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일본·인도 기타 나라 영화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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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도 기타 나라 영화의 감상〔개설〕[편집]

日本·印度基他-映畵-鑑賞〔槪說〕

일본영화계의 현황[편집]

日本映畵界-現況세계 1∼2위의 영화 다산국(多産國)으로 알려진 일본영화산업은 점차 사양(斜陽)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관객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세계적인 현상인 관객 감소 현상이 어김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황금기의 마지막 해인 1958년의 11억 2,270만명이란 연간 영화 총관객수가 12년 후인 1970년에는 2억 5,300만명으로 되었다. 같은 해 7,670개이던 영화관이 3,246개로 줄어 들었다. 1969년과 1970년 한 해 사이에 자그마치 3,000만명의 관객감소와 400개의 영화관 폐쇄가 있었는가 하면, 일본영화의 대부분을 생산해 내던 5대제작사(東映·東寶·松竹·日活·大映)중 다이에이(大映)가 나치카스(日活)와 배급공동화를 위한 배급 주식회사를 설립했으나 얼마후 해산됐으며, 다이에이는 1971년 11월에 전사원(全社員)을 해고, 사실상 영화제작사무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1971년의 제작량을 보면 5대제작사가 132편, 독립프로덕션이 22편(1971년 11월말 현재)으로 대제작회사보다 소자본(小資本)에 의한 독립프로덕션이 활발한 제작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른바 '에로덕션(외설영화)'이나 폭력영화 등이 다량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성인용의 심야(深夜)극장이 성행한다.

대제작사의 붕괴현상을 비롯한 일본영화산업의 쇠퇴현상은 무엇보다 텔레비전의 대량보급(1995년 현재 9,700만대), 성행하는 레저 붐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일본영화가 예술적인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1년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라쇼몬(羅生門)>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때부터이다. 이어 몇 개의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할복(割腹)>(1963) 등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무사도 잔혹이야기>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리고 <무호마쓰(無法松)의 일생>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되어 평가를 받았다.

전후의 일본 영화계에서 활약한 감독으로는 <라쇼몬(羅生門)> <7인의 사무라이> 등의 구로자와(黑澤明), <만춘(晩春)>의 오쓰(小津)가 있고, 60년대 이후에는 <원폭의 아들> <벌거벗은 섬>의 신토(新藤兼人), <인간의 조건> <괴담(怪談)>의 고바야시(小林正樹), <미얀마의 수금(竪琴)>의 이치가와(市川崑) 등 당시 40세를 넘는 중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누벨 바그라고 하는 오오시마(大島渚), 이마무라(今村昌平), 나카히라(中平康) 등이 활약하고 있다.

전후 20년 간의 베스트 10을 일본의 권위 있는 일간신문이 5명의 평론가에게 의뢰해서 뽑은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운(浮雲)>(1955년 제작), <다시 만날 때까지>(1950년 제작), <살다>(1952년 제작), <24의 눈동자>(1954년 제작), <만춘(晩春)>(1949년 제작), <라쇼몬(羅生門)>(1950년 제작), <서학 일대년(西鶴一代女)>(1952년 제작), <일본의 비극>1953년 제작), <미얀마의 수금(竪琴)>(1956년 제작), <인간의 조건>(1961년 제작).

일본영화의 원로격인 미조구치(溝口)와 오쓰(小津)는 사망했고, 구로자와 아키라도 98년 사망했다. 일본영화는 그 밖에도 멜로드라마, 전쟁 스펙터클, 무사영화(武士映畵), 청춘영화, 코미디 등 여러 측면의 오락영화와 특히 핑크영화가 범람하는 등 한때 연간 600편을 상회하다가 1956년엔 516편, 1970년엔 423편으로 줄었다.

5대제작회사의 붕괴가 현저해지기 시작한 현상은 대자본에 의한 영화생산이 점차 줄게 되면서 군소(群小) 독립프로덕션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했다.

군소프로덕션의 특색은 소자본으로 소수의 관객을 의식하는 이른바 영화작가 중심의 예술영화나 정치색이 짙은 영화 등으로 번져 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핑크영화의 생산은 여전히 성행되고 있다.

