 상대성이론에 강한 관심을 보였고, 그의 철학자로서의 업적은 <자연이라는 개념> 등 과학철학에 관한 여러 저작에 의해 확립되었다. 1924년 63세로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초빙되어 도미하였고,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며 <과학과 근대세계>, <상징작용(象徵作用)>, <과정(過程)과 실재(實在)>, <사상의 모험>, <사상의 제 양태>가 계속 간행되어 우주론 내지 형이상학 체계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과학의 기초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수학자 화이트헤드는 실재론적 기초 위에서 넓은 시야의 문명론을 전개하면서 '유기체(有機體) 철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철학 사상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담화의 명수였으며, 그의 집은 계속 찾아드는 학생이나 동료를 위해 개방되어 있었다. 또 전 생애에 걸쳐 사회와 정치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졌다. 1945년에 문화훈장인 '오더 오브메리트'가 수여되었다. 주저로는 <수학 원리>(3권 1910-1913), <과정과 실재>(1929), <사상의 모험>(1933)이 있다.

과학과 근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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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 近代世界 (1925)

화이트헤드의 도미 이후 제1작. 하버드 대학에서의 로웰 강연에 증보를 가한 것. 명석하고 매력적인 필치로 쓰였으며, 그의 모든 저작 중 가장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은 과거 3세기에 걸친 근대 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변경시켜 왔는가를 밝히려고 한다. 그는 근대 과학의 기원으로부터 설명하기 시작하고 사상사에서 수학의 역할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천재의 세기'로서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 등 지적 천재가 속출한 17세기와 이성의 시대로서의 18세기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시대의 사고방식은 기계론(機械論)이며 물질과 정신의 2원론에 서는 것으로서 유기적 연관(오르가니즘)을 결여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이성에 대한 반동으로서 낭만주의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그의 문학에 대한 조예를 볼 수 있다.

다음의 19세기에 눈부신 기술의 진보와 진화론이 등장한다. 이어 상대성이론과 양자론(量子論)이 다루어지며, 이러한 이론의 출현에 대해 데카르트 이래의 기계적 2원적 자연관은 완전히 고쳐지고 물리학과 함께 생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상대성이론이 세계를 시간과 공간의 통일체로 파악하는 방식도, 양자론이 물질 요소의 유기적 조직을 생각하는 방식도, 모두 세계를 유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과학과 철학의 관계가 거론되고 추상(抽象), 신, 종교와 과학, 사회 진보의 요건 등을 다루는데 어느 것이나 풍부한 실례를 들어서 논하며 저자의 '유기체의 철학'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에서 철저히 고찰한다.

과정과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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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程-實在 (1929)

화이트헤드의 주저. 1927-28년 에든버러 대학에서의 기포드 강연을 바탕으로, 부제가 '우주론에의 한 시론(試論)'이라고 되어 있듯이 과학을 배경으로 하는 통일적인 세계관(형이상학 체계)을 수립하려고 한 책.

그가 스스로의 사상을 '유기체의 철학'이라 명명하고 전통적인 실체(서브스턴스)의 철학을 극복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체에 대응하는 것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현실적 존재'나 '현실적 기회'를 말하는데, 이는 상호간 유기적으로 작용을 주고 받는 현실의 다이내믹한(동적) 과정을 뜻한다. 이 과정이라는 개념은 그의 사상의 기초이며, 시간·공간에 전개되어 있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가 이와 같은 사건이라고 하는 유기적이며 창조적인 관계로부터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직접적인 경험이 입증하고 있다. 이를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유기체의 철학 이외에는 없다.

이 책은 5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 '사변적 구도(思辨的構圖)'에서는 그의 유기체적 철학의 체계를 구성하는 여러 카테고리가 제시되고, 제2부 '토론과 적용'에서는 과거의 철학설과 대비된다. 제3부 '파악의 이론'에서는 현실적 존재간의 상호 작용을 말하고 물심2원론(物心二元論)을 극복한다. 제4부 '외연(外延)의 이론'에선 과학적 여러 개념이 검토되고, 제5부 '최종적 해석'에서는 현실적 존재의 궁극적 설명으로서 '신'이 설정되고 있다. 매우 난해한 책이지만, 이것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정열이 약동했기 때문이며, 사실은 이러한 사상이 그의 과학과 철학에 대한 깊은 사색의 결실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상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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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想-冒險 (1933)

화이트헤드 저.

