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후기 문학/판소리 문학의 전개
판소리
[편집]18세기 영조 때에 이르러 숙종 때부터 대두한 평민문학이 본격적인 문학의 주류를 형성하면서부터 발생한 새로운 문학의 양식(樣式)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가 나왔다. 이 새로운 양식은 평민문학인 사설시조가 이서(吏胥)들 사이에서 일어나 창곡이 유행함에 따라 자극을 받았고, 설화나 소설을 창화하여 가창으로 생계를 삼는 유랑(流浪) 재인(才人)인 광대(廣大)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판소리라는 말의 어의(語意)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판놀음, 즉 연희(演戱)에서 부르는 소리를 뜻한다. 따라서 판소리는 소리인 창조(唱調)와 대사인 창사(唱詞)와를 총칭하는 말로서 창사만을 가리킬 때에는 극가(劇歌)와 같은 것이다.
판소리는 일정한 소리와 대사로써 흔히 광대가 두서너 시간씩 혼자 온갖 몸짓을 해가면서 불렀다 한다. 이렇게 판소리는 판놀음의 한 유형으로서 궁중을 비롯해 관가나 양반의 내정(內庭), 과거 급제자의 축하연, 그리고 시골 마을이나 시장 등지에서 흥행성을 갖고 불리어져 왔다. 따라서 판소리는 양반이나 서민계급을 막론하고 민족적으로 향유되었던 창(唱)을 위주로 한 민족예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불리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그 시창자(始唱者)는 숙종 말의 하한담(河漢潭)과 결성(結成)의 최선달(崔先達)이라고 한다. 추측하건대 숙종 때부터 불리던 시조나 가사가 창작보다는 가창을 위주로 해서 불리어지자 가인(歌人)들에 의해 창곡의 성행을 보게 되었고, 그 창곡은 직업적인 광대들의 참여로 오락적인 가창에서 흥행적인 가창으로 옮겨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광대들은 다시 청중에게 소설적인 흥미를 주기 위하여 민간에 널리 알려진 민족설화에서 그 소재를 구했을 것이다. 또 그들은 여기에다 해학(諧謔)과 풍자적인 주제를 담아 창곡의 기본조인 3·4조 또는 4·4조의 율조를 장단에 맞춰 부른 것이다.
판소리 계열의 소설
[편집]-系列-小說
창을 통해 불리어 오던 판소리의 대사는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문자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구소설을 목판(木板)으로 출판하게 된 것은 순조 때부터였는데 현존하는 <춘향전> <심청전>의 목판본을 검토해 볼 때 판소리가 소설로 정착한 것은 이 목판본이 나온 순조 이후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소설화된 판소리 계열 작품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판소리 계열의 작품은 다른 소설보다 플롯이 단일하고 전개도 희곡적으로 결구(結構)되어 있다. ② 판소리 계열의 작품은 문장이 다른 소설과 같은 산문이 아니라 3·4조 또는 4·4조의 기본 율조로 되어 있다. ③ 표현에서도 다른 소설과 같은 서술적인 것이 아니라 묘사적이다. ④ 판소리는 귀족문학이 아닌 평민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작품 속에 해학성과 풍자성을 띠고 있으므로 웃음의 문학, 비판의 문학으로서 일반 민중에게 공감을 줄 수 있었다. ⑤ 판소리 계열의 작품은 모두 전승설화에서 제재를 취재했기 때문에 민족적 뉘앙스를 가진 근원설화(根源說話)를 가지고 있다.
판소리 열두마당
[편집]판소리는 이렇게 민중시인이라 할 수 있는 광대들에 의하여 민족설화를 취재, 이를 창시화하여 이른바 열두마당의 문학유산을 이루어 놓았다.
그 열두마당은 즉 <춘향가>를 비롯해 <심청가> <흥보가(박타령)> <토끼타령(토별가·수궁가)> <장끼타령>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옹고집타령(雍固執打令)> <변강쇠타령> <화용도(적벽가)>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무숙이타령>의 12사설인데, 그 중 <가짜신선타령> 대신 <숙영낭자전>을 넣기도 한다. 대개 이들은 '아니리'라는 보통의 설화조와 '진양조' '중모리' '세산조시' 등 가락으로 된 일종의 서사시로서 우리나라의 민족적 양식이 되어 준다. 판소리 열두마당은 민족설화에서 그 주제를 구한 것으로 일반 서민계급과 공감할 수 있도록 해학성·풍자성을 띠면서 광대들의 입을 거쳐 불려오는 도중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판소리 문학
[편집]-文學
판소리는 순조 이후의 고수관(高秀寬), 송흥록(宋興錄), 모흥갑(牟興甲), 염계량(廉季良) 그리고 근래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 등의 명창에 의하여 계승되었고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에 의해 여섯마당 즉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가루지기타령> <적벽가(화용도)> 등 여섯으로 정리되었다. 이것은 종래 되는 대로 불려오던 광대 소리를 그 대문과 어구를 실감있게 표현한 것으로 그의 독특한 창의로 말미암아 평민문학은 한층 발전되어 민족문학으로서의 빛나는 유산이 이룩되었다.
