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음악/서양음악가와 작품감상/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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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달크로즈[편집]

Emile Jacques-Dalcroze(1865-1950) 리듬 교육, 리트믹 면에서 특히 유명한 스위스의 작곡가이며 교육가이다. 파리에서 드리브에게, 빈에서 브루크너에게 배우고 다시 푹스의 지도도 받았으나, 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은 그가 가장 통감한 것은 운동감각과 리듬과의 유기적인 결합의 중요성이었다. 1892년 제네바 음악원 화성법의 교수가 되어 후진을 지도하는 한편 독특한 리듬이론을 확립하고 그것을 창작과 교육의 양면으로 강조해 나갔다. 1905년 그의 리듬교육 이론이 발표되었고 그것을 '유리드믹(Eurythmics)'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드레스덴 근교의 헬레라우에 리듬교육 연구소를 설립(1910), 다시 1914년에는 제네바에 '자크달크로즈 연구소'를 설립하여 그 이론의 보급에 힘썼다. 그의 이론은 '달크로즈 유리드믹'이라 하여 온 세계의 음악교육자의 깊은 관심을 끌었고,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런던, 베를린, 파리, 빈, 뉴욕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 잇따라 설립되었다. 또 브로호나 마르탱을 비롯하여 작곡가 중에도 자크달크로즈의 강한 영향을 받아 그것을 자기 창작의 한 근거로 한 것이 적지 않다. 작곡가로서의 자크달크로즈는 여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바이올린 협주곡, 현악 4중주곡, 몇 개의 관현악곡, 피아노곡 외에 교육용의 여러 작품(리듬교육, 피아노교육 등), 한편으로는 민요풍의 소박성을 강조한 가곡이나 합창곡 등 많은 노작을 남기고 있다. 그 작품이 연구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나 20세기 초의 음악교육계에 남긴 영향은 매우 큰 바가 있다.

마르탱[편집]

Frank Martin(1890-1974) 제네바 태생의 스위스 작곡가. 목사의 열째 아들로 태어나 제네바에서 요제프 라우버에게 사사한 뒤 취리히, 로마, 파리 등지에 유학하고 1928년에 귀향하여, 그 후 한동안 자크달크로즈 연구소에서 후배를 지도하면서 비평가로서도 활약하였다. 나중에는 자신이 음악연구소를 창설하여 이론탐구와 교육의 장소로 그 곳을 활용한 시기도 있었으나, 1946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살면서 암스테르담이나 서부독일의 쾰른음악원 등에서 교육에 힘썼다. 작곡가로서의 마르탱은, 초기의 작품에서는 낭만파적인 경향을 다소 명백하게 보이고 있었으나 이어 프랑크나 바그너의 영향이 현저해졌고, 다시 변해서 신고전주의의 입장에 선 작풍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자크달크로즈의 영향을 받아 리듬연구를 한 결과가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나 1933년경부터 12음기법을 취하게 되었고, 현악 3중주곡(1936), 교향곡(1937) 등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곧 그것은 조성(調性)의 부정이라는 입장에서의 12음이 아니라 선율작법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의미에서의 12음 기법이라는 성격을 강화해가게 되어, 조성적인 3화음과 12음적 멜로디와의 절충에 성공하여 독특한 감각을 나타내는 음의 세계를 발견시켰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로 된 오라토리오 <마약(魔藥)의 술(르 반 엘베)>(1941)이 유명한데, 바그너와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를 거기서 발견하고 있다. 종교적인 내용의 오라토리아로 <땅에는 평화를>(1944), <골고다>(1947), <강탄(降誕)의 기적>(1959) 등이 있고, 또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도 만들었으나(1955) 이 가극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였다. 기악의 분야에서는 <쳄발로, 하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협주적 교향곡(푸티 상포니 콘체르탄토)>(1945)과 <7개의 관악기와 현악기, 팀파니를 위한 협주곡>(1949)이 특히 유명하며 널리 전 세계의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 쓰이고 있다. 그 밖에 바이올린 협주곡(1952), 쳄발로 협주곡(1955) 등의 협주곡이나, 여러 가지 악기(색소폰·피아노·타악기·각종 악기 등)를 위한 <발라드>의 연작(連作) 등이 비교적 연주기회를 많이 가진 작품이다. 청징한 울림, 독특한 깊이를 지닌 음빛깔, 치밀하고 섬세한 감각, 청결한 서정 등 마르탱의 개성은 그 간결한 구성의 정밀성과 더불어 그의 음악의 설득력을 국제적인 의미로 풍요한 것으로 한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마약의 술[편집]

