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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음악/서양음악가와 작품감상/지휘자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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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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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Muck(1859-1940) 역사상 최대의 바그너 지휘자의 한 사람. 그 연주의 거대·심원성(深遠性)은 비할 데가 없다.

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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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Walter Schlesinger(1876-1962) 20세기 전반(前半)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이다. 발터는 1876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성(姓)에 해당하는 부분은 슐레징거이다. 베를린의 슈테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쾰른·함부르크 등 각지의 가극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894년, 당시 18세였던 발터가 말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받은 말러와 만나게 되었다. 말러에 심취하면서 그는 그 지우(知遇)에 의한 인기상승도 곁들여서 점차로 두각을 나타내고, 드디어 1901년부터 1912년까지 빈 국립가극장의 지휘자로 있게 되었다. 이어 뮌헨 국립가극장, 베를린 시립가극장,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등의 중요한 자리를 역임하여 명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나치스의 압박에 쫓겨 1934년부터는 파리·런던 등지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1939년의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한 이래 미국이 본거지가 되었고, 제2차대전 종료 후는 옛날을 회상하게 하는 빈 필하모닉을 비롯하여 유럽의 오케스트라에도 객연(客演)할 기회는 있었으나, 레코드 팬들의 갈망인 빈 필하모닉과의 콤비에 의한 녹음을 실현하지 못하고 1962년에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의 자택에서 85세로 영면하였다. 발터는 유태인이기 때문인지 순수한 독일인다운 중후성(重厚性)과는 다른 몽환적(夢幻的)인 도취를 유인하는 연주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감상주의(感傷主義)의 천박성에 떨어지지 않을 만한, 내적으로 균형이 잡힌 미학에 밑받침되어 있다. 이것이 모차르트의 작품 연주에 뛰어나 있는 이유이다. 베토벤의 작품 연주도 유려하고 감동적이지만 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는 그의 본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말러의 작품 연주는 그의 대에도 금후에도 비견될 지휘자가 발견되지 못할 만큼 우수하였다. 물론 빈적 감정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말러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오케스트라보다는 빈 필하모닉이 적격이지만, 레코드에서는 대부분이 미국 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이 아쉽다.

슈리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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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Schuricht(1880-1967) 독일의 원로격 지휘자.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주로 독일 각지에서만 활약했으나, 나치스를 두려워한 나머지 전쟁 중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전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지휘를 많이 하였다. 독일 고전 작품의 정신을 바르게 다시 나타낼 수 있는 지휘자이며, 특히 베토벤의 작품을 잘 연주한다.

클렘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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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 Klemperer(1885-1973) 오늘날 세계의 최원로급에 해당하는 독일의 명지휘자. 1885년 브로츨라프에서 출생하고, 프랑크푸르트의 음악원과 베를린의 슈테른 음악원에서 공부하였다. 그 후 독일 각지의 가극장의 지휘자를 역임함으로써 착실히 업적을 쌓아올려 명성을 높여갔다. 그러나 나치스정권 시대에는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옮기고, 1939년까지 로스앤젤레스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이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높였다. 그 후 신병 때문에 한동안 활동치 않았으나, 대전 후인 1947년에 부다페스트 가극장의 지휘자로서 3년간 재임한 것을 위시하여 베를린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클렘페러는 푸르트벵글러가 사라진 뒤의 독일 악단에서, 본격적인 독일음악을 매우 중후하게 표현한 보기 드문 거물급 지휘자로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베토벤 이후 후기 낭만파까지가 본령이지만, 그 중에서도 브람스나 브루크너와 같은 난삽하고 중후한 작품에서 가장 훌륭하다. 발터와는 젊었을 적에 서로 알게 된 사이이지만, 그 유태인적 도취감과 클렘페러의 독일적인 중후한 맛과는 서로 질이 다르다. 현대곡도 어느 한 시기에는 꽤 깊이 파고들었으나, 신고전주의 이후의 작품과 클렘페러의 피부와는 다른 듯하며, 후기 낭만파 음악의 연주에 정평이 있다.

푸르트벵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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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helm Furtw ngler(1886-1954) 20세기 전반의 최대 지휘자이다. 1886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나, 초기에는 작곡가가 되고자 라인베르거(1839-1901)와 실링스(1868-1933)에게서 배웠으나, 20세 때에 지휘자를 지망하고 취리히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가극장의 보조 지휘자의 일부터 시작함으로써 이 길로 접어들자 되자 점차 두각을 나타내어, 1922년에 니키슈가 죽은 후의 베를린 필하모닉 관현악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어 독일악단의 중진(重鎭)으로서 활약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33년 이래의 나치스 정권하에서는 예술 옹호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35년 베를린 국립가극장의 총감독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결국 나치스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제2차대전 후 전쟁범죄인이 되었으나, 재판을 받고 무죄석방되었다. 그 결과 다시금 연주계로 되돌아갈 수가 있었으나, 나치스의 박해를 받았던 음악가들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52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종신지휘자의 자리로 되돌아간 외에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음악제에도 등장하였고, 만년의 명성은 세계의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크게 울려퍼졌다. 1954년 바덴바덴 근교에서 68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푸르트벵글러가 최고급의 대지휘자라고 칭찬받게 되는 이유는 그 연주의 깊이와 크기에 있다. 독일음악의 전통을 완전히 몸에 익힌 것 위에, 각 작품의 내면 깊숙한 부분을 투철하게 파악 해석하여, 그것을 거대한 표현으로서 실현시켰다. 니키슈 시대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도달한 독일음악 연주사상(史上)의 황금기의 뒤를 받아, 다시금 빛나는 영광시대로 만들 수가 있었던 사람이 바로 푸르트벵글러이다. 이 같은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이라고 하면, 독일(및 오스트리아)의 고전파와 낭만파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 이후 후기낭만파까지의 여러 작품을 지휘한다면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한 대연주로 화한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교향곡에서의 장대(壯大)함은 달리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한편 바그너의 작품에서의 독일정신의 범우주적 승화(昇華)라고나 할 실로 웅대심원(雄大深遠)한 표현으로 들려준다. 그 밖에 슈만이나 브람스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크나퍼츠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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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Knappertsbuch(1888-1965) 독일 최고의 명지휘자. 특히 바그너 지휘자로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1888년, 엘바펠트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철학을 배웠으나, 20세 때에 음악으로 전향하여 쾰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그 후 각지의 가극장을 두루 역임하며 경력을 쌓아, 1922년 브루너 발터의 뒤를 이어 뮌헨 국립가극장의 지휘자가 되고, 1937년 이래 빈 국립가극장과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등 착실하게 실력과 평가를 높여갔다. 2차대전 후에는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에서 지휘자로서 활약하여 절찬을 받았으며, 1965년에 뮌헨에서 사망하였다. 크나퍼츠부슈는 일반적 지명도(知名度)나 인기의 점에서는 카라얀만 못할지 모르나, 그 연주에서 보게 되는 중후한 맛, 깊은 맛에서는 푸르트벵글러 이후 최고의 존재였다. 독일낭만파, 특히 후기낭만파, 그 중에서도 바그너의 지휘에서는 상상을 뛰어넘은 거대한 표현을 보여준다. 바그너 가운데서도 유연(悠然)한 무한성을 지닌 후기 악극류에서 비할 데 없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다른 작곡가에서는 바그너의 영향이 짙은 브루크너가 특히 평판이 높다.

