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러시아 절대왕제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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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절대왕제의 발전〔槪說〕[편집]

17세기 말까지 러시아는 서유럽 여러 나라와 별로 깊은 관계를 갖지 않은 채 여전히 동방적 존재였으며, 농노제를 기초로 하는 특이한 절대주의 국가였다. 이와 같은 러시아를 근대화하고 서유럽화하는 곤란한 사업에 착수하고 러시아로 하여금 열강의 일각을 점하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표트르 1세(피터 1세)였다.

그는 내정을 개혁하고 군비 확장을 실시하여 황제의 독재권을 강화하였으며, 서유럽 문화의 수입에 노력했다. 그러나 그 여러 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어서 사회의 진정한 근대화에는 미치지 못했고 서유럽화도 일반인에게는 관계없었으며, 농노제가 유지 강화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투르크로부터 아조프해(海) 주변을 빼앗고, 다시 서쪽으로는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벌여 발트해에의 출구를 확보하고, 이곳에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다. 이와 같은 표트르 1세의 사업, 특히 서유럽화의 정책은 보수파의 반항을 야기시켰고, 황제의 사후 이 항쟁은 궁정을 중심으로 정권쟁탈과 결부, 반복되어 예카테리나 2세(카자린 2세)에 이르기까지 약 40년간 계속되어 러시아를 혼란시켰다. 18세기 후반 이 혼란기 후에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1세의 사업을 이어받아 계몽적 전제정치를 펴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농노제는 오히려 강화되어 농민의 대봉기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났다.

예카테리나 2세는 대외정책에도 주력하여 두 차례에 걸친 터키와의 전쟁으로 드네프르강 하구(河口) 지방과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흑해(黑海) 진출의 기초를 구축했다. 또한 오스트리아·프로이센과 함께 3회에 걸쳐서 폴란드를 분할하고 서쪽으로도 영토를 확대시켰다.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전토가 이미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었으나, 다시 극동해상(海上)에 진출하고 락크스맨을 일본에 파견하여 통상을 요구했다. 이리하여 러시아는 18세기 말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이후의 유럽 국제관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표트르 1세(피터 1세)[편집]

-世

Pyot Ⅰ (1672

1725, 재위 1682

1725)

러시아 근대화에 착수하여 유럽 열강의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한 황제. 서유럽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열심이어서, 스스로 네덜란드·영국·오스트리아 등을 방문하여 기술 습득 방법과 제도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해양에의 출구를 찾아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 이겨 발트해 연안을 획득함으로써 염원을 달성했다. 국내에서는 황제권의 확립을 목표로 근대적 군대 편성·행정조직의 정비·세제개혁 등을 실시하였고, 경제면에서는 서유럽의 기술을 도입하여 국영 매뉴팩처를 창설하는 등, 산업의 보호 육성을 기도했다. 그러나 농노에게는 지주의 예속이 강화되고, 인두세(人頭稅)가 부과되었다.

페테르부르크[편집]

Petersburg

표트르 1세가 북방전쟁 중에 이 땅을 점령하여 건설하였고, 자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도시. 1712

1918년 러시아의 수도. ‘서방에의 창’이라 부르며, 모스크바가 옛 러시아의 중심이었던 데 대해서 새로운 러시아의 중심으로서, 서구문화의 수입에 따른 절대왕제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예카테리나 2세 (카자린 2세)[편집]

-世 Ekaterian Ⅱ (1729

1796, 재위 1762

1796)

계몽적 전제군주로서 알려졌고, 표트르 1세의 사업을 계승했던 여황제. 독일 귀족의 딸이며 남편 피터 3세를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볼테르 등의 계몽 사상가와 교신하고 그 영향을 받아 신법전의 편집, 행정조직의 개혁, 교육의 쇄신, 학예의 보호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농민의 생활향상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농노의 부역이나 도망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반동적 경향이 강해졌다. 대외적으로는 투르크를 격파하고 흑해에 진출, 폴란드 분할에 참가하여 영토 확장에 성공함으로써 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폴란드 분할[편집]

-分割

18세기에 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에 의해 3회에 걸쳐 실시된 폴란드(Poland) 영토의 분할이다. 〔제1회〕 1772년. 예카테리나 2세는 폴란드의 내정에 간섭하여 자기의 괴뢰(傀儡)를 왕위에 앉히는 데 성공했으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러시아의 강대화를 경계하여 오스트리아와 함께 분할을 제의, 3국은 국경에 가까운 땅을 나누어 가졌다. 〔제2회〕 1793년 그 후 폴란드는 헌법을 제정하여 국내의 정비에 노력했으나, 프로이센, 러시아가 출병하여 분할을 강행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혁명 때문에 불참했다. 〔제3회〕 1795년 애국자 코슈시코 등의 저항운동도 허사가 되어 폴란드는 3국에 의해서 완전히 분할되어 소멸했다.

푸가초프의 난[편집]

-亂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러시아에서 일어난 대농민반란(1773

1775). 이 시대에는 지주 귀족의 농민지배가 강화되었는데, 돈 카자흐 출신의 푸가초프(Pugachov)는 스스로를 표트르 3세라 칭하고, 농노해방·인두세 폐지 등을 주창하며 농민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볼가·우랄 유역에 확대, 스테판 라진의 반란 이상의 규모가 되었으나, 농민군은 전반적으로 장비가 나쁜데다 조직과 계획성의 결함으로 정부군에 패했다. 푸가초프는 체포되어 1775년에 사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