일본영화가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던 그 여세(餘勢)를 이제 산업으로서 쇠퇴 되는 과정속에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가 일본영화의 당면문제이다.

인도영화의 현황[편집]

印度映畵-現況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일본과 더불어 영화의 양산국(量産國)의 하나인 인도는 1950년대 중턱에 접어들면서 세계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인도영화는 다산국(多産國)이라는 특성과 인구가 많은 나라답게 관객 또는 무한하다는 특색을 갖고 있다. 영화제작 편수는 1953년의 256편에서 1960년대의 300편선의 상회, 그리고 1970년에는 396편을 생산하는 등 날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 또한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관객은 1948년의 2억선에서 지금은 10배로 늘어난 21억의 관객을 헤아린다. 이것은 국민 1인당 평균 연 4회의 감상회수에 해당되며, 그 무한한 관객자원이 결국 다량제작을 부채질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인도영화는 국내시장뿐 아니라 아랍제국과, 북아프리카에까지도 진출하여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도 영화는 무용과 음악을 섞은 뮤지컬 오페레타식의 것이 많고 또한 종교적인 테마에 의한 오락 작품과 스펙터클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술적인 수준은 높은 편이다.

인도의 영화예술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영화작가 사타지트 라이의 공적으로 집약된다. 라이는 영화에 끼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까지 타게 되었으며 1954년 비브디브 상반 디파다이의 자전적(自傳的)인 소설을 영화화하여 제1부 <대지의 노래>를 내놓으면서 호평을 받았고, 이어 제2부인 <대하의 노래>(1957)가 베니스 영화제의 작품상(상마르코 금사자상)을 탔으며, 3부작은 또 하나의 걸작인 <아푸의 세계>로서 종결된다.

어느 가난한 농촌에서 살던 소년이 평원으로 나오고, 드디어는 대도시에서 대학까지 다니게 되어 다시 캘커타로 가는 이 3부작은 식민지시대인 1930년대의 인도의 농촌과 도시의 묘사 속에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세 작품으로 그는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하여 칸, 베를린, 카를로바리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여 서구(西歐) 영화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서구영화가 갖고 있지 않은 동양적인 리듬과 시정(詩情)으로 인하여 세계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인도영화의 또 하나의 특색은 지방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다. 언어가 많으므로 영화제작이 자연 언어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언어사용 지역별로 나뉜다.

라이는 캘커타 지방에서 벵갈어(語)에 의한 영화를 제작한다. 빈즈어(語)를 사용하는 봄베이지역은 인도영화의 3대시장의 하나인 라지 카풀이 대표한다. 봄베이파(派)는 미국적 오락영화가 강한 영향을 준 것으로 카풀은 <구두닦기 소년> <420번지> 등을 제작했는가 하면 그의 제자격인 샴프미드라와 아미드마이드라는 <밤의 베일 밑에서>를 만들어 어느 아파트를 통해 본 인간의 희비극을 묘사했다.

캘커타파(派)의 한 사람이며 라이나 카풀과 더불어 인도영화의 3대거장의 또 한 사람인 비마 로이는 현실적인 주제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장기(長技)를 보인다. <도비가 자면>을 낸 그는 벵갈 S. 챤드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비라자 바후>에서 봉건제도에 의해서 희생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들 3대거장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대들도 형성되어 가고 있는데 그 중 리도위그 가다구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무한한 관객자원과 왕성한 제작열, 그리고 기술 및 라이와 같은 세계적인 영화작가를 가진 인도 영화는 앞으로 계속 발전할 소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은 아니며 인도관객의 수준도 고르지 못하겠지만 동양에서는 저력(底力)있는 영화생산국임엔 틀림없다.

자유중국 영화의 현황[편집]

自由中國映畵-現況

자유중국은 3대영화제작사가 주축을 이루면서 영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하나는 국민당(國民黨)이 주관하는 중앙전영공사(中央電影公司)로서 대북(臺北)시에 9개의 영화관을 갖고 있고 여타도시에도 많은 배급관을 확보하고 있다. 국방성 총정치전략국소속의 중국영화 스튜디오는 기록영화·뉴스영화 등을 만들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대만지방정부가 경영하는 대만영화스튜디오이다. 이 3개의 영화제작소에서는 국책 영화제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극영화도 만든다. 독립프로덕션으로는 그랜드 영화공사, 그리고 홍콩의 왕성한 영화제작사 쇼브라더즈의 대만지부를 필두로 자그마치 160개의 프로덕션이 있다. 영화관수는 1960년 현재 540관.