셰르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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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Scherchen(1891-1966) 독일의 명지휘자. 베를린 태생. 지휘자로서의 활약 외에 평론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이며, 펜을 잡고 왕성하게 현대음악, 특히 새로운 작풍의 작품을 추진시키기도 하고, 초연곡(初演曲)을 지휘하기도 했다. 1954년 이래 그라베자노의 자택에다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연주가로서는 낭만파 이전의 표준명곡은 어쨌든 독특한 개성적인 버릇이 귀에 거슬리기 쉬우며, 역시 현대작품이 그의 본령이다.

로스바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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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Rosbaud(1895-1962) 독일 크라츠 태생. 명지휘자·피아노 주자. 2차대전 전에는 베를린 국립가극장, 후에는 독일 남서(南西)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활약한 것 외에도 각지의 음악제 등의 객연지휘도 많이 하였다. 독일의 고전파로부터 낭만파까지가 주요한 레퍼토리인데, 현대작품에서도 정평이 있다.

슈미트이세르슈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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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SchmidtIsserstedt(1900-1973)독일의 뛰어난 지휘자. 함부르크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화려하지는 못하나 음악의 내적인 빛을 빛나게 하는 지휘자이다.

콘비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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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Konwitschny(1901-1962) 독일의 명지휘자. 특히 베토벤의 지휘에 명성이 높았다. 1901년, 모라비아의 푸르네크에서 태어났다. 초기에는 비올라 주자로서 출발하여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에서 활동했으나, 수년 후에 지휘자로 전향, 각지의 가극장을 역임하는 동안 실력을 인정받아, 1949년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고, 이 악단의 재건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 1962년에 베오그라드에서 61세로 사망하였다. 콘비츠니의 지휘는 표면효과를 일절 배격하여, 작품의 근저에서부터 소박하고 솔직한 연주를 시도한다. 호평을 받고 있는 베토벤의 작품만 하더라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낭만적인 표정성과 극적 효과에 찬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적이며 소박하고 중후한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정통적인 베토벤의 지휘자라고 평가되는 이유이다. 바그너의 작품도 허식을 배제하여 웅대한 연주를 하였으며, 실로 압도적이다.

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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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 Jochum(1902-1987)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명지휘자. 독일적인 중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요훔은 1902년 슈바벤의 바벤하우젠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이 음악가인 때문인지, 오이겐 외에 아우인 오토 요훔(1898- ? )과 게오르크 요훔(1909- ? )도 후에 지휘자가 되었다. 요훔은 뮌헨의 음악학원에서 배웠는데, 지휘계(指揮界)로 등장하면서 호평을 받았으며 만하임 가극장·베를린 시립가극장과 베를린 필하모니 등에서 많은 성과를 올린 뒤, 1933년에는 함부르크 필하모니의 지휘자가 되고, 2차대전 후까지 이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1949년에는 뮌헨에 설립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11년간이나 보냈고, 그 후 3년간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는 외에도,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를 위시하여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요훔이 지휘하는 연주는 독일의 정통성에 뿌리박고 있는 것 같은 중후한 것이며, 카라얀적 현대감각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인간미에 넘치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후한 맛과 더불어 품위가 있는 연주로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청순한 아름다움, 베토벤의 감동적인 깊이, 브람스의 북독일적인 은근함, 바그너의 독일적인 크기와 꿈의 무한성 등 그의 매력은 한이 없는데, 특히 브루크너에서의 장대(壯大)하고 경건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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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Thomas(1904-1973) 라이프치히 성 토머스 교회의 합창장을 비롯하여 교회합창 분야에서의 활약이 중심이며, 특히 바흐의 합창곡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다.

카일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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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Keilberth(1908-1968) 독일의 명지휘자. 1908년 카를슬루에에서 태어났다. 동독 각지의 지휘자를 역임한 후 1940년 프라하에 설립된 독일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업적을 올렸다. 2차대전 후에는 드레스덴 국립가극장을 비롯하여,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도 활약하는 외에, 새로 설립된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의 업적도 높이 평가되었다.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를 위시하여 각지에서의 객연 등장도 많았다. 카일베르트는 매우 드물게 보는 남성적이며 중후한 지휘자로서, 특히 독일작품을 가장 독일적으로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베토벤을 마음놓고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존재이지만, 바그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낭만파에 속하는 작품 연주도 웅장하다.

켐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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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Kempe(1910-1976) 독일의 지휘자. 처음엔 오보에 주자로서 출발했으나, 나중에는 지휘자로 전향, 특히 가극의 지휘능력에 뛰어난 지휘자이지만 한때는 현대음악의 보급에도 열성적이었다. 베토벤으로부터 거의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특히 가극이 장기라고 하겠다.

뮌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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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Munchinger(1915- ? )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의 지휘자로서 고전음악(古典音樂)에 정평이 있는 사람이다.

자발리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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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Sawallisch(1923- ) 현대 독일에서 가장 역량있는 지휘자. 1923년 뮌헨에서 태어나고, 아우구스부르크 시립가극장의 지휘자를 비롯하여 몇몇 직위를 역임했다. 또 불과 34세의 젊은 나이로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지휘한 것 외에 각지의 음악축제라든가 오케스트라의 객연도 많다. 그의 지휘는 독일음악의 전통을 몸에 터득하고 있지만, 실로 치밀하며 완전성을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추호의 과장도 없는, 순도(純度)높은 지휘이다. 모차르트로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까지는 어느 작품이나 잘 연주하지만, 낭만파가 그에게는 제일가는 본령인 것같이 보인다.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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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Richter(1926-1981) 세계적인 바흐 연주의 권위자. 작센의 프라우엔 태생. 지휘 외에도 오르간과 쳄발로의 명수이다. 뮌헨 바흐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조직하여, 바흐 작품의 연주에 힘을 쏟았다.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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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가르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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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Weingartner(1885-1942) 왕년의 오스트리아의 명지휘자. 빈에서의 활약이 길었으며, 베토벤 지휘자로서는 역사상 최고의 명성을 획득한 지휘자였다.

클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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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h Kleiber(1890-1950)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명지휘자. 1890년 빈 태생. 프라하에서 배운 뒤에 각지의 가극장을 거쳐서 1923년부터 베를린 국립가극장의 지휘자가 되고, 여기서 베르크의 가극 <보체크>를 초연하여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나치스 정권하에서는 남미로 이주했고, 유명한 콜론 극장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활약했으나, 2차대전 후에는 유럽으로 되돌아왔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그는 빈 취미가 풍부했던 연주가로 알려졌고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 연주는 뛰어났으며, 모차르트에서의 아름다움 역시 훌륭하다. 또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는 매우 넓다.