魔藥- 마르탱 작곡(1941). 1938년부터 손을 대어 1941년에 완성을 본 오라토리오. 중세(中世)의 이야기 <트리스탄과 이즈(이졸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나, 같은 재료를 다룬 바그너와는 정반대로 현악기만의 소편성의 오케스트라와 12사람의 성악 앙상블에 의하여 소박한 중세의 맛을 현대에 멋있게 잘 살리고 있다. 낭독하는 듯한 노래의 움직임, 12음 기법에 의하면서 치밀하게 꾸며진 부분과 명쾌한 기능, 화성적인 처리를 보이는 부분과의 조화의 아름다움, 오케스트라의 청징간결한 울림―그 밖의 모든 점에서 현대와 중세의 통일이 선명하게 이루어져 있다. 성악 작품뿐 아니라 그의 전 작품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대표적인 걸작이다.

소협주적 교향곡[편집]

小協奏的交響曲 마르탱 작곡(1945). 1944년부터 다음 해에 걸쳐 작곡된 곡으로 쳄발로와 하프, 그리고 피아노의 3개의 독주악기와 2개의 그룹으로 나뉜 현악기가 협연하는 산포니 콘체르탄토이다. 이와 같은 진귀한 악기의 편성을 마르탱은 교묘하게 살려 미묘한 뉘앙스의 울림을 가져왔고 그 뉘앙스가 변화해 가는 효과의 아름다움이란 참으로 뛰어난 데가 있다. 단일악장으로 된 작품이나, 크게 3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1부는 현만의 느릿한 서곡에 이어 밝은 표정의 빠른 부분으로 옮아가는 것. 제2부에서는 하프, 쳄발로(클라브생이라든가 하프시코드와 같은 악기), 피아노가 중심이 된다. 제3부는 다소 빠른 템포로 행진곡풍의 활발한 리듬을 가지고 있어 상쾌한 인상 속에 곡을 끝맺는 역할을 한다.

7개의 관현악기와 현악기, 팀파니를 위한 협주곡[편집]

七個-管絃樂器-絃樂器-協奏曲 마르탱 작곡(1949). 소협주적 교향곡(푸티 산포니 콘체르탄토)의 아름다운 조화를 낳은 4년 뒤인 1949년에 작곡된 협주곡―여기서도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악기의 편성을 보이고 있다.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파곳·호른·트럼펫·트롬본의 7개의 관악기가 활약하지만 팀파니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타악기도 독주적인 역할을 하고 또 현악합주에서도 솔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나온다. 말하자면 협주적 교향곡의 성격이 강한 콘체르토이다. 3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빠른 제1악장에서는 각 관악기가 솔로적인 처리로 되어 있다. 제2악장은 느린 템포의 행진곡풍의 리듬을 지닌 음악으로, 우아하고 조용한 울림을 살린 악장이다. 생기에 찬 춤곡풍의 제3악장은 각 악기가 충분히 그 기능을 발휘하여 활기에 넘친 종목을 형성하고 있다.