1922년 <할아버지를 구한 고아>로부터 시작되는 중국영화는 중공이 본토를 장악하자 그들대로의 정치색 짙은 영화제작에 몰두했고 자유중국은 대만에서 다시 새로운 영화제작의 기틀을 마련해야 했다.

자유중국영화는 홍콩영화와 더불어 대만뿐 아니라 화교(華僑)가 널리 흩어져 있는 동남아시장에 배급망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영화의 특색은 국책적인 영화나 동양적인 멜로드라마가 적지 않으나 예술적으로는 낙후하여 아직도 세계적인 평가를 얻는 경우가 드물다. 경극(京劇)을 영화로 옮긴 중국적 창극 영화, 중국고유의 검술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오락적인 측면을 담당해 나가고 있으나 그 근자에는 현실문제를 다룬 예술적인 의욕이 드러나 1964년 아시아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굴 따는 처녀>는 높은 평가를 받은 가작(佳作)이었다. 1967년 이래 문화교육성 주최로 '금마상(金馬賞)'이 수상되는 만다리 국제영화제가 신설되어 1971년에는 <티잉이야기>가 작품상을 수상했고 감독상은 <무기수색자>를 감독한 팅살시가 차지했다.

그리스의 영화[편집]

Greece 映畵

가까운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1950년 이래 르네상스를 맞은 듯 활기를 띠고 새로운 스튜디오의 설치로 1953년의 15편 제작이 70년에는 112편까지 늘었다.

<스텔라>(1956) <엘렉트라>(1961)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은 그리스 생활과 전통미의 모색으로 후에 미국에서 그리스 작가인 카잔차키스 원작의 <희랍인 조르바>를 제작했다. 수도(首都)의 빈민가를 그린 <마법(魔法)의 도시(都市)> <아테네의 식인종>의 니코스 곤도우로스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끌었고 조르주 체바라스도 서민적 환경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서독의 영화[편집]

西獨-映畵

전후(戰後) <0/815> 시리즈로서 우리에게도 친근했던 서독영화는 헬무트 코이트너 감독의 전쟁영화(유고슬라비아·오스트리아合作) 마리아 셀 주연의 <사랑과 죽음의 다리>, 그리고 베른하라트 비키의 <다리>(미수입) 그리고 O.E.핫세의 <조국을 누가 팔았는가> 등은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았다.

서독은 1962년에 78편을 제작했으나 1970년에는 129편으로 늘어났다. 70년 들어와 3,468개의 영화관을 확보하고 있는 서독은 연관객수 14억 2,000만명, 인구당 평균 입장회수 연 3회를 갖고 있으나 최근에는 관객이 점차 줄고 있다. 주목을 끄는 H.코이트너 감독은 그 후 <악마의 장군>을 내놓고, 1930년대의 표현극의 영화를 비롯하여 화려했던 그 영광을 되새기며 <제복(制服)의 처녀(處女)> <회의(會議)는 춤춘다> 등의 재제작(再製作)도 성행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던 하우프트만 원작의 <고엽(枯葉)> (볼트강 세타우 감독)도 평판이 좋은 작품이다.

에스파냐의 영화[편집]

Espana 映畵

프랑코의 독재체재 아래 표현 자유에 제한을 받았으며 선전영화가 많았으나 프랑코 사후에는 자유화 물결이 영화계에도 밀려왔다. 1953년의 44편 제작에서 1970년에는 106편으로 늘어났고 연관객수는 3억 3천만명으로 인구당 감상 회수는 연10회. 영화관은 6,917관.

