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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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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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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로 근대의 물결 위에 선 이탈리아도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이동함에 따라 여러 도시의 상공업이 쇠퇴하고, 봉건적 반동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의 분열은 제후(諸侯)들의 항쟁에 의해서 한층 격화되었고, 주변 여러 강대국의 이탈리아 지배를 노린 침략은 극히 노골적이어서, 대국의 싸움은 때때로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였다. 에스파냐의 계승전쟁(繼承戰爭) 때,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 에스파냐군의 결전장이 되어 대단한 전화(戰禍)를 입었다. 국내는 소왕국·소공국(小公國)·공화국으로 분열되어, 국가적 통일의 기운(氣運)은 보이지 않았다. 18세기에 이르러서도 국내에 별다른 산업이 일어나지 않았고, 수공업적인 사치품 생산이 일반적이었다. 북이탈리아의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지방은 예외였다. 이 지방에서는 집약적(集約的) 농업이 실시되었고, 밀라노는 상인이 지배하여 활기를 보이고 있었다.

사르데냐 왕국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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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國建設

1720년 이탈리아의 사보이공(公)은 오스트리아로부터 시칠리아와 교환으로 사르데냐(Sardinia, Sardegna)를 얻었다. 오스트리아 계승전쟁 때 사르데냐의 카를로 에마누엘레는 처음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1742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서 에스파냐와 싸웠다. 이듬해 화약을 맺고 오스트리아로부터 밀라노 서부 지역을 획득하여 사르데냐 7왕국을 창립했다. 1752년 아란쥬 조약에서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 상호간의 영토를 재확인했고, 이 상태는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모태(母胎)가 된 것은 사르데냐였다.

베네치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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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和國

1649년부터 1718년에 걸쳐 터키와 싸워서 동방의 영토와 상권을 잃었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기에 가장 번영했던 베네치아(Venezia) 공화국은 차차로 쇠퇴하여, 겨우 금융업에 의해서 국가를 유지해 왔다. 1795년 나폴레옹과의 동맹을 거부하여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어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