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제2기 문명/아리아인의 진출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아리아인의 진출〔槪說〕[편집]

펀자브 지방에 정착한 아리아인은 원주민과의 혼혈을 꾀했으나 그들의 일부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비옥한 갠지스강 유역으로 이동, 각지에 작은 부락을 만들어 농경을 주로한 생활을 했다.철기의 사용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에 의해 삼림의 개척이 쉽게 되고, 또 소로 쟁기를 끌게 하는 경작법도 한층 더 능률적이 되었다.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카스트 제도가 성립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비옥한 갠지스 평야에서 잉여 생산물을 얻을 수 있게 되자, 무사와 상업자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크고 작은 국가가 출현하고 서로 싸움이 되풀이되었다.기원전 7세기경 인도에 있었던 주요한 국가는 16대국으로 총칭된다. 종교 방면에서는,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700년까지의 사이에 『리그 베다』를 잇는 3베다가 성립되었다. 이들 여러 베다는 브라만의 근본 성전(根本聖典)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존중되고 있다.

카스트 제도[편집]

-制度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 제도를 말한다(四種姓制度). 카스트(Caste) 제도의 기원은 인도에 침입한 백색의 아리아인(人)이 흑색의 원주민을 정복하여 그들을 예속 계급으로 한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중에 지배계급간에도 직능(職能)의 분화가 생겨 인간을 귀천의 순서에 따라서 브라만(Brahman, 司祭者), 크샤트리아(Kshatriya., 王侯·武士), 바이샤(Vaishya, 庶民), 수드라(Sudra, 隸屬人)의 4종류로 구별하는 카스트 제도가 성립됐다. 카스트 제도에 따르는 사회는, 아리아계의 문화가 확대됨에 따라 인도 전역에 파급되기에 이른다. 그 후에 사회의 직능 분화에 따라, 주로 하급의 두 종성(바이샤, 수드라)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복잡한 카스트 집단에의 분화가 발생했다. 카스트 분화의 원인으로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 혈통 존중의 관념이나 정(淨)·부정(不淨)의 관념, 혼혈·이주·정복·언어나 생활 습관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생각된다. 각 계급은 폐쇄적·배타적이며 성원은 공통의 제식이나 습관에 따라 속박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습의 직업에 종사하는 의무와 다른 카스트 사람들과 음식을 먹는 일과 결혼의 금지는 엄중히 지켜졌다. 카스트·부(副) 카스트의 수효는 2천에서 3천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신분을 인도인은 쟈티(태생)라고 불렀다. 인도에 내항(來航)한 포르투갈인이 쟈티를 부를 때에 자기들 나라 말로 가계·혈통을 의미하는, 카스타라는 말을 쓴 것에서 ‘카스트’라는 단어가 생겼다. 고대에 성립한 4종성 제도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카스트 제도의 초기 형태로 생각되고 있다. 카스트 제도 자체는 독립 후의 헌법(1950)으로 부정되었지만, 아직도 인도의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브라만교[편집]

-敎 Brahmanism

베다를 근본 성전으로 하고 브라만이 지도하는 고대 인도의 종교, 베다의 신들을 모시기 위한 복잡한 규칙이 제정되고 그것을 엄격히 지킬 것이 요구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人)이 인도에 침입한 이후 신봉하던 종교로, 힌두교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넓게는 힌두교에 속한다. 아리아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더스강 유역의 펀자브 지방에 진입, 도아브 지방을 중심으로 브라만 문화를 확립한 뒤, 브라만 계급을 정점으로 한 4계급으로 이루어진 사성제도(四姓制度:바르나)를 발달시켰다. 그들은 인도에 들어올 때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와서 발전시켰는데, 약 500년 동안 『리그베다』를 비롯하여 『브라마나(梵書)』, 『아란야카(森林書)』, 그리고 철학 『우파니샤드(奧義書)』 등을 포함한 방대한 근본성전 『베다』를 편찬하였다. 이 성전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여 아리아인들이 펀자브 지방에 진입하기 이전부터 지닌 자연신 숭배·종교의례·주술(呪術) 등을 비롯해 철학적 사상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 종교의 근본은 다신교로 『리그베다』에서 발달된 근본원리의 탐구는 철학서 『우파니샤드』에서 정점에 달해, 우주 유일의 근본원리로서 브라만(梵)과 개인 존재의 본체인 아트만(我)이 상정(想定)되어 양자가 완전히 동일함을 나타내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으로 표명되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에서 확립된 사상은 인도의 사상·철학·문화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불교와 더불어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베다는 모든 가치의 근원으로 자리잡았고, 브라마나·크샤트리야·바이샤·수드라의 바르나, 즉 4성제도는 계급제도와 신분제도가 결합해 복잡한 카스트제도를 낳았다. 브라만교에서는 바르나의 구성원이 일생동안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 즉 학생기·가장기(家長期)·임서기(林捿期)·유행기(遊行期)의 4단계로 규정한 브라만교의 기본이념이기도 한 바르나 야슈라마라는 특이한 제도가 있었다.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동(東) 인도를 중심으로 브라만교와 대립관계를 이룬 자이나교와 불교가 등장하면서 브라만들은 스스로의 교학(敎學) 정비에 착수하여 베다의 6종류의 보조학이 확립되었고, 이러한 학문적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6파철학 등이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인도의 사상·철학·문학의 기초를 이루는 제도는 대부분 브라만교에 의해 확립되었다.

16대국[편집]

-大國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에 걸쳐서 북인도의 여러 지방에서는 아리아인의 부족 연합체가 참된 의미에서의 국가군(國家群)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토지의 공동사용은 개인소유로 바뀌었으며, 농경(農耕)이 목축을 대신했고, 그 결과 부(富)와 권력의 집중화(集中化)가 촉구되고, 새로운 정치 구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기슭에는 과두정치(寡頭政治)의 성격을 띤 일련의 도시국가가 생겨나는 반면, 갠지스강 연안의 평야에서는 보다 크고 강력한 국가가 성립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중심으로 한 북(北)인도에 있었던 주요 국가 중에는 수장(首長)의 선출·공화정체 등, 부족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가와 군주정체를 발달시킨 국가가 있다.전승(傳承)에 의하면 북의 소국가군(小國家群)은 일찍이 베다의 정통적 교의(敎義)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락한 왕국의 혈통을 이은 사람들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그들의 내력은 국가권력이나 브라만 의식(儀式)이 부과하는 엄격한 규율에 견디지 못하여 인종(人種)을 달리하는 지방 사람들이 독립을 요구한 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이런 여러 나라들은 서로 격렬히 싸웠고 강국은 약소국을 합쳐 더욱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 문헌 사료(文獻史料)에 의하면(대부분은 자이나교와 불교측의 것) 기원전 6세기에는 16대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 여러 국가는 ‘세상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이로 삼기 마련’이라고 하는 ‘물고기의 규율’에 바탕을 두고 있어 끊임없는 항쟁관계(抗爭關係)에 있었다고 한다.서사시 「마하바라타」는 이 무렵 갠지스 상류의 쿠루·판찰라 지방에서 있었던 싸움을 주제로 한 것이다. 부다 시대(전 6세기)에는 마가다, 코사라, 바츠아, 아반티의 4대 군주국과 공화정체를 취한 브리디 등이 강대국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마가다국(國)이 다른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북인도를 통일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