크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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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mens Krauss(1893-1954) 빈의 유명한 지휘자. 빈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국립가극장과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지휘자로서의 활동이 중심이며, 높은 명성을 얻었다. 객연 지휘로 각 지방으로 돌아다닌 일도 많았지만, 1954년 멕시코로 객연 여행 중에 급서했다. 그는 빈 기질을 지닌 명지휘자로서 평판이 높았다. 빈 왈츠는 절품(絶品)이라고 전해진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는 친하게 사귀었고, 그 교향시나 악극에 대한 탁월한 지휘는 절찬을 받을 만하다. 그것 이외의 독일·오스트리아의 작품, 특히 모차르트의 작품도 매우 훌륭히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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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ohm(1894-1981) 오스트리아의 명지휘자로서, 세계의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이다. 그라츠 태생으로, 먼저 고향의 음악원에서 배우고, 이어서 빈에서 만디체프스키(1857-1929)에게서 사사했다. 먼저 출생지의 가극장에서부터 활약하기 시작했으나 1921년에는 뮌헨의 국립가극장의 요직에 취임하고, 10년 후에는 함부르크, 다시 3년 후에는 드레스덴의 가극장의 요직을 역임한 후 1943년과 1954년에 각각 2년간씩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의 직위에 있었다. 그 밖에 구미 각지의 가극장, 오케스트라, 음악제 등에 여러번 출연하였다. 그의 지휘는 들뜬 인기를 노리는 등의 표면적인 효과라든가 짐짓 꾸며서 연주하는 등은 일체 없고, 어디까지나 작품을 견실(堅實)하고 중후하게, 또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하며 아름답게 표현한다. 정서에만 치우치는 일은 없고, 항상 깊숙한 맛을 보이고 있어서 인간미에 넘쳐흐른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그는 오늘날 보기 드문 모차르트의 명지휘자로 꼽히고 있다. 베토벤의 연주에서도 고전적인 모습 그대로 들려준다. 슈베르트나 브람스, 나아가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낭만파의 작품도 추호의 허식 없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대연주로 이끌고 간다. 바그너도 1926년 이래의 바이로이트 음악제에서의 평가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음악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베르크의 가극(歌劇) <보체크>와 같은 현대곡을 지휘한다 해도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베르크와는 친교가 있었기 때문인지 <보체크>에 관해서는 오늘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해 놓았다.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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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von Karajan(1908-1989) 당대의 가장 높은 실력과 명성을 지닌 지휘자의 한 사람이다. 1908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그 이름에서뿐 아니라 용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르메니아계(系)라 한다. 처음에는 고향에서 공부하고, 이어서 빈에서 샤르크(1886-1931)에게 배웠다. 19세 때부터 6년간은 울름 가극장, 이어서 아아헨 가극장을 거쳐서, 1938년에는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지휘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부터 인기가 상승했다. 나치스 시대에는 가장 협력적인 지휘자였었다고도 전해지고도 있으나 푸르트벵글러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전쟁 말기에는 나치스당으로부터 추방당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카라얀의 2차대전 후의 활약을 위해서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며, 이윽고 빈에서의 초기에는 교향악단, 이어서 필하모니를 지휘하게 되고, 다시금 밀라노의 스칼라극장과 런던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에서도 활약무대를 펴는가 하면 각지의 음악제에도 등장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상황에 의하여 그야말로 세계 지휘계의 제왕(帝王)과 같은 존재로 되었다. 카라얀이 절대적인 인기를 차지하게 되는 까닭은, 현대감각과연주효과의 높이라는 점에 있다. 보수적인 오케스트라 멤버로부터는 전통의 파괴자라고까지 혹평받을 만큼 카라얀의 지휘 속에는 즉물적(卽物的)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19세기와 분명하게 결별한 현대를 느끼게 하는 결과가 된다. 게다가 그는 오케스트라와 청중의 심리유도라는 점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음악의 대가이다. 이론은 무시해 버린 채 압도적인 음악적 묘미로 이끌고 들어가는 마술사적인 지휘를 한다. 급하게 돌아다닐 때에는 자가용 비행기까지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와 함께 굉장한 열등의식의 소유자라고 하는 점은, 그 씩씩한 연주태도로부터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러한 경향의 소유자인 카라얀의 레퍼토리는 독일 고전파로부터 낭만파를 중심으로 매우 넓지만, 고전파보다는 낭만파가 단연 우세하고, 특히 브람스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가장 훌륭하다. 바그너와 브루크너도 곡에 따라서는 참으로 훌륭하다.

크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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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f Krips(1902-1974) 빈의 명지휘자. 빈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었지만, 외국의 오케스트라, 음악제 등에의 등장도 적지 않았다. 과연 그는 빈적인 아담한 맛이 있는 잘 정돈된 연주를 들려준다. 독일의 고전파로부터 낭만파가 본령이지만, 특히 베토벤 연주에 뛰어났다.

앙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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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Ansermet(1883-1969) 20세기 세계악단의 원로격이던 스위스의 명지휘자. 스위스의 비베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수학과 음악을 배우고, 수학자로서 출발했으나 27세 때에 지휘자로서 전향하고, 5년 뒤인 1915년에는 디아길레프(1872-1929)가 주재하는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가 되고, 스트라빈스키의 <병사(兵士)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신작 초연의 지휘를 맡았다. 그동안 1918년에는 스위스 로만드 관현악단을 조직하여 이 악단을 일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지휘는 정묘성(精妙性)과 객관주의가 특징으로 되어 있다. 전시대적인 분위기를 일체 물리치는 경향에 있으므로, 근대·현대곡이 어울리고 특히 신고전경향의 현대곡에서 훌륭한 솜씨를 보였다.

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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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acher(1906- ? ) 스위스의 지휘자. 음악학자로서도 이름이 높다. 고전곡과 현대곡에 권위적 연구와 연주로 알려졌고, 바르토크의 <현, 타악기, 첼레스타의 음악>을 비롯하여, 현대작곡가로부터 봉정(捧呈)된 명곡이 적지 않다.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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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Maag(1919- ? ) 스위스의 뛰어난 지휘자. 극동지방에도 세 번이나 순회한 바 있다. 모차르트의 연주에 특히 호평이 있다.

골트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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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Goldschmidt(1917- ? ) 빈 출생. 빈 음악원 졸업.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 타악기, 오르간, 파곳, 성악을 배우고 그라츠 시립극장의 부지휘자 겸 오페라 가수로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같은 극장에서 데뷔했으며, 1948년에는 그라츠 폴 오케스트라도 지휘했다. 그 후 빈 폴크스오퍼, 브레겐츠 음악제,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등에 객연했으며, 그라츠 시립극장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하였다.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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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게르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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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m Mengerberg(1871-1951) 암스테르담 관현악단을 반세기에 걸쳐서 지휘했으며, 세계 일류의 오케스트라로 끌어올렸다. 독일과 국민악파의 작품이 좋고, 밀도 짙게 휘감기는 정서를 마음껏 전개시키는 독특한 해석이 오늘날에도 이야깃거리로 되어 있다.

켐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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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an Kempen(1893-1955) 네덜란드의 지휘자. 처음엔 바이올린 주자로서 출발, 뒤에는 지휘자로 전환했으나 나치스시대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후에는 한때 네덜란드에서의 활동을 금지당한 일도 있다. 독일작품을 중심으로 하고, 극히 표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베토벤의 작품이다.

베이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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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ard van Beinum(1901-1959) 이미 고인이 된 네덜란드의 명지휘자. 아른헤름에서 태어나 30세 때에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의 부지휘자로부터, 뒤에는 정지휘자가 된 것 외에도, 다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겸임하는 등 활약이 날로 활발해져 갔으나, 1959년 58세로 급서하였다. 레퍼토리가 매우 넓고, 연주도 중용을 취하고 있어서 견실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가장 적합한 지휘는 독일 작품이며, 고전적 경향을 지닌 낭만파 작품이 특히 훌륭하다. 그 중 브람스의 작품에 대한 평판은 대단하다.

