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槪說〕
[편집]이탈리아는 주로 농업국이었으나, 남부에는 봉건적 대토지 소유가 남아 농업도 충분하게 발달하지 못하고, 농민의 생활 수준도 낮았다. 북부는 공업화가 진전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구매력이 약하고 자원이 부족했으므로 발달이 늦어졌다. 정치적으로 영국풍의 입헌왕제(入憲王制)를 실시했으나, 제한선거로 국민의 대부분은 무자격자였으며, 군소정당(群少政黨)들이 분립하여 정정(政情)은 불안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정에서 19세기 말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성행하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탈리아도 1880년대부터 식민지 쟁탈에 가담하여 동·북아프리카로 진출했다. 또 독일·오스트리아와의 3국동맹에 참가하여 일단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교황청과 정부의 대립
[편집]敎皇廳-政府-對立
1870년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령(敎皇領)을 점령하고, 다음해엔 교황보장법(교황은 俗權을 버리는 대신, 왕국 내의 독립적 존재로서 자유로운 입장을 보장한다)을 결정했다. 그러나 교황 피우스 9세는 이를 거부함으로써, 교황청과 정부의 대립은 이후 반세기 이상을 계속하게 되었다. 덧붙여 말하면 이탈리아가 3국동맹에 참가한 것은 교황청 문제를 계기로 하여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간섭하려는 눈치를 보인 데에 대항하는 의미도 있었다.
사회주의의 대두
[편집]社會主義-擡頭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운동은 1860년대에 시작되어, 1880
1890년대에 비상한 고조(高潮)를 보였다. 이 20년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의 부패, 경제계의 불황과 혼란 속에 각지에서 폭동과 파업이 빈발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1892년, 각파를 통합하여 이탈리아 사회당을 결성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1894년 탄압령을 발포했으나, 사회주의의 세력은 쇠약하는 일 없이 의회에도 대표가 들어가 사회불안이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