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세 유럽과 아시아/르네상스와 종교개혁/네덜란드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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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독립〔槪說〕[편집]

현재의 베네룩스 3국과 북부 프랑스의 일부를 포함하는 네덜란드 지방은, 16세기에는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家)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상공업이 번영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었다. 북부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동양 물산의 중계무역으로 붐볐고, 남부는 플랑드르 지방을 포함하여 모직물 공업이 발전하여 아울러 시민계급이 성장하고, 칼뱅파의 신앙을 받아들여서 고이센(거지의 뜻)이라 불리고 있었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필리프 2세)는 중상(重商)주의 정책을 강화하여 중세(重稅)를 부과하고 거기다가 가톨릭주의의 입장에서 신교도를 압박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에스파냐의 지배를 좋아하지 않는 귀족과 손을 잡고 오렌지공(公) 윌리엄을 지도자로 내세워 1568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민족·언어가 서로 다른 남북 17개 주는 결속해서 싸웠으나 에스파냐가 남북이 분단되기를 기도했기 때문에 구교(舊敎) 세력이 강한 남부 10개 주는 에스파냐와 강화했다. 이에 대해서 북부 7개 주는 1579년에 위트레흐트에서 동맹을 맺고 독립전쟁을 강화하여 1581년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으로서 독립을 선언했다.

이 나라를 홀란드라 부르는 것은 독립전쟁의 중심이 되어 활약한 홀란드주(州)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 후도 싸움은 계속되었는데 독립군은 영국, 프랑스, 독일 신교 제후(諸侯)의 원조를 받았고, 에스파냐는 아르마다(무적함대)의 패배와 펠리페 2세의 죽음으로 약체화된 결과 1609년 휴전이 성립, 사실상 독립이 인정되고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정식으로 열국(列國)의 승인을 얻었다.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여 17세기 전반에는 세계 상업의 패권을 잡았다.

네덜란드 독립전쟁[편집]

-獨立戰爭

16세기 후반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와 싸워 그 북부 7주(州)가 독립을 쟁취한 전쟁. 16세기 초엽부터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침투하여 시민간에는 캘빈주의가 만연(蔓延)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에스파냐 왕(王) 펠리페 2세는 중세적 세계통치를 꿈꾸고,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박멸하려고 기도하여 네덜란드에 대해서 종교적·정치적 탄압정책을 강행하였다. 이에 대한 반항운동이 오렌지공 윌리엄 1세 등이 지도하는 대귀족(大貴族) 중에서 일어나 1566년 고이센 동맹을 결성하고, 급진파(急進派) 대중의 우상파괴운동을 지도하였다. 1567년에 부임한 신임 총독 알바 공(公)은 ‘피의 위원회’를 열어 다수의 반도(叛徒)를 처형하고, 무서운 공포정치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반항운동도 이에 따라 격화(激化)되고, 1568년 이후로는 망명중에 있던 윌리엄 1세의 지휘로 본격적인 독립전쟁으로 들어갔다. 윌리엄 1세가 귀국하여 북부 주들을 통솔하고, 남부를 제압하여 북상하고 있던 에스파냐군에 대해서 과감한 항전을 계속하여 1576년에는 네덜란드 전주(全州)의 동맹조약(同盟條約)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가톨릭적인 남부와 캘빈파인 북부와의 종교적 대립과 경제적 이해의 불일치로, 이 동맹은 난항을 거듭하게 되었으며, 1578년 분열정책(分裂政策)으로 남부는 이탈(離脫)하고, 1579년 북부 7개 주만이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여 1581년 7월 독립을 선언, 윌리엄 1세의 지도로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의 기초를 세웠다. 에스파냐와의 전쟁은 그 후로도 계속되다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국제적 승인을 얻었다.

오렌지공 윌리엄[편집]

-公 William of Orange (1533

1584)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지도자로서 초대 총독. 에스파냐의 왕 카를로스 1세·펠리페 2세를 섬기고 홀란드주의 지사 등을 역임한 후에 1568년 에스파냐의 압정에 반대하여 독립군을 지도하여 싸웠다. 남부 10개 주의 탈락 후에도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고(1579) 북부 7개 주의 결속을 굳혔으며, 1581년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여 초대 총독으로서 활약했다. 1584년에 암살당했다.

위트레흐트 동맹[편집]

-同盟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네덜란드 북부 7주가 맺은 동맹.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운동 당시 남부 여러 주가 총독 파르마공(公)과 타협하였기 때문에, 북부 7주는 1579년 1월 29일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맹약을 맺고, 외국 지배에 대해서 ‘생명·피·물자를 바쳐 권리와 자유를 지킴에 있어서 북부 7주는 마치 한 주(州)가 된 것처럼 결합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북부 7주의 독립의 결속은 강화되고, 남부(후의 벨기에)와의 분리는 확정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