신재효
[편집]申在孝 (1812-1884)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 전라도 고창(高敞) 출신. 순조 이후에 일어난 서민문학을 대성했고, 고종 때 오위장(五緯將)을 지냈으며, 판소리 연구에 몸을 바쳐 종래 계통도 없이 불려오던 광대 소리를 통일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여섯마당의 체계를 세워 개작하였다. 그의 단가작품으로는 <광대가> <오섬가(烏蟾歌)>
<도리화가(桃李花歌)> <성조가(成造歌)> 등의 창작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민적인 해학성과 사실성이 넘치고 있으며, 문하에 김세종(金世宗), 정춘풍(鄭春風), 채선, 허금파 등의 명창을 길렀다.
광대가(廣大歌)
[편집]신재효가 지은 단가. 허두가(虛頭歌)의 하나로 내용은 광대 이론을 사설로 쓴 것이다.
오섬가(烏蟾歌)
[편집]> 고종 때 신재효가 지은 판소리 작품. 내용은 까마귀와 두꺼비가 만나서 고금을 풀이하는 것이다.
성조가(成造歌)
[편집]신재효가 지은 가사. 내용은 집터를 맡아보는 신(神) 성조왕신(成造王神)과 성조부인(成造夫人) 등을 노래한 것이다.
춘향전(春香傳)
[편집]지은이와 연대 미상의 구소설.우리나라 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내용은 계급 타파와 인간의 자유를 주장한 것으로 열녀 춘향의 정절을 통해, 특권계급에 대한 서민계급의 반항을 표현했다. <춘향전>은 실로 민족 공동 문학의 형성을 시사한 작품으로, 문학으로서의 영원성과 보편성을 지녀, 민족문학의 고전이 되어준다. 이 작품은 지배계급인 위정자들의 횡포와 부패를 폭로하고 여성의 정절을 통하여 평민들의 인권 옹호를 주창(主唱)함으로써 민족문학의 리얼리즘을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1) 저작연대;경판(京板)은 영조-정조 무렵에, 완판(完板)은 고종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2) 춘향전의 소재; ① 이시경(李時慶)의 실제담이라는 설. ② 남원 사람 노정(盧禎)의 실제담이라는 설. ③ <반문수집>에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으니 거기서 나왔다는 설. ④ 전북지방에 떠돌던 얘기라는 설 등 추측이 많으나 모두 확실치 않음.
춘향전의 이본
[편집]-異本
스토리를 위주로 한 것으로는 서울 한남서림(翰南書林)에서 낸 경판본이, 창곡을 위주로 한 것으로는 전주 완서계서포(完西溪西鋪)에서 낸 완산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 밖에 후세 사람이 개작한 것으로는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 이해조의 <옥중화>, 전용제(全用濟)의 <광한루> 등 20여 종이 있으며, 또 <한문 춘향전>을 비롯해서 한역·일역·영역·불역 등의 번역이 있어 외국에까지 소개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남원의 퇴기(退妓) 월매(月梅)의 딸 춘향은 재색을 겸비했는데 마침 사또의 아들 이몽룡(李夢龍)과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이도령은 서울로 전근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게 되었으므로 춘향과 뒷날을 기약하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한편 새로 부임해 온 탐관오리(貪官汚吏) 변학도(卞學道)는 춘향의 아름다움을 탐하여 수청을 강요하니, 춘향이 이에 죽기를 한하고 정절을 지킨다. 드디어 변학도는 춘향의 절개를 꺾지 못함을 알자, 마침 이웃 수령들이 모인 생일 잔치에 춘향을 끌어내어 처단하려 하니 춘향의 목숨은 이에 경각에 달린 바 되었다. 한편 이도령은 서울에서 공부한 보람이 있어 태평과에 장원급제하여 평생 소원인 전라도 암행어사로 제수되어 그리운 춘향을 만나기 위해 거지 꼴로 위장, 남원으로 내려왔다. 마침 때는 춘향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라, 이에 무도한 변학도를 청천벽력 같은 어사출도로 벌 주고 춘향을 구해 내어 춘향은 정절부인이 되어 백년해로를 하였다.
