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북유럽 제국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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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제국의 쇠퇴〔槪說〕[편집]

북유럽의 시장은 옛날부터 유럽 제국의 경제 활동의 중요한 무대였는데, 북아메리카·아프리카·동양 등의 원격지(遠隔地) 무역이 발전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저하되었다. 더욱이 러시아, 프로이센 등의 새로운 강국이 대두하여 발트해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북유럽 제국의 입장은 차차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라들은 제1차 산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시민계급의 성장이 충분하지 못하고, 따라서 근대적인 통일국가의 출현이 지연되었다는 것이 한층 곤란을 증가시키고 있었다.

스웨덴[편집]

Sweden

스웨덴은 북유럽 제국 중에서는 최대의 강국이었는데 북방전쟁에 패했고 1743년에도 다시 러시아에 패하였다. 7년전쟁에서는 독일 안의 구영토 회복을 목적으로 오스트리아측을 지지했으나, 이것 역시 패배하여 재정적 위기에 빠졌다. 구스타프 3세의 계몽 전제주의에 의한 여러 개혁에 의해서 성과를 올렸으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는 분리 경향을 보였고, 19세기 초 러시아에 병합되기에 이르렀다.

북방전쟁[편집]

北方戰爭

스웨덴 대(對)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 작센, 프로이센 등의 전쟁. 스웨덴이 발트해 주변을 지배하는 데 대해서 러시아(표트르 1세)는 발트해의 항구를 필요로 하였다. 폴란드 국왕 겸 작센 선제후(選帝侯)인 아우구스트 2세는 리보니아 지방의 폴란드 병합을 열망하였고, 덴마크는 스웨덴 세력의 감소를 바랬다. 이 세 나라 사이에 비밀 동맹을 맺고(1699), 1700년 덴마크의 슐레스비히 침입과 작센의 리보니아 침입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스웨덴 왕 칼 12세는 먼저 덴마크를 항복시키고(1700. 8. 18:트라벤달 조약), 나르바 싸움(1700. 11)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한 후 리가를 구출하고, 폴란드에 침입하여 폴란드 각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 작센에 침입하여 아우구스투스 2세와 알트란슈테트 조약(1706. 9. 28.)을 맺어 그를 폐위시켰으며, 다시 러시아 정복을 기도, 우크라이나에 침입하여 카자크 대장(隊長) 마제파와 동맹하여 그의 봉기(蜂起)를 도와주었으나, 폴타바 싸움에서 러시아군에게 패하여 칼 12세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으로 도망하였다. 투르크는 러시아에 선전하여 러시아군을 격파(1711:프루트 조약)하였지만, 칼 12세가 투르크에 머물러 있는 동안 형세는 스웨덴측에 불리하게 되어, 1714년 급히 귀국한 칼 12세는 전사하였다(1718). 결국 이 전쟁은 스웨덴측의 패배로, 스톡홀름 조약(1720)과 니시타트 조약(1721) 체결에 의해 종결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 발트 해 이서(以西)의 스웨덴의 패권은 소멸되고, 러시아는 강국(强國)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덴마크[편집]

Denmark

17세기 이래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을 실행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기도했으나 충분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18세기 후반 크리스티안 7세의 계몽 전제주의에 의한 개혁은 성과를 올렸으나 반동파에 의해서 정복당했다. 또한 지배하에 있던 노르웨이는 차차 독립할 기운을 강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