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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유엔과 전후의 세계/전후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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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일본〔槪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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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 일본 정부와 천황은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GHQ)의 관리하에 종속되었으며 연합군에 의한 점령군 정책이 시작되었다. 군정은 일본의 제국주의적·봉건적 제도를 해체시키고 전범자를 재판·처형하였으며, 1947년 5월 3일 전쟁을 부정하고 국민의 민주적 기본권을 인정하는 새 헌법을 승인하였다. 1951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및 비공산권 49개국과 강화조약을 체결, 주권을 회복하였으나 패전이 초래한 정신적 허탈과 극도의 경제적 악조건 속에서 재건의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러나 때마침 일어난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제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냉전체제의 심화는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의 독립 회복과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 경제대국으로 등장한 일본은 1973년 후반 오일 쇼크로 부존자원 결핍의 불안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교묘한 정경분리정책으로 계속적인 경제신장을 보이고 있으며, 전후 보수정당인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4년에 38년간 집권한 자민당을 누르고 무라야마 사회당 위원장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6년 다시 자민당의 하시모토 총재가 총리에 선출됨으로써 자민당 총재를 수반으로 하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간의 3당 연립정권을 출범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오부치 게이조가 새 총리에 선출되었다. 국가기능강화와 안보강화에 주력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2000년 5월 사망, 4월에 모리 요시로 내각이 출범하였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하였다.

연합국군 총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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聯合國軍總司令部

정식 명칭은 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eneral Headquarters of the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일본 점령의 중앙 관리기관. 1945년 8월 14일 일본 항복과 동시에 최고사령관에 맥아더 원수가 임명되었다. 1946년 점령정책기관으로서 극동위원회, 최고사령부 자문기관으로서 대일(對日) 이사회가 설치되었으나 미국이 계속 주도권을 가져서 점령정책은 미국정부 단독으로 수행된 면이 강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講和條約) 발효와 함께 폐지되었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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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las MacArthur (1880

1964)

미국의 군인.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필리핀의 미국군 사령관에 취임하여 일단 오스트레일리아로 후퇴했으나 반격에 성공하였으며,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연합국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일본 점령을 지휘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유엔군(UN軍)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중공군(中共軍)의 개입에 대해서 만주 폭격을 주장하여 1951년 4월 트루먼 대통령에 의하여 해임되었다.

민주화의 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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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化-諸政策

군국주의의 최후 거점이었던 일본 천황이 스스로 신격(神格)을 부정하고 인간임을 선언함으로써 일본의 민주화가 개시되었다. 먼저 개정 선거법이 공포되어 1946년 4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교육제도에 있어서는 초국가주의적·군국주의적 교육의 일소를 위하여 1947년 3월에 미국의 교육제도를 따른 교육기본법·학교교육법이 공포되어 4월부터 6·3·3·4제의 새 학제가 실시되었다. 또 1946년 11월에는 주권재민, 전쟁의 영구포기 등을 골자로 하는 ‘일본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대일 강화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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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日講和條約

한국전쟁의 발발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일강화를 촉구하게 했다. 그 의도는 일본을 반공(反共)의 방벽으로서 방위체제에 편입시키려는 것이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연합국 48개국과의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었고, 이어 미국과의 강화 후에도 미군의 일본 주둔을 인정하는 미·일(美日)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조약은 1952년 4월부터 발효하여 미국을 비롯한 48개국의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상태는 종결되고, 일본은 이들 국가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

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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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衛隊

전후 연합군에 의하여 군비(軍備) 및 교전권이 박탈된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군 사령부의 명에 의하여 경찰경비대대의 창설을 갖게 되었다. 이 경비대대는 1952년에 방위청으로 승격되어 방위만을 목적으로 하는 육상·해상·항공의 자위대를 창설, 실질적으로 군체제로 편성되었다. 자위대는 병력은 적으나 1957년부터 1976년까지 4차에 걸친 5개년 방위력 정비계획을 추진, 지대공 미사일의 국산화를 포함한 장비확충을 착실히 진행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 자주 논란되는 가운데 일본은 1970년 10월 21일 ① ICBM의 보유 금지, ② 해외파병의 금지, ③ 핵무기의 보유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방위백서를 발표하였다. 1977년 3월부터 장기간 실시된 장기방위계획은 탱크사단의 창설, 잠수함대의 확충, 항공기의 교체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60년의 안보조약 개정으로 일본의 자위대는 급속한 군비증강을 이루었다. 1993년 현재 총병력 약 24만 3천명 중 육상자위대가 15만, 해상자위대가 4만 5천, 항공자위대가 4만 7천으로 세계 유수의 군대로 성장하였다. 또한 1997년 1월 20일 종합정보기구인 ‘정보본부’가 발족하였다.

일본의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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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左派

1970년대에 들어서 일기 시작한 집권 자민당의 퇴조는 여러 야당 세력들의 진출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 중에서도 좌파정당들인 사회당·공산당의 진출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었다.

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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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黨

일본노동조합 총평의회(總評議會) 산하의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하여 사무직, 생산공정·판매서비스 노무직, 일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하며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4년 연립정부 구성으로 집권한 사회당은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였다.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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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産黨

1922년 지하조직으로 결성된 후 전후 합법정당으로 공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시적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점령군에 의한 탄압 및 과격한 전술로 말미암아 국민의 지지 상실 등으로 크게 후퇴하였다. 자본주의 체제의 비판세력을 지지층으로 자유민주당에 가장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