저자 자신이 "가장 쓰고 싶었다"고 말한 문명 비판서로 <과학과 근대세계> 다음으로 널리 읽혀진다.

유기적인 상호관계라고 하는 그의 기본 사상에 입각해서 사회철학·우주론(과학철학)·철학론·문명론 등이 사상사적으로 전개되어 있으며,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위트에 찬 투철한 견해가 우아한 필치로 서술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인류에 대한 여러 사상, 제2부에서는 플라톤이나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가진 근대의 우주론, 제3부에서는 <과학과 근대 세계>나 <과정과 실재>에서도 시도되었던 철학적 2원론의 구체적인 극복, 제4부에서는 문명 사회의 이념을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진리·미·모험·예술·평화의 다섯 가지 특질을 나타내는 것이 문명 사회이며, 이러한 특질의 배경은 일반화 기능을 가진 철학적 직관이다. 관찰된 것은 개념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된다는 형태로 과학과 철학은 관련되고 협력한다. 철학자가 목표로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완전한 형이상학의 구현이지만, 실제로는 부분적인 일반화가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문명이라는 개념은 본래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문명의 본질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구하는 지적 모험으로서의 형이상학적 사변(思辨)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류는 어떤 종류의 사상,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적 '시사(示唆)'에 의해 현실의 실천이 인도되고 문명의 방향이 결정되어 간다. 그리고 문명의 한계는 무한하다. 이 책은 마음을 개방하고 읽는 독자에게 광범한 분야에 걸쳐 깊은 시사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듀이는 말한다.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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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哲學

오늘날, 영미계(英美系)에서 'philo­sophy of science', 그리고 독오계(獨墺系)에서 'Wissenschafts theorie'로 호칭되는 과학철학은 분석철학의 풍토에서 성장했다. 일찍이 카르납은 현대 과학철학의 영역을 '과학의 논리(logic of science)' 또는 '메타 과학(meta science)'이라고 한 바 있다. 즉 개별과학들은 물리현상, 생물현상, 사회현상 등의 현상을 다루는 데 반해 과학철학의 연구대상은 그런 개별현상이 아니라 과학 자체이다. 과학들은 현상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고 과학철학은 과학적 지식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과학철학의 대상영역은 우선 ㈎ 과학적 지식 일반에 관한 이론과, ㈏ 개별과학의 기초를 탐구하는 특수이론으로 구분되고, 다시금 그것은 과학적 지식의 ⑴ 구조, ⑵ 성장, ⑶ 응용문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를 결합하면 6개의 대상영역이 ⑴의 ㈎와 ㈏, ⑵의 ㈎와 ㈏, ⑶의 ㈎와 ㈏로 분할된다. 그리고 이 대상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은 (Ⅰ) 논리적 접근방식(Carnap, Hempel, Suppes 등), (Ⅱ) 비형식적 접근방식(Feigl, Sellars, K

rner 등), (Ⅲ) 일상언어적 접근방식(Scriven, Achinstein 등), (Ⅳ) 역사적 접근방식(Hanson, Toulmin, Kuhn)과 기타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세기 과학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과학적 지식의 구조에 관한 일반이론(예컨대, 과학적 의미 기준, 과학적 설명과 예측, 가설확증, 인과관계 등)과 특수이론(예컨대, 양자논리(量子論理), 동시성(同時性) 등)에 관한 논리적 접근방식 ― (Ⅰ)의 방법에 의한 ⑴의 ㈎와 ㈏의 연구 ― 이 있다. 그러나 포퍼, 라카토스(Lakatos), 페이에라벤드(Feyerabend) 등이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을 문제삼게 됨에 따라 과학적 지식의 성장 ― ⑵의 ㈎와 ㈏ ― 이 이 과학철학의 대상으로 되었고 접근방식도 앞에서 지적한 대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과정에 관한 철학적 음미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다. 과학적 지식의 합리적 응용과 기술평가의 일반이론을 다룰 때에는 결단론(decision theory), 가치론, 시스템론 등을 논해야 한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 '귀납논리(Inductive logic)'와 '통계적 설명'문제를 다루는 과학철학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었고 분게(M. Bunge)와 아가시(J. Agassi) 등 소수학자들만이 문제삼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⑶의 ㈎와 ㈏ 영역이 과학철학의 커다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李 初 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