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시민혁명과 신대륙/유럽의 절대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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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절대주의 시대〔槪說〕[편집]

절대주의 시대란 봉건제도의 해체에서 시민혁명에 이르는 기간에 가장 특징적으로 출현하는 과도적 성격을 가진 정체(正體)가 존립하고 있었던 시대이다. 따라서 역사적 발전 속도가 다른 각국에 있어서 절대주의는 각각 다른 시기에 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절대주의 시대는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중엽까지, 프랑스에서는 영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으나 18세기 말까지 존속한다.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 절대주의 시대에 들어가서 19세기 후반까지 존속한다. 러시아에서도 절대주의는 18세기 초에 형성되었는데 그것이 최종적으로 소멸한 것은 20세기 러시아 혁명에 의해서였다.

절대주의[편집]

絶對主義 Absolutism

절대주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를 특색지워 주는 정치형태이다. 이 시대는 봉건적 대토지 소유자인 영주(領主)의 세력이 점차로 쇠퇴해 가고 있어 농업이나 공업에 소(小) 부르주아적 생산자가 대두하고 있었다. 국왕은 봉건 영주의 약체화에 대응하여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농민 수탈의 여러 권리를 자기 수중에 집중화(集中化)시키고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하면서 국민적 통일국가의 실현을 꾀하고 있었다. 국왕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팽대(膨大)한 관료 기구와 국왕 직속의 상비군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거액의 경상비를 필요로 했다. 이 비용은 왕의 광대한 영토로부터의 수입, 중앙집권화된 지대(地代)로서의 지조(地租), 그 위에 신흥 시민계급인 상인·공업인에 부과한 세수입에 의하여 잘 처리되었다. 이처럼 절대주의의 재산적 기초는 여전히 봉건적 토지 소유 위에 한쪽 발판을 두면서 동시에 신흥 시민계급의 경제적 부(富)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더구나 왕의 영지에서의 수입이나 지조 수입(地租收入)이 고정화되어 옴에 따라 상공업자의 부력(富力)에 의존하는 정도가 한층 굳어지고 있었다. 경제발전은 궁정을 중심으로 한 국왕의 생활을 점점 사치스럽게 하고 여기에 더하여 국왕의 위세(威勢)를 보이기 위해 되풀이되는 대외전쟁은 국가 재정을 핍박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한때 국왕의 권력은 봉건적 세력에 의해서도 철주(??)되지 않고, 시민계급 또한 왕권을 통제할 정도의 실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왕권은 전국민적 이해(利害)를 대표한 듯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이 절대왕제(絶對王制)와 전제주의(專制主義) 일반을 명확히 구별해 준다.

중상주의[편집]

重商主義 Merchantilism

중상주의란 초기 자본주의를 특색지운 국가의 경제 정책인데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 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형성되어 가는 여러 단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먼저, 중상주의는 절대왕제가 목표로 한 강력한 통일국가의 형성을 위한 국가 재정의 건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동시에 종래의 분산적인 경제활동을 전국적 규모로 통일화하고 일국의 자급자족적인 경제 체제를 수립하려 한 일면을 가지고 있었다.

중상주의가 전형적으로 발전한 영국에 있어서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외국 상인의 특권이 폐지되고 자기 나라의 상인을 보호하여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고, 원료·미완성품의 수출을 금지하고, 수입을 억제하여 화폐, 지금(地金) 등의 국내 보유량 증대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상주의는 오래지 않아 문(Thomas Mun, 1571

1641)에 의하여 비판되었는데, 그는 국가에 의한 화폐 사용의 통제를 폐지하고 상인에 의한 자유로운 무역 확대로 무역차액(貿易差額)을 늘리는 방침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고유의 중상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국내 산업의 발전은 무역 확대의 중요한 기초로 생각되어 적극적인 산업의 보호·장려가 행해져서 곡물 수출 등에도 장려금이 주어졌다. 또한 이미 중상주의의 단계에서 싼 원료의 입수(入手)와 상품의 유리한 시장으로서의 식민지 획득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늦어진 나라에 있어서는, 무역차액을 유리하게 획득하기 위해서 영국, 특히 네덜란드와 같이 거액의 무역을 하고 있는 나라를 약체화(弱體化)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중상주의 정책은 극히 공격적 성격을 띠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