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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문명의 형성/인도의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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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청동기시대〔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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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쯤 전까지 학자들은 인도에 있어서의 문명의 발달은 아리아인의 침입 이후 처음으로 이룩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의 인더스 문명의 발견으로 이 학설은 번복되었다. 아리아인의 침입 이전, 즉 기원전 25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경에 걸쳐서 번성한 청동기시대의 도시 문명의 존재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도시 문명은 부근을 흐르는 인더스강의 이름을 따서 인더스 문명이라 이름지었다. 최근에는 갠지스강 상류·데칸 서부·바루치스탄 등에서도 같은 계통의 유적이 발견되어 인더스 문명이 미친 범위는 처음의 예상보다도 넓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인더스 고대 도시의 주민은 드라비다계(系)의 종족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확증은 없고, 인더스 문자의 해득이 기대되고 있다.

인더스 도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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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市文明

인더스(Indus) 문명의 중심은 대개 같은 설계를 가진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양 도시 유적이다. 도시의 동서남북에는 폭 10m의 큰길이 뻗어 있고 이들 큰길로 구분되는 각각의 구역 안에는 포장된 작은 길이 통해 있다. 그래서 이 대소의 가로(街路)에 연하여 줄지어 선 구운 벽돌로 지은 견고한 가옥에는 각각 우물·욕실(浴室)·배수구가 설비되어 있다. 유적의 서쪽 끝에는 인공의 작은 언덕이 있어 여기에 종교용의 큰 목욕탕이나 곡식 창고, 공회당 등의 공공 건조물이 즐비해 있었다. 큰 목욕탕 유적은 여기서 종교적 권위를 배경으로 한 지배가 행해지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인더스 도시의 주민은 먼 지역과의 교역(交易)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메소포타미아와의 교류가 활발하여 인더스 하구(河口)에서 페르시아만(灣)에 이르는 뱃길이 주로 이용되었다.그 외에 석기(石器)·동기·청동기·채색토기·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인형)·청동 소입상(小立像)·인장 등 주민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도시는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의 침입에 의하여 파괴된 듯하다. 후세의 인도 문화 가운데는 이 도시 문명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이는 요소도 적지 않다.

모헨조다로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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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跡

인더스강 하류의 오른편 기슭에 위치하는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 유적(Mohenjo-daro). 1922년 부근에 있는 쿠샨 왕조의 불탑(佛塔)을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도한 도시 생활의 모양을 전하는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유적의 최상층(最上層)에서는, 학살된 것으로 생각되는 수많은 인골이 발견되어, 이 도시의 종말이 비극적인 것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주위 5km 이상에 걸쳐 동쪽으로는 시가지구로 구성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대목욕탕·곡물창고·회의장 등의 시설이 있고, 배수시설도 완비되어 주택에서 토관(土管)을 통해 하수구로 흐르는 물은 지하의 배수로에 의해 큰 길의 본 하수도로 흐르도록 되어 있다. 또한 집집마다 벽에 수세식 변소와 휴지통이 설치되어 있어 면밀한 도시계획에 의해 설계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 밖에 토기·동기(銅器), 인장(印章), 장신구 등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하라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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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跡

인더스강 지류인 다비강(江)의 남쪽에 위치하는 도시 유적. 모헨조다로와 거의 같은 구조이다. 다량의 구운 벽돌이 철도 부설용의 재료로서 여기에서 운반되어 간 적도 있으며, 유적의 파손은 모헨조다로에 비하여 심하다. 이 유적의 이름을 따서 인더스 문명을 하라파(Harappa)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채와 시가지로 구분되어 있고, 성채는 기단(基壇)을 구축하여 중요한 건축물을 배치하였으나, 주변의 시가지 양상과 더불어 상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 성채 밖 북부에는 곡물창고·제분공장·노동자 주거지 등 몇몇의 중요한 유구가 남아 있고, 남부의 묘지에서는 시대가 약간 뒤떨어진 독자적 문화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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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章

인더스 문명의 유적에서 동물이나 신상(神像)을 새긴 활석제(滑石製) 인장이 출토되고 있다. 이것들은 상업용 인감으로서 또는 부적으로 사용된 듯하다. 인장 면에서 상(像)과 나란히 상형문자(인더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독해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드라비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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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Dravidian

남인도와 실론의 동북부에 살면서 드라비다계 언어를 쓰는 민족인데, 피부색은 검고, 코는 낮으며, 검은 고수머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현재의 인구는 인도 총인구의 약 2할로 7,000만을 넘는다. 드라비다인은 방언의 차이에서 다시 여러 계통으로 나누어지는데, 정치사적·문화사적으로 보아 타밀어(語)를 쓰는 타밀족의 활약이 현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