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오스만 제국의 약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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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약체화〔槪說〕[편집]

19세기 후반의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의 압력으로 인해 크림전쟁과 러·투 전쟁 등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러·투 전쟁에서의 패배는 오스만 제국에 큰 타격을 주었다. 1878년의 산스테파노 조약과 이를 개정한 베를린 조약에 의해 발칸 여러 민족의 독립이 인정되어 투르크의 세력은 현저하게 후퇴했던 것이다. 이 열강의 간섭과 압박에 허덕이는 오스만 제국에 접근한 나라가 독일이다. 황제 빌헬름 2세는 19세기 말, 2회에 걸쳐 오스만 제국을 방문한 결과 바그다드 철도부설권 획득에 성공하였다.

국내에 있어서는 근대화 개혁이던 탄지마트도 충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1876년에 재상 미드하트 파샤가 시행한 헌정개혁(憲政改革)도 압둘 하미드 2세(재위 1876

1909)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투르크인 사이에는 약체화된 제국과 전제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헌정 부활을 내건 청년 투르크당(黨)의 운동이 활발해졌다.

청년 투르크당[편집]

靑年-黨

19세기 말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개혁을 목적으로 하여 생긴 진보적 혁신파의 통칭. 제네바에서 1891년에 결성된 통일진보 위원회를 주체(主體)로 하였다. 19세기 중엽 이래, 문학운동 등에서 투르크 사회의 개혁운동이 발전되었고, 1876년 미드하트 파샤의 노력으로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술탄이 러·투전쟁을 구실로 이를 정지시킨 이후부터는 헌법의 부활과 전제정치의 폐지를 목적으로 학생·청년 사관(士官)·지식인들이 비밀결사인 통일진보위원회를 조직하여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08년 혁명운동을 일으켜 술탄에게 헌법의 부활을 승인시키고, 국민의회의 선거를 시행하였으며 청년 투르크당의 내각을 조직하였다. 다음해 1909년 수도에서의 반혁명봉기를 진압하고 술탄을 경질(更迭), 근대화에의 개혁을 꾀하였으나, 당내 분열이 일어나 개혁의지가 상당히 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汎)투르크주의를 취하여 민족주의적 경향을 강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 편에 서서 참전하고 패전으로 인해 1918년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