심청전(沈淸傳)
[편집]지은이와 연대 미상의 구소설.전래 민담과 불교적 설화가 숙종 때에 이르러 소설화된 듯하며, 내용은 유교가 표방하는 효도사상과 불교가 표방하는 인과응보 사상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작품으로, 당시의 서민들의 비참한 현실과 그들의 꿈을 반영한 것이다.
황해도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장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아내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면서 어린 딸 청(淸)을 기른다. 청은 예쁘고 마음씨가 또한 착하여 효도가 극진했다. 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 석에 팔려 인당수의 제물로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상제는 청을 구해 주어, 다시 세상에 살아나온 끝에 왕후가 되었다. 청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장님 잔치를 열어 마침내 아버지를 맞으니, 심봉사 또한 너무나 반가운 끝에 멀었던 눈이 떠졌다.
흥부전(興夫傳)
[편집]지은이와 연대 미상의 구소설.민간 설화가 소설화한 것으로 주제는 형제 사이의 우애를 통해 권선징악을 강조한 것으로, 소재는 몽고(蒙古)의 설화 <박타는 처녀>가 건너왔다는 설도 있으나, <유양잡조속집(酉陽雜祖續集)>에 실린 <방이 이야기(旁▩說話)>에서 온 듯하다.
옛날 놀부라는 악한 형과 흥부라는 착한 아우가 있었다. 어느 날 흥부가 다리 다친 제비를 구해 주었다. 이듬해 제비는 박씨 하나를 갖다 주어서, 흥부는 여기서 얻은 박에서 금은 보화를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
이를 질투한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분질러서 날려 보내어 또한 같은 방법으로 박씨를 얻어 심어 박을 얻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인분(人糞)과 귀신 등속의 것이 나와서 집안을 망쳐 버렸다.
옹고집전(擁固執傳)
[편집]지은이와 연대 미상. 온당촌에 사는 천하의 둘도 없는 수전노요 고집이 센 옹고집이 불도를 훼방하다가 나중에 자기 잘못을 고쳤다는 이야기.
장끼전
[편집]지은이와 연대 미상. 숙종 이후에 지어진 듯하며 꿩을 의인화한 동물소설. 장끼가 까투리의 말리는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먹을 것을 탐내다가 죽어버리는데, 죽은 후 여러 종류의 새들이 까투리에게 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을 다 물리치고 결국 홀아비 장끼를 만나서 잘 살았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배비장전(裵裨將傳)
[편집]조선 말에 된 지은이 미상의 판소리 작품. 서민들의 양반들에 대한 보복과 양반들의 위선을 폭로한 작품. 전편에 풍자와 야유, 해학이 넘쳐 흐른다. 내용은 여색을 멀리한다고 이름났던 제주목의 배비장이 그 곳 기생 애랑에게 반해서 망신당한 이야기이다.
가루지기타령
[편집]일명 '변(卞)강쇠타령' '변강쇠전' 또는 '횡부가(橫負歌)'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판소리 작품.
평안도에서 난 옹녀란 잡년과 전라도에서 난 변강쇠란 잡놈이 도중에 만나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어느 날 변강쇠는 장승을 패어 때다가 동티가 나서 병을 얻어 죽었다. 옹녀는 중·초라니·풍각쟁이들에게 장사만 지내주면 같이 살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송장을 만지다 죽고 만다. 나중에는 각서리패, 마종꾼들이 송장을 지고 가게 되었으나 그들도 송장에 몸이 붙어 뗄 수 없게 되었다.
적벽가(赤碧歌)
[편집]판소리열두마당의 하나. 고종 때 신재효가 개작했는데, 내용은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한 조조가 관운장에게 구차스럽게 목숨을 비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강릉매화가(江陵梅花歌)
[편집]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 지은이와 연대는 미상이며, 주제는 위선적인 사랑을 풍자한 것이다.
신선타령(神仙打令)
[편집]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 내용은 소설 <삼선기>와 같은 구성으로 결구되어 있는데, 도덕군자 이공(李公)이 그를 사모하는 홍랑(洪娘)과 유랑(柳娘)의 교묘한 수법으로 훼절한다는 이야기이다.
무숙이타령(武叔打令)
[편집]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 작품은 전하지 않음. 내용은 <오유란전> 또는 <왈자타령(曰字打令)>과 같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