오테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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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m van Otterloo(1907-1978) 네덜란드의 대표적 지휘자의 한 사람. 작곡도 공부했으나 전적으로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1949년 이래 하그 레지덴티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이 악단의 실력향상에 힘을 기울였다. 독일의 고전곡으로부터 낭만파와 베를리오즈 및 네덜란드 작품의 연주가 일품이고, 중량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이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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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Haitink(1929- ) 네덜란드의 중견 지휘자. 그는 1929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동지의 음악원 출신이지만, 1959년 베이눔의 사망 후 요훔과 함께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때 그의 나이 불과 20세였다. 하이팅크의 지휘는 참으로 명석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중후한 반응도 보여준다. 독일·프랑스의 작품으로부터 각국의 현대곡까지 그 레퍼토리는 광범위하다.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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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류이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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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Cluytens(1905-1967) 벨기에의 명지휘자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프랑스 작품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안트워프 태생이며, 안트워프의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동지의 가극장의 부지휘자로부터 출발하여, 리옹 등 각지의 가극장의 지휘의 직책을 역임했으며, 1949년에는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정(正)지휘자가 되는 것 외에,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위시하여 객연지휘도 많이 하였다. 파리에서 6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글류이탕스만큼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가 연주에 반영되어 기품있는 유려한 연주를 들려주는 지휘자도 많지 않다. 그 위에 연주의 폭은 퍽 크고, 또 내적인 감동과 연결되며 인간적인 따뜻한 맛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베토벤이나 바그너와 같은 독일음악을 직접 다룰 때도 중후한 맛을 내지만,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작품, 특히 근대 작품이 훌륭하다. 그 중에서도 라벨에서의 세련된 고아성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반데르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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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Vandernoot(1927- ) 벨기에의 뛰어난 지휘자. 최근 특히 구미 각지에서의 활약이 눈부시며, 1965년 극동지방을 순방한 적도 있다. 특히 독일작품에서 건실한 지휘의 솜씨를 보여주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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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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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Monteux(1875-1964) 프랑스의 명지휘자로서, 특히 현대음악의 초연에 공적이 있다. 파리 태생으로 동지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도 바이올린 주자로서 활약했으나, 32세 때에 지휘자로 전환하여 콩세르 콜론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911년에 디아길레프(1872-1929)가 주재하는 러시아 발레단의 지휘자가 된 다음부터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라벨의 <다프니스와 크로에>를 위시하여 현대곡의 초연을 폭넓게 다루었다. 그 후 메트로폴리탄가극장, 보스턴 교향악단 등 미국의 악단에서도 활약하는 한편, 유럽에서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관현악단과 파리 교향악단 등에서 업적을 계속 쌓았으며, 1935년에 취임한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에는 18년간이나 재임하여 일류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렸다. 그 후 한때 런던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89세의 나이로 미국 메인주의 조그만 마을 헝콕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이름은 현대음악의 초연자로서 음악사상 불멸의 광채를 지니고 있으나, 그 연주의 특징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 나타난 지휘자들에 비하면, 낭만주의 시대의 여광(餘光)을 풍성하게 간직한 매우 대범하고 표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정서에 빠져들어가는 일이 없고, 항상 굳건한 자세로 연주를 이끌고 가는 점이 그의 활동의 깊이와 레퍼토리가 넓은 원인이었다. 프랑스의 지휘자인 만큼 프랑스 작품에 뛰어난 것은 물론이지만 독일 작품도 훌륭하며, 베토벤 및 브람스 등 일류급의 연주를 하였다. 근대 및 현대 작품에 대한 정평은 러시아 발레단 시대 이래 부동의 것이다.

앙겔브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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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re Emil Inghelbrecht(1880-1965) 프랑스의 명지휘자. 드뷔시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친교가 있었던 연고로, 드뷔시를 유달리 잘 연주하였다.

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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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Wolff(1884- ? ) 프랑스의 원로격(元老格)명지휘자. 네덜란드계로서 파리 출생이며,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했고, 열심히 현대곡을 소개한 바도 있다. 순프랑스적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소 중후한 감을 느낄 수 있다.

뮌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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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M nch(1891-1968) 프랑스의 세계적 명지휘자. 뮌슈는 1891년 당시 독일 영토였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독일계 음악가의 가계(家系)였다. 뮌슈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의 음악원 외에 베를린과 파리에서 공부했으나, 최초에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 40세가 넘어서야 정식으로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37년부터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하여 크게 명성을 높였으며, 1949년에는 은퇴한 쿠세비츠키의 후임으로서 보스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직책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63년까지의 이 오케스트라에서의 활약은 뮌슈의 명성과 보스턴 교향악단의 평가를 한계단 높이는 결과가 되었다. 이 보스턴 시대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회공연한 바가 있으며(1960), 1961년에는 단신으로, 또 계속해서, 1966년에는 프랑스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외국공연을 위해 떠났다. 그는 본래 프랑스를 본거지로 하고 있었으나, 전후에는 미국에서의 활약이 주체를 이루었다. 이 같은 이유로 그의 연주에는 순프랑스적인 우아한 맛과 감성(感性) 외에, 퍽 색채적이며 강렬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독일인 핏줄을 이어받은 때문인지 초인적인 제스처, 열광적인 지휘태도의 특징이 발견된다. 프랑스 작품이 본령이지만, 그 중에서도 격정과 몽상이 넘쳐흐르는 베를리오즈의 연주에 빼어난 것은 이상과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독일인의 혈통 관계 때문인지 당당한 맛과 멋이 있으며, 특히 브람스에서의 중후한 장대성(壯大性)은 훌륭하다. 슈만의 깊은 아취(雅趣)도 잊기 어렵다.

데조르미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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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Desormiere(1898-1963) 프랑스의 명지휘자. 젊은 시절에는 현대음악에 열정적이었으나 발레, 오페라, 심포니의 지휘자로서 활약한 후, 말년에는 제1선에서 은퇴하였다.

마르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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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Martinon(1909-1976) 프랑스의 명지휘자. 리옹 태생으로, 처음에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했으나, 전후에는 지휘자로서 활약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프랑스·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의 객연도 많이 하였다. 프랑스 작품은 물론 또한 스트라빈스키 작품의 연주 솜씨도 볼 만하다.

푸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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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Fournet(1913- ? ) 현대 프랑스의 명지휘자.루앙 태생이며, 대체로 프랑스에서 활약하였으나, 외국에서의 객연도 많이 하였다. 특히 프랑스적인 기품과 맑고 깨끗한 감각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베를리오즈로부터 인상파까지가 특히 뛰어나다.