1950년대부터 새로운 영화작가의 각성으로 루이스 G.베르랑가의 <마샬 대환영>(1952)같은 문제작이 나오고, 판 안토니오 바르뎀이 활약했다. 바르뎀은 진보적인 작가로 주목을 끈다. 쉬르레알리슴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1918)와 <세브리느>로 유명한 세계적인 영화작가 루이스 부뉴엘이 청년기에 활약한 고향이지만 그는 지금 멕시코·프랑스 등지에서 제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멕시코의 영화[편집]

Mexico-映畵

제작편수는 1953년에 76편, 70년 124편이다. 한동안 중남미(中南美)에서 영화의 중심이며 영화산업국으로서 1970년 현재 1,769개의 영화관과 2억 5,150만명의 관객으로 인구당 연평균 5회의 감상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감독은 우리나라에도 수입된 바 있는 스타인 벡의 <진주>(1947)를 만든 감독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이다. <마리아 간데라리아>(1944)로 인정받은 그는 돌로레스 델 리오, 마리아 펠릭스 등 여배우를 기용, <사랑하는 여인> <에스콘데드강> 등을 발표했다.

에스파냐의 거장 루이스 부뉴엘이 망명해 와서 문제작 <잊혀진 사람들>(1950) 등을 발표했다. 1952년 이래 예술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나 후고 브라치, 로베르 가바르동 등 50년대의 감독들의 활약이 컸던 영화산업국이다.

브라질의 영화[편집]

Brazil-映畵

1967년에 영화관 3,194개, 연 관객수 2억 3,470만명으로 연평균 인구 1인당 영화관 출입회수는 3회, 프랑스에서 귀국한 세계적인 감독 알베르토 카발칸티가 활약하기 시작하고 또한 리마 파레도의 <야성(野性)의 순정(O Cangaceiro)>(1952)이 나오자(우리나라엔 57년에 수입되었음) 브라질영화는 재건과 함께 세계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다. 또한 1962년 안세르모 듀아르테 감독의 작품 <산타 바바라의 맹세>가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하여 세계에 그 이름을 떨쳤다. 문제작 <안토니오 다스 모르타수>(1966)를 내어 놓은 글라우베르 로샤가 신진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영화[편집]

Argentina-映畵

1970년 현재 영화관 1,644개, 연관객수 5,390만명, 인구 1인당 연 입장 평균 회수 2회로서 중남미의 왕성한 영화 산업국이다.

<가우촌전쟁>으로 유명한 루카스 데마레는 국민적인 주제의 <라사후라>를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그 다음 세대로서 토레리오스 감독의 아들인 레오폴드 토레닐손이 <페론말기(末期)>로 데뷔, <몰락> <천사의 집>(1957) 등으로 남미의 정치 생활을 묘사하여 개성이 강한 영화작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그 밖에 페르난도 아야라의 활약과 로베르포군 등이 새시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安 炳 燮>

작품 감상(일본)[편집]

라쇼몬[편집]

羅生門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주연 미부네(三船敏郎). 모리(森雅之), 교(京マチ子). 흑백·스탠더드. 1950년 제작.

<내용> 아쿠다가와(芥川龍之介)의 단편 <수풀속>을 중심으로 <라쇼몬>의 정경을 한데 엮어서 만든 시나리오에 의한 작품. 헤이안 조(平安朝)시대 수도에 가까운 야마시나의 산 속에서 여행중인 무사(森)가 산적(三船)에게 살해되었고, 그 이전에 무사의 아내(京)도 남편 앞에서 능욕된 사건을 둘러싸고 범인인 산적과 무사의 아내와 발견자들이 검비위사(檢非違使)앞에서 증언하는데, 어딘지 여러 사람의 증언이 모두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죽은 무사의 영혼까지도 무녀(巫女)의 입을 통해서 증언한다.

<감상> 구로자와의 이름을 일약 세계에 떨친 작품으로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일본으로서는 최초로 그랑프리(金賞)를 탔다. 교 마치코와 미부네의 존재도 알려졌으며 구로자와의 다이내믹한 영화감각이 구미(歐美)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느끼게 했고, 일본의 시대적 풍습도 확실히 진귀(珍貴)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각 증인의 말이 쏟아져 나오고, 영상적(映像的)으로도 그것을 통해 전개되므로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점은 소설인 경우에 비하여 다소 혼란을 빚는 약점이 된 것이다. 제재(題材)에 비하여 작품의 무드면에서는 라쇼몬의 비의 신(scene) 등에서 아직 감상적(感賞的)인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우게쓰 이야기[편집]

雨月物語

감독(監督) 미조구치(溝口健二). 주연 모리(森雅之), 교(京マチ子), 다나카(田中絹代), 미도(水戶光子), 고자와(小澤榮太郎). 흑백·스탠더드. 1953년 제작.