베크[편집]

Conrad Beck(1901- ? ) 샤프하우젠에서 태어나 취리히 음악원에서 앙드레에게 사사한 뒤 파리에 유학, 나디아 브랑제나 오네게르의 지도를 받고, 다시 베를린에 유학하여 작풍의 폭을 넓히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1933년 바젤에서 활약하였으나 뒤에 베를린에 살게 되어 그 곳을 중심으로 작곡활동을 하였다. 작품은 1965년까지 7곡을 헤아리는 교향곡을 작곡한 외에 오페라, 칸타타, 오라토리오, 레퀴엠 <오이디푸스의 죽음> 등의 대곡, 각종의 협주적 작품, 모음곡, 실내악 등의 기악곡, 또는 발레곡이나 부수음악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연주되는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하였고, 작풍이나 텍스처도 짜임새 있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마이스터[편집]

Heinrich Suter Meister(1910- ? ) 오페라 등의 작곡가로 알려진 스위스의 작곡가. 바젤, 파리 등에서 언어학을 배웠으나 1932년부터 뮌헨에 유학, 그 곳에서는 쿨보아제나 올프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36년에 쓴 방송 오페라 <검은 거미>로 주목받게 되었고, 발레 <빙하 밑의 마을>(1937), 칸타타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1938) 등으로 서서히 실력을 쌓은 뒤 오페라 <로메오와 유리아>(1940)와 <마의 섬>(1942)을 써서 국외에서도 유명해졌다. 한때 베르디에 경도하여 이탈리아 가극의 연구를 거듭하여, 그 성과와 올프로부터의 강한 영향을 겸한 작풍을 나타내고 있다. 말하자면 보수적인 텍스처를 즐기는 작곡가이지만, 극으로서의 효과를 지니고 있어, 일반에게 호감을 받을 수 있는 쉬운 작품이 많다.

리버만[편집]

Rolf Liebermann(1910- ? ) 취리히 태생으로 호세 베르에게 사사한 뒤 취리히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는 한편 블라디미르 포겔에게 작곡법을, 또한 헤르멘 셰르헨에게 음악 일반을 각각 배웠다. 취리히 방송국의 음악부에 근무한 적도 있으나, 1957년에 함부르크의 북독일 방송국 음악 부분의 지도자가 된 후로는 국외에서 활약하는 일이 점차 많아져, 1959년에는 함부르크 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점차 그의 견식의 높이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2음 기법을 자유로 구사하는 작곡가의 한 사람이며, 또 감각적으로는 강렬한 바이탤리티를 보인 음악가로서 그의 적극적인 자세는 주목되고 있다. 교향곡(1949), 피아노 소나타(1951) 등으로 일단 그의 실력이 알려졌으나, 12음의 수법을 살린 오페라 <레오노레 40/45>(1652) 초연으로 결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뒤를 이어 <페네로페>(1954)를 발표하여 한층 세계의 음악계로부터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또한 1954년 도노우에싱겐의 현대음악제에서 <재즈 밴드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발표하였는데, 이 재기에 넘친 작품은 그 뒤에도 세계 각국의 교향관현악단의 연주회에서 수시로 연주되고 있다.

재즈 밴드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편집]

Jazz band-Symphony orchestra-協奏曲 리버만 작곡(1950). 1954년 <페네로페>를 작곡하여 잘츠부르크에서의 초연에 대성공을 거둔 리버만은 두 달 후에야 재즈 밴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여 그의 독특한 입장을 밝혔다. 재즈 밴드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된 연주체와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협연시킨 기상천외의 착상을 보인 협주곡이나, 합주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의 형태를 잘 활용하여 전적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이를 활용시킨 것이 효과적이다. 짧은 '서주' 뒤에 재즈 밴드가 가담하여 '점프', 눈부신 움직임의 '제1스케르초', 색소폰과 트롬본의 솔로를 중심으로 한 느린 템포의 '블루스', 오케스트라가 대담한 활약을 보이는 '제2스케르초', 재즈 밴드의 리듬 섹션에 의한 '부기 우기', 간결한 가교역할을 하는 '간주곡', 이렇게 계속되면서 템포가 빨라져, 드럼의 솔로가 나오면 이에 이끌리어 종곡인 '맘보'가 시작되어 크게 곡을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