불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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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Boulez(1925- ) 프랑스의 유명한 전위적 작곡가이지만, 바이로이트·바그너제(祭)라든가 현대작품의 지휘자로서도 제1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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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Francois Paillard(1928- ) 바로크기의 프랑스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연구와 연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지휘자. 그 주재하는 실내관현악단의 바로크음악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마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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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in Maazel(1930- ) 프랑스 뇌이이 출생. 피츠버그 대학(철학·어학 전공) 졸업. 블라디미르 바칼레니코프에게 사사. 1958년 베토벤 교향곡 제5번과 브람스 교향곡 제3번을 지휘하였다. 바로크에서 현대작품까지 지휘. 1960년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출연 후 1964년부터 베를린 방송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1965년부터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음악감독, 1972-1982년까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귀재다. 1991년에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를 지휘하고 아바도의 뉴욕 공연의 <엘렉트라>를 이어받아 호평을 받는 등 한차원 높은 재능을 발휘했다. 1990년대의 거장이다.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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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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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Dutoit(1936- ) 스위스 로잔 출생. 로잔 음악원, 제네바 음악원, 아카데미아 키지아나 졸업. 샤를 뮌에게 사사.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지휘로 데뷔.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을 지휘. 바이올린을 배우던 중 비올라를 익혀 로잔 오케스트라의 멤버로서 비올라를 맡았다가 그 곳에서 지휘를 시작하여 1964년부터 베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2지휘자, 1967년부터 동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1975년에는 스웨덴 에텐보리에서 활동하였고, 1977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다. 몬트리올로 옮긴 이후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변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프랑스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음향과 풍부한 감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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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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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lav Talich(1883-1961) 체코가 낳은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 모라비아 출신이지만 구소련의 오데사에서 데뷔하였다. 1919년에 체코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정지휘자의 직에 취임하고, 이 오케스트라를 일류급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체코 작품의 지휘에서는 최고급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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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l Ancerl(1908-1973) 체코의 명지휘자. 남체코의 토차피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공부하였다. 데뷔는 하바의 4분음으로 쓰인 가극 <어머니>의 초연에서였고, 그 후 각지에서 활약했으나, 나치스 정권 시대에는 박해를 받아 오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2차대전 후 프라하 교향악단을 거쳐 체코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고, 작곡도 하였다. 그의 지휘는 긴장된 스타일 속에 인간적인 따뜻한 맛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특히 슬라브계 작곡가의 작품은 훌륭하며, 그 중에서 드보르자크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지휘자로 알려져 있고, 독일 작품의 연주도 잘 이끌어간다.

쿠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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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ael Kubelik(1914- ? ) 체코가 낳은 명지휘자. 체코의 비호리에서 출생. 아버지는 명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1880-1940)이다. 프라하 음악원을 졸업한 후 체코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 등지의 교향악단 지휘의 직책을 역임했으며, 대범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그는 또한 작곡도 하고 있으며, 2곡의 교향곡을 출발로 하는 작품이 있다. 그의 지휘는 스케일이 크고, 음악적 충실성을 흠뻑 느끼게 한다. 체코의 작품과 독일 낭만파음악이 훌륭하며, 드보르자크와 브루크너는 듣는 이를 압도한다.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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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렛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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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letzki(1900-1973) 폴란드의 지휘자. 처음에는 바이올린 주자(奏者)로서 출발하고, 이어서 작곡과 지휘에서 활약, 후기에는 지휘에만 전념하였다. 후기낭만파와 국민악파의 작품연주가 훌륭하다.

로비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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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old Rowicki(1914- ? ) 폴란드의 대표적 지휘자의 한 사람. 특히 슬라브 작품에 저력있는 연주솜씨를 보여주었다.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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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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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 Silvestri(1913-1969) 루마니아의 대표적 지휘자의 한 사람. 동유럽에서의 활약이 중심이지만, 서유럽 기타 각지로도 객연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개성이 강한 지휘를 하였다.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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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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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ro von Matacic(1899- ? ) 유고슬라비아의 명지휘자. 주로 동유럽에서 활약하였지만 서유럽을 비롯한 각지의 객연활동도 적지 않다. 독일과 슬라브 작품 연주가 훌륭하며, 스케일이 크고 매우 깊이가 있는 명연주를 들려주었다.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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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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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Nikisch(1855-1922) 근대 지휘법을 확립한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 오페라의 지휘에서부터 출발하여 뒤에는 교향악 연주회의 대지휘자가 되었다. 특히 1895년부터 세계 최고(最古)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베를린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음악역사상 의의 있는 활동을 많이 하였다. 위대한 지휘력을 지니고 있는 천재적인 즉흥연주가로 불리며, 특히 독일 낭만파의 작품을 잘 다루었다.

피렌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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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os Ferencsik(1907- ? ) 현대 헝가리의 지휘계의 중진이었다.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그 곳의 음악원에서 배웠다. 부다페스트 국립가극장, 바이로이트 음악제, 빈 국립가극장 등의 지휘자를 거쳐 헝가리 국립가극장 총감독 및 국립교향악단, 부다페스트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의 자리에 있었다. 민족적 정감(情感)을 소박하고 따뜻하게 표현하였다.

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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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olti(1912- ? ) 낭만파 음악 작품, 특히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과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주해 명성을 얻었다.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그 곳의 음악원에서 도흐나니에게 사사하였다. 193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까지 부다페스트 오페라하우스에서 일했다.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는 부다페스트를 떠나 스위스에서 살았다. 1946-1952년에 바바리안스 테이트오페라악단 지휘자로 활동했고, 1961-1971넌에 런던 코벤트가든 왕립오페라 극장의 악장이 되었으며, 1991년에는 악장직을 사임하고 명예악장이 되었다. 솔티는 1971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후, 1972년 영국에 귀화했으며, 1979-1983년에 런던필하모니관현악단에서 예술감독을 맡았다. 1977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헝가리인 특유의 정력적이고 박력에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 그는 바그너를 비롯하여 후기낭만파의 음악을 가장 잘 지휘하였다.

프리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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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enc Fricsay(1914-1963) 헝가리의 명지휘자. 1945년 부다페스트 가극장의 지휘자가 되고, 그 후 빈, 잘츠부르크, 베를린 등에서 지휘하여 주목을 받았고, 이어 베를린방송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현대적인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바르토크의 제1인자로서 알려져 있다. 한편 정연한 양식감(樣式感)과 낭만적 정감을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이 지니며,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케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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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van Kert sez(1929-1973) 주목받았던 신진 지휘자. 부다페스트 태생. 1955년부터 부다페스트 국립가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동란 때 고국을 떠나 로마에서 프레비탈리에게 사사하였다. 그 후 아우크스부르크 국립가극장의 음악총감독이 되었다. 또 각국 일류 관현악단의 객연지휘 등 정력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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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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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i Malko(1889-1961) 브라이로프 태생. 상트페트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하였다. 1925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그 후 영국과 유럽 및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약했다.

도브로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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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ai Dobrowen(1894-1953)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으며, 빈에도 유학하여 명피아니스트인 고도프스키에게 사사하였다. 1919년 모스크바에서 지휘자로서 데뷔한 이래 독일·미국·노르웨이·스웨덴 등 주로 서방에서 활약하였다. 가극을 가장 잘했지만, 협주곡의 지휘도 뛰어났다.

호렌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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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orenstein(1899-1973) 키에프 태생이지만 주로 빈에서 공부했으며, 1925년에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그 후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으며 독일적인 견실한 연주를 하였다.

마르케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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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or Markevitch(1912- ? ) 키에프 태생으로 파리에서 배웠다. 젊은 시절에는 피아노와 작곡에도 재능을 보여주었으며, 18세 때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활약했으나, 2차대전 후에는 유럽 각지에서 널리 활약했으며, 1959년에는 파리의 라무르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역동적인 연주를 하는 지휘자이다.

페도세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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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Fedoseev(1932- )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 그네신기념 국립음악교육학교,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 1976년 러시아 민요인 러시아 멜로디야로 데뷔, 차이코프스키 등의 러시아 작품을 지휘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학교에서 민속악기인 바얀을 배운 다음 그네신 기념 음악교육학교에서 지휘를 배우고 1959년부터 러시아의 민속악기에 의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긴스부르크에게 지휘를 배우고 1972년부터 러시아 각지의 오케스트라에 객연하면서 오페라·발레·콘서트에서 활약했고, 1973년 로제스토벤스키의 후임으로 모스크바 방송의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였다.