<내용> 우에다(上田秋成)의 원작을 가와구치(川口松太郎)와 요리다(依田義贅)가 각색(脚色), 3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뭉뚱그린 것으로, 하시바(羽柴)와 시바다(柴田)의 회전(會戰)이 시작되려고 하는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와호(琵琶湖) 호숫가의 가난한 도공(陶工) 겐쥬로(모리)와 아내(다나카)가 동료 부부(고자와·미도)와 호수를 건너서 대안(對岸) 거리의 시장으로 질그릇을 팔러 갔는데, 그때 겐쥬로는 구치키(朽木) 저택의 와카 사히메(교) ―― 사령(死靈)의 색향(色香) ―― 에 현혹되어 같이 살게 되었으며, 이윽고 병들어서 죽게 됐다가 겨우 빠져 나왔다. 고향엘 돌아갔더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한편 고자와의 동료는 무사(武士)가 되지 못하고 그의 아내 아하마(미도)는 시장에서 길을 잃게 되어, 타락한 무인(武人)들에게 폭행당했으며, 마지막에는 창녀까지 됐으나 남편에게 겨우 구출되어서 돌아간다.

<감상> 미조구치는 구치키 저택을 중심으로 일본적인 유현미(幽玄美)와 환상미(幻想味)를 전개함으로써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도 격찬받았으며, 생마르크 은사자상(銀獅子賞)을 탔다. 보통은 매우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라고 지적되고 있던 미조구치도, 실은 뛰어난 시인적 재능을 갖고 있으며, 이 작품은 그의 로맨티시즘을 대표하는 명작이다. 기술적으로는 남녀 4명이 호수를 건너는 조각배의 장면이라든가, 요괴(妖怪)취미의 구치키 저택 장면의 촬영효과가 뛰어났다.

작품 감상(인도)[편집]

대지의 노래[편집]

Pather Panchali

감독 사타지트 라이. 흑백·스탠더드. 1955년 제작.

<내용> 1930년대 인도 어느 가난한 농촌에서 일어나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원래는 지주였으나 몰락하여 버린 이 집은 가난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쓰라린 경험을 한다. 성품이 고운 부친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모친은 생활고로 인해 집안의 귀찮은 존재인 할머니에게 심하게 대한다. 그 할머니에게 과일을 대접하려고 맏딸이 근처의 과수원에서 도둑질을 한다. 그런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 어린 소년은 여러 식구들의 애정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한다. 그런데 어느 폭풍이 부는 날 밤 맏딸이 병으로 죽고, 이튿날 돈벌이에서 돌아온 부친은 온 집안에 연이어 불행한 일이 닥친 이곳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감상> 인도영화의 명성을 처음으로 세계에 떨친 걸작이며, 다음에 나온 <대하의 노래> <아푸의 세계>와 더불어 개개 인간의 영혼의 성장을 그린 것으로 3부작이다. 여기에는 유럽이나 미국영화와는 매우 대조적인 특이성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연의 생명감을 심오하게 그려내는 것으로써 종교적인 정조(情操)의 풍부성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 감상(서독)[편집]

다리[편집]

Die Bruke

감독 베른하르트 비키. 주연 균터 호프만, 카를 미하엘바르츠아. 흑백·스탠더드. 1959년 제작.

<내용> 2차대전의 종전이 가까웠을 무렵의 독일 어느 시골 도시에서 생긴 일이다. 연합군이 가까이 육박해 왔으므로 드디어 고교생들에게마저 동원령이 내렸다. 패전으로 후퇴하는 길밖에 없던 수비대는 고교생들에게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교량의 수비를 명하고, 그들을 인솔하는 하사관에게 기회를 보아 후퇴하라는 지시를 했으나, 그 하사관이 스파이로 오인되어 아군에게 사살된다. 소년들은 습격해 온 미군 전차대와 필사적으로 싸웠다.그러나 그것은 이미 싸울 필요가 없는 싸움이었으며, 젊은 목숨을 헛되이 버렸을 뿐이었다.

