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태평양 지역의 분할
태평양 지역의 분할〔槪說〕
[편집]제국주의 여러 나라에 의한 세계 분할은 태평양상의 섬들에도 파급되었다. 이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1880년대에 동부 뉴기니·북(北)보르네오를 영유하고 태평양 서부에도 진출했다. 뒤늦게 진출한 독일은 서태평양의 여러 섬을 얻고, 프랑스도 남태평양 동부의 섬들을 점령했다. 한편 미국은 1898년 미국·에스파냐의 전쟁 때 하와이를 병합하고 다시 전후에 필리핀과 괌섬(島)을 획득했다. 또한 1914년 파나마 운하를 개통시켜 태평양 진출의 기초를 굳혔다.
오스트레일리아
[편집]Australia
18세기 후반 쿠크의 탐험 후 영국령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수인식민지(囚人植民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자유 이민이 시작되었고, 19세기 중엽 금광이 발견된 이래 급격한 발전을 하여 1901년에 자치령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성립하였다.
미국·에스파냐의 전쟁
[편집]-戰爭
1898년 미국과 에스파냐 사이에 일어난 전쟁. 1890년대에 쿠바에서 에스파냐의 지배에 대한 반항이 격화됨에 따라서 미국의 자산(資産)이 위협을 받았으므로 1898년에 미국은 에스파냐와 개전(開戰)을 했다. 전투는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파리 조약으로 쿠바의 독립이 승인되고 미국은 에스파냐로부터 푸에르토리코, 괌섬 및 필리핀을 할양받았다.
쿠바의 독립
[편집]-獨立
쿠바(Cuba)에서는 1895년부터 에스파냐의 가혹한 지배에 대하여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 후에 맺은 파리조약으로 독립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관타나모에 해군 기지 건설권을 획득하고 누차 파병하여 내정에 간섭함으로써 쿠바는 독립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보호국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탕 재배도 미국 자본에 완전히 지배되고 사탕 이외의 산업은 발달하지 못했다.
리살
[편집]Jos Rizal (1861∼1896)
필리핀 독립운동의 지도자. 1882년 에스파냐로 건너가 주로 문필활동에 의한 필리핀의 정치개혁운동에 종사하다가, 1892년 귀국하여 필리핀 연맹을 결성했으나 좌절되었다.
그후 무력항쟁의 방법을 택하고 대중을 동원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체포되어 1896년 마닐라로 송환된 뒤 처형되었다. 이후 독립운동은 아기날도 등에 계승되었으나, 아메리카·에스파냐 전쟁 결과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되고 독립운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아기날도
[편집]Emilio Aguinaldo (1869∼1946)
필리핀의 독립운동 지도자. 300년 동안 에스파냐의 압정하에 있던 필리핀의 독립운동이 격화되어 카티푸난당(黨)이 결성되자, 아기날도는 그 지도자로서 1896년 독립을 선언하고, 다음 해에 혁명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 필리핀 총독이 된 프리모 데 리베라의 회유정책으로 1897년말 타협한 뒤, 홍콩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스파냐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미국 해군의 지원으로 귀국하여 재차 독립운동을 지휘했으며, 1898년 미군의 마닐라만 공격을 배경으로 혁명정부의 대통령이 되어, 중앙정부를 조직하고, 1899년 필리핀 공화국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파리 조약에서 필리핀은 미국 영유로 결정되어 그는 도민(島民)을 이끌고 과감한 대미(對美) 항쟁을 전개하였으나, 결국 패하여 포로가 되고 독립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한 때 일본과 협조하여 독립을 쟁취하려고도 했다.
필리핀 제도 매수
[편집]-諸島買收
미국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에스파냐로부터 필리핀(Philippine) 군도(群島)를 할양받고 대상(代償)으로서 2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후 미국은 원주민의 반항을 눌러 식민지화하였고 극동 진출의 근거지로 삼았다.
하와이 제도 병합
[편집]-諸島倂合
하와이(Hawaii)는 원주민의 왕국으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미국인 사탕 재배업자는 1890년 본국의 관세법 개정으로 자기의 지위가 불리하게 되자, 1893년 반란을 일으켜 미국에 병합을 요청, 1898년에 정식으로 병합되었다.
독일의 태평양 진출
[편집]獨逸-太平洋進出
해외 발전에 뒤떨어졌던 독일도 군사적 견지에서 태평양 방면으로 진출하여 1880년대에 마셜·비스마르크 제도(諸島)를 차지, 1899년에는 에스파냐로부터 카로틴·마리아나·파라오 제도를 매수했다.
파나마 운하
[편집]-運河
파나마(Panama) 운하는 19세기 후반 레셉스 등이 건설에 착수했으나 재정난과 황열병(黃熱病) 등으로 실패하였다. 그 후 열강의 태평양 진출과 더불어 운하 건설이 긴요하게 되어, 1903년 미국은 파나마 공화국으로부터 운하 지대의 영구 사용권을 얻어 1914년 개통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