페도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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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Fedotov(1933- )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 러시아 발레음악 지휘. 러시아 멜로디아 키로프 극장 지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튜바와 지휘를 배우고 재학 때부터 음악원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졸업 후 키로프 극장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키로프 극장의 지휘자로서 계속 활약하였다.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발레를 레퍼토리로 한 발레음악의 베테랑이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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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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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uro Toscanini(1867-1957) 20세기 최대의 지휘자의 한 사람. 파르마 태생으로, 처음에는 첼로주자였으나 19세 때 베르디의 <아이다> 전곡(全曲)을 암보(暗譜)로 지휘하여 인정받았다. 그 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가극장 등의 지휘를 맡게 되고, 1927년엔 뉴욕 필하모니, 1937년부터 1954년까지는 토스카니니를 위해 창립된 교향악단(NBC 교향악단)의 상임을 맡았다. 한음 한음을 소중히 처리해 가는 즉물적(卽物的)인 연주법은 현대의 음악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세라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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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lio Serafin(1878-1968) 이탈리아의 오페라 최고 지휘자. 베네치아 근교에서 태어나, 밀라노 음악원에서 배웠다. 토리노, 로마, 밀라노 스칼라극장 등의 가극장 지휘를 맡았으며, 그 후 구미 각국의 일류 가극장에 초빙되어 많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아름다운 가락의 흐름, 극적인 긴박감의 표현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를 전한다.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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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torio Gui(1885-1975) 이탈리아 오페라 유수의 지휘자. 로마 태생으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배웠다. 토스카니니에게 초빙되어 밀라노 스칼라극장 지휘자가 되고, 기타 이탈리아 각지의 가극장과 음악축제 등에서 활약, 그라인드본 음악제의 지휘를 하였다.

사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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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de Sabata(1892-1967)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휘자의 한 사람. 트리에스테 태생으로, 밀라노 음악원에서 배웠다. 밀라노 스칼라극장의 정지휘자를 비롯하여 미국에서는 신시내티·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상임 및 뉴욕 필하모니의 객연을 맡았다. 명쾌하고도 정열적인 연주를 하며 오페라, 교향악 연주회의 양면에서 활약하였다.

카푸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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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o Capuana(1896-1969) 오페라 지휘자. 파자노 태생으로, 나폴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웠다. 1930년에는 산 카를로 가극장의 지휘자, 1937년부터는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지휘하게 되고, 1949년에는 그곳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또 빈 국립가극장 이탈리아 오페라 담당의 지휘자직도 맡아 노련하고 원숙한 연주를 보였다.

파브리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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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ierode Fabritiis(1902-1982) 이탈리아 로마 출생. 리치니오·레피체, 자코모 세타치올리에게 사사.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로 데뷔.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 로마에서 작곡과 지휘를 배우고 1925년에 <라 트라비아타>로 데뷔하여 이탈리아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1932년에는 당시 질리나 달-몬테 등이 있어 황금시대로 일컬어졌던 로마의 레아르 극장 총감독이 되었으며, 1943년까지 그 지위를 맡은 동시에 구미 각지에서도 활약을 했다. 그 후 베로나 음악제의 총감독도 맡았다.

에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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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Erede(1908- ? ) 제네바 태생으로, 바젤 음악원에서 바인가르트너에게 사사하였다. 그라인드본·잘츠부르크·로마·메트로폴리탄 등에서 지휘를 하였고, 1958년부터는 뒤셀도르프 가극장의 지휘를 맡았다. 이탈리아 오페라뿐 아니라 독일 오페라도 잘 연주하며, 맑고 다이내믹한 연주를 한다.

가바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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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andrea Gavazzeni(1909- ? ) 작곡가·평론가로서도 알려져 있다. 베르가모 태생으로, 산타체칠리아 및 베르디 음악원에서 배웠다. 현대음악의 보급에 주력하고, 현재는 로마의 오페라극장 및 로마 방송국의 지휘자로 근무하고 있다.

갈리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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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eo Galliera(1910- ? ) 밀라노 출생. 아리고 보이트 음악원,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 졸업. 1941년 로마 성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에 데뷔. 독일·오스트리아계 작품, 이탈리아, 북유럽의 작품 지휘. 피아노, 오르간, 작곡을 배운 다음 오르간 주자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1941년 로마에서 지휘자로 데뷔하여 1945년에는 루체른 음악제에도 출연했다. 그 후 유럽은 물론이고 남북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활약했으며 멜버른 수석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57-1960년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 지휘자를 지냈고, 1964-1971년 스트라스부르 폴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면서 프랑스 음악의 지휘자로도 명성을 높였다.

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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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 Maria Giulini(1914- ? ) 로마 근교 태생으로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배웠다. 1946년 32세로 로마방송국의 음악감독이 되고, 그 후 각지의 음악제에서 지휘, 1951년부터 밀라노 스칼라극장의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약동하는 리듬감과 밝은 색채감에 넘치는 연주를 하였으며, 오페라, 교향악 연주회의 양면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칸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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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o Cantelli(1920-1956) 장래가 촉망되면서 35세의 젊음으로 요절한 이탈리아의 지휘자. 노바라 태생이며, 밀라노 음악원에서 배웠다. 1945년 토스카니니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고, 그 후 NBC교향악단과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하며 활약했으나, 1956년 11월 비행기사고로 파리 교외에서 사망하였다.

마데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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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Maderna(1920-1973) 베네치아 출생. 시에나 음악원 졸업. 헤르만 셰르헨에게 사사. 베네치아, 밀라노, 시에나 등 이탈리아 각지의 음악원에서 배우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빈에서 셰르헨에게 지휘를 사사했다. 1954년에는 베리오와 함께 밀라노에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창립, 전후의 현대음악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1971년부터는 밀라노 방송 수석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오케스트라에 객연하는 한편 1961년에는 앙상블 유러피언의 지휘자로서 극동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또 후진의 지도에 진력하여 베네치아 음악원, 다름슈타트, 버크셔 음악센터,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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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cardo Muti(1941- ) 나폴리 출생. 나폴리 음악원,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 졸업. 프랑스 페라라에게 사사. 1967년 구이도 칸텔리 국제 지휘자 콩쿠르 제1위. 1965년, 밀라노 안젤리쿰 오케스트라에 데뷔. 모차르트·베르디·벨리니의 오페라, 독일 고전·낭만파, 프랑스 근대의 관현악곡 지휘. 밀라노 이탈리아 방송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지휘로 1967년에 정식 데뷔한 그 이듬해에 피렌체 5월 음악제에서 리히텔과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1970년부터 동 음악제와 피렌체 시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하면서 그 눈부신 경력이 시작됐다. 1972년 필라델피아와 런던에 데뷔, 1973년부터 클렘페러의 후임으로 (당시는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1979년에는 동 음악감독, 1980년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1986년부터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1970년대 후반부터는 빈 폴 오케스트라의 단골로 알려졌다. 오리지널 악보에 충실하여, 전통적인 커트와 꾸밈음을 한 음도 허용치 않는다는 신념으로 다채로운 레코딩을 하였다. 1990-1991년 시즌의 밀라노스카라 극장에서는 모차르트, 베르디 외에 케루비니와 페르골레시까지 다루어 화제가 되었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에서는 푸치니의 <토스카>도 다루었다.