<감상> 자기들만이 조국을 패전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외곬으로 생각하고 있던 소년들의 애처로울 정도의 진지(眞摯)함과, 이미 패전을 알고 요령껏 처신할 것만 생각하는 어른들과의 대조가 비극적이다. 후반 전투장면의 박력은 맹렬하다. "애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유치원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는 미군 병사에게 바주카포를 쏘아, 미군병사는 터져 나온 창자를 부둥켜안고 괴로와 몸부림친다.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작품 감상(에스파냐)[편집]

비리디아나[편집]

Viridana

감독 루이스 부뉴엘. 주연 실비아 비날, 프란시스코 라발. 흑백·스탠더드. 1961년 제작.

<내용> 오로지 신앙으로만 살아온 수녀 비리디아나(비날)는 종생(終生)의 수도원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귀족인 큰 아버지를 찾아간다. 큰아버지는 그녀에게 정욕을 품고, 수면제를 먹여 강간하였다고 거짓말을 해서 머무르게 하려고 하였으나 자책감 때문에 자살한다. 이 사건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느낀 그녀는 큰아버지 집에 머무르면서 자선사업을 벌여, 거지나 나병환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큰아버지의 아들인 청년 호르헤(라발)가 와서 그와 같은 자기희생의 생활방식을 조소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난장판을 벌인 거지들은 난폭한 나머지 비리디아나에게 대든다. 그러나 호르헤가 다른 거지를 교사(敎唆)하며 난폭자를 죽임으로써 겨우 그녀는 살아난다.

<감상> 감독인 루이스 부뉴엘은 사상적으로는 허무주의자이지만 애초부터 가톨릭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는 성당이 인간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을 격렬히 탄핵(彈劾)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결국은 참다운 신앙본연의 자세를 역설하고 있다. 표면적인 자기 희생적 신앙의 위선성을 먼저 분쇄(粉碎)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열렬한 반역정신이 시들어버린 스타일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작품 감상(그리스)[편집]

엘렉트라[편집]

Electra

감독 미카엘 카코야니스. 주연 이레네 파파스, 알레카 카체리. 흑백·스탠더드. 1961년 제작.

<내용>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표적인 걸작의 하나인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를 영화화한 것이다. 아버지 아가멤논 왕(王)은 왕비인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情夫)에 의하여 살해되고, 공주 엘렉트라(파파스)는 이름도 없는 농사꾼의 아내가 되었으나 하루도 복수를 잊은 적이 없다. 어느날 그녀에게 동생 오레스테스가 찾아온다. 그리고 동생은 복수의 군사를 일으켜 어머니의 정부를 죽인다. 그러나 엘렉트라의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풀리지가 않는다. 그녀는 어머니(카체리)를 불러내어, 싫어하는 동생에게 억지로 죽이게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추방의 길을 떠난다.

<감상> 그리스영화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계에 과시한 걸작이다. 무엇보다도 격조높고 정정당당한 연기가 훌륭하다. 바위만이 울퉁불퉁 솟은 거친 풍토감이나 미키스 테오드라키스에 의한 현묘(玄妙)한 그리스 음악과 잘 어울려서, 간결하고도 고도의 긴박한 조형미를 나타내고 있다. 고전(古典)의 강직한 스타일이 바로 그 본고장에서 더욱 모범적인 표현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감상(멕시코)[편집]

잊혀진 사람들[편집]

Los Olividados

감독 루이스 부뉴엘. 흑백·스탠더드. 1950년 제작.

<내용> 멕시코시의 소년 형무소를 탈옥한 불량 소년의 보스와 그의 친구인 빈민가(貧民街)의 소년들은 방약무인(傍若無人)한 비행을 일삼는다. 친구를 배신한 자를 때려 죽이고, 길가의 장님이며 앉은뱅이 거지로부터 돈을 빼앗는다. 그리고 또 소년원에 들어가서, 모처럼 갱생하려고 하는 나이 어린 친구들을 자기패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살해된 소년은 쓰레기장에 버린다.