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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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cardo Chailly(1953- ) 샤이는 밀라노에서 태어나 밀라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시에나의 키지 음악원에서 프랑코 페랄라에게 배웠다. 1968년 클라우디오 시모네에게 인정되어 '솔리스티 베네치아'를 지휘하였는데 이것이 지휘자로서의 데뷔이다. 2년 후 아바도의 추천으로 스칼라극장의 부지휘자로 취임하고 1972년 밀라노의 데아도로 누오보에서 지휘하여 호평을 받음으로써 지휘자로서의 앞길이 열렸다. 1974년에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나비부인>을 지휘하여 미국 데뷔를 했으며 1982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에 취임하고 동시에 런던 필하모니의 수석객원지휘자를 겸하게 되었다. 샤이는 현대의 지휘자답게 뛰어난 평형감각을 지니고 있어 조형의 균형은 물론 관과 현의 혼합과 대립의 효과도 잘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본령이라 할 풍염한 노래를 잘 살리고 리듬의 부각성과 힘있는 기복으로 다이내믹하게 이끌어간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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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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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 Luis Garcia(1944- ) 마드리드 출생. 마드리드 음악원, 런던왕립 음악원 졸업.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에게 사사. 1960년 사라사테 바이올린 콩쿠르 제1위. 6세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17세부터 런던왕립 음악원에서 브로사를 사사하는 동안 지휘를 첼리비다케에게 배웠다. 그 후 바이올린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동시에 1969년에 영국 컴퍼니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 그 후 실리토의 뒤를 이어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또한 가브리엘 오케스트라의 리더로도 활약하였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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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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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Beecham(1879-1961) 영국 최고의 지휘자의 한 사람. 랭커셔 태생.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생애에 6개의 관현악단을 자기 힘으로 조직하고 영국악단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런던 필하모니와 로열 필하모니는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였으며 연주는 예의바르고 온건하였다.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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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ian Boult(1889- ? ) 영국 지휘계의 원로의 한 사람. 체스터 태생. BBC방송국의 음악감독 및 정지휘자직을 오랫동안 맡았으며, 그 후 런던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하였다. 연주는 곱게 정돈되어 있으나 정열적인 개성이 결핍되어 있다.

구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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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e Goosens(1893-1962) 런던의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부터 활약하다가 1923년에 도미, 194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그 나라의 음악 발전에 공헌하였다. 작곡가로서도 알려져 있으며, 레퍼토리의 범위가 넓다.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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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Collins(1893-1963) 처음에는 비올라 주자였으나, 후에는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웠다. 1939년에 도미, 영화와 방송의 작곡·지휘를 담당하였고, 1952년에는 영국으로 돌아와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사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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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colm Sargent(1895-1967) 스탠퍼드 태생. 처음에는 오르간 주자였으나 후에는 지휘자가 되어, 로열 필하모니를 비롯하여 영국의 각 관현악단을 널리 지휘하였다.

바비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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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arbirolli(1899-1970) 런던 태생. 첼로를 정규학교에서 배우고, 지휘 기교는 독학으로 터득하였다. 1936년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로 뽑히고, 1943년에는 하를레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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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d Neel(1905-1981) 런던 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음악으로 전향, 보이드닐 합주단을 조직하여 그 지휘자가 되었다.

리그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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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o Rignold(1905- ? ) 왕립음악학교에서 기악을 공부하고, 또한 모든 악기의 연주법을 공부하였다. 2차대전 때까지는 관현악 단원이었으나, 대전 후 지휘자가 되고, 1947년부터는 로열 발레단의 지휘자, 1960년부터는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의 직책을 맡았다. 발레음악을 특히 잘 지휘하였다.

피스툴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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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le Fistoulari(1907- ? ) 러시아계(系)의 영국 지휘자. 키에프 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휘의 재능에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렸다. 그 후 파리로 유학갔으며 샤틀레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2차대전 중에 영국으로 이주하였으며, 런던 필하모니를 비롯하여 영국의 각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발레음악을 가장 잘 지휘하였다.

블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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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Blech(1910- ? ) 런던 태생으로 맨체스터 음악원에서 배웠다. 1942년 런던 목관합주단을 조직했고, 그 후 소편성의 관현악단을 만들어 고전음악의 연주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개성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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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Irving(1913- ? ) 런던의 왕립음악원에서 배우고, 1945년에는 글래스고 방송관현악단, 1949년에는 코벤트가든 왕립가극장의 발레 지휘자가 되었다. 발레음악의 지휘자로서 알려져 있다.

기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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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Gibson(1926- ) 스코틀랜드 출신.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배우고, 현재는 스코티시 내셔널의 상임지휘자로서 단정한 연주를 한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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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Davis(1927- ) 웨이브리지 출생. 런던왕립음악원 졸업.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지휘. 클라리넷을 배우다가 독학으로 지휘를 익혔다. 런던왕립음악원의 학생들로 결성된 카르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경험을 쌓은 후 첼시 오페라 그룹에서 <돈 조반니>의 지휘로 주목을 받았으나 피아노가 능숙하지 못해 오페라 극장의 코레페니투어가 되지 못하고 한동안 학생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지휘하였다. 이윽고 1957년에 BBC스코티시 심포니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에 초빙되고 나서 본격적인 지휘활동을 시작하여 새들러스 웨일스 오페라의 지휘자에서 음악감독, BBC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코벤트 가든 왕립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등을 역임하였고, 198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오페라와 콘서트에서 두루 활약하고 있는 그의 연주는 탄탄한 구성 속에 감춰진 정열과 따뜻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80년에 영국 음악계에 대한 공헌으로 '경'에 서훈되었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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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세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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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 Kossevitzky(1874-1951) 러시아 출신의 대지휘자.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후, 콘트라베이스의 명주자로 있다가 지휘자가 되었으며, 러시아 혁명 후는 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1942년 도미, 보스턴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고, 이후 25년 동안이나 그 지위에 있으면서 미국 음악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레퍼토리의 범위는 넓지만, 특히 러시아·프랑스의 작품을 잘 지휘하고, 또 근대·현대음악의 연주 및 보급에 힘썼다.

스토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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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 Stokowsky(1882-1977)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이다. 폴란드계이지만, 런던 태생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과 파리에서 음악을 배웠다. 오르가니스트로서 출발했고, 그 후 도미, 1912년에는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세계 일류급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었다. 1936년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각지의 오케스트라를 정력적으로 지휘하며 활약하였다. '음의 마술사'라고 불리며, 그 색채적이며 화려한 연주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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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Paray(1886-1976) 프랑스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파리 음악원에서 배우고, 1932년부터 콩세르 콜론의 상임지휘자, 1951년에 도미하여 디트로이트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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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Reiner(1888-1963) 헝가리 출신.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그 곳의 음악원에서 배웠다. 오페라의 지휘자로서 출발, 1922년 도미 후는 신시내티 및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고, 1953년에는 시카고 교향악단의 상임직을 맡게 되었다. 선이 굵은 호쾌성(豪快性)과 치밀성을 겸비한 연주를 하며,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의 연주를 특히 잘하였다.

골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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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Golschmann(1893-1972) 프랑스 출신. 러시아계 프랑스인으로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에는 파리에서 활약, 1931년부터 미국의 세인트루인스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고, 1958년까지 이 지위에 있었다. 발레음악의 지휘에 특히 능하였다.