<감상> 한 가닥의 감상(感傷)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냉정비정(冷靜非情)하게 그린 비행소년영화(非行少年映畵)이다. 그러나 그 비정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미국의 갱영화와 같이 볼품 좋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추구하는 사실주의(寫實主義)적인 정신으로 일관된 것으로서, 소년들의 거친 욕구 속에 숨어 있는 성욕이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에 쉬르레알리슴 전위영화(前衛映畵) 작가로서 <안달루시아의 개> 등의 획기적인 걸작을 만든 부뉴엘은 이 현실적인 재료에 당면해서도 그것을 다만 외면상의 리얼리즘에 그치지 않고, 소년들의 환경과 속마음의 욕구를 동시에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서 유례없는 인간적인 깊이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감상(브라질)[편집]

산타 바바라의 맹세[편집]

Santa Barbara-盟誓 O Pagodor de Promessas

감독 안세르모 듀아르테. 주연 레오나르도 빌라르, 글로리아 메네제스. 흑백·스탠더드. 1962년 제작.

<내용> 브라질의 어느 지방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축제일의 아침, 한 농부가 아내와 함께 큰 십자가를 지고 와서 그것을 교회에 바치려고 한다. 먹이고 있던 당나귀의 병이 나으면 이렇게 하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영혼이 없는 당나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사도(邪道)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농부는 교회앞에 주저앉는다. 교회에 반감을 가진 저널리스트와 가난한 흑인들이 이것을 문제삼아 소동을 피우고, 교회는 경찰대를 불러서 추방하려고 한다. 소동은 더욱 커지고, 농부는 경관의 총알에 맞아서 결국 죽는다. 사람들은 그 농부의 시체를 십자가에 태워서 교회로 운반한다.<감상> 브라질영화에는 강렬한 야성미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또한 흑인들도 미국영화의 흑인들과는 달리 느긋한 풍격과 여유있는 연기를 보이고 있는것도 매력의 하나이다. 그러나 많은 작품에서는 그것이 엉성하게 통일성을 결하기가 일쑤인데, 이 작품에서는 멋들어진 연출로 훌륭하게 통합되어 있어, 브라질영화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과시한 최초의 걸작의 하나가 되었다. 교회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등, 기개가 넘치고 있다.

작품 감상(중국)[편집]

패왕별희[편집]

覇王別女臣

감독 첸 카이거. 1993년 제작.

<감상>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화민국시대, 항일전쟁시대, 내전시대, 중화인민공화국시대, 토지개혁운동, 반우파운동, 문화혁명, 그리고 개혁·개방의 시대를 거친다, 어린시절, 매타작을 당하며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에 경극의 명성을 잇는 두 남자의 우정이 현란한 영상 속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굴곡 많은 중국사 속에서 남녀 양성의 사랑을 간직한 주인공이 끝내 경극과 우정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자살하는 끝 마무리는 비장하다.

<패왕별희>가 중국 민중에게 사랑받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초패왕의 사랑과 죽음으로 그 사랑에 화답한 우희의 절개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춘향전>이나 일본의 <츄신구라>처럼 절개와 지조, 충절이 동양인에게 으뜸가는 미덕으로 꼽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대목이다.

첸 카이거는 원작을 요령있게 요약하면서 그 재미와 경극의 절묘함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평범한 진리로 세계적인 평가를 얻은 것이다.

<패왕별희>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작품 감상(오스트레일리아)[편집]

피아노[편집]

Piano

감독 제인 캠피온. 1994년 제작.

<감상> 얼핏 보기에 진부한 삼각관계 이야기인 듯 싶은 <피아노>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시대와 공간이 여성에게 주는 억압, 특히 성적인 억압을 보여준다. 주인공 아다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새 남편과 아버지의 교환수단이 된다. 그리고 자기의 표현수단인 피아노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남편과 낯선 남자 사이에 거래된다.

그의 목소리는 입술을 통하지 않고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열정적인 피아노 소리로, 딸에게 보내는 신호로, 종이 위에 연필로 쓰는 글로, 연인의 몸을 쓰다듬는 손길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런 자기 표현이 남편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은 남편이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데서 확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 영화는 남성들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고 어떤 것이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아다가 구획짓기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인물이자 도끼로 상징되는 스튜어트라는 남편을 버리고 원주민과 친한 베인즈를 선택하는 것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 할리우드적 관습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한 이 영화의 접근법은 분명 아직도 낭만적인 사랑의 각본을 믿고 싶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