로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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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ur Rodzinsky(1894-1958) 폴란드계의 지휘자이지만, 태어난 곳은 유고슬라비아이다. 빈에서 공부하고, 고국의 바르샤바에서 지휘자로서 중요한 지위에 있었으나 1924년 도미, 일류 오케스트라를 쉬지 않고 지휘하였다. 정력적이고도 엄숙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피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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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Fiedler(1894-1979) 보스턴 팝스 관현악단의 지휘자로서 유명하다. 보스턴 태생으로, 베를린에서 배웠다. 보스턴 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부터 1930년에는 보스턴 팝스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연주범위는 클래식 음악의 전체를 포함하며, 음악의 즐거움을 차분히 느끼게 해주는 연주를 하였다.

로젠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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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f Rosenstock(1895- ? ) 독일계의 지휘자. 크라코프 태생으로, 빈 음악원에서 배웠다. 주로 독일과 미국에서 오페라를 지휘했고, 근년에는 주로 미국에서 활약하였다.

미트로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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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itri Mitropoulos(1896-1960) 그리스 출신의 유명한 지휘자로서,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로서 알려졌다. 아테네 태생으로, 아테네 음악원을 졸업한 후 또다시 독일에서 공부하였다. 1936년에 도미, 보스턴 및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의 상임직을 거쳐, 1949년부터 9년간은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직을 담당하였다. 연주는 메커닉할 정도의 치밀성과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며 현대음악의 소개·보급에 공적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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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zell(1897-1971) 헝가리 출신.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하였다.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했고, 그 후 독일 각지의 가극장에서 지휘를 하였다. 2차대전 중에 도미, 1946년부터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셀의 관현악에 대한 훈련은 엄격하고 고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그 표현은 명쾌 바로 그것이며, 지적이고 정연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월렌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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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Wallenstein(1898- ? ) 시카고 태생. 뛰어난 첼로 주자로서, 시카고 교향악단과 뉴욕 필하모니의 수석 첼로 주자를 담당했으나, 토스카니니의 권고로 지휘자가 되어 1945년부터 1956년까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오르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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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e Ormandy(1899-1985) 헝가리 출신.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 역임.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그 곳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 1920년 도미하여 그 후 지휘자가 되었다. 1931년에는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 그리고 1938년에는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부드럽고 화려한 연주를 한다.

쿠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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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rem Kurtz(1900- ? ) 러시아 출신.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독일에서 배웠다. 특히 발레 지휘자로서 유명하며, 유럽 각지에서 지휘하였다. 그 후 도미하여 교향악 연주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코스텔라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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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 Kostelanetz(1901-1980) 러시아 출신.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동지의 음악원에서 배웠다. 1922년 도미, CBS방송국과 영화음악 등에서 지휘, 1940년경 코스텔라네츠 관현악단을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세미클래식 분야의 지휘자이다.

도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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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al Dorati(1906- ? ) 헝가리 출신. 부다페스트 태생으로, 처음에는 발레 지휘자로서 명성을 높였다. 1945년에 도미하여 댈러스 교향악단 및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담당하였다. 명쾌한 리듬을 지니는 정력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다.

미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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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ard Mitchell(1911- ? ) 네브래스카주 태생으로, 커티스음악원에서 첼로를 배웠다. 1933년부터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의 수석 첼로 주자가 되고, 1949년부터 그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라인스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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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h Leinsdorf(1912- ? ) 본래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였으나 미국이 활동무대였다. 빈 태생으로, 26세의 젊음으로 메트로폴리탄가극장의 지휘자로서 취임한 이래, 클리블랜드 교향악단, 보스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맹활약하였다. 가극과 심포니 양쪽에 폭넓은 순응성을 갖고 있으나, 미국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가해진 지휘를 하였다.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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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n Gould(1913- ? ) 뉴욕 태생.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고, 1933년 WOK방송국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 후 CBS방송국의 음악프로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였으며 세미클래식 분야의 지휘자이다.

페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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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rick Fennell(1914 - ? ) 클리블랜드 출생. 이스트먼 학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 졸업.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에게 사사. 1952년 이스트먼 관악 Ens 데뷔. 취주악 작품, 팝스 클래식 지휘. 어려서부터 타악기와 피아노를 배운 다음 1931년부터 인터로켄의 내셔녈 뮤직 캠프에서 지휘 경험을 쌓았으며 그 후 음악학교와 음악원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모교 이스트먼의 교수가 되었다. 이윽고 1952년에 브라스 앙상블을 조직하고 그 지휘를 맡으며 '보스턴 팝스'의 객연 지휘자도 역임하였다. 1974년부터 이듬해에 걸쳐서는 마이애미 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그 밖에 '이스트먼 로체스터 팝스'의 지휘자로도 활약했다.

슬라트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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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Slatkin(1917- ? ) 세인트루이스 태생. 처음에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하고, 현악 4중주단을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그 후 할리우드 볼 교향악단 지휘자로서 통속명곡(通俗名曲)을 지휘하여 인기를 모았다.

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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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Bernstein(1918-1990) 미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지휘자. 미국 최고(最古)의 전통에 빛나는 뉴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였다. 뉴욕 필하모니가 처음으로 자기 나라 태생의 상임지휘자를 얻은 사실에도 의의가 있다. 매사추세츠주 태생으로 하버드 대학 음악과에서 배웠다. 라이너, 크세비키에게 사사, 뉴욕 필하모니의 부지휘자로서 출발했으며, 1958년에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매우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지휘 외에 작곡·피아노·음악 해설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으며, 작품에서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가 특히 유명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그의 작품에는 유럽의 전통과 세련된 현대감각이 교묘히 융합되어 있다.

시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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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Schippers(1930-1977) 미국의 젊은 지휘자 중 가장 맹렬히 활약한 사람 중 하나. 미시간주 태생으로, 커티스 음악원에서 배웠다. 1950년 메노티의 가극 <영사(領事)>를 지휘하여 데뷔 즉시 그 재능을 인정받아 그 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및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지휘하였다. 한편 미국 일류의 교향악단도 계속해서 지휘하였다. 바이로이트 음악제에도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젊은 나이에 비해 비교적 내용이 깊은 연구를 하였다.

마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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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in Maazel(1930- )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현대 지휘계의 대희망주. 파리 태생. 아버지는 네덜란드인, 어머니는 헝가리와 러시아의 혼혈이다. 소년시절부터 미국에서 살았으며,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의 활약은 물론이지만, 그 밖에 이탈리아·독일·오스트리아의 빈 등에서도 계속 성공을 거두었다. 1960년에는 불과 30세의 젊음으로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지휘한 매우 인기 높은 청년지휘자였다. 마젤은 그의 핏줄이나 경력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미국 국적은 갖고 있으면서 순미국적 지휘자와는 달라, 국적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인 세계의 지휘자라고 표현하는 편이 타당하다. 이 사실이 그의 연주에 대담한 개혁을 자주 일으키게 하여 신선한 매력을 풍기는 반면 전통성이나 음악의 본질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는 결점이 되기도 하였다. 근대 및 현대작품의 연주솜씨가 대단하였다.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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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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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bin Mehta(1936- ) 인도가 낳은 최초의 국제적 지휘자. 봄베이에서 출생. 아버지 메리 메터는 봄베이교향악단의 창립자이다. 1954년 빈 음악대학에 들어가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우고 1958년 영국 리버풀에서 개최된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 이듬해 빈필하모니의 지휘로 데뷔하였다. 1960년-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1962-1978년에는 로스앤젤레스필하모니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도 지휘하고, 뉴욕필하모니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가 광범하며 특히 낭만파의 작품연주에 뛰어났다. 1984년 뉴욕 필하